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13 _ 연결을 통해 기회를 찾는 남자. Todd Sample



▶ 요즘 어떻게 지내나?

최근에 베테랑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유아인 이라는 배우는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잘생긴 젊은 배우인줄 알았는데 연기를 너무 좋았다. 정말 나쁜 놈으로 나오는데 그 연기도 최고였다.  내가 한국 기업에서 일을 해 봤기 때문인지 너무 공감하고 몰입해서 통쾌하게 봤다. 안 보셨으면 꼭 보기 바란다.


▶ 회사 중심으로 커리어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달라.

나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1995년에 한국에 와서 안동에서 영어강사를 시작했다. 그 후 1998년부터 2006년까지 건국대학교에서 영어 강사일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투자경영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투자홍보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그 후 잠시 전시기획 일을 하며 키스헤링의 한국전을 소마 미술관에서 열었다. 2010년 한국전력공사 최초 외국인 직원으로서 해외사업전략 처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Well Dressed 라는 맞춤 정장 샵을 하다가 2015 7월에 그만 두었다.


▶ 한국에는 1995년에 안동에 와서 영어 강사를 시작했다. 서울이 아니라 안동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대학 기숙사에 한국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서울 같은 큰 도시 말고 다른 도시를 가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가르친 학생들에게 좀 미안하다. 그 때 나는 고작 22살 이었고 교육 관련해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가르쳐본 경험도 없어서 그렇다. 20년전 안동은 완전 시골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 대학원(KDI)에서 대학원과정을 수료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1998년부터 2006년 까지 건국대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2006년에 Kotra에 입사했다. Kotra는 최고의 스펙을 갖춘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함께 일하려면 더 배워야 했고 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5년부터 당시 산업자원부에서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고대와 KDI에서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나는 2007년에 KDI의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산자부에서 50%의 등록금 지원도 있었고 그 석사과정을 마쳐서 Kotra내가 이 회사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서울대, .고대 같은 곳에서 배우지 않았냐고 묻기도 한다. KDI는 정부의 기관이고 교수들은 정부의 많은 기관과 연결이 되어 있다. 회사 사람들과의 인맥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의 힘있는 사람들과의 인맥을 만드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외국인 이었고 한국에서 친구도 학교 선후배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인맥이 나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도 이유였다. 솔직히 말하면 전문가적 역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맥을 키우는 것이 나에게 더 중요했다.

 

▶ 대단히 전략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맞다. 한국에 와서 우연히 결정한 것은 없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알기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KDI의 대학원 과정에 함께 들어간 Kotra 사람은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막 절박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승진을 위해 대학원 과정을 들은 것 같다. 같은 조건이면 석사가 있는 사람을 승진 시키지 않겠는가?

 

▶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했던 일과 전공과 관련이 없다.

미국에서도 미술사는 인기 있는 학과가 아니다. 그저 나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선택했다. 그 전공으로 회사에 취직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인인 대학원 친구가 미술 전시 기획을 했다. 2010년에 KDI 대학원을 같이 다닐 때미술 쪽으로 뭔가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해보자라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 미술 전시 기획을 했다. 정말 힘들게 한 작가의 전시를 따낼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키스헤링 (Keith Haring)이었다. 올림픽 공원 안의소마미술관에서 2010년에 전시회를 열었다. 전공은 순수한 관심 때문에 선택했지만 이처럼 관련된 일도 했었다.


▶ 한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말을 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나?

다 비슷하게 하기 때문이다. 음식사업을 한다면 대부분 비슷한 것을 시작한다. 음식종류는 다르지만 경영에 관해서 하는 것도 그리고 하지 않는 것도 거의 비슷하다. 홍보나 마케팅 측면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내 입장에서 보기에는 당연한 것을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남들하고 다르게 하면 기회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 기회라는 말을 많이 한다. 백인이고 미국인이기에 기회가 더 많은 건 아닌가? 외국인이어서 한국인들이 다 거치는 치열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위로 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부분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외국인이다. 그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것을 최대한 활용할 뿐이다. 이것은 비즈니스에서 당연한 거다.

