회사를 떠난 사람들 23 _ 개발자. 퇴사 후 두려움의 늪을 건너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8.02 07: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1978년생 39세 ㅇㅇㅇ 입니다. 회사에서는 개발자로 일했고 퇴사 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준비 중 입니다.

 

▶ 학교부터 직장까지의 커리어는?

ㅇㅇ대학교 97학번으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예전부터 로봇 만드는걸 좋아했다. 학부 때 ㅇㅇ연구원에서 위촉연구원으로 들어가서 전기, 전자,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했다. 일이 잘 맞고 재미있어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다. 취업을 앞두고는 로봇에 너무 빠져있었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취업 시 삼성, LG 같은 대기업에 지원하지도 않았다. 사실 토익 점수도 낮았다. 원서를 읽고 공부하는 데는 문제가 전혀 없었기에 토익 공부에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로봇을 만드는 것이 더 좋았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서 셋탑박스를 만드는 회사에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이었고 회사를 얻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에 첫 회사에 들어가서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엔지니어로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행복감을 충분히 느끼며 일을 했다. 인증을 위해 해외 출장도 다니면서 영어실력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엔지니어로 기술력도 느는 것도 정말 행복했다.


첫 회사를 그렇게 5년을 다녔다. 인도에서 가장 큰 미디어 회사의 프로젝트를 했는데 금액이 엄청나게 컸다. 그 프로젝트 때문에 거의 일년 반 이상을 인도에서 살았다. 당시 결혼을 약속한 지금의 아내와 점점 크게 싸우게 되었다. 오래 떨어져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신혼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다시 짐을 싸서 밤 비행기로 인도로 떠났다. 그 정도로 일에 얶매인 삶이었고 당연히 신혼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주일 후에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나라도 또 출장을 갔었다. 이 바닥에서는 사실 이혼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식이기도 하다.


서울 근교의 작은 반지하 전세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아마 그 때부터 아내가 다른 일을 해 보는건 어떠냐?”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왜 그러냐?’라고 물어 봤더니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우울하다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개인의 삶이란 아예 없이 회사밖에 몰랐었다. 아내는 엄청나게 밝은 사람이었는데 우울감이라는 단어를 듣고 눈빛을 보니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2009년도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했다. 이 업계에서 이직 서너번은 다 하는 거고 아직 젊고 내 기술이면 재 취업도 가능하니 회사를 그만두자라고 얘기를 했다. 아내도 나도 퇴사통보를 하고 전세방 한쪽 벽에 유럽전도를 붙여 놓았다. 목표는 3개월간의 유럽 자동차 여행이었다. 이직계획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유럽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은 너무 행복했다. 아내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거였나? 

아니다.  퇴사 결심을 하고 여행 준비를 하던 중 알고 있던 업계의 영업사원에게 전화가 왔다. “중국의 큰 회사에서 셋탑박스 사업을 시작하려고 조직을 새로 만들고 있다. 거기에 한국 엔지니어를 모르는데 생각이 있냐?” 라는 것이었다. 중국회사에서 시한 월급은 환율을 생각하면 당시 받던 연봉의 2배가 훌쩍 넘었다. 통장에 꽂히는 돈이 매달 700만원이 넘었다. 우리나라에서 1억 연봉을 받으면 통장에 NET 으로 꽂히는 돈이 600만원 후반인 것으로 안다. 또 집은 당연하고 3개월에 한번씩 휴가와 한국행 티켓을 준다는 조건이었다. 아내는 우울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중국 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후 그 회사에서 비행기표를 보내왔다. 공장 투어를 해 준다는 거였다. 나를 포함해서 업계 사람들 십여 명 정도로 구성된 사람들이 중국으로 날아갔다. 직원수가 육천 명이 넘는 회사고 잘 구성된 연구단지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훌륭한 복지와 놀랄만한 월급이라니 누구라도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이가 서른 두 살 정도였는데 여행을 포기하고 아내도 퇴사를 하고 중국으로 갔다. 26개월 정도 중국의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내와 함께 가장 행복행복 시기였던 것 같다. 아내도 돈 걱정도 없고 회사사람들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부부간의 불화는 도박이나 불륜 정도 아니고서는 당사자간의 문제는 생각보다 적다. 고부간의 갈등 친척, 지인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데 그럴 이유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다. 530분에 퇴근해서 함께 저녁을 먹고 중국 특유의 오랜 휴가도 맘껏 즐겼다.







▶ 어떻게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되었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그냥 짤린거였다. 어느 날 우리를 담당하는 부서의 장이 찾아와서는 폭탄선언을 하고 가버렸다. 회사의 회장이 바뀌면서 외국인으로 구성된 조직을 없애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의 연봉은 외국인 채용 시 정부로부터 받는 돈으로 주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국가에서 받은 돈으로 월급 주면서 나를 포함한 한국 엔지니어의 기술을 쏙 빼먹은 거였다. 그리고 버린 것이었다. 그 후 2달 동안의 시간을 주고 엔지니어 들은 모두 흩어졌다. 그렇게 2012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 회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다시 한국에서 일하는 것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우선 중국에서 월급이 많고 물가가 싸다 보니 몸에 배였던 씀씀이 때문 이었다. 헤프게 쓴 건 아니었는데 꼼꼼하게 가계부를 적으면서 살지는 않았기에 첫 해는 적자였다. 한 일년 정도 지나니 한국에 적응이 다시 되었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다시 큰 프로젝트에 투입되게 되었다. 해외에서의 인증작업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고 하게 되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한국보다 해외에서 일하는 날이 더 많은 삶이었고 다시 아내는 혼자가 되었다. 중국으로 가기 전과 100% 똑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도 답답해 하기 시작했고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간의 벽같은게 생기기 시작했다. 영상통화 백날 해도 그 답답함과 알 수 없는 먹먹함은 심해져 갔다. 마치 권태기의 부부 같았다. 어느 날 똑같이 현지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서 아내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내의 말이 이제는 이 일, 이렇게 사는 삶을 그만두자라고 말했다. 이건 부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우울에 대한 힘든 상황이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찝찔한 것이 입안에 느껴졌다. 거울을 보니 코피였다. 두 달이 넘게 매일 새벽까지 일을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는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다고 하고, 남편은 타지에서 매일 철야로 몸이 망가지고…… 이런 것이 사는건가? 내가 살아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코피를 쓰윽 닦는데 회한이 들어 웃음이 피식 났다.

 

맡았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첫 출근을 한 날. 팀장에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회사에서 거절하기 힘든 것으로 골랐다. 아내와 오래 전부터 계획한 세계일주 여행이었다. 2015 10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정확히 7일 후에 여행을 떠났다. 5살 아들과 함께 한 70일 정도의 여행이었다. 그렇게 딱 10년간 회사생활을 했다.

 

▶ 포털의 퇴사와 관련된 자극적인 글들이 많다.  잘나가는 삼성 때려치고 세계일주 가다” 뭐 이런 제목 많은데 그런 거였나?

전혀 아니다. 살기 위한 여행이었다. 우리 가족의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중국에 가기 전 아내의 우울감이 극에 달했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기로 했던 여행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거였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했지만 아내나 나나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한국 땅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의 삶은 이전과 똑같았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었다. 그냥 잠시 미뤄놓은 것뿐이었다. 사실 여행은 특별한 계획도 없이 떠났다. 예약한 것은 출발하는 비행기와 각 도시별로 숙소 뿐이었다. 네델란드의 아무도 모르는 도시에서 한달, 그리고 스위스의 고산 지대에 있는 한국인을 잘 모르는 도시에서 또 한 달을 살았다. 독일하고 스웨덴에도 오로라를 보기 위해 짧게 다녀왔다.

 


▶ 퇴사를 하는데 아내의 영향이 더 큰것 같다. 어떤가?

아내의 의지가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힘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회사의 일만 보면 싫지는 않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나는 일을 잘했다. 소위 Ace였고 엔지니어로서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나 혼자만 본다면,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정이 있었고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아침에 새벽같이 나가느라 애 얼굴도 못 보고, 밤에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서 또 못 본다. 이것 까지는 뭐 한국의 여느 가장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년에 70% 이상을 해외에서 컴퓨터에 머리박고 일만하고, 아이도 얼굴도 컴퓨터를 통해서만 보는 삶. 뭐 거기까지도 한국이니까 버틸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아내가 던지는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힘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1~2년 후에는 나아진다는 확신이 있느냐?” 답은 없었다. 이 계통의 엔지니어들의 경로는 똑같다. 회사에 남는 것은 두 가지다. 정치를 잘해서 관리자로 올라가는 것. 아니면 오래 다니더라도 똑같이 코딩하고 해외에서 20대와 똑같이 일하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인정을 받았기에 40대 후반까지는 개발자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그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그렇게도 힘들어 하는 삶을 계속 살아가라고 남편으로서 강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생각은 명확했다. 내가 40대 후반까지 개발자 일을 하면 지금과 똑 같은 우울한 날들의 연속일 거고, 40대 후반에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40대 후반까지 남은 10년을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우리 둘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무모한 달리기는 멈추고 세상으로 뛰어 들면 우리 부부 사이가 벌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나이에 조금함을 잠깐 버리고 1~2년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안되면 다시 개발 일을 할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 지금 잠깐 멈추고 미래를 준비하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일 외에 무엇을 잘하는 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솔직히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40대 후반에 다른 일을 하는 거는 우스개 소리로 많이 나오는 개발자 치킨집 수렴의 법칙에 정확히 들어 맞는 것뿐이었다.

 

▶ 그 말에 뭐라고 답했는가?

아내의 말을 한마디로 줄이면 <돈을 벌면서 살 건지, 인간답게 살 건지> 였다. 아내와 나와 잘 맞는 부분이 돈에 큰 욕심이 없다는 거다. 물론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벌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그 상황에 맞추어 살면 된다고 믿었다. 어찌보면 내가 퇴사를 선택한 것은 내 가족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였다. 선택에 정답은 없지만 아내와 나는 같은 가치를 믿고 있었고 그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 회사에는 어떤 사람이었나?

회사일 자체는 재미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좋은 사람들과 합심해서 일하는 것이 좋았다. 인증 성공에서 얻는 희열과 성취감도 좋았다. 말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나름 회사 내에서 Ace로 인정도 받고 있었다.

 

▶ 그렇다면 회사나 일 자체가 싫어서 그만둔 것은 아닌것 같다. 

맞다. 일은 좋았다. 보통의 엔지니어, 개발자 들은 회사내의 암투나 정치 줄대기 이런 것에 그닥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지막에 떠나게 된 회사에서는 원치 않게 이런 끈적끈적한 일들에 얽힐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 이익이 많이 났는데 Profit Sharing을 하지 않고 배당금만 주었다. 사장이 두 개의 법인을 운영했는데 회계적으로 이익을 다른 회사로 돌려서 직원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니 내가 이런 회사에서 이렇게 까지 피땀 흘려 가며 일할 필요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에서부터 시작된 회사에 대한 불신도 하나의 계기였다. 회사와 관련된 오너의 전횡이 많지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서 그렇다. 

 

▶ 회사를 떠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아내다. 아내의 뜻대로 떠난 것에는 후회가 없나?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 회사를 떠나야겠다.’ 라는 갈망은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아내가 얘기를 안 했다면 나는 계속 욕하면서 회사를 다녔을 거고 마이 마흔 후반 되어서 타의로 회사를 나왔을 것이다. 아내의 의사가 반영된 퇴사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가정은 더 평안해 졌고 행복해 졌기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 회사를 그만두고 느낌이 어땠나?

회사에 퇴직의사를 밝혔음에도 인사권자가 나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꼴보기 싫다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상적으로 퇴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게 2달동안 인수인계를 마치고 회사를 나올 때의 느낌은 너무너무 좋았다. 아이를 얻었을 때만큼 좋았던 것 같다.

 

▶ 그만두고서 계획은 있었나?

대책이나 계획은 없었다. 여행계획을 제외하고는

 

▶ 혹시 모아놓은 돈이 많나? 집이 부자인가? 어떻게 먹고 살 대책이 없이 그만뒀나?

아니다. 부모님도 힘들게 아직도 작은 일을 하고 계시고 아내의 부모님도 작은 자영업을 하신다. 부자는 아니다. 

 

▶ 아무리 그래도 인간적으로 너무 무대책 아닌가?

퇴직금 이천만원 받은 것으로 계산기를 두르려 봤다. 아껴서 써서 200만원씩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쓴다면 일년은 버틸 돈이었다. 아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나의 감정상태였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30대 후반에 회사를 그만둔 공돌이 가장. 당신이 얼마나 막막하고 절벽앞에 선 느낌인지 조금은 안다. 그 시간이 너무 힘들거고 어쩌면 아내인 나와도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은 우리 세 가족이 똘똘 뭉치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얘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그러니 이 돈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서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자. 이천만원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이 될꺼다.”

아내의 이 말을 듣고 아냐, 돈 아껴야 돼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무대책'이라는 단어에 가벼움이 묻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단어엔 '안타까움', '절실함' 그리고 중요한 '단순함'이 담겨있기도 하다. 절실함에 이끌려 대책을 세우려 했지만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은 물론이요, 복잡한 세상살이를 향해 '대책 없는게 뭐 어때서!' 라며 어줍지 않은 단순함으로 반항 한번 해보고자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 아이가 출근하지 않는 아빠에 대해 아무 말 안 하나?

아이가 유치원생인데 한번도 아빠는 왜 이제 회사 안가?”라는 질문을 한적이 없다. 아이가 아빠 오늘 회사 안가고 나랑 놀아주면 안되?” 라는 질문에 아빠가 회사를 가야 니가 좋아하는 로봇이나 레고도 사주고 빕스도 데려가 줄 수 있어이렇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질문은 내가 아닌 아내가 받았다. 아내는 아이에게 아빠는 아빠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있어. 사람은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도 있어.” 이렇게 얘기했다고 들었다. 신기한 건 돈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빠의 출근 = =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이라고 가르쳐 본적이 없어서 아예 묻지도 않은 것 같다. <아빠가 출근 안함 = 내가 좋아하는 레고를 얻지 못함> 이라는 인과관계가 아예 생기지도 않은 것 같다.

 

▶ 인터넷에 글도 쓰고 있다. 왜 쓰나?

