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28_ 38세. 희망을 찾아 퇴사. 자영업을 발판으로 자기 사업에 도전하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10.25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소개를

올해 서른 여덟 살. 80년생.  커피숍을 하면서  제조업에 도전하는 ㅇㅇ 입니다.

 

▶ 학교, 회사 중심의 커리어는

서울안의  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학교 때부터 제조, 유통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입학 당시 면접에서도 제조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상품을 만들고 가치를 만들고 그 상품을 사람들이 구매하는 그런 과정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꼭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요즘은 공장이 많이 첨단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여서 IT 전산 쪽도 복수전공을 하고 학교 다니면서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다. 2005년에 아웃도어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나는 구매, 생산관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업 관리 업무를 시켰다. 당시만 해도 남자 사원도 적었다. 회사를 그만둘 당시 알게 된 건데 남자, 특히 상경계는 뽑아서 구매, 생산관리직을 시키면 일을 하다가 어느 정도 배우고 알게 되면 그만두고 나가서 자기가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영업관리를 계속 시켰던 것이었다.

 

▶ 왜 그만뒀나?

함께 일하는 직원 30명 중 나 혼자 남자였다. 여초 회사의 남자 혼자는 생각보다 힘들다. 상무, 전무 같은 임원들에게 대하는 것보다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 말 한마디라도 삐끗하면 도마에 올라 난도질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작은 부분 때문에 뒷말을 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있어서 힘들었다. ‘평생 사회 생활을 이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일년 다니고 회사를 나왔다.

 

▶ 그 이후에는 어떻게 했나?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궁극적인 꿈은 외국계 ㅇㅇ회사의 SI 컨설턴트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영학과 이었지만 웬만한 전산학과 출신 보다 더 자격증도 많이 땄었다. 그 회사는 신입을 안 뽑고 경력만 뽑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그 회사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어서 계속 지켜보다가 6년만에 신입을 뽑는다고 해서 신입으로 지원했다. 오래 기다렸던 꿈을 좇았던 것이다. 그 회사는 국내 유명 상위 대여섯 개 대학 이외에는 캠퍼스 리크루팅도 하지 않았다. 운이 좋게 서류에서 합격을 하고 최종면접까지 갔다. 아마도 면접 기간이 4개월은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 면접에 집단 토론을 했는데 거기에서도 잘 했다. 하지만 결과는 떨어졌다.

 

▶ 그럼 꿈을 접은 건가?

사회생활을 일년 정도 하고서 고민한 후 꿈을 좇는 것과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별개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꿈은 꿈으로 두고 사회생활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대단히 현실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ㅇㅇ 회사를 떨어진 이유 중 하나가 '뛰어나지 않은 서울의 중위권 대학교 출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당장 내가 넘을 수가 없었다.  꿈만 좇아가다가 계속 허송세월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회사에 취업을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 꿈 대신 선택한 다른 회사는 어땠나?

그 이후 국내에서 의류생산으로 유명한 회사에 입사를 했다. 이전에 해왔던 일이기에 적응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곳은 평균 퇴근 시간이 거짓말 안 보태고 아마 12시는 되었던 것 같다. 선배들은 한약 등의 약값으로 지출하는 돈이 많을 정도였다. 매일 야근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곳이었지만 그만큼 연봉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떠 안아야 할 책임도 엄청나게 큰 곳이었다. 그 곳에서는 내 개인의 삶은 포기하고 오로지 돈을 버는 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개인 생활이 아예 없고 나의 모든 24시간은 회사를 위해 써야 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여자 친구랑 데이트도 제대로 못했고 어쩌다 만나면 미안한 마음에 선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 생활을 5년 정도 했다.

 

▶ 결국 또 한번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5년 정도 내 삶이 사라진, 나는 없는 곳에서 일만 했다. 결혼도 안 했기 때문에 돈은 모았다. 하지만 팔팔한 30대 초반에 체력은 무너졌고 정신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그냥 힘들다고만 표현하고 있지만 당시는 더 이상은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5년이면 오래 버틴 거였다. 업무량이 너무 많았기에 배운 것도 엄청나게 많았다. 결국은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 하는 중에 헤드헌팅 연락을 받고 ㅇㅇ 회사의 의류사업부로 옮기게 되었다. 그 곳은 의류 소싱을 위해 전문가가 필요했고 나는 일 이외에 내 삶을 찾을 회사가 필요했다. 헤드헌터를 통해서 회사를 옮기고 한 일년 동안은 이전회사에 비해 편하기도 했고 보람도 있게 만족스럽게 일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이었나?

자신의 신념대로 일하고 행동했던 사람이었다. 남들이 내 일에 대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나의 신념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살리고 성장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다. 회사의 부속으로 그저 맡은 일만 하기 보다는 이 회사가 잘되는 방향에 대해 항상 고민했다. 그대로 안되면 좀 답답해 했다. 한국에는 의류 소싱으로는 세계적인 회사가 있는데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는 없다. 조금 아이러니였다. 나는 싸고 트랜디하고 좋은 옷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정책 등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회사 욕도 많이 했고 사람에게 불만도 많았다. 

 

그런데 이 신념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어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고집이나 아집 일 것이었다. 그리고 내 신념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 곳에서는 오래 일하지 못했던 것 같다.

 

▶ 마지막 회사는 ㅇㅇ회사의 의류사업부 였다. 마지막 회사를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를 옮길 때마다 명확한 목적과 이유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희망이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자 하려는 의지가 아예 사라질 것 같았다. ‘평생 일을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굳이 풀자면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사 때문에 나 인생의 열정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를 떠났다.

 

▶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면?

마지막으로 모셨던 부문장인 임원에게 기대가 매우 컸다. 의류 쪽에서 많은 경험이 있었던 전문가 였기에 그 사람이라면 나의 생각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옷을 싸게 만들어서 많이 팔고, 회사가 이윤을 남기려는 기본적인 생각과 다른 의사결정을 했다. 또 사람들의 안목이 나와 많이 달랐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실망감들이 쌓여 희망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소싱 전문가로 좋은 퀄리티 싼 가격의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방향은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제대로 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은 내가 바꿀 수가 없었다.

 







▶ 일반적인 직장인 이라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 회사에서 원하는 것이 다르다면, 짜증이 나더라도 회사가 원하는 방향대로 한다. 본인은 계속 자신이 끝까지 맞다고 생각하고 결국에는 회사를 때려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까 말한 것처럼 기대에 희망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왔다. 물론 그것이 외부 상황 때문에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얻는 이외에 성취감 같은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 버티기는 힘들었다.

예를 들어 통신회사에서 25년 동안 전파 쪽 개발 일을 하던 사람이 필요 없어졌다고 갑자기 지점으로 발령을 내서 영업을 시킬 수 도 있다. 월급은 똑같이 들어오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 그 사람을 내쫓기 위해 그런 것이지만 그런 사람은 대부분 그만둔다. 인간으로서 의미가 없고 나아가 삶의 의미까지 없어져 버리는 극심한 상실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회사 안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하면 월급은 나오고 시간은 가지만 내 인생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되는건 싫었다. 난 그것은 견딜 수 없었다.

 

▶ 회사의 생각과 개인의 생각이 100% 일치하는 곳은 원래 없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희망이 없다는 것은 참담한 것이다. 유통회사의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있었고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편하게 쇼핑을 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살 수 있게 만들까 하며 늘 이렇게 저렇게 노력하고 시도 하는 사람이 있다치자. 그래서 그는 빼빼로 과자로 로봇도 만들어 진열도 하고 자신의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정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회사에서는 전혀 알아봐 주지도 않고 갑자기 순전히 회사의 이익을 위해 물류창고의 재고 관리 업무로 보냈다고 하면 어떨까? 그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몰라주는 회사도 밉겠지만 더 큰 좌절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고 느낄 거다. 내 심정이 그랬다. 원래 회사는 개인의 생각을 믿어주지 않는 곳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면 회사 생활은 그저 돈을 버는 것 이외의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거다. 인생에서 가장 멋져야 할 삼십 대 중반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 자신의 만족 같은 성취감이 가장 중요한 건가?

맞다. 내가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 뿌듯함 일하면서 내가 살아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첫 직장을 선택할 때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이직을 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요소다.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아도 조금 월급이 낮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도 변하고 회사는 망하기도 하고 내 직업은 인공지능이 빼앗아 갈 수도 돈을 많이 벌 수도 못 벌 수도 있다. 그렇기에 최소한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면 자기 만족을 얻고 일을 하면서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의 기준이다.


▶ 그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그건 선택의 문제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누가 옳고 그른 건 아니다.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누군가는 빨간색을 좋아하는 거고 단지 나는 파란색을 좋아할 뿐인 거다. 회사가 더 나아질희망도 없고, 개인이 더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 다른 사람들 모두 그냥 버텨만 낸다. 하지만 그냥 월급은 나온다. 이게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오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다. 나와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일을 못하는 사람. 아니면 지 고집만 세고 남들과 함께 동화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회사를 나온 지금에서야 되돌아 보면 당시 나는 불만만 많고 시키는 대로 잘 안 하는 불량 사원이었을 수도 있다.

 

▶ 그럼 지금껏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뿌듯했던 경험을 하나만 말해달라

예전 의류 생산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외국의 한 브랜드를 맞았는데 새벽 2시 넘어서 바이어와 계속 실시간으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할 때 였다. 결국은 문제를 원만히 해결은 했는데 그 바이어가 니가 거기 회사 사장이니? 한국시간으로 새벽 아니니?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해?’ 라고 물었다. ‘나는 사장도 아니고 그냥 직원인데, 내가 맞은 브랜드가 좋은 상품을 생산하도록 돕는 일이 내 일이어서 열심히 하는 거야이런 이메일을 주고 받았었다. 그 바이어는 내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서 나 때문에 일이 잘 되어서 너무 고맙다.’ 라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회사를 나올 때까지 그 바이어는 여러 면에서 나를 도와 주었다. 열심히 일하고 인정을 받고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답답했던 순간은?

자기 일처럼 하지 않은 모든 순간이 그랬다. 상품의 원가를 낸 후, 상품이 입고되고 나서 사후원가는 따져보지도 않았다. 과연 내 사업이라면 돈이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빠져 나갔는지 당연히 따져볼 텐데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산을 해 보니 예상과 달리 돈이 어떻게 움직였구나라는 체크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런 모든 일들이 답답했다. 내 일이지만 남 일처럼 멀뚱멀뚱 관리도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일을 또 남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 넘기는 것은 특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고개만 쳐박고 전체 일이 아닌 코딱지 만한 부분만 하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 회사원으로 누구 밑에 있는게 잘 안 맞는 것 같다. 자신이 장(長)이어야 만족 하는거 같은데?

그런면이 있다. 정보가 임원에서 팀장에게 까지만 가는게 답답했다. 주체적으로 일하는 계획을 세우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그런게 없다가 갑자기 변화를 맞곤 했다. 실무자에게 많은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보의 제한, 피드백도 부족이 너무 싫었다. 그런 것이 있어야 같은 목표를 향해 사람들이 같이 갈 것 아닌가? 답답해서 정보를 늦게 준 팀장과 싸우는 일이 있었다. 사장이 100을 임원에게 말하면 필요한 50만 팀장에게 내려온다. 팀장은 직원들에게 20만 전달하고 실무자 대리는 5의 일만 한다. 난 다 알고 싶은데 말이다. 그리고는 그냥 너는 닥치고 5의 일만해라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정보가 내려오다 보면 왜곡되어서 실무자는 사장이 원하는 일과 다른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삽질의 과정이 너무 많았다.

 

▶ 내가 보기에 대기업이 아니라 조금 작은 회사가 본인과 맞는 것 같은데?

맞다. 조금 작은 규모라도 내가 모든걸 움켜쥐고 내가 계획을 세우고 일하는게 맞는 스타일 인것같다.

 

▶ 이직은 왜 하지 않았나?

회사를 나와서 8개월 동안 이런 저런 일과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든 생각은 나는 조직의 장으로 일해야 하지, 바보 같은 팀장 밑에서 일하는 건 못 견디는 스타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내 스타일 내 본성을 깨달은 것이 큰 수확이었다. 다른 회사도 대기업이었는데 그곳에 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움켜쥐고 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럴 바에는 내 개인이 하는 일을 만들어서 거기에 열정을 쏟아 부어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 회사에 있을 때 이렇게 할걸하는 후회는 없나?

회사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장단에 춤을 춰 줬어야 했다는 생각도 있긴 하다. 사실 그 당시에는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었다. 그냥 불평만 했다. 그래도 큰 후회는 없다. 다시 돌아가도 나의 본성이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대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부서의 장이 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의미는 없을 것 같다.

 






▶ 그런데 결국 퇴사하고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열었다. 좀 의외다.

우선 일단 당장 수익을 내야 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서 창업을 하는 것을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으로는 너무 리스크가 컸다. 그래서 ㅇㅇ 커피숍을 선택했다. 보통 창업을 하면 최초에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지 않으면 자괴감에 빠지고 맨탈이 무너진다. 그러면 자충수에 빠지는 행동을 하고 수익은 더 악화된다. 결국 폐업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커피숍이었다. 또 커피숍을 밑바탕에 안정적으로 깔고 그걸 바탕으로 내가 다른 일이나 사업을 할 때도 함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다른 요식업을 하면 수익은 더 클 수도 있겠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온전히 쏟아 부어야 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초보 창업자가 음식점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장이 온전히 신경을 안 쓰면 망한다.

 

▶ 또 커피숍은 다른 자신의 일을 위한 어떤 안정적인 보험 같은 건가?

그렇다. 그래서 내가 가져가는 것을 좀 줄이면서 직원의 안정화를 위해 시급을 좀 높게 주고 있다. 계속 원활하게 돌아가는 곳을 만들려고 했다.

 

▶ 어떻게 이걸 선택하게 되었는지 조그만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나의 선택 기준은 당장 수익, 적은 리스크, 안정적 오토화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자영업 폐업률이 90%라고 하는데 3년 동안 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10%만 성공,아니 살아 남는 다는 것이 느껴진다. ‘고작 프렌차이즈 커피숍 할라고 회사를 떠났나?’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커피숍은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면서 내가 당장 수익을 내는 소중한 일터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과 시간으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ㅇㅇ커피 프렌차이즈다. 내가 조사한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쭈욱 엑셀에 기입해 보았다. 대형 커피숍과는 다르게 가성비 좋은 중저가로 인식되어 있고, 또 저가 커피의 레드오션에 휘말리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객들에 대한 인지 (Perception)이 좋은 곳을 골랐다.

 

▶ 어떤가?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돈은 벌고 있나?

당시 비슷한 시기에 교육을 받고 창업을 한 곳에 28곳이었는데 그 중에서는 가장 잘된다.

 

▶ 창업과정을 좀 알려달라.

창업 박람회, 전시회 프렌차이즈 본사도 찾아가서 설명도 들었다. 최대한 많은 인풋을 받았다. 위에서 말한 3가지 기준 중 적은 리스크, 당장 수익을 기준으로 찾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완전 새로운 장소에 인테리어도 다 해서 들어가는 생판 창업을 리스크가 너무 컷다. 현재 운영중인 곳 중에 인수해서 할 만한 곳을 중점적으로 찾았다. 그런 매물을 찾는 건 개인이 어려웠다. 그래서 창업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았다. 현재 운영하는 사장들이 가게를 넘길 때는 창업컨설턴트에게 매물을 내 놓기 때문이다. 그냥 부동산에 집 내 놓는 거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6개월 동안 계속 찾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딱 봤을 때 내가 하면 현재보다 더 나아질 만한 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지금의 이곳이었다. 사람적인 이유로 전 사장이 일을 접고 싶어 했고 관리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조금 낡고 먼지도 낀 그런 매장 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맘에 들었다.

 

▶ 원래 있던 곳을 양수 받아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계속 말하지만 리스크 헤징과 당장 수익이라는 대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양수를 받을 가게를 찾는 사람은 이 매장 깨끗하고 잘 되어있고 너무 좋아. 왠지 장사가 잘 될 것 같아.’ 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매장이 되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되고 낡아가기 시작한다. 그걸 생각을 별로 안 한다. 차라리 지금은 잘 안되지만 입지 조건만 나쁘지 않다면 고쳐 나가면 매출도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의 매출도 투명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이었다.

 

▶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불안이다. 나는 내 모든걸 쏟아 부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완전히 모르는 일, 그리고 시장에 대한 불안함은 늘 있었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면 세상 모든 자영업이 다 잘 될 거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새벽 2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도 한 6개월 동안은 잠을 잘 못 잤다.  게다가 한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가 힘들 거라는 불안도 있었다. 그 불안은 직장인일 때 월요병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불안하고 엄청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보니 불안을 잊기 위해서 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한 것 같다.

 

▶ 일과는 어떤가? 