이태원만 가도 다양한 국적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곳에만 가도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기회를 찾아서 무역을 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한국인들이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을 조금은 무시하는 선입견이 있어서 한국인들이 기회를 오히려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피부색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은 것 같다.



 


▶ 지금 중점을 두고 하고 있는 일은 무언가?

지금은 한 달에 한번씩 열리는 네트워킹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같이 함께 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킹 모임은 한국에 없었기 때문에 더 주목 받는 것 같다. 사람들의 니즈는 있는데 서비스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도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인프라는 세계적으로 정말 대단하다. 동대문만 봐도 세계에 이런 곳이 없다. 동대문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옷 한 벌을 만드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인프라에서 무엇을,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를 찾아내서 연결하기만 해도 비즈니스가 된다. Wine on Wednesday 라고 해서 약 130~150 명 정도의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모여 모임을 갖는다.

 

▶ Kotra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

소개를 받았다. 아는 지인의 Kotra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 자리가 나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나를 추천해 주었다. 낙하산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인맥이 가장 중요한 취업의 요소인것 같다. Kotra에서 외국기업 투자유치 홍보를 담당했다. 직책은 전문위원이었다. 왜 한국에 투자하면 좋은가를 알려주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2006년부터 2010년 까지 일했다.

 

▶ 일이 좀 독특한데 했던 일의 목표나 KPI는 뭐였나?

Kotra 내에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는 팀이 따로 있었다. 나는 전략 쪽으로 집중했다. 외국과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한국 스타일로만 접근하면 외국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한국 것이 좋다, 최고다. 이런 식으로 자랑만 하니까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비교 분석이 약한 부분도 문제일 수 있다. 이렇게 그 팀이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에 있어서 조언을 하고 방향성을 잡는 일이었다.

 

▶ Kotra를 그만두고 한국전력으로 옮겼다. 이유는 무엇인가?

2010년에 Kotra를 그만둔 후 미술 전시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아는 지인이한국전력에서 사람을 뽑는데 조건이 너랑 딱 맞아이렇게 알려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나를 위한 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ecutive Advisor to the CEO of Kepco' 라는 자리였고, 한국전력 CEO의 외국인 특별 보좌관 이었다. 미국인, 남자, 30대 후반, 유창한 한국어, 한국 정부기관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이것이 조건 이었다. 나는 한전의 역사로 볼 때 최초의 외국인 직원이었고, CEO의 지시로 새롭게 만들어진 자리였다. 해외 원전과 관련된 정보가 있는 곳이다 보니 미국 FBI와 한국의 NIS을 통한 신원조회 과정만 5개월이나 걸렸다.

 

▶ 공기업은 상하관계가 확실하고 답답한 조직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는 어떤가?

한전은 훌륭한 기술력과 경험 때문에 첫 번째 원전 프로젝트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 때문에 두 번째 프로젝트를 얻을 수는 없을 거다.” 라는 말을 했었다. 한번만 한전과 일하면 갑, 을 관계 이런 부분을 따지기 좋아해서 파트너 들이 같이 일하기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회사에서 Todd Sample은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스펀지 같은 사람이었다. 모든 상황을 다 흡수해야 했다. 나는 외국인 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왜 그렇게 일하는지, 왜 이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지를 항상 생각했었다. 일도 일이지만 회사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었다. 나중에 책을 쓰든지 강의를 하든지 현상을 이해해야만 객관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어땠나?

한전에서 일할 때 부사장님과도 친하게 지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하고 의견을 교환하곤 했다. 그 때 부사장님이한전에서 얼마 동안 일하고 싶나?”라고 물었다.  나는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때까지 있겠다라고 답했다. 내 역할은 사람들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고치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것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Todd, 니가 부사장님에게 무슨 얘기를 해서 고치게 되면 일이 많아지니까 얘기 좀 하지 마라고 했다. “너는 어차피 외국인이고 계약직인데처장직급이다.  한국인으로 한전에 입사해서처장이 되려면 거의 25년이 걸린다. 너는 그냥 툭 하고 들어와서처장되고 매일 부사장님하고 얘기하지 않냐? 나는 부사장님 얼굴도 본적이 별로 없다. 좀 가만히 좀 있어라.” 라는 말도 듣곤 했다. 나의 행동을 나댄다고 생각했다.