나를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 죽을듯한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썼다. 나는 10년 동안 일만하고 해외에 처박혀서도 일만했다. 그렇게 일밖에 모르던 내가 아무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다. 그 안에서의 감정의 변화는 어마 어마 하다. 내가 한번도 겪어보지 형용 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 또 아침에 일어 났는데 갈 곳이 아무곳도 없다는 절망감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다. 이런 감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약 두 달 정도는 정말 힘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만약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디 가서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미친듯이 읽었다

그 안에 마음의 평안을 조금씩 얻고 동네 앞에 국수집에도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서 사장님과도 얘기도 많이 했다. 그 분도 회사를 다니다가 나와서 일을 하는 분이라 친형님처럼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면서 감정이 조금씩 변해 갔다. 마치 한번 Impulse 처럼 크게 튀어올라 주체할 수 없던 감정이 조금씩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공돌이고 글쓰기에 큰 소질은 없지만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잊기 전에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썻다. 이제 곧 마흔이 되고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았는데 지금 느끼는 이런 감정의 변화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분명 큰 도움이 될거라 믿었다.

 






▶ 사람들을 만났다는 건 뭔가?

그렇게 감정의 변화를 조금씩 이겨내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부터 만남이 시작되었다. 내 글을 읽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연락해온 것이다. 주로 회사를 떠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먹고 살 준비가 안되어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가정도 있고 아내가 허락을 안 해서 진퇴양난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느낀 감정, 그리고 지금 겪는 미칠듯한 불안과 서서히 자신을 돌아보는 느낌 이런 것이 자신의 감정과 너무너무 똑같다고 생각해서 연락을 했다. 그들이 어떤 답을 구하려고 나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같은 감정을 느끼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큰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나 혼자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게 아니구나’, ‘나와 같은 사람이 있구나라고 공감하는 자체가 소중했다. 공통된 특징이라면 결혼을 했고 가정이 있고 책임을 져야 할 누군가가 있고 무언가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었다는 거다.

 

▶ 왜 우리는 비슷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나? 좋은 학교, 좋은 직장만 쫓다가 용도가 끝나면 버려지고 그 이후에 괴로워하다가 힘들게 새로운 삶을 사는 것 말이다. 특히 개발자라면 개발자 치킨집 수렴의 법칙이라는 인터넷의 우스개 글도 있을 정도다.

나도 생각해 본적은 없다. 지금 고민해 보자면 비슷한 삶의 시작은 비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남보다 좀더 많은 연봉, 옆집 아빠보다는 좋은 차. 이런 것이 비교의 시작이다. 삶의 기준이 남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인 듯 하다. 조금 더 말하면 남이 말하는 것, 그리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시선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삶의 좌표가 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에서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원하는 것만 따라 하면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물이 목까지 차 올라서 곧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밀려와야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 공대 나와서 일을 하는 것인 인문계열보다 낫지 않은가?

공대생 같은 경우는 굵고 짧고 인문계는 가늘고 긴 것 같다. 공대생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당장 필요한 기술자의 경우 많은 돈을 받을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좀 낫다. 하지만 그 수명이 짧고 갑자기 떨어진다. 나도 이제 곧 40대 인데 수명이 거의 끝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인문계열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적은 돈을 벌지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것 같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 비슷한 일을 하는 개발자 후배에게 회사를 나온 입장에서 조언을 해 준다면?

솔직히 결혼을 하지 않은 후배에게는 해 줄 말은 없다

결혼한 후배라면 돈이 전부가 아니다.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 가정에 소홀하지 말아라.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안 그러면 공대 나온 사람은 회사에서 짤리는 순간 끝난다. 아내가 특히 정신적으로 동감을 하고 도움을 준다면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이건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으로서 퇴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의 다스림이다. 아차 잘못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말 정도 일 듯 하다.

나는 안다. 이 느낌 이 지랄맞은 감정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일 뿐이다. 퇴사 후 느끼는 감정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절대 모른다. 경험이 같지 않다면 전혀 공감할 수 없기에 나는 이 감정은 경험한 사람들에게만 혹은 듣기 원하는 사람에게만 얘기한다. 사람들은 그냥 누가 회사를 몇 살에 때려 치고 나와서 창업해서 좀 힘들다가 지금은 잘되 회사 다닐 때보다 몇 배는 더 벌어. 뭐 이런 류의 얘기만 들으려 한다.  

모바일 포털에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몇 년간 세계 일주한 이야기뭐 이런 것들 것 많은데. 그 자체로는 좋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는 그냥 표면적인 성공 세속적인 멋짐만 다루려 한다. 그 과정까지의 감정과 삶의 변화 이런 것에는 그냥 소홀하다. 아쉬운 부분이다. 퇴사한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만 듣는다고 바뀌는 건 없다. 내가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과정 동안의 감정의 변화와 그것을 어떻게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 얘기해 주면 더 좋을 것 같다.

 

▶ 요즘 일상은 어떤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와 같이 아이 밥을 먹이고 유치원에 대려다 준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동네 뒷산을 산책한다. 동네 아줌마들은 많이 만나는데 우리 부부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부러워한다. 가끔은 조조할인 영화도 본다. 돌아오면 아내는 지금 계획 중인 집의 도면을 짜고, 나는 준비하고 있는 소프트 웨어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짠다. 나는 천상 개발자이고 할 수 있는 일도 소프트웨어 개발이기 때문에 이 일을 준비한다. 이걸로 대박을 치거나 하는 생각은 없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내 능력 안에서 적당한 생활비만 벌어도 만족한다.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다. 그러다가 3시가 넘으면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고서 아이와 계속 놀아준다. 힘에 부칠 정도로 놀아준다. 아이가 8시에 잠이 들면 아내와 집의 설계도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블로그에 글도 집중해서 하나 쓴다. 그렇게 지내고 있다.

 

▶ 회사를 그만두고서 얻은게 있다면?

회사를 떠나서 나는 아들을 다시 얻었다. 아이는 어릴 적에 아빠 집을 인도로 알았다. 하도 오랫동안 인도에 출장을 가 있으니 그런 것이다. 또 아이가 아빠얼굴을 보지 않으면 아빠로서의 존엄성은 전혀 없고 무시한다. 나와 아이의 관계가 예전에 그러했다.아빠는 아빠 집이 회사니까 회사나 가. 인도로 가버리고 들어오지 마이런 얘기까지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아빠였다. 이제는 완전 달라졌다. 유치원에서 돌아오자 마자 아빠 오늘은 이거 하고 놀자라고 나에게 달려든다. 힘들 때도 있지만 행복하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함께 논의하고 얘기하고 차마시고 산책하고 또 미래를 고민하고 하는 이 시간 속에서 너무 벅차오르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앞이 너무 깜깜하고 자려고 누워서 잠도 안 오고 답답한데도 손을 잡아 주면서 . 행복하다라고 말해 준다. 그렇게 아들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가 행복함으로 정리되다 보니 나의 자존감도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깜깜하고 어두운 감정이 조금 빨리 사라졌던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이 시간이 이제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이 업계에서는 나를 위한 삶을 생각할 수도 없다. 2~3달 동안 해외로 출장을 나가면 회사에서 나에게 쏟는 돈이 수천 만원 아니 억대가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 . 이번 프로젝트에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만지 알아? 정신차려이런 말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다른 생각을 아예 할 수도 없다. 그저 좀비처럼 일만 하는 거다. 나를 위한 삶,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할 여유는 아예 없다. 그저 살아 숨쉬고 회사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서만 시간을 쓴다. 퇴사한 이후 8개월 동안 내가 겪고 있는 일들 그 안에서 나의 생각과 감정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을만큼 소중하다.  

나는 아들, 아내 그리고 잃어버린 나 자신도 찾고 있다. 잃어버린 것은 정말 돈 뿐이다. 이제는 돈 때문에 상처 받지 않는다. 아내가 나를 믿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든든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건 좀 하고 나올걸하고 아쉬움이 드는 부분은?

그게 없다는 건 거짓말일거다. 나도 얍샵하게 회사생활을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일과 내 삶의 균형을 맞춰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너무 병신처럼 헌신해서 일한 것이 후회된다. 나도 적당히 챙길건 챙기면서 살걸 하는 생각이 크다.

회사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회사는 100이라는 돈을 주고 200 아니 500을 뽑아내려고 한다. 그건 당연한 거다. 냉정하게 말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저 빨대만 꽂혀서 그 빨대를 빼려고 노력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남처럼 거짓말이라도 하면서 뭐라도 배우고 강의도 듣고 경험도 쌓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큰 충격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자신의 소리와 욕망에 귀 기울여 본적 있는가?

생각 해봤다. 하지만 모르겠다는 것이 답이었다. 내 스스로의 욕망은 무언지 찾지 못했다. 물론 찾으려고 노력은 해 봤다. 사실 그 노력이 충분했는지는 모르겠다. 회사라는 새장 속에서 주는 모이만 먹고는 내가 생각하고 고민했던 노력이 불충분 했을 것도 같다. 회사를 나와서 보니 진짜 그렇다. 회사를 나온 지금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지금은 그것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회사 안에서 갖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경험과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며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백만여 원이 넘는 학원도 끊어 봤고 여러 가지를 탐구하고 있다.

회사는 알게 모르게 개인을 위한 생각을 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온전히 회사, 그리고 회사 일에만 집중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아직은 회사를 떠나서 돈을 벌고 있지는 않다. 이에 대한 불안은 없나?

아직은 불안하지 않다. 아직 준비단계이기도 하고 경제활동을 시작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했는데 잘 안되거나 하면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없다.

 

▶ 재취업을 할 생각은 없나? 아직 서른 아홉인데

솔직히 말하면 회사를 그만두면서 마지막으로 믿는 구석이 재취업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나를 써줄 곳, 내 가치를 인정해 줄 곳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내가 자신 스스로를 찾는 탐구,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 아닌 다른 길을 찾으려는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재취업에 대한 믿는 구석 때문이라고 했다. “적당히 해보다가 안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있지?” 라는 질문에 뜨끔했다. 나를 꽤 뚫고 있었다. 아내는 그럼 헤드헌터에게 전화해 보라고 했다. 실제로 전화를 해 보니 이 바닥의 공기는 냉랭했다. 채용계획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아내에게 그렇게 안이한 내 생각을 들키고 난 후, 그리고 시장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재취업의 생각을 우선 접었다. 퇴로를 막고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 서울 근교로 이사할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결심하게 되었나?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내가 함께 세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가족이 함께 여행하면서 프라하에 가보고 오로라를 보는 것도 버킷리스트에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미 이루었다. 또 하나는 마당이 있는 내 땅, 내 집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사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랬다. 회사 생활하면서 주말에 겨우 짬을 내서 양평, 가평 이런 곳을 아내와 돌아다녔다. 괜찮은 곳을 찾기도 했는데 직장문제 때문에 포기했었다. 전원주택,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려면 70km에 육박하는 편도 출퇴근을 감수해야 했다. 하루 4시간을 길바닥에 버려야 했다. 이런 단점을 상쇄시킨 만한 장점을 회사 다닐 때는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직장이 없다보니 상쇄시킬 것 자체가 사라졌다

퇴사 이후에 여행을 다녀온 후 우연히 ㅇㅇ마을 이라는 타운하우스가 생긴다고 해서 한번 가봤다. 가서 설명을 듣고 둘러본 후 아내와 차 안에서 바로 결정했다. 직장이 없어서 출퇴근 걱정이 없기에 가능했다. 웃기지만 그랬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이곳에서 먹고 살만한 일을 찾거나 출퇴근에 구애 받지 않는 일을 알아보자고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생토록 이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저지르지 않으면 변화의 싹이 틀 수가 없었다. 십 년 동안 조금씩 모아온 돈을 탈탈 털어서 샀다.

 

▶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없다. Never. 흔히들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성공은 더더욱 없다. 만나는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하는 생각만 하는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얘기하면 피곤이 몰려온다.

 

▶ 그럼 인생의 모토가 있다면?

적당히 벌어서 잘 살고 싶다. 적당하다는 걸 계산해 보니 3식구로 볼 때 200만원 정도면 되는 것 같다. 세상은 이 제테크를 해야 하고 이걸 해야 해. 안 그러면 나중에 폐지나 줍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대부분은 그 말을 듣고 믿고 겁에 질려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작은 행복감을 느끼고 내가 원하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기에 필요한 돈만 있으면 된다. 그것이 꼭 일년에 수 천만원, 혹은 은퇴 후 몇 십억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경제적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우리의 가치에 맞게 아이를 교육시키면서 살자고 아내와 얘기했다. 인간으로서 존엄, 동시에 자족하는 행복한 삶 그게 나와 내 가족이 원하는 삶이다. 텐인텐이라는 직장인들을 위한 돈 모으기 카페가 있다. 우리나라 일반 직장인들이게 십년안에 십억은 가당찮은 얘기다. 꿈팔이랑 다를게 없어 보였다. 누구나 십년안에 십억을 벌면 그 십억의 가치가 십억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생의 좌표, 되고자 하는 바를 물어보면 경제적 자유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내가 남 보기에 쪽팔리지 않을 만큼 써도 문제 없을 만큼 벌고 싶다는 뜻이다. 이건 한도 끝도 없게 된다. 그런 삶은 없다. 끝이 없다. 남과 비교하며 사는 삶을 끊어냈기 때문에 지금 나는 가능한듯 하다. 나는 인간으로 나의 가치를 잃지 않는 존엄적 가치인이 되고 싶다. 비교하고 싶지 않다. 내 가치가 중요하다.

 

▶ 지금 당신처럼 대책을 세우지 않고 회사를 떠난 사람, 그리고 딱 한 달이 지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내가 그 순간을 겪어 봤기 때문에 어떤 조언도 들리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 시기는 특히 그렇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해 줄 말은 없고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한다면 충분히 들어줄 수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것은 부딪힘과 시간이다.

 

▶ 직장생활연구소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회사를 떠나고 나서 검색창에 퇴사, 퇴직이런 것들은 많이 찾아 봤다. 대부분이 나 오늘부터 회사 안감. 아 너무 좋다.’ 뭐 이런 짧은 순간의 생각들을 적어 놓았다. 직장생활연구소처럼 회사를 떠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 대해서 연재하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즐겨찾기를 해 놓고 퇴사충동이 생길 때 마다 들어가서 글을 읽었다. 내 생각에 대해 지지를 받고 싶었기에 직장생활연구소를 찾아왔던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가장의 퇴사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고 싶다. 내가 이렇게 해서 이렇게 극복했다가 아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에 퇴사가 더해졌을 때 느껴지는 공포감을 나누고 공감해 주고 어루만져주고 싶다. 위로해 주고 싶다.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회사를 떠나서 8개월이 넘은 지금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하나는, 나는 감정과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나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얘기하고 또 남의 심정에 대해 아무 조건없이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같다. 퇴사하기 전에는 몰랐던 퇴사 후에 수없는 감정의 깨짐을 겪고서 알게 된 나의 모습이다. 공대생으로 시작해서 개발자로 살면서 눈에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논리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런 나의 또 다른 모습도 회사를 떠나서 알게 되었다.