양수를 받고 한 3개월 동안을 아침에는 영업을 하고 밤에 문닫고는 매장을 고쳤다. 직접 페인트도 칠하고 자재도 사서 새롭게 만들었다. 일을 배워야 했고 그리고 점심 시간에 손님이 많기에 점심도 거르고 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자연스러운 일일 일식과 육체노동으로 살도 빠졌다.

 

▶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언가? 커피숍으로 먹고 살려고 퇴사한 건 아니지 않나?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일하고 싶다. 조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생각보다 그저 회사에 맞춰가면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의욕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른 형태의 제대로 된 카페를 만들고 싶다. 일을 하면서 뿌듯해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멋진 카페를 만들고 싶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소중하다. 아직 결혼을 안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 3년 동안 운영을 하면서 계속 카페에 대한 시장조사를 했다. 일단은 1년 정도 더 현재의 카페를 잘 운영하고 좋은 직원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서 안정이 되면 내가 원하는 사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카페시장의 경쟁은 점점 심해질 거고 월세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월세 계약이 끝나면 나가야 할 수도 있다. 리스크를 줄여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사실 지금도 준비중이다.

 

▶ 커피숍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하고픈 말은?

글쎄. 이제 3년차가 되었는데 무슨 말을 해 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한다면 자신의 촉을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완전 다른 일을 하다가 카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무슨 촉이 있겠느냐? 차라리 데이터를 믿는게 낫다. 회사에서도 매일 매출 숫자로 말하지 않나? 나도 그래서 일부러 매출 데이터가 있는 곳을 양수 받았다. 한국처럼 한번 망하면 재기하기 힘든 곳에서 사업에 운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는 것 믿지 말아야 한다. 

 








▶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당신에게 남은 것은?

사람이 가장 크다. 일에 대한 스킬 이나 지식보다는 그게 더 많다. 인간관계를 넓히려고 억지로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런 인위적인 관계는 오래 갈 수가 없다. 나의 열정과 생각을 이해해 준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연락을 하고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한다. 사실 업무적 지식은 회사를 떠나서 일년만 지나도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 같다.

 

▶ 회사를 떠난 이후에 배운 것은?

배운 것, 생각만 한 것,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모두 다는 거다. 회사 밖을 나와서 3년동안 가장 크게 배운 건 그거다. 삶 전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넓어진 것 같다. 회사 안에서는 비슷한 학식의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생각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회사를 나와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부류의 인간들도 많았고 그 사람들을 겪으면서 내 시각 전체가 넓어진 것 같다. 인터뷰 한다고 해서 당신이 쓴 나는 무적의 회사원도 읽어 봤는데 거기 마지막 장에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회사 밖의 사람을 만나라라는 말을 3년만에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이 되기도 하더라. 회사를 떠나고서 만난 사람들에게 쉽게 모든걸 오픈 하지는 않는다. 사기꾼도 발에 채일 정도기 때문이다.

 

▶ 회사를 떠나기를 잘했다. 퇴사하기를 잘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순간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많다. 한적한 오후를 보낼 때, 혼자 여행할 때, 내가 하기 싫은 일 안 해도 될 때, 월요일 아침에 스트레스 안받을 때 등등이다. 그런데 이런 건 아주 지극히 파편적인 일부다. 그냥 젊은 친구들이 카드뉴스나 만들고 미디어에서 짧은 인터뷰 할 때, 술자리에서 친구들한테나 하는 말일 뿐이다. 퇴사학교라는 곳이 생겨서 들어가 보고 실제로 한번 모임에 참석도 해 봤는데, 방금 말한 그런 짧은 단편적이고 감성적인 것들만 있었다. 이미 떠난 입장에서 보면 매우 별로 였다. 그런 걸로 비즈니스 모델을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총론적으로 볼 때 퇴사하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은 없다. 회사를 떠나서는 더 싫은 인간 더 미친 인간이 많았다. 그나마 회사는 면접을 거쳐서 한번은 걸러진 상태기 때문에 조금 낫다. 진짜다. 그리고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하기 싫은 일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어느 정도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 까지는 그래야 하는 것 같다. 그게 현실이다.

 

▶ 지금은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건가?

아주 초기 단계라 뭐라 말하기는 힘들다. 배운게 도둑질 이라고 10년간 해왔던 일을 내 사업으로 하려고 준비 중이다. 의류 제조업을 생각 중이고 행동으로 준비 하고 있다.

산업의 큰 그림부터 생각하고 있다. 우선 미국 시장을 보면 아마존이 식품부터 의류까지 시장을 정말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있다. 기존 질서와 유통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온라인을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조금 멀리 보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 세상이었다. 처음에는 중국 상품을 저가의 허접한 거라고 무시 했지만 지금의 중국산은 소싱하는 입장에서 보면 고급상품이다. 그리고 환경도 변해서 중국도 쉽지 않다. 베트남도 오랫동안 보고 있었는데 봉제로 베트남을 들어가기에는 조금 늦었다. 중국보다 더 빨리 현대화 될 거고 곧 포화가 될 거다. 그래서 동남아의 더 미 개발 국가를 통해 상품을 만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를 생각한 거다. 물론 10년까지 버티면 되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을것 같다.

 

▶ 벌써 나이가 38살이다. 도전하기에 늦지 않았나?

맞다. 늦었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또 일년이 늦어지게 되고 3년 후면 또 3년이 늦어지는 거다.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하다면 지금 하면 되는거 같다. 그나마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해서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나. 아직 결혼도 안 했고 나이도 적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는 큰 시도라고 생각한다. 카페를 했을 때처럼 다시 바 쏟아 부어 볼꺼다.  여기서 실패하면 결혼도 못 할거 같다. ^^

 

▶ 지금 어떤 단계인가?

함께 할 사람은 찾았고 돈은 그 동안 10년 동안 월급 저축한 것 그리고 카페를 통해서 버는 것으로 준비했다. 생각보다 돈이 너무 너무 많이 나간다. 움직이기만 해도 돈이다. 치기만 해도 돈이다. 욕나올 것 같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리고 회사에서 10년 일했지만 이 바닥의 디테일한 부분들은 잘 몰랐던 것 같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오래 일해도 전체의 일부만 본다. 분명 모르는 부분이 더 크다. 계속 부딪히면서 실행하고 있다.

 

▶ 계속해서 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나?

궁극적인 것을 쫒는 것 같다. 내가 회사에서 어찌 보면 외골수에 자기 고집이 있는 답답한 놈이 었던 이유는 내 소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신과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사업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의 접점이 이 새로운 사업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한 3년정도 후에 사업이 잘 되면 한번 더 연락을 드리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회사를 떠나서 지금 이렇게 도전하는 단계까지 온 것은 운이 좋아서 였다. 만약에 카페가 망했다면 나는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운은 그저 운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하나의 기운 같다. 그 기운이 나를 살려준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명확히 알면 좋겠다. 대부분은 자신을 잘 모르고 또 잘 안다고 생각해도 완전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또 다른 자신이 튀어나온다. 신문기사 가십거리 보는 것 보다 자신을 알아가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쓰면 좋겠다. 내가 뭘 알고 뭘 모르고, 뭘 잘하는지에 대해 아는 메타 인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혹은 이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성향이라도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남이 보는 나 말고 최소한 내가 보는 나의 성향이라도 알면 좋겠다. 회사에서 자신을 잘 관찰하면 좋겠다. 내가 일을 끝내는데 집착하지 않고 그냥 그냥 월급 받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면 계속 망설이다가 회사를 떠나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나를 납득할 수 있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가 책임 질 자신만 있다면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뭐라도 행동했으면 좋겠다.






▶ 철저히 회사의 측면에서 볼 때 그는 회사에서 원하는, 필요로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자신의 주관이 명확했고, 자신이 일을 모두 쥐고 일하고 싶어했다. 책임을 지고 싶어 했고, 원칙에 맞게 일하고 싶어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일부는 부딪혔을 수도 있다. 그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총론적으로 볼 때 퇴사하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은 없다회사를 떠나서는 더 싫은 인간 더 미친 인간이 많았다그나마 회사는 면접을 거쳐서 한번은 걸러진 상태기 때문에 조금 낫다진짜다그리고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하기 싫은 일도 많이 해야 한다내가 어느 정도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 까지는 그래야 하는 것 같다그게 현실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힘들지만 명확히 원하는 모습을 향해 걸어가는 그를 응원한다.  3년 후, 그를 다시 만나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그는 명확한 방향성과 목표를  가지고 떠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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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7_ 박사, 팀장, 교수를 버리고 일인 기업이 된 사람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8.25 08:06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조직이 주는 타이틀을 버리고 홀로선 남자




▶ 중요한 질문이다얼마나 벌고 있나?

매달 일정하지는 않지만 회사에 있을 때보다는 많이 벌고 있다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2년 넘게 1인 기업가로 활동을 하다보니 수입에 대해 여러 개의 낚시대를 드리울 수 있게 되었다단기적인 강연이나 일 년 계약의 자문으로 월급처럼 들어오는 등 다양한 수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고 있다.


 

▶ 1인 기업가로서의 고민은?

단기적 수익과 장기적 생존에 대한 균형이 가장 큰 고민이다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다예를 들어단기적으로 들어오는 강연 요청을 모두 수락하면 수익은 날 것이다이렇게 당장 내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하지만 지나치면 내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여력은 줄어든다또 반대로 너무 장기적인 발전에만 몰두하면 당장 내일 굶어 죽을 수도 있다이 사이의 균형을 잡기가 지금도 쉽지 않다최근에는 강연은 최대한 줄이고 딥러닝이라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꼭 필요한 공부인데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부분이어서 한 달 동안은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갖고 있다.

 

또한 시장의 불확실성과 빠른 변화는 예측이 쉽지는 않다는 점도 고민이다내가 공부하는 속도와 양보다 기술 발전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기술의 발전 추이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최근의 빠른 기술 발전의 위력을 안다최근 어느 정부기관에서 자문이 왔다. ‘2030년 한국의 헬스케어 산업의 예측을 원했는데 나는 내 능력 밖이라고 말씀드리며 정중히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당장 5년 뒤의 예측도 어려운 시대다.

 

▶ 1인 기업은 교육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형식의 문제보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나는 지식 소매상으로 자문강연집필 등의 일을 한다이런 형태가 전문가 개인으로서 접근하기 쉬운 일이고수입과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다른 형태의 제조업유통업 분야의 1인 기업도 있을 수 있겠지만하지만 혼자서 하기에는 활동의 폭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 내 인생의 주도권과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조직의 단점인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형식과 카테고리는 크게 중요치 않은 것 같다.


 

▶ 무식한 질문이다헬스케어 분야의 1인 기업가면 하얀 가운을 입고 스포이드랑 현미경을 들고 연구하는 것을 처음에는 생각했다어떤 연구를 하는 건가?

실제로 대학원생 때부터 연구소에 있을 때까지 그렇게 연구해왔다그렇게 연구하는 것은 다소 좁은 의미에서의 연구로 보통 결과물로 논문이 나온다지금 나는 논문을 쓰는 연구는 하지 않는다마치 유시민 작가가 말한 지식소매상과 같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산업 트렌드에 대해 공부연구한다그것을 융합해서 새로운 통찰력을 만들어내고방향을 제시하며새로운 스타트업을 육성하기도 한다이러한 것들이 내가 1인 연구소로서 하고 있는 연구 활동이다.

 


▶ 누군가가 삐딱한 시선으로 그럼 너는 직접 연구하고 생산해 내는것이 없지 않냐남이 연구한 거 짜깁기 하는거 아니냐?’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언급했던 지식소매상이라는 일 자체가 기존에 있는 것을 융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중에서 내가 처음 만들어낸 지식은 엄밀히 말해서 거의 없다하지만 그것이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경계를 정하지 않고 배우고 공부한다그래서 스페셜리스트이자 제네럴리스트다미국의 어떤 교수가 연구해서 발견해 낸 것과 완전히 다른 분야의 결과물을 보고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일이다상관 없는 점들을 이어가는 것 (connecting the dots)이다인공지능과 의학을 연계하여 의료인공지능에 대해 공부를 하고웨어러블 디바이스와 UX디자인보험 산업을 연계한 새로운 사업모델의 사례를 공부하는 식이다이는 특정 조직에서 정해진 직무를 가지고 있다면 하기 어려운 역할이다새로운 것들을 함께 공부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길 위에 있다고 이해해 달라.

 

 

▶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라는 책을 썼다소개해 달라.

회사를 떠나 1인 기업으로 두 발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엮은 것이다지난 1년 반 동안 브런치에 연재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글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나?

퇴사하여 1인 기업을 준비하는 사람이제 막 1인 기업을 시작한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조금 범위를 넓히면 직장인 중에서 회사에서 이렇게 일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나?”라는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겠다.

 

▶ 다른 1인 기업가 관련 책과 다른 점은 뭔가왜 이 책을 읽어봐야 하나?

내가 1인 기업으로 왜 독립했는지그런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준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 있다나는 1인 기업이 단순히 일을 하는 방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인생을 살아가는 철학과 태도라고 생각한다책에는 개인 브랜딩이나 강연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실무적인 노하우도 담겨 있다하지만 이런 스킬에 그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1인 기업가로서의 일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또한 내가 1인 기업의 철학을 만들고 독립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받은 책들도 소개했다1인 기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일인기업의 준비, 스킬 뿐 아니라 태도, 마음가짐까지 볼 수 있는 책이다. 

나도 읽어 봤다. 추천한다. 





▶ 이 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언가세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

1. 일은 매우 숭고한 것이다하지만 조직 속에서 남들과 똑같이 일하는 것 외에도 대안은 있다.

2. 독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3.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 책에 “본질” 이라는 단어가 꽤 많이 나온다자신이 신봉하는 하나의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본인의 삶의 모토에 대해 묻고 싶다.

아주 크게 보면 나로 인해 세상 한 부분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그러한 과정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사실 의료헬스케어 분야를 선택한 것도 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디지털 기술과 의료의 융합을 통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사실 이 소망은 의료와 헬스케어 분야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외과의사는 수술을 통해서제약사 연구원이라면 신약의 개발을 통해서헬스 트레이너라면 운동 코칭을 통해서 이를 추구할 것이다나도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


 

▶ 뭔가 Well Organized된 사람이고 그런 하루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하루의 일반적인 루틴은 어떤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9시는 되야 일어난다일어나면 세수하고 커피 한잔 집어들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오후 1시 정도에 점심 먹으러 갈 때까지 계속 일한다혼자 식당에 가면 눈치 주거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점심을 조금 늦게 먹는다점심 먹고 오면 또 논문 읽고 해외 기사 읽고 글 쓰면서 또 일한다그냥 일일이다사실 나는 일 중독자에 가깝다.

저녁 6시 정도까지 일하고저녁 먹고 운동 간다주로 주짓수나 헬스를 한다.  헬스는 15년차주짓수는 8년차다내가 저녁형 인간인 것은 주로 운동을 밤에 하기 때문이다운동 후에 새벽 2시쯤 잠자리에 든다나름대로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건강 관리도 철저하게 하려고 한다대기업과 달리 1인 기업은 안전망이 없다병가도 낼 수 없다나 자신이 기업이니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회사 전체가 멈추는 것과 마찬가지다.

 


▶ 아침에 일어나 몸이 두 개로 분리 돼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다시 합쳐지는 능력이 생겼다고 치자그렇게 10년 동안 살 수 있다면 새로 생긴 몸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재미있는 질문이다. 내가 한 명 더 있으면 옆에 앉혀 놓고 함께 일하고 싶다두 배로 더 공부하고 연구하니 생산성을 두 배로 높일 수 있어서 매우 좋을 것 같다지금도 공부하고 연구할 것이 너무 많아서 벅찬 탓에실제로 하루가 48시간이 되거나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혹은 한 명은 장기적 목표를 위해서 연구만 하고다른 한 명은 단기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 강의나 외부 활동을 하는 식으로 분업할 수도 있겠다지금 실제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 최윤섭이라는 이름은 업계에서 어느 정도 급인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고 또 조심스럽다하지만 1인 기업이니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는 있어야 한다남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헬스케어에 대해 검색 하다보면 결국에는 최박사님 블로그로 귀결된다’, 혹은 ‘S전자 헬스케어 사업부에 책상마다 최박사님 책이 꽂혀 있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 불확실성이란 측면에서 개인과 기업 어느 쪽이 나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준비된 1인 기업이라면 개인 쪽이 조금 나을 것 같다너무 빨리 변화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조직에서 특정 역할을 맡고 연간 목표를 세워놓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조직의 유연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그 측면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에 속한 개인이 가장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조직 속의 개인도 1인 기업의 유연함과 민첩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 4차 산업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된다개인적으로 그런 큰 변화는 역사적 관점에서 지나고 나서 그 후에 평가하고 명명하는게 맞는다고 생각한다분야는 다르지만 박사님 관점에서 의견을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4차산업 혁명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한국에서 정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단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외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기도 하다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의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다만 변화가 아주 크고 엄청난 속도로 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지난 10년 간의 변화도 매우 컸지만앞으로 다가올 십 년 동안의 변화는 지난 1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광범위할 것이다나는 이를 쓰나미에 비유하곤 한다.