 

▶ 그럼 Kotra에서 한전으로 이직한 이유는 뭔가?

Kotra에 있는 것에 불만보다는 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잡은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Career Path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도 <미술사 전공 → 한국에서 영어강사 → Kotra → 전시기획 → 한전 → 맞춤정장 샵 → 네트워킹 모임> 이렇게 다양하게 변해 왔다. 그런 과정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Kotra 입사 전에는 미래에 대한 관심, 커리어, 기회를 찾고 잡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일하면서 한국이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하고 기회가 많은지 알게 되었다. 내가 포지셔닝을 잘만 하면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 있고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묻는다. “기업 문화도 좋은 사기업에서 일하지 왜 공기업을 택했냐?” 나는 그 질문에 기회라는 측면으로 답했다. 힘들었지만 나는 한전최초의 외국인 직원이었다. 삼성전자에는 외국인 직원이 수 백 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전의 First 외국인 직원이라는 나만의 캐릭터나 포지셔닝이 확실히 되는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맞춤 수트 매장도 마찬가지다. 맞춤 수트도 외국인이 운영하는 곳도 없었다.

 

▶ 다른 매체에서 한국기업의 단점을 얘기한 적이 있다. 장점은 무엇인것 같나?

다른 나라에서는 큰 경쟁자가 있다면 그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때도 한국은그래도 우리가 힘을 모아 해보자라는 정신으로 뛰어든다 한전도 2009년에 UAE 원전 프로젝트를 따냈다. 같이 경쟁을 한 더 큰 회사와의 경쟁에서도 이런 정신으로 이겨냈다. 함께 힘을 하나로 응축해서 성취하는 정신은 높게 사고 싶다. 또한 포기하지 않는 정신도 대단하다. 국민성 자체에 이런 정신이 녹아 있는 것 같다. 한국이 그냥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지금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온 힘이 이것인 것 같다. 물론 군대문화에 근거한할 수 있다는 정신과 전략적인 스마트함이 발란스를 이뤄야 할 것 같다.

 

▶ Kepco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유는 무엇이었나?

Kotra 3년마다 해외로 순환보직을 한다. 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은 International 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Kotra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한전은 한국, 아니 한전밖에 몰랐다. 한전 사람들은 본인들이 갑이니까 본인이 을이 되는 자리를 만들지조차 않았던 것 같다. 회사를 떠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사건은 없었다. 회사를 위해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고치려면 일이 많아지니까 하기 싫다는 마인드가 꽤 많았다.

나는 정치적인 마인드도 없었고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나는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니 정치라는 것이 생기는 것 같다. 누가 봐도 이건 잘못된 것이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이해 못할 결정이 생기다 보니 그런 불합리한 것들을 계속 느끼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어찌 보면 이런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는 내 위의 사람 회사를 나온 것이다. 불합리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매일 보기도 싫었고 스트레스도 받기 싫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인 발전도 없었다. 아주 슬픈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한전에서의 생활은 이런 이유로 3년도 채우지 못했다.


▶ 그럼 회사를 떠나기 전에 회사에서 맞춤 정장샵 준비를 생각했었나?

맞다.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 한국인 파트너와 계속 얘기 했었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를 했었다.

 

▶ 전공 혹은 이전 회사에서 했던 일과 맞춤 정장 일은 별 관련이 없다.

사업을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한 기술 능력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의류업을 하던 사람이나 모델리스트를 했던 사람들이 이쪽 일을 많이 한다. 그런 분들은 옷에는 전문가지만 비즈니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비즈니스를 잘 알았다. 옷을 만드는 공장은 전문가다. 문제가 생기면 알려준다. 원단, 단추, 공장 공급처는 많다. 내가 테일러드 수트의 자체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것을 아는 한국인 파트너가 있었고 홍보, 마케팅 쪽의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 맞춤 정장 샵은 프렌차이즈 형태도 많다. 어떤 기회를 보았나?

