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24_ 28살. 회사를 떠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쫓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8.16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

1989년생으로 현재 28.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벤처중소기업학을 전공하고 2016년 올 2월에 졸업을 했습니다. 현재 808코인노래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벤처중소기업학은 무얼 배우는 곳인가?

2학년 때까지는 경영학과와 같은 커리큘럼이다. 3학년부터는 창업아이템 개발, 인터넷 창업, 비즈니스 디자인 실습 등을 배운다. 사업계획서를 쓰는 수업이 대부분이다.

 

▶ 벤처중소기업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모의고사를 보고 점수에 맞춰서 학교를 몇 군데 골랐다. 문과는 선택이 폭이 넓지 않아서 회사에 취업할 생각을 했고 취업을 위해서는 경영전공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남들과 비슷한 선택의 시작이었다. 취업시장에 서울대 경영학과도 많은데 내가 중위권대학 경영학과를 나와서는 차별화가 안될 것 같았다. 그것이 선택의 이유다.

 

▶ 대학교 생활은 어땠나?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군대 가기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 처음에 대학에 입학해서는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것처럼 심도 깊은 논쟁을 할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고등학교 때와 똑같았다. 수업에 실망을 많이 해서 학과 공부를 멀리하고 힙합동아리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험성적이 잘 나올리 없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미친 듯이 공부했다. 학점 때문이었다. 복학 이후 계속 장학금을 받았고 동시에 스타트업 인턴십 등을 학교 다니면서 많이 했다. 창업이라는 것이 책상에서 글이나 말로 배우는 것보다 실제로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었다.

 

▶ 스타트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계기는?

학교를 다닐 때 주제를 선정해서 뽑히면 해외에 기업 리서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대회에 참가했다. 나는해외의 스타트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팀을 꾸려서 홍콩에 있는 스타트업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당시 회사는 독일 회사인로켓인터넷의 홍콩지사 였다. ‘로켓인터넷은 전세계의 성공한 IT 비즈니스의 카피캣을 만드는 회사였다. 예를 들면 이베이와 똑같은 모델을 유럽에 만들어서 성공시킨 후 매각하는 것 같은 것이다. 이런 포트폴리오를 전세계적으로 수백 개 정도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똑똑하고 좋은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허름한 공간에 모여서 정말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 곳의 사람들은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 출신 혹은 현지 국가의 최고 대학을 나온 사람들 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대기업을 가면 저렇게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작은 회사에서도 훌륭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성공하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바로 조사했던 회사의 한국 지사의 인턴십에 지원을 해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2011년 대학교 3학년 때였다. 학과 자체가 6개월의 인턴십은 필수였기 때문에 더 좋은 기회였다. 홍콩에 가서 스타트업을 조사한 것이 지금까지 내 인생을 만든 계기였던 것 같다.

 

▶ 그 이후의 회사 생활 커리어는?

우선로켓인터넷이 설립한글로시박스라는 곳에서 마케팅 일을 6개월 간 했다. 창고정리, 짐 나르기 같은 허드레 일부터 고객 응대 전화, 그리고 소셜 미디어 관리 등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그냥 맨땅에 헤딩하면서 일하고 배웠다. 그 후굿닥 (Goodoc)’ 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제품 출시 한달 전에 합류했고 내가 했던 일은 Door To Door 영업이었다. 흔히들 빌딩타기라고 하는 영업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건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병원에 들러서 서비스 소개하고 의사들을 가입시키는 일이었다. 런칭 후에는 앱 마케팅을 했다.

 그 이후는 인턴을 했던글로시박스에 재 입사 했다. 화장품 브랜드를 만나서 파트너십을 맺는 영업을 했다. 대표님의 가치관을 존경하기도 했고 일도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었다. 그러다 보니 성과도 좋았다. 그 후 친구의 추천으로캐시슬라이드로 옮겨서 광고영업 일을 했다. 그 때도 정말 영혼을 쏟아 부어 일했다. 생일날에도 밤을 넘어 그 다음날 퇴근 할 정도였다. 당시는 열과 성을 쏟아 부어서 일을 했고 성과도 좋았고 일하는 성취감이 컸다. 입사할 때 연 매출이 약 200억원 이었는데 1 3개월 동안 일을 하고 나올 때는 연 매출이 400억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모바일 광고시장이 커가는 중이었기에 스타트업 으로서는 급격한 매출 확대가 되는 J커브시기를 직접 경험해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후 지인의 소개를 통해스타일쉐어로 이직을 했다. 그 곳에서는 모바일 광고 사업개발 일을 했다. 상품설계, 시스템 설계, 영업의 일을 했었고 약 1년간 근무했다. 2011년부터 2015 10월까지 총 5년을 회사 생활을 했다. 회사를 떠난지는 9개월이 되었다.

 

▶ 2016년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한 건가?

맞다. 하지만 휴학을 한 3년 정도 했다. 그 기간 동안 회사에서 일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한 건스타일쉐어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곳의 대표님도 대학교를 다니면서 창업을 한 경험이 있어서 내 처지를 잘 일기에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 인간적으로 너무 자주 이직을 한거 아닌가? 왜 이리 많이 옮겼나?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직은 좋은 Offer를 받고 나를 발전 시킬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던지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옮겼다. 회사가 싫어서 돈을 쫓아서 움직인 건 아니었다. 나는 나중에 반드시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많은 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러려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바닥부터 해 보는 것이 필요했다. 또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창업을 경험한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만나고도 싶었다. 창업정신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일반 기준으로 보기에는 다소 잦은 이직인 것 같다.

이직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 5년 동안 5개의 회사를 다녀보니 어느 정도 눈을 좀 뜨게 되었다. 스타트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느 정도 단계의 스타트업은 어떻게 하는 구나 이런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말하자면 잘하는 회사, 못하는 회사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조금은 갖게 되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겠구나하는 나름의 기준도 생겼다.

 

▶ 스타트업 회사 선택의 기준은?

나는 대표님을 가장 많이 본다. 스타트업은 대표가 전부라고 말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기에 대표의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선택의 기준이다. 그 외 나머지 조직문화 등은 참조만 한다.

 

▶ 스타트업은 자율 출퇴근제, 영화 보는 날, 마음껏 책 구입하게 해 주고 하는 등의 파격적인 복지혜택을 주는 곳이 많다. 직접 다녀보니 어떤가?

실제로 그렇다. 대기업에 있는 분들은 실제로 그럴꺼라 상상을 못하시더라. 내가 일할 때도 인터뷰를 보러 온 사람들이 정말 자율출퇴근제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만큼 대기업과 다른 파격적인 복지는 젊은 친구들이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인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복지혜택이 좋은 업무 성과로 100%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복지혜택은 채용을 위해 미디어에 노출하고 보여주기 위한회사 안 Life’에 관한 문제다. 하지만회사의 Life’가 좋아서 들어온 사람은 스타트업이 조금 힘들어져서 혜택을 축소하면 힘들어한다. 그리고 복지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성장을 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던져서 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최고의 복지는 지속적인 회사의 성장 그리고 뛰어난 동료들이라고 생각한다.

 

▶ 가장 잘 맞았던 회사는 어디인가?

일했던 회사는 모두 나와 잘 맞았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맞았던 곳을 꼽자면 캐시슬라이드였다. 나의 일하는 성향과 업무가 잘 맞았기 때문이다. 나는 Data에 근거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캐시슬라이드의 창업자는 컨설턴트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런 DNA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서비스의 특성상 수 많은 Data가 쌓이는데, 성별, 나이, 지역, 시간, 상품별, 클릭율, 반응율 등 많은 Data mining 해 낼 수 있었다. 내가 했던 일은, 그 분석한 데이터를 근거로 인사이트를 찾아서 더 많은 더 클릭율 높은 광고를 수주하는 것이 중요했다. 담당 광고주들 중에 쿠팡, 11번가 같은 회사들이 있었다. 그런 이커머스 회사들은 광고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Data를 얻고, 노하우를 만들어가길 원했다. 결국 생각해 보면 나와 잘 맞는 회사라는 것은 회사에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인 것 같다. 회사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개인의 성취감도 높아지고 그것이 회사의 성과로도 나타나는 것 같다.








 

▶ 성취감이나 보람을 가장 많이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

영업에 대한 퍼포먼스가 좋을 때가 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그 일이 좋은 성과로 바로 나왔기 때문이다. 캐시슬라이드 다닐 때에도 새벽2~3시에 퇴근하면서도 즐거운 적이 많았다. 낮에는 영업을 하고 밤에는 광고 운영 오더를 넣고, 주요 클라이언트를 위한 광고 제안서를 썼다. 밤 늦은 시간에 퇴근해도 새벽 공기가 달게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 그런 성과에 대한 보상은 있었나?

당연히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까지 하면 대기업 직원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 스타트업은 개발자, 디자인, 기획, 영업분야로 크게 나뉜다. 개발, 디자인은 뭔가 스페셜티가 있어 보이는데 지금 본인이 해온 일을 뭔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잘 맞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잘 맞았다. 내가 개발이나 디자인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마케팅을 하고 싶었고 마케팅을 제대로 하려면 현장과 영업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업도 해보겠다고 했고 해보니 잘 맞았다. 처음 할 때는 맨땅에 헤딩하는 영업이었다. 문 열고 들어가서 인사하고 우리 회사 제품 홍보하고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었다. 당연히 10번 들어가면 한번 얘기를 들어줄까 말까 한다. 솔직히 Door to Door 영업은 체력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든 것이 사실이다. 나는 나와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그것을 설명해 주고 설득하는 것은 너무 잘 맞았다.

 

▶ 일반적인 남자의 경우 군대 다녀와서 정신차리고 공부하고 스펙쌓고 해서 27~28살쯤에 취업을 한다. 그런 루틴을 당연히 쫓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20대 초반, 군대를 갓 전역한 후 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해외 스타트업 조사를 마치고 와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꼭 그런 똑같은 인생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하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서는 완전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기업에 가지 않아도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들과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스타트업에 첫 발을 내딛고 인턴을 할 때도 팀원분들은 IBM, 아모레 퍼시픽, NHN 등 국내외 유수의 기업을 퇴사하고 창업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더 확실해 졌다. 또 그 대표님들로부터 들은 대기업은 굳이 청춘을 모두 바쳐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미생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얘기도 해 주었다. 그런 경험과 조언을 듣고 내 성향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더더욱 대기업을 고집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 부모님은 대기업에 들어간 엄친아들과 비교하지는 않았나?

어머님께서는 내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평범한 인생을 살길 원하셨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부터 이름도 모르는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 학교 공부를 등한시 하고 일하는 것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하지만 내가 열정적으로 보람차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드렸더니 이제는니 인생을 살아라며 인정해 주셨다.

 

▶ 회사 다닐 때는 어떤 사람이었나?

회사를 여러 번 옮기면서 그 때마다 사람이 변했던 것 같다. 아니 회사에 맞추어 진화했던 것 같다. 가장 최근의 모습으로 말하면 나는 다소 모난 사람이었다. 회사에 나를 맞추는 둥글둥글한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스타일을 꺽진 않지만 내 일만은 끝내주게 책임지고 잘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동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대표님들은 좋아해 주었다. 자신이 고민하고 해야 할 일을 직원인 내가 고민하고 심지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사업에 대한 욕심이 컸기에 일반 직원보다는 대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은 좀 특이한 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 스타트업 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의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 할 때부터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회사가 특히, 작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그게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이유 중 하나다. 이제 28살인데 30대가 되어서는 이 산업, 저 산업을 전전하며 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30대부터는 한 분야를 정해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려면 2년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이 실패를 해도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와서 사업을 시작했다.

 

▶ 회사를 떠날 때의 기분은 어땠나?

당연히 좋았다. 많이 지쳐있을 때라 홀가분 했고, 이제 매일 정해진 곳으로 출근하는 루틴한 삶이 끝난다는 게 좋았다.  조금 과장하면 그 동안 바랬던 일제 패망을 바랬던 주권피탈 당한 조선해방 기분이랄까? 더 좋았던 것은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그 인지부조화의 시간이 끝난다는 것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친구들에게도난 사업을 할 거야라고 말을 많이 했었다. 그 시작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 보통은 회사를 다니면서 뭔가를 해보고는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뭘 잘하는지 잘 못 찾는다. 본인의 경우는 어땠나? 자신의 욕망하는 걸 찾는 방법이 있나?

원하는 일을 한방에 찾는 매직 솔루션은 없는 것 같다. 20대 초반부터 나도 계속 찾아 헤맸다. 그리고 아직도 찾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건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일 저일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 봤다. 그리고 불확실성에 나를 많이 노출 시켰다. 그래서 회사도 많이 옮겨 다녔던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던지고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적응하는지를 지켜보기도 했다. 굳이 말하자면 억지로 나를 다른 환경에 던진 것이 내가 원하는 걸 찾는 가장 주요한 방법인 것 같다.

 

▶ 스스로를 지켜봤다는 말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내가 잘하는 것,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한 쉬운 방법은 과거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지금의 복잡하고 답 없는 생각에서 벗어나 과거 나의 행동을 돌아본다. 과거의 행동이 나를 말해주는 가장 객관적인 Data기 때문이다. 현재의 생각은 사실 그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너무 따져야 할 변수도 많고 생각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행동은 나의 생각과 욕구 현실이 모두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더 정확할 수 있다.

 

▶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알려달라.

코인 노래방이다. 2016 3월에 오픈했다. 비즈니스적으로 말하면 시설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장소에다가 기계를 깔아놓고 돈을 버는 일이다. 직장생활연구소의회사를 떠난 사람들인터뷰 중에 PC방 사장님 얘기가 기억난다. 그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PC 방 대비해서는 시설의 민감성이 조금 덜 한 것 같다. PC 방은 계속 시스템이나 사양을 업데이트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한번 차려 놓고 나면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무인으로도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정확한 입지를 분석하고 찾는 것이 준비의 80% 이상이다. 나머지 20%는 운영과 거래처 등이다. 낮에는 무인으로 운영을 하고 밤 10시 이후부터는 출근해서 매장관리를 한다.

 

▶ 코인노래방이라는 아이템을 선정하게 된 계기는?

퇴사를 하고, 취업과 창업, 프리랜서 3가지 방향에서 고민을 했다. 더는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창업의 선택을 하기로 했다. 창업에서도 생계형 창업과 기술 창업 중 생계형 창업을 선택했다. 이때 판단 기준은 빠른 현금 흐름 (Cash flow)였다. 기술창업은 현금을 창출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 뿐 더러 아이디어를 검증하며 사업을 계속 만들어나가기에 현재로서는 위험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준비를 위해, 생계형 창업을 선택했다.

코인 노래방을 하기 전에는 셰어하우스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나와 있는 셰어하우스 스타트업을 한달 동안 연구했다. 기본적으로 이 업의 본질은 임대업이다. 최악의 케이스는 임대가 안되고 은행에 대출이자만 내는 거다. 어차피 나는 무주택자니까 안되면 내가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던 중에 코인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에게 정보를 듣고서 셰어하우스와 코인노래방을 비교해 보았다. 투입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한데 수익률은 코인노래방이 훨씬 좋다고 판단했다. 기왕이면 투입되는 시간과 돈 대비 해서 수익이 잘 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코인노래방을 하게 되었다.

 

▶ 생계형 창업. 고려했던 우선 순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

우선 순위는 두 가지 였다. 첫째 현금창출이 중요했다. 직장을 그만 두었지만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벌어야 했다. 두 번째는 시간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나 스스로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도 선택의 기준 이었다. 기본적으로 직장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팔아 그것으로 돈을 번다.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본을 가지고 돈을 벌고 싶었다. 이 두 가지를 가장 고민했던 것 같다.

 

▶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는데 코인노래방이라니 좀 뭔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스타트업 대표를 꿈꿨던 것 아닌가?

노래방 사업은 사실 현금 창출 (Cash Flow) 만을 위한 일이다. 안정적인 Cash Flow를 확보 하고 기술창업을 하고 싶었다.  지금 노래방 운영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다. 회사를 나와서 밖에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스타트업을 바라보니 더더욱 그렇다. 노래방은 기기를 팔거나 하면 그래도 투자금을 일정부분 건진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인건비로 다 나가서 망해도 회수할 수 있는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코인 노래방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남는 시간에 아이템에 대해 고민하고 찾고 있다.  준비가 되면 기술창업을 시작할 것이다. 코인노래방을 평생 할 사업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 입지가 중요한데 본인은 어떻게 찾았나?

여러 가지 기준을 세웠다. 행정구역상의 인구, 타겟 나이 인구수, 경쟁 코인 노래방의 유무, 상권의 크기, 학원의 개수 등을 따져 봤다. 코인 노래방 이용 층이 중 고등 학생이 많기 때문에 그 타겟의 숫자가 가장 큰 고려요소였다. 그래서 기준을 정한대로 서울 경기 지역에서 60여개 정도의 Site를 엑셀에 입력해 놓았다. 그 기준에서 중요도에 가점을 부여하며 하나씩 지워나갔더니 4~5개 정도가 남았다. 그리고서는 그 동네로 가서 부동산을 돌면서 하나씩 찾아 봤다.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는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방한복 입고 하루 종일 건물 앞에서 통행량을 계수기로 세서 기록 후 비교 분석까지 했다. 결국 타겟 고객의 통행량 대비 임대료가 가장 저렴한 지역을 선정했다.

 

▶ 중요한 질문이다. 얼마나 버나?

회사 다닐 때 보다 많이 번다. 2곡에 500원 하는 사업 치고는 나쁜 스코어는 아니다. 보증금, 노래방 집기, 비품, 인테리어 모두 포함해서 차리는 데는 1억 정도 들었다. 지난 5년간 스타트업 회사에서 모은 돈으로 대출 없이 차렸다. 다녔던 곳이 아주 신생 기업이 아닌 Series A~B 정도의 투자를 받은 곳이었고 적당한 급여와 영업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도 받았다. 또래에 비해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고 또 허투루 쓰지 않고 저축을 많이 했다. 28살에 1억 저축은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 생각보다 많이 번다. 잘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코인 노래방은 최근에 생긴 신규 산업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최근 3년 전부터 다시 붐이 일기 시작했다. 거시적인 트렌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먼저, 오디션 프로그램의 덕이 크다고 본다. 또 십대들의 꿈 1위가 연예인 인 것도 이유인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라이프가 일상이 되었기 때문인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하고 술 먹고 떼로 몰려가서 노래하는 걸 모두 즐거워하지는 않는다.

또한 지금 같은 불황 시대에 500원가지고 사람들이 시간을 보낼 곳이 없다. 음료수 하나 물 하나도 못 사먹는다. 그런데 코인 노래방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00% 현금 장사인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 사업아이템은 어떻게 찾고 있나? 특별한 방법이라도?

회사 밖에 나오니 기회가 더 생기는 것 같다. 노래방 인테리어를 할 때도 견적을 내는데 정보의 비대칭이 너무 심했다. 거의 사기 당할 뻔도 했다. 상가건물을 구할 때도 부동산은 상권분석에 근거한 제안이 아니라 그냥 경험과 감에 의존하며 중개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계약만 만들어내기 위해 급급해하고 있었다. 상권분석을 하는데도 쓸만한 상권분석 솔루션이 없었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솔루션이 프로세스에서 새로운 아이템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업아이템이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혹은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이런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내가 직접 불편을 많이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은 무언가?

지금 두 번째 점포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 2016 3월에 오픈한 곳을 지난 달에 4개월 만에 시설, 영업권리를 통째로 파는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권리금도 받았다. 투자한 것 대비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9월까지만 내가 운영을 한다. 지금 신규 점포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다.

 

▶ 일상은 어떤가? 루틴을 알고 싶다.

가게는 오전, 오후에는 무인으로 운영을 한다. 10시에 가게로 나가서 일을 한다. 10시 이후 가장 중요한 건 청소년 출입 통제다. 잘못하면 영업정지에 벌금까지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11시 이후부터는 관리실에서 CCTV로 이상 유무만 확인 한다. 그러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사무적인 일을 한다. 그리고 새벽 3시에 퇴근을 한다. 보통은 오후 12시쯤 일어나서 10시 까지는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운동을 하거나 사업아이템을 찾거나 책을 본다. 때로는 스타트업에 다니는 전 동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면서 사업에 대한 논의도 한다. 남는 시간은 대부분 신규 사업을 찾는데 시간을 보낸다고 봐야겠다.

 

▶ 점포를 하나 계약하는 것, 인테리어 하는 것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대 후반에 이런 일을 하기에 힘들지 않았나?

왜 안 힘들었겠나? 너무 너무 힘들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탈모증까지 생겼다. 가장 힘들었던 건 같은 상가에 다른 사장님들에게 엄청난 견제를 받았을 때다. 건물 관리하는 분은소방공사를 똑바로 했냐?’부터 식당 사장님들은 시끄러워서 못살겠다고 컴플레인도 심했다. 또 윗층에 있는 일반 노래방 사장님은너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며 반 갈구기도 했다. 물론 일반 노래방과는 고객층부터 영업 방법까지 모두 달랐는데, 사장님 입장에서는 내가 그냥 밉고 싫었던 거 같다. 공사 못하게 하겠다고 으름장도 놓고 하는 과정을 이겨 내는 것이 힘들었다. 내 편이 아무도 없었다. 회사라면 혼자라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 준비를 하면서는 혼자라는 것, 그리고 처음 한다는 것, 나 혼자 다 처리 해야 한다는 것이 모두 너무 너무 힘들었다. 상가 주인들, 다른 사장님들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 나이가 어린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어리다고 무시하려 하고, 어리다고 덤탱이 씌우려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어려서 니가 모르나 본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보통은 나이가 들면서 아는 것도 늘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반 이상은 어린 나이에 이렇게 도전하고 일하는 것에 대해 좋게 봐주었다.

 

▶ 지금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성취감은?

아침에 일어날 때다. 직장인은 너무 몸이 힘들 때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가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그렇지가 않다. 나에게 시간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감이다.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것 아닌가? 또 하나는 내가 매장을 열고 장사가 잘 되고 있을 때 매각한 것이다. 조금 오버하면 스타트업에서 Exit를 한 기분인 것 같다.

 

▶ 장사가 잘 되고 있었는데 너무 빨리 매각한 것 아닌가?

성격이 조금 급한 편이다. 빨리 더 많이 돈을 벌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코인노래방은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다. 더 크게 더 많이 하고 싶었고 성사된 계약 금액 또한 투자금 대비 나쁘지 않았기에 잘 한 선택이라고 본다.


▶ 쫓고자 하는 가치나 목표가 있다면?

솔직히 질문서를 받았을 때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 최근에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고민해 본다면자유를 쫓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시간에 얽매여서 쪼들려서 살고 싶지는 않다.

 

▶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경제적 자유인뭐 그런 건가?

큰 맥락에서는 그렇다. 나는 래퍼 도끼(Dok2)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끼와 같은 케이스가 되고 싶다. 나는 어릴 적 어머니 없이 기초 생활 수급자로 남들보다 어렵고 힘들게 자랐다. 어려웠지만 지금의 이런 과정을 거쳐서 떳떳하게 시간과 돈에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아니 증명해 보이고 싶다.

 

▶ 스타트업 5년동안 남은 자산은?

당연히 같이 일했던 사람들, 동료들이다. 지금도 자주 만나는 동료들이 많다. 앞으로 내가 사업을 그만큼 열정적으로 또, 같은 목표를 향해 일을 했던 사람을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회사에서 만난다는 건 큰 행복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현재의 회사가 답답하다고 한숨만 쉬지, 무언가를 바꾸려고 행동하지 않는다. 혼자 노력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또 고용불안에 떨면서도 무언가 안전장치를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좋은 사업 아이템을 만나도 실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자주 만나는 동료들은 모두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실행하려는 사람들 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모난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모난 사람은 또 다른 모난 사람을 잘 알아보고 또 잘 맞는 것 같다. 아웃 라이어 같은 동료와 대표님들을 많이 만났던 것도 가장 큰 자산이다.

 

▶ 최근 관심을 가지는 사업템은 뭔가?

어떤 사업 아이템이라고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구체적인 것은 찾고 있는 중이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전에 현금 흐름을 좀 더 안정 시켜 놓고 싶다. 그게 우선인 것 같다. 사람들 두 어명과 스타트업을 시작해도 일년에 1억은 그냥 인건비로 없어진다. 현금흐름이 탄탄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아주 초창기에 인건비를 충당하느라 외부 용역 일만 하다가 시간만 보내고 없어지는 곳도 부지기수다. 너무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있으니 다른 장사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스타일쉐어에 있을 때 많은 온라인 쇼핑몰 관계자를 만났다. 그래서 인지 온라인 쇼핑몰에도 관심이 많다. 코인 노래방 같은 경우는 돈을 벌어도 산술급수적으로 번다. 지역 내 상권 또 오프라인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이 있다. 대상을 전국, 전세계로 할 수 있어서 규모가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현재는 그저 관심을 가지고만 있는 상황이다.