 

▶ 이런 엄청나고 빠른 변화가 35세 평범한 직장인에게 어떤 분야에서 큰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나?

내 분야가 아니라 정확한 답을 할 만큼 전문적이지는 않다하지만 헬스케어 분야에 국한되어 이야기한다면 인공지능이 가장 임팩트가 클 것 같다단순하고 기계적인 반복 업무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또 사라지고 있었다인공지능이 인간 전문가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현재 100명이 하는 일을 10명이 할 수 있게 된다면 큰 변화의 촉매가 될 것이다지금과는 인간 전문가들의 크게 역할이 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이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이 준 타이틀을 벗고 스스로 홀로선 헬스케어 분야의 일인 기업가 최윤섭

이 글을 누르면 그의 데이터 뱅크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이 나온다.





▶ 회사를 떠나서 책을 쓰고 1인 기업이 되고 인생이 바뀌고 자유인이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꿈을 쫓아 1인 기업이 되려고 하는 대학생직장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1인 기업이라는 형태는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형식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누군가에게는 조직에 남아서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에 더 잘 맞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자율적인 삶의 태도를 선택하려는 사람에게는 도전해볼만한 형태의 일이라고 본다이를 위해서는 전문성브랜드수익모델 등에 대해 가설을 충분히 검증한 뒤에 독립하여 1인 기업에 뛰어드는 것이 맞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 1인 기업으로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진짜 삶을 한번 보는 것이다. 내 책을 읽어도 좋고, 1인 기업 팟캐스트를 듣거나, 관련 모임에 나가봐도 된다. 1인 기업은 단순히 일을 하는 방식이라기 보다는삶을 살아가는 태도이자 철학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수입자유 등의 단적인 측면만 보고 독립하면 낭패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외적인 측면보다는 실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 요즘 학생들은 조금 더 취업이 쉽고 돈을 벌기 쉽고 사회적 시선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직업을 택하려고 한다대학생들에게 선배로서 인생의 방향성 등에 대해서 한마디 조언을 해 준다면?

자신의 가치관이 정말로 그러하다면 그렇게 선택해도 된다그런데 그 가치관이 정말로 내가 원하고 있는 근본적인 것인지부모님이나 사회상 등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학생 때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 없이 던져야 한다이 질문에 솔직하지 않거나질문을 건너 뛰거나답 없이 사회로 나오면 결국 방황하게 된다.

 

이는 학생들 탓만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요즘 취업이 너무 안 되어서 고민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한 답 없이는 힘들여 취업하더라도 사상누각인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통계를 보면 대기업 신입사원 중에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남들이 다 가는 길이라고 하더라도이 길이 나에게도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 조직에 속한 사람으로서 일했던 것의 점수는?

상사나 함께 일하는 팀원에 따라서 달라졌던 것 같다존경할 수 있는 상사 아래에 있을 때는 80점 이상이었다인간적으로실력적으로도 존경하지 못하는 상사나 교수님 아래에 있을 때는 10점 이하였다이 때는 정말로 출근하기가 너무 싫었다전문가로서나 인간적으로 존중 받지 못하고 나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했던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조직에서 내가 상사나 팀원교수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택 불가능성에도 오는 비본질적인 일의 폭풍 때문에 점수가 낮을 수 밖에 없다퇴사할 때 흔히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사를 떠나는 것이다.’ 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 1인 기업으로 일하는 것의 만족도를 점수로 나타낸다면?

90점 정도 주겠다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조직에서 일할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가장 좋은 점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 5년후 모습을 한 장의 사진처럼 그려본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5년 뒤에도 지속하고 있으면 좋겠다지금과 똑같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전파하면서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내고 싶다그렇게 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인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이 결국 지속가능성이다.


 

▶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연구소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본인 삶의 의미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란다다른 사람 모두가 택한 삶이라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 이유는 없다지도 밖에도 길은 얼마든지 있다책에서는 1인 기업을 강조했지만모두가 반드시 이런 형태의 삶을 택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내 삶의 방향성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한 후에 나온 결론이라면 어떤 형태로 일하든지 상관 없을 것 같다나에게는 그 답이 1인 기업이었을 뿐이다부디 자신만의 길을 찾으시고그 길을 용기 있게 걸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란다.

 

 

 


 

▶    5년 후에도 지금처럼 살고 싶다는 사람은 태어나 처음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5년후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던가 혹은 막연하게 말한다아주 소수만 명확한 모습을 말한다그는 스스로 방향을 명확히 하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지금이 행복한 모양이다지금 행복한 공부와 본질적인 일을 하고 있고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또 그는 본질’, ‘의미’, ‘방향성’ 그리고 과정 중에 있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말은 사람의 가치를 드러낸다.  짧은 인터뷰에서 실마리를 찾았다면 그의 책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를 읽어보기 바란다. 1인 기업관련 책 중에서 한 권만 고른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괄목할 만큼 좋고 무엇보다 진실된 책이다. 5년 후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지금처럼 일하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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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1 _ 40대 직장인. 정해진 길 밖으로 핸들을 꺽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5.10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1974년 생 43. ㅇㅇㅇ 입니다. 현재 ㅇㅇㅇ에서  HR 담당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회사 중심의 간단한 커리어 소개.

회사 생활은 약 16년 가량 하고 있고 지금 다니는 곳은 두 번째 직장이다. 회사 생활 16년간 계속 인사 업무를 했다. 첫 번째 회사는 중간규모의 금융회사였다. HR 팀에서 채용, 교육, 인사평가, HR 프로세스 등의 거의 모든 업무를 했다. 사실 입사한 2000년에는 대부분 금융권에서 사람을 많이 뽑았다. IMF 이후에 금융장세의 시작으로 금융업이 활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에 비하면 그 당시는 취업이 힘든 시기는 아니었다. 뭘 해야겠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돈 많이 주고 일은 좀 적은 회사를 찾았던 것 같다. 나도 평범하게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넣어보고 되는 곳을 들어간 케이스다. 입사해서 점심시간에 여의도를 조금만 걸어 다니면 많은 동창들을 만날 정도로 금융투자업계에서 사람을 많이 뽑았다. 어쩌면 2000년대 초반이 금융업의 베이비 부머 세대다. 20158월에 퇴사를 했다. 그러다가 20161월에 다시 지금의 비영리 재단에 재 취업을 했다.

 

▶ 본인은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아주 아주 평범한 직장인 이었다. 그냥 직장인의 평균을 내면 나오는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타고난 관리직정도일 것이다. 조율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잘 했던 것 같다.

 

▶ 첫 직장을 15년 다녔다. 또 인사팀이었다. 왜 회사를 그만두었나?

한마디로 하면 경력이 막혔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회사를 떠나게 됐다. 월급을 받으려고 회사를 다니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전에는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해 보려고 꾸준히 노력을 했는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작은 규모의 오래된 조직이어서 성장이 정체되고 승진하려면 질퍽한 사내정치의 늪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내가 정치를 잘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내가 있던 회사는 업의 특성상 첫 직장은 돈만 잘 벌면 장땡이인 곳이었다.) 조직의 미래와 비전을 보고 인사를 전략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었다. 윗선에서 이렇게 발령을 내라고 지시가 그냥 내려 오면 인사팀은 행정처리 하듯이 처리만 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없는 조직에서 나는 부품일 뿐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받는 것 이외에는 의미도 성취감도 없었다. 이런 부분도 회사를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 사람들이 너무 적체되어 있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구조였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도 있었지 않나? 그런데 왜 그냥 때려 치운건가?

이 질문은 재 취업 면접 시 정말 많이 받았다. 사실대로 대답해도 아무도 수긍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찮아서 그냥 말을 바꿨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지어낸 것이다. “여자친구랑 사귀다가 다른 여자친구를 먼저 물색해 놓고 내 사람이 되고 나서 전 여친을 차버리는 것이 성격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서 직장을 찾았다.” 이렇게 말했다.

 

▶ 그럼 면접관에게 한 거짓말 말고 솔직한 이유는 뭔가?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마음으로 지금의 회사를 대충 다니며 일을 하는 것이 회사에 몹쓸짓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리 말하고 회사에는 후임을 뽑을 시간도 충분히 주고 그 후임이 입사해서 인수인계도 충분히 하고 나왔다. 거의 두 달이 넘게 걸렸다.

 

▶ 모든 커리어 관련, 이직 관련 책에서는 다른 회사를 정해 놓기 전에 절대로 지금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다. 전혀 다르게 행동했는데.

맞다. 책의 내용을 100%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가치기준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 사실 나는 이직,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퇴사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회사를 그만두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회사 이후의 플랜을 세우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모든 커리어 관련 책 혹은 커리어 컨설턴트의 말을 그대로 따르다가는 그 전에 회사에서 내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강제로라도 판을 뒤집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 판을 바꾼다는 말.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회사를 다니면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면 기본적으로 시야가 좁아진다. 내가 그저 지금 머물고 있는 산업과 업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회사가 미치도록 싫고 지금의 일이 죽을만큼 싫다고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일, 이년 후에 보면 이 업계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지낸다

나는 업계를 떠나고 싶었고 제대로 된 그리고 내가 일을 하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조직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15년을 해온 일을 계속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프레임, 다른 땅 위를 딛고 뛰어다니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회사를 다니면서는 불가능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 그럼 회사를 떠나면서 새로운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던 건가?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다. 회사 때려치우고 뭐 할래? 그 질문에 구직활동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좀 쉬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집안 살림도 하고 운동 좀 하려고.”이렇게 말했다.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1순위는 재 취업이었다. 2순위 노무사 시험, 3순위 9급 공무원까지 생각했었다.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불안해 하는 와이프가 뭐라도 해야지 않겠냐 라며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나의 전문성과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HR 일과 관련이 있는 노무사에 도전하는 것이 2순위로 포함되어 있는 이유다. 사실 마흔 세 살에 회사를 떠나서 아등바등해서 다시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얼마나 다시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랫동안 쌓았던 인간관계도 다시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밀어주고 끌어줄 기반도 없는 곳에서 말이다.

 








▶ 43세면 무작정 회사를 나오기에는 적지 않는 나이다. 아내의 반대는 없었나?

우선 내가 워낙 오랫동안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처럼 골골거리고 있었기에 그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솔직히 아내는 내가 나의 꿈과 이상을 좇겠다.’ 라는데 동의해서 회사를 그만두라고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죽을 만치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동의해 준 것이다. 아내는 보수적인 사람이기에 그만두어도 남자는 얼마가 되더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내가 용인해 줄 만큼 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서 허락해 준 것 일 수도 있다. 나는 처가어른들과 같이 사는데 그 분들도 허락을 해 주실 정도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 미친듯이 사람을 짤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나.

회사가 성장기에는 피라미드형 인력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다가 산업 정체기에는 신규인력을 뽑지 않는다. 그럼 인력이 병목현상이 생기고 적체가 된다. 그럼 고임금의 인건비가 감당이 안되고 당연히 성과주의’, ‘효율우선으로 회사의 기조를 바꾼다. 인력들의 연봉을 줄이거나 사람자체를 쳐내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2015년 말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 인력 쳐내기가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남아있는 곳이 금융업, 제조 대기업쪽 일 것이다.

첫 회사에서 15년차고 사십대 중반인 나는 남자 직원 중에 거의 막내였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은행의 선배는 마흔 일곱 살인데 은행 지점의 남자 중 거의 막내다. 그만큼 금융계가 신입사원을 거의 뽑지 않고 고임금 비효율 형태가 되었다는 반증이다. 다른 업은 업태의 변화나 부침이 추세를 타고 오는데 금융업은 추세가 별로 없이 주가처럼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사람을 쉽게 뽑고 쉽게 자르는 것이 다른 업태와 조금 다른 부분이다. 내가 입사 당시 금융계 종사자가 3만명에서 2.5만명까지 떨어 졌다가 활황일 때 6만까지 찍고 지금은 미친 듯이 인력은 다시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 개인적으로 인사팀은 일반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가 궁금하다. 인사팀은 회사의 사측에 가깝다는 선입견이 있지 않은가?

중견크기의 회사였지만 인사팀의 권한은 없었다. 임원급에서 이렇게 발령을 내라고 서류가 그냥 내려왔다. 전사적으로 인력배치를 조율하는 것 보다는 그저 행정처리를 하는 느낌이 매우 강했다. 솔직히 말하면 인사팀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다른 일을 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의 잘못된 방향성에 대한 불만, 그리고 조직 안에서 커나갈 수 없다는 답답함이 아닐까 싶다. 통상적으로 인사팀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강한 경우가 많다.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다.’ 는 목표가 있는데 조직에서 그것을 도와주지 못할 때, 즉 개인의 욕구와 회사의 필요가 어긋나면서 생기는 충돌 때문에 많이 그만 두는 것 같다.

 

▶ 인사는 HRD 팀이다. 이것은 회사를 위한 인간 자원 개발하는 것이다. 개인 보다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하는게 목표라고 본다. 사람을 회사를 위한 자원으로 보는 것 같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우선 사람을 Resource라고 보는 관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나도 공감하는 바다. 회사 입장에서만 본다면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하는게 맞을 수도 있다. 보는 관점상의 차이인 듯 하다. 나는 퇴사 이후 다시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면접을 열 번도 넘게 봤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HRD를 테크닉이나 기술처럼 생각하는 회사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MBO를 해 봤냐? KPI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같은 질문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성과주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는데 성과주의라는 개념은 큰 틀에서 볼 때 지금과는 점점 맞지 않는 오래된 개념이 되고 있다.

 

▶ 금융회사에서 일했으면 더욱 성과주의라는 개념이 많았을 것 같다.

맞다. 노골적으로 그랬다. 개인이 얼마를 벌어오면 그것을 회사와 개인이 나눠먹는 느낌이 있었다. 회사와 직원의 관계가 마치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장님과 본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인사팀의 말을 듣지를 않았다. 인사팀의 말을 잘 듣는 직원은 성과가 조금은 낮은 직원들이었다. 정말로 돈만 잘 벌면 장땡이었다. 금융계에서는 철저히 개인의 성과에 따라 월급이나 특히 성과급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성과주의의 극치는 이 업계에서 이미 고착화 된 것이다. 모 회사는 성과에 따른 배분으로 직원들간의 단합에 문제가 되어 아예 성과급제를 없애거나 실시하지 않는 곳도 있다.

 

▶ 회사의 주인은 누구라고 보나? 인사팀은 어떻게 생각하나?

회사의 주인을 주주라고 부르는 주주 자본주의가 지배적이긴 한데 직원 입장에서는 전혀 와닿지 않는 얘기다. 그저 책상 위에서 학자들이 말하는 얘기다. 생각해 봐라. 그 회사에 정말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주식을 사고 주주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주주는 주가가 올라서 돈만 벌면 장땡일 것이다. 굳이 정답을 내자면 이해당사자가 아닐까 한다. 존슨앤존슨 같은 경우에는 종업원, 고객, 거래사, 주주 이런 순서로 중요한 고객이라고 말하더라. 회사는 회사의 오너가 아니고서는 솔직히 설명하기 어렵다. 굳이 꼽아보자면 실제로 일을 해서 회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종업원이기에 종업원이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라고 본다.

 

▶ 결국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재 취업에 성공했다. 새로운 회사를 선택하는 본인만의 가치 기준이 있었을 것 같다. 뭔가?

나는 반드시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회사형 인간에 가깝다. 어떤 사람이 영업력이 있거나, 자신만의 기술력이 있다면 그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조직에 관한 일을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나는 회사라는 숙주가 있어야 하고 그 숙주에 기생(?) 해야만 살 수 있는 그런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혼자서 일하기에 잘 맞지 않는 성향이다. 회사를 떠나서 나에 대해 계속해서 돌아보고 고민하고 내가 해온 일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나보니 회사 안에서의 나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바로 볼 수 있었다.

 

▶ 마흔세 살에 퇴사 그리고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기분은 어땟나?

사는 게 뭐라고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어떤 할머니가 우울증이 있었는데 유방암에 걸렸다. 2년 밖에 못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즉시 우울증이 사라졌다. ‘어차피 2년만 살고 죽을거니까 남은 인생 내 마음껏 살아야겠다.’ 라고 마음먹으니 우울증이 도망간 것이다. 그리고 바로 1억이 넘는 페라리를 샀다. 그 이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았다고 했다.