요기요 같은 배달앱이 있듯이 ‘Bird Riders’ 라는 외국음식 전문 배달 업체가 있다. 물론 전화하면 외국인이 전화를 받는다. 이렇듯 시장에는 틈새가 있다. 제가 이있었던 테일러샵의 일차 타겟은 외국인이고 둘째가 한국인이다. 나의 한국인 타겟은 옷을 엄청나게 잘 입는 사람보다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단지 옷을 맞춰주는 것뿐 아니라 전체적인 이미지와 수트를 입는 문화와 생각을 판매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수트를 입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수트를 입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그 시장은 고가와 저가로 나뉘어 있다. 고가는 부담스럽고 저가를 선택하기에는 이미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주요한 타겟이다. 시장이 늘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고객이 줄어 들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Well Dressed를 떠났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2015 7월에 일을 그만 뒀다. 함께 일하는 분은 재능이 있고 유능한 분이었다. 물론 일에 대한 자존심도 강했다. 나와 함께 일하면서 Well Dressed의 모든 관심이 나에게 쏠리면서 본인은 약간 소외되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러는 과정에서 의견차이가 생겨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Well Dressed가 나의 네트워크와 브랜드를 좀더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 회사를 떠난 후의 충격은 겪어봐야만 안다. 고정적으로 나오는 수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두려움까지 느끼게 한다.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나 상실감도 심한 경우가 있다. 본인의 경우는 어땠는가?

물론 나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그래서기회라는 것에더 포커스를 맞추려고 한다. 나는 김밥천국을 운영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들과는 다르게 할 것이니까. 작년에 아는 지인이 책을 냈다. 7년간의 항공사 일했던 경험을 책으로 냈다. 그 친구의 출판 기념회를 내가 있던 샵에서 했다. 그 기념회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샵이 홍보가 되었다. 꼭 옷 가게에서 옷만 파는 것이 아니다. 옷가게 에서 옷만 판다는 생각을 버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고 알릴 수 있었다. 담배회사도 담배 피우라고 대 놓고 광고하지 않는다. 홍보와 마케팅을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에 녹아 들게 해야 한다.

 

▶ 회사를 나온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나?

스트레스는 없이 홀가분 했다. 다만 회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좀 있다. 한전은 대단한 회사다. 할 수 있는 역량도 크다. 더 많은 일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알면서도 그 기회를 잡지 않는 것 같다. 직원들이 말로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회사라고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가능성이 넘치는데 활용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한국인의 강점은 뭐라 생각하나?

한국은 아직도 여전히 Potential이 정말 크다. 많은 미국사람들은 미국밖에 모른다. 미국이 전부인줄 알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말 조금밖에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정보와 시스템 등의 인프라가 너무 잘 갖춰져 있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다. 많은 나라로 연수, 여행, 공부를 간다. 작은 나라지만 열려 있는 나라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해외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수 있는 기술과 경험이 있다. 세계에서 원전을 지을 수 있는 나라는 몇 개 밖에 없다고 한다. IT 인프라와 시스템, 교육 시스템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장점을 너무 안보는 것 같다. 아직도 후진국들이 한국을 모델로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와서 배우는 곳이 많은 것 봐도 그렇다.

 

▶ 젊은 청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봤다. 안정을 선호하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에 entrepreneurship (기업가 정신)이 많았던 시절이 과거에 있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둔화 되면서 그 정신이 줄어 드는 것 같다. 기회가 줄어드는 안에서도 틈새는 있을 것 같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준비와 인맥 그리고 운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기회에 대한 개인의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남들이 늘 하는 것처럼만 하면 그 기회는 줄어든다.

나는 아들이 둘 있는데 첫째가 고1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아들에게 외국어 특히 중국어의 중요성, 그리고 사회를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신문, 책을 읽고 사람을 많이 만나라는 말을 한다. 자신감도 매우 중요하다. 능력이 있어도 자신감이 없으면 기회는 줄어든다. 자신감, 인맥, 기회를 보는 시각은 학교에서만 기를 수는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Will Power (하고자 하는 의지)는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를 이기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 힘들게 노력해서 회사에 들어와서 금방 지치고 좌절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회사'와 '일' 모두 본질은 선택이다.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 나는 신의 직장에서 두 번이나 나왔다. 그건 개인의 문제다.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책임 질 수 있는 힘을 길렀다면 나와도 될 것 같다. 그게 없다면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그 힘을 기르기를 바란다.