 

▶ 또래 친구들이 뭐라고 하는가?

지금 취업한 친구들은 그저 놀란다. ‘니가 학교 다닐 때부터 사업한다 한다 하더니 결국 하는 구나라는 반응이 가장 많다. 대단하다며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취업한 친구 중 증권사를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특히 나를 부러워한다. 돈보다도 시간적 자유에 대해서 특히 더 부럽다고 말한다. 자신은 <, , , , , , >으로 일을 하는데 나는 오전 오후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하고 누구의 간섭과 지시가 크게 없으니 그런 것 같다.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을 안 한다. 친구들이 먼저 연락을 하기도 불편해 하고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다른 길을 가다 보니 대기업 취업 준비하는 애들과는 얘기할 만한 공통분모가 없다.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 입사한지 일년 된 신입사원 친구가나도 너처럼 자유를 가지고 돈을 벌고 싶다. 이런 일 하려고 미친 듯이 스펙 쌓고 해서 회사를 들어온 것이 아닌데…” 라고 후회한다면 뭐라고 말해 주겠나?

그렇게 물어본 친구는 아직은 한 명도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물어 본다면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해보는 것을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이렇게 노력했나?’라고 후회가 된다면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쉽다. 일이 지루하다고 의미 없다고 느끼는 것은 전체 중에서 극히 작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서 본인이 가치를 찾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업 재무팀에서 전표처리만 하는 사람이 작은 기업으로 가면 재무회계를 혼자 다 해야 한다. 지루하다고 느낄 틈도 없을 것이다. 일을 크게 보는 눈도 생기고 일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알게 될 수 있다. 작은 회사가 대기업에 비해서 주목 받을 기회가 더 많을 수 있다.


▶ 28살에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가 10개월만에 찾아와서 회사를 때려 치우겠다고 말한다면 뭐라고 얘기하겠는가?

때려 치우고 싶다면 때려 치워라원하는 일을 한번 해 봐라여태껏 원하는 대로 해 본일이 뭐가 있냐그렇게 말하고 싶다그런데 우스운 건 그런 친구들에게 ‘니가 원한다면 때려치우라고 말해주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냐고 나에게 다시 묻는다대부분이 그렇다그럴 거면 말을 하지를 말던가 말이다내가 겪어 보니 충분히 준비된 사람에게 사회는 지옥이 아니다그건 어쩌면 자본가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공포의 울타리일지 모른다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 그럼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을 추천해 주고 싶나?

, 정말 절박한 친구라면 그리고 내 말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라면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직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대기업이 주는 장점 중 포기하기 힘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연봉, 그리고 사회적인 위치, 인지도도 중요한 부분이다. 당연히 부모님도 반대할 것이다.


▶ 대학교 3학년, 군대 다녀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후배가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나도 당시에는 길이회사취업밖에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 취업하지 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회사 밖에도 길은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장사를 할 수도 있고, 책을 쓸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한 가지 길에만 목매지 말라고 해주고 싶다. 너무 급하게 취업에만 목매지 말고 다른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책상에서 배우는 것보다 경험이 더 중요할 수 있다.





 


▶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외롭다는 것이다. 회사에 있을 때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외롭다는 것을 느끼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와 보니 같은 생각을 공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인 것 같다. 스타트업 대표님들도 비슷한 것 같다. 돈을 빨리 벌어야겠고 매달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 보니 그 스트레스 때문에 외로움을 더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스타트업 대표님들끼리 술자리를 하는 것을 많이 봤다.

 

▶ 회사 생활 5년 했다. 아쉽거나 후회한 부분은 없었나?

특별히 후회되는 부분은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거래처와 인간적으로 살갑게 잘 지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일이 너무 많기도 했고 KPI에 쪼이고 허덕이다 보니까 인간적인 관계를 충분히 맺지 못해서 그렇다. 대기업도 KPI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스타트업 같은 경우 숫자로 나타나는 성과가 투자를 받느냐 못 받느냐의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KPI의 경우는 투자를 못 받으면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회사 밖을 나와보니 신뢰를 근거로 한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회사의 기준만을 따르다 보니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회사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었는데 나와서 밖에서 보니 너무 회사의 기준으로만 대했던 것이 아쉬운 것은 인정해야겠다.

 

▶ 사람들이 왜 이리 비슷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나?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가고 스펙 쌓아서 좋은 회사 가려고 하고 그리고는 용도가 다해서 버려지는 슬픈 루틴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교육의 탓이 가장 큰 것 같다. 아주 짧지만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필요한 덕목은 용기와 부딪혀 보는 배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경험해 볼 기회도 많지 않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인내가 미덕이라고 가르친다. 또 군대에서도 암암리에 인내를 말한다. 인내를 가장 강요 받는 사람들이 바로 직장인 인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어도 그냥 참고 견디며 버티는 것 말이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도 교육 탓인 것 같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진짜 가만히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어릴 때부터 가만히 있는게 미덕인 교육 탓이다

아닌 것 같으면 바꿔야 한다. 스타트업 에서도 잘못된 BM이라고 시장이 말하면 당장 Pivoting을 해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자신의 탓이고 내가 변해야 한다고 맹목적으로 말하는 미국식 자기계발서도 문제도 있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의 청년들이 멋지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는데 사회에 일자리가 없는 것 사회 탓이고 정치 탓이라고 시위를 하고, 자발적 실업자가 되어 노동을 공급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망하게 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 


지금 난 어린 나이에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경험을 쌓고 돈을 모아 내 사업을 하고 또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다. 이 행동의 시작은 하나의 생각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나의 삶,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그 원칙과 생각을 기반으로 행동을 한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 내가 크게 성공한 사람처럼 얘기한다고 재수없어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지금의 내 모습도 충분히 자랑스럽다.

 

▶ 그런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본인의 생각이 과거 어떤 결정의 순간에서 그런 데이터를 찾았나?

뭐든 똑같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학과를 특이한 것으로 결정할 때도 그랬고 해병대를 선택해서 갔다 온 것도 그랬다. 학교에서도 힙합동아리를 한 것도 그랬다. 회사도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을 선택한 것도 그랬다. 그런 과거의 활동들을 보니내가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구나.’라고 깨달았다. 선택의 과정에서 내린 결정을 보고 내 성향과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당신의 지금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그냥 부러워만 하고 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해 주고 싶지 않다. 그냥 부러워한다는 것은 하기 싫다는 감정표현의 반증인 것 같다.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방법을 묻는다. 부럽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묻지 않고 실행을 한다. 나는 최근에 시간이 생기면서하고 싶다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난 최근 5년간사업하고 싶다. 내 일 하고 싶다.’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곧하기 싫다와 같은 말이었다. 하고는 싶지만 힘들고 어렵고 시간도 없어서 하기 싫다는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하고 싶다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 그냥 행동으로 옮겼던 것 같다. 회사 다니면서때려 치워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행동하지 않고 제일 오래 다니는 것과 같은 것 같다.

 

▶ 포괄적인 질문하나 하겠다. 아직 20대로서 기성세대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내가 만난 기성세대 사람들은 지금의 청년들보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청년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본다. 내가 상가건물을 찾을 때 100개가 넘는 부동산을 가봤는데 그 분들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 상가를 중개하는데 아파트 전월세 거래하듯 보고 맘에 들면 결정하라는 식이다. 그 동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그 지역 부동산인데, 상권분석 리포트는 1장도 없이, 100만원에 가까운 중개수수료를 가져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든 생각은청년들이 기성세대 분야에서 열심히만 해도 충분히 기회가 있겠구나. 저렇게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먹고 사니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 기성세대의 게으름이 청년들에게 기회라니…… 충격이다.

인테리어업체도 사업 준비하면서 20여개 가까이 만났다. 인테리어도 거래 건 당 몇 천에서 몇 억 단위의 현금이 돈다.  만났던 분들이 모두 40대 이상 이었고 10군데에 견적을 의뢰했는데, 그 중 엑셀표로 정리해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준 곳은 딱 한 곳뿐이었다. 나머지는 견적의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거나, 말로 대충 때우려는 곳이었다. 물론 그 분들도 그렇게 밖에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분명히 불편이 있고 그 불편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기성 세대들이 하는 비즈니스 중에 그런 개선이 필요한 곳이 많은 것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기회라고 본다. 오히려 기성세대들이 잡고 있는 사업 쪽에 기회가 더 많은 것 같다. 혁신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IT 기반의 스타트업에는 너무 똑똑하고 잘하는 청년들이 많아서 혁신의 홍수다.. 청년끼리의 경쟁을 회피하며, 기성세대와 경쟁을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본다.

 

▶ 회사를 떠난 직후와 9개월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선 수익모델이 달라졌다. 직장인은 월급과 월급에 근거한 재테크와 투자다. 회사를 떠난 지금의 나는 운영 수익과 매각 시 자본이득이 주요 수익모델이다. 두 번째는 가치가 달려졌다. 직장에서는 막연히 인내하며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용기와 배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기존 매장을 매각하고 다른 곳에 신규점포를 준비 중이다.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리스크를 안고 하는 투자다. 회사에 있었으면 이렇게 용기 있는 결단도 결코 내리지 못했을 거다.

 

▶ 10년 후, 서른 여덟. 그 때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나?

표면적인 모습을 얘기하자면 랩퍼 도끼(dok2)처럼 살고 싶다. 펜트 하우스에 살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싶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는 삶과 일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사업을 하는 요즘은 그럴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 100% 욕망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 떳떳하게 돈을 많이 벌어서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너무 속물적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아닌가.

 

▶ 먼저 인터뷰를 신청해 주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질문지를 받고 인터뷰의 초점이 30대 중반 정도의 직장인이라고 느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 같은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시간적으로도 여유롭고 회사 다닐 때보다 많은 돈을 벌고 신도시의 47층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사실 직장을 다니는 많은 친구들이 나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한다. 직장을 나와서 궁핍하지 않고 힘들지 않고 돈도 잘 벌고 잘 살고 있는 Life를 보여주고 싶었다. 직장인이 꼭 힘들고 괴롭지 만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먼저 신청한 이유다. 또 이런 인터뷰를 통해서 또 다른 더 재미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  놀랐다. 28살의 나이에 5년 간의 회사경험이 있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그와 나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생각의 골이 깊지 않기를 바라며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아재스러운 생각을 들키지 않고 싶었고 동시에 그의 당돌함 멋짐에 놀랐다. ‘고작 스물 여덟 살 짜리가…’ 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나는 스물 여덟 살에 무얼 했지?’하는 생각과 동시에 부러움이 들었다

그는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애독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Life를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다.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삶이 단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욕망에 충실하며 만족스러운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스물 여덟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자신의 나이를 들여다 보며 한탄하지는 말자. 지금 당신의 나이, 그리고 해온 일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한다는 것은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일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바로 알고 그 욕망에 충실한 채로 말이다.  ◀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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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2 _ 일 년의 멈춤이 나를 완전히 바꿨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21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간략한 자기 소개

저는 1976년생 올해 마흔 한 살의 ㅇㅇ 입니다. 지금은 ㅇㅇ회사의 상품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위는 차장 입니다. 

 


 본인의 커리어를 회사와 직업 중심으로 소개해 달라.


나는 흙수저였다. 어릴 적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폭음과 이어진 가정폭력 어머니의 눈물이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TV에 나와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은 학교와 집뿐이었다. 아버지는 대 놓고 대학은 안 보내 주겠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나 배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열심히 공부만 했다. 그렇게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환경 때문에 선택한 차선이었다. 그러다가 육사를 일년 후에 자퇴했다. 짧게 이유를 말하자면 그곳은 나에게 원하는 틀이 있었다. 그 틀이 트러블이 심했던 아버지가 나에게 강요한 것과 비슷했다. 아버지의 틀을 벗어나려고 육사를 선택했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틀을 강요 당하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만약 4년만 버티면 끝이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생활을 계속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아버지의 그늘에서 평생을 사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는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퇴를 했다. 그 이후에 다시 4년재 대학의 광고 홍보학과에 진학을 했다. 첫 직장은 생활소비재 회사의 MD 였다. 중견 규모 회사에서 2003년 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소기업이기는 했지만 상장기업이어서 당시에는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 그 후에 두 번의 이직을 하고 2016년 현재 14년 차 직장인으로 유통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원으로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창피하지만 위에 내 배경을 설명한 이유는 그 당시의 모습이 회사원으로 나의 모습에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그저 성공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승승장구 해서 연봉을 많이 받는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목표였다. 그래서 성공을 하려면 죽기살기로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를 완전히 버리고 회사에 나를 던지는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오직 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은 회사였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 보는 것은 잘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정말 인간미 없이 무조건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상사의 지시는 무조건 따랐지만, 부하직원에게는 업무적으로 강요를 하는 그런 부류였다. 당신이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라는 책에 쓴 것처럼 정말 회사가 시키면 주말도 없이 일했던 ‘회사가 가장 원하는 인재’였다. 나를 버리고 회사일 자체가 나인 것처럼 일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 적으로 묻겠다. 왜 육아휴직을 냈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외국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극에 달했다. 사실 영어 때문에 회사 내에서 성장을 못한다는 위기의식, 피해의식이 굉장히 컸다. 현재 직무를 하기 전 다른 업무를 할 때에는 누구보다도 인정을 받고 있었고 업무적으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을 하면서 영어에 대한 절박함이 갈급해 졌다. 팀장도 바뀌었고 또 주변 상황이 휴직이 가능할 것 같아 다시 신청했다. 어찌 보면 회사에서 나의 존재감이 작아진 느낌이 휴직을 신청할 용기를 내게 해 준 것 같다.

 

두 번째는 인생의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결심 때문 이었다. 지금 보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내가 스스로 원했다기 보다는 주변 상황에 대한 압박 때문에 그렇게 결정한 것 같다. 예전에는 그저 회사 안에서 승진하고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공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졌다. 나와 가족과 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바뀐 기준에 따라 내 인생의 지향점을 설정하는 것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꽤 힘들었다.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회사 안에서의 성공만 쫓다가 인생관이 바뀐 것 같다. 그 이유는 뭔가?


나는 직장생활을 14년 동안 하다 보니 별별 경험을 다 했다. 그 경험은 업무적인 것뿐 아니라 업무외적인 부분도 많았다. 진짜 얘기를 하면 ‘미친 것이 확실하다.’고 말할 정도의 사람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사람들과의 미친 것 같은 사건들로 인해 사람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12년차쯤 되었을 때 크게 한번 아픈 적이 있었다. 한달 넘게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일주일 정도는 마냥 좋았다. 푹 쉬고 푹 자고 잘 먹고. 그러다가 누워있는 기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고민 중에 잠을 설쳐 가며 계속해서 깊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는 누구, 아니 무엇인가?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유치한 질문은 나를 바꾸는 촉매가 되었다.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을 돌아보니, 회사에서의 성장과 성공은 가족, 그리고 개인 생활의 포기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만났던 주변 상사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회사 안에서의 성공보다 인간 ㅇㅇ 으로서의 개인적인 행복에 무게 중심이 옮겨가게 되었다. 그래서 과감히 휴직을 해야겠다 라고 결심 할 수 있었다.  손에 쥐려고 맹목적으로 쫓기만 했던 회사 안에서의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만약 아파서 쉬지 못했다면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냥 지금도 맹목적으로 회사에 충성하며 나와 가족을 버리고 일 했을 것이다. 그런 쉬는 기간이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고 결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4년차차장 직위에 육아휴직을 냈다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나아니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난 건가?


남자 사원이 육아 휴직 후 돌아 왔더니 이상한 팀으로 전배를 보내고 자리를 빼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실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받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 기회가 된다면 돌아오지 않을 생각은 있었다. 여기서 기회라는 것은 새로운 직장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서의 기회를 의미한다. 다른 관점에서, 지금의 회사가 아니라도 다른 곳에 내가 갈 수 있는 있을 것 이라는 확신이 있다. 단지, 이번에 다른 길을 찾는다면,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다.


 

 지금 회사에서 불만은 없었나?


불만 보다 답답한 것을 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기업문화에서는 기한 내에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못하면 일 못하는 놈혹은책임감 없는 놈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회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일을 다 처리 못한다고 뭐라고 하는 것은 회사의 책임인 것 같다. 퇴근 시간 1시간 전에 일을 주고 해 내라는 것은 그저 야근을 하라는 것이고 이는 회사가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회사가 먼저 근로계약을 어기는 것이다.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한다면 역량을 길러주던지 일을 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윤활하게 만드는 것이 중간관리자인 팀장의 역할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개인의 무능과 책임으로 돌리면 팀장은 편해진다. 자신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 팀장이 팀장인지 의문이 든다. 이 회사에서 내가 만나고 본 모든 팀장은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의 입장에서만 냉정히 보면 개인이 회사에 다니는 목적은 자신을 위해서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 회사생활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회사도 이득이라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그런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퇴근 1시간 전에 일을 주고 안 한다고 난리를 치는 거다. 이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회사는 단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을 계산해서 맞게 부여해야 한다. 회사의 프로세스 안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이 팀장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팀장에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휴직 당시 팀장에게 나의 존재는 꼭 필요한 필수요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불편한 존재였다고 보는게 맞다. 나는 차장 2년차였고 실무 경험이 없었던 팀장보다 휠씬 전문가였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내가 너무 잘 알다 보니 ‘자신의 무지를 들킬 수 있는 존재’ 혹은 ‘팀장인 내 자리를 뺐어 갈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빠진다는 것에 대한 대안을 미리 준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는 했다. 그리고는 두 번의 추가 면담 후에 육아휴직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개인사업이직 등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그런 시선을 느낀 적 있나?


거의 100% 그런 시선을 느꼈다. 회사 동료들의 반응은 ‘쉬면서 이직준비 후 이직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어디 좋은데 가냐?”고 노골적으로 물었다. 나를 잘 아는 친한 동료들은 쉬지 말고 차라리 회사내의 다른 부서로의 전배를 권했다. 회사외부의 반응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사업을 하기 위해 휴직을 했다. 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나중에 친한 후배를 통해서 들은 말이다.


 

 육아휴직 결심을 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혹은 사건은?


우선 위에서 말한 나의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된 병원에 있었던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같이 일하는 상사와의 신뢰상실이라는 외적인 이유였다. 상사와 부하직원에게 저지르는 부조리 때문에 신뢰가 사라져 버린 것도 큰 이유였다. 간단히 말하면 팀장 바로 밑, 내 바로 위의 차장이 대표이사를 포함해 수천 명이 넘는 전 직원들에게 팀장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장문의 메일을 쓰고 퇴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짜증이 나서 말하기도 싫다.

 


 남자 육아휴직은 매우 드물다좋은 회사인가 보다회사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점수는 한 40점 정도 주고 싶다. 좋은 점 보다는 나쁜 점이 크다. 건강을 챙길 수 없을 정도로 업무가 많았다. 마흔 둘은 젊다면 젊고 아재라면 아재인 나이다. 그 나이에 허리디스크, 목 디스크, 간질환, 비타민 결핍, 스트레스성 만성 두통, 비만 등 많은 질병을 달고 있다. 두 번째로, 군대식 기업문화로 인해 잘못된 가치관으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폭압적인 문화가 너무 당연시 여겨지면서 욕하고, 윽박지르는 등의 몰상식적인 행동들도 많았다. 나도 이런 것들을 보고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생각에 물들었다. 내 밑에 직원의 인격을 무시하면서 나 스스로 이것이 잘못이라는 걸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었다. 지금은 이것을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도 굳어진 이 관성을 고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아이는 누가 봐주나?


우리 아이는 반은 국가가 키웠다. 나와 아내 모두 야근이 많아서 어린이 집, 유치원 모두 가장 먼저 등교했고 가장 늦게 하교를 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3살때에 11시넘어서 데리러 간 적도 많았다. 당시 어린이 집 원장님이 우리 사정을 이해해 주어서 자신의 집에 우리 애를 데려가서 봐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회사에서 꽤 잘 나갔었고, 회사의 일이 가장 우선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첫 아이라 정말 너무 내 생각으로만 키웠던 것 같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이런 일에 대한 미안함이 늘 가슴속에 있었다. 육아휴직을 통해서 아이와 하루의 반을 함께 하면서 더더욱 과거의 회사일 때문에 혼자 남겨둔 것이 아이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깨닫고 나니 더욱 미안했다.


 

 휴직을 하기 전에 계획을 세운 것이 있다면?


휴직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었다. 건강의 회복과 아이와 함께 시간 보내기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안을 만들었다. 제주도에서 6개월 살기, 아이와 세계여행 등등. 여러 가지 안 중에서 선택한 것이 해외연수였다. 사실 처음 계획은 가족이 모두 같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도 휴직계를 제출했었다. 그러나, 상사들의 눈치 때문인지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지만 구두로 승인을 받고 4개월간 질질 끌다가 회사 사정으로 휴직은 취소했다. 그래서 아이와 단둘이 하는 해외에서 함께 생활하며 영어 공부를 하는 연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휴직하고 나이 42살에 영어공부라니진짜 이유가 뭔가뭔가 다른 이유가 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두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바로 학력과 영어가 그것이다. 그 때문에 항상 영어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회사 생활이 끝난 후의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야근에 지친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와 쓰러져 잠들고 아침이면 일어나 씻고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기계 같은 생활을 멈춰야만 했다. 나는 회사 생활을 모두 마치고 나면 제주도 같은 곳에서 외국인 들을 위한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며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영어였다. 독학도 해보고, 나름 학원도 다녀봤지만 그렇게 해서 배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연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와 함께 할 시간, 미래를 생각할 시간, 미래를 준비할 시간의 필요 때문에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아내는 혼자 일을 하고 아이와 함께 해외에 다녀왔다아내가 화내지는 않았나? 


앞서 얘기 했지만 원래 계획은 아내도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일찍 귀국하려 했는데 오히려 기왕 시작한 것 제대로 공부하고 오라고 지원해주었다. 아내에게 감사하고 미안하고 또 고마울 뿐이다.


 

 일년간 해외에서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면 얼마나 드나?

다녀와서 계산해 보니 한 8천 만원 정도 든 것 같다. 물론 내 연봉을 기회비용에 합치면 1억은 훌쩍 넘을 것이다.

 


 살림은 넉넉한가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휴직을 하면 기획비용까지 2배가 마이너스다.


결혼 후 양가 부모로부터 단 한 푼의 도움 없이 두 사람만의 힘으로 버텨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모아봐야 얼마나 모았겠는가? 아직도 서울의 외곽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찾았고 아내와 공유했었기에 결정할 수 있었다. 또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결정하게 된 동기인 것 같다.

 


 자신의 커리어가 끊길 것을 감내하고 휴직을 냈다경단남이 되는 걱정은 없었나돌아오면 회사에서 책상을 빼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나 경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라도 있을 거라는 확인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게 두려웠다면 육아휴직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지낸 해외에서의 일년어땠나?


육아휴직을 한 일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었던 기간이었다. 내 스스로 힘든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정말 알차게 살았다. 회사에서 매일 야근하며 시간을 보내며 늘 꿈처럼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는 독립성이 습관화 되었다. 자기 일을 스스로 하고 또 남을 존중하는 법을 유치원에서 배웠다. 많은 액티비티와 여행을 함께 하며 아빠와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갖게 되었다. 캠핑을 떠나 만났던 하늘의 별, 너구리가 가져간 저녁밥, 그리고 개울가에서 물놀이 등은 아직도 반복해서 얘기한다. 나이아가라 폭포, 푸르른 공원, 아이슬란드의 빙하, 순록, , , 온천 등은 아이에게는 너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이 되었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아이의 그 모든 기억에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육아 휴직 일년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비로서 아이와의 관계가 진짜 아빠와 아들 사이가 된 것 같다. 그 전까지는 그저 주중에는 맡기고 찾아오는 사람, 주말에는 힘들지만 억지로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자기를 위하는 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은 물어보려 한다. 상대적으로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게 흠인 것 같다.







 

 아이와 많이 각별해 진 것 같다. 이에게는 어떻게 살라고 얘기해 주고 싶나?


물어보지 않는다면 굳이 얘기해 주지 않을 거다. 그 대신 질문을 할 것이다. “그거 하면 재미있어? 그건 어때?  뭐하고 싶어? 니 생각은 어때? 어디 갈까? 어떤 모습이 되고 싶어?” 부모는 질문을 해서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틀만 만들어 주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아이는 대답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모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원하는 일을 찾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인생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돕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에 가는 것이 죽도록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우리 아이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나의 바램을 말로 하거나 직접 가르쳐서 알게 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느끼게 하고 싶다. 그래서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자원봉사를 같이 다닐 것이고, 올바른 시가가 되면 해외 배낭여행을 지원할 계획이다. 대신, 그 이후의 인생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지, 어디서 살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휴직하고 일년간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잃은 것은?  