만약 내가 재취업을 준비했던 여섯 달 후에 갈 곳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 기간은 짧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재 취업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있었던 날이 없었다. 하루 하루가 불안했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가장 불편한 것은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 재취업을 하려고 노력하던 기간 동안 특히 신경 쓴 것은?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노력했다.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운동 하고 아침밥도 꼭 챙겨 먹었다. 백수의 하루 일과는 아침이 좌우 한다. 늘어지면 하루가 눈 깜빡 할 사이에 끝난다. 핸드폰이라도 들고 침대에 누우면 한 두 시간은 그냥 버리는 거다. 또 주말에 도서관에서 도서 대여 반납 일도 했다. 살림도 김장까지 할 정도로 익숙해 졌다.

 

▶ 회사를 떠나고 가장 크게 바뀐 감정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나는 담배를 꽤 오랜 기간 동안 피우다가 지금은 끊은지 일년이 넘었다. 거의 20년이 넘게 피워서 내가 담배를 끊으려면 정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쉽게 끊을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떠나보니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구직활동을 하면서 드는 하루하루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일상을 탄탄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미칠것 같은 불안을 이겨낸 후에 얻게 된 자신감이 가장 큰 변화다.

 

▶ 회사를 떠난 후 자신이 가고 싶은 일하고 싶은 조직에 대한 생각이 명확했을 것 같다. 어떤가?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 되었다. 큰 조직이나 시스템이 잘 갖춰진 조직은 나와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곳은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할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오래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일만 했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런데 가면 일을 잘 못할 것이다. 규모가 작지만 좋은 기업문화를 가지고 HR을 만들어 가는 그런 회사를 가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 학습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기준이었다.

 

▶ 조직문화가 좋다는 것을 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일단은 남을 짓밟으며 성장하는 마초적인 문화가 없어야 한다. 면접을 보는데 이런걸 물었다. ‘A는 신입으로 들어와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연봉이 5000만원 이다. A와 똑 같은 일은 하는 B를 경력으로 뽑았다. 그런데 B의 연봉은 1억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라는 거였다. 내가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능력이 비슷한데 연봉이 그렇게 차이나게 회사는 결정했냐?’ 면접관은 내가 질문했으니 너는 그냥 답하면 된다.’ 라고 얘기하더라. 그래서 그 이후의 면접은 대충 보고 나왔다. 문제는 회사에 있고 저지른 것도 회사인데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기는 문화가 있는 곳일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인사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면접 질문은 뭐가 좀 다른가?

질문보다는 태도에 대해서 예기하고 싶다. 인사팀의 팀장, 부장 이런 사람은 면접을 볼 때 사람을 쭉 훑어 본다. 그리고는 이력서를 한번 보고 다시 한번 또 훑어 본다. 마치 쇠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으면 쉽게 찾아 왔냐? 차라도 한잔 하겠느냐?’ 라는 스몰 토크부터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인사를 오래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만나자 마자 그저 겉모습과 서류만을 훑어 보면서 사람을 평가하려고만 한다. 사람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의 시작을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질문도 스킬파악에 가까운 것이 많다. “그저 ㅇㅇ 해봤어요? ㅇㅇ 해본 경험 있어요?” 이런 질문만을 던질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인사업무에 너무 충실 하다보니 기본적인 사람간의 관계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 면접은 몇 번 봤나? 13년 만에 면접관이 아닌 면접자 입장이 되었는데.

지원은 세어보지 못할 정도로 많이 했다. 백 번도 넘었을 것이다. 면접은 총 열 번 정도 봤다. 요즘 신입사원이 지원보다는 조금 양호한 정도인 것 같다. 면접 중 한 서너 번 까지는 감을 잡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 그렇게 많이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힘든 구직과정을 거치면서 회사를 괜히 나왔나?’ 하는 후회는 없었나?

없었다. 그저 그 조직을 떠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사팀 치고는 이직할 곳을 정하지 않고 회사를 떠나는 것처럼 정상적인 순서와는 다르게 떠났다는 것을 잘 안다. 모든 HR 담당이나 헤드헌터는 이직할 곳을 정해 놓고 가라고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미리 갈 곳을 정해 놓고 회사를 떠나는 것이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예전에도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알아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니 회사일에 제대로 집중 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만두고서 다른 일을 알아본 것이다. 또 이 회사를 계속 다니다가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회사를 끊어버리고 나왔다. 이건 아마도 성격적인 이유가 클 것이다.

나는 그냥 흘러온 인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려고 공부했고 대학 때는 저학년 때는 적당히 놀다가 4학년 되서 취업 준비했다. 그리고 모든 곳에 다 지원해서 붙은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저 남들이 하라는 대로 혹은 그렇게 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세상이 말하는 대로 살았다. 이런 인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를 나온 것 이다. 내 인생에는 방향키가 없었다. 그냥 바람이 부는대로 흘러 왔던 것 같다. 지금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조금만 더 나이를 먹었으면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중에 퇴사는 내가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이라서 후회는 별로 없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내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은 늘 했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료와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했을 때 그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대로 살다가는 남은 선택이 자살밖에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그는 계속 선택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 HR 출신이 회사를 떠나서 취업을 돕는 컨설팅, 강의 등으로 1인기업으로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가?

일인 기업도 자신의 성향과 맞는 사람이 하는 것 같다. 컨설팅을 하는 것에 조금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컨설턴트는 제너럴리스트다. 컨설팅하는 조직의 특징과 업의 형태를 파악하는데 시간의 반을 쓴다. 그리고 결과도 제너럴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정말 문제를 잘 아는 사람에게 맞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내부 인력을 믿지 못하기에 컨설팅을 맡기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회사, 조직이 필요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조직이 있는 상태에서 그 조직을 잘 관리해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하고 돕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인기업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 지금은 비영리 재단에서 인사일을 하고 있다. 본인이 생각한 일과 잘 맞는가?

그렇다. 여기서는 나 혼자 인사, 총무에 관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 전체 인력은 한 60명 정도 된다. 보통은 영리조직과 비영리 조직의 인사도 똑같다. 채용, 급여, 교육, 복리후생 등 모두 똑같다. 같은 일을 하는데 시간은 적게 걸린다. 여기는 직급도 하나 뿐이기에 체계가 단순하게 돌아간다.

 

▶ 이직을 하고서 만족도는 어떤가?

버는 돈은 금융계에 있을 때보다 반으로 줄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평생소득은 늘려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다른 영리 회사로 갔다면 회사 생활을 오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기업 보다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또 돈을 버는 1차적인 목표 이외에 지금의 조직에서는 작은 조직의 인사라는 부분을 일하며 배워나갈 수 있다

평생소득이 늘어날 수 있고 아직도 일에서 배우며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면 충분히 멋진 이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돈과 직장수명의 연장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작은 기업은 대기업에서 쓰는 인사 제도 등을 그저 줄여서 쓰는 경우가 있다. 이직을 준비하며 공부를 하는 동안 작은 조직, 비영리 조직의 인사에 관련한 책들과 논문을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작은 조직에 맞는 인사 형태에 대해 시도해 보고 싶은 솔루션들을 문서로 정리해 놓았다. 그렇게 준비했던 것들을 실제로 적용해 보고 싶다. 그렇게 배우고 성취감을 얻으며 발전하는 것은 연봉이 주는 만족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 40대 중반에 첫 이직을 했다. 그 다음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직을 준비하면서 명확한 목적지와 목표를 세웠다. 거창한 건 아니고 중소 규모의 회사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것을 보급하는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지금 근무하는 조직에서 내 목표가 성공한다면 지금 근무하는 조직은 중소 규모 조직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보급하는 일을 하는 비영리 단체를 인큐베이팅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 다음의 목적지다.

 

▶ 신입사원도 회사에서 짤리는 것이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본인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인사팀의 담당자라면 어떻게 했겠나?

그런 것을 어둠의 HR (Dark HR)이라고 부른다. 천사의 날개가 있지만 악마 같은 그런 존재다. 그런 일을 한번 하게 되면 계속 그 사람에게만 시킨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을 시켰다면 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킨 일을 하지 않는다고 압박을 한다면 그만 두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좀 개탄스럽고 바보처럼 느껴진다. 힘들게 사람을 뽑아 놓고 바로 신입사원을 자를 정도면 100% 경영진의 문제다. 이건 조직의 평균 아이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행동이다.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나는 신입사원도 안타깝지만, 그렇게 바보같이 조직을 관리하는 회사에게 더 분노가 생긴다. 아마도 회사가 너무 크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인 것 같다.

 

▶ 앞으로의 조직은 어떤 형태가 될 것 같나?

앞으로 조직이나 회사가 생기게 되면 우리가 아는 이름 있는 회사처럼 수천, 수만 명의 인력을 거느리는 회사는 극히 소수가 될 것 같다. 정보의 인프라도 풍부하고 월급을 주는 사람들에게만 일을 시켜야 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원에게 시키던 일을 외부에 의뢰하는 형태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 같다. 물론 그런 아웃소싱 전문회사 프리랜서의 모임과 같은 회사도 어느 정도는 늘어날 것 같다.

 

▶ 신입사원도 짤리는 판국이다. 회사를 떠나는 것, 버티는것 어떤 것이 맞다고 보나?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얘기해 보겠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단 회사에 남아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불안 때문에 그냥 뛰어나오면 안 된다. 이 대답은 내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나는 조직이 있어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은 자신의 능력과 준비, 그리고 자신이 혼자 일할 수 있는 성향을 갖추었는지가 대답이 될 것 같다. 누구라도 이 질문을 받는다면 답하기 전에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 꼭 돌아보면 좋겠다.

 

▶ 인사팀이 볼 때 일 잘하는 사람이란?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소통에는 남뿐 아니라 자신과의 소통도 포함한다. 빠르게 배우고 그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배워서 익힌 것을 다른 사람에게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또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고 봐도 된다. 그런 사람은 개인 뿐 아니라 조직 전체를 발전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결국 소통을 하는 사람이 발전한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무언가를 혼자서 이루어 내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 그럼 회사에서 불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보나?

회사에서 정보를 독점하거나 좋은 아이디어를 흐르지 못하게 막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발전하지도 못하고 남의 발전을 막는 사람이다. 남이 잘되는 것을 막아야 자신이 뒤쳐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조직에 절대적으로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 취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해 준다면?

이 질문은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취업 전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면 트랜드를 너무 쫓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기업이 안정적이고 좋다더라, 빅데이터가 유망하다더라 라는 등의 것 말이다. 솔직히 그렇게 해서 사람이 쏠리게 되면 다시 다른 빈자리가 생기게 된다. 그런 트랜드를 개인이 알아낸 다는 것은 사람 매우 힘들다. 그 트랜드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알 수 없는 기술의 발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조금이라고 하고 싶은 일, 관심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처럼 회사가 아니라 모바일 전문가, 자동차 디자인 이렇게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꼰대가 되겠지만 40대 중반인 지금 보면 그렇다.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기준으로 일을 고를 것 같다. 물론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볼 기회가 없을만큼 힘들게 산다는 것 알고 있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ㅇ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내 나이의 내 입장에서 조심스레 말해 본다.

 

▶ 만약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회사 그만둔다.”를 입에 달고사는 후배가 있다면 뭐라고 해 주겠는가?

조언은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공허한 소리다. 하지만 인터뷰니까 얘기해 본다면 나도 마흔 넘어서 해 봤는데 너도 한번 해 보렴. 니가 감당 할 수 있다면, 또 니가 죽지 않는 다면 너를 발전시킬 경험이 될 거야.” 라고 할 것 같다.

 

▶ 구직 기간 동안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직장생활연구소 인터뷰는 솔직한게 멋인 것 같다. 멋진 얘기만 하지는 않겠다. 실제로 신세 한탄도 많이 했고, 술도 많이 먹었고, 찌질한 패배 의식에 허우적대기도 했다. 그만큼 회사를 떠난 다는 것은 힘들다는 얘기다. 회사에서의 반복된 일상을 막연히 저주했지만 그 반복을 떠나면 또 사람은 미치도록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를 떠난다는 건 문을 여는 것 같다. 한 번도 열어본 적을 없지만 늘 있었던 문. 그 문은 바깥에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여는 것은 100% 본인의 자유의지다. 그 방에 괴물이 있을지 보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방이 아무것도 없는 빈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빈방에는 반드시 또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그게 문의 이름이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사람은 현재를 벗어나려는 시도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 본인처럼 40대 중반에 다시 일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40대 중반이라면 개인의 삶의 무게도 꽤 무거운 나이다. 아이는 중학생 이상일 것이고 돈이 나갈 곳도 많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제대로 승진을 못하면 밀려나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그 동안 무얼 했나 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용히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이랑 소주 한잔 먹으면서 하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고민하게 된다.

굳이 얘기를 하자면, 일단 자신을 꼭 돌아보길 바란다. 나도 6개월간 회사를 다니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잔뜩 읽었고,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냥 달리기만 하다보니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이라면 현실을 인정하는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전 회사에서 버는 돈만큼은 벌어야 한다.’ 라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된다. 이해는 하지만 그건 목표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삶을 돌아본 만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에 맞는 목표를 세우면 좋겠다. 꼭 돈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좇는 다른 삶의 형태도 좋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그럼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40대 중반이라도 앞으로 30년은 더 넘게 살아야 한다. 너무 급하게 방향을 잡으면 또 다시 후회할 수 있다. 충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세상에 내쳐진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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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40대 퇴직, 금융권,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회떠사,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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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 2016.05.21 01:53 신고

    이 글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많이 공감도 됐지만
    한 수 배우기도 했습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6.05.21 10:15 신고

      안녕하세요.

      먼저 행동을 한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찾아가는게 이 인터뷰의 목적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DIT

  • paris again 2016.05.25 18:54 신고

    항상 좋은 글이 마음이 와닿습니다. 꾸준히 읽고있습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6.05.25 23:48 신고

      인터뷰를 계속 하다보니 스킬도 늘고 인터뷰이의 심정도 알게 되면서 질문들이 깊게 들어가는것 같네요. 늘 읽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EDIT

  • 재취업에 2017.06.13 10:12 신고

    성공했으니 유유자적한 말만 하는거죠. 저 나이에 재취업 성공한 사람보다 안된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공감이 안되는겁니다. 공무원 합격자가 불합격자의 마음을 알리 없듯이.

    REPLY / EDIT

    • 손성곤 2017.06.14 17:43 신고

      맞습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니 같은 내용도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구요.

      이 댓글을 적으신 분이 다시 찾아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뷰는 그저 개인의 생각이지 주장이나 원칙은 아니라는 것만은 이해해 주시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15 _ 대기업을 떠나 스타트업의 자갈밭을 택하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9.30 08: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안녕하세요헬로마이코치 (https://www.hellomycoach.co.kr/) 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 바디온의 대표 조재현 입니다.

 

▶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간략한 소개.

나의 20대는 아주 심플했다. 4수를 해서 01년도에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들어갔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KBS 비타민이라는 프로그램에 학과의 특성을 살려 운동처방사라고 뱃살 빼는 운동법을 알려주는 출연한 기억도 있다. 학교생활 4년을 마치고 2005년에 ROCT로 군생활 2년 좀 넘게 했다.대학 준비를 오래 한 것을 빼고는 남들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전역 후 2008년에 LG U+에 취업을 했다.2010년 직장인 2년차에 맨즈헬스라는 잡지의 쿨가이 컨테스트최종 7인에 선발 되기도 했다.그리고 20156월에 회사를 나왔으니 약 8년간 회사에서 일을 하고 회사를 떠났다.

 

▶ 4수까지 했던 이유가 있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오토바이를 탔다. 어느 날 무면허에 헬멧 미착용으로 경찰에 걸렸는데 그 날이 마침 어버이 날이었다. 결국 밤 늦은 시간에 어머니가 경찰서로 와서 나를 데려가 주셨다. 그 때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그 이후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공부를 등한시 해서 현실을 직시하니 대학에 갈 점수가 아니었다. 겨우 정신 차리고 공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던 꿈을 생각했는데 그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꿈을 나의 현재 때문에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 것이 체육대학 이었다.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대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끌렸다. 하지만 수능을 거의 100일 정도 앞둔 시기에 무리한 실기 준비 탓에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 다시 찾은 나의 목표와 꿈을 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디스크 수술을 했다. 결국 실기 때문에 대학입학에 실패했다.

재수를 준비하면서 기왕 하는거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가기로 결심했다. 결국 재수도 실패했지만 점수나 실기가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서 삼수를 결정했다. 삼수 준비한 후 원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 대학에 붙었다. 원 없이 놀고 6개월 정도가 지나니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서울대를 목표로 해서 3년을 보냈는데 지금 내 모습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에게 90일이 채 남지 않는 시점에서 다시 대학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 동안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원하던 서울대에 합격을 했다. 어찌보면 4수를 한 이유는 항상 꿈을 포기하기만 했던 나의 청춘의 안 좋은 경험의 사슬을 내 힘으로 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회사에서 했던 업무는 무엇이었나?