 

 

 

 

▶ 대책 없는 퇴사는 10층에서 떨어져 맨몸으로 땅에 부딪히는 것과 같다. 떨어져서 팔다리 뼈가 다 부서졌지만 죽지 않는 느낌. 온몸의 세포들이 절망하는 느낌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져서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결혼을 했다면 자녀가 있는 가장의 것이라면 더욱 더 그 감정은 크고 무섭다.  가장 힘든 것은 이 감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이런 감정을 외면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는 퇴사의 과정을 겪으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있었다. 퇴사라는 선택이 무엇에 기인했든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출해야 빨리 이겨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퇴직 후 찾아오는 죽음과도 같은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자신과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일 것이다.  직장생활연구소의 모토처럼 세상의 모든 직장인, 아니 세상의 모든 아빠, 가장을 응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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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인데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7.26 07:30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 생각들



사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없을 때 무력감을 느낀다. 

그것은 감옥에 갇힌것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말한다. 
꿈은 꾸지만 발을 딛고 있는 현실조차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현실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래의 꿈은 그저 공상일 뿐이다.  
 


어떤 이는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나를 받아주는 곳이 이 회사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곳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한다.
그리고 또 어쩔 수 없이 회사라는 무대에 올라가서 연기를 해야 한다. 






말도 안되는 구닥다리 방법을 따라해야 하고 
말로는 창의를 외치지만 다른 방법을 시도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고 
주인의식을 말하지만 진짜 주인처럼 일하면 장난하냐고 괴롭힌다.  


내가 진짜 배역에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쓴 사람을 위해 연기할 뿐이다.  
죽은 사람이 얼굴에 점하나를 찍고 다시 돌아오고, 복근에 빨래를 하는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의 마음이 그럴것이다. 


내가 주인공인 인생이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살수 없다면 그 삶은 누구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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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서 뛰는 게임을 하고 있는가?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7.18 07: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평생직장인



어디에서 뛰는 게임을 하고 있는가?

 

직장인 5년차. 여름 장마처럼 먹구름이 가득한 허무함이 찾아왔다. 내리는 허무감의 비는 내 삶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일을 하지만 즐겁지 않았다. ‘나는 인생의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공허한 태풍의 눈 한 가운데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30대 중반의 인생에 허무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그리고 내가 이 일을 한 게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라는 계산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를 지배한 이런 생각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분명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삼켜서, 나의 모습까지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젠장이 부정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방법은 없었다.  그저 인지하고만 있을 뿐이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다. 그럴수록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이어지는 허무함에서 활력을 잃어갔다. 직장의 반복적인 삶이 원인일까? 어떤 이유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반복이 만들어내는 삶은 규칙적이긴 하지만, 활력적이진 않다.

 

활력을 찾아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보낸 여행의 순간은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돌아온 일상에서 허무함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일을 할수록 그 허무함은 더욱 나를 찾아왔다. 영업맨으로서 좋은 실적과 새로운 거래처는 내가 원하는 삶에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계속 머물렀다.




 


내 인생에는 어떤 목표와 원칙이 있고 어떤 전략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만든 나의 인생은 규칙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본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직장인의 삶으로 반복되는 삶에 익숙해지고, 시키는 것에만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게임의 법칙을 만들고 싶다. 내가 뛰어 놀 수 있는 나만의 플레이 그라운드를 만들고 싶다. 죽을 때 나의 묘비명에 평범하게 살다가 죽다.’ 라는 문구밖에 떠오르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한 달 넘게 고민하고 직장생활연구소와 상담한 후 내가 정한 첫 번째 게임의 법칙은 소통으로 넓히기.

한번에 한가지에만 집중하겠다. 우선은 갇혀있는 생각을 넓히고 새로운 자극과 세상을 만나보려 한다. 그래서 지금 찾아온 허무함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고 한다. 직장 선배에게, 가족에게 말을 할 것이다. 또 처음 만나는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에게도 말해 볼 생각이다. 이 생각이 좋은지 나쁜 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민 끝에 내가 방법을 찾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이 일이 마냥 좋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긍정과 부정의 조화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한 쪽에 치우치면 안 된다. 흔히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그것만 먹으면 몸이 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도 조화가 필요하다. 항상 좋은 것만이 있을 수도 없다.

 

허무함의 장마비에 우두커니 서서 쫄딱 젖은 축축하고 음습한 30대 중반을 보내지 않기 위해 행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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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임팩트 대표에게 편지를 쓴 이유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7.04 07:00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 생각들



2002년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는 도서관의 의자였다.
대학교 4학년.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낼 힘을 시험점수에서만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하다 지치면 도서관의 책속에 스스로를 던졌다.   
이끌리는대로 책속을 배회하다가 맘에 드는 책을 수십권 뽑아 들고 무조건 읽기 시작했다. 
책이 지겨워지면 자판기 커피를 한잔 빼 들고 신문과 잡지가 있는 도서관 한켠으로 갔다.
그리고 또 종시 신문의 냄새와 커피향이 섞여 하나가 될 때 까지 모두 읽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던 날 중.
우연히 눈에 띈 한 기사.
클린턴 전 대통령이 2시간 강연에 수천만원의 강연료를 받는다는 것. 

곧 강연시장이 엄청나게 커지겠구나. 
그저 책에서 배워서 학위를 딴 사람이 아니라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의 강연시장에 성장 하겠구나. 
그리고 SM, YG 처럼 강연만 전문적으로 만들고 기획하고 유명 강사를 데리고 있는 회사도 생기겠구나. 그런 일을 나도 해 보면 어떨까? 


그 생각을 아이디어 노트에 옮겨 적었다. 
분명히 강연시장이 커질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 취업을 하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 던 중.
2000년 후반 한 회사가 생겨났다. 
마이크 임팩트. (Mic Impact)
내가 글로 적어 놓았던 내가 만들 고 싶었던 강연 전문 기업.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어, 내가 생각했던 것이 그대로 생겨났네" 
"이건 나도 생각했던 건데, 한참 전에 이런 시장이 생기고 이런 회사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화가 났다. 
그렇게 후회만 하고 시간은 그냥 또 흘러갔다.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

2014년 6월 나는 한권의 책을 출간 했다. 
12년 동안의 회사생활의 경험과 고난을 흘려보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해 졌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배달된 20권의 저자 증정본을 받고 감동하는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펜을 들고 편지를 썼다. 

수신인은 마이크 임팩트 "한동헌" 대표였다.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아 정확한 글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 이었다. 


"당신이 만든 마이크 임팩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다. 
하지만 나는 생각만 하고 노트에 적어 놓기만 했다.  
단지 아이디어만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었다.
나는 더 이상 후회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뜻을 세우고 처음으로 행동해서 세상에 내 놓은 결과물인 이 책을 당신에게 보낸다."



나는 편지를 책 사이에 넣고 그에게 보냈다. 
그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행동'의 소중함을 스스로 리마인드 하고 채찍질 하기 위해서 였다. 
펜을 내려 놓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택배를 보냈다. 

그가 내 책을 받았는지 내 편지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더 이상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아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않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행동으로 옮긴것에 만족했다.  

지금도 나는 행동의 기로에 서 있다. 
강연전문 기업을 떠올렸을 때 그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 놓은 마지막 아이템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한다. 
혼자서는 절대 이루지 못하는 일이다. 
함께 했던 사람들을 떠나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행동없이 이불 속에서 후회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고 또 행동할 것이다. 실패하면 방법을 바꿔서 다시 행동할 것이다. 
행동한 후에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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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버텨내는 단 하나의 힘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29 07:00 / Category : 직장생활/직장생활 칼럼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선택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회사는 선택할 수 있지만 사람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경력사원이라면 부서까지도 선택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안의 팀장과  팀원 그리고 유관부서의 사람들. 모두 당신이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당신이 선택한 자리로 인해 원하든 원치않든 자동적으로 맺어진 관계다.



또 다른 하나는 관계에 대부분에 ‘조건’이 있다는 점이다.

유치원생은 친구에게 ‘저 친구는 집이 부자고, 아버지가 판사니까 꼭 친구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관계의 기본은 이해가 아닌  조건이 대부분이다. 관계의 시작이 일반적인 것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회사는 아주 명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A는 전략팀인까 안테나를 새울 때 정보를 줄 수 있고, B는 인사팀 회사의 중요소식에 대해서 들을 수 있으니까 친해 놓을 필요가 있고, C 팀장님은 회사에서 차세대 주자니까 기회가 된다면 안면정도는 터 둬야 겠다.’  이 정도의 생각은 대리 3년차만 되어도 누구나 한다.  이처럼 회사라는 조직안의 관계에서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 조건'이라는 잣대가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다. 서로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어서 만들어 지는 것이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다.



회사에서는 업무적으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 낼 수 있다. 물론 당시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대부분은 퇴근을 포기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하면 해 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회사에서 업무 이외의 것들, 특히 관계적인 부분은 극복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지시만 하는 상, 회사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성이 엉망인 사람, 저 사람과 내가 밖에서 보면 같은 부류라는게 짜증이 날 정도로 또라이인 사람,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해야 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 특히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로 부터 발생하는 무력감과 좌절감은 커지면 공포감으로 까지 번진다. 이런 감정은 혼자 감내하기 힘들다.










회사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 당신의 상황과 괴로움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동료 한 명. 그것이면 된다.

당신이 3일 연속 야근으로 다크서클로 세수를 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이 상사와의 마찰로 정신이 나가 있을 때, 사소한 실수로 중요하게 진행하던 일이 엉망이 되어 죽고 싶을 때, 상사가 자신만을 찍어놓고 사소한 것으로 한 달동안 갈굴 때, 그렇게 힘들게 스펙을 쌓아 노력하여 들어온 회사가 죽도록 싫어 그냥 증발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런 당신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동료 단 한명이면 된다. 표면적이고 업무적으로만 친한 관계가 아니라 그저 시시한 가십거리와 농담만 던지는 사이가 아니라 회사일로 지쳐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그런 동료 말이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당신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맘이 들 때 당신은 버텨낼 수 있다. 그 사람은 회사에서 최악의 고통과 위기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1955년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833명의 아이와 함께 30년간의 실험을 시작했다.  833명의 신생아중 201명은 가난, 부모의 이혼, 알콜중동, 정신질환 처럼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가정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대부분 사회 부적응자로 자랄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후 201명중 30%의 아이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더 도덕적이며 성공적인 삶을 일궈냈다. 학자들은 75명의 아이, 아니 성인들을 인터뷰를 했다. 

  

마침내 찾아낸 하나의 공통점. 그 아이들 주변에 있던 '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들 주위에서 발견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을 믿어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풀어 주던 사람이었다. 의지할 만한 부모 대신에 조부모, 친척, 때로는 성직자, 선생님등이 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않좋은 환경에서도 성공한 아이들의 주위에서 발견한 최소한 한명의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이었던 것이다. 



흔히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라고 말한다.

군인은 옆의 동료가 쓰러지면 군장을 나눠매고 업고 함께 간다. 하지만 회사라는 전쟁터는 다르다. 동료가 업무를 못해 팀장에게 박살이 나고 인간적 개 무시를 당해도 모른척 하는 경우도 많다. 처음에는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점점 '아, 저 대상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으로 변해간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더욱 더 그렇다. 물론 표면적인 위로의 말과 함께 팀장욕을 함께 해 주는 정도다. 회사라는 곳에서 어떤 경우는 타인의 부족함과 실수는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지난 회사생활을 나를 이해해 주는 동료 때문에 버텨왔다. 출근길, 집으로 가는 길에 이 글을 그저 스마트폰에서만 읽고 엄지손가락으로 튕겨버리지 말자.  곰곰히 생각해 보자. 나는 그런 동료가 있는지?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동료가 되어 주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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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직장생활연구소, 회사를 버텨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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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연구소의 연구원을 모집합니다. (~9월 3일까지)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28 07:00 / Category : 직장생활/즐거운 직장생활








Why

직장생활연구소를 진짜 "직장인 포털"로 만들기 위한 연구원을 모집합니다.

컨텐츠를 다양하게 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What 

저와 함께 직장인, 직장생활과 관련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쓰기 뿐 아니라 

일러스트, 디자인, 영상, 카드뉴스, 직장인 교육, 기획, 강연, 홈페이지 개발 등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Who 

성별 무관, 학력 무관, 국적 무관. 

평소 자신의 직장생활연구소에 관심이 있어 참여를 원하는 분

직장생활에 대한 인사이트를 글로 풀어낼 분출구가 필요했던 분

그저 흘려 보내는 하루하루가 아닌 의미있는 직장생활을 만들기 위한 다른 짓을 하고 싶은 분

이 인간 나랑 생각이 비슷한데 ! 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으신 분


 


Apply

하기의 링크를 클릭하시어 지원서를 작성해 주십시요.

지원서 작성 링크




2016년 9월 3일 자정까지 신청을 받은 후 메일로 회신을 드리겠습니다.  

그 후 지원자 전체 미팅을 진행 할 예정입니다.  



저와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며 직장생활연구소를 키워나가실 분이면 좋겠습니다. 

직장생활연구소에 쓰는 글은 모바일 다음 (M.Daum.net) "직장생활연구소" 섹션에 실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Tags : 연구원모집, 직장생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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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2 _ 일 년의 멈춤이 나를 완전히 바꿨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21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간략한 자기 소개

저는 1976년생 올해 마흔 한 살의 ㅇㅇ 입니다. 지금은 ㅇㅇ회사의 상품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위는 차장 입니다. 

 


 본인의 커리어를 회사와 직업 중심으로 소개해 달라.