얻은것은 너무 너무 많다. 내가 세운 인생의 목표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내가 쉼 없이 달려가던 길에서 살짝 벗어나서 돌아봤던 나. 그 과정에서 다시 깨달았던 나의 잘못된 행동들. 그리고 앞으로의 내 태도 변화에 대한 방향성. 아이와의 평생 안고 갈 소중한 추억. 해외의 새로운 사고방식.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한 고민.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  결론적으로는 잠시 멈춤으로 나의 방향성을 찾았고 돈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이와의 추억을 얻었다. 잃은 것은 돈 뿐이었다.

 


 휴직이 당신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멈추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달리기만 하면 방전되어 버려지는 직장인들에게 쉼은 더더욱 중요하다. 멈춤과 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건 당신의 쓴 책인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에서 같은 내용을 읽었다. 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가능한 업무적으로 만나는 것을 줄이려고 한다. 비즈니스, 돈과 연결된 관계에서 진실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능한 회사 밖에서 진심이 통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회사 안에서는 내가 해서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중이다. 14년차에 이런 것을 찾는다는 것이 웃기기도 한데 지금이라도 노력해 보겠다.



 복직 후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아니 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이 50대 되었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이다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행동놀면서 돈만 받아가는 월급 루팡들아부와 비열한 행동만 일삼는 사람들이 너무 짜증나고 싫었다또 회사에서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도 정말 많이 의식을 했다내가 남보다 중요한 일을 맞고회의 시간에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서 인정받고 하는 것처럼 나를 드러내는 것을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하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또 뻔히 수가 보이는 이상한 짓을 하는 또라이들을 보면 예전처럼 화가 나기 보다는 불쌍하게 느껴졌다.

 

지금 나의 가치의 중심은 나의 미래를 위해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이다상대적으로 예전에는 회사 일이 나의 가치의 99%였고 일이 많을 때야근할 때스트레스 받을 때 정말 힘들었다하지만 지금은 일이 많고 적음 회사 내에서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육아휴직 복직 후 회사가 어떻게 느껴지는가? 달라진 점이 있나?


같은 팀으로 복귀 했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내 일은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서 하고 있다. 그 일은 많은 금액을 좌지우지 하는 제법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예상은 했었다. 단지 예상이 빗나가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래서 이질감이 조금 더 느껴진다. 나는 일년간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변화 했는데 회사 안의 다른 이들은 내가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정말 작고 사소한 것으로 서로 반목하고 무시하고 싸우고 헐뜯는 것이 안타깝다.

 

 

 그럼 돌아와서 일은 어떤가? 할 만 한가?

예전보다 일이 줄었다. 팀장이 나에게 일을 많이 주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팀장 바로 아래 있기 때문에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 나를 견제하는 건지, 혹은 내가 언제라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안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월급은 그대로 인데 하는 일이 적으면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결론부터 말하면 일이 적어서 스트레스다. 물어본 것처럼 일이 적으면 좋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일의 양을 육아휴직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30% 수준 정도다. 내가 차장인데 이건 주임 수준의 일을 준다. 옆에 사람은 일이 많아서 바쁜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MD인데 돌아와서 2달이 넘었는데 정확히 담당하는 것이 없다. 가끔 떨어지는 ad hoc성의 일 밖에 없다. 때로는 일이 없어서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내 스스로가 일을 안 하니 회사원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지는 것 같고 조직의 일원으로서 회의 할 때도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망설여 진다. 회사 생활이 엄청 위축되고 뒤쳐지는 느낌이다. 팀장도 하루 종일 내가 별 일이 없다는 것을 알 텐데, 가끔 자리를 비우거나 멍하게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말 했듯이 예전부터 나는 일을 미친 듯이 했던 사람이기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사실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루틴이 없다는 것 자체가 휠씬 힘든 것 같다. 이건 성취감과 관련된 부분이다. 일이 많아도 내 일이 있으면 내가 의사결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성공도 거두며 기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보람 같은 것이 있었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굴곡 속에서 살아 있는 느낌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 축 쳐져 있는 느낌이다. 못 할 짓이다.


 

 팀장 입장에서 일을 나누면 전체 팀원 전체의 사기도 올라갈 텐데 이상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회사 내에서 육아휴직 복귀자에게 조직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팀장이라는 사람 개인의 의지인 것 같다. 팀장이 나와 성별이 달라 쉽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오해가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달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을 것이다. 그럼 저 친구가 하고 있는 일 주세요라고 하면 그 일을 내가 뺏어가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망설이는 거다. 내가 팀장이라면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일을 나누었을 것이다. 팀원들도 해피하고 나도 스트레스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회사 일의 계획은 어떤가개인가족 삶의 계획은?


일단 회사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일을 재정립하고 싶다. 재미 혹은 의미가 있는가?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으로 일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만약 이직을 통해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 할 것이고, 팀을 옮겨야 된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미래를 위해 투자할 거다. 아내와 나는 은퇴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우선 건강을 회복하는데 투자할 것이고, 다음으로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우리 가족도 건강이 우선, 그리고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신중하되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다. 행동하는 것의 힘을 일년간 너무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고 노트에 끄적이기만 하고 말만 하고서 행동하지 않는 그런 실수는 이제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왜 모두 이렇게 비슷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나?

예를 들면 좋은 학교 나오려고 애쓰고대학교에서는 좋은 직장 돈 많이 주는 직장 가려고 애쓰고. 그러다가 문득 소모되어 회사에서 불필요하다고 버림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것 말이다.

 

어려운 질문이다. 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유교문화 때문인 것 같다.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로 인식하는 문화적 특성이 한 원인인 것 같다. 또 초,,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다. 남이 세워놓은 대오를 이탈하는 삶이 곧 낙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일을 하면 즐겁고 행복할까?’가 아니라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를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연수를 했던 나라에서는 다름을 인정한다. 면접, 학교, 직장 등의 어떤 곳에서도 나이, 출신, 성별, 종교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나아가 직업의 차이에서 오는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를 쿨하게 인정한다.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은 주말에도 일을 하는 학원강사다. 그는 10년 넘은 차를 아직도 탄다. 그는 자신의 일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거라고 얘기했다.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고 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버스 운전기사나 배관공이나 은행원이나 그냥 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지금 어느 누군가는 당신처럼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다면뭐라고 해 주겠는가?


그건 철저히 본인의 결정이다. 한가지 바라는 것은 그 결정은 그 사람의 명확한 가치관이 서고 난 후에 내리면 좋겠다. 그 사람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믿는 가치가 있고 그걸 믿는다면 뭔가 해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칫하면 육아휴직 기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라 당신이 소중하게 붙잡아야 할 결정적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 휴직을 하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우선 회사 다니면서 시간을 내서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 확신이 생기면 그때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휴직을 하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에서 남자의 육아휴직이 주는 임팩트는 생각보다 너무 강하다. 마치 이력에 빨간 줄이 쳐진 느낌까지 든다. 그렇기에 좀더 신중히 다시 판단하라고 권하겠다.

 


 휴직기간에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나와 아이의 경험과 아내의 경험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내가 느끼는 이 생각들을 나는 단지 말로써 아내를 이해시켜야 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숙제다. 나와 아이는 아이 스스로의 독립적 생활방식을 셋업하고 왔는데, 엄마는 아이를 또다시 예전 5살의 아이처럼 대하기 때문에 아이가 다시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비어버린 통장잔고를 볼 때 후회한 적은 없었나?


휴직 후 연수를 떠날 때 적금, 보험 등을 모두 정리했다. 마음은 이미 그때 한번 아팠고, 돌아와서 전세 만기가 끝나서 새로운 집을 찾을 때 한번 더 아팠다. 다행히도 은행이 도와주기에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삭일 수 있었다. 지금은 이제 다시 채워야지라는 생각이다. 누가 물어보더라도 일년 동안 돈밖에 잃은 것이 없다. 그래서 후회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남자가 아내 혼자 일하게 두고 지는 외국에서 공부나 하고 팔자 좋은 놈이다정신차려라 임마.” 라는 악플이 달렸다면 거기에 뭐라고 리플을 달고 싶은가?

 

아내를 잘 만났어요.” “결혼을 잘했어요.” “대신 아이는 내가 키웁니다.” 뭐 이런 글을 남기겠다. 사실 그런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미래에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금 하고 있는 준비는 있나?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50살까지만 회사생활을 하고 싶다. 8년 남았다. 50살에 은퇴 후에는 제주도에서 팬션을 하고 싶다. 돈을 벌기 위한 것 보다는 생활 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이익이 나지 않아도 좋다. 50살 이후 남은 인생을 가족과 즐겁게 살고 싶다. 그 팬션을 외국인 전용으로 해서 아이에게도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본인이 말한 삶의 행복과 인생관과 하고픈 일이 100% 맞지는 않는 것 같다. 팬션을 하는 것이 본인의 삶의 가치와 맞다고 생각하나?

100% 맞지는 않을 수 있다. 내 인생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고 싶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말 뒤에는 금전적인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 일년간 회사, 그리고 한국과도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생활을 했다. 우리는 겪어서 알게 된 삶에 구속된다.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단지 좋다라는 느낌보다는 무언가 따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

 

해외에서 일년간 있으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외국 애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Why not?’ 이라는 말이 있다. 참 신기한 말이었다. 이 말이 나왔을 때 말문이 턱 막히는 경험이 많았다. 맞다고 생각하면 하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어떤 대화에서 “Why?”라는 질문을 했을 때 너 혼자만 잘 되는게 무슨 의미야, 니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봐. 그럼 우리가 이렇게 행동해야 하지 않겠니?” 또는 너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 라는 늬앙스의 말을 제법 많이 들었다. 그리고 휴가를 가도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오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헤비타트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사람들이 부자가 아니라 소형차도 10년넘게 타고 다니는 중산층 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에게는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팬션을 하면서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다니는 삶을 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나의 아이가 나밖에 모르는 삶이 아닌 주위를 돌아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남을 도우며 함께 사는 삶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렇게 늙어가고 그렇게 죽고 싶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의 가치관은 현재 흐르고 있는 문화에서 기인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차별, 남을 밟아야 내가 돋보이는 조직.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작은 바램은 직장인들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언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같은 유치하지만 꼭 필요한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바빠 죽겠는데 뭔 개소리냐?” 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 우리가 직장에 다니는 이유가 행복을 위해서이고, 그 행복이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봐줄 줄 알고, 어울려 살아 갔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지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까이는 내 아이, 내 아내의 행복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형제 부모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이웃과 이웃나라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14년간의 회사생활 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 기쁨은 생각보다 컷다.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통해서 삶의 방향성을 찾고 그 길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직장인으로서 성공만을 위해 회사 인간이었던 그는 일년의 멈춤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두가지 였다. 자신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멈추어 일에서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고맙게도 내 책을 읽어 주었고 그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에게 인터뷰를 먼저 요청해 주었다. 어찌보면 직장인이자 글을 쓰는 나에게는 가장 감사한 사람이었다. 내 작은 글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이 한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 이라고 부르고 싶다. 많은 직장인 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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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0 _ 일하면서 배웠다. 그리고 1인 기업가가 되었다.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4.29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1970년생, 올해 마흔 일곱 살의 김용빈입니다. 개발마케팅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아프리카와 신흥시장에서 신사업 개발과 개발협력 (쉽게 말해 원조) 사업을 만드는 일에 대한 자문, 연구, 강의, 기고를 하고 있습니다.

 

▶ 커리어를 간단히 설명해 달라.

한국외대 포르투갈어 학과 89학번이다. 군대를 학사장교로 갔는데 961월에 앙골라에 평화유지군 파견인력을 뽑는다는 국방일보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앙골라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국가이고, 어학연수를 못 간 나에게 무언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가수 신정환도 1진 인력으로 거기에 있어서 실제로 만났었다. 96년 일 년 동안 앙골라에서 근무를 했었다. 그 우연한 시작 이후로 나의 모든 일과 삶의 나침반이 아프리카로 향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어를 전공한 많은 사람들은 주로 브라질 일을 하는데 나는 군생활의 경험 때문인지 아프리카와 계속해서 인연이 닿았다.

 

▶ 전역 한 이후에는 어땠나?

99년에 전역 이후 다른 회사에 근무하다가 2000년 우연히 삼성물산 상사부문에서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컨츄리마케팅(country marketing)’을 한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봤다. 그걸 보고 무작정 삼성물산 홈페이지의 웹 마스터 이메일을 찾아서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전공했고 앙골라에서 군생활도 했고 외대 경영대학원에서 “(앙골라와 남아공이 포함된) 남부아프리카 경제공동체관련 논문도 썼다. 지금 삼성물산에서 시작하려는 사업에 흥미가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보내고 2시간만에 답장이 왔다. 인사팀에서 보고를 위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이력서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후에 실무자, 임원까지 면접을 보고 2000년에 삼성물산에서 경력공채로 입사를 했다. 당시 삼성물산의 실무자 중 아프리카에 대해 깊게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적었고 아프리카 일을 하기를 모두 꺼려했던 것 같다. 그 후 2011년까지 삼성물산에서 일한 후, GS건설로 옮겨서 3년간 더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 2014년에 회사를 떠나 1인기업가로 독립했다.  

 

▶ 아프리카 관련 일은 생소하다. 어떤 일인가?

내가 몸담았던 곳은 프로젝트 사업부였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 수주하거나 투자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다. 건설, 정유공장, 가스 충전소, 통신라인, 발전소 등의 인프라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하는 조직이었다. 그런 사업을 개발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사업의 모습을 그리는 일을 했다. 구두를 닦는 경우도 찍새딱새가 있다. 찍새는 상품을 물어오는 것이고 딱새는 그 일을 실제로 실행 하는 것이다. 나는 소위 아프리카의 신사업의 아이템을 물어오는 가장 최전방의 찍새였다.

 

▶ 어떤 일을 해서 어떤 성과가 있었나?

오천 헥타르 정도 되는 땅에 관계수로를 만드는 일, 연안 운송 프로젝트, 데이터센터 개설 같은 일에도 관여했다. 해외사업을 하는 사람의 능력은 지역전문성, 기능전문성, 아이템전문성으로 볼 수 있다. 언어와 통상을 전공한 나의 경우 아이템전문성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현장을 찾아 다니며 배웠다. 양계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것에 대해 배우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기본적인 책을 몇 권 읽고, 사료공장, 도계공장 등을 찾아 다니면서 고수들에게 배웠다. 아프리카 최전방에 혈혈단신 혼자 나가서 싸워야 하는데 내가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 커뮤니케이션도 안되고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번 프로젝트마다 공부를 하며 배워서 나갔다. 나는 아프리카라는 지역에 대한 전문가 베이스였기 때문에 늘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 본인이 계획을 세우고 행동도 하고 성과도 얻고 책임도 지는 이런 일을 회사에서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회사를 떠난 지금 보면 엄청나게 소중한 경험인 것 같다.  

지금 보면 너무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하지만 회사 다닐 때는 그것이 힘들고 너무 싫었다. 처음부터 내가 기획하고 내가 실행하고 책임지고 맨땅에 헤딩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배워서 스스로 일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힘들기 때문이다. 대기업 시스템 속에서 편하게 배우는 것을 보통은 원했을 것이다. 입사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던 것도 힘들긴 했다. 삼성물산이 공채 출신에 대한 순혈의식이 매우 강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결원 혹은 신사업 개발을 위한 충원 때문에 뽑힌 것이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메일을 보내서 나 필요하지 않니?’라고 물어서 들어온 사람을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본 것도 사실이었다. 회사를 떠난 지금 돌아보면 회사에 들어가서부터 혼자 일하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 회사원일 때 본인은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삼성스럽거나 직장인스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삼성은 삼성이 원하는 삼성맨’, ‘삼성다움의 가치가 있고 그것을 신입 때부터 가르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회사 다닐 때 내 별명은 영업연구직이었다. 영업을 연구하듯 한다는 뜻인데, 무언가 한번도 선례가 없던 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선배들이 뭐 하러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냐? 시키는 일이나 잘해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선배들이 하던 것과 똑같이 해봐야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야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처음에는 매우 불안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처음에 시작한 몇 개의 프로젝트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나에게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았다. 성과가 나니까 간섭이 확 줄었다.

앙골라 양계사업을 개발할 때 일이 기억난다. 총 규모가 600억이 넘었다. 이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출장도 가야 하고 외부 업체를 동원해 사업성검토(FS) 보고서도 써야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 “뭐 하러 아프리카에 양계사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닭에 대해 뭘 야냐? 고작 프라이드 치킨이나 시켜 먹는 것 빼고 없지 않냐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설득이 안됐다. 그 때 마침 정부에서 주는 신사업개발 지원자금이 있었다. 입찰을 통해 1억원이 조금 넘는 자금을 마련, 컨설팅 회사와 함께 사업계획을 준비했고 결국 수주를 했다. 그렇게 성과를 회사에 보여 주니 그 이후로 아무 말도 없었다.

시작은 정말 쉽지 않았다. 아무도 해본 적이 없으니 안 된다는 Fast follower 문화가 지배하는 회사에서 회사 동의없이 신규 사업을 개발하는 것은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회사의 지원없이 시작하는 일이 있었던 거다. 어찌 보면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혼자 창업해서 일하는 과정을 일부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 회사에서 승승장구 했는데 왜 회사를 그만뒀나?

그 동안 새로운 일을 하면서 계속 배우는 즐거움으로 회사를 다닌 것 같다. 하지만 10년 정도가 되니 한계가 명확히 보였다. 또 다른 이유는 더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 박사과정에 간다고 했을 때 극렬히 반대하는 걸 보고 정이 많이 떨어졌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계속 나를 돌려서 매출을 뽑아내야만 했다. 간단히 말해 회사에는 100억을 버는 소수가 있고 0원을 버는 다수가 있다. 0원을 보는 사람에게 50억을 벌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100억 버는 놈을 다그쳐서 150억을 벌게 하는 건 가능하다. 그래서 시간을 뺄 수는 없다는 것이 회사의 논리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그 동안 그렇게 힘들게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었는데 이 정도 요청도 못 들어 주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학위과정 지원요청에 대해 박사과정이 업무와 연관성이 없다는 인사팀의 회신을 듣고 정말 정이 훅 떨어져 버렸다. 일도 무언가를 채워가면서 해야 한다. 10년간 일했으니 조금 더 채우고 더 달리려는 마음을 몰라주었다. 그냥 회사는 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회사와 트러블이 있었을 때 팀장이 외국어생활관에 가라고 기회를 줬다. 세 달간 언어만 배울 수 있는 삼성의 좋은 시스템이었다. 거기에 가서 기숙사에 가서 조용히 생각을 하며 산을 바라 봤다. 서른 살에 육군에서 제대하며 한 고민은 앞으로 뭐할까?’ 정도였다. 남자가 마흔 살에 느끼는 불안과 답답함은 말로 하기 힘들다. 남자에게 마흔은 엄청나게 큰 의미다. 10년간의 회사 생활 동안 무얼 했나 하고 돌아보니 내 힘으로 한 것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것뿐이었다. 그 때 결심을 했다. 지금 마흔인데 지금을 딛고 일어서서 현역으로 80살까지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금 돌아 보면 나는 삼성이 강요하는 그런 조직문화에 젖어 들지도 않았고 회사가 나에게 크게 강요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삼성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내가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원래부터 회사를 길게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지라 규제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것 같다. 길들여 지지 않은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 단지 그것만이 이유였나?

사업(프로젝트) 개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조직의 이름을 등에 업고 간다. 상품 트레이딩과 달리 조직의 힘과 지원이 있어야만 일이 가능하고 혼자 나가서 프리 에이전트로는 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까지 내가 해온 일과 성과가 개인이 한 일이 아니라 삼성 로고가 찍힌 명함이 한 일인 것 같았다. 냉정히 생각해서 이 성과 중 온전히 내가 만들어 낸 것은 과연 몇 % 일까 궁금해 졌다. 그 질문의 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계속해서 회사에 있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조직을 떠나봐야 알 수 있는 답이었다. 삼성 명함과 내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봐야 나의 역량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다.

 

▶ 회사와의 분리를 위해 준비를 한 것이 있다면?

공부를 했다. 삼성물산에 있을 때부터 박사학위 공부를 했다. 오랫동안 돌아다니며 현장에 부딪히며 실무를 했는데 이런 경험이 이론과 맞물려 있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체의 그림을 모르고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업계는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곳이다. 거의 대부분이 명함에 PH.D. 라고 찍혀 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 회사가 말렸던 박사학위 취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근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공부를 하니 그간에 쌓은 내 경험의 조각들이 맞춰지며 하나의 멋진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공부를 하면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동안은 사업개발이 조직없이 개인적으로 버틸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개발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현실화 시키는데 시간과 돈이 들고 그것을 실행하고 만약 잘 돼서 성과가 나도 몇 년 후에야 현금이 Income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버틸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회사 안에만 있었으면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 1인 기업이다. 보통 회사에서 일한 것의 연장선으로 출간, 강의, 교육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생각하는 1인기업가의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나에게 들어오는 강의도 조금씩 뻔해진다. 뻔해진다는 말은 일반적 (General)이고 범용적인 것을 말한다. 여러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1인기업 독립하기그리고 직장에서 어떻게 배우고 공부해야 하나?’ 이런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위하는 것이기에 원하는 것이 비슷비슷해진다. 그렇다 보니 현재 상태만으로는 1인기업이라는 것도 한계점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주 수입원이 기업들의 사업개발을 돕는 자문이다. 비즈니스 모델로는 관점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을 쓴 박용후 씨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지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여러 회사나 개인의 일을 돕는 것이다. 나도 박용후씨를 보고 1인기업으로서 나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다듬었다. 해외사업개발 쪽으로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회사인데 중량급을 정직원을 채용하기에는 인건비 부담이 있는 중견회사에 사원~대리 월급 정도를 받으며 원하는 일을 해주는 쪽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업 단위나 시간 단위 자문 형식의 계약도 있다. 해외사업 개발이라는 하나의 리소스를 가지고 여러 회사의 일을 해 주는 형태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1인기업 모델이다. 그렇게 하면 나도 시너지가 많이 생긴다. 회사의 사업개발 업무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상대방 국가에서 생기는 대관업무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나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 회사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일인데 내 입장에서 보면 원래 하던 일에 하나의 일을 더 하는 것이기에 양쪽이 모두 좋은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상당기간 유지될 것 같다.

 

▶ 그럼 회사 일을 하면서 일인 기업의 일은 어떻게 준비 했나?

회사 다니면서 개인 일의 시도를 했었다. 간단한 자문이나 글을 쓰는 일을 2년동안 했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직장인에서 1인기업으로 가는 오버랩 기간이었다. 나는 전형적인 생계형 직장인이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그 이후에 1인기업으로 일이 잘 안되면 생활을 해 나가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능력이 혼자서 사회에서 먹힐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돌다리를 두들겨 보는 과정은 꼭 필요했다. 연말에 계산을 해 보니 내 2개월치 월급 정도가 나왔다. 내가 집사람이나 회사도 모르게 일해서 이 정도면 아예 본업으로 뛰어 들면 6개월 정도의 월급은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최소한 굶지는 않고 살아갈 수는 있겠구나 라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확인을 하고 나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준비없이 그냥 박차고 나오는 것은 매우 매우 위험하다.

 

▶ 회사를 나올 때 대기업 부장이었다. 인터뷰이 중 가장 직책이 높다. 연봉도 많았을 텐데 고정수입이 끊긴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조금은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오자마자 첫 달부터 수입이 발생했다. 회사를 나오기 전에 자문계약을 하나 체결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퇴사 전에 KOTRA 사이트의 지역전문가 칼럼란에 교수나 연구원이 쓰는 학술적인 글이 아닌, 잘 읽히고 임팩트도 있는 글을 쭉 연재 하고 있었다. 그 칼럼이 호응도 좋았고 평도 좋아서 정부의 일도 따낼 수 있었다. 마지막 출근 하는 날 정부기관에서 연구용역 계약도 받았다







- 2 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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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9 _ 서른살에 나를 찾고 창업의 바다로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1.06 13:47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스페럴리스트'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퇴사 후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태화 입니다. 나이는 올해 서른 한살입니다.

 

▶ 대학교부터 회사까지의 간략한 커리어는?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모비스에 2012년 신입공채로 입사 했다. 구매본부에서 부품 개발 및 협력사 육성, 관리를 했다. 쉽게 말하면 협력사들과 프로세스에 맞게 신규 상품을 개발 및 공급하고, 협력사와 현대모비스가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업무의 관리 및 커뮤니케이션을 종합적으로 담당하는 일이었다. 자동차 업종에서는 구매 개발 업무라고 칭했다. 3년간 근무 후 20153월에 회사를 그만뒀다.

 


나를 찾기 위한 질문, 기록


 

▶ 현대 모비스라는 회사는 왜 결정했나? 그냥 원서를 다 넣은 건가?