대학을 4수까지 해서 들어가다 보니 남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빨리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부모님도 그걸 바라셨다. 그래서 ROTC 2007년에 전역하고 2008년에 LG U+ 에 입사했다. 이동통신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아는 선배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익숙한 곳이라 지원하게 되었다. 2008LG U+ 본사에서 영업지원 팀에서 일을 했다. 입사했을 때 나이가 서른 이었다. 업무는 쉽게 말해 LG U+의 대리점 개설과 관련된 계약을 하는 것이었다. 좋은 장소를 골라 영업점을 오픈하고 입점, 퇴점 계약, 재계약 등을 담당했다.

업무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환경은 대기업답게 아주 좋았다.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기에 내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회사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의 지원이 매우 좋았다. 또 건물주를 만나 임대차 계약도 맺는 등의 외근이 많다 보니 출퇴근이 일반 직장인에 비해 자유로운 것도 좋았다. 업무는 나와는 맞지 않았지만 대기업이라는 이름, 업무 환경 등에 있어서는 매우 좋았다.

 

▶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얘기인가?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세부 사항이 많았고 업무의 특성상 매우 꼼꼼해야 했다. 계약서 문구, 독소조항, 부동산법 등 돈을 다루는 계약일 이다 보니 개인적인 성격과 100% 맞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서류 작업도 많았다.지금 생각해 보니 차라리 직접 영업을 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을 것 같다.

 

▶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마디로 말한다면?

최종적인 모습은 한마디로 굉장히 수동적인 회사원이었다. 미친듯이 열심히 일해서 팀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과가 칭찬이나 인정이기 보다 보다는 시기와 견제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냥 수동적이 되었던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도 견제를 하고 정치에 빠트리려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수동적이 되는 것을 내가 선택한 것 같다.


▶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수동적이란 말이 연상되지 않는다. 왜 수동적인 직장인을 선택했나?

체육교육과 이기는 했지만 입사 후 서울대라는 말이 늘 따라다녔다. 일을 잘 못하면 서울대가 그것도 못해라는 말이 늘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농담이겠거니 했지만 이런 말들이 계속 되다 보니 나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 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담당 지역이 부산이어서 매주 월요일 새벽 운전해서 내려가서 금요일 밤에 올라오는 생활을 일년을 했다. 6개월 동안은 시간이 아까워서 하루에 한끼만 먹고 일만 했었다. 수치로 나오는 약 70% 정도의 정량적인 평가와 팀장평가 30% 정도의 정성적인 평가가 함께 이루어 졌기 때문이었다. 미친듯이 일만해서 정량적인 부분에서는 최고의 평가를 받아도 정성적인 부분은 최저였다. 이유는 하나, 내가 막내라는 것 때문이었다. 오래 일한 사람, 승진 앞둔 사람, 가정이 있는 사람 들에게 정성적인 좋은 평가가 돌아갔다. 평가에 따라 인센티브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기업이 그런 것 같다. 일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자꾸 평가가 뒤로 밀리니 더 오기가 생겼다. 정량적인 부분에서 30%의 정성적인 평가를 압도할 만큼의 실적을 내 보기로 했다. 예전에 추성훈이 재일교포라는 핸디캡 때문에 판정에서 번번히 지면서 그럼 아예 아무 말 못하도록 한판승으로 게임을 끝내야겠다.’ 라는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결국 더 열심히 일을 해서 일등 성과를 냈다. 나는 내심 역시 대단해, 열심히 하더니 잘됐네라는 말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말의 대부분은 오바 하지마라는 말이었다.

못하면 못한다고, 잘하면 잘한다고 뭐라하니 일할 의욕이 싹 사라졌다. 일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롤러코스터 떨어지듯이 뚝 떨어졌다. 그 이후 너무 잘하지도 못하지도 말고 중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자고 생각했다. 일할 의욕을 대가로 헌납하고 조직의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 씁쓸했다. 20156월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직 어머니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모른다. 아마도 회사 일을 하면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거다.



 




▶ 회사를 그만두게 된 사건이나 계기는 없었나? 왜 회사를 떠났나?

5년이 지나면 옆자리 과장이 될 것이고 10년이 넘으면 그 옆에 차장 자리로 갈 것이다. 근무 여건은 좋은 회사 였지만,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첫째 이유다.

또 지금은 100세 시대다. 지금의 어린 친구들은 그 이상 오래 살 수도 있다.회사 생활을 할 만큼 한다 해도 나머지 50년은 회사를 떠나서 살아야 한다는 거다. 절반은 회사에서 살고 나머지 절반을 의미없이 생계를 위해 살아야 하는 모습이 싫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다고 해서 그 길이 반드시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 때 체대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나와는 사업이 맞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 왜 본인이 옆자리의 사람처럼 될 것이라고 단정했는가? 다른 행동 다른 노력을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나?

물론 내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더 창의적인 생각으로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제약이 너무 많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이 부서에 가고 싶다고 해서 그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회사의 인사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회사의 이익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대기업에서 하나의 부품이지 엔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기업이라는 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옆자리의 선배처럼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 그럼 그 옆자리의 사람이 왜 그렇게 사는지 한번 속 깊게 얘기해 본적은 없는가?

물론 형님처럼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는 과장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분도 2~3년차 때 회사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행동 없이 시간은 흘렀고 주위 몇몇은 자신의 일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경우도 봤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 것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황에 안도했고 안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행동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고 도전할 용기가 한번 접히고, 아기까지 생기면 완전히 꿈을 접었다고 했다. 생활을 위해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과 책임질 것들이 많아지면서 꿈이라는 것을 스스로 포기 했다고 했다. 그렇게 되기 싫었다.

 

▶ 회사를 다니면서 기획하고 PT 트레이너 영업하고 사이트 개설까지 했다. 물론 지금의 서비스를 위한 팀 빌딩까지 했다. 거의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회사를 나온건데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이렇게 까지 준비를 했나?

방법은 딱 하나다. 잠을 줄이면 된다. 원하는 것을 다 하고 다 누리면서 회사일 창업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준비 할 시간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즐기는 시간을 포기하고 잠을 줄이는 것이었다. 2년 동안 스텔스 모드로 사업에 대한 모든 준비를 했다. 보통 하루 일과는 오전에 회사 업무를 집중해서 하고 낮에는 회사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사업 관련 미팅을 진행했다. 퇴근 후에는 사업하는 사무실로 이동하여 팀원들과 그 동안 업무 진행된 내용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물론 팀원이 퇴근 후에도 사업계획서 등 개인 업무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당연히 잠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사업초기 팀 빌딩부터 채용, 재무, 정부지원사업 지원, 서비스 기획, 전략, 서비스 기능, 개발 미팅, 마케팅 계획 등을 거의 모든 것을 준비하느라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 회사일을 하면서 퇴사를 준비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업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그로 인해서 원활하고 빠르게 커뮤니케이션을 못한 것이 힘들었다. 완전히 신규 사업이기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주고 낮 시간에 만나야 하는데 낮에 회사업무를 해야 하니 미팅시간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오전, 오후에는 주로 회사업무와 외부 미팅이 많아서 우리 팀원과의 업무, 회의, 의사결정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많은 제한이 있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더 빨리 준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점이 힘들고 아쉬웠다.

 

▶ 그래도 이렇게 준비하는건 대단한 일인것 같다. 비결을 좀 더 알려달라.

앞서 말한 것처럼 회사 일을 정말 내 일처럼 미친듯이 열심히 해도 성취감이 적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남을 위해 일했으면 지금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 일한다. 그러기 위해서 회사를 나온 거다. 내일을 한다는 희열이 잠을 줄여 주었다. 만약 남의 일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정주영 회장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회사에 가는 것이 기다려 졌다는 말, 내 일을 하면서 실감하고 있다. 열정은 강요한다고 동기부여 강연가의 강연을 듣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놈의 회사 때려 치고 내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만 하지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 우리 모두는 성공의 법칙을 이미 알고 있다. 워낙 많은 책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이기에 성공자는 적다. 계속 월급은 나오기에 절박해지지 않는다. 길게 말했는데 결국은 제대로 된 내일을 하겠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

  

▶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할 때 에피소드 같은건 없었나?

퇴사 전에 ‘Be Global’이라는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부스를 만들어 참여했다. 그 후 여러 곳에서 관심을 표했는데 그 중 LG U+의 헬스관련 신사업 팀 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행사책자에 회사에서 준 업무용 핸드폰으로 내 번호를 적었으면 내가 유플러스에 다닌다는 것을 아마 알았을 것이다.유플러스는 모두 핸드폰 가운데 자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내 개인 폰 번호를 적어 놓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사에서도 딱 한층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팀이었다. 그래서 회사 밖 조금 떨어진 곳으로 약속을 잡고 미팅 후 빙 돌아서 다시 회사로 돌아와 근무했던 기억이 있다. 어찌 보면 식은땀 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 스타트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었나?

팀 빌딩. 즉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같이 일할 의욕이 있고 뜻이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잡코리아 같은 구인 사이트에 올려서 사람을 구했다. 마침 피트니스 쪽 일을 했었고 영업기획, 서비스 기획, 영업도 했었던 이력서가 너무 빵빵한 사람을 채용했다. 힘들었지만 Pay도 꽤 괜찮게 주었다. 결론만 말하면 한달 동안 한 건의 계약을 채결했다.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영업용 카드도 자기 마음대로 사용했고 팀 분위기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이력서만 폼 났고 허울뿐인 사람이었던 거다. 그 후에는 지인의 소개로 사람을 찾았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인성이 필터링이 되어 있으니 조금 나았던 것 같다. 지금 함께 하는 팀원 중 절반은 지인 소개를 받아 알게 되어 일년이상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개발자를 찾는 과정에서도 애를 많이 먹었다. 외주개발을 하면서 사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이런 일은 스타트업 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나의 Background가 개발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스타트업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 들면서 그런 사람들의 돈을 노리는 나쁜 사람들도 많다. 그 이후 제대로 된 외주 업체를 만나기 위해 30군데 정도 미팅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개발 용어나 관련 내용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미팅했던 곳에서 가장 괜찮고 코드도 잘 맞고 회사와 가까워 미팅 하기도 용이한 곳을 찾았다. 업체 선정만 3개월이나 걸렸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는 풀스택의 개발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개발자는 통상 30대 중, 후반이고 대부분 부양해야 할 가정이 있거나 연봉이 높다. 그러다 보니 만족할 만한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초기 스타트업은 개발자를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 스타트업에서 개발을 외주로 하지 말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부득이 하게 가장 이해도가 높은 곳에 어쩔 수 없이 외주를 주었다. 그래도 외주업체와 코드를 맞추는 일은 어려웠다. A를 요청하면 A’가 아니라 C의 결과가 나오는 일이 다반사 였다. 매주 미팅을 하면서 고치고 수정하면서 우리의 의도대로 사이트를 만들어 나갔다. 운이 좋게 외주업체가 어려워지면서 개발자들을 구조조정을 했는데 우리 사이트를 개발한 개발자도 나오게 되어 자연스럽게 우리 회사로 영입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사이트 자체 개발을 됐다.

스타트업 대표의 일 중 중요한 부분이 사람을 구하고 뛰어다니며 투자요청을 하는 등의 외부일과 눈에 뛰지 않는 잡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더 많이 뛰어다니고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얻게 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 준비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물론이다. 지속적으로 비용이 필요했기에 계속 회사 일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 솔직히 지금도 빚이 꽤 있다. 대기업 직장인 연봉보다 많은 빛이 있다. 보통 계획한 비용보다 2배 정도 더 드는 것 같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하면서 리스크를 두려워한다면 평생 시작조차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 또한 리더가 감당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 회사를 떠나면서 수 많은 공포감에 휩싸인다. 회사, 대기업이 주는 네임벨류, 다달이 꽂히는 월급그런 것들을 모두 떠나 보내면서 드는 감정은 공포감에 가깝다. 본인은 어떤 느낌이었나?

나도 마찬가지였다. 2년간 회사 일을 하면서 준비를 했고 서비스 런칭 날짜를 정해 놓고 회사에 퇴사를 한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 이었다. 그렇지만 팀장에게 퇴사 통보를 하기까지 수백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나는 이미 팀원들 서비스, 웹사이트까지 준비를 다 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떠난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물며 준비 없이 떠나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스타트업은 주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불안정하고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정글과도 같다. 안정된 푸른 잔디밭에서 뛰놀다가 신발을 벗고 스스로 맨발로 정글을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두려웠다. 그것은 회사를 떠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그 두려움은 본능적인 두려움 같다.

하지만 현재에 대한 불안감 보다 미래에 더 큰 불안감이 더 컸기에 용기를 내서 팀장에게 걸어가서 퇴사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 회사에서 직원으로 있을 때와 지금 스타트업의 대표로 일하는 것. 차이가 매우 클 것 같다. 어떤 느낌인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직원은 대표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 마치 고등학교 때 대학교 생활을 모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선배가 와서 대학생활은 이렇다.’라고 말해주어도 감조차 잡기 어렵다. 세상에는 말로 아무리 들어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직원과 사장도 그런 것 같다. 가끔 스타트업 대표끼리 얘기를 하면 사람관리를 가장 힘들어 한다. 절박한 것은 대표뿐이고 대표의 생각을 얘기하면 그냥 흘려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생각, 자기경험,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만 남을 평가한다. 솔직히 스타트업은 직원을 고용하면 그 수준이 낮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대표로서 나의 기대치가 높다고 해서 직원들을 닥달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개인의 성향과 특징을 인정하고 성장시키면서 가야 하는게 맞다고 본다.


▶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구현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어떤 스타트업이 나오고 나서 , 나도 저거 생각한 건데..’ 라고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실행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팀이다.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고 한곳을 향해 같이 뛰어갈 팀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모든 스타트업 책이나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100% 맞는 말이었다.

 

▶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과 내가 꿈꾸는 일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딱 한마디로 짧게 말해 주고 싶다. “인생은 한번이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 헬로마이코치 (hellomycoach.co.kr) 라는 서비스에 대해 소개해 달라.

실력 있고 검증된 퍼스널 트레이너와 PT를 받기 원하는 고객을 매칭 시켜주는 O2O 플랫폼이다. 고객의 Pain Point는 심플하다. 어떤 퍼스널 트레이너가 능력이 있는지 정보가 없고, 비용도 투명하지 않다. 방문하면 얘기해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강사들간의 실력차이도 크다.피트니스 센터가 갑자기 폐업하는 경우도 있어서 먹튀, 환불 거부 등의 문제도 크다.이런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해 주는 서비스가 헬로마이코치다.

등록된 코치들은 경력과 실력이 검증된 사람들이다. 퍼스널 트레이너 분야는 국가 자격증은 9개인데 반해 민간 자격증은 거의 800개가 된다. 일반인들이 찌라시에 나와있는 자격사항을 보고 그 트레이너가 제대로 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면 된다.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얼굴이 좀 잘생기고 몸만 좋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실상이다. 마트에서 콩나물을 사도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사는데 퍼스널 트레이너는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자격자도 이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PT 받고 싶어서 집 앞 센터에 가면 나의 코치 수준은 복불복으로 정해지는 거다. 그래서 헬로마이코치의 서비스가 더더욱 필요하다. , 비용에 관한 문제는 에스크로 서비스로 해결하고 있다. 10회권을 끊고 5회만 했다면 5번의 비용만 센터에 헬로마이코치에서 지불한다. 만약 환불을 원하면 헬로마이코치가 직접 환불해 준다. 당연히 할인도 받고 안전하게 결제하고 환불에 대한 걱정을 붙들어 매도 된다. 운동방법, 식단 이런거 모르겠고, 그냥 원하는 몸매를 겅강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헬로마이코치를 찾아오면 된다. 전문가에게 맞기면 된다. 내가 대표로서 자신한다.

 

▶ 스타트업을 하고서 수익은 어떤가?

20159월 초 현재 서비스 런칭한지 2달 밖에 안되었다. 큰 매출과 수익은 아니지만 매출과 수익은 발생하고 있다. 퍼스널 트레이닝의 시장규모는 1조정도 되고 이 서비스가 피트니스 분야에 소프트랜딩하게 되면 수직적, 수평적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트레이닝 의류, 먹거리, 용품으로 확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3대 전단지 비즈니스가 있다. 음식은 배달의 민족, 요기요에서 하고 있고 부동산은 직방, 다방에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피트니스 쪽은 40년 동안 전단지, 현수막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피트니스 쪽에서 대표 O2O선점하면 수익의 확장은 매우 클 것이다.