나는 흙수저였다. 어릴 적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폭음과 이어진 가정폭력 어머니의 눈물이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TV에 나와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은 학교와 집뿐이었다. 아버지는 대 놓고 대학은 안 보내 주겠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나 배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열심히 공부만 했다. 그렇게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환경 때문에 선택한 차선이었다. 그러다가 육사를 일년 후에 자퇴했다. 짧게 이유를 말하자면 그곳은 나에게 원하는 틀이 있었다. 그 틀이 트러블이 심했던 아버지가 나에게 강요한 것과 비슷했다. 아버지의 틀을 벗어나려고 육사를 선택했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틀을 강요 당하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만약 4년만 버티면 끝이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생활을 계속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아버지의 그늘에서 평생을 사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는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퇴를 했다. 그 이후에 다시 4년재 대학의 광고 홍보학과에 진학을 했다. 첫 직장은 생활소비재 회사의 MD 였다. 중견 규모 회사에서 2003년 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소기업이기는 했지만 상장기업이어서 당시에는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 그 후에 두 번의 이직을 하고 2016년 현재 14년 차 직장인으로 유통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원으로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창피하지만 위에 내 배경을 설명한 이유는 그 당시의 모습이 회사원으로 나의 모습에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그저 성공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승승장구 해서 연봉을 많이 받는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목표였다. 그래서 성공을 하려면 죽기살기로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를 완전히 버리고 회사에 나를 던지는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오직 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은 회사였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 보는 것은 잘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정말 인간미 없이 무조건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상사의 지시는 무조건 따랐지만, 부하직원에게는 업무적으로 강요를 하는 그런 부류였다. 당신이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라는 책에 쓴 것처럼 정말 회사가 시키면 주말도 없이 일했던 ‘회사가 가장 원하는 인재’였다. 나를 버리고 회사일 자체가 나인 것처럼 일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 적으로 묻겠다. 왜 육아휴직을 냈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외국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극에 달했다. 사실 영어 때문에 회사 내에서 성장을 못한다는 위기의식, 피해의식이 굉장히 컸다. 현재 직무를 하기 전 다른 업무를 할 때에는 누구보다도 인정을 받고 있었고 업무적으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을 하면서 영어에 대한 절박함이 갈급해 졌다. 팀장도 바뀌었고 또 주변 상황이 휴직이 가능할 것 같아 다시 신청했다. 어찌 보면 회사에서 나의 존재감이 작아진 느낌이 휴직을 신청할 용기를 내게 해 준 것 같다.

 

두 번째는 인생의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결심 때문 이었다. 지금 보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내가 스스로 원했다기 보다는 주변 상황에 대한 압박 때문에 그렇게 결정한 것 같다. 예전에는 그저 회사 안에서 승진하고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공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졌다. 나와 가족과 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바뀐 기준에 따라 내 인생의 지향점을 설정하는 것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꽤 힘들었다.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회사 안에서의 성공만 쫓다가 인생관이 바뀐 것 같다. 그 이유는 뭔가?


나는 직장생활을 14년 동안 하다 보니 별별 경험을 다 했다. 그 경험은 업무적인 것뿐 아니라 업무외적인 부분도 많았다. 진짜 얘기를 하면 ‘미친 것이 확실하다.’고 말할 정도의 사람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사람들과의 미친 것 같은 사건들로 인해 사람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12년차쯤 되었을 때 크게 한번 아픈 적이 있었다. 한달 넘게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일주일 정도는 마냥 좋았다. 푹 쉬고 푹 자고 잘 먹고. 그러다가 누워있는 기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고민 중에 잠을 설쳐 가며 계속해서 깊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는 누구, 아니 무엇인가?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유치한 질문은 나를 바꾸는 촉매가 되었다.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을 돌아보니, 회사에서의 성장과 성공은 가족, 그리고 개인 생활의 포기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만났던 주변 상사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회사 안에서의 성공보다 인간 ㅇㅇ 으로서의 개인적인 행복에 무게 중심이 옮겨가게 되었다. 그래서 과감히 휴직을 해야겠다 라고 결심 할 수 있었다.  손에 쥐려고 맹목적으로 쫓기만 했던 회사 안에서의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만약 아파서 쉬지 못했다면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냥 지금도 맹목적으로 회사에 충성하며 나와 가족을 버리고 일 했을 것이다. 그런 쉬는 기간이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고 결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4년차차장 직위에 육아휴직을 냈다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나아니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난 건가?


남자 사원이 육아 휴직 후 돌아 왔더니 이상한 팀으로 전배를 보내고 자리를 빼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실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받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 기회가 된다면 돌아오지 않을 생각은 있었다. 여기서 기회라는 것은 새로운 직장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서의 기회를 의미한다. 다른 관점에서, 지금의 회사가 아니라도 다른 곳에 내가 갈 수 있는 있을 것 이라는 확신이 있다. 단지, 이번에 다른 길을 찾는다면,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다.


 

 지금 회사에서 불만은 없었나?


불만 보다 답답한 것을 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기업문화에서는 기한 내에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못하면 일 못하는 놈혹은책임감 없는 놈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회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일을 다 처리 못한다고 뭐라고 하는 것은 회사의 책임인 것 같다. 퇴근 시간 1시간 전에 일을 주고 해 내라는 것은 그저 야근을 하라는 것이고 이는 회사가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회사가 먼저 근로계약을 어기는 것이다.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한다면 역량을 길러주던지 일을 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윤활하게 만드는 것이 중간관리자인 팀장의 역할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개인의 무능과 책임으로 돌리면 팀장은 편해진다. 자신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 팀장이 팀장인지 의문이 든다. 이 회사에서 내가 만나고 본 모든 팀장은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의 입장에서만 냉정히 보면 개인이 회사에 다니는 목적은 자신을 위해서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 회사생활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회사도 이득이라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그런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퇴근 1시간 전에 일을 주고 안 한다고 난리를 치는 거다. 이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회사는 단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을 계산해서 맞게 부여해야 한다. 회사의 프로세스 안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이 팀장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팀장에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휴직 당시 팀장에게 나의 존재는 꼭 필요한 필수요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불편한 존재였다고 보는게 맞다. 나는 차장 2년차였고 실무 경험이 없었던 팀장보다 휠씬 전문가였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내가 너무 잘 알다 보니 ‘자신의 무지를 들킬 수 있는 존재’ 혹은 ‘팀장인 내 자리를 뺐어 갈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빠진다는 것에 대한 대안을 미리 준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는 했다. 그리고는 두 번의 추가 면담 후에 육아휴직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개인사업이직 등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그런 시선을 느낀 적 있나?


거의 100% 그런 시선을 느꼈다. 회사 동료들의 반응은 ‘쉬면서 이직준비 후 이직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어디 좋은데 가냐?”고 노골적으로 물었다. 나를 잘 아는 친한 동료들은 쉬지 말고 차라리 회사내의 다른 부서로의 전배를 권했다. 회사외부의 반응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사업을 하기 위해 휴직을 했다. 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나중에 친한 후배를 통해서 들은 말이다.


 

 육아휴직 결심을 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혹은 사건은?


우선 위에서 말한 나의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된 병원에 있었던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같이 일하는 상사와의 신뢰상실이라는 외적인 이유였다. 상사와 부하직원에게 저지르는 부조리 때문에 신뢰가 사라져 버린 것도 큰 이유였다. 간단히 말하면 팀장 바로 밑, 내 바로 위의 차장이 대표이사를 포함해 수천 명이 넘는 전 직원들에게 팀장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장문의 메일을 쓰고 퇴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짜증이 나서 말하기도 싫다.

 


 남자 육아휴직은 매우 드물다좋은 회사인가 보다회사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점수는 한 40점 정도 주고 싶다. 좋은 점 보다는 나쁜 점이 크다. 건강을 챙길 수 없을 정도로 업무가 많았다. 마흔 둘은 젊다면 젊고 아재라면 아재인 나이다. 그 나이에 허리디스크, 목 디스크, 간질환, 비타민 결핍, 스트레스성 만성 두통, 비만 등 많은 질병을 달고 있다. 두 번째로, 군대식 기업문화로 인해 잘못된 가치관으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폭압적인 문화가 너무 당연시 여겨지면서 욕하고, 윽박지르는 등의 몰상식적인 행동들도 많았다. 나도 이런 것들을 보고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생각에 물들었다. 내 밑에 직원의 인격을 무시하면서 나 스스로 이것이 잘못이라는 걸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었다. 지금은 이것을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도 굳어진 이 관성을 고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아이는 누가 봐주나?


우리 아이는 반은 국가가 키웠다. 나와 아내 모두 야근이 많아서 어린이 집, 유치원 모두 가장 먼저 등교했고 가장 늦게 하교를 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3살때에 11시넘어서 데리러 간 적도 많았다. 당시 어린이 집 원장님이 우리 사정을 이해해 주어서 자신의 집에 우리 애를 데려가서 봐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회사에서 꽤 잘 나갔었고, 회사의 일이 가장 우선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첫 아이라 정말 너무 내 생각으로만 키웠던 것 같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이런 일에 대한 미안함이 늘 가슴속에 있었다. 육아휴직을 통해서 아이와 하루의 반을 함께 하면서 더더욱 과거의 회사일 때문에 혼자 남겨둔 것이 아이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깨닫고 나니 더욱 미안했다.


 

 휴직을 하기 전에 계획을 세운 것이 있다면?


휴직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었다. 건강의 회복과 아이와 함께 시간 보내기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안을 만들었다. 제주도에서 6개월 살기, 아이와 세계여행 등등. 여러 가지 안 중에서 선택한 것이 해외연수였다. 사실 처음 계획은 가족이 모두 같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도 휴직계를 제출했었다. 그러나, 상사들의 눈치 때문인지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지만 구두로 승인을 받고 4개월간 질질 끌다가 회사 사정으로 휴직은 취소했다. 그래서 아이와 단둘이 하는 해외에서 함께 생활하며 영어 공부를 하는 연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휴직하고 나이 42살에 영어공부라니진짜 이유가 뭔가뭔가 다른 이유가 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두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바로 학력과 영어가 그것이다. 그 때문에 항상 영어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회사 생활이 끝난 후의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야근에 지친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와 쓰러져 잠들고 아침이면 일어나 씻고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기계 같은 생활을 멈춰야만 했다. 나는 회사 생활을 모두 마치고 나면 제주도 같은 곳에서 외국인 들을 위한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며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영어였다. 독학도 해보고, 나름 학원도 다녀봤지만 그렇게 해서 배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연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와 함께 할 시간, 미래를 생각할 시간, 미래를 준비할 시간의 필요 때문에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아내는 혼자 일을 하고 아이와 함께 해외에 다녀왔다아내가 화내지는 않았나? 


앞서 얘기 했지만 원래 계획은 아내도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일찍 귀국하려 했는데 오히려 기왕 시작한 것 제대로 공부하고 오라고 지원해주었다. 아내에게 감사하고 미안하고 또 고마울 뿐이다.


 

 일년간 해외에서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면 얼마나 드나?

다녀와서 계산해 보니 한 8천 만원 정도 든 것 같다. 물론 내 연봉을 기회비용에 합치면 1억은 훌쩍 넘을 것이다.

 


 살림은 넉넉한가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휴직을 하면 기획비용까지 2배가 마이너스다.


결혼 후 양가 부모로부터 단 한 푼의 도움 없이 두 사람만의 힘으로 버텨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모아봐야 얼마나 모았겠는가? 아직도 서울의 외곽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찾았고 아내와 공유했었기에 결정할 수 있었다. 또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결정하게 된 동기인 것 같다.

 


 자신의 커리어가 끊길 것을 감내하고 휴직을 냈다경단남이 되는 걱정은 없었나돌아오면 회사에서 책상을 빼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나 경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라도 있을 거라는 확인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게 두려웠다면 육아휴직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지낸 해외에서의 일년어땠나?


육아휴직을 한 일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었던 기간이었다. 내 스스로 힘든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정말 알차게 살았다. 회사에서 매일 야근하며 시간을 보내며 늘 꿈처럼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는 독립성이 습관화 되었다. 자기 일을 스스로 하고 또 남을 존중하는 법을 유치원에서 배웠다. 많은 액티비티와 여행을 함께 하며 아빠와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갖게 되었다. 캠핑을 떠나 만났던 하늘의 별, 너구리가 가져간 저녁밥, 그리고 개울가에서 물놀이 등은 아직도 반복해서 얘기한다. 나이아가라 폭포, 푸르른 공원, 아이슬란드의 빙하, 순록, , , 온천 등은 아이에게는 너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이 되었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아이의 그 모든 기억에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육아 휴직 일년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비로서 아이와의 관계가 진짜 아빠와 아들 사이가 된 것 같다. 그 전까지는 그저 주중에는 맡기고 찾아오는 사람, 주말에는 힘들지만 억지로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자기를 위하는 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은 물어보려 한다. 상대적으로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게 흠인 것 같다.







 

 아이와 많이 각별해 진 것 같다. 이에게는 어떻게 살라고 얘기해 주고 싶나?


물어보지 않는다면 굳이 얘기해 주지 않을 거다. 그 대신 질문을 할 것이다. “그거 하면 재미있어? 그건 어때?  뭐하고 싶어? 니 생각은 어때? 어디 갈까? 어떤 모습이 되고 싶어?” 부모는 질문을 해서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틀만 만들어 주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아이는 대답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모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원하는 일을 찾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인생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돕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에 가는 것이 죽도록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우리 아이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나의 바램을 말로 하거나 직접 가르쳐서 알게 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느끼게 하고 싶다. 그래서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자원봉사를 같이 다닐 것이고, 올바른 시가가 되면 해외 배낭여행을 지원할 계획이다. 대신, 그 이후의 인생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지, 어디서 살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휴직하고 일년간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잃은 것은?  


얻은것은 너무 너무 많다. 내가 세운 인생의 목표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내가 쉼 없이 달려가던 길에서 살짝 벗어나서 돌아봤던 나. 그 과정에서 다시 깨달았던 나의 잘못된 행동들. 그리고 앞으로의 내 태도 변화에 대한 방향성. 아이와의 평생 안고 갈 소중한 추억. 해외의 새로운 사고방식.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한 고민.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  결론적으로는 잠시 멈춤으로 나의 방향성을 찾았고 돈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이와의 추억을 얻었다. 잃은 것은 돈 뿐이었다.

 


 휴직이 당신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멈추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달리기만 하면 방전되어 버려지는 직장인들에게 쉼은 더더욱 중요하다. 멈춤과 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건 당신의 쓴 책인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에서 같은 내용을 읽었다. 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가능한 업무적으로 만나는 것을 줄이려고 한다. 비즈니스, 돈과 연결된 관계에서 진실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능한 회사 밖에서 진심이 통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회사 안에서는 내가 해서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중이다. 14년차에 이런 것을 찾는다는 것이 웃기기도 한데 지금이라도 노력해 보겠다.



 복직 후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아니 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이 50대 되었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이다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행동놀면서 돈만 받아가는 월급 루팡들아부와 비열한 행동만 일삼는 사람들이 너무 짜증나고 싫었다또 회사에서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도 정말 많이 의식을 했다내가 남보다 중요한 일을 맞고회의 시간에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서 인정받고 하는 것처럼 나를 드러내는 것을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하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또 뻔히 수가 보이는 이상한 짓을 하는 또라이들을 보면 예전처럼 화가 나기 보다는 불쌍하게 느껴졌다.

 

지금 나의 가치의 중심은 나의 미래를 위해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이다상대적으로 예전에는 회사 일이 나의 가치의 99%였고 일이 많을 때야근할 때스트레스 받을 때 정말 힘들었다하지만 지금은 일이 많고 적음 회사 내에서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육아휴직 복직 후 회사가 어떻게 느껴지는가? 달라진 점이 있나?