대학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처럼 진짜 나를 찾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했다. 아쉽게도 진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진 못했다. 반드시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회사는 없었다. 대신 내가 중요시하는 몇 가지 기준을 세웠고, 그 기준에 따라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현대모비스에 취업하게 되었다. 대신 부서를 정할 땐 나의 전공을 살리면서도 내가 평소에 갖고 있었던 생각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완전 다른 상황에 나를 던지고 싶었다.그렇게 새로운 상황에 처하면 나의 또 다른 부분을 새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나의 성향과 완전 다른 일을 하면서 나를 깨뜨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싶은 맘도 있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이었나? 회사 생활 3년은 판단하기에 좀 짧은것 아닌가?

직장상사가 말했던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성실하게 일하려고 했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책임을 지려고 했다. 솔직히 회사에 들어가면서도 이 회사가 나와 맞는 곳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꼭 자동차 업계에 가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다. 내가 무얼 잘하는지 나와 맞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했지만 해답은 없었다. 아직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 아래서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회사에 도전을 했고 합격했다. 일에 대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 봐야지만 그 일이 나와 맞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다가 생기는 힘듦이 사회 초년생이기에 당연히 겪게 되는 작은 생채기인지, 아니면 진짜 나와 맞지 않아서 생기는 것인지?’ 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에게 창피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일하려고 했다. 대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와 시야는 부족했던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말이다.

 

▶ 왜 회사를 그만뒀나?

대기업을 그만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앞뒤 사정을 잘라내고 대기업은 잘못된 곳이다. 사람을 부품처럼 함부로 대한다. 대기업을 나온 사람은 대단하다.’는 식의 메시지로 전해질 때가 있다. 대기업에 이런 선입견도 많은 것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경우 그런 건 아니었다. 업무량이 엄청 많았고 힘들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감사한 것도 많은 회사다. 그리고 내가 대단해서 회사를 나온 것도 아니고, 남아 있는 사람이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의 길을 걷기 위해 회사를 나왔다. 회사 일에서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했다. 내가 의미를 느끼고 나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접점을 회사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평소 생활하며 느낀 사회적인 문제와 욕구가 있었다. 이걸 해결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컸고 그 일에 의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 일을 하고 싶은데 회사에서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의 시간을 이 문제 해결에 쏟아보고 싶어서 그만뒀다.

 

▶ 파워 블로거다. 블로그는 어떤 의미인가?

블로그를 시작한지 벌써 거의 7년이 되었다. 나에게 블로그는 좋은 성장 파트너였다. 사람의 성장의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이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듯이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하기 시작했다. 블로그로 기록을 남기다 보니 때로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경우도 있었다. 계속 그렇게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들의 흔적들을 남기다 보니 쌓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파워 블로거 라는 타이틀도 얻었고 많은 구독자도 생겼다. 감사한 일이다. 처음 블로그를 할 때 나는 주제를 잡기가 힘들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나라는 사람자체를 주제로 삼자고 생각했다. 생 각과 행동의 흔적들을 담기 시작하면서 나의 관심사와 나를 보여 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되어 주었다.






 

▶ 블로그 관련된 책도 썻다. 왜 책을 썻나?

책을 어떤 수단이나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독자 입장 말고 나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고 싶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도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잘 아는 블로그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부분의 책이나 강연, 언론에서는 블로그를 기업의 마케팅의 수단이나 판매를 촉진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쉬웠다. 나는 블로그를 하면서 개인적인 성장의 경험을 해 봤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블로그는 평범한 개인도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미디어 채널로 시작되었다. 그런 블로그의 본질과 개인의 성장과 가치의 극대화를 얘기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썼다.

 

▶ 혹시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어떤 것이 있나?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Start with Way)” 라는 책이 좋았다. 내 머릿속에 막연하게 떠돌았던 생각의 조각들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또 이 책을 통해서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또 한 권 얘기 하자면 그리스인 조르바. 나는 항상 잘 정리되어 있고 준비된 상태로 살아야만 하는 것처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르바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나의 성향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무언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 회사가 너무 싫어서 욕하면서 떠난 건 아닌 것 같다. 가장 많이 배운 건 무언가?

행동하는 것의 힘을 배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계획을 세우고 경우의 수를 따지고 전략까지 완벽해 져야 움직이는 스타일 이다. 그래서 실행력이 조금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창업주부터 현대라는 그룹 자체의 DNA에도 녹아 있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실행하고 부딪히고 그러면서 다시 행동전략을 짜고 다시 부딪히는 것의 힘을 알게 되었다. 생각만 하다가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나의 성향과는 다르지만 즉각 반응하며 어려운 일을 돌파하는 것, 뛰면서 생각하는 것이 맞을 때도 많다는 것도 배웠던 것 같다.

 

▶ 회사 일을 하면서 지금의 일을 얼마나 준비했나?

원하는 만큼의 철저한 준비는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문서로 옮겨보고 사람들에게서 내 생각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의 일은 평소 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일이라 정확한 시점을 따지긴 어렵지만, 굳이 따지자면 회사를 떠나기 6개월 전부터는 기획서를 준비 했던 것 같다.

 

▶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내 옆자리의 저 선배처럼 되기 싫어서회사를 떠났다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의 경우는 어땠나?

나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명확히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에 떠났다. 남의 모습이 참고는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다. 내 선택의 기준은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

 


직장인 자기계발? 나를 찾는 방법?

Write – Small Act – Review  (기록 행동 성찰)


 

▶ 직장인에게 진짜 필요한 자기계발은 뭐라고 생각하나?

수많은 언론에서 직장인들에게 자기계발을 외치고 있다. 보통 영어공부나 자격증인 경우가 많다. 다 좋은 활동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경우 자기계발에 '자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다들 하고 있으니까, 외부에서 하라고 하니깐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자기계발이 아니라 강박증이 된다. 자기계발의 시작은 자기로부터 나와야 한다. 자기 자신을 찾고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자기계발의 출발점 이라고 생각한다.

 

▶ 많은 직장인 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찾지 못한다. 시도를 하다가 회사일에 치여서 결국 포기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을 아는 것을 엄청나게 큰 숙제 라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못할 것 같다. 하더라도 금새 지친다. 시위를 당겨서 단번에 명중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 시간, 며칠 동안 고민해서 나를 찾을 수는 없다.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나에 대한 단서와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짧게 얘기한다면 나에 대한 일기를 쓰거나, 하루에 하나씩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적어 보던가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년이 지나서 그 흔적들을 모아보면 공통된 부분, 많이 언급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면 좋겠다.

이런 일을 해 보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던 일 등을 적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게라도 행동해 보기를 권한다. ‘에베레스트 산에 가보고 싶다고 적었다면 동네 산 정상에라도 올라보면 된다. 규모는 작더라도 적은 것에 대해 최소한의 행동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짧게 말하면 위에 말한 것을 반드시 시간을 내서 기록한 후, 작게라도 경험해 보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되돌아 보는 거다. 이게 정답은 절대 아니지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창업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내가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대학교 때부터 계속 고민하고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수업보다는 교육, 세미나, 강연 등에 관심이 많았다. 10년 동안 강연, 세미나, 교육 등을 찾아 다니다 보니 그런 정보들을 알 수 있는 노하우가 쌓였다. 그런데 강연 등에 다녀와서 블로그나 SNS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어떻게 그런 강연을 알게 되었는지?, 강연이 있다고 미리 좀 알려주지…” 라는 댓글을 많이 남긴다. 참가 의사가 있음에도 정보가 없어서 참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강연을 기획하는 사람은 참가자를 모으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지만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 , 자신에게 딱 맞고 꼭 필요한 강연 정보를 원하는 사람과 모객을 하려는 사람의 접점을 넓혀서 둘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전하는 일이라 큰 의미를 느낀다. 




▶ 사람들이 필요로 배움을 제대로 연결해 주는 모델인 것 같다.

지금 준비하는 서비스의 이름은 포텐업 (Potenup) 이다. (https://www.facebook.com/410up)  개인의 잠재력을 올바른 교육을 통해 폭발시켜 주겠다는 의미다. 포텐업은 강연업계의 쿠차’라고 할수 있다.  모임, 강연의 개설자 입장이 아니라 그 모임 강연을 참가하려는 사람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흩어져 있는 교육, 배움의 정보를 내가 원하는 것만 한눈에 한꺼번에 확인하고 싶다.’라는 욕구를 채워주고 싶다. 내가 원하는 배움, 그리고 교육에 대한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20162월 혹은 3월에 Beta 서비스를 런칭 할 예정이다. 아직 매출은 없다.

 

▶ 창업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었나?

팀 빌딩 이다. 함께할 사람을 구한다는 일이 쉽지가 않다. 지금은 운이 좋게도 좋은 멤버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그 중엔 원래부터 알던 멤버도 있지만, 전혀 몰랐던 멤버도 있다. 예전에 블로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 라는 대략적인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을 읽고 나를 믿고 함께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예전부터 생각한 나의 글을 보고 나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하고 찾아와서 나와 한 팀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개발, 디자인 등 현재 필요한 직능에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팀원의 평균나이는 29세로 젊다. 사람을 만나게 된 매개는 어떻게 보면 나의 글 이었다. 내 글을 읽고 이 사람은 믿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함께 하게 된 것이다. 나의 글을 보고 나를 믿고 와준 사람들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

 


폭탄 돌리기 vs 블록 쌓기


 

▶ 회사원으로 사원이었던 모습과 지금 이끌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다른 것 같은가?

가족 오락관에서 폭탄 돌리기 게임이 생각난다. 곧 폭탄은 터지는데 나한테서 터지느냐, 아니면 남에게서 터지느냐가 관건이다. 사원으로서 회사 일은 곧 터질 폭탄을 빨리 빨리 처리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나서 내 일을 준비하는 지금은 좀 성격이 다른 게임이다. 내일을 하는 지금은 내가 만든 설계도를 가지고 레고블럭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 같다. 폭탄이나 블록을 모두 일이라고 치자면 회사에서의 폭탄은 빨리 쳐내야 했고, 지금은 내가 블록을 끌어와서 원하는 모양을 맞추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 퇴사 할 때 두려움은 없었나?

두려움에 대한 질문은 많이 받았다. 물론 두렵다.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회사에 있으면서 나랑 맞지 않는 일인데…’ 하며 불평, 불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시간만 보내며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더 두려웠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두려움은 있다.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두렵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아무런 배움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나태하고 게으른 태도로 인해, 좀 더 도전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렵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가 진짜 최선을 다했다면 최소한 그 경험은 온전히 내 재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 서른 한살이면 아직 젊은 나이다. 물론 지금은 계속 준비단계도 특별한 결과물은 없지만,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당장 들어오지 않는 월급보다 더 큰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두려움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그 두려움의 종류가 조금 다른 것 같다.

 

▶ 자발적으로 퇴사한 것에 후회는 없나?

아쉬움은 조금 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퇴사 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나를 성장 시키는 일에 조금 더 투자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것이 시간이던 돈이던 간에 말이다.또 회사에서 내 업무 외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조금 더 배울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퇴사에 대한 후회는 아니다.

 

▶ 삶의 모토나 좌우명이 있다면?

스스로를 감동시켜라. 카톡 프로필에도 그렇게 써 놨다. ‘열심히 한다, 최선을 다한다.’ 라고 하지만 스스로가 감동할 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남이 보고 평가하는 것 말고 스스로 감동할 만큼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큰 결단을 내린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내가 수고했다고 말할 만큼 감동할 만큼 그렇게 살고 싶다.

 

▶ 만약에 일년 후에 지금 하는 일이 잘 안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년 후에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서 이 일을 진행 할 것 같다. 피버팅으로 서비스 모델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계속 노력할 것이다. 한번 안 된다고 접고 싶은 맘은 없다. 회사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회사로 돌아간다면 이 일을 계속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식비, 거주비만 해결 할 수 있을 만큼 번다면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 취업이 징글징글 하게 어렵다. 지금 취업을 준비중인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떤 회사에 들어갈까? 어떤 일을 할까? 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한다면 답이 잘 안 나올 수 있다. 회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내가 어떻게 살까?’에 대한 고민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 물론 당장 취업을 코앞에 두고 있다면 현실적인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밥벌이도 못하면서 선비처럼 고민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내 삶의 목적의식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사실 회사는 바뀐다. 이직도 한다. 그리고 직업도 바뀔 수 있다. 앞으로는 더욱 더 그렇게 될 것이다. 지나치게 회사만 바라보면 회사에 큰 변화가 생기면 삶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운신의 폭이 훨씬 넓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은 성장시키는 일을 하겠다.’라는 목적의식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해 진다.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자, 교육기자재를 만드는 상품 기획자, 기업가, 또는 멘토, 컨설턴트 이렇게 다양해 진다. 단지 무엇, What, 회사만 바라보고 있다면 선택이 어려울 것이다. 조금 넓게 이유 생각하면 좋겠다.

 

▶ 최근 두산 인프라 코어를 보듯이 젊은 나이에 힘들게 들어간 회사에서 원하지 않게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의 열쇠를 개인에게만 둘 순 없다. 사회적인 환경과 시스템이 문제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건 그 친구들의 노력이 부족해서도, 그들에게 잘못이 있어서도 아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상황이 바뀐 것이다. 그것도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저 아쉬워만 해서는 해결되는 것이 없다. 정말 힘든 상황이지만, 결국 해결의 열쇠는 본인에게 둬야 한다. 솔직히 이렇게 구조조정 하는 상황은 더욱 심해질 것 같다. 개인 혼자서 시스템을 바꿀 힘이 없다면 현재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이런 변화를 미리 예상하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땅을 디뎌야만 걷거나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다고? 계속 실험하라.

 


▶ 회사를 떠나는 것이 정답인가?

아니다. ‘회사를 떠날까 or 말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회사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다. 무조건 회사를 떠나는 것만은 답은 아닌 것 같다. 회사 안에서 더 빛이 나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 회사에서 조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자신에게 맞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건 우열을 가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그만 둬야지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어라고 생각하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두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에 고민해 보고 떠나기로 했다면 회사를 다니면서 많은 실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 그냥 이 따위 회사 떠나고 싶다.’라는 불평 말고 더 나아가 그럼 떠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로 생각을 길게 늘여 보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것들을 실제로 해보면 좋겠다. 강연을 듣거나 배우거나 실제로 해보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자신의 관심사나 작은 장점들을 좀더 길고 깊게 파보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막연히 책을 쓰고 싶다.’늘 늘여나가서 25페이지 정도의 글을 써보고 이북으로 만들어 보면 좋겠다. 이직, 전직을 생각한다면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 찾아서 만나 본다던가 하는 것도 그렇다. 인생의 작은 실험들을 많이 해야지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 회사를 떠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적당한 단어가 안 떠오르는데, 주체성이 필요할 것 같다. 본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힘일 것 이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가 회사를 떠나면 갑작스런 자유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를 허투루 보내면서 후회하고 그 하루가 쌓여서 일년을 그냥 허송세월 하는 사람도 봤다. 나 역시 그랬다. 회사에서는 바쁘다 보니 짬이 생기면 그것을 정말 알차게 내 시간으로 썼다. 그런데 하루가 통째로 생기니 스스로 자기관리를 하지 못하고 허투루 보낸 시간이 많았다. 나도 회사라는 시스템 쳐 놓은 규율에 익숙한 상태에서 스스로 자신을 자율적으로 통제 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내가 이렇게 나약하고 나태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했었다. 외부에서 통제를 받는 것을 떠나 스스로를 컨트롤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생기는 것 같다.

 

▶ 회사 생활 동안의 의미와 퇴사 후 잃게 된 것은?

사람들은 약점보다 강점을 키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강점이 커지려는 걸 발목잡고 있는 커다란 약점이 있다면 그건 제거해주는 게 좋다. 나의 직장생활은 나의 강점을 더 키우기 위해 그런 약점을 없애는 기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안될 거라 생각했지만 일단 들이대 보고, 나와 완전 다른 사람들도 상대해 보고 거친 상황도 겪어보았다. 그런 과정에서 성격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었다.

잃은 것이 있다면 다달이 나오던 월급.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주던 회사라는 브랜드를 잃었다.

 

▶ 회사의 삶, 그리고 회사를 떠난 삶에 점수를 매긴다면?

지금의 삶은 약 50점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는 성장이라는 단어에 애착이 크다. 회사를 떠나면서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목표를 높게 잡았기에 점수가 높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그 동안 특별히 심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성장하려는 사람이었다. 회사 생활할 때는 40점 정도다.

 

▶ 본인이 만들고 싶은 조직은 어떤 곳인가?

내가 만든 회사의 조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서도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너무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조직원을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조직원이 회사 안에서도 즐겁게 일하고 회사를 떠나서도 스스로 설수 있는 힘을 갖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세상 모든 직장인은 이미 충분히 고생 많이 하고 있다.” 라는 말을 하고 싶다. 주변에서 이거해라, 저거해라요구가 너무 많다. 그러면서 , 내가 무언가를 안하고 있구나, 이거 끝나면 바로 이걸 해야 하는 구나라며 자괴감과 지나친 피로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충분히 고생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주위에서 많이 봤다.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 같은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평범해 보이는 직장인 한명 한명이 모두 의미있고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  회사생활 3, 서른 살, 아직 무언가를 판단하기에는 짧은 시간, 어린 나이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인터뷰 10분 후. 이런 생각을 한것이 창피했다. 그의 눈빛은 또렸했고 말은 부드러웠지만 가볍지 않았다. 자신이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직접 경험했던 분야의 Pain Point를 해결하고 싶다는 말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자신만의 명확한 생각, 가치관, 주체적인 믿음. 그것을 가지고 액션플랜까지 세우고 회사를 떠나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이 일견 부럽기까지 했다. 그의 서른 살의 모습에서 생각의 깊이가 얕았던 나의 서른 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해 꾸준히 오랜 시간 노력한 후 주체적으로 새로운 도전의 길을 떠난 청년의 모습은 이미 아름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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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6 _ '회사인간'이기를 거부하고 미래에 뛰어든 남자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10.29 08: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기술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을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지금 베이비부머 이상의 나이 분들에게는 꽤 큰 충격이 될 수도 있다. 그 분들이 IT를 배워도 젊은이만큼 잘 하기 힘들다. 그분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꽤 남아 있는데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젊은이들에게는 기술의 발전은 놀라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기술이 직업을 빼앗아가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도 못 찾았다. 다른 학자들도 그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d)에서 더 나아가 테크놀로지 디바이드 (Technology Divided)도 생길 것 같다.

특히 지금의 50대 이상 분들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직 사실 날이 많이 남아 있는데 기술의 발전을 못 따라 가면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을 우려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어르신 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테크놀로지 디바이드 관련해서 교육기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그 분들께 무엇을 가르쳐 드려야 할지는 아직 의문이다. 솔직히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 같은 개인이 답을 낸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 미래캐스터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힘든 적은 없었다. 그 회사들 다 때려 치고 내가 원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사치라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문제라기 보다는 나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모든 문제는 다 도전이자 발전의 계기인 것 같다.

 

▶ 요즘 가장 중점을 두고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교육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모든 동영상 컨텐츠를 담을 수 있는 홈페이지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http://www.myf21.net) 만약 무언가를 판매한다면 미래기술과 관련되어 교육에 도움이 되는 키트를 판매할 것이다. 어떤 파트너사와 함께 만들어 갈까가 가장 고민이 된다. 내가 전하려는 가치와 일맥상통한 가치를 함께 하는 분들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교육도 즐겁고 재미나고 펑키하게 해주고 싶다.

 

▶ 소개한 기술 중에 우리 삶에 곧 현실이 될 기술 하나만 소개해 달라.

기술로 보자면 3D 프린터가 가장 현실에 가깝다. 나도 지난달에 3D 프린터를 구입해서 조립해서 물건을 만들어 봤다. 집안에 작은 공장이 생긴 것 같다. 80만원을 주고 샀는데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핸드폰 보다 싼 가격이다. 재료값은 4~5만원이면 3달은 충분히 쓸 수 있다. 조작하는 방법도 하루만 배우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 보면 그 느낌은 완전 다르다.  언론, 혹은 일부 돈벌이 도구로 삼으려는 곳에서 3D프린팅 자격증을 말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인식의 벽을 만드는 것 같다. 3D 프린터가 뭐라고 자격증을 따야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드는지 모르겠다. 기술을 모두가 향유할 대상이 아니라 무분별한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나는 3D 프린터로 간단한 브로치를 만들어서 보여줄 것이다. 눈높이나 문턱을 낮춰주고 싶다.

 

▶ 기술의 발전이 회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또한 기술의 발전은 대기업의 해체를 촉발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수많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대량 소비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대량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것이 대기업의 생태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기호는 세분화 되고 또 저성장으로 많은 소비를 할 수 없게 되고, 중국이나 인도에서 나오는 상품으로 가격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다. 쉽게 말하면 벌써 샤오미 로부터 시작된 가격혁명이 그렇다. 덧붙여 오픈소스나 메이커스 운동과 같은 자급자족 문화가 확대가 되면서 대기업은 서서히 성장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 이렇게 기술변화가 직장인들의 일하는 형태도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럼 직장인들은 지금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내 주위 친구들 같은 30대 초반의 직장인들은 매일 야근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변화를 예상하고 준비할 만한 물리적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회사 밖에서 변화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안다고 한들 피곤해서 준비하지도 못한다. 직장인들이 바쁘면 바쁠수록 위험한 것 같다. 어느 정도는 회사와 자신의 인생을 분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회사가 아닌 개인의 미래를 준비할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 만약 50대에 아무런 준비 없이 회사를 나온다면 그 끝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 디지털 노마드라는 일하는 형태가 확산될 거라고 믿는 이유는 무언가?

간단하다. 취직할 곳이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을 맺고 한 회사에 오래 다닐 만한 곳이 줄어들 것이기에 프리랜서 형태의 디지털 노마드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손대표님도 얘기했듯이 정규직은 줄어들 거고 지금의 프리랜서와 같은 일하는 형태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기술에 맞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 지금 1억원이 있다면 무엇에 쓸 건가?

오프라인 교육장소를 얻고 싶다. ‘사람들에게 배를 만들게 하려면 바다가 얼마나 멋진 알게 하라.’ 라는 말이 있다. 내가 지금 알려주려는 것을 동경하게 하고 그 동경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 교육으로 돈을 벌고 일자리 창출까지 선 순환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 특이한 일을 하기에 특이한 요청이나 기회가 생길 것도 같다. 어떤가?

한국경제 TV에서는 ‘1인 미디어에 관한 강의 요청을 받기도 했다. 혼자 계획하고 스크립트를 짜서 혼자 촬영하고 미디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인천 지역방송에도 출연했었다.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대표들이 만나고 싶어한다. 내가 운영하는 미디어를 홍보의 채널로 활용하려는 이유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어떤 직업인이라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영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행적으로 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채널로 과거가 아닌 지금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 리처드 브랜슨을 존경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고 싶다.

존경하는 사람을 정해놓고 따라 하면 지름길로 갈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잣대로 성공한 사람을 평가하려고만 한다.” 이 이야기는 총각네 아채가게 이영석 대표가 해 준 말이다. 그래서 나도 내가 존경할 만한 사람을 정해 놓고 최대한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리처드 브랜슨이라고 생각했다. 또 배달의 민족의 김봉진 대표는같은 일을 3개월만 반복해 보면 굉장히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리처드 브랜슨을 만날 수는 없으니 그가 쓴 칼럼을 3개월 동안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했다. 

 

▶ 외국의 첨단 기술을 유투브로 소개하는 것도 많다. 그러한 컨텐츠 제작의 Source는 어디서 얻는가? 즐겨찾기를 해 놓고 항상 보는 사이트는 있는가?

바로 페이스북이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은 모두 새로운 기술이나 Tech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찾아서 올린 내용을 좀더 찾아서 구체화 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의미에서 원천은 일종의 집단 지성이다. 예전에는 박용후 이사님의 글에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책이나 신문, 유투브 추천영상도 좋은 컨텐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나에게 인사이트를 많이 주는 곳은 딱히 없다. 예전에는 Wired라는 사이트가 제법 괜찮았는데 지금은 나보다 소식이 늦을 때도 있고 텍스트와 사진 위주라 많이 안보고 있다. 지금 보면 내가 운영하는 페이지가 가장 쉽고 빠르게 미래 첨단 소식을 전해주는 곳이다. 일반인 분들이라면 나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면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최고일 것이다.

 

▶ 직장인들에게 미래소식의 입문과 현실을 깨닫기 위해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은?

일단 박용후 이사님의관점을 디자인하라나는 세상으로 출근한다를 추천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분과 책을 읽은 분들의 호불호가 많이 갈려서 조금은 조심스럽다. 나는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읽어본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직업에 대해서 정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동영상 기획, 촬영, 편집, 후 작업까지 혼자서 다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달라.