올해 안에 외부 투자가 진행 될 것이다. 투자를 받게 된다면 더 공격적인 실행이 가능할 것이다. 2106년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서비스로 거듭나겠다. 자기 돈으로 하는 스타트업은 아주 드물 것이다. 스타트업은 J Curve를 그리며 드라마틱 하게 매출이 늘기에 스타트업이다. 초반에 비용에 대한 리스크는 모든 스타트업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스타트업이 작년부터 엄청나게 붐(Boom)인 것 같다. 어떤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업과 스타트업은 전세계적인 트랜드 라고 보는 것이 맞다. 스타트업은 앞으로 대기업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경제 이끌어갈 큰 한 축이 될 것이다. 국가에서도 창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미래의 먹거리 개발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 이라는것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 20159월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지금은 좋은 PT 강사 영입과 좋은 팀 맴버를 모으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웹, 앱디자이너를 구하고 있다. 웹 퍼블리싱이 가능하고 3년차 이상이며 운동에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라면 헬로마이코치의 문을 두드려 주었으면 좋겠다. 남자 맴버 모두 키가 180Cm 가 넘는 훈남들 뿐이다. 여성 디자이너분 환영한다. ^^

 

▶ 양질의 퍼스널 트레이너들은 헬로마이코치로 영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내부적으로 팀빌딩, 외부적으로는 트레이너 모집이 가장 힘들었다. 지금은 200여명이 넘는 트레이너가 있지만 초반에는 맨땅에 헤딩하면서 영업을 했다.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조인하자고 얘기를 해야 했다. 또 우리와 유사한 피트니스 관련 스타트업이 한번 모두 휩쓸고 지나간 이후라서 불신이 많아서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PPT 파일 하나 들고 가서 영업을 했고, 피드백을 받으며 계속 수정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질문을 받으며 계속 업데이트 했었다. 아마도 수백 곳 이상을 걸어서 찾아갔던 것 같다. 문전박대도 엄청나게 많이 당했다. 전화하고 찾아가는 것은 성공율이 높지 않았다. 헬스장 등에 블로그 마케팅 해줄 테니 얼마의 돈을 달라 라고 하는 곳이 엄청나게 많다고 들었다. 우리도 그런 부류라고 취급을 받았었다. 모든 O2O 스타트업의 비결은 그냥 부딪히는 것이다.

강을 건너야 하는데 계속해서 강의 깊이 파악하고 유속만 파악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방법은 내 몸을 담그면서 건너려는 노력을 해야지 건널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생긴다. Paper Work 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회사원이었을 때와 스타트업 대표인 지금의 모습에 점수를 매긴다면?

삶의 질로 따진다면 회사원이었을 때의 점수는 80점 이었다. 근무 환경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도라는 잣대로 따진다면 회사원 때는 20점 지금의 모습이 80점 이다. 몸은 힘들고 매일 바쁘고 빚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성장한다는 것이 주는 재미는 생각보다 매우 크다.

 

▶ 후회하거나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전혀 없다. 스타트업에 뛰어든 것에 후회한적도 없다. 내가 아는 분은 회사를 다니다가 나와서 스타트업을 했다. 하다가 잘 안 돼서 사업을 접고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다가 2~3년 후에 다시 나와서 스타트업을 하더라. 회사가 너무 싫어서라기 보다 내 일을 하고 내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일 것이다. 회사가 싫어서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도피다. 당연히 성공할 수도 없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전형적인 회사원, 공무원 스타일이다. 딱 정해진 일을 안정적인 곳에서 하면서 행복해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스타트업은 맞지 않을 거다. 개인의 성향 차이인 것 같다.

 

▶ 누군가가 나도 그냥 회사 때려치우고 스타트업으로 옮길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마도 스타트업이 가끔 언론이 보이는 대박신화 혹은 자유로워 보이는 환경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그런 마음이라면 나오지 말고 그냥 회사에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이 유행이니까, ‘조재현이도 하니까 나도 해 볼까?’ 라는 생각이라면 절대 나오지 마시라. 나오면 그냥 죽는다. 유행과 분위기로 하기에는 너무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쉽게 말하면 생각한 것보다 10배 힘들 것이고 생각한 자금보다 몇 배는 들것이다. 동기가 올바르지 못한 시작은 결코 잘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회사를 떠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장점과 단점은?

얻은 것은 나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힘든 것은 뭐랄까…… 성공하기 전까지 견뎌야 하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너 뭐해?” 라는 질문에 LG 다녀이렇게 말하면 ~그래~” 하며 끝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모습은 설명을 많이 해야 한다. 그것이 좀 답답할 뿐이다. 회사라는 간판이 주는 안정감을 잃었다면 잃은 것 같다.

 

▶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모토를 알려달라.

한번뿐인 인생, 모든 도전을 즐겨라.” 이것이 나의 모토다. 나중에 죽기 전에 누워서 , 그때 이이렇 할 걸이라고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회사생활을 정말 잘해서 50살 넘어서 까지 회사를 다니고 정년퇴직을 해도 죽기 전에는 좀 후회할 것 같다. 적어도 한 분야에서 큰 혁신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표면적으로는 PT에 대한 서비스 이지만 그 가치는 사람들의 소중한 인생을 건강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 회사 생활이 너무 싫은데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도 직장생활을 8년 했다. 직장에서의 많은 대화는 깔때기 이론이 적용된다. 무슨 얘기로 시작하든 간에 회사 욕, 상사 욕으로 끝나는 것 말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과감하게 말해주고 싶다. 회사생활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나오라고.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걸 잘 알지만 돈을 벌려고 싫어하는 일을 꾸역꾸역 하는 것은 내 경우는 용인하기가 좀 어렵다. 욕하면서 짜증내면서 계속 주저 않아 있는 삶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좀 아닌 것 같다. 언제까지 팀장 욕, 회사 욕, 때려 친다고 말한 할 건지 모르겠다. 말로만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회떠사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회사를 떠나는 건 좋은 조건과 환경과 처우 속에서 회사생활을 하다가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스스로 황금수갑을 풀고 나오는 것과 같다. 달콤하지만 속박된 황금수갑 말이다. 어차피 회사에서 평생 있을 수 없다. 100세 시대에 80살 까지 회사생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깨지든 실패하든 어떻게 되든 회사를 떠나는 것은 언젠가는 겪어야 되는 일이다. 마치 봄이되면 꽃이 피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떠나야 한다면 조금 일찍 행동한다면 좋을 것 같다. 행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 스스로 준비를 해서 나오는 것이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미래에 불안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것을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냥 주위를 둘러보면서 남들도 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뭐 하러 다른 길을 가야 하나?’ 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그저 회사라는 런닝머신 위를 뛴다. 회사가 준 좋은 신발을 신고 있지만 내 삶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런닝머신 말이다. 앞으로 갈 수 없는 런닝머신 보다는 가시밭길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보는 것도 나나쁘 않은 것 같다.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누구나 자기 일을 꿈꾸지만 아무나 자기의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저 먼발치에서 곁눈질만 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어 들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한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명확했다머리는 생각하고 입은 말하지만 몸은 그대로 안락의자에 누워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없어질 지금의 내가 누리는 것들의 속박을 스스로 끊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행동의 힘을 아는 사람이었다. 

런닝머신 위를 뛰며 회사에 전기를 생산해 주고 나면 돈을 받는다. 하지만 그 런닝머신 위에서 개인은 앞으로 뛰어갈 수가 없다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황금 수갑을 풀고 편안한 운동화를 벗고 가시밭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길을 가는 동안 누구를 만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의 모든 것은 그를 키울 것이다. 2016년 여름 다시한번 헬로마이코치를 주목해야겠다. 30대 중반에 대리라는 회사원의 이름표를 떼고 스타트업 대표의 길을 걷는 그의 길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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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손성곤, 스타트업, 직생연, 직장생활연구소, 퇴사하자, 회떠사, 회사를 떠나다, 회사를 떠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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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커플 2015.10.01 07:45 신고

    저도 창업을 했다보니 공감이 많이 많이 가네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라고 꼭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도 공감이 가고. 사람들한테 많은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것도 ㅋㅋㅋㅋ 아 공감...

    REPLY / EDIT

    • 손성곤 2015.10.01 09:46 신고

      안녕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고 행동하는 힘인것 같습니다. 수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너무 많이 말해서 다 잊고 살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것을 행동으로 옮기면 그 경험 안에서 수많은 살아있는 배움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아직 생긴지 얼마 안된 스타트업이지만, 내년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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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원 2015.10.01 13:36 신고

    회사일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사람을 모집하고 팀을 구성하면서 2년을 보냈다는것 그것만으로도 참 대단한것 같네요. 남들은 그냥 생각만 하다가 회사일에 치여서 포기하고 마는데... 하는 일이 시간이 좀 자유스러워서 그랫을 수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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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곤 2015.10.02 09:32 신고

      모두가 생각만 하다가 포기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같아요... 일견 부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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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isagain 2015.10.01 17:46 신고

    저두 윗 분 말씀에 동의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뭔가 다른 집업을 꿈꾼다눈 게...기분 안 좋운 날은 막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다가 기분 좋은날은 애써 회사에 눌러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퇴근하렵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5.10.02 09:34 신고

      안녕하세요.

      회사를 다니다가 짜증이 나거나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는 새로운 일을 하는 모습을 꿈꾸죠. 그러다가도 편한 날이 있으면 "역시 회사에서 월급받는게 최고야.." 라는 모습이 되죠...

      그것도 어찌보면 진자처럼 움직이는 우리 직장인들의 모습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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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yu 2015.10.02 07:21 신고

    어려운 시장을 도전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모습이 훌륭합니다. 이런 분들이 성공해서 또 새로운 창업을 하거나 창업자들을 돕는 일을 하길 바랍니다. 비즈니스모델은 피봇팅이 필요해 보입니다. 최근 비슷한 모델들을 몇개 봤는데 다들 어렵더군요.

    REPLY / EDIT

    • 손성곤 2015.10.02 09:57 신고

      앗. 유석호 대표님이 계신 페녹스에서 댓글을... 대표님 강연을 참 감명깊게 듣고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VC의 관점에서의 전문적인 의견 고맙습니다. 조재현 대표에게도 피드백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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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 2015.10.03 02:42 신고

    4수를 해서 체육 사범대 학력을 가졌으나 lg 유플러스 생뚱맞게 들어가 적성에 안맞는 일들을 해왔고 피트니스 시장에 다시 체육학도로 돌아온다라..
    과연 성공실현이 가능한 업종일지 의문이 드네요. 이미 국내 방문pt시장 및 트레이너 선정하는 것은 많이 분포 되어있는데 말이죠 집앞에 지천에 널린 값 싼 피트니스센터 등록도 안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REPLY / EDIT

    • 손성곤 2015.10.03 11:54 신고

      안녕하세요.

      PT 시장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 감사합니다. 이 댓글도 인터뷰이인 조재현 대표님도 보실테니 참고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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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4 04:57 신고

    비용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회사에 계속 다니며 준비한 시간 2년
    소극적으로 일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고, 업무시간 중 미팅 등도 진행했다고 하니 참 회사 입장에서 보면 조대표님도 대표가 되고 나니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인원관리에 완전히 실패한 셈이네요..

    REPLY / EDIT

    • 손성곤 2015.10.05 10:01 신고

      저는 인터뷰어로서 말을 아끼고 싶네요. 배워서 들어서 아는 것보다 경험을 해봐야 진짜로 알게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EDIT

  • Pilgoo 2015.10.04 12:13 신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5.10.05 10:02 신고

      인터뷰이의 삶의 과정을 통해서 한번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는 것이 이 인터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EDIT

  • Solar 2015.10.09 11:10 신고

    우연찮게 찾아들어온 글인데 잘 보고, 잘 느끼고갑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5.10.11 11:31 신고

      넵. 감사합니다.

      먼저 회사를 떠난 다양한 분들의 삶과 생각속에서 현재 직장인들이 많이 느끼고 생각하도록 돕는것이 이 인터뷰의 목적입니다. ^^

      EDIT

  • 최강원 2015.10.15 23:46 신고

    저기 정말뜬금없는 질문인데 오토바이 무면허에 대한 기록이 취업을 방해 하진 않앗나요?

    REPLY / EDIT

    • 손성곤 2015.10.16 10:54 신고

      음... 아마도 그 당시 미성년이어서 그러지는 않은것 같네요. 솔직히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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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4 _ 회사를 떠나 세상을 버텨내는 자영업자 PC방 사장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9.08 09:04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를.

저는 1976년생, 40살이고 회사 생활을 5년 동안 하고 현재 서울에서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ㅇㅇㅇ 입니다.

 

▶ 학교와 회사 등의 커리어를 알려 달라

1995년 서울의 중간 정도 되는 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2003년에 졸업했다. 그 때만해도 4학년이 되어야 취업준비라는걸 본격적으로 하는 분위기였다. 취업을 위해 스펙이 그때도 필요했다. 그래서 캐나다에 11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가서 오직 토익만 준비했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한국에 돌아와서 첫 토익 시험을 봤는데 935점이 나왔다. 그리고는 토익책을 모두 버렸다. 또 군대 가기전 학점이 워낙 안 좋아서 B+ 이하는 모두 지우고 방학도 없이 계절학기를 듣고 학점관리를 정말 열심히 했다. 취업시즌이 되고 롯데, 현대, 삼성 등의 대기업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많이 봤다. 모두 떨어졌다. 지원자들이 서로 토론하는 등의 소위 말빨이 필요한 면접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정말 내성적 이었고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입사한 ** 회사는 토론 면접처럼 자기 잘난걸 어필하는 면접이 없었다. 그냥 임원이 물어보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학생 때부터 부동산, 증권 등 제테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졸업 전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가 **회사에 입사한 것도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연관이 매우 컸다. 2003년에 이름만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제조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08년 초에 회사를 떠났다. 총 회사생활을 한한 것 5년이다.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나는 관재팀이라는 회사의 부동산, 건물, 공장 등의 자산을 관리하는 팀에 배치 받았다. 내가 공인중개사 자격증 덕이었다. 팀에 들어오니 내가 막내였고 전부 나이가 많았다. 내 위의 과장이 나보다 10년이나 선배였다. 그래서 2년차부터 실무는 거의 나 혼자 다 했다.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었으니 나를 믿었던 것이다. 회사의 계열사 건물 신축과 구조배치 이런 프로젝트를 맞아서 진행했다. 건물 짓는 금액에 천억에 가까운 비용이 드는 큰 공사였다. 팀장과 차장은 건설업무를 맡아서 했다. 나는 위의 과장과 함께 부동산 매입, 매각, 임대차 계약, 건물 유지 보수 등의 기본 관재 업무를 했다. 아울러 건물 짓는 중간의 서포트 업무도 했다. 공정에 따라 공사 대금을 건설사에 입금하는 업무도 중요 업무였다. 그런 것들이 한번에 수십억이 달했다.

회사의 문화가 워낙 안정적이고 유명한 대표 상품이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몇 사람만 죽어라 일하고 나머지 다수는 그냥 노는 문화였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다른 회사에 비해 일의 강도는 적었지만 일 하는 사람만 죽어나는 분위기였다.

 

▶ 회사원일 때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정말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부서에 있던 5년 동안 내가 가장 먼저 출근했었다. 평균 잡아 30~40분 정도는 항상 일찍 출근 했었다. 그리고 나이 많은 팀장님 부서원들이 많았고 나만 관련 자격증이 있어서 일을 엄청 많이 했다. 바로 위의 과장이 나보다 10년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기본적이지만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도 다 내가 했다. 회사에서의 평판도 매우 좋아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인사팀장도 엄청 말렸던 것 같다.

 

▶ 회사를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솔직히 회사생활을 오래 해야겠다는 마음은 입사 때부터 없었다. 내가 스스로 내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도 그걸 원했다. 그리고 회사라는 타이틀이 있어야 결혼도 쉬웠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회사에 들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출근, 기약 없는 퇴근, 스트레스, 과도한 눈치 등의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비슷한 회사생활의 단점 때문에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회사에 입사하면서 회사생활을 오래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한걸 보면 나는 독특한 케이스다.

무언가 창업을 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많이 있었던 PC 방을 생각했다. 그냥 사람을 써서 운영하고 나는 수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8년차 자영업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바보같이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직장을 다니다가 창업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2008년에 회사를 나오기 일년 전에 PC 방 하나를 보증금 **** 만원에 인수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침에 PC방에 들러 현금 수금해서 출근해고 일 마치고 퇴근하는 삶이었다. 처음엔 재미 있었다. 그러던 중 가까운 위치에 망한 PC방을 누가 인수해서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 해서 오픈했다. 그 여파로 손님들이 40% 정도는 줄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도 집중하기 어렵고 PC방도 망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PC방에 올인 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 말하면 PC 방에 올인 하기로 한 것은 만용이었다. 자영업이라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경쟁의 바닥을 전혀 몰랐던 것도 회사를 떠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였다. 무식했으니 용감했던 거였다. 직장생활만 하면서 따뜻한 밥만 먹고 사니 세상 물정을 알 기회도 없었다.

 

▶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개인적인 이유는 뭔가?