같은 팀으로 복귀 했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내 일은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서 하고 있다. 그 일은 많은 금액을 좌지우지 하는 제법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예상은 했었다. 단지 예상이 빗나가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래서 이질감이 조금 더 느껴진다. 나는 일년간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변화 했는데 회사 안의 다른 이들은 내가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정말 작고 사소한 것으로 서로 반목하고 무시하고 싸우고 헐뜯는 것이 안타깝다.

 

 

 그럼 돌아와서 일은 어떤가? 할 만 한가?

예전보다 일이 줄었다. 팀장이 나에게 일을 많이 주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팀장 바로 아래 있기 때문에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 나를 견제하는 건지, 혹은 내가 언제라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안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월급은 그대로 인데 하는 일이 적으면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결론부터 말하면 일이 적어서 스트레스다. 물어본 것처럼 일이 적으면 좋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일의 양을 육아휴직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30% 수준 정도다. 내가 차장인데 이건 주임 수준의 일을 준다. 옆에 사람은 일이 많아서 바쁜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MD인데 돌아와서 2달이 넘었는데 정확히 담당하는 것이 없다. 가끔 떨어지는 ad hoc성의 일 밖에 없다. 때로는 일이 없어서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내 스스로가 일을 안 하니 회사원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지는 것 같고 조직의 일원으로서 회의 할 때도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망설여 진다. 회사 생활이 엄청 위축되고 뒤쳐지는 느낌이다. 팀장도 하루 종일 내가 별 일이 없다는 것을 알 텐데, 가끔 자리를 비우거나 멍하게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말 했듯이 예전부터 나는 일을 미친 듯이 했던 사람이기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사실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루틴이 없다는 것 자체가 휠씬 힘든 것 같다. 이건 성취감과 관련된 부분이다. 일이 많아도 내 일이 있으면 내가 의사결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성공도 거두며 기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보람 같은 것이 있었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굴곡 속에서 살아 있는 느낌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 축 쳐져 있는 느낌이다. 못 할 짓이다.


 

 팀장 입장에서 일을 나누면 전체 팀원 전체의 사기도 올라갈 텐데 이상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회사 내에서 육아휴직 복귀자에게 조직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팀장이라는 사람 개인의 의지인 것 같다. 팀장이 나와 성별이 달라 쉽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오해가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달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을 것이다. 그럼 저 친구가 하고 있는 일 주세요라고 하면 그 일을 내가 뺏어가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망설이는 거다. 내가 팀장이라면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일을 나누었을 것이다. 팀원들도 해피하고 나도 스트레스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회사 일의 계획은 어떤가개인가족 삶의 계획은?


일단 회사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일을 재정립하고 싶다. 재미 혹은 의미가 있는가?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으로 일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만약 이직을 통해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 할 것이고, 팀을 옮겨야 된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미래를 위해 투자할 거다. 아내와 나는 은퇴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우선 건강을 회복하는데 투자할 것이고, 다음으로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우리 가족도 건강이 우선, 그리고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신중하되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다. 행동하는 것의 힘을 일년간 너무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고 노트에 끄적이기만 하고 말만 하고서 행동하지 않는 그런 실수는 이제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왜 모두 이렇게 비슷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나?

예를 들면 좋은 학교 나오려고 애쓰고대학교에서는 좋은 직장 돈 많이 주는 직장 가려고 애쓰고. 그러다가 문득 소모되어 회사에서 불필요하다고 버림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것 말이다.

 

어려운 질문이다. 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유교문화 때문인 것 같다.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로 인식하는 문화적 특성이 한 원인인 것 같다. 또 초,,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다. 남이 세워놓은 대오를 이탈하는 삶이 곧 낙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일을 하면 즐겁고 행복할까?’가 아니라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를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연수를 했던 나라에서는 다름을 인정한다. 면접, 학교, 직장 등의 어떤 곳에서도 나이, 출신, 성별, 종교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나아가 직업의 차이에서 오는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를 쿨하게 인정한다.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은 주말에도 일을 하는 학원강사다. 그는 10년 넘은 차를 아직도 탄다. 그는 자신의 일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거라고 얘기했다.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고 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버스 운전기사나 배관공이나 은행원이나 그냥 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지금 어느 누군가는 당신처럼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다면뭐라고 해 주겠는가?


그건 철저히 본인의 결정이다. 한가지 바라는 것은 그 결정은 그 사람의 명확한 가치관이 서고 난 후에 내리면 좋겠다. 그 사람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믿는 가치가 있고 그걸 믿는다면 뭔가 해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칫하면 육아휴직 기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라 당신이 소중하게 붙잡아야 할 결정적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 휴직을 하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우선 회사 다니면서 시간을 내서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 확신이 생기면 그때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휴직을 하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에서 남자의 육아휴직이 주는 임팩트는 생각보다 너무 강하다. 마치 이력에 빨간 줄이 쳐진 느낌까지 든다. 그렇기에 좀더 신중히 다시 판단하라고 권하겠다.

 


 휴직기간에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나와 아이의 경험과 아내의 경험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내가 느끼는 이 생각들을 나는 단지 말로써 아내를 이해시켜야 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숙제다. 나와 아이는 아이 스스로의 독립적 생활방식을 셋업하고 왔는데, 엄마는 아이를 또다시 예전 5살의 아이처럼 대하기 때문에 아이가 다시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비어버린 통장잔고를 볼 때 후회한 적은 없었나?


휴직 후 연수를 떠날 때 적금, 보험 등을 모두 정리했다. 마음은 이미 그때 한번 아팠고, 돌아와서 전세 만기가 끝나서 새로운 집을 찾을 때 한번 더 아팠다. 다행히도 은행이 도와주기에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삭일 수 있었다. 지금은 이제 다시 채워야지라는 생각이다. 누가 물어보더라도 일년 동안 돈밖에 잃은 것이 없다. 그래서 후회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남자가 아내 혼자 일하게 두고 지는 외국에서 공부나 하고 팔자 좋은 놈이다정신차려라 임마.” 라는 악플이 달렸다면 거기에 뭐라고 리플을 달고 싶은가?

 

아내를 잘 만났어요.” “결혼을 잘했어요.” “대신 아이는 내가 키웁니다.” 뭐 이런 글을 남기겠다. 사실 그런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미래에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금 하고 있는 준비는 있나?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50살까지만 회사생활을 하고 싶다. 8년 남았다. 50살에 은퇴 후에는 제주도에서 팬션을 하고 싶다. 돈을 벌기 위한 것 보다는 생활 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이익이 나지 않아도 좋다. 50살 이후 남은 인생을 가족과 즐겁게 살고 싶다. 그 팬션을 외국인 전용으로 해서 아이에게도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본인이 말한 삶의 행복과 인생관과 하고픈 일이 100% 맞지는 않는 것 같다. 팬션을 하는 것이 본인의 삶의 가치와 맞다고 생각하나?

100% 맞지는 않을 수 있다. 내 인생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고 싶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말 뒤에는 금전적인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 일년간 회사, 그리고 한국과도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생활을 했다. 우리는 겪어서 알게 된 삶에 구속된다.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단지 좋다라는 느낌보다는 무언가 따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

 

해외에서 일년간 있으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외국 애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Why not?’ 이라는 말이 있다. 참 신기한 말이었다. 이 말이 나왔을 때 말문이 턱 막히는 경험이 많았다. 맞다고 생각하면 하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어떤 대화에서 “Why?”라는 질문을 했을 때 너 혼자만 잘 되는게 무슨 의미야, 니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봐. 그럼 우리가 이렇게 행동해야 하지 않겠니?” 또는 너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 라는 늬앙스의 말을 제법 많이 들었다. 그리고 휴가를 가도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오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헤비타트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사람들이 부자가 아니라 소형차도 10년넘게 타고 다니는 중산층 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에게는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팬션을 하면서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다니는 삶을 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나의 아이가 나밖에 모르는 삶이 아닌 주위를 돌아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남을 도우며 함께 사는 삶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렇게 늙어가고 그렇게 죽고 싶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의 가치관은 현재 흐르고 있는 문화에서 기인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차별, 남을 밟아야 내가 돋보이는 조직.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작은 바램은 직장인들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언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같은 유치하지만 꼭 필요한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바빠 죽겠는데 뭔 개소리냐?” 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 우리가 직장에 다니는 이유가 행복을 위해서이고, 그 행복이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봐줄 줄 알고, 어울려 살아 갔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지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까이는 내 아이, 내 아내의 행복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형제 부모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이웃과 이웃나라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14년간의 회사생활 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 기쁨은 생각보다 컷다.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통해서 삶의 방향성을 찾고 그 길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직장인으로서 성공만을 위해 회사 인간이었던 그는 일년의 멈춤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두가지 였다. 자신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멈추어 일에서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고맙게도 내 책을 읽어 주었고 그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에게 인터뷰를 먼저 요청해 주었다. 어찌보면 직장인이자 글을 쓰는 나에게는 가장 감사한 사람이었다. 내 작은 글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이 한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 이라고 부르고 싶다. 많은 직장인 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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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방송 현장 탐사Q 출연 했습니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14 07:30 / Category : 교육,강연,상담



산업방송 채널i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현장탐사 Q 라는 프로그램에 퇴사 컨설턴트로 출연했습니다. 


"삼성을 떠난 사람들_조직문화"라는 제목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그 동안 저의 경험과 생각을 인터뷰를 통해 녹아내었습니다. 실제 촬영한 것은 한 시간 정도인데 정리를 해보니 약 5분정도로 편집되어 나왔네요. 처음에는 조금 긴장 되었는데 PD님에 질문을 편하게 해 주셔서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지금 처럼 해고, 구조조정이 일상화 된 환경속에서는 "정서적 안정감"이 기업문화에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만 개인도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발전도 경험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회사의 조직문화는 너무 다양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더라도 그것도 일부분 일 수 밖에 없다." 

인터뷰를 하신 바른 분의 말인데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삼성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라 회사를 떠나서 개인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삼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났으면 회사 안에서 보다는 회사 밖에서 자신이 만들어가려는 모습과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는 5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 생활 경험으로 전체를 논하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조금은  지양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경험 한 만큼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고 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은 경험과 읽은 활자에 갇힐 수 밖에 없습니다. 직장에서는 5년차가 볼 수 있는 것, 10년차가 볼 수 있는것, 그리고 15년차가 보는 것에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경험에만 얶매이지 않고 다양한 견해를 받아드려 더욱 발전 할 수 있도록 겸손한 자세로 노력하겠습니다. 


다음번에는 꼭 공중파로 진출 해서 저의 견해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



PS. 중간에 사천여명의 직장인을 만났다는 말은 잘못된 내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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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문화의 다음 변화는 언제?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02 09:20 / Category : 직장인 필진/평생직장인



과자에 새로운 맛을 불러일으킨 허니버터칩.

허니버터칩의 열풍으로허니로 시작하는 많은 제품들이 선보였다.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은 노력하고, 그 유행에서 시장의 순위가 바뀐다. 그만큼 시대에 맞는 창의성과 변화에 대한 인사이트가 중요한 시대다. 유행의 지속성과 변화 주기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짬뽕 열풍과 바나나 맛 파이 열풍으로 경쟁사들은 비슷한 제품을 빠르게 출시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의 유행을 따르거나, 시장의 유행을 선도하려는 노력은 필수인 시대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을 따라 잡기 위해서 기업도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직장인 들이 회사안에서 느끼는 기업문화의 변화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연차 휴가 적극 장려. 눈치 보지 말고 써라.”

최근 뉴스에서 본 헤드라인 이다. 외부에서 보면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부여하고,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려는 듯하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연차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돈으로 보상해야 하는 회사의 속내는 빠져 있다. 결국 <연차 사용권장 = 비용절감> 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 기사에는 휴가를 써서 내수 소비를 활성화 한다는 명분까지 덧붙여 있다.

 

이런 기사를 볼 때 당신의 기분은 어떤가? “. 좋은 세상이네. 휴가를 가라고 권면하는 구나.” 에머물 것인가? 아니면 한 단계 더 깊은 생각을 해 볼 것인가? 직원들이 왜 휴가를 못 가기에 다 쓰라고 권하는 걸까? <직장인의 휴가 = 내수 소비 진작> 이라는 공식이 맞는 걸까? 라고 의구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한다. 요즘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기능보다 광고주들이 원하는 바를 알리는 광고판이 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나는 판매 실적을 내야 하는 최전선에서 일을 한다. 회사의 상품을 더 판매되도록 매일 고민하고 프로모션 계획을 짠다. 하지만 나의 일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붙는다. 비용이 들지 않거나 최소화 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할 것. 비용을 아끼려는 회사의 마음은 안다. 하지만 이건 손 안대고 코 풀겠다는 도둑놈 심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기업 문화를 한 단어로 말 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군대.  , 까라고 하면 까라는 문화. 무조건 될 때까지 해라. 는 다소 무대뽀 적인 문화가 그것이다.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창의적인 인재, 시대를 선도하는 인재를 원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실상은 개인의 창의적인 생각을 반영하기 보다는 시키는 것을 잘하기를 원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시키는 것만 하면, 시키는 것만 하냐고 욕한다. 또 다시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조직에서 튀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 기업 문화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기업문화는 아니지 않은가?

 

빠르게 변화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창의적인 통찰력이 중요한 시대다. 그런데 직장인으로서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실제로 거의 없다. 다양성보다는 그저 시키는 것만 잘하는 모습을 원하는 기업 문화. 기업 문화의 변화가 없이는 1등 기업은 1등을 더 이상을 유지할 수 없고, 추락하는 것은 순식간인 시대이다. 빠르게 변하는 기업의 치열한 시장만큼, 직원들을 생각과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기업의 문화도 빠르게 변화해야 시대다.

 

유행에 편승하기만 하고,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는 기업은 어느 순간 망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사람, 직원들이다. 직원들이 새로운 생각으로 일하고 싶고, 새로운 시도를 펼칠 수 있는 기업 문화가 중요한 시대이다. 시장의 변화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가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 가려면 기업문화의 변화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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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찌라시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5.25 15:58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 생각들



나는 길거리에서 나눠 주는 찌라시를 모두 받는다. 

내가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가 바로 찌라시를 나누어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95년. 상명 여자대학교 앞, 등교시간. 정말 쪽팔렸다.  

고개를 숙인 채 받지도 않는 전단을 돌리고 시작한 하루는 정말 기운 빠지는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어깨가 늘 쳐져있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런 자괴감을 느껴야 하지?" 