참고로 하루 24시간 나는 미래소식만 생각한다. 그리고 전달하려는 주제와 컨셉을 정한다. 그리고 콘티를 직접 짠다. 그리고 접근하려는 올바른 수단을 찾는다. 요즘 세상이 정말 좋은 것이 구글, 네이버 그리고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나오지 않는 정보는 없다. 나도 미래예보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써봤다. 필요한 기능은 검색하면 모두 나온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 스마트폰 하나로 촬영을 하고 또 다른 스마트폰으로 핀 마이크를 연결해서 녹음한다. 처음에는 녹음 소리가 울려서 낙원상가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고가의 장비를 살까 고민도 하다가 결국 힘들게 알아낸 것이 스마트폰 녹음이었다. 너무 깨끗하게 잘 된다. 낙원상가에 계신 분들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분야에는 전문가지만 스마트폰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다. 개인이 영상을 만들 때는 스마트폰과 영상 편집 툴 하나면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컨텐츠와 그 컨텐츠를 세련되게 보여주는 방법이다. 그래서 자막과 영상편집이 지루하지 않고 세련되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 회사를 그만둔것에 대한 후회는 없나?

없다. 힘들 일이 있거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마다회사 다녔을 때를 생각한다. “지금이 회사 다닐 때 보다 낫다”, “내가 만약 회사를 다녔다면 매일 야근하고 매몰된 삶을 살았을 텐데..” 라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현재의 삶에 더 충실 하게 만들어 주는 자극이다. 물론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 중 하나는 박용후 이사님처럼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이다. 그 능력을 더욱 더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책을 써보는건 어떤가?

미래의 소식을 전하는데 책보다 영상이 훨씬 더 효율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책보다는 영상에 주력하고 있다. 요즘 책을 쓰는 이유가 자신을 알리는 하나의 스펙으로 쓰고 그걸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쓰면 네이버에 인물 검색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영상이라는 매체가 훨씬 더 나와 맞는 것 같다.

 

▶ 본인 스스로 만든 컨텐츠 중 가장 반향이 컸던 것은 무엇인가?

미래기술 유망 직종 총정리라는 컨텐츠 였다. 그 컨텐츠는 가수 인순이 선생님이 강의에 필요하다고 요청을 주셔서 만든 것이었다. 전달하고 나니 조금 아까워서 거기에 나레이션을 입혀서 올렸는데 가장 반응이 좋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삶이나 직업을 얻는 것 등이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밀접한 관심사 이기 때문인 것 같다.


▶ 한국이라는 땅을 딛고 서 있는 입장에서 우선 좀 많이 유명해지는 일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하고픈 일을 하는 건 어떤가?

그런 조언을 들은 적도 많다. 지금 심정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버티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흠집을 내고 싶지는 않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다른 미래학자의 이야기 보다 나의 영상이 훨씬 공유도 많이 되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좀 나이가 많은 분들이나중에 니 컨텐츠에 전문가들이 뛰어들면 누가 니 얘기를 듣겠냐?” 이런 예기를 한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가 나와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계속 증명하고 있다. 매일경제 TV도 짧은 코너지만 다른 교수님들이 출연할 때보다 내가 나올 때 시청률이 더 높게 나오기도 한다.

 

▶ 회사를 다니면서, 이제 때려치우고 싶다라고 말하는 30세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정 싫으면 관둬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좀더 말하자면 법륜 스님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지금 이 시대의 한국은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 시기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미친 듯이 해보고 안되면 국가에서 도움을 줄 것이고 그것도 안되면 우리 절에 들어와라. 내가 밥은 먹여 주겠다.” 아무리 망해 봤자 밥은 먹고 살 수는 있다. 우리나라의 빈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 같다. 남들보다 조금 못 먹고 못사는 것이다. 물론 가정과 아기가 있으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 지금 당장 하루 먹고 살기도 빡빡한데 뭔 미래냐?”라고 말하는 50세의 어르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말해드리겠는가?

내가 조언을 할 입장은 아니다. “나중에 10년 후에 어떻게 하실 려고 하세요?” 라고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싶을 뿐이다.






 

▶ 누군가가 찾아와서 황준원씨 당신과 같이 미래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우선 얘기를 많이 해 보겠다. 나와 같은 방향성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서 이 일을 하기 원한다면 나도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양할 것이다. 또 하나는 불만만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일할 수가 없다. 특정 업종에 있는 분들은 정부나 환경 탓과 욕만 계속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분들과는 좀 일하기 힘들 것 같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해 봅시다와는 함께 할 수 있는데, “이래서 못해먹겠다.” 라고 비난만 하는 부정적인 분들과는 절대 일을 못할 것 같다.

 

▶ 회사를 그만두고 미래를 소개하고 있지만 아직 돈을 못 벌고 있는 지금 삶의 만족도는?

100점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무엇인가에 불만을 갖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 어려움 때문에 절박해 지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다.

 

▶ 이 인터뷰를 보고 누군가가지 하고 싶은 일 한다고 회사에 부정응자고, 회사 그만두고 어머니 걱정만 하게 하고 지 멋대로 사는 나쁜 놈이라고 악플을 단다면 거기에 뭐라고 다시 리플을 달 것인가?

,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라고 끝낼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내가 비난하거나 욕할 필요나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긍정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다. 

 

▶ 굳이 대학이나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 그 시간에 무얼 하면 좋겠나?

나를 알고 세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믿는다. ‘자기 탐색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 다음에세상이 이렇게 변화하니 나는 무슨 일을 해야겠다.’ 라고 정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지금 젊은 직장인들이 젊은 나이에 방향성을 찾지도 못하는 이유가 이런 탐색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이렇게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자체를 할 이유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버티다가 떠나면 더욱 더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도대체 무엇을 준비한단 말인가? 먹어봐야 맛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그리고 나와 맞는 일이라는 학원강사 일을 또 그만두고서 몇 달 동안 나를 제대로 찾으려는 노력을 했기에 지금의미래캐스터라는 방향성을 찾은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도 회사 생활을 해 보니 내가 정말회사인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 탐색과 경험은 너무너무 중요하다. 그 다음은 세상의 변화를 알고 준비하고 이용하고 그 시류를 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인생이 충만해질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 같다.

 

▶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이 있다면?

하는 한창 대학생활을 할 때 어머니에게 정신병원에 가봐야겠다는 말을 했었다. 좋아했었던 음악을 그만두고 나니이렇게 좋아하는 일이 없을 수도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하는 일이 없었고 무기력 했었다. 그 이후에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E bay에서 장사도 해 보고,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모텔 예약사이트도 만들려고 시도해 봤다. 그러다가 정말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계속 질문하기 시작했다. 계속 질문하고 망설이지 말고 행동하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실마리를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워낙 개인차이가 심해서 나의 경험상 그렇다는 것뿐이다.

 

▶ 이 일을 하면서 뿌듯한 순간이 있다면?

상상도 못했던 분들, 내가 동경했던 분들을 만날 때 뿌듯하다. 최근에 로봇학자이신 데니스 홍 박사님을 만났다. 데니스 홍 박사님에게 연락이 와서 최근에 식사를 함께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구나. 그게 아니면 TV에는 어떻게 출연할 수 있었겠나? 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나의 효용이 올라가면서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또 내가 남에게 무언가 전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은 미치도록 짜릿한 일이다. 미래 소식을 원하는 사람은 언제라도 강연 문의를 부담 없이 해달라. ^^ 

 

▶ 황준원에게 회사, 그리고 퇴사란?

회사는산업화 시대의 유물인 것 같다. 퇴사는새로운 시작이다. , 자신을 알고 미래를 읽으려 노력하고 준비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것 같다. 

 

▶ 미래란?

영화빽 투더 퓨처가 말한 2015년의 미래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향성은 맞았다. 최고로 꿈꾸는 미래가 반드시 이루어 져야지만 행복할 것이라고 나 자신도 자꾸 착각하게 된다. 나는 미래는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꿈꾸는 미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현재의 내 삶을 불행하게 느껴서는 안 된다. 미래의 방향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면 더 적게 방황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삶의 모토는 무엇인가?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자’ 그것이 모토다한번 사는 인생 여행이니 최대한 즐겁게 경험을 많이 하고자 한다다양한 사람을 만나야만 그 여행이 풍요로워진다. 내가 또래 친구들은 만나면 경험의 수준이 거기서 거기라 자극을 받지 못한다하지만 역경을 이기고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엄청나게 자극을 받고 배우게 된다모든 자기계발서 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성공자와 만나라혹은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만나라” 라는 말을 한다하지만 부자나 성공자가 나를 만날 이유가 없다그들도 더 잘되려면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내가 부자나 성공자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그런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꼴통쇼라는 강연회가 많이 참석한다강연 뒤풀이를 가면 내가 평소에 절대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이 사람도 평범한 사람이구나라고 느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많이 얻는다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단지 변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지 않았을 뿐이다만나는 사람이나 환경을 바꾸면 사람을 바뀌게 되어 있다. 







▶▶ 누군가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 그를 바라 본다면 '또라이부적응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그보다는 차라리 '유쾌한 또라이답답함 부적응자'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다가장 긴 4시간이 넘는 인터뷰 였지만 그의 눈은 빛났다 그 빛은 맑았다단지 회사가 나랑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미래를 소개하며 행복한 방향성을 얘기하는 그의 나침반은 올바른 방향을 향했다인터뷰 동안 5번의 하이파이브를 한것은 처음이었다나와 통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었다덧붙여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방향을 정하고 행동하는 다른 방면의 사람을 만난 희열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고 오랜시간 정리를 하면서 소망이 있다. 바로 "이 글은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인터뷰이의 삶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삶의 편린을 마주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기분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미래를 소개하며 동시에 자신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Future Caster 황준원. 3년 정도 후에 그의 이름은 꼭 다시 검색해 보길 바란다. 놀랄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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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6 _ '회사인간'이기를 거부하고 미래에 뛰어든 남자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10.28 10:21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를 해 달라.

저는 미래 소식을 전하는미래캐스터(Future Caster)’ 황준원 입니다. 1983년생 33살 입니다. 미래 소식을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커리어 소개를 부탁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에 손을 놓았고 자퇴까지 생각했었다. 그 당시 대학에 가야 하는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작곡 공부를 했었다. 2002년에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에 바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맘 잡고 다시 공부를 했다. 2004년에 인하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한학기만 다니고 바로 휴학을 하고 음악 공부를 했다. 나는 외동아들인데 아버지께서 23살 때 돌아가시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음악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 밥벌이를 하기 위한 취업을 위해서였다. 일어전공이니 일본어 자격증을 따고 스펙을 위해서 토익 공부도 엄청 빡시게 해서 975점을 받았다.

2009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병원 인사팀에 입사했다. 사립대학교 교직원이면 상당히 안정적인 곳이어서 어머니께서 기뻐하셨었다. 하지만 나는 입사 합격 통지를 받고부터 무언가가 목을 죄어 오는 공포를 느꼈다. 입사를 위해서만 보낸 시간 동안 전혀 생각지도 않은 폐쇄공포와 비슷한 것이었다. 쉽게 잘리지 않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무언가를 시도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려는 의욕은 전혀 없고 잘리지 않기 위해서 라인타기, 파벌 싸움을 입사하자마자 목도하게 되었다.  oo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쪽과 oo대학교 쪽으로 나뉘어 서로 싸웠다. 드라마에서 충격을 받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느낌을 입사 후 2달만에 몸으로 알게 되었다. 머리가 띵 해 지면서 주변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그런 현상이 자주 생겼다.

입사 후 3개월 만에 인하대학교 병원을 그만두었다. 나는 인천 토박이라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바로 직장이었는데 그 길을 걸어가는 것조차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격하게 반응을 했다. 회사만 가면 머리가 멍해지고 뒷목이 뻣뻣해 지며 모든 생각이 멈추는 그런 상황이 자주 생겼다. 원했던 직장도 아니었고 나를 표현 할 방법이 없는 일이 힘들었다. 일하다가 바람을 쐬러 나와도 온통 환자밖에 없어서 힐링이 아니라 더욱 힘이 빠졌던 것 같다. 나라는 Human Being은 회사라는 곳과 전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대단히 자유로운 영혼인데 옷 입는 것부터 기계에 유니폼을 입힌 것 같은 정장 차림도 나를 속박한 하나의 이유였다. 그 때 사진을 보면 욕망이 거세당한 나의 모습 그대로 인 것 같다.

 

▶ 3개월 만에 첫 회사를 그만뒀다.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나는 전공도 어학이어서 해외를 상대로 하는 일을 늘 꿈꿔왔다. 그렇다면 공부를 제대로 해서 일어, 영어를 더 잘해서 사람들이 나를 찾게 해야 만들고 싶었다. 어학공부를 하던 중에 인천시 관광협회에서 영어 통역담당을 구하는 공고를 봤다. 보수는 적었지만저 일을 하면 돈도 받으면서 외국어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원했고 합격했다. 인천시의 관광안내소에서 일을 했다. 사실 나는 일어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영어는 토익만 975점 일뿐 말은 거의 못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오는 전화에 응대도 제대로 못했었다. 비는 시간에 미드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미친듯이 했다. 그러다 보니 영어 회화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솔직히 이 곳은 내가 다녀본 직장 중에 최고였다. 다른 근무자들의 만족도도 엄청나게 좋았다. 돈은 적게 받아도 시간이 여유롭고 조직 내 서열도 없었고 자유로운 업무환경에서 일하며 언어를 배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들어오는 사람은 도움이 필요해서 오는데 그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갑질도 안 한다. 오히려 그 사람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얘기해 준다. 그렇기에 소위 감정노동이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만족도가 높았다. 돈을 받고 사람들을 돕고 그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해주니 이처럼 좋은 일이 없었다. 안타까운 점은 딱 하나, 어린 마음에 어디 가서나 관광 안내소에서 일해라고 말하는 것이 좀 창피할 뿐이었다. 남들에게 말하면 그냥안내원같은 느낌이어서 특히 여자사람들에게 창피했다. 그리고 어차피 계약직 이지만 뭔가 남자라면 더 큰 일을 해봐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아마 지금 선택하라면 이 일을 계속하면서 동시에 다른 투잡을 했을 것 같다.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다. 당시 같이 일했던 선배는 아직도 다니고 있다. 외국인을 돕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고 스트레스도 없는 직업,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꿈의 직업 아닌가? 많은 직장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만한 직장이 없는 것 같다.

 

▶ 그러면 그 멋진 일은 왜 그만 두었나?

그 때 고민을 한 것은 두 가지였다. “여기에 다니면서 투잡을 할 것인가? 아니면 대기업에 도전해 볼까?” 그러던 중 팬택의 해외영업 부분에 원서를 내고 합격 되었다. 회사라는 곳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해외영업이라는 직무는 꼭 경험해 보고 싶어서 원서를 냈다. 하지만 입사를 하고 나니국내영업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팬택에서 했던 일은 한마디로 재고를 떨어내는 일이었다. 당시 스마트폰이 활성화 되어서 베가X 같은 모델이 나올 때 였는데 재고로 남은 피쳐폰을 대리점에 떨어내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이미 스마트 폰으로 시장이 넘어온 상황이어서 남은 재고폰을 파는 것은 가격을 낮춰주고 대리점주에게 읍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이러한 영업 일이 전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신입사원에게 300만원 정도의 월급을 주는 회사는 흔치 않다 보니 조금은 갈등을 했다. 하지만 인하대 병원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나의 뉴런 구조와 대기업 회사 일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출근할 때 마다 죽으러 가는 것 같았고, 일터에서는 정신이 멍해져서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돈을 꽤 주는 일인데 성격을 180도 바꾸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갈등을 많이 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해외영업으로 이동을 요청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기에 미련 없이 나왔다.

 

▶ 뭔가 확정되고 결정지어진 관계를 싫어하는 것 같다. 아니 못 견디는 것 같은데

맞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병명을 붙였다. 확정 공포증이 그것이다. 무언가가 확정되어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결정되는 것을 참기 힘들어 하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때는 거의 참는 것이 불가능 했다. 팬택을 나온 이후 뚜렷이 할 것이 없어서그래도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곳의해외영업쪽에 지원을 했었다. 합격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수 없었다. 그전 회사에서의 그런 답답하고 견딜 수 없는 그 느낌이 트라우마 처럼 떠올라였다.

 

▶ 회사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많은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나는 회사라는 곳과 계약을 맺고 일을 하기에 적합한 인간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또 회사를 생각하면 구박받았던 기억뿐이어서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 뭐를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혼을 내면 이해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없이 모른다고 혼만 내니 더더욱 좋지 않은 기억만 쌓였다. 팬택에서 일했던 짧은 시간은 전쟁의 기간이었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분위기가 모두 전쟁터였다. “, 삼성 애들 지금 뭐 하는지 빨리 알아봐.” “, 보조금을 올렸다고?” “걔내들이 똑똑한 애들인데 괜히 그러지는 않았을 꺼야.” 하면서 남을 따라 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아직도 옥상에서 어느 부장님이 해 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 준원아. 회사는 왜 들어 왔냐? 회사는 힘들다. 돌아갈 데가 있으면 돌아가라라는 말을 했다. 그 분은 꽤 잘나갔던 분이었는데 술자리에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낙심했다. 힘들고 어려워도 윗사람이 뭔가 동기부여가 되면 좋겠는데 너무 힘들다는 얘기만 하니결국  나도 결국 저렇게 되겠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인공지능 콘서트>


 

▶ 많은 젊은 직장인들이 옆자리의 선배처럼 되겠구나.. 하며 낙담을 한다. 왜 본인도 옆자리에 선배와 똑같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나?

물론 여기에서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기회를 잡아서 더 성장해서 옆자리 선배처럼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나의 천성과 맞지 않는 일인데 굳이 내가 이런 스트레스를 여기서 견뎌야 하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또 하나는 기회의 문제였다. 내 나이가 29살 이었는데 지금 내가 나와 맞지 않는 곳을 떠나지 않으면 더 이상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입사원 채용의 마지막 나이를 그저 무작정 참으며 견디는 것을 아니라고 생각했다.

 

▶ 경력이 짧고 일관성이 적은데 커리어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본인은 궁극적으로 어떤 회사에 들어간다면 흥미를 붙이고 오래 다녔을 것 같나?

없는 것 같다. 회사에 다닌다는 생각은 현재는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회사가 영국의 ‘Virgin’인데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버진과 같은 회사를 내가 만들던가 아니면 나와 파트너십을 맺고 일하는 것은 가능할 것도 같다.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보면 회사라는 조직에 몸을 담그는 것은 나의 Nature와 맞지 않는 일이다.

 

▶ 그럼 회사 다닐 때 본인은 한마디로 어떤 사람이었나?

항상이게 뭐지? 왜 이래야 하지?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왜 저래야만 하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에 있는 선배들이 하는 일과 그 이유에 대해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답답했다.

 

▶ 회사를 짧게 다니고 또 지금은 회사원이 아닌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은 뭐라고 했나?

인하대 병원을 그만둘 때는 안타까워하셨다. 그 외에 특별히 별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어릴 적부터 얻어 키웠다고 할 정도로 간섭을 크게 하시지 않고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놔둬도 알아서 길을 찾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지켜보고 계시다.

 

▶ 마지막으로 팬택이 회사로서는 마지막인가? 왜 떠났나?

내 선배들이 왜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해를 못했다. 언제까지 월요병을 겪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다른 회사에 지원을 하는 것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내가 회사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행복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회사를 떠났다. 행복할 수 있는 희망이 회사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 회사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절대로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 라는 다짐을 굳게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저렇게 안주해있지 말아야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다짜고짜 혼내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패스트 팔로잉만 해서는 절대로 즐겁게 일할 수 없겠구나. 따라가는 인생을 살지 말아야겠다.” 이런 것들이 내가 배운 것이다. 동기 중에서 아직도 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회사는 어디 가나 똑같이 힘들다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개선을 시키는 것이 맞는데남이 힘드니까 나도 힘든 것이 맞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몇 십년 동안 이 상황을 그냥 힘든 채로 버텨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냥 버티는 것은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솔직히 회사에서는 배울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 무언가를 준비하고 그만둔 건 아닌 것 같다. 팬택을 나오고서는 어떤 일을 했는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암흑기였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는 스펙만 쌓아서 회사만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회사형 인간이 절대 아니구나. 절대로 회사라는 곳을 못 다니겠구나.’ 라는 확신은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해답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를 책을 읽고 책에서 알려준 대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니 조금 기준이 선 것 같았다. 엑셀로 표를 만들어 나를 분석해 보다 보니 나와 잘 맞는 직종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일, ‘학원강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니남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는 일’, ‘말 하는 일’, ‘늦게 일어나도 되는 일’, ‘그리고 돈을 버는 일’, ‘남을 돕는 일이었다.

 

그래서 인천 송도에서 영어 학원강사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갖게 된 소망 하나는웃으며 일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웃을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원에서는 애들을 가르치면서 애들과 깔깔거리면서 웃을 일이 너무 많았다. 또 애들을 가르치면서 조언과 비슷한 얘기를 해주다 보니 나조차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애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애들이 말을 안 듣고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구나라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30살의 어른 기준으로 10대를 대하고 있었다. 결국 관점을 바꿔서 애들이 편하고 쉽게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하나? 를 계속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습법을 고민하고 적용하면서 스스로 엄청나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학원 강사 일을 거의 3년을 하면서 나는 애들을 혼내지도 않았기에 학생이나 학부모도 좋아했었다.

 

▶ 어찌 보면 전공도 그렇고 어문계열 일을 했다. 요즘 인문계열, 어문계열 출신이 너무 취업이 어렵다. 그런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학교를 다니면서도 어문계열 후배들에게 다른 과로 전과를 하라고 얘기 했었다. 또 휴학을 하고 세상과 부딪혀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라고 얘기했었다. 부딪히면서 체험한 배움만이 진정한 최고의 배움이기 때문이다. 2015년 현재만 보더라도 어문계열 장점 하나만으로 취업해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문계열만 가지고는 세상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학교도 굳이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 4년 동안의 돈과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그리고 진짜 필요한 공부와 경험을 쌓는 게 휠씬 더 낫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여행을 다니거나 생각한 것을 창업을 해봐도 더 큰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그래도 도와 줄 수 있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부딪혀 보고 망해보기도 하며 체험을 하는 것이 맞다. 경영을 배우는 것 보다 실제로 리어카 장사라도 창업을 해보며 배우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언어를 배우더라고 실제 그 언어를 쓰는 사람과 부대끼며 문화와 함께 흡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배우는 아니 주입 받는 것은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최진석 교수님이라고 있는데 그 분이이론이라는 것은 찌꺼기다라고 말했다. 이미 벌어지고 난 일을 분석해서 그저 이론을 세우는 것뿐인데 그렇게 지나가 버린 것을 학문으로 배우는 것이 진짜 배움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일을 사례분석으로 배우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을 좀더 분석해서 자신을 사례로 분석하고 예측해서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문계열 이라면 굳이 대학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일부 학자가 될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인문계열에서 배우는 것은 이제 상식, 필수 교양 수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앞으로 약 10년 정도가 대학교육의 큰 변화시기인 것 같다. 외국처럼 불필요한 과는 없어질 것이고 실력 없는 대학도 사라질 것이다. 그 대신 변화하는 현재에 맞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사회적 인식도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 계획 없이 마지막 회사를 떠났다. 왜 그랬나? 두려움은 없었나?

회사에 있으면 하루 종일 멍했다. 회사에서의 나의 상태는 병자와도 같았다. 병을 나으려면 벗어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말할 사람은 동기뿐이었고 선배라고는 말이 아니라 다그치는 사람밖에 없었다. 회사를 떠난다는 두려움 보다는 회사에 있어서 생기는 두려움이 더 컸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진짜 몸에 이상이 생기는 병자가 될 것 같았다. 솔직히 무언가 상황이 애매하면 그냥 버티며 다니는 것 같은데 나처럼 확실한 징후가 너무 확실했기에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너무 잘 다니고 있다. 매일 12시까지 야근하고 있는데 그 친구도 회사에 들어가서 자신과 잘 맞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상태가 너무 한쪽의 극단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이런 것을 느낄 수도 없었다. 퇴사라는 선택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장밋빛 미래가 열리는 것 같았다.

 

▶ 성격이나 마인드가 일반인과는 많이 다르다. 회사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았나?

나를 아는 친구들은너 왜 이렇게 평범해 졌냐?’라는 말을 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회사에서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는 겨울에 네이비 색 가디건을 셔츠 위에 입었다고 욕을 들었던 거다.  정장도 그레이 칼라 체크 정장을 입었는데 그것 입었다고 이상한 놈이라고 욕을 먹었다. 가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났던 나는괴상하고 요상한 놈이었다. 그런 선배 들에게 칭찬이라고는 한 톨도 들은 것이 없었다. 잔소리와 욕만 먹었다.

 

▶ 선배들이 신입사원에게 왜 그렇게 잔소리만 했다고 생각하나?