굳이 이유를 찾자면 스트레스 였다. 5년차 정도 되니 업무량이 더더욱 늘어났다. 공인 중개사 자격증도 있었고 경영학과 출신이고 시키는 일을 잘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나이 많은 팀장, 차장 등이 나를 좋아했었다. 일을 막 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좀 심했다. 건설과정에서 대금을 관리하고 토지를 매입하고 임대차 계약을 맺는 등 일이 워낙 큰 돈이 움직이는 것이라 그랬다. 한번 내가 잘못하면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매일 매일이 힘들었다. 연차가 쌓여도 팀에서 막내였는데 그런 내가 거의 모든 실무를 다 하는 것에 압박이 너무 심했고 싫었다. 윗사람들은 나에게 일을 던지고 거의 일을 안 했다. 그리고 나를 보호해 주거나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 회사를 떠났지만 회사를 다녀서 좋았던 점도 많지 않은가?

당연하다. 엄청 많이 배웠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배우는 사회생활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나는 직무의 특수성 때문에 제테크의 수단들을 회사 일을 하면서 배웠다. 보통 직장인이 경험할 수 도 없는 토지 매매, 건물 및 부동산을 보는 안목도 배울 수 있었다. 윗사람들이 나이와 경험이 많아서 향후 부동산의 개발 가능성 이런걸 보는 눈은 뛰어났다. 그리고 임대계약을 할 때의 스킬도 많이 배웠다. 내가 건물주일 경우 임대료를 더 받는 방법, 내가 세입자일 경우 임대료를 조금이라도 아끼거나 동결 혹은 인상률을 최소화 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경험으로 배웠다. 물론 신규로 건물을 짓는 프로세스 감리, 설계, 취득세, 등록세 관리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일반 직장인이 평생 접할 수도 없는 다양한 부동산 전반에 대한 Flow를 배웠다. 월급쟁이로서 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제테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솔직히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회사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로 아파트 구입, 분양, 임대, 재개발, 오피스텔 등 다양한 제테크 수단에 쉽게 접할 수 있었다.

 

▶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를 준비한 것이 있는가?

말했듯이 배우고 경험한 것으로 개인적인 제테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무엇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또 얼마의 돈이 있어야 어떤 창업을 내가 할 수 있을까를 매일 찾아봤다. 프렌차이즈 설명회 상담 등도 많이 받았었다. 그 때 ㅇㅇ도너츠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것도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 왜 하필 PC 방이었나?

일단 대학시절 스타크래프트 붐이 있어서 내가 PC방을 엄청 많이 다녔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기에 PC방은 주인이 하는 일 없이 알바만 계속 돌리면 돈을 수금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거듭 말하지만 쪽 팔릴 정도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전문 지식도 없었기에 시작했고 초기에 8개월 만에 하나를 말아 먹었다.




 

▶ 회사를 떠날 때 불안하지는 않았나? 잘 할 수 있을까? 혹은 잘 할 수 있다. 라는 감정이 매일 반반 될 것 같다.

 

회사를 떠날 때 후련한 마음은 한 30% 정도였다. 앞으로 내가 자영업자로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머지 70%였다. 내가 회사를 떠났을 때가 34살이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을 했고, 후회도 많이 했지만 PC 방이라는 업종도 정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감정적으로 무너지면 지탱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위에 상사도 있고 아랫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자영업은 그렇지 않게 때문이다. 다 내가 챙겨야 한다.

PC방 하나를 매도하면서 많은걸 배웠다. 그 중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었다. 경쟁업체가 더 나은 인테리어와 더 나은 컴퓨터 사양으로 밀고 들어오면 이길 수가 없다. 내가 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고 서비스를 잘하면 되겠지라는 것은 아마추어 적인 생각이었다. 경쟁업체가 생겨서 이를 악물고 버티던 시간 동안 마음이 점점 단련된 것 같다. 그 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 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월급의 90%정도를 저축하며 돈을 모았었고, 아버지가 도움을 주셨지만 작은 집도 있었기 때문에 까짓거 한번 망해도 일어설 수 있다.”는 오기 같은 것도 있었다. 불안은 했지만 현실은 현실 이었다. 8개월이 아니라 더 버텼으면 나는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것 같다.

 

▶ PC방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면 무언가?

PC방은 사장, 주인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된다. 절대로. 사장이 없으면 100% 티가 난다. 그리고 그것은 매출로 귀결된다. 왜냐면 고쳐야 할 것, 청소해야 할 것도 많고 어느 정도는 친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장이 있어야만 단골이라는 것이 생긴다. 사장이 없이 단골이 생기는 것은 정말 예쁜 직원이 있을 때뿐인 것 같다. 알바는 절대로 사장처럼 일을 안 한다. 열심히 하면 돈을 올려주고라도 싶은데 열심히 하는 알바를 본적이 거의 없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알바가 있으면 월급을 더 올려주고 직원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개인이 하는 작은 자영업의 키는 인건비. 지출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여야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최저 임금이 올라간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힘들다. 최저 임금의 변화에 타격을 받는 사람은 영세 개인 자영업자들이다. 돈 많은 사업주는 거의 타격이 없을 거다.

 

▶ 자영업자와 알바 얘기가 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는 주거비가 너무 높고 물가도 높다. 최저시급 6030원 되어도 알바도 힘들고 자영업자도 힘들다. ‘알바 vs 자영업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힘들게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치고 박고 싸우게 만들어 놓은 구조 자체의 문제인 것 같다. 판이나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그 프레임 안에 사람을 갇히게 만들어 버리고 자신을 빠져 나가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너무 힘들어 지는 것 같다. 부탄 같은 나라는 재산이 없어도 행복지수도 높다고 한다. 나도 대한민국에서 40년을 살아 왔지만 40년 동안 계속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6030원을 받고 10시간씩 한달 내내 쉬지 않고 30일 일해도 180만원이다. 그런데 한달 내내 일할 수도 없다. 20~25일 정도 일하면 120~150만원 정도 번다. 그 중에 아무리 싼 방 이어도 30~35만원을 주거비에 쓴다. 연락은 해야 하니 핸드폰은 써야 하고 인터넷도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돈을 모아서 연애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취업이 안 되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니 5, 7포 세대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된다. 내 자식들 세대에는 부모의 지원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될 것 같아 두렵다. 나도 가게를 보면서 동남아 국가 이민 이런걸 쳐본다.

 

▶ 회사를 떠날 때 결혼을 한 상태인데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그 때는 와이프와 맞벌이 중이었다. 나오고 싶으면 나오라고 했다. 물론 내가 계속 그만두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큰 갈등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와이프도 내가 계속 얘기하니까 짜증이 나서 그냥 관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맞벌이여서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 PC방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없나?

준비하면서는 없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PC방을 인수했었고 돈만 수금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준비하면서는 없었다. 건물주와는 임대계약, 인수한 사람과는 매매계약만 맺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계약을 회사에서도 많이 해봐서 어렵지 않았다. 단지 준비기간의 무지함이 실전에서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다른 사람은 준비하고 계약하는 단계에서 사기를 엄청많이 당하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닳고 닳은 업자들은 그렇게 순진한 직장인 들은 딱 보면 안다고 한다.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C방 사업은 어떤가? 엄청난 레드오션 아닌가?      

레드오션은 이미 된 상태이고, 거의 블랙오션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죽어나간 피가 너무 많아서 검정색으로 변한 바다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들어와도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다. 자본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블랙오션이 맞다. 폐업률 3위안에 항상 든다. PC방은 다수의 영세하고 자금력이 없는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자금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외부의 충격과 변수에 대응을 할 수가 없다. 한번 외부 충격에 대응하려면 수천의 금액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C방이 신규오픈 하거나 리모델링+컴퓨터 업그레이드 했을 때가 그렇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충격으로 매출이 떨어져도 버틸 수가 있다. 그리고는 그 충격보다 좋은 사양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몇 달 동안 매출이 떨어지면 휘청 할 수 밖에 없다. 경쟁업소가 더 좋게 하는데 전혀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매장의 경쟁우위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고 나는 그것을 바꿀 능력 ()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가 폐업하는 것이다.

 

▶ PC방은 그럼 업의 본질이 무언가? 이건희씨가 업의 본질을 강조 했다고 하는데……

이건희 회장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경험해 보니 PC방의 본질은 시설업이다. 모텔도 아마 비슷할 것 같다. 옜날에는 나도 이런 것을 전혀 몰랐다. PC방은 노하우 라는 것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식당 같은 곳에는 오래된 자신만의 맛, 레시피 등의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PC방은 시설이 전부다. 좋은 위치,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이길 수는 없다. PC방에서의 경쟁력은 시설이다. 돈을 바른 최고 사양의 컴퓨터와 앉으면 잠이 올 정도의 편한 의자, 화사한 인테리어가 있으면 손님이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PC방을 폐업하며 알게 된 것인데 당구장, PC방 같은것만 전문적으로 매매를 대행해 주는 곳이 있다. 개인이 혼자 매매자를 찾아서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업체가 건당 300~500 만원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그런 곳에 첫 PC방을 폐업하면서 그 중계업소의 여자 사장에게 PC방이 시설업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시설업이기에 돈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싼 대가를 치룬 것이다.

 

▶ PC방은 하면서 생긴 버릇은 없는가?

하나다. 돈을 안 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나의 총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이나 부모님께는 돈을 쓴다. 엄밀히 말하면 나를 위한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올 여름에 티셔츠 1벌 산 게 전부다. 말한 것처럼 시설업이다 보니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매달 돈돈 버는 것 같은데 되로는 돈이 없어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 PC방에도 프렌차이즈가 있다.

아는 사람은 절대로 프렌차이즈를 하지 않는다. 이미 PC방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다시 프렌차이즈 PC방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지 않는 것이 답이기 때문이다. 기본 창업비용자체가 더 많다. 1~2년 동안 당신이 순수익으로 벌 수 있는 정도의 돈을 프렌차이즈에 주고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길게 말하지 않고 싶지 않은 점 양해해 달라.

 

▶ 하루 일과는 어떤가?

일반적으로는 9~6, 6~11, 11~9시까지 이렇게 3교대로 움직인다. 그 중 주인이 보통은 9~6시를 맡아서 한다. 하지만 나는 9~11시까지 직접 일하고 나머지 야간 시간은 알바가 한다. 하루 14시간을 혼자 일한다. 인건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12시가 넘는다. 당연히 와이프나 아이는 잠들어 있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서 테니스 레슨을 받고 바로 출근을 한다. 여기 와서 씻고 일하고 점심, 저녁을 사 먹는다. 또 늦게 퇴근하니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다. 친구 관계는 거의 다 끊겼다.

9~11시까지 이 곳에 앉아 있는 삶을 생각해 보라. 보통 사람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겁을 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너무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하니까 또 적응이 되더라. 그대신 매일 아침 운동은 절대로 빼먹지 않는다. 그 시간마저 없으면 삶이 삶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몸이 망가지지 않도록 유지하는데 도움도 된다.

 

▶ 자영업 사장으로 사는 것은 어떤가? 사장의 자유로움 보다 고단함이 연상된다.

영세 자영업자에게 사장이란 말은 없다. 사장은 그저 알바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 잘하는 알바일 뿐이다.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  

 

▶ 조개구이, 찜 닭, 빙수처럼 유행이 왔다가 사라지는 창업 업종이 많다. PC 방은 어떤가?

PC방은 계속 유입되고 퇴출 되고 있다. 왜냐하면 먹고 살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적고 기술 없이 창업할 수 있는 업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퇴직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창업을 하고 망해나간다. 하지만 상위 10% 돈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돈을 번다.

 

▶ 카페 같은 경우 경쟁점이 근처에 생기면 대표상품 (아메리카노)의 가격을 낮추는 치킨게임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PC방도 그렇지 않나?

가격을 무기로 한 치킨게임의 원인은 감정때문이다. 내 목에 칼을 겨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가격을 낮추면 내 생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느낀다. 그러면 어쩔 수없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가격을 따라서 낮춘다. 자금력이 없는 곳은 다시 찾아와서 가격을 올리자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격을 낮춘다는 것은 장사가 잘 안 된다는 뜻이다. 돈 잘 버는데 가격을 낮출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치킨게임에 참여하는 순간 모두가 죽는 거다.

간단히 계산해 보자. 1000원을 받는데 250원 게임비가 든다. 그런데 잡비, 알바비로 50원을 잡으면 700원이 수익이다. 그런데 가격을 500원으로 내리면 200원이 남는 거다. 순수익으로 치면 700원이 200원으로 까이는 거다. 어마어마한 거다. 제 살을 깎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팔을 한쪽을 떼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 경쟁점이 생겨 가격싸움으로 들어가면 먼저 찾아가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얘기가 잘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 여러 형태의 자영업자들이 있는데 오래 버티는 법을 말해 준다면?

지금은 무한 창업 시대다. 누구나 창업을 할 수 있다. 업종마다 특성이 다르지만 내가 아는 PC방만 얘기한다면 창업하는 순간에 오래 갈수 있는지가 결정이 된다고 보면 된다. 바로 학교위생정화구역 때문이다. 학교 담장으로부터 200m안에는 PC방 창업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화 구역 때문에 창업을 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심하지 않는 곳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정화구역 때문에 새로운 경쟁업체가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번화가나 유동인구에 창업을 하면 옆에 더 큰 PC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무한 경쟁에 노출 될 수 있다. PC방은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이 60%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돈이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정화구역 때문에 더 이상 생기기가 힘들다. 나는 회사에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해 봤기에 이런 입지를 파악하는데 남들보다는 조금 더 유리했던 것 같다.

 

▶ 가게를 운영하면서 경기의 부침은 없었나?

경쟁점 생기 전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경쟁점을 넘지 못해 하나를 매도했다. 다른 곳에 새롭게 오픈 해서도 운 좋게 나쁘지 않았다. 엔씨 소프트에서 아이온이라는 게임이 나왔을 때는 엄청나게 잘 됐었다.  

게임 셧다운제로 인한 매출 하락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 PC 방에서 금연법이 2014년 초에 실행되었는데 그 때 매출이 많이 빠졌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모르겠는데 담배를 하나 물고 서든어택같은 슈팅게임을 하는 맛이 그렇게 짜릿하다고 들었다. 그 이후 대작 게임이 나오는 대로 망했다. 2013년 에니팡을 시작으로 LTE무제한 요금이 확산 되면서 게임의 중심축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모바일은 PC 게임에 비해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게임회사들도 선호하는 것 같다. 올해 나올 예정인 대작 PC게임들이 망하면 PC방은 솔직히 비전이 없다고 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PC방 들이 <PC + 음식점 + 대형화>로 변하고 있다. 어찌보면 PC가 메인이아니라 음식을 먹는 것이 주가 되는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깨끗한 PC방에서 먹거리를 분식집보다 다양하게 하면서 음식에서 마진을 많이 남기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음식점과 유사한 형태는 이용 금액을 500원으로 낮추고 있다. 생각해 봐라. 500원 이라는 적은 돈으로 번화가 한복판에 분식부터 커피, 빙수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며 PC게임까지 할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 PC방은 얼마나 오래갈 것 같나?

커피숍에서 커피를 먹어도 커피보다는 자리값에 가깝다. 하지만 PC방은 500원이라는 껌 값 보다 적은 돈으로 시원한 곳에서 쾌적하게 보낼 수 있다. 게다가 게임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동네 작고 영세한 곳은 문을 닫을 것 같고, 대형화 되고 음식을 함께 파는 새롭게 변화하는 곳만 버틸 것 같다. 하지만 PC방이라는 업태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 회사를 떠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나?

특이하게도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후회 한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 와서 후회해도 바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더욱 그렇다. 회사에 있을 때에도 후회 없이 일을 했기에 더더욱 후회를 하지 않는 것 일 수도 있다. ^^

 

▶ 꿈은 뭐였나?

왜 과거형으로 물어보나? 어차피 솔직히 익명으로 하는 인터뷰니까 더 솔직해 지겠다. 어릴 적에는 40대 정도가 되면 일하지 않고 은퇴해서 임대업 하면서 수익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이제 40대 초입이 되니 평범한 직장생활로 시작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말 그대로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정말 금수저가 아닌 이상 임대업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있고 부동산 관련 평균 이상의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는데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고 선택을 했고 사기도 당하고 실패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평균 이상의 성공은 거둔 것 같다.

 

▶ 회사를 떠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얻은 것은 악착같이 월급을 모았다는 것, 그리고 제테크 지식과 경험을 배운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작지만 임대수익을 낼 무언가를 만든 것 이다.