"왜 알바를 하며 쪽팔리고 패배감이 들어야 하는거지?"


화가 났다.






그리고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많은 여학생들을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좋은 음식점과 학원을 알려주는 일이 뭐가 잘못된 일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창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니 모든것이 달라 보였다. 

오히려 그들에게 좋은 음식점과 다이어트를 돕는 체육관을 알려준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했다.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현상은 그대로다. 하지만 자신의 관점을 바꾸면 현상이 바뀔 수 있다.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를 펼칠 필요도 없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그 일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내미는 손의 민망함과 고단함을 알기에 찌라시를 모두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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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1 _ 40대 직장인. 정해진 길 밖으로 핸들을 꺽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5.10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1974년 생 43. ㅇㅇㅇ 입니다. 현재 ㅇㅇㅇ에서  HR 담당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회사 중심의 간단한 커리어 소개.

회사 생활은 약 16년 가량 하고 있고 지금 다니는 곳은 두 번째 직장이다. 회사 생활 16년간 계속 인사 업무를 했다. 첫 번째 회사는 중간규모의 금융회사였다. HR 팀에서 채용, 교육, 인사평가, HR 프로세스 등의 거의 모든 업무를 했다. 사실 입사한 2000년에는 대부분 금융권에서 사람을 많이 뽑았다. IMF 이후에 금융장세의 시작으로 금융업이 활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에 비하면 그 당시는 취업이 힘든 시기는 아니었다. 뭘 해야겠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돈 많이 주고 일은 좀 적은 회사를 찾았던 것 같다. 나도 평범하게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넣어보고 되는 곳을 들어간 케이스다. 입사해서 점심시간에 여의도를 조금만 걸어 다니면 많은 동창들을 만날 정도로 금융투자업계에서 사람을 많이 뽑았다. 어쩌면 2000년대 초반이 금융업의 베이비 부머 세대다. 20158월에 퇴사를 했다. 그러다가 20161월에 다시 지금의 비영리 재단에 재 취업을 했다.

 

▶ 본인은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아주 아주 평범한 직장인 이었다. 그냥 직장인의 평균을 내면 나오는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타고난 관리직정도일 것이다. 조율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잘 했던 것 같다.

 

▶ 첫 직장을 15년 다녔다. 또 인사팀이었다. 왜 회사를 그만두었나?

한마디로 하면 경력이 막혔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회사를 떠나게 됐다. 월급을 받으려고 회사를 다니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전에는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해 보려고 꾸준히 노력을 했는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작은 규모의 오래된 조직이어서 성장이 정체되고 승진하려면 질퍽한 사내정치의 늪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내가 정치를 잘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내가 있던 회사는 업의 특성상 첫 직장은 돈만 잘 벌면 장땡이인 곳이었다.) 조직의 미래와 비전을 보고 인사를 전략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었다. 윗선에서 이렇게 발령을 내라고 지시가 그냥 내려 오면 인사팀은 행정처리 하듯이 처리만 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없는 조직에서 나는 부품일 뿐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받는 것 이외에는 의미도 성취감도 없었다. 이런 부분도 회사를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 사람들이 너무 적체되어 있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구조였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도 있었지 않나? 그런데 왜 그냥 때려 치운건가?

이 질문은 재 취업 면접 시 정말 많이 받았다. 사실대로 대답해도 아무도 수긍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찮아서 그냥 말을 바꿨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지어낸 것이다. “여자친구랑 사귀다가 다른 여자친구를 먼저 물색해 놓고 내 사람이 되고 나서 전 여친을 차버리는 것이 성격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서 직장을 찾았다.” 이렇게 말했다.

 

▶ 그럼 면접관에게 한 거짓말 말고 솔직한 이유는 뭔가?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마음으로 지금의 회사를 대충 다니며 일을 하는 것이 회사에 몹쓸짓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리 말하고 회사에는 후임을 뽑을 시간도 충분히 주고 그 후임이 입사해서 인수인계도 충분히 하고 나왔다. 거의 두 달이 넘게 걸렸다.

 

▶ 모든 커리어 관련, 이직 관련 책에서는 다른 회사를 정해 놓기 전에 절대로 지금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다. 전혀 다르게 행동했는데.

맞다. 책의 내용을 100%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가치기준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 사실 나는 이직,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퇴사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회사를 그만두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회사 이후의 플랜을 세우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모든 커리어 관련 책 혹은 커리어 컨설턴트의 말을 그대로 따르다가는 그 전에 회사에서 내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강제로라도 판을 뒤집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 판을 바꾼다는 말.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회사를 다니면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면 기본적으로 시야가 좁아진다. 내가 그저 지금 머물고 있는 산업과 업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회사가 미치도록 싫고 지금의 일이 죽을만큼 싫다고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일, 이년 후에 보면 이 업계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지낸다

나는 업계를 떠나고 싶었고 제대로 된 그리고 내가 일을 하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조직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15년을 해온 일을 계속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프레임, 다른 땅 위를 딛고 뛰어다니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회사를 다니면서는 불가능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 그럼 회사를 떠나면서 새로운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던 건가?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다. 회사 때려치우고 뭐 할래? 그 질문에 구직활동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좀 쉬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집안 살림도 하고 운동 좀 하려고.”이렇게 말했다.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1순위는 재 취업이었다. 2순위 노무사 시험, 3순위 9급 공무원까지 생각했었다.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불안해 하는 와이프가 뭐라도 해야지 않겠냐 라며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나의 전문성과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HR 일과 관련이 있는 노무사에 도전하는 것이 2순위로 포함되어 있는 이유다. 사실 마흔 세 살에 회사를 떠나서 아등바등해서 다시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얼마나 다시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랫동안 쌓았던 인간관계도 다시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밀어주고 끌어줄 기반도 없는 곳에서 말이다.

 








▶ 43세면 무작정 회사를 나오기에는 적지 않는 나이다. 아내의 반대는 없었나?

우선 내가 워낙 오랫동안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처럼 골골거리고 있었기에 그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솔직히 아내는 내가 나의 꿈과 이상을 좇겠다.’ 라는데 동의해서 회사를 그만두라고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죽을 만치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동의해 준 것이다. 아내는 보수적인 사람이기에 그만두어도 남자는 얼마가 되더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내가 용인해 줄 만큼 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서 허락해 준 것 일 수도 있다. 나는 처가어른들과 같이 사는데 그 분들도 허락을 해 주실 정도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 미친듯이 사람을 짤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나.

회사가 성장기에는 피라미드형 인력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다가 산업 정체기에는 신규인력을 뽑지 않는다. 그럼 인력이 병목현상이 생기고 적체가 된다. 그럼 고임금의 인건비가 감당이 안되고 당연히 성과주의’, ‘효율우선으로 회사의 기조를 바꾼다. 인력들의 연봉을 줄이거나 사람자체를 쳐내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2015년 말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 인력 쳐내기가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남아있는 곳이 금융업, 제조 대기업쪽 일 것이다.

첫 회사에서 15년차고 사십대 중반인 나는 남자 직원 중에 거의 막내였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은행의 선배는 마흔 일곱 살인데 은행 지점의 남자 중 거의 막내다. 그만큼 금융계가 신입사원을 거의 뽑지 않고 고임금 비효율 형태가 되었다는 반증이다. 다른 업은 업태의 변화나 부침이 추세를 타고 오는데 금융업은 추세가 별로 없이 주가처럼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사람을 쉽게 뽑고 쉽게 자르는 것이 다른 업태와 조금 다른 부분이다. 내가 입사 당시 금융계 종사자가 3만명에서 2.5만명까지 떨어 졌다가 활황일 때 6만까지 찍고 지금은 미친 듯이 인력은 다시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 개인적으로 인사팀은 일반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가 궁금하다. 인사팀은 회사의 사측에 가깝다는 선입견이 있지 않은가?

중견크기의 회사였지만 인사팀의 권한은 없었다. 임원급에서 이렇게 발령을 내라고 서류가 그냥 내려왔다. 전사적으로 인력배치를 조율하는 것 보다는 그저 행정처리를 하는 느낌이 매우 강했다. 솔직히 말하면 인사팀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다른 일을 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의 잘못된 방향성에 대한 불만, 그리고 조직 안에서 커나갈 수 없다는 답답함이 아닐까 싶다. 통상적으로 인사팀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강한 경우가 많다.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다.’ 는 목표가 있는데 조직에서 그것을 도와주지 못할 때, 즉 개인의 욕구와 회사의 필요가 어긋나면서 생기는 충돌 때문에 많이 그만 두는 것 같다.

 

▶ 인사는 HRD 팀이다. 이것은 회사를 위한 인간 자원 개발하는 것이다. 개인 보다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하는게 목표라고 본다. 사람을 회사를 위한 자원으로 보는 것 같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우선 사람을 Resource라고 보는 관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나도 공감하는 바다. 회사 입장에서만 본다면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하는게 맞을 수도 있다. 보는 관점상의 차이인 듯 하다. 나는 퇴사 이후 다시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면접을 열 번도 넘게 봤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HRD를 테크닉이나 기술처럼 생각하는 회사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MBO를 해 봤냐? KPI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같은 질문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성과주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는데 성과주의라는 개념은 큰 틀에서 볼 때 지금과는 점점 맞지 않는 오래된 개념이 되고 있다.

 

▶ 금융회사에서 일했으면 더욱 성과주의라는 개념이 많았을 것 같다.

맞다. 노골적으로 그랬다. 개인이 얼마를 벌어오면 그것을 회사와 개인이 나눠먹는 느낌이 있었다. 회사와 직원의 관계가 마치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장님과 본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인사팀의 말을 듣지를 않았다. 인사팀의 말을 잘 듣는 직원은 성과가 조금은 낮은 직원들이었다. 정말로 돈만 잘 벌면 장땡이었다. 금융계에서는 철저히 개인의 성과에 따라 월급이나 특히 성과급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성과주의의 극치는 이 업계에서 이미 고착화 된 것이다. 모 회사는 성과에 따른 배분으로 직원들간의 단합에 문제가 되어 아예 성과급제를 없애거나 실시하지 않는 곳도 있다.

 

▶ 회사의 주인은 누구라고 보나? 인사팀은 어떻게 생각하나?

회사의 주인을 주주라고 부르는 주주 자본주의가 지배적이긴 한데 직원 입장에서는 전혀 와닿지 않는 얘기다. 그저 책상 위에서 학자들이 말하는 얘기다. 생각해 봐라. 그 회사에 정말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주식을 사고 주주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주주는 주가가 올라서 돈만 벌면 장땡일 것이다. 굳이 정답을 내자면 이해당사자가 아닐까 한다. 존슨앤존슨 같은 경우에는 종업원, 고객, 거래사, 주주 이런 순서로 중요한 고객이라고 말하더라. 회사는 회사의 오너가 아니고서는 솔직히 설명하기 어렵다. 굳이 꼽아보자면 실제로 일을 해서 회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종업원이기에 종업원이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라고 본다.

 

▶ 결국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재 취업에 성공했다. 새로운 회사를 선택하는 본인만의 가치 기준이 있었을 것 같다. 뭔가?

나는 반드시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회사형 인간에 가깝다. 어떤 사람이 영업력이 있거나, 자신만의 기술력이 있다면 그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조직에 관한 일을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나는 회사라는 숙주가 있어야 하고 그 숙주에 기생(?) 해야만 살 수 있는 그런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혼자서 일하기에 잘 맞지 않는 성향이다. 회사를 떠나서 나에 대해 계속해서 돌아보고 고민하고 내가 해온 일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나보니 회사 안에서의 나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바로 볼 수 있었다.

 

▶ 마흔세 살에 퇴사 그리고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기분은 어땟나?

사는 게 뭐라고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어떤 할머니가 우울증이 있었는데 유방암에 걸렸다. 2년 밖에 못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즉시 우울증이 사라졌다. ‘어차피 2년만 살고 죽을거니까 남은 인생 내 마음껏 살아야겠다.’ 라고 마음먹으니 우울증이 도망간 것이다. 그리고 바로 1억이 넘는 페라리를 샀다. 그 이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았다고 했다.

만약 내가 재취업을 준비했던 여섯 달 후에 갈 곳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 기간은 짧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재 취업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있었던 날이 없었다. 하루 하루가 불안했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가장 불편한 것은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 재취업을 하려고 노력하던 기간 동안 특히 신경 쓴 것은?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노력했다.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운동 하고 아침밥도 꼭 챙겨 먹었다. 백수의 하루 일과는 아침이 좌우 한다. 늘어지면 하루가 눈 깜빡 할 사이에 끝난다. 핸드폰이라도 들고 침대에 누우면 한 두 시간은 그냥 버리는 거다. 또 주말에 도서관에서 도서 대여 반납 일도 했다. 살림도 김장까지 할 정도로 익숙해 졌다.

 

▶ 회사를 떠나고 가장 크게 바뀐 감정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나는 담배를 꽤 오랜 기간 동안 피우다가 지금은 끊은지 일년이 넘었다. 거의 20년이 넘게 피워서 내가 담배를 끊으려면 정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쉽게 끊을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떠나보니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구직활동을 하면서 드는 하루하루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일상을 탄탄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미칠것 같은 불안을 이겨낸 후에 얻게 된 자신감이 가장 큰 변화다.

 

▶ 회사를 떠난 후 자신이 가고 싶은 일하고 싶은 조직에 대한 생각이 명확했을 것 같다. 어떤가?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 되었다. 큰 조직이나 시스템이 잘 갖춰진 조직은 나와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곳은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할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오래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일만 했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런데 가면 일을 잘 못할 것이다. 규모가 작지만 좋은 기업문화를 가지고 HR을 만들어 가는 그런 회사를 가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 학습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기준이었다.

 

▶ 조직문화가 좋다는 것을 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일단은 남을 짓밟으며 성장하는 마초적인 문화가 없어야 한다. 면접을 보는데 이런걸 물었다. ‘A는 신입으로 들어와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연봉이 5000만원 이다. A와 똑 같은 일은 하는 B를 경력으로 뽑았다. 그런데 B의 연봉은 1억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라는 거였다. 내가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능력이 비슷한데 연봉이 그렇게 차이나게 회사는 결정했냐?’ 면접관은 내가 질문했으니 너는 그냥 답하면 된다.’ 라고 얘기하더라. 그래서 그 이후의 면접은 대충 보고 나왔다. 문제는 회사에 있고 저지른 것도 회사인데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기는 문화가 있는 곳일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인사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면접 질문은 뭐가 좀 다른가?