글쎄 아마도 살가운 척, 복종하는 척, 치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남들이 하는 행동이 내 기준으로 이해가 안되니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 지금은 미래를 예보하는미래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팬택을 그만두고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 그 때부터 책이라는 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계발서나 미래 트랜드 관련 책도 꽤 많이 읽었다. 학원 강사로서 처음에는너희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만 더 좋고 많은 기회가 생긴다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미래의 트랜드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다가올 미래가 지금의 교육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애들에게 이렇게 공부하라고 계속해서 말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암기 위주의 이런 공부만 계속 하다보면 다가올 미래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미래 트랜드 책을 보면 지금의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게 잘못되었고 오히려 그저 삽질을 하는 구나 라고 느꼈다.

미래관련 책과 스님들이 쓴 책도 많이 읽었다. 그 책에서는 현실의 평안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했다. 하지만 학원은 미래의 불안을 팔면서 그걸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 상담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학생이 공부를 더 해서 이런 강의도 들어야 좋은 대학 간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내 생각과 현실이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학원 강사 일을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백 달러로 세상에 뛰어 들어라라는 책과관점을 디자인하라”, ‘평생 월급보장 프로젝트라는 책을 읽고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돈 없이도 인터넷을 발판으로 Lean하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면 무엇이라도 시작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미래 트랜드 책에는 별로 이견이 없다. 거의 같은 방향성을 이야기 한다. 그 중디지털 노마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일과 직업에 대해 동경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2014 1월에 학원 강사 일을 그만두었다.

 

▶ 지금 수입을 어떤가? 돈을 벌리나?

아직 벌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확신은 있다. 왜냐하면 나 같은 미래의 트랜드를 소개하고 알려주고 교육하는 일의 필요를 곧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자가 없는 것도 이유다. 솔직히 지금은 나보다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알게 된 것을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쉬운 용어로 설명하는 능력도 있고 미래 트랜드를 빨리 캐치할 수 있는 영어, 일어를 내가 잘 한다는 것도 이유다. 동영상을 보면서 영어, 일어는 직접 해석하고 자막도 넣는다. 미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교수나 학자들이 많은데 그 분들이 어려운 말을 쓰고 재미도 없이 딱딱하게 말한다. 그런데 나는 딱 보면 미용사 같은 편한 이미지라 더 쉽게 전달 할 수 있는 외모와 능력도 갖추었다. 그래서 영상이나 자막도 클럽, 팝아트 같은 익숙하고 트랜디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또 나는 이 일을 전부 혼자 하기 때문에 나의 장점을 살려서 패셔너블 하고 쉽고 편하게 게다가 빨리 알려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일이 100%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더 열심히 나의 모든 것을 쏟아서 하고 있다.

 

지금 명확한 BM은 없지만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버티면 나중에는 돈이 될 것이다. 지금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은 Tech 기기를 공구라도 하면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 큰 무언가를 하고 싶기에 지금은 오히려 미래를 위해 돈 버는 것을 유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소개하며 남을 돕는 이 일의 가치와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는 나 자체가 브랜드가 될 것이다. 그 이후에 저 사람이 이런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일을 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게 할 것이다. 지금 같은 SNS가 많은 시대에서는 얄팍한 마음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눈치챈다. 미래를 소개하며 남을 돕는 마음을 갖고 행동을 꾸준히 쌓아나가면 나중에는 사람들이 나는 믿고 나와 함께 일을 하자고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일종의 착한 마케팅이다.

 

▶ 사람들이당신 무슨 일을 합니까?” 라고 물으면 무어라고 답하는가?

누군가무슨 일 하냐?’고 물었고 내가 대답을 했을 때 질문자가 쉽게 이해하면 그 일은 이미 확정된 일이고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너 무슨 일 해?’ 라고 물었을 때 설명하기가 어렵고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면, 그 일은 앞으로 더 미래가 있는 새로운 일일 것이다. 얘기를 듣고서그 일이 무슨 일입니까?’ 라고 되물을 수 있는 일이 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일이다. 나는 그 질문에나는 미래소식을 전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면 나의 동영상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보면 믿기 때문이다. 내가 매주 매일경제 TV에서 새로운 기술 전하는 일을 계속 하는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TV에 고정 출연 한다고 하면 인식이나 대우가 달라진다. 그것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다.

 

▶ 매일경제 TV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프로그램 이름은증시 오늘과 내일이고 출연하는 코너는기술돌풍이다. 우연히 아는 분 소개로 추천을 받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 13:00마다 출연을 하는데 프롬프트도 없이 8분짜리를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A4용지 2장짜리 스크립트를 모두 외워서 한다. 나 말고는 전부 교수님들이 출연한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내가 출연하는 부분이 시청률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 본인은 미래학자인가?

아니다. 나는 학위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박사학위를 따고 그것을 기반으로 예측과 조언을 한다. 나는 이와는 다르게 박사학위를 따는 과정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더 배워나가고 있다.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미래학자는공부를 한 사람이고 나는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동시에 전달하는 사람이다. 카이스트 미래학 대학원은 학기당 수업료가 엄청 비싼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배우지 않고 과정 속에서 진행하면서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 미래예보를 하는 이유,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회사를 떠나기 까지는 아주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삶을 살았다. 평범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그러면서 느낀 것은 꼭 전형적인 그 과정 대로만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이었다. 기술을 이용해서 돈을 벌면서 자유롭게 사는 삶을 꿈꾸며 이 일을 시작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개인에게 기술을 기반으로 행복한 삶을 찾아주는 것이다. 꼭 남들이 말하는 학교 가서 공부하고 취업해서 돈 버는 소위옳다고 생각하는 길말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 일로도 삶을 살수 있다는 것, 내가 원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미 성공한 사람 말고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있다.

 

▶ 미래는 무엇에 의해서 변한다고 생각하나? 꼭 새로운 기술만이 미래인가?

가끔은 내가 기술적인 어떤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Tech만이 미래는 아니다. 기술이 삶을 바꿀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내가 소개를 많이 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농촌에 있는 훌륭한 건강한 유기농 식자재를 생산하고 지금의 SNS등을 이용해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도 기술이 될 수도 있다. 기술은 너무 빨리 바뀌다 보니 그것만 따라가다 보면 지쳐서 나가 떨어질 수도 있다. 상투적이지만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이용해서 개인이 행복해지는 삶을 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는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지는 것 같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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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5 _ 대기업을 떠나 스타트업의 자갈밭을 택하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9.30 08: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안녕하세요헬로마이코치 (https://www.hellomycoach.co.kr/) 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 바디온의 대표 조재현 입니다.

 

▶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간략한 소개.

나의 20대는 아주 심플했다. 4수를 해서 01년도에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들어갔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KBS 비타민이라는 프로그램에 학과의 특성을 살려 운동처방사라고 뱃살 빼는 운동법을 알려주는 출연한 기억도 있다. 학교생활 4년을 마치고 2005년에 ROCT로 군생활 2년 좀 넘게 했다.대학 준비를 오래 한 것을 빼고는 남들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전역 후 2008년에 LG U+에 취업을 했다.2010년 직장인 2년차에 맨즈헬스라는 잡지의 쿨가이 컨테스트최종 7인에 선발 되기도 했다.그리고 20156월에 회사를 나왔으니 약 8년간 회사에서 일을 하고 회사를 떠났다.

 

▶ 4수까지 했던 이유가 있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오토바이를 탔다. 어느 날 무면허에 헬멧 미착용으로 경찰에 걸렸는데 그 날이 마침 어버이 날이었다. 결국 밤 늦은 시간에 어머니가 경찰서로 와서 나를 데려가 주셨다. 그 때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그 이후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공부를 등한시 해서 현실을 직시하니 대학에 갈 점수가 아니었다. 겨우 정신 차리고 공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던 꿈을 생각했는데 그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꿈을 나의 현재 때문에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 것이 체육대학 이었다.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대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끌렸다. 하지만 수능을 거의 100일 정도 앞둔 시기에 무리한 실기 준비 탓에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 다시 찾은 나의 목표와 꿈을 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디스크 수술을 했다. 결국 실기 때문에 대학입학에 실패했다.

재수를 준비하면서 기왕 하는거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가기로 결심했다. 결국 재수도 실패했지만 점수나 실기가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삼수를 결정했다. 삼수 준비한 후 원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 대학에 붙었다. 원 없이 놀고 6개월 정도가 지나니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서울대를 목표로 해서 3년을 보냈는데 지금 내 모습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에게 90일이 채 남지 않는 시점에서 다시 대학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 동안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원하던 서울대에 합격을 했다. 어찌보면 4수를 한 이유는 항상 꿈을 포기하기만 했던 나의 청춘의 안 좋은 경험의 사슬을 내 힘으로 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회사에서 했던 업무는 무엇이었나?

대학을 4수까지 해서 들어가다 보니 남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빨리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부모님도 그걸 바라셨다. 그래서 ROTC 2007년에 전역하고 2008년에 LG U+ 에 입사했다. 이동통신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아는 선배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익숙한 곳이라 지원하게 되었다. 2008LG U+ 본사에서 영업지원 팀에서 일을 했다. 입사했을 때 나이가 서른 이었다. 업무는 쉽게 말해 LG U+의 대리점 개설과 관련된 계약을 하는 것이었다. 좋은 장소를 골라 영업점을 오픈하고 입점, 퇴점 계약, 재계약 등을 담당했다.

업무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환경은 대기업답게 아주 좋았다.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기에 내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회사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의 지원이 매우 좋았다. 또 건물주를 만나 임대차 계약도 맺는 등의 외근이 많다 보니 출퇴근이 일반 직장인에 비해 자유로운 것도 좋았다. 업무는 나와는 맞지 않았지만 대기업이라는 이름, 업무 환경 등에 있어서는 매우 좋았다.

 

▶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얘기인가?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세부 사항이 많았고 업무의 특성상 매우 꼼꼼해야 했다. 계약서 문구, 독소조항, 부동산법 등 돈을 다루는 계약일 이다 보니 개인적인 성격과 100% 맞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서류 작업도 많았다.지금 생각해 보니 차라리 직접 영업을 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을 것 같다.

 

▶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마디로 말한다면?

최종적인 모습은 한마디로 굉장히 수동적인 회사원이었다. 미친듯이 열심히 일해서 팀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과가 칭찬이나 인정이기 보다 보다는 시기와 견제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냥 수동적이 되었던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도 견제를 하고 정치에 빠트리려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수동적이 되는 것을 내가 선택한 것 같다.


▶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수동적이란 말이 연상되지 않는다. 왜 수동적인 직장인을 선택했나?

체육교육과 이기는 했지만 입사 후 서울대라는 말이 늘 따라다녔다. 일을 잘 못하면 서울대가 그것도 못해라는 말이 늘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농담이겠거니 했지만 이런 말들이 계속 되다 보니 나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 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담당 지역이 부산이어서 매주 월요일 새벽 운전해서 내려가서 금요일 밤에 올라오는 생활을 일년을 했다. 6개월 동안은 시간이 아까워서 하루에 한끼만 먹고 일만 했었다. 수치로 나오는 약 70% 정도의 정량적인 평가와 팀장평가 30% 정도의 정성적인 평가가 함께 이루어 졌기 때문이었다. 미친듯이 일만해서 정량적인 부분에서는 최고의 평가를 받아도 정성적인 부분은 최저였다. 이유는 하나, 내가 막내라는 것 때문이었다. 오래 일한 사람, 승진 앞둔 사람, 가정이 있는 사람 들에게 정성적인 좋은 평가가 돌아갔다. 평가에 따라 인센티브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기업이 그런 것 같다. 일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자꾸 평가가 뒤로 밀리니 더 오기가 생겼다. 정량적인 부분에서 30%의 정성적인 평가를 압도할 만큼의 실적을 내 보기로 했다. 예전에 추성훈이 재일교포라는 핸디캡 때문에 판정에서 번번히 지면서 그럼 아예 아무 말 못하도록 한판승으로 게임을 끝내야겠다.’ 라는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결국 더 열심히 일을 해서 일등 성과를 냈다. 나는 내심 역시 대단해, 열심히 하더니 잘됐네라는 말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말의 대부분은 오바 하지마라는 말이었다.

못하면 못한다고, 잘하면 잘한다고 뭐라하니 일할 의욕이 싹 사라졌다. 일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롤러코스터 떨어지듯이 뚝 떨어졌다. 그 이후 너무 잘하지도 못하지도 말고 중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자고 생각했다. 일할 의욕을 대가로 헌납하고 조직의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 씁쓸했다. 20156월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직 어머니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모른다. 아마도 회사 일을 하면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거다.



 




▶ 회사를 그만두게 된 사건이나 계기는 없었나? 왜 회사를 떠났나?

5년이 지나면 옆자리 과장이 될 것이고 10년이 넘으면 그 옆에 차장 자리로 갈 것이다. 근무 여건은 좋은 회사 였지만,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첫째 이유다.

또 지금은 100세 시대다. 지금의 어린 친구들은 그 이상 오래 살 수도 있다.회사 생활을 할 만큼 한다 해도 나머지 50년은 회사를 떠나서 살아야 한다는 거다. 절반은 회사에서 살고 나머지 절반을 의미없이 생계를 위해 살아야 하는 모습이 싫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다고 해서 그 길이 반드시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 때 체대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나와는 사업이 맞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 왜 본인이 옆자리의 사람처럼 될 것이라고 단정했는가? 다른 행동 다른 노력을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나?

물론 내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더 창의적인 생각으로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제약이 너무 많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이 부서에 가고 싶다고 해서 그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회사의 인사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회사의 이익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대기업에서 하나의 부품이지 엔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기업이라는 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옆자리의 선배처럼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 그럼 그 옆자리의 사람이 왜 그렇게 사는지 한번 속 깊게 얘기해 본적은 없는가?

물론 형님처럼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는 과장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분도 2~3년차 때 회사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행동 없이 시간은 흘렀고 주위 몇몇은 자신의 일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경우도 봤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 것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황에 안도했고 안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행동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고 도전할 용기가 한번 접히고, 아기까지 생기면 완전히 꿈을 접었다고 했다. 생활을 위해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과 책임질 것들이 많아지면서 꿈이라는 것을 스스로 포기 했다고 했다. 그렇게 되기 싫었다.

 

▶ 회사를 다니면서 기획하고 PT 트레이너 영업하고 사이트 개설까지 했다. 물론 지금의 서비스를 위한 팀 빌딩까지 했다. 거의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회사를 나온건데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이렇게 까지 준비를 했나?

방법은 딱 하나다. 잠을 줄이면 된다. 원하는 것을 다 하고 다 누리면서 회사일 창업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준비 할 시간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즐기는 시간을 포기하고 잠을 줄이는 것이었다. 2년 동안 스텔스 모드로 사업에 대한 모든 준비를 했다. 보통 하루 일과는 오전에 회사 업무를 집중해서 하고 낮에는 회사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사업 관련 미팅을 진행했다. 퇴근 후에는 사업하는 사무실로 이동하여 팀원들과 그 동안 업무 진행된 내용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물론 팀원이 퇴근 후에도 사업계획서 등 개인 업무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당연히 잠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사업초기 팀 빌딩부터 채용, 재무, 정부지원사업 지원, 서비스 기획, 전략, 서비스 기능, 개발 미팅, 마케팅 계획 등을 거의 모든 것을 준비하느라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 회사일을 하면서 퇴사를 준비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업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그로 인해서 원활하고 빠르게 커뮤니케이션을 못한 것이 힘들었다. 완전히 신규 사업이기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주고 낮 시간에 만나야 하는데 낮에 회사업무를 해야 하니 미팅시간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오전, 오후에는 주로 회사업무와 외부 미팅이 많아서 우리 팀원과의 업무, 회의, 의사결정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많은 제한이 있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더 빨리 준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점이 힘들고 아쉬웠다.

 

▶ 그래도 이렇게 준비하는건 대단한 일인것 같다. 비결을 좀 더 알려달라.

앞서 말한 것처럼 회사 일을 정말 내 일처럼 미친듯이 열심히 해도 성취감이 적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남을 위해 일했으면 지금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 일한다. 그러기 위해서 회사를 나온 거다. 내일을 한다는 희열이 잠을 줄여 주었다. 만약 남의 일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정주영 회장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회사에 가는 것이 기다려 졌다는 말, 내 일을 하면서 실감하고 있다. 열정은 강요한다고 동기부여 강연가의 강연을 듣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놈의 회사 때려 치고 내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만 하지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 우리 모두는 성공의 법칙을 이미 알고 있다. 워낙 많은 책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이기에 성공자는 적다. 계속 월급은 나오기에 절박해지지 않는다. 길게 말했는데 결국은 제대로 된 내일을 하겠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

  

▶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할 때 에피소드 같은건 없었나?

퇴사 전에 ‘Be Global’이라는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부스를 만들어 참여했다. 그 후 여러 곳에서 관심을 표했는데 그 중 LG U+의 헬스관련 신사업 팀 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행사책자에 회사에서 준 업무용 핸드폰으로 내 번호를 적었으면 내가 유플러스에 다닌다는 것을 아마 알았을 것이다.유플러스는 모두 핸드폰 가운데 자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내 개인 폰 번호를 적어 놓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사에서도 딱 한층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팀이었다. 그래서 회사 밖 조금 떨어진 곳으로 약속을 잡고 미팅 후 빙 돌아서 다시 회사로 돌아와 근무했던 기억이 있다. 어찌 보면 식은땀 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 스타트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었나?

팀 빌딩. 즉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같이 일할 의욕이 있고 뜻이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잡코리아 같은 구인 사이트에 올려서 사람을 구했다. 마침 피트니스 쪽 일을 했었고 영업기획, 서비스 기획, 영업도 했었던 이력서가 너무 빵빵한 사람을 채용했다. 힘들었지만 Pay도 꽤 괜찮게 주었다. 결론만 말하면 한달 동안 한 건의 계약을 채결했다.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영업용 카드도 자기 마음대로 사용했고 팀 분위기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이력서만 폼 났고 허울뿐인 사람이었던 거다. 그 후에는 지인의 소개로 사람을 찾았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인성이 필터링이 되어 있으니 조금 나았던 것 같다. 지금 함께 하는 팀원 중 절반은 지인 소개를 받아 알게 되어 일년이상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개발자를 찾는 과정에서도 애를 많이 먹었다. 외주개발을 하면서 사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이런 일은 스타트업 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나의 Background가 개발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스타트업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 들면서 그런 사람들의 돈을 노리는 나쁜 사람들도 많다. 그 이후 제대로 된 외주 업체를 만나기 위해 30군데 정도 미팅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개발 용어나 관련 내용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미팅했던 곳에서 가장 괜찮고 코드도 잘 맞고 회사와 가까워 미팅 하기도 용이한 곳을 찾았다. 업체 선정만 3개월이나 걸렸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는 풀스택의 개발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개발자는 통상 30대 중, 후반이고 대부분 부양해야 할 가정이 있거나 연봉이 높다. 그러다 보니 만족할 만한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초기 스타트업은 개발자를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 스타트업에서 개발을 외주로 하지 말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부득이 하게 가장 이해도가 높은 곳에 어쩔 수 없이 외주를 주었다. 그래도 외주업체와 코드를 맞추는 일은 어려웠다. A를 요청하면 A’가 아니라 C의 결과가 나오는 일이 다반사 였다. 매주 미팅을 하면서 고치고 수정하면서 우리의 의도대로 사이트를 만들어 나갔다. 운이 좋게 외주업체가 어려워지면서 개발자들을 구조조정을 했는데 우리 사이트를 개발한 개발자도 나오게 되어 자연스럽게 우리 회사로 영입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사이트 자체 개발을 됐다.

스타트업 대표의 일 중 중요한 부분이 사람을 구하고 뛰어다니며 투자요청을 하는 등의 외부일과 눈에 뛰지 않는 잡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더 많이 뛰어다니고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얻게 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 준비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물론이다. 지속적으로 비용이 필요했기에 계속 회사 일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 솔직히 지금도 빚이 꽤 있다. 대기업 직장인 연봉보다 많은 빛이 있다. 보통 계획한 비용보다 2배 정도 더 드는 것 같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하면서 리스크를 두려워한다면 평생 시작조차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 또한 리더가 감당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 회사를 떠나면서 수 많은 공포감에 휩싸인다. 회사, 대기업이 주는 네임벨류, 다달이 꽂히는 월급그런 것들을 모두 떠나 보내면서 드는 감정은 공포감에 가깝다. 본인은 어떤 느낌이었나?

나도 마찬가지였다. 2년간 회사 일을 하면서 준비를 했고 서비스 런칭 날짜를 정해 놓고 회사에 퇴사를 한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 이었다. 그렇지만 팀장에게 퇴사 통보를 하기까지 수백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나는 이미 팀원들 서비스, 웹사이트까지 준비를 다 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떠난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물며 준비 없이 떠나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스타트업은 주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불안정하고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정글과도 같다. 안정된 푸른 잔디밭에서 뛰놀다가 신발을 벗고 스스로 맨발로 정글을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두려웠다. 그것은 회사를 떠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그 두려움은 본능적인 두려움 같다.

하지만 현재에 대한 불안감 보다 미래에 더 큰 불안감이 더 컸기에 용기를 내서 팀장에게 걸어가서 퇴사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 회사에서 직원으로 있을 때와 지금 스타트업의 대표로 일하는 것. 차이가 매우 클 것 같다. 어떤 느낌인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직원은 대표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 마치 고등학교 때 대학교 생활을 모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선배가 와서 대학생활은 이렇다.’라고 말해주어도 감조차 잡기 어렵다. 세상에는 말로 아무리 들어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직원과 사장도 그런 것 같다. 가끔 스타트업 대표끼리 얘기를 하면 사람관리를 가장 힘들어 한다. 절박한 것은 대표뿐이고 대표의 생각을 얘기하면 그냥 흘려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생각, 자기경험,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만 남을 평가한다. 솔직히 스타트업은 직원을 고용하면 그 수준이 낮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대표로서 나의 기대치가 높다고 해서 직원들을 닥달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개인의 성향과 특징을 인정하고 성장시키면서 가야 하는게 맞다고 본다.


▶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구현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어떤 스타트업이 나오고 나서 , 나도 저거 생각한 건데..’ 라고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실행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팀이다.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고 한곳을 향해 같이 뛰어갈 팀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모든 스타트업 책이나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100% 맞는 말이었다.

 

▶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과 내가 꿈꾸는 일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딱 한마디로 짧게 말해 주고 싶다. “인생은 한번이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 헬로마이코치 (hellomycoach.co.kr) 라는 서비스에 대해 소개해 달라.

실력 있고 검증된 퍼스널 트레이너와 PT를 받기 원하는 고객을 매칭 시켜주는 O2O 플랫폼이다. 고객의 Pain Point는 심플하다. 어떤 퍼스널 트레이너가 능력이 있는지 정보가 없고, 비용도 투명하지 않다. 방문하면 얘기해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강사들간의 실력차이도 크다.피트니스 센터가 갑자기 폐업하는 경우도 있어서 먹튀, 환불 거부 등의 문제도 크다.이런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해 주는 서비스가 헬로마이코치다.

등록된 코치들은 경력과 실력이 검증된 사람들이다. 퍼스널 트레이너 분야는 국가 자격증은 9개인데 반해 민간 자격증은 거의 800개가 된다. 일반인들이 찌라시에 나와있는 자격사항을 보고 그 트레이너가 제대로 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면 된다.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얼굴이 좀 잘생기고 몸만 좋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실상이다. 마트에서 콩나물을 사도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사는데 퍼스널 트레이너는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자격자도 이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PT 받고 싶어서 집 앞 센터에 가면 나의 코치 수준은 복불복으로 정해지는 거다. 그래서 헬로마이코치의 서비스가 더더욱 필요하다. , 비용에 관한 문제는 에스크로 서비스로 해결하고 있다. 10회권을 끊고 5회만 했다면 5번의 비용만 센터에 헬로마이코치에서 지불한다. 만약 환불을 원하면 헬로마이코치가 직접 환불해 준다. 당연히 할인도 받고 안전하게 결제하고 환불에 대한 걱정을 붙들어 매도 된다. 운동방법, 식단 이런거 모르겠고, 그냥 원하는 몸매를 겅강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헬로마이코치를 찾아오면 된다. 전문가에게 맞기면 된다. 내가 대표로서 자신한다.

 

▶ 스타트업을 하고서 수익은 어떤가?

20159월 초 현재 서비스 런칭한지 2달 밖에 안되었다. 큰 매출과 수익은 아니지만 매출과 수익은 발생하고 있다. 퍼스널 트레이닝의 시장규모는 1조정도 되고 이 서비스가 피트니스 분야에 소프트랜딩하게 되면 수직적, 수평적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트레이닝 의류, 먹거리, 용품으로 확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3대 전단지 비즈니스가 있다. 음식은 배달의 민족, 요기요에서 하고 있고 부동산은 직방, 다방에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피트니스 쪽은 40년 동안 전단지, 현수막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피트니스 쪽에서 대표 O2O선점하면 수익의 확장은 매우 클 것이다.