 

▶ 누군가 결혼해서 자녀도 있는데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데 자신이 뭘 잘하는 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은 개인만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가 침체이고 중국이 밀고 오는데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회사도 많다. 혼자서 자신의 방향성 못 찾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모를 수도 있다. 지인에게 물으면 객관적으로 날카롭게 실제적인 얘기를 해 주는 경우는 적다. 답은 내 안에 있지만 그것을 못 찾겠다면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정말 객관적으로 제대로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좋겠다.

 

▶ 회사를 그만두고 무엇으로 벌어서 먹고 사는지를 궁금해 한다. 벌이는 어떤가?

작년 맞춤 정장 샵을 오픈 하자마자 세월호 사건으로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힘들었다. 큰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는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했었다. 지금은 한국에 어느 정도 네트워크가 있다 보니 그것을 통해서 소개를 시켜 주거나 홍보 등의 컨설팅을 해 주는 일을 하려고 생각 중이다.

또한 나를 돕기를 원하는 대학생과 함께 나의 브랜드를 더 잘 만들어 줄 블로그를 준비하고도 있다. Life Style brand에 대한 블로그가 될 것이다. 또 아프리카 TV에서 개인방송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이 나와서 스타일과 맛집에 대해서 말한다면 독특할 것이다. 니즈를 파악했다면 그것을 남들과 다르게 보여주고 공급해 준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네트워킹 모임도 지속하고 있다. “Make something out of nothing” 이다. 장소만 있고 약간의 음식만 있어도 모임을 만들 수 있다. 재미있다면 다음 모임은 더 커진다. 지금은 150명까지 커졌다. 네트워킹 모임은 혼자 와야 한다. 뻘쭘함에 대한 두려움도 혼자 극복해야 한다. 나에게 집중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 회사를 그만두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은?

어떻게 “Make something out of nothing” 할 것인 것 고민을 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 자신에게 더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면 자신의 부족한 영어실력, 어제 출장에서 늦게 돌아온 것을 먼저 말한다. 사람들은 발표자의 문제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냥니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자체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듣는 그런데 남을 더 많이 의식하다 보니 자꾸 양해를 구한다. 당신도 당신에게 집중해야 하고 나도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발표자는 발표에 집중하고 듣는 나는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들으면 되니까 말이다. 회사에서도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만의 브랜드와 기회를 찾기 위해 “Keep focus on ME” , 자신에게 더 많이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미리 경험해 보는 서비스, 내가 원하는 나, 워너미 Wanname.kr

 

▶ 살아오면서 후회스러웠던 것은 없었나?

건국대학교에서 8년동안 강사를 했던 시간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9시 출근, 2시 퇴근 하면서 쉽고 나태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자기개발을 하지 못했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내가 시간을 그냥 흘려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강사로서 가르쳤던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그 시간을 다르게 활용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 인생의 모토가 있다면 무엇인가?

남들과는 다르게. 요즘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유명한 사람을 팔로잉해서 보고 있다. 그들이 유명한 형식이나 주제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그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꼭 사무실이나 책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를 보는 팔로워들이 천 만명 이라면 회사로부터 광고비를 받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적중률이 더 높은 광고 채널이 될 수도 있다.





▶   타드샘플. 그는 전략가 였다. 어느것 하나 우연히 결정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또한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기회를 찾아내는 탐험가 였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점을 찾아내서 개발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파란눈을 가진 외국인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것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용기가 있다면 회사를 떠나도 좋다고 말했다. 한국말을 잘 하지만 미국인 특유의 마인드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을 나와서 자신에게 보이는 기회를 연결하며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그의 길을 항상 주목해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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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익명
    2015.09.07 14:41

    비밀댓글입니다

    • 2015.09.07 14:44 신고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의 인터뷰도 계속 관심있게 지켜봐 주세요. 세상이 참 좁네요. 만나보신 분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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