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팀장과의 24 시간


오전 10시

팀장이 파트장들을 불렀다. 그리고 벌써 30분 동안 떠든다.  이야기는 늘 다른 곳으로 빠진다. 내용은 뻔하다. 다른 사람을 욕 혹은 월급 적다는 푸념. 모두 팀장이 팀원들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그것도 회의 시간에 말이다.  이 인간은 40분 동안의 회의. 아니 모노드라마의 끝은 '템플릿을 만들어 줄 테니 그걸 채우라는 것' 이었다. 

 

저녁 6시 5분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팀장이 미어캣 마냥 고개를 든다.  

"템플릿 메일로 보냈으니까 내일 아침 10시까지 보내줘" 


그리고는 팀장이 퇴근한다. 어이가 없다. 

"먼저 들어갑니다. 수고들 하시고 일찍들 들어가세요."


 꼰대복음 2장 1절의 '퇴근하며 일 던지고 아침에 확인하기'를 그대로 시전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 났다. 

"팀장님, 퇴근시간에 일 던져 주시고  퇴근하시는 건가요? 설마 아니시죠?" 


물론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팀장은 작은 분야의 전문가다.  

나이는 많지만 이직한 이곳의 업태 경험과 이해는 거의 전무했다. 일의 전부가 100이라면 팀장은 20에 해당하는 분야에 전문가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잘 아는 작은 것만 붙잡고 시간을 보낸다. 중요하지 않은 것만 계속 붙잡고 말한다. 나머지 80은 당연히 구멍이다. 구멍이라 하기에 그건 너무 크다. 


팀장은 팀원을 불편해 한다. 

새로 이직한 이곳에서 인맥이나 업무 히스토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팀장이 반나절 동안 전화를 돌리고 미팅을 해서 얻어낸 자료는 팀원이 전화 한통이면 해결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건 곧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니까. 자신보다 잘난 팀원이 있을 때 팀장은 불편해한다. 자기보다 나은 팀원이 있다면 자신이 품고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럴 그릇이 아니다. 


팀장은 새로운 일을 두려워한다.  

누군가 만들어온 결과물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런 지시를 하지 못한다. 방향성을 물어보면 아무 말도 못 한다. 나아가 그 질문은 곧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무언가를 만들어 오면 그것에 빨간펜을 들고 그어댈 뿐이다. 새로운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팀원들이 창조적이지 않다고 불평한다.  



팀장의 메일 첨부를 열었다. 파워포인트 안에 표가 하나 있었다. '아니 표를 만들거면 엑셀로 하지, 왜 PPT로 했지? ' 하며 표를 보다 기절할 뻔 했다. 그 표는 사각형 도형을 하나하나를 붙여서 만든 것이었다. 보통은 표 삽입 기능을 쓰던가 엑셀에서 표를 만든 후에 파워포인트로 붙여넣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다. 그는 표를 만들 줄 몰랐던 것이다. 엑셀로 만든 표를 파워포인트에 붙일 수 있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단말마의 한 마디의 욕이 흘러나왔다. 









밤 9시

열이 받은 채로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냥 집에 가면 열 받아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자료는 너무 많이 만들어 봤기에 어렵지도 않았다. Raw data를 뽑아 피벗을 돌리고 수식을 넣었다. 셀 서식을 맞추고 마무리했다. 메일을 보내고 한 장을 출력해서 팀장 자리에 올려 두었다.  



다음 날 아침.  10시 

팀장이 나를 부른다. 자료를 보더니, 수정 요청을 한다.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여자애들은 책임감이 없어. 너는 야근을 해서 완성해 놓고 보내 놓고 가는데, 여자애들은 일찍 퇴근하고 아침에 부랴부랴 만들잖아. 저게 뭐 하는 짓이냐?"


어이는 오늘도 없었다. 

"팀장님 그건 여자가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겁니다. 또 저녁 6시에 일 주셨잖아요. 약속이 있었나 보죠. 그리고 다른 직원 흉보는 걸 저에게 얘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존경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상사와 일하는 건 직장생활의 오복 중 하나야. 

 회사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 때문에 소중한 니가 무너지지 않도록 감정의 둑을 쌓아야 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건 니가 막을 수 없어, 그러니 최소한 니 감정과 생각이 오염되는 건 막아야지"

예전에 회사를 떠났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렇게 점점 회사의 감정과 개인 감정의 분리에 능숙해 지고 있었다. 






* 본 내용은 익명으로 받은 분노의 투고를 수정 편집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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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18년차
    2020.02.01 22:29

    실제 현장에 있는 팀장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런상태임에도 임기응변의 말솜씨로 상사/임원들에게서 인정을 받는다는게 현실입니다.
    아부하고 같이 골프치고 놀아주는...잘 맞춰주는 사람을 좋아해주고 챙겨주는...객관적인 성과/능력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회사의 문제죠.
    이러한 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겠죠. 그래서 다들 힘든거구요.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다른 절을 찾아 떠나야죠. 아니면참던가요.

    • 2020.02.21 15:10 신고

      안녕하세요.

      18년차시면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의 인간 군상들을 만나 보셨을것 같네요. 결국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들켜버리고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런 사람이 득세하고 인정받는 곳이라면 심각하게 떠남을 고려해도 될듯 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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