올해 안에 외부 투자가 진행 될 것이다. 투자를 받게 된다면 더 공격적인 실행이 가능할 것이다. 2106년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서비스로 거듭나겠다. 자기 돈으로 하는 스타트업은 아주 드물 것이다. 스타트업은 J Curve를 그리며 드라마틱 하게 매출이 늘기에 스타트업이다. 초반에 비용에 대한 리스크는 모든 스타트업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스타트업이 작년부터 엄청나게 붐(Boom)인 것 같다. 어떤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업과 스타트업은 전세계적인 트랜드 라고 보는 것이 맞다. 스타트업은 앞으로 대기업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경제 이끌어갈 큰 한 축이 될 것이다. 국가에서도 창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미래의 먹거리 개발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 이라는것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 20159월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지금은 좋은 PT 강사 영입과 좋은 팀 맴버를 모으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웹, 앱디자이너를 구하고 있다. 웹 퍼블리싱이 가능하고 3년차 이상이며 운동에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라면 헬로마이코치의 문을 두드려 주었으면 좋겠다. 남자 맴버 모두 키가 180Cm 가 넘는 훈남들 뿐이다. 여성 디자이너분 환영한다. ^^

 

▶ 양질의 퍼스널 트레이너들은 헬로마이코치로 영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내부적으로 팀빌딩, 외부적으로는 트레이너 모집이 가장 힘들었다. 지금은 200여명이 넘는 트레이너가 있지만 초반에는 맨땅에 헤딩하면서 영업을 했다.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조인하자고 얘기를 해야 했다. 또 우리와 유사한 피트니스 관련 스타트업이 한번 모두 휩쓸고 지나간 이후라서 불신이 많아서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PPT 파일 하나 들고 가서 영업을 했고, 피드백을 받으며 계속 수정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질문을 받으며 계속 업데이트 했었다. 아마도 수백 곳 이상을 걸어서 찾아갔던 것 같다. 문전박대도 엄청나게 많이 당했다. 전화하고 찾아가는 것은 성공율이 높지 않았다. 헬스장 등에 블로그 마케팅 해줄 테니 얼마의 돈을 달라 라고 하는 곳이 엄청나게 많다고 들었다. 우리도 그런 부류라고 취급을 받았었다. 모든 O2O 스타트업의 비결은 그냥 부딪히는 것이다.

강을 건너야 하는데 계속해서 강의 깊이 파악하고 유속만 파악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방법은 내 몸을 담그면서 건너려는 노력을 해야지 건널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생긴다. Paper Work 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회사원이었을 때와 스타트업 대표인 지금의 모습에 점수를 매긴다면?

삶의 질로 따진다면 회사원이었을 때의 점수는 80점 이었다. 근무 환경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도라는 잣대로 따진다면 회사원 때는 20점 지금의 모습이 80점 이다. 몸은 힘들고 매일 바쁘고 빚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성장한다는 것이 주는 재미는 생각보다 매우 크다.

 

▶ 후회하거나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전혀 없다. 스타트업에 뛰어든 것에 후회한적도 없다. 내가 아는 분은 회사를 다니다가 나와서 스타트업을 했다. 하다가 잘 안 돼서 사업을 접고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다가 2~3년 후에 다시 나와서 스타트업을 하더라. 회사가 너무 싫어서라기 보다 내 일을 하고 내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일 것이다. 회사가 싫어서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도피다. 당연히 성공할 수도 없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전형적인 회사원, 공무원 스타일이다. 딱 정해진 일을 안정적인 곳에서 하면서 행복해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스타트업은 맞지 않을 거다. 개인의 성향 차이인 것 같다.

 

▶ 누군가가 나도 그냥 회사 때려치우고 스타트업으로 옮길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마도 스타트업이 가끔 언론이 보이는 대박신화 혹은 자유로워 보이는 환경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그런 마음이라면 나오지 말고 그냥 회사에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이 유행이니까, ‘조재현이도 하니까 나도 해 볼까?’ 라는 생각이라면 절대 나오지 마시라. 나오면 그냥 죽는다. 유행과 분위기로 하기에는 너무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쉽게 말하면 생각한 것보다 10배 힘들 것이고 생각한 자금보다 몇 배는 들것이다. 동기가 올바르지 못한 시작은 결코 잘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회사를 떠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장점과 단점은?

얻은 것은 나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힘든 것은 뭐랄까…… 성공하기 전까지 견뎌야 하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너 뭐해?” 라는 질문에 LG 다녀이렇게 말하면 ~그래~” 하며 끝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모습은 설명을 많이 해야 한다. 그것이 좀 답답할 뿐이다. 회사라는 간판이 주는 안정감을 잃었다면 잃은 것 같다.

 

▶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모토를 알려달라.

한번뿐인 인생, 모든 도전을 즐겨라.” 이것이 나의 모토다. 나중에 죽기 전에 누워서 , 그때 이이렇 할 걸이라고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회사생활을 정말 잘해서 50살 넘어서 까지 회사를 다니고 정년퇴직을 해도 죽기 전에는 좀 후회할 것 같다. 적어도 한 분야에서 큰 혁신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표면적으로는 PT에 대한 서비스 이지만 그 가치는 사람들의 소중한 인생을 건강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 회사 생활이 너무 싫은데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도 직장생활을 8년 했다. 직장에서의 많은 대화는 깔때기 이론이 적용된다. 무슨 얘기로 시작하든 간에 회사 욕, 상사 욕으로 끝나는 것 말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과감하게 말해주고 싶다. 회사생활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나오라고.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걸 잘 알지만 돈을 벌려고 싫어하는 일을 꾸역꾸역 하는 것은 내 경우는 용인하기가 좀 어렵다. 욕하면서 짜증내면서 계속 주저 않아 있는 삶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좀 아닌 것 같다. 언제까지 팀장 욕, 회사 욕, 때려 친다고 말한 할 건지 모르겠다. 말로만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회떠사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회사를 떠나는 건 좋은 조건과 환경과 처우 속에서 회사생활을 하다가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스스로 황금수갑을 풀고 나오는 것과 같다. 달콤하지만 속박된 황금수갑 말이다. 어차피 회사에서 평생 있을 수 없다. 100세 시대에 80살 까지 회사생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깨지든 실패하든 어떻게 되든 회사를 떠나는 것은 언젠가는 겪어야 되는 일이다. 마치 봄이되면 꽃이 피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떠나야 한다면 조금 일찍 행동한다면 좋을 것 같다. 행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 스스로 준비를 해서 나오는 것이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미래에 불안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것을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냥 주위를 둘러보면서 남들도 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뭐 하러 다른 길을 가야 하나?’ 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그저 회사라는 런닝머신 위를 뛴다. 회사가 준 좋은 신발을 신고 있지만 내 삶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런닝머신 말이다. 앞으로 갈 수 없는 런닝머신 보다는 가시밭길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보는 것도 나나쁘 않은 것 같다.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누구나 자기 일을 꿈꾸지만 아무나 자기의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저 먼발치에서 곁눈질만 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어 들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한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명확했다머리는 생각하고 입은 말하지만 몸은 그대로 안락의자에 누워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없어질 지금의 내가 누리는 것들의 속박을 스스로 끊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행동의 힘을 아는 사람이었다. 

런닝머신 위를 뛰며 회사에 전기를 생산해 주고 나면 돈을 받는다. 하지만 그 런닝머신 위에서 개인은 앞으로 뛰어갈 수가 없다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황금 수갑을 풀고 편안한 운동화를 벗고 가시밭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길을 가는 동안 누구를 만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의 모든 것은 그를 키울 것이다. 2016년 여름 다시한번 헬로마이코치를 주목해야겠다. 30대 중반에 대리라는 회사원의 이름표를 떼고 스타트업 대표의 길을 걷는 그의 길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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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4 _ 회사를 떠나 세상을 버텨내는 자영업자 PC방 사장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9.08 09:04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를.

저는 1976년생, 40살이고 회사 생활을 5년 동안 하고 현재 서울에서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ㅇㅇㅇ 입니다.

 

▶ 학교와 회사 등의 커리어를 알려 달라

1995년 서울의 중간 정도 되는 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2003년에 졸업했다. 그 때만해도 4학년이 되어야 취업준비라는걸 본격적으로 하는 분위기였다. 취업을 위해 스펙이 그때도 필요했다. 그래서 캐나다에 11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가서 오직 토익만 준비했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한국에 돌아와서 첫 토익 시험을 봤는데 935점이 나왔다. 그리고는 토익책을 모두 버렸다. 또 군대 가기전 학점이 워낙 안 좋아서 B+ 이하는 모두 지우고 방학도 없이 계절학기를 듣고 학점관리를 정말 열심히 했다. 취업시즌이 되고 롯데, 현대, 삼성 등의 대기업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많이 봤다. 모두 떨어졌다. 지원자들이 서로 토론하는 등의 소위 말빨이 필요한 면접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정말 내성적 이었고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입사한 ** 회사는 토론 면접처럼 자기 잘난걸 어필하는 면접이 없었다. 그냥 임원이 물어보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학생 때부터 부동산, 증권 등 제테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졸업 전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가 **회사에 입사한 것도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연관이 매우 컸다. 2003년에 이름만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제조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08년 초에 회사를 떠났다. 총 회사생활을 한한 것 5년이다.

 

▶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나는 관재팀이라는 회사의 부동산, 건물, 공장 등의 자산을 관리하는 팀에 배치 받았다. 내가 공인중개사 자격증 덕이었다. 팀에 들어오니 내가 막내였고 전부 나이가 많았다. 내 위의 과장이 나보다 10년이나 선배였다. 그래서 2년차부터 실무는 거의 나 혼자 다 했다.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었으니 나를 믿었던 것이다. 회사의 계열사 건물 신축과 구조배치 이런 프로젝트를 맞아서 진행했다. 건물 짓는 금액에 천억에 가까운 비용이 드는 큰 공사였다. 팀장과 차장은 건설업무를 맡아서 했다. 나는 위의 과장과 함께 부동산 매입, 매각, 임대차 계약, 건물 유지 보수 등의 기본 관재 업무를 했다. 아울러 건물 짓는 중간의 서포트 업무도 했다. 공정에 따라 공사 대금을 건설사에 입금하는 업무도 중요 업무였다. 그런 것들이 한번에 수십억이 달했다.

회사의 문화가 워낙 안정적이고 유명한 대표 상품이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몇 사람만 죽어라 일하고 나머지 다수는 그냥 노는 문화였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다른 회사에 비해 일의 강도는 적었지만 일 하는 사람만 죽어나는 분위기였다.

 

▶ 회사원일 때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정말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부서에 있던 5년 동안 내가 가장 먼저 출근했었다. 평균 잡아 30~40분 정도는 항상 일찍 출근 했었다. 그리고 나이 많은 팀장님 부서원들이 많았고 나만 관련 자격증이 있어서 일을 엄청 많이 했다. 바로 위의 과장이 나보다 10년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기본적이지만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도 다 내가 했다. 회사에서의 평판도 매우 좋아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인사팀장도 엄청 말렸던 것 같다.

 

▶ 회사를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솔직히 회사생활을 오래 해야겠다는 마음은 입사 때부터 없었다. 내가 스스로 내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도 그걸 원했다. 그리고 회사라는 타이틀이 있어야 결혼도 쉬웠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회사에 들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출근, 기약 없는 퇴근, 스트레스, 과도한 눈치 등의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비슷한 회사생활의 단점 때문에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회사에 입사하면서 회사생활을 오래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한걸 보면 나는 독특한 케이스다.

무언가 창업을 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많이 있었던 PC 방을 생각했다. 그냥 사람을 써서 운영하고 나는 수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8년차 자영업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바보같이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직장을 다니다가 창업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2008년에 회사를 나오기 일년 전에 PC 방 하나를 보증금 **** 만원에 인수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침에 PC방에 들러 현금 수금해서 출근해고 일 마치고 퇴근하는 삶이었다. 처음엔 재미 있었다. 그러던 중 가까운 위치에 망한 PC방을 누가 인수해서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 해서 오픈했다. 그 여파로 손님들이 40% 정도는 줄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도 집중하기 어렵고 PC방도 망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PC방에 올인 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 말하면 PC 방에 올인 하기로 한 것은 만용이었다. 자영업이라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경쟁의 바닥을 전혀 몰랐던 것도 회사를 떠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였다. 무식했으니 용감했던 거였다. 직장생활만 하면서 따뜻한 밥만 먹고 사니 세상 물정을 알 기회도 없었다.

 

▶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개인적인 이유는 뭔가?

굳이 이유를 찾자면 스트레스 였다. 5년차 정도 되니 업무량이 더더욱 늘어났다. 공인 중개사 자격증도 있었고 경영학과 출신이고 시키는 일을 잘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나이 많은 팀장, 차장 등이 나를 좋아했었다. 일을 막 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좀 심했다. 건설과정에서 대금을 관리하고 토지를 매입하고 임대차 계약을 맺는 등 일이 워낙 큰 돈이 움직이는 것이라 그랬다. 한번 내가 잘못하면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매일 매일이 힘들었다. 연차가 쌓여도 팀에서 막내였는데 그런 내가 거의 모든 실무를 다 하는 것에 압박이 너무 심했고 싫었다. 윗사람들은 나에게 일을 던지고 거의 일을 안 했다. 그리고 나를 보호해 주거나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 회사를 떠났지만 회사를 다녀서 좋았던 점도 많지 않은가?

당연하다. 엄청 많이 배웠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배우는 사회생활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나는 직무의 특수성 때문에 제테크의 수단들을 회사 일을 하면서 배웠다. 보통 직장인이 경험할 수 도 없는 토지 매매, 건물 및 부동산을 보는 안목도 배울 수 있었다. 윗사람들이 나이와 경험이 많아서 향후 부동산의 개발 가능성 이런걸 보는 눈은 뛰어났다. 그리고 임대계약을 할 때의 스킬도 많이 배웠다. 내가 건물주일 경우 임대료를 더 받는 방법, 내가 세입자일 경우 임대료를 조금이라도 아끼거나 동결 혹은 인상률을 최소화 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경험으로 배웠다. 물론 신규로 건물을 짓는 프로세스 감리, 설계, 취득세, 등록세 관리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일반 직장인이 평생 접할 수도 없는 다양한 부동산 전반에 대한 Flow를 배웠다. 월급쟁이로서 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제테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솔직히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회사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로 아파트 구입, 분양, 임대, 재개발, 오피스텔 등 다양한 제테크 수단에 쉽게 접할 수 있었다.

 

▶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를 준비한 것이 있는가?

말했듯이 배우고 경험한 것으로 개인적인 제테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무엇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또 얼마의 돈이 있어야 어떤 창업을 내가 할 수 있을까를 매일 찾아봤다. 프렌차이즈 설명회 상담 등도 많이 받았었다. 그 때 ㅇㅇ도너츠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것도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 왜 하필 PC 방이었나?

일단 대학시절 스타크래프트 붐이 있어서 내가 PC방을 엄청 많이 다녔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기에 PC방은 주인이 하는 일 없이 알바만 계속 돌리면 돈을 수금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거듭 말하지만 쪽 팔릴 정도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전문 지식도 없었기에 시작했고 초기에 8개월 만에 하나를 말아 먹었다.




 

▶ 회사를 떠날 때 불안하지는 않았나? 잘 할 수 있을까? 혹은 잘 할 수 있다. 라는 감정이 매일 반반 될 것 같다.

 

회사를 떠날 때 후련한 마음은 한 30% 정도였다. 앞으로 내가 자영업자로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머지 70%였다. 내가 회사를 떠났을 때가 34살이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을 했고, 후회도 많이 했지만 PC 방이라는 업종도 정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감정적으로 무너지면 지탱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위에 상사도 있고 아랫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자영업은 그렇지 않게 때문이다. 다 내가 챙겨야 한다.

PC방 하나를 매도하면서 많은걸 배웠다. 그 중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었다. 경쟁업체가 더 나은 인테리어와 더 나은 컴퓨터 사양으로 밀고 들어오면 이길 수가 없다. 내가 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고 서비스를 잘하면 되겠지라는 것은 아마추어 적인 생각이었다. 경쟁업체가 생겨서 이를 악물고 버티던 시간 동안 마음이 점점 단련된 것 같다. 그 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 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월급의 90%정도를 저축하며 돈을 모았었고, 아버지가 도움을 주셨지만 작은 집도 있었기 때문에 까짓거 한번 망해도 일어설 수 있다.”는 오기 같은 것도 있었다. 불안은 했지만 현실은 현실 이었다. 8개월이 아니라 더 버텼으면 나는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것 같다.

 

▶ PC방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면 무언가?

PC방은 사장, 주인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된다. 절대로. 사장이 없으면 100% 티가 난다. 그리고 그것은 매출로 귀결된다. 왜냐면 고쳐야 할 것, 청소해야 할 것도 많고 어느 정도는 친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장이 있어야만 단골이라는 것이 생긴다. 사장이 없이 단골이 생기는 것은 정말 예쁜 직원이 있을 때뿐인 것 같다. 알바는 절대로 사장처럼 일을 안 한다. 열심히 하면 돈을 올려주고라도 싶은데 열심히 하는 알바를 본적이 거의 없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알바가 있으면 월급을 더 올려주고 직원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개인이 하는 작은 자영업의 키는 인건비. 지출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여야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최저 임금이 올라간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힘들다. 최저 임금의 변화에 타격을 받는 사람은 영세 개인 자영업자들이다. 돈 많은 사업주는 거의 타격이 없을 거다.

 

▶ 자영업자와 알바 얘기가 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는 주거비가 너무 높고 물가도 높다. 최저시급 6030원 되어도 알바도 힘들고 자영업자도 힘들다. ‘알바 vs 자영업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힘들게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치고 박고 싸우게 만들어 놓은 구조 자체의 문제인 것 같다. 판이나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그 프레임 안에 사람을 갇히게 만들어 버리고 자신을 빠져 나가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너무 힘들어 지는 것 같다. 부탄 같은 나라는 재산이 없어도 행복지수도 높다고 한다. 나도 대한민국에서 40년을 살아 왔지만 40년 동안 계속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6030원을 받고 10시간씩 한달 내내 쉬지 않고 30일 일해도 180만원이다. 그런데 한달 내내 일할 수도 없다. 20~25일 정도 일하면 120~150만원 정도 번다. 그 중에 아무리 싼 방 이어도 30~35만원을 주거비에 쓴다. 연락은 해야 하니 핸드폰은 써야 하고 인터넷도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돈을 모아서 연애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취업이 안 되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니 5, 7포 세대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된다. 내 자식들 세대에는 부모의 지원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될 것 같아 두렵다. 나도 가게를 보면서 동남아 국가 이민 이런걸 쳐본다.

 

▶ 회사를 떠날 때 결혼을 한 상태인데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그 때는 와이프와 맞벌이 중이었다. 나오고 싶으면 나오라고 했다. 물론 내가 계속 그만두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큰 갈등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와이프도 내가 계속 얘기하니까 짜증이 나서 그냥 관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맞벌이여서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 PC방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없나?

준비하면서는 없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PC방을 인수했었고 돈만 수금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준비하면서는 없었다. 건물주와는 임대계약, 인수한 사람과는 매매계약만 맺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계약을 회사에서도 많이 해봐서 어렵지 않았다. 단지 준비기간의 무지함이 실전에서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다른 사람은 준비하고 계약하는 단계에서 사기를 엄청많이 당하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닳고 닳은 업자들은 그렇게 순진한 직장인 들은 딱 보면 안다고 한다.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C방 사업은 어떤가? 엄청난 레드오션 아닌가?      

레드오션은 이미 된 상태이고, 거의 블랙오션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죽어나간 피가 너무 많아서 검정색으로 변한 바다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들어와도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다. 자본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블랙오션이 맞다. 폐업률 3위안에 항상 든다. PC방은 다수의 영세하고 자금력이 없는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자금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외부의 충격과 변수에 대응을 할 수가 없다. 한번 외부 충격에 대응하려면 수천의 금액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C방이 신규오픈 하거나 리모델링+컴퓨터 업그레이드 했을 때가 그렇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충격으로 매출이 떨어져도 버틸 수가 있다. 그리고는 그 충격보다 좋은 사양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몇 달 동안 매출이 떨어지면 휘청 할 수 밖에 없다. 경쟁업소가 더 좋게 하는데 전혀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매장의 경쟁우위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고 나는 그것을 바꿀 능력 ()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가 폐업하는 것이다.

 

▶ PC방은 그럼 업의 본질이 무언가? 이건희씨가 업의 본질을 강조 했다고 하는데……

이건희 회장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경험해 보니 PC방의 본질은 시설업이다. 모텔도 아마 비슷할 것 같다. 옜날에는 나도 이런 것을 전혀 몰랐다. PC방은 노하우 라는 것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식당 같은 곳에는 오래된 자신만의 맛, 레시피 등의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PC방은 시설이 전부다. 좋은 위치,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이길 수는 없다. PC방에서의 경쟁력은 시설이다. 돈을 바른 최고 사양의 컴퓨터와 앉으면 잠이 올 정도의 편한 의자, 화사한 인테리어가 있으면 손님이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PC방을 폐업하며 알게 된 것인데 당구장, PC방 같은것만 전문적으로 매매를 대행해 주는 곳이 있다. 개인이 혼자 매매자를 찾아서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업체가 건당 300~500 만원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그런 곳에 첫 PC방을 폐업하면서 그 중계업소의 여자 사장에게 PC방이 시설업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시설업이기에 돈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싼 대가를 치룬 것이다.

 

▶ PC방은 하면서 생긴 버릇은 없는가?

하나다. 돈을 안 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나의 총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이나 부모님께는 돈을 쓴다. 엄밀히 말하면 나를 위한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올 여름에 티셔츠 1벌 산 게 전부다. 말한 것처럼 시설업이다 보니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매달 돈돈 버는 것 같은데 되로는 돈이 없어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 PC방에도 프렌차이즈가 있다.

아는 사람은 절대로 프렌차이즈를 하지 않는다. 이미 PC방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다시 프렌차이즈 PC방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지 않는 것이 답이기 때문이다. 기본 창업비용자체가 더 많다. 1~2년 동안 당신이 순수익으로 벌 수 있는 정도의 돈을 프렌차이즈에 주고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길게 말하지 않고 싶지 않은 점 양해해 달라.

 

▶ 하루 일과는 어떤가?

일반적으로는 9~6, 6~11, 11~9시까지 이렇게 3교대로 움직인다. 그 중 주인이 보통은 9~6시를 맡아서 한다. 하지만 나는 9~11시까지 직접 일하고 나머지 야간 시간은 알바가 한다. 하루 14시간을 혼자 일한다. 인건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12시가 넘는다. 당연히 와이프나 아이는 잠들어 있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서 테니스 레슨을 받고 바로 출근을 한다. 여기 와서 씻고 일하고 점심, 저녁을 사 먹는다. 또 늦게 퇴근하니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다. 친구 관계는 거의 다 끊겼다.

9~11시까지 이 곳에 앉아 있는 삶을 생각해 보라. 보통 사람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겁을 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너무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하니까 또 적응이 되더라. 그대신 매일 아침 운동은 절대로 빼먹지 않는다. 그 시간마저 없으면 삶이 삶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몸이 망가지지 않도록 유지하는데 도움도 된다.

 

▶ 자영업 사장으로 사는 것은 어떤가? 사장의 자유로움 보다 고단함이 연상된다.

영세 자영업자에게 사장이란 말은 없다. 사장은 그저 알바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 잘하는 알바일 뿐이다.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  

 

▶ 조개구이, 찜 닭, 빙수처럼 유행이 왔다가 사라지는 창업 업종이 많다. PC 방은 어떤가?

PC방은 계속 유입되고 퇴출 되고 있다. 왜냐하면 먹고 살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적고 기술 없이 창업할 수 있는 업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퇴직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창업을 하고 망해나간다. 하지만 상위 10% 돈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돈을 번다.

 

▶ 카페 같은 경우 경쟁점이 근처에 생기면 대표상품 (아메리카노)의 가격을 낮추는 치킨게임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PC방도 그렇지 않나?

가격을 무기로 한 치킨게임의 원인은 감정때문이다. 내 목에 칼을 겨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가격을 낮추면 내 생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느낀다. 그러면 어쩔 수없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가격을 따라서 낮춘다. 자금력이 없는 곳은 다시 찾아와서 가격을 올리자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격을 낮춘다는 것은 장사가 잘 안 된다는 뜻이다. 돈 잘 버는데 가격을 낮출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치킨게임에 참여하는 순간 모두가 죽는 거다.

간단히 계산해 보자. 1000원을 받는데 250원 게임비가 든다. 그런데 잡비, 알바비로 50원을 잡으면 700원이 수익이다. 그런데 가격을 500원으로 내리면 200원이 남는 거다. 순수익으로 치면 700원이 200원으로 까이는 거다. 어마어마한 거다. 제 살을 깎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팔을 한쪽을 떼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 경쟁점이 생겨 가격싸움으로 들어가면 먼저 찾아가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얘기가 잘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 여러 형태의 자영업자들이 있는데 오래 버티는 법을 말해 준다면?