질문보다는 태도에 대해서 예기하고 싶다. 인사팀의 팀장, 부장 이런 사람은 면접을 볼 때 사람을 쭉 훑어 본다. 그리고는 이력서를 한번 보고 다시 한번 또 훑어 본다. 마치 쇠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으면 쉽게 찾아 왔냐? 차라도 한잔 하겠느냐?’ 라는 스몰 토크부터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인사를 오래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만나자 마자 그저 겉모습과 서류만을 훑어 보면서 사람을 평가하려고만 한다. 사람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의 시작을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질문도 스킬파악에 가까운 것이 많다. “그저 ㅇㅇ 해봤어요? ㅇㅇ 해본 경험 있어요?” 이런 질문만을 던질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인사업무에 너무 충실 하다보니 기본적인 사람간의 관계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 면접은 몇 번 봤나? 13년 만에 면접관이 아닌 면접자 입장이 되었는데.

지원은 세어보지 못할 정도로 많이 했다. 백 번도 넘었을 것이다. 면접은 총 열 번 정도 봤다. 요즘 신입사원이 지원보다는 조금 양호한 정도인 것 같다. 면접 중 한 서너 번 까지는 감을 잡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 그렇게 많이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힘든 구직과정을 거치면서 회사를 괜히 나왔나?’ 하는 후회는 없었나?

없었다. 그저 그 조직을 떠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사팀 치고는 이직할 곳을 정하지 않고 회사를 떠나는 것처럼 정상적인 순서와는 다르게 떠났다는 것을 잘 안다. 모든 HR 담당이나 헤드헌터는 이직할 곳을 정해 놓고 가라고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미리 갈 곳을 정해 놓고 회사를 떠나는 것이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예전에도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알아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니 회사일에 제대로 집중 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만두고서 다른 일을 알아본 것이다. 또 이 회사를 계속 다니다가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회사를 끊어버리고 나왔다. 이건 아마도 성격적인 이유가 클 것이다.

나는 그냥 흘러온 인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려고 공부했고 대학 때는 저학년 때는 적당히 놀다가 4학년 되서 취업 준비했다. 그리고 모든 곳에 다 지원해서 붙은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저 남들이 하라는 대로 혹은 그렇게 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세상이 말하는 대로 살았다. 이런 인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를 나온 것 이다. 내 인생에는 방향키가 없었다. 그냥 바람이 부는대로 흘러 왔던 것 같다. 지금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조금만 더 나이를 먹었으면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중에 퇴사는 내가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이라서 후회는 별로 없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내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은 늘 했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료와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했을 때 그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대로 살다가는 남은 선택이 자살밖에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그는 계속 선택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 HR 출신이 회사를 떠나서 취업을 돕는 컨설팅, 강의 등으로 1인기업으로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가?

일인 기업도 자신의 성향과 맞는 사람이 하는 것 같다. 컨설팅을 하는 것에 조금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컨설턴트는 제너럴리스트다. 컨설팅하는 조직의 특징과 업의 형태를 파악하는데 시간의 반을 쓴다. 그리고 결과도 제너럴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정말 문제를 잘 아는 사람에게 맞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내부 인력을 믿지 못하기에 컨설팅을 맡기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회사, 조직이 필요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조직이 있는 상태에서 그 조직을 잘 관리해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하고 돕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인기업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 지금은 비영리 재단에서 인사일을 하고 있다. 본인이 생각한 일과 잘 맞는가?

그렇다. 여기서는 나 혼자 인사, 총무에 관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 전체 인력은 한 60명 정도 된다. 보통은 영리조직과 비영리 조직의 인사도 똑같다. 채용, 급여, 교육, 복리후생 등 모두 똑같다. 같은 일을 하는데 시간은 적게 걸린다. 여기는 직급도 하나 뿐이기에 체계가 단순하게 돌아간다.

 

▶ 이직을 하고서 만족도는 어떤가?

버는 돈은 금융계에 있을 때보다 반으로 줄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평생소득은 늘려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다른 영리 회사로 갔다면 회사 생활을 오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기업 보다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또 돈을 버는 1차적인 목표 이외에 지금의 조직에서는 작은 조직의 인사라는 부분을 일하며 배워나갈 수 있다

평생소득이 늘어날 수 있고 아직도 일에서 배우며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면 충분히 멋진 이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돈과 직장수명의 연장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작은 기업은 대기업에서 쓰는 인사 제도 등을 그저 줄여서 쓰는 경우가 있다. 이직을 준비하며 공부를 하는 동안 작은 조직, 비영리 조직의 인사에 관련한 책들과 논문을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작은 조직에 맞는 인사 형태에 대해 시도해 보고 싶은 솔루션들을 문서로 정리해 놓았다. 그렇게 준비했던 것들을 실제로 적용해 보고 싶다. 그렇게 배우고 성취감을 얻으며 발전하는 것은 연봉이 주는 만족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 40대 중반에 첫 이직을 했다. 그 다음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직을 준비하면서 명확한 목적지와 목표를 세웠다. 거창한 건 아니고 중소 규모의 회사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것을 보급하는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지금 근무하는 조직에서 내 목표가 성공한다면 지금 근무하는 조직은 중소 규모 조직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보급하는 일을 하는 비영리 단체를 인큐베이팅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 다음의 목적지다.

 

▶ 신입사원도 회사에서 짤리는 것이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본인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인사팀의 담당자라면 어떻게 했겠나?

그런 것을 어둠의 HR (Dark HR)이라고 부른다. 천사의 날개가 있지만 악마 같은 그런 존재다. 그런 일을 한번 하게 되면 계속 그 사람에게만 시킨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을 시켰다면 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킨 일을 하지 않는다고 압박을 한다면 그만 두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좀 개탄스럽고 바보처럼 느껴진다. 힘들게 사람을 뽑아 놓고 바로 신입사원을 자를 정도면 100% 경영진의 문제다. 이건 조직의 평균 아이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행동이다.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나는 신입사원도 안타깝지만, 그렇게 바보같이 조직을 관리하는 회사에게 더 분노가 생긴다. 아마도 회사가 너무 크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인 것 같다.

 

▶ 앞으로의 조직은 어떤 형태가 될 것 같나?

앞으로 조직이나 회사가 생기게 되면 우리가 아는 이름 있는 회사처럼 수천, 수만 명의 인력을 거느리는 회사는 극히 소수가 될 것 같다. 정보의 인프라도 풍부하고 월급을 주는 사람들에게만 일을 시켜야 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원에게 시키던 일을 외부에 의뢰하는 형태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 같다. 물론 그런 아웃소싱 전문회사 프리랜서의 모임과 같은 회사도 어느 정도는 늘어날 것 같다.

 

▶ 신입사원도 짤리는 판국이다. 회사를 떠나는 것, 버티는것 어떤 것이 맞다고 보나?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얘기해 보겠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단 회사에 남아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불안 때문에 그냥 뛰어나오면 안 된다. 이 대답은 내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나는 조직이 있어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은 자신의 능력과 준비, 그리고 자신이 혼자 일할 수 있는 성향을 갖추었는지가 대답이 될 것 같다. 누구라도 이 질문을 받는다면 답하기 전에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 꼭 돌아보면 좋겠다.

 

▶ 인사팀이 볼 때 일 잘하는 사람이란?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소통에는 남뿐 아니라 자신과의 소통도 포함한다. 빠르게 배우고 그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배워서 익힌 것을 다른 사람에게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또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고 봐도 된다. 그런 사람은 개인 뿐 아니라 조직 전체를 발전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결국 소통을 하는 사람이 발전한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무언가를 혼자서 이루어 내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 그럼 회사에서 불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보나?

회사에서 정보를 독점하거나 좋은 아이디어를 흐르지 못하게 막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발전하지도 못하고 남의 발전을 막는 사람이다. 남이 잘되는 것을 막아야 자신이 뒤쳐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조직에 절대적으로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 취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해 준다면?

이 질문은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취업 전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면 트랜드를 너무 쫓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기업이 안정적이고 좋다더라, 빅데이터가 유망하다더라 라는 등의 것 말이다. 솔직히 그렇게 해서 사람이 쏠리게 되면 다시 다른 빈자리가 생기게 된다. 그런 트랜드를 개인이 알아낸 다는 것은 사람 매우 힘들다. 그 트랜드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알 수 없는 기술의 발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조금이라고 하고 싶은 일, 관심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처럼 회사가 아니라 모바일 전문가, 자동차 디자인 이렇게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꼰대가 되겠지만 40대 중반인 지금 보면 그렇다.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기준으로 일을 고를 것 같다. 물론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볼 기회가 없을만큼 힘들게 산다는 것 알고 있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ㅇ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내 나이의 내 입장에서 조심스레 말해 본다.

 

▶ 만약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회사 그만둔다.”를 입에 달고사는 후배가 있다면 뭐라고 해 주겠는가?

조언은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공허한 소리다. 하지만 인터뷰니까 얘기해 본다면 나도 마흔 넘어서 해 봤는데 너도 한번 해 보렴. 니가 감당 할 수 있다면, 또 니가 죽지 않는 다면 너를 발전시킬 경험이 될 거야.” 라고 할 것 같다.

 

▶ 구직 기간 동안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직장생활연구소 인터뷰는 솔직한게 멋인 것 같다. 멋진 얘기만 하지는 않겠다. 실제로 신세 한탄도 많이 했고, 술도 많이 먹었고, 찌질한 패배 의식에 허우적대기도 했다. 그만큼 회사를 떠난 다는 것은 힘들다는 얘기다. 회사에서의 반복된 일상을 막연히 저주했지만 그 반복을 떠나면 또 사람은 미치도록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를 떠난다는 건 문을 여는 것 같다. 한 번도 열어본 적을 없지만 늘 있었던 문. 그 문은 바깥에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여는 것은 100% 본인의 자유의지다. 그 방에 괴물이 있을지 보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방이 아무것도 없는 빈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빈방에는 반드시 또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그게 문의 이름이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사람은 현재를 벗어나려는 시도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 본인처럼 40대 중반에 다시 일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40대 중반이라면 개인의 삶의 무게도 꽤 무거운 나이다. 아이는 중학생 이상일 것이고 돈이 나갈 곳도 많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제대로 승진을 못하면 밀려나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그 동안 무얼 했나 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용히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이랑 소주 한잔 먹으면서 하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고민하게 된다.

굳이 얘기를 하자면, 일단 자신을 꼭 돌아보길 바란다. 나도 6개월간 회사를 다니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잔뜩 읽었고,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냥 달리기만 하다보니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이라면 현실을 인정하는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전 회사에서 버는 돈만큼은 벌어야 한다.’ 라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된다. 이해는 하지만 그건 목표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삶을 돌아본 만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에 맞는 목표를 세우면 좋겠다. 꼭 돈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좇는 다른 삶의 형태도 좋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그럼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40대 중반이라도 앞으로 30년은 더 넘게 살아야 한다. 너무 급하게 방향을 잡으면 또 다시 후회할 수 있다. 충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세상에 내쳐진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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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0 _ 일하면서 배웠다. 그리고 1인 기업가가 되었다.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5.02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1인기업가로서 밥벌이는 어떤가?

운 좋게도 위에 말한 것처럼 바로 정부기관을 도우며 일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데는 회사 다닐 때와 큰 차이 없이 연착륙을 했다.

 

▶ 본인은 아프리카 개발협력 전문가라는 희소하고 또 스페셜한 무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떠나서도 1인기업으로 무난히 일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 일이 개인의 일로 연결되는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라고 본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서 전혀 스페셜한 점을 찾을 수 없어서 1인기업가가 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외부 시각에서 보면 내 일이 특별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특별한 일, 그렇지 않은 일이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자신이 하는 일을 특별하게 해내는 것 중요하다고 본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기존의 루틴한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과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서 더 개선하고 바꿔 나가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은 다르다. 그건 그 사람이 경리일을 하든 영업일을 하든 혹은 다른 의미가 작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삼성물산에서 경리로 입사해서 관리부장까지 올라간 분을 알고 있다. 그 분은 정말 일을 잘한다. 그리고 너무 너무 일을 깊숙이 알고 있다. 또 시야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전체를 보고 계획을 세울 줄 아는 분이었다. 그 분이 해외 공장에 파견을 나갔었다. 어느 해에 그 공장 생산품목 가격 파동이 일어나서 상당수의 회사가 망했다. 하지만 그 분이 나가 있던 곳은 굳건히 살아 남았다. 이유를 보니 그 분은 경리과 출신에 프로젝트로 파견을 나간 것이지만 해당 산업의 특징, 국제가격 흐름,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계속 공부를 했다


그렇게 관리 출신이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해 범위를 넓혀서 산업 전반을 공부하니 눈이 뜨인 것이다. 그리고는 시장에 재고가 지나치게 많다. 위험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파견 나가있던 회사의 재고를 줄이는 정책을 펴서 재고가 거의 제로인 상태로 국제적인 가격파동을 만났던 것이다. 재고를 안고 있던 회사는 모두 회사가 망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는데 그 회사는 거의 충격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남과는 다르게 정말 괄목할 정도로 일을 잘 해내고 시야를 다른 분야까지 넓힌다면 일인 기업으로서 가능성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1인기업으로 일하시는 분들에게 직장인이 아닌 학생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1인기업으로 일하고 싶어하는 경우다. 그런 친구들에게 뭐라고 얘기해 주겠는가?

좋은 질문이다. 나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연구실에 나 말고 두 명의 청년이 있다. 작년에 두산 인프라코어에서 일하던 팀이 없어져서 나온 마흔 살의 친구와 대학원 석사를 마친 서른 살의 청년이다. 마흔 살 친구는 직장생활의 끝을 직감하고 제 때 독립한 반면, 서른 살 친구는 좀 다른 케이스다. 젊어서 직장을 다니는게 일을 하고 배우자고 하는 건데, 요새는 회사에 들어가도 선배, 사수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들은 것이다. 회사 생활이 각박해지고 이기주의가 만연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그런데 석사과정 중에 같이 연구용역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지도교수님과 내가 하는 일을 보면서 확실히 배우는 것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받아서 하면 시간관리를 스스로 하면서도 신입사원 월급은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보통의 경우, 아무 생각없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해서 하거나,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뒤쳐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곳이 없다는 불안과 공포감 때문에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간다. 그런 공포감이 없다면 또 그 공포감을 냉정히 이겨낼 수만 있다면 굳이 직장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 직장에서 1인기업으로 독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두 가지다. 첫째는 직업 전문성, 둘째는 네트워크다. 결국 일과 사람이다. 만약 그 두 가지를 대체할 만한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굳이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일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평범한 대학생이 갖추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만약 다른 기회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고 다른 누군가를 보고 배우면서 점점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회사에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학생들이 원하는 일을 찾고 그 일에서 점점 전문성을 갖추도록 학습과 경험을 하고 관련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스펙을 쌓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전문성이 쌓인다. 그 과정을 열정이라 부르고 싶다. 시켜만 주면 뭐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소리치는게 무슨 열정인가? 자기가 목표로 하는 일을 한참 전부터 꾸준히 해왔다는 증거를 보여주는게 진짜 열정이다. 채용하는 회사도 그런 사람이 당연히 직무를 잘 수행하리라 믿을꺼다. 차라리 그런 방식이 취직도 잘 될 것이다.