지금은 무한 창업 시대다. 누구나 창업을 할 수 있다. 업종마다 특성이 다르지만 내가 아는 PC방만 얘기한다면 창업하는 순간에 오래 갈수 있는지가 결정이 된다고 보면 된다. 바로 학교위생정화구역 때문이다. 학교 담장으로부터 200m안에는 PC방 창업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화 구역 때문에 창업을 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심하지 않는 곳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정화구역 때문에 새로운 경쟁업체가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번화가나 유동인구에 창업을 하면 옆에 더 큰 PC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무한 경쟁에 노출 될 수 있다. PC방은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이 60%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돈이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정화구역 때문에 더 이상 생기기가 힘들다. 나는 회사에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해 봤기에 이런 입지를 파악하는데 남들보다는 조금 더 유리했던 것 같다.

 

▶ 가게를 운영하면서 경기의 부침은 없었나?

경쟁점 생기 전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경쟁점을 넘지 못해 하나를 매도했다. 다른 곳에 새롭게 오픈 해서도 운 좋게 나쁘지 않았다. 엔씨 소프트에서 아이온이라는 게임이 나왔을 때는 엄청나게 잘 됐었다.  

게임 셧다운제로 인한 매출 하락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 PC 방에서 금연법이 2014년 초에 실행되었는데 그 때 매출이 많이 빠졌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모르겠는데 담배를 하나 물고 서든어택같은 슈팅게임을 하는 맛이 그렇게 짜릿하다고 들었다. 그 이후 대작 게임이 나오는 대로 망했다. 2013년 에니팡을 시작으로 LTE무제한 요금이 확산 되면서 게임의 중심축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모바일은 PC 게임에 비해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게임회사들도 선호하는 것 같다. 올해 나올 예정인 대작 PC게임들이 망하면 PC방은 솔직히 비전이 없다고 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PC방 들이 <PC + 음식점 + 대형화>로 변하고 있다. 어찌보면 PC가 메인이아니라 음식을 먹는 것이 주가 되는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깨끗한 PC방에서 먹거리를 분식집보다 다양하게 하면서 음식에서 마진을 많이 남기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음식점과 유사한 형태는 이용 금액을 500원으로 낮추고 있다. 생각해 봐라. 500원 이라는 적은 돈으로 번화가 한복판에 분식부터 커피, 빙수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며 PC게임까지 할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 PC방은 얼마나 오래갈 것 같나?

커피숍에서 커피를 먹어도 커피보다는 자리값에 가깝다. 하지만 PC방은 500원이라는 껌 값 보다 적은 돈으로 시원한 곳에서 쾌적하게 보낼 수 있다. 게다가 게임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동네 작고 영세한 곳은 문을 닫을 것 같고, 대형화 되고 음식을 함께 파는 새롭게 변화하는 곳만 버틸 것 같다. 하지만 PC방이라는 업태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 회사를 떠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나?

특이하게도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후회 한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 와서 후회해도 바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더욱 그렇다. 회사에 있을 때에도 후회 없이 일을 했기에 더더욱 후회를 하지 않는 것 일 수도 있다. ^^

 

▶ 꿈은 뭐였나?

왜 과거형으로 물어보나? 어차피 솔직히 익명으로 하는 인터뷰니까 더 솔직해 지겠다. 어릴 적에는 40대 정도가 되면 일하지 않고 은퇴해서 임대업 하면서 수익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이제 40대 초입이 되니 평범한 직장생활로 시작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말 그대로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정말 금수저가 아닌 이상 임대업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있고 부동산 관련 평균 이상의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는데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고 선택을 했고 사기도 당하고 실패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평균 이상의 성공은 거둔 것 같다.

 

▶ 회사를 떠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얻은 것은 악착같이 월급을 모았다는 것, 그리고 제테크 지식과 경험을 배운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작지만 임대수익을 낼 무언가를 만든 것 이다.

잃은 것은 훨씬 많다. 사실 부모님이 예전에 슈퍼마켓을 해서 나를 키우셨다. 어머니랑 아버지가 교대로 매일 일을 했다. 어느 날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가게를 닫을 수가 없어 어머니가 바로 내려가지 못했다. 눈물을 보이시면서 자영업은 부모도 없더라 라는 얘기를 하셨다. 너무 슬픈 이야기다. 들어서 가슴에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내가 자영업을 하다보니 어머니가 했던 그 얘기가 정말 날카로운 칼처럼 항상 내 등에 박혀 있는 느낌이다. 너무 슬프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지금 암 투병 중이신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구에게라도 맡기고 당장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사는게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족간의 관계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먹고 살려면 가게를 선택하고 아들, 남편으로서 도리를 하려면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데, 선택이 쉽지가 않다. 내가 쥐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 놓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아이와 놀아주거나 와이프와 함께 외식이라는 것을 해 본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0 점이다. 부모님의 상황을 생각하면 마이너스다. 차라리 이제는 사람을 더 쓰고라도 좀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기도 하다.

 

▶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돈은 얼마나 버는가?

PC방은 방학 때와 학기 중일 때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이 바닥에 뛰어 든지 벌써 8년이 되었다. 8년동안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만 해도 솔직히 잘해온 거라고 생각한다. 뜻하지 않게 2개의 PC방을 운영 중이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시간을 보내며 하는 곳이 수익이 더 난다. 매니저를 두고 하는 곳에서는 8년차 직장인 월급 정도의 수익 혹은 그 이하로 날 때도 있다. 내가 직접 하는 곳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난다고 보면 된다. 사람들이 순수익만 생각을 하는데 내가 쏟는 시간과 잃는 것 들을 생각하면 많은 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회사 때려 친다” 라고 말하는 36세의 후배를 봤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글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얘기겠지만 명확한 목표와 계획이 없이 단지 회사가 싫다고 해서 나와서 자영업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물론 없어도 성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해서 성공하는 케이스는 극히 아주 드물다. 왜냐하면 계획과 준비 없이 나오면 기다리는 것은 더 힘든 삶뿐이다. 결혼까지 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가족을 볼모로 삼고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나 할까 하는 사람들 많다. 어떤 것이 나은 것 같나? 최대한 버티다가 나오는 것이 나을까? 조금이라고 젊을 때 미리 준비해서 나오는 것이 좋을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고, 내가 지금 상황에서 얘기를 하라면 계속 다니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자영업 경쟁자가 하나 더 늘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길게 보면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회사에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영업을 통상적인 범위에서 보면 얻는 것보다 잃어야만 하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TV나 뉴스 보면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해서 인생을 걸고 일만 하다가 회사를 떠나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 얘기가 가끔 나온다. 요즘 그렇게 회사 일에만 목 매여서 자신의 미래는 생각지도 않고 일하는 사람은 적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만약 준비가 충분히 되었고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었다면 마흔살 이전에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는 정말 힘든 곳인데 마흔이 넘으면 아무래도 체력도 그렇고 지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자신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전부를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공한 사람들 스토리 보면 전부를 걸고 했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아주 특별한 경우고 또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전부를 걸 수 있는 것 같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모험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떠나는 모험이다. 전쟁터에서는 군수품이 떨어지면 끝이다. 죽는다. 군수품이 떨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총알을 갖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통계가 말해 주듯이 실패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실패를 하고서도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군수품이나 총알은 돈일 수도 있고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는 안전핀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실패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자영업을 하다가 파산하고 극빈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안전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태해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 세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그는 많은 것을 토해냈다.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모두가 아는 회사를 나와서 자영업자로 살아온 시간만큼 토해낼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프신 어머니를 두고 생계와 가족을 저울질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영업 하면 부모도 없다라는 말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래도 그는 회사에서 배운 것으로 자신의 꿈인 임대업자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포기한 것을 저당 잡히고 작은 부동산에서 임대수익을 얻고 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의 정확한 중심의 삶을 사는 평범한 자영업자의 마지막 충고가 계속 떠오른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험이 전쟁터로 떠나는 모험이다그렇기에 최소한의 안전핀을 꼭 가지고 떠나기 바란다.” 나는 그에게서 이 인터뷰의 제목처럼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Dr. son




 더 좋은 인터뷰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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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2 _ 계획된 우연을 성공으로 구워내다. 훕훕베이글 박혜령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7.29 08: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훕훕베이글 사장으로서의 일과는 어떤가?

6시반에 일을 시작한다전날 만들어 놓은 반죽으로 빵을 만든다. 11시부터는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한다그리고 2시 정도되면 빵 만드는 것이 끝난다점심을 먹은 후 다음날 사용할 반죽을 5~6시까지 또 만든다그리고 나서는 문 닫을 때까지 빵을 판다지금은 다행이 좀 알려져서 빵이 영업 종료 전에 다 팔리는 경우가 많아서 다행이다. ^^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해서 일하는 시간이 적지는 않다.

회사 다닐 때보다 휠씬 낫다내 일이기 때문이다회사 다닐 때는 7시 출근에 거의 야근에 주말 출근도 잦았다일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지만 내 일이기 때문에 좋다다만 안 좋은 점을 굳이 꼽으라면 거의 똑같은 매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그래도 회사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 다이나믹함이 있다이 일은 빵을 준비하고 만들고 파는 일은 정말 똑 같은 반복의 연속이다그런 부분에서 오는 지루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회사 일의 반복에 대해서 지겨워 하시는 분이 많은데 형태는 다르겠지만 반복’ 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반복 없는 성공은 없지 않을까 싶다.


 작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기의 성공 노하우를 하나만 알려 준다면?

실제 회사에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소비자를 만나지 않는다머리로 구상하고 사례를 보고 얘기만 듣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니 손님들을 매일 만나는 것이 엄청나게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다월요일에 온 손님이 수요일에 다시 찾아오고 맛있다는 피드백을 직접 받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은 겪어보니 중독이 된다. MOT (Moment of Truth)를 경험 하며 소통하고 피드백을 받으니 자부심도 생기고 용기도 생긴다회사에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종류의 성취감을 느낀다회사일 잘해서 매출이 오르고 그래서 칭찬받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뿌듯함이다굳이 노하우라고 한다면 손님을 직접 만나고 대면하면서 정말 감사한 감정과 성취감을 느끼고 다시 힘을 내서 일하는 것인 것 같다


 직접적인 질문이다회사 다닐 때 비교해서 벌이는 어떤가?

처음에는 딱 월세와 재료비만 벌었다내 인건비는 없었다첫 달에 마이너스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 다음달은 몇 십만 원몇 달 후에는 인건비까지 이렇게 조금씩 매출이 늘었다지금은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훨씬 더 번다회사 다닐 때 월급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 어머니 생활비 드리고 같이 일하는 남동생 월급 주고같이 일하는 올케 월급도 준다그리고 가게 새 내고 저축도 조금 한다그런 것 생각하면 월급쟁이 때보다는 낫다.


 처음 가게를 열고 지금까지 2년 반 정도 지났다자신에게 몇 점 정도 줄 수 있는가?

한 8점 정도 줄 것 같다나머지 2점은 내가 야심이 없어서 뺏다나는 지금이 행복하다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에서 어머니와 가족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걸로 저축도 하고 가게도 조금 커져서 일하는 환경도 더 나아졌기 때문이다그리고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손님들이 있어서 더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일을 더 키울 기회는 있었지만 지금이 너무 행복하기에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의미에서 욕심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훕훕 베이글의 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베이글에 다양한 시도를 해 봤으니 또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베이글이 주가 되니 베이글로 만든 샌드위치를 오피스에 위치한 곳에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여유가 생긴다면 그런 재미있는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조금 더 다이나믹 하고 반복에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일 할 수 있다면 나중에는 해보고 싶다.

 

 최근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언가?

어느 정도까지 확장을 해야 할까바로 이 질문이다매장 수와 크기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꼭 매장에 나와야만 베이글을 사먹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Hey Bread도 그렇고 요즘은 배송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쉽게 맛볼 수 있다백화점에서도 입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내가 정말 정성 들여 만든 빵은 많은 곳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좋은 것인데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건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음식은 또 건강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내가 책임 질 수 있는 범위를 매일 고민 하고 있다.

 

 혹시 다시 회사로 돌아갈 의향은 있나?

있다식음료를 하는 큰 유통회사 같은 곳에서 일해 보고 싶다더 크게 일하는 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 어찌 보면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인 것 같다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어도 배울 수는 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짜 배움은 직접 경험해 보는 것 같다.

나도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그런데 회사에서 나오고 나서 멀리 떨어져서 제 3자의 시선으로 나와 회사를 바라보니 또 달랐다나는 많이 배웠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또 커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3데의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할 때마다 내가 배웠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회사를 떠나고 나서야 내가 배운 것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안에서 내가 배우고 깨달아 알게 되고 성장한 것을 제대로 평가해 본다면 회사의 의미는 또 달라질 것 같다그런데 회사를 다니면 매일 야근하고 너무 지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일상이 문제인 것 같다.

 

 삶의 가치관은 무언가?

하루하루를 알차고 뿌듯하게 사는 것그것이 좌우명이다그냥 바쁘게만 살아서 피곤하고 소진된 것 보다 꽉 찬 성취감과 부듯함으로 가득한 하루를 살고 싶다.

 

 회사 일이 자신과 맞지 않아서 내가 꿈꾸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동료나 후배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그럼 해 보라는 것이다.

나는 브랜드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막연히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무얼 해야 될지 몰랐다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배우러 다녔다배우는데 돈을 많이 써서 5년 회사 생활하고 3000만원 밖에 안 남은 것 같다. ^^ 내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원재료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좋았다그래서 그냥 다양한 것들을 배우러 다녔다하다 보니 금방 시들해 지는 것이 많았다그럼에도 계속 시도 했다.

그런 와중에 빵은 시들해 지지 않았다너무 재미 있었고 즐거웠다어찌 보면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배우면서 내가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의 범위를 좁힐 수 있었던 것 같다그리고 빵이라는 분야가 결정되고 나니 점점 더 깊게 파면서 지식이나 경험의 깊이를 더했던 것 같다. 솔직히 이런 것들을 의도하고 한 것은 아니었다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아야 한다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핸드폰만 보면서 난 뭘 잘하지내가 되고 싶은 건 뭘까?’ 고민하지 않으면 좋겠다.


 


 요즘 젊은이들이 첫 직장을 얻는 것이 너무 힘들다취준생 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답은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내가 모르는 것에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누군가는 읽은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한 것 같다. 회사나 사회생활도 그런 면에서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단지 대기업 몇 군데를 찍어놓고 여기만 가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나는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많은 친구들이 금융계를 가거나 대기업에 많이 갔다나처럼 에이전시를 가는 친구는 없었다선배들도 말렸다대기업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인턴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이 왔다인턴을 해 보니 일이 재미 있을 것 같고 배울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궁금한 일들이 많았고 흥미가 있었기에 주저 없이 회사를 결정했다회사를 옮기는 기준도 그러했고 지금의 베이글을 만드는 일을 선택할 때도 같은 기준이었다재미와 흥미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이 있으니 그럼 해보자라는 것이 기준 이었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의 모든 것나의 생계 전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많이 듣는 말이겠지만 꼭 대기업을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내 동기들 봐도 대기업 갔다가 2~3년 안에 그만 두고 후회하는 친구도 많았다재미와 흥미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수없이 두드려 보고 흥미와 재미를 찾았다면 시도해 보길 바란다젊을 때 해야 한다. 결혼한 사람 30대 중반만 되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어렵다.

 

음부터 이 일이곳 아니면 안돼라고 못박지 않았으면 좋겠다많은 경험을 한 후에 결정해도 된다가끔 학교에 가서 특강을 하는데 질문이 나온다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일단 회사는 가야 하니까 원서 쓰고 스팩 쌓는 친구들이 많다. 그렇게 접근하니 취업도 안되고 본인도 쉽게 지치는 것 같다그 시간에 작은 곳이라도 흥미가 가는 곳에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고 다시 아니라면 털고 일어나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조언을 하는 것이 많이 조심스럽다내 얘기가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혜령씨를 보고 나도 나만의 작은 가게를 하고 싶다며 연락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주위 지인들도 꽤 많이 물어 본다그럼 나는 돈을 못 벌 수도 있어’ 라는 것을 전재로 깔고 시작하고 싶으면 해봐.’ 라고 말한다사람들이 나만의 가게를 하면서 두는 가치의 기준이 대부분 돈이기 때문이다처음 나와서 수입이 “0” 이었다자존감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마치 내 값어치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그나마 월급쟁이는 한 달에 한번이지만 자영업은 그게 매일이다. 매일 매출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처음에는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너무 힘들었다맨탈이 버티기가 어려웠다.

물론 나도 돈은 못 벌 수도 있어.’ 라고 생각하고 진입했지만실제 매출이 적은 날에는 너무 힘들었다스스로 괜찮다 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어도 힘들었다매출에 초연하기는 너무 어렵다일단은 먹고 살아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아이템이 가장 우선이다그리고 그 아이템으로 잘 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홍대에 있을 때와 지금 이 동네로 왔을 때 다른 점은 무언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오픈 한달 후에 시작한 온라인 판매에서도 그랬다그러면서 꼭 매장에서만 오프라인으로만 판매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도 많이 봤다홍대에서 손님은 블로그를 보거나 SNS를 보고 호기심에 오는 경우가 많다그런데 그들이 오는 것은 빵을 사는 것 자체가 아니다홍대에서 친구랑 놀다가 생각나서 구매하는 거였다그러다 보니 고민하다가 한 두 개만 사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동네는 달랐다사서 먹어보고 입에 맞으면 아이를 위해서 사고 하다 보니 객단가가 홍대에 비해 높았다고객이 다르니 구매행태가 달랐고 객단가가 다르게 나타났다마케팅 원론 책의 내용을 실제로 겪었다.

홍대에 있다가 동네로 오면서 매출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각오를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의도하지 않았는데 동네로 오면서 새로운 발견을 많아 했다우리집 빵은 4시면 다 팔리고 없었다파리바게트는 10시가 넘어도 빵이 있었다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그저 가게가 좁아서 조금밖에 못 만들고 빵이 많이 팔리니 일찍 동이 난 것이었다그러다 보니 고객들이 처음에는 이게 뭐냐라고 이해를 못했다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품절 마케팅이 되어 버렸다. ‘여기 빵이 잘 팔려서 빨리 가지 않으면 없다.’ 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그러다 보니 VJ 특공대에서 찾아오고 또 그것이 단골을 불러오는 선 순환이 이어졌다환경이 바뀌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기회들을 많이 만났다.

 

 5년 후에 본인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설명한다면?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빵집으로 뛰어오면 내가 안아주며 웃는 모습이 그려진다그러면 행복할 것 같다계속 행복한 빵을 만들고 싶다그랬으면 좋겠다. ^^



 

 

▶▶ 그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그리고 행동하는 것을 주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 즐거운 것을 찾기위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렇게 일을 하고 시도를 하고 나니 그녀의 몸에는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한 것들이 쌓이게 되었다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시도하면서 빵더 구체적으로 베이글을 찾게 되었다마치 이것들이 계획된 우연처럼 그녀를 지금의 행복한 성공으로 이끌었다그녀의 지금 모습이 운처럼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계획된 우연” 이었다일터에서 힘들게 일하며 쌓은 마케팅 내공과 관심분야를 좁히고 찾고 그것에 깊이를 더하게 된 것그것을 누가 우연혹은 운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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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2 _ 계획된 우연을 성공으로 구워내다. 훕훕베이글 박혜령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7.28 08: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자기소개 부탁 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혜령이고 나이는 32살 입니다. 훕훕베이글 (HoopHoop Bagel)이라는 베이글 전문 동네 빵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커리어를 대학교, 회사와 직업 중심으로 소개해 달라.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03학번이다. 어떤 큰 뜻을 품고 경영학부를 선택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경영학부를 골랐다. 그리고 가장 재미가 있는 마케팅을 전공으로 공부했다.

처음에는 ‘9 fruits media’ 라는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에 취업을 했다. 당시 디지털 마케팅, 배너광고 등이 뜨고 있어서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클라이언트 미팅 시 컨설팅 회사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컨설팅 일이 더 멋있어 보이고 한 단계 위의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대행사에서 1년 근무 후 ‘Plans ahead’ 라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로 이직을 했다. 자동차, 은행, 소비재, 식음료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하다 보니 내가 식음료 분야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해서 그랬나 보다. ^^

컨설팅 회사에서 2년을 일하다 보니 조금 답답한 부분이 생겼다. 컨설팅에 대한 실제적인 액션은 컨설팅을 받은 회사에서 하는데 결과물이 좀 이상했다. ‘왜 저렇게 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있었다. 동시에 그런 회사는 어떻게 일을 할까?’ 라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이랜드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랜드에서는 새로운 신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은 마케팅 대행사(에이전시) 1, 마케팅 컨설팅 사 2, 이랜드 2년으로 총 5년을 하고 퇴사를 했다.

 

 회사 다닐 때는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대행사에서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했다. 그런데 대기업에 와보니 최고가 아닌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을 보았다. 가장 좋은 선택이 있어도 사내의 관계나 상사들의 이익 때문에 최고가 아닌 최선의 것을 고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부분이 답답했고 내 상사가 일의 결과에 대해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더 열심히 잘 최고의 결과를 위해서 일하는데 왜 결과는 이럴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과정이나 결과에 모두 만족하지 못하니 답답함이 심했다.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럴 거면 나와서 내일을 하던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커리어가 을부터 시작해서 갑으로 바뀌었다.

주변의 지인은 일하면서 커리어가 계속 좋아진 케이스라고 말한다. 사회 통념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직접 안에서 일을 하니 나의 경우 그런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만족하는 일의 퀄리티나, 동료애, 파트너 십을 보면 을의 입장이 훨씬 더 정직하게 일하는 것 같았다. 또 대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많은 협력업체가 있었다. 함께 일하는 MD와 함께 업체를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다. 너무 영세한 업체에서 사장님이 런닝 셔츠만 입고 직원 4명이랑 땀을 뻘뻘 흘리며 선풍기 2대에 의지해서 좁고 힘든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을 봤다. 그런 분들에게 단가를 후려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회사의 이익이라는 목표 때문에 강요하는 것이 나의 가치관과 상충되었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데 억지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3년에 문제가 되었던 남양유업 직원이 거래처 사장에게 협박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회사에서는 회사의 목표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내 머리 속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상품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MD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품을 알아야 마케팅을 하기에 MD와 협력업체를 종종 방문하고는 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업체에게 회사가 준 기준을 맞추기 위해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것 들이 내 경우 참 견디기 힘들었다.

그저 더 열심히, 좋은 결과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하나의 이유다.




 회사를 떠나기 전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고 나온 건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5년간 이직을 하면서 그 사이에 쉬어본 적이 없었다. 이 참에 쉬면서 내가 원하는 식음료 쪽으로 커리어를 바꿀지, 아니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에이전시 돌아갈지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201212월에 이랜드를 그만두었다. 1월이면 인센티브가 나오는 달이었는데 그냥 미련 없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 베이글 가게를 하는 것을 보면 많은 준비를 하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맞다. 왜냐하면 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회사를 다니면서 요리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 출근이나 야근이 너무 많아서 자격증은 도전할 엄두를 못 냈다. 하지만 워낙 요리를 좋아해서 꾸준히 배웠다. 처음에는 당일만 하는 단기 클래스를 들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빵을 만드는 베이킹 쪽에 특히 끌렸다. 그래서 주말 출근이 없는 토, 일요일에는 빵을 만드는 일만 했다. 회사 일이 힘들고 짜증이 나서 무언가 회사 일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잡생각을 없애고 다른 곳에 전념하고 싶었다. 싶었다. 주말 이틀 동안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는 하드한 과정도 했다. 힘들기 보다는 재미 있었다.


 베이글을 선택한 이유는?

베이킹을 배우면서 든 생각은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것 이었다. 빵을 만드는데 계란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많은 양을 생산 할 때는 계란을 대체하는 액체를 사용한다. 버터도 쇼트닝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고려했을 때 건강한 빵은 치아바타, 바케트, 베이글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가지 중에서 베이글에 끌렸다. 베이글은 좀 무딘 빵이었다. 만드는 과정도 예민하지 않고 쉬운 편이었다. 투박하지만 건강하고 단순한 빵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베이글을 많이 만들어 먹게 되면서 장비를 구입했다.

베이글을 만들면서 동시에 정보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정보를 찾고 모으기 시작했다. 외국에는 정말 다양한 베이글이 많았다. 일반적인 플레인, 블루베리뿐 아니라 초콜릿이나 과육, 채소가 들어간 것도 많았다. 그 때 회사 다니면서 퇴근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었다. 만든 것을 혼자 다 못 먹으니 회사나 주변에 나누어 주었다. 그랬더니 너무 맛있다며 그것을 사먹고 싶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식으로 관심 분야에 대해서 깊이를 늘려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