네트워크라는 것은 단지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같이 일을 하면서도 타인을 떠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업계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얘기하면 소위 황금을 캐는 일이라도 같이 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사람은 혼자 나와서 1인기업으로 하면 몇 개월을 버텨내지 못한다. 1인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혼자서 외롭게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주와 수행 능력을 극대화 하기 위한 협업은 필수다. 특히, 지식기반 1인기업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번 평판이 나빠지면 거의 회복이 어렵다. 그런 사람이 박사과정을 패스하거나 기술사를 딴다고 해서 1인기업으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1인기업이라고 절대로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만약 내가 1인기업으로 60세가 넘으면 혼자서 일을 따내기는 힘들 수도 있다. 프로젝트 PM 하는 지금 내 나이 (45)정도의 친구가 일을 따낼 것이다. 그 친구들이 기분좋게 함께 일할 동료이자 경험 많은 선배로 나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1인기업으로 평생현역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능력이 중요하지만 관계가 잘못되면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생긴다. 어찌 보면 이건 회사에서도 똑같다. 임원들이 후배들을 잘 가르치고 길러 놓지 않으면 임원이 되어도 밑에서 받쳐주지 못해서 무너지는 경우도 많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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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많이 기사화 되는 내용이 몇 년 후에 없어질 몇 가지 직업뭐 이런 내용이 많다. 그만큼 직업 불안정성이 큰 세상이다. 지금 학생들이 미래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큰 요소는 뭐라고 생각하나?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대체가능성이다. 대체 가능한 일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대체된다. 그건 시간 문제다. 내가 1인기업으로 부가세, 종합소득세를 직접 신고하면서 한가지 느낀 것이 세무사라는 직업이 조만간 대체될 수 있겠구나하는 거였다. 내가 회계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만 하다가 나왔는데 세무사가 하는 일중 일부를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 그럼 자신의 관심분야 보다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것이 대체 가능성이라고 보나?

그렇다. 대체가능한 일을 하면서 불안에 떠는 것은 잘못이다. 바깥에서 보면 잘 모르는데 삼성물산에서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인원을 줄였다. 그러면서 다른 삼성 계열사로도 보냈다. 그렇게 다른 곳으로 차출되어 나가는 후배들이 찾아와서 만나보면 하는 말이 자괴감에 죽을 것 같다.’ 라는 것이다. 그 친구들과 소주를 한잔 하면서 나눈 대화는 이렇다.



형님, 왜 하필 제가 다른 곳으로 가야 할까요? 저는 서울대도 나왔는데요.”

 “니가 서울대를 나와서 그래. 다른 대학 스페인어과를 나온 친구는 그대로 있고 서울대 공대 나온 니가 다른 계열사로 가는 이유를 알아? 삼성물산은 언제라도 서울대 공대, 서울대 상대 나온 친구들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야” “너는 서울대 공대를 나왔지만 특별한게 없잖아. 열심히 일하는 것만 빼고. 그런데 서울대 나와서 열심히 일하려는 애들은 시장에 너무 많아. 그래서 그런거야.”

너는 스페인어과 나온 애 보고 너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 보면 스페인어를 좀 하면서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경력을 가진 애를 유지 하는게 나아. 그런 인력은 자르고 나서 나중에 시장에서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가 없거든.” “그런데 서울대 나와서 특장점 별로 없이 보고서 잘 쓰고 엑셀 빨리 하는 애들은 많거든. 그게 이유야.”

스웨덴의 버스기사가 방글라데시의 버스기사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이유는 운전 능력 때문이 아니야. 운전은 방글라데시 운전기사가 훨씬 잘해. 차선도 없고 소와 사람이 엉켜있는 길에서도 잘 운전하지. 그런데도 스웨덴 운전기사가 월등한 처우를 받는 것은 스웨덴에는 버스기사를 하려는 사람이 적고 방글라데시에는 많기 때문이야. 그것이 대체불가능성이야.”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내가 너라면 회계, 재무를 공부하겠어. 신규개발 프로젝트를 할 때 인정받는 능력이 파이넨싱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거든. 공돌이인데 신규 프로젝트에서 재무모델까지 돌릴 줄 알면 외부 컨설턴트들에게 휘둘리지 않거든. 그게 너의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어

 


결국 그 친구는 2년만에 AICPA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문제 없이 일을 잘 하고 있다.

 

▶ 본인이 퇴사의 아이콘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친정 회사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나갔기 때문이다. 보통은 몸값을 올리려 하거나, 몸값이 떨어지려 하는 순간 또는 승진 등이 막혔을 때 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난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서 나름 잘 나갈 때 퇴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퇴사의 아이콘이라 그런지, 내가 퇴사한 이후에 입사한 신입사원도 퇴사할 때 연락해온 적이 있고, 같이 일했던 젊은 후배들이 가끔 찾아와 퇴사 고민을 털어 놓는다.

 


▶ 회사를 다녔을 때 가장 고마운 점이 있다면?

회사라는 안전망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접했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을 하면 새로운 일을 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고 배웠다.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다.  직장인들이 소모되기만 하는 것이 싫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운이 좋았다. 일반인들은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대리 때부터 출장을 다니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넓혀 나갔다. 동티모르가 독립했을 때는 아무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새로 독립한 나라의 가능성을 찾으러도 출장을 갔었다. 어떤 회사도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러라는 이유로 출장을 보내주지는 않는다. 확실한 목표와 명분이 있어야 보내준다. 하지만 나의 경우 어느정도 성과가 있다 보니 임원도 별다른 태클 없이 보내주곤 했다. 스스로 일을 찾고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면서 배우는 것은 해본 사람만이 아는 엄청난 성장의 기회다. 그런 기회의 혜택을 받았던 것이 나에게는 가장 고마운 일이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획, 그 안에서 고수를 만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이 나에게는 정말 큰 행운이었다.

 


▶ 대부분의 직장인은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반복되는 일을 한다.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배움과 성장의 기회는 어떻게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반복되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좁은 닭장 안에서 사육되는 닭인지 날개를 펴지 않은 독수리 인지, 혹은 백조인지 백조 옆의 오리인지 명확히 현실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독수리인데 닭장 안에 있으면 독수리인지도 모르고 닭에게 쪼이며 산다. 어떤 경우는 백조 옆에 있다는 이유로 자기도 백조인 줄 착각하고 사는 오리도 있다. 겨울이 되면 백조는 따듯한 나라로 날아가는데 오리는 얼어붙는 호수 안에서 얼어 죽고 만다. 그런 오리들이 특히 대기업 안에는 너무나도 많다. 자신이 생계형 직장인이라면 그 현실을 정말 냉철하게 알아야 한다. 현실을 남의 이야기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반복 안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내야만 한다.

 


▶ 회사생활이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두겠다.’라고 말하는 36세의 후배가 찾아 왔다면 어떤 말을 해 주겠는가?

잘 먹고 잘살아라. 난 더럽고 치사해서 떠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실력과 용기를 갖춰야 한다. 그저 회사가 잘 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욕만 한다면 회사 안에서 그 사람은 부정적이어서 잘라내야 할 사람이 된다. 실제로 그렇게 욕하는 사람이 준비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뭐 하러 욕하는가? 짜증만 나고 스트레스를 계속 스스로 쌓는 일이다. 더럽고 치사한 회사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준비를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실을 깨닫고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 행동하기 바란다.

 


▶ 취업이 미치도록 힘들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조직생활을 하느냐 독립해서 일을 하느냐는 어찌 보면 개인의 성향과 취향의 문제다. 잘 맞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은 독립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조건 취업을 하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조직에서 잘 하거나, 나와서 잘 하거나 경쟁력은 하나다. 진짜 실력이다. 그런데 그걸 준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어떤 후배가 찾아와서 현대, 삼성, LG 어디에 원서를 쓸까요?”라고 물었다. 근데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뭘 할지도 모르는데 어느 회사에 가느냐는 건 의미가 없다. 그 친구와 오래 예기를 해 보니 그는 소비재 마케팅을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P&G, 로레알, 아모레 등을 추천해 줬다. 삼성, 현대는 아니었다. 그리고는 모든 소비재 회사들이 타켓으로 삼는 중국 소비자들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해서 블로그에 꾸준히 연재를 해보라고 했다.

덧붙여 말하면 중국의 소비자에게 영향력이 있는 한국에 사는 중국 유학생 들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해서 그런 결과를 블로그에 올리면 된다. 실제로 그렇게만 하면 다른 스펙을 쌓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스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친구는 토익이 930점 이었는데 980점 이상을 얻기 위해서 토익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선배로서 답답했다. 기업들이 원하는 건 토익 800에 마케팅에 미쳐 있고 그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토익 980점짜리 평범한 One of Them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젊은 친구들에게 할 예기가 많은 것 같다.

꼰대스러운 얘기라고 하겠지만 한번 해 보겠다.  

실제로 요즘 젊은 친구들은 지식은 출중하다. 좋은 정보가 인터넷에 많고 좋은 강의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동을 잘 하지 않는다. 직장생활 할 때 실무적인 질문을 해온 대리가 있었다. 한 일년 정도 후에 똑같은 문제로 다시 물으러 왔다. 그 때 그 문제의 해결책을 일러주고, 완벽한 이해를 위해 관련도서를 2권 추천해 주었다. 하지만 그 대리는 듣기만 했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왜 안 했냐고 물어보니 바빴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지금 내가 알려준 내용, 너도 알고 있는 건데 너는 행동을 하지 않아. 그렇게 행동 없이 살면 넌 평생을 그냥 바쁘게만 살게 될거야. 돌아보면 이뤄놓은 것도 없이 말이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남이 시킨 일만 하다가 평생 바쁜 채로 니 삶도 없이 살아야 해.” 라고 했다. 이 정도 심하게 얘기했으면 알아들었기를 바란다. 


물을 구하는 방법을 알려 줬는데도 행동하지 않는 건 아직 버틸 만 하기 때문이다.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은 열일 제쳐 두고 물을 찾는 일부터 할 것이다. 성공의 법칙은 하나다. 절박함의 차이. 그 이상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자기계발서를 욕하는 사람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린다고 말한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별도로 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큰 고민은 뭐였나?

내적 갈등 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회사에서 시키는 일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었다. 쉽게 말해 준거집단과 소속집단이 달랐다. 내 판단과 생각의 기준과 회사에서 나에게 요청하는 것이 달랐다. 아마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새로 계획 짜고 내가 행동하고 책임지고 해내는 일이 아니었다면 회사생활을 그렇게 오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 어찌 보면 본인의 이런 커리어의 시작은 포르투갈어, 그리고 앙골라 파병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이 기회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기회란 이마에 써놓고 찾아 오지 않는다. 그렇게 몰래 찾아오는 기회를 알아채는 방법이 있다면?

돌이켜 보면 나에게 닥치는 작은 일들이 모두 기회였던 것 같다. 안 해본 일은 기회가 아니다. 모든 세상의 기회는 나에게 지금 닥친 일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나에게 닥친 일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 듯이 하는게 맞는 것 같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늘 해주신 말씀인데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나에게 첫 직장을 물어보면 나는 삼성물산이 아니라 군대라고 말한다. 중위 때 모셨던 작전참모가 무척 대단한 분이고 일을 잘했다. 너무 감사하게 많이 배웠다. 그 분을 보고 군대에도 천재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분은 나중에 4성장군이 되셨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힘든 환경에 있는 요즘 청년들에게는 이런 말이 지금 당장은 이해가 안 될 거라는 거다.

 


▶ 본인이 하는 일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매우 특이하다. 그리고 대기업 경력도 빵빵하고 정부기관의 일도 하면서 돈도 잘 번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는 좀 다른 삐딱한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그 분은 회계일을 하다가 회사가 법정관리에 넘어갔다. 다른 사람은 다 회사를 떠났는데 이런 것도 경험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법정관리의 모든 절차에 뛰어들어 마지막까지 남아서 그 일을 온몸으로 해냈다. 정말 죽을 만큼 힘이 들었지만 끝까지 해 냈다. 그리고 퇴사를 했는데 자신이 속했던 회사의 법정관리를 담당했던 컨설팅사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자신들과 함께 다른 회사 법정관리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법정관리 일을 처리해 주는 컨설턴트로 1인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이 법정관리 회사에 있어 봤기에 그 회사 사람들의 심정도 잘 알고 더 부드럽게 일이 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유치한 예가 아니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의 일이 특장점이 없고 남들 다 하는 일 모든 회사에 있는 일이라고 깎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은 똑같지만 그 일을 행하는 방법을 특별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 난다. 그런 증거들도 봐왔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았으면 좋겠다. 꿈을 쫓는 것도 좋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현실이 질퍽하든 장밋빛이던 말이다.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면서 배워나갈 수 있고 실력이 쌓인다. 보고서 많이 쓰고 엑셀 잘한다고 그게 실력은 아니다. 회계책을 보고 배운 것은 그 책의 저자의 실력이다. 배운 것을 현실에 써먹을 줄 알고 또 써먹으면서 그것에서 다시 배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직장인의 실력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은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에 있고 그 문제를 인식할 수 있고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현실을 가장 잘 보는 사람도 현업을 하는 직장인이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넓은 시각으로 보고 답을 찾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면 자신만의 능력을 더 개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잘 난 사람이었다. 인터뷰 동안 그의 잘남에 눌려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 생각은 '그럴만 하다.' 혹은 '나도 실력을 쌓아야 겠다.' 는 것으로 바뀌었다. 질문서 없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것은 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능력의 근저에는 십년여동안  아프리카를 뛰어다니며 바닥부터 하나씩 쌓아온 경험에 근거한 실력과 자신감, 그리고 현실에의 깊은 고민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후배들의 투정과 고민에 이렇게 따갑지만 꼭 필요한 얘기를 해 주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혼자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남의 힘듬을 돕는 사람은 요즘 찾기 힘드니 말이다.  

"보고서 많이 쓴다고 엑셀 잘한다고 그것이 실력은 아니다. 배운것을 써먹을 줄 알고 써먹으며 다시 배워나가야 그게 직장인의 실력이다."  나조차 반성하게 되는 말로 이 사족을 닫는다.  ◀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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