잃은 것은 훨씬 많다. 사실 부모님이 예전에 슈퍼마켓을 해서 나를 키우셨다. 어머니랑 아버지가 교대로 매일 일을 했다. 어느 날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가게를 닫을 수가 없어 어머니가 바로 내려가지 못했다. 눈물을 보이시면서 자영업은 부모도 없더라 라는 얘기를 하셨다. 너무 슬픈 이야기다. 들어서 가슴에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내가 자영업을 하다보니 어머니가 했던 그 얘기가 정말 날카로운 칼처럼 항상 내 등에 박혀 있는 느낌이다. 너무 슬프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지금 암 투병 중이신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구에게라도 맡기고 당장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사는게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족간의 관계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먹고 살려면 가게를 선택하고 아들, 남편으로서 도리를 하려면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데, 선택이 쉽지가 않다. 내가 쥐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 놓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아이와 놀아주거나 와이프와 함께 외식이라는 것을 해 본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0 점이다. 부모님의 상황을 생각하면 마이너스다. 차라리 이제는 사람을 더 쓰고라도 좀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기도 하다.

 

▶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돈은 얼마나 버는가?

PC방은 방학 때와 학기 중일 때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이 바닥에 뛰어 든지 벌써 8년이 되었다. 8년동안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만 해도 솔직히 잘해온 거라고 생각한다. 뜻하지 않게 2개의 PC방을 운영 중이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시간을 보내며 하는 곳이 수익이 더 난다. 매니저를 두고 하는 곳에서는 8년차 직장인 월급 정도의 수익 혹은 그 이하로 날 때도 있다. 내가 직접 하는 곳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난다고 보면 된다. 사람들이 순수익만 생각을 하는데 내가 쏟는 시간과 잃는 것 들을 생각하면 많은 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회사 때려 친다” 라고 말하는 36세의 후배를 봤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글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얘기겠지만 명확한 목표와 계획이 없이 단지 회사가 싫다고 해서 나와서 자영업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물론 없어도 성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해서 성공하는 케이스는 극히 아주 드물다. 왜냐하면 계획과 준비 없이 나오면 기다리는 것은 더 힘든 삶뿐이다. 결혼까지 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가족을 볼모로 삼고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나 할까 하는 사람들 많다. 어떤 것이 나은 것 같나? 최대한 버티다가 나오는 것이 나을까? 조금이라고 젊을 때 미리 준비해서 나오는 것이 좋을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고, 내가 지금 상황에서 얘기를 하라면 계속 다니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자영업 경쟁자가 하나 더 늘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길게 보면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회사에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영업을 통상적인 범위에서 보면 얻는 것보다 잃어야만 하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TV나 뉴스 보면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해서 인생을 걸고 일만 하다가 회사를 떠나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 얘기가 가끔 나온다. 요즘 그렇게 회사 일에만 목 매여서 자신의 미래는 생각지도 않고 일하는 사람은 적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만약 준비가 충분히 되었고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었다면 마흔살 이전에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는 정말 힘든 곳인데 마흔이 넘으면 아무래도 체력도 그렇고 지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자신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전부를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공한 사람들 스토리 보면 전부를 걸고 했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아주 특별한 경우고 또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전부를 걸 수 있는 것 같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모험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떠나는 모험이다. 전쟁터에서는 군수품이 떨어지면 끝이다. 죽는다. 군수품이 떨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총알을 갖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통계가 말해 주듯이 실패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실패를 하고서도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군수품이나 총알은 돈일 수도 있고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는 안전핀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실패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자영업을 하다가 파산하고 극빈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안전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태해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 세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그는 많은 것을 토해냈다.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모두가 아는 회사를 나와서 자영업자로 살아온 시간만큼 토해낼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프신 어머니를 두고 생계와 가족을 저울질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영업 하면 부모도 없다라는 말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래도 그는 회사에서 배운 것으로 자신의 꿈인 임대업자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포기한 것을 저당 잡히고 작은 부동산에서 임대수익을 얻고 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의 정확한 중심의 삶을 사는 평범한 자영업자의 마지막 충고가 계속 떠오른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험이 전쟁터로 떠나는 모험이다그렇기에 최소한의 안전핀을 꼭 가지고 떠나기 바란다.” 나는 그에게서 이 인터뷰의 제목처럼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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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좋은 인터뷰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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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워너미, 자영업, 직장생활연구소, 창업, 퇴사, 회떠사, 회사를 떠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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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1 2015.09.09 12:01 신고

    자신은 회사에서 혹사를 당해서 나왔고, 자신이 창업을하니 알바가 열심히 일을 안해서 힘들다는 소리를 하는구만. 자기는 창업했는데 남들은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테니 창업하지 말라고 하고, 폐업하는것 정리해주는 사람들이 자영업자 피빨아먹는다는 건방진 말을 서슴없이 내밷고... 내가 보기엔 pc방 사장 당신은 어린 학생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 같은데?

    REPLY / EDIT

    • 손성곤 2015.09.26 15:33 신고

      아... 같은 글도 서로 이해가 다르군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배경와 생각이 다르니까요. 인터뷰어로서 말씀 드리면 나그네 님이 생각하신 부분은 인터뷰시 저는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DIT

  • parisgain 2015.09.09 21:08 신고

    결국엔 회사든.자영업이든 버텨내는 자가 성공하네요. 더 강해질 필요성을 느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5.09.10 06:55 신고

      평범한 일반인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EDIT

  • 회사원 2015.11.13 17:43 신고

    늦게 이글을 읽게 되었는데, 근데 이분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는데, 왜 부동산 중개업소를 안하고 PC방을 하는지 궁금하네요.

    REPLY / EDIT

    • 손성곤 2015.11.14 13:18 신고

      어찌보면 취업에 도움이 되고 제테크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것 같아 자격증을 취득하셨더라구요. 그리고 사람을 많이 만나서 하는 일이 자기 성격과 맞지 않았다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중개업소가 아니라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PC방을 오픈 하게 된 것 입니다.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13 _ 연결을 통해 기회를 찾는 남자. Todd Sample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8.25 10:13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요즘 어떻게 지내나?

최근에 베테랑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유아인 이라는 배우는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잘생긴 젊은 배우인줄 알았는데 연기를 너무 좋았다. 정말 나쁜 놈으로 나오는데 그 연기도 최고였다.  내가 한국 기업에서 일을 해 봤기 때문인지 너무 공감하고 몰입해서 통쾌하게 봤다. 안 보셨으면 꼭 보기 바란다.


▶ 회사 중심으로 커리어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달라.

나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1995년에 한국에 와서 안동에서 영어강사를 시작했다. 그 후 1998년부터 2006년까지 건국대학교에서 영어 강사일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투자경영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투자홍보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그 후 잠시 전시기획 일을 하며 키스헤링의 한국전을 소마 미술관에서 열었다. 2010년 한국전력공사 최초 외국인 직원으로서 해외사업전략 처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Well Dressed 라는 맞춤 정장 샵을 하다가 2015 7월에 그만 두었다.


▶ 한국에는 1995년에 안동에 와서 영어 강사를 시작했다. 서울이 아니라 안동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대학 기숙사에 한국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서울 같은 큰 도시 말고 다른 도시를 가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가르친 학생들에게 좀 미안하다. 그 때 나는 고작 22살 이었고 교육 관련해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가르쳐본 경험도 없어서 그렇다. 20년전 안동은 완전 시골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 대학원(KDI)에서 대학원과정을 수료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1998년부터 2006년 까지 건국대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2006년에 Kotra에 입사했다. Kotra는 최고의 스펙을 갖춘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함께 일하려면 더 배워야 했고 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5년부터 당시 산업자원부에서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고대와 KDI에서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나는 2007년에 KDI의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산자부에서 50%의 등록금 지원도 있었고 그 석사과정을 마쳐서 Kotra내가 이 회사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서울대, .고대 같은 곳에서 배우지 않았냐고 묻기도 한다. KDI는 정부의 기관이고 교수들은 정부의 많은 기관과 연결이 되어 있다. 회사 사람들과의 인맥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의 힘있는 사람들과의 인맥을 만드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외국인 이었고 한국에서 친구도 학교 선후배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인맥이 나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도 이유였다. 솔직히 말하면 전문가적 역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맥을 키우는 것이 나에게 더 중요했다.

 

▶ 대단히 전략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맞다. 한국에 와서 우연히 결정한 것은 없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알기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KDI의 대학원 과정에 함께 들어간 Kotra 사람은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막 절박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승진을 위해 대학원 과정을 들은 것 같다. 같은 조건이면 석사가 있는 사람을 승진 시키지 않겠는가?

 

▶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했던 일과 전공과 관련이 없다.

미국에서도 미술사는 인기 있는 학과가 아니다. 그저 나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선택했다. 그 전공으로 회사에 취직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인인 대학원 친구가 미술 전시 기획을 했다. 2010년에 KDI 대학원을 같이 다닐 때미술 쪽으로 뭔가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해보자라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 미술 전시 기획을 했다. 정말 힘들게 한 작가의 전시를 따낼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키스헤링 (Keith Haring)이었다. 올림픽 공원 안의소마미술관에서 2010년에 전시회를 열었다. 전공은 순수한 관심 때문에 선택했지만 이처럼 관련된 일도 했었다.


▶ 한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말을 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나?

다 비슷하게 하기 때문이다. 음식사업을 한다면 대부분 비슷한 것을 시작한다. 음식종류는 다르지만 경영에 관해서 하는 것도 그리고 하지 않는 것도 거의 비슷하다. 홍보나 마케팅 측면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내 입장에서 보기에는 당연한 것을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남들하고 다르게 하면 기회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 기회라는 말을 많이 한다. 백인이고 미국인이기에 기회가 더 많은 건 아닌가? 외국인이어서 한국인들이 다 거치는 치열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위로 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부분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외국인이다. 그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것을 최대한 활용할 뿐이다. 이것은 비즈니스에서 당연한 거다.

이태원만 가도 다양한 국적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곳에만 가도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기회를 찾아서 무역을 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한국인들이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을 조금은 무시하는 선입견이 있어서 한국인들이 기회를 오히려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피부색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은 것 같다.



 


▶ 지금 중점을 두고 하고 있는 일은 무언가?

지금은 한 달에 한번씩 열리는 네트워킹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같이 함께 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킹 모임은 한국에 없었기 때문에 더 주목 받는 것 같다. 사람들의 니즈는 있는데 서비스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도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인프라는 세계적으로 정말 대단하다. 동대문만 봐도 세계에 이런 곳이 없다. 동대문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옷 한 벌을 만드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인프라에서 무엇을,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를 찾아내서 연결하기만 해도 비즈니스가 된다. Wine on Wednesday 라고 해서 약 130~150 명 정도의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모여 모임을 갖는다.

 

▶ Kotra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

소개를 받았다. 아는 지인의 Kotra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 자리가 나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나를 추천해 주었다. 낙하산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인맥이 가장 중요한 취업의 요소인것 같다. Kotra에서 외국기업 투자유치 홍보를 담당했다. 직책은 전문위원이었다. 왜 한국에 투자하면 좋은가를 알려주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2006년부터 2010년 까지 일했다.

 

▶ 일이 좀 독특한데 했던 일의 목표나 KPI는 뭐였나?

Kotra 내에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는 팀이 따로 있었다. 나는 전략 쪽으로 집중했다. 외국과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한국 스타일로만 접근하면 외국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한국 것이 좋다, 최고다. 이런 식으로 자랑만 하니까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비교 분석이 약한 부분도 문제일 수 있다. 이렇게 그 팀이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에 있어서 조언을 하고 방향성을 잡는 일이었다.

 

▶ Kotra를 그만두고 한국전력으로 옮겼다. 이유는 무엇인가?

2010년에 Kotra를 그만둔 후 미술 전시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아는 지인이한국전력에서 사람을 뽑는데 조건이 너랑 딱 맞아이렇게 알려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나를 위한 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ecutive Advisor to the CEO of Kepco' 라는 자리였고, 한국전력 CEO의 외국인 특별 보좌관 이었다. 미국인, 남자, 30대 후반, 유창한 한국어, 한국 정부기관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이것이 조건 이었다. 나는 한전의 역사로 볼 때 최초의 외국인 직원이었고, CEO의 지시로 새롭게 만들어진 자리였다. 해외 원전과 관련된 정보가 있는 곳이다 보니 미국 FBI와 한국의 NIS을 통한 신원조회 과정만 5개월이나 걸렸다.

 

▶ 공기업은 상하관계가 확실하고 답답한 조직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는 어떤가?

한전은 훌륭한 기술력과 경험 때문에 첫 번째 원전 프로젝트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 때문에 두 번째 프로젝트를 얻을 수는 없을 거다.” 라는 말을 했었다. 한번만 한전과 일하면 갑, 을 관계 이런 부분을 따지기 좋아해서 파트너 들이 같이 일하기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회사에서 Todd Sample은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스펀지 같은 사람이었다. 모든 상황을 다 흡수해야 했다. 나는 외국인 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왜 그렇게 일하는지, 왜 이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지를 항상 생각했었다. 일도 일이지만 회사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었다. 나중에 책을 쓰든지 강의를 하든지 현상을 이해해야만 객관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어땠나?

한전에서 일할 때 부사장님과도 친하게 지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하고 의견을 교환하곤 했다. 그 때 부사장님이한전에서 얼마 동안 일하고 싶나?”라고 물었다.  나는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때까지 있겠다라고 답했다. 내 역할은 사람들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고치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것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Todd, 니가 부사장님에게 무슨 얘기를 해서 고치게 되면 일이 많아지니까 얘기 좀 하지 마라고 했다. “너는 어차피 외국인이고 계약직인데처장직급이다.  한국인으로 한전에 입사해서처장이 되려면 거의 25년이 걸린다. 너는 그냥 툭 하고 들어와서처장되고 매일 부사장님하고 얘기하지 않냐? 나는 부사장님 얼굴도 본적이 별로 없다. 좀 가만히 좀 있어라.” 라는 말도 듣곤 했다. 나의 행동을 나댄다고 생각했다.

 

▶ 그럼 Kotra에서 한전으로 이직한 이유는 뭔가?

Kotra에 있는 것에 불만보다는 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잡은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Career Path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도 <미술사 전공 → 한국에서 영어강사 → Kotra → 전시기획 → 한전 → 맞춤정장 샵 → 네트워킹 모임> 이렇게 다양하게 변해 왔다. 그런 과정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Kotra 입사 전에는 미래에 대한 관심, 커리어, 기회를 찾고 잡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일하면서 한국이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하고 기회가 많은지 알게 되었다. 내가 포지셔닝을 잘만 하면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 있고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묻는다. “기업 문화도 좋은 사기업에서 일하지 왜 공기업을 택했냐?” 나는 그 질문에 기회라는 측면으로 답했다. 힘들었지만 나는 한전최초의 외국인 직원이었다. 삼성전자에는 외국인 직원이 수 백 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전의 First 외국인 직원이라는 나만의 캐릭터나 포지셔닝이 확실히 되는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맞춤 수트 매장도 마찬가지다. 맞춤 수트도 외국인이 운영하는 곳도 없었다.

 

▶ 다른 매체에서 한국기업의 단점을 얘기한 적이 있다. 장점은 무엇인것 같나?

다른 나라에서는 큰 경쟁자가 있다면 그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때도 한국은그래도 우리가 힘을 모아 해보자라는 정신으로 뛰어든다 한전도 2009년에 UAE 원전 프로젝트를 따냈다. 같이 경쟁을 한 더 큰 회사와의 경쟁에서도 이런 정신으로 이겨냈다. 함께 힘을 하나로 응축해서 성취하는 정신은 높게 사고 싶다. 또한 포기하지 않는 정신도 대단하다. 국민성 자체에 이런 정신이 녹아 있는 것 같다. 한국이 그냥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지금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온 힘이 이것인 것 같다. 물론 군대문화에 근거한할 수 있다는 정신과 전략적인 스마트함이 발란스를 이뤄야 할 것 같다.

 

▶ Kepco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유는 무엇이었나?

Kotra 3년마다 해외로 순환보직을 한다. 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은 International 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Kotra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한전은 한국, 아니 한전밖에 몰랐다. 한전 사람들은 본인들이 갑이니까 본인이 을이 되는 자리를 만들지조차 않았던 것 같다. 회사를 떠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사건은 없었다. 회사를 위해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고치려면 일이 많아지니까 하기 싫다는 마인드가 꽤 많았다.

나는 정치적인 마인드도 없었고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나는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니 정치라는 것이 생기는 것 같다. 누가 봐도 이건 잘못된 것이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이해 못할 결정이 생기다 보니 그런 불합리한 것들을 계속 느끼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어찌 보면 이런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는 내 위의 사람 회사를 나온 것이다. 불합리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매일 보기도 싫었고 스트레스도 받기 싫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인 발전도 없었다. 아주 슬픈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한전에서의 생활은 이런 이유로 3년도 채우지 못했다.


▶ 그럼 회사를 떠나기 전에 회사에서 맞춤 정장샵 준비를 생각했었나?

맞다.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 한국인 파트너와 계속 얘기 했었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를 했었다.

 

▶ 전공 혹은 이전 회사에서 했던 일과 맞춤 정장 일은 별 관련이 없다.

사업을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한 기술 능력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의류업을 하던 사람이나 모델리스트를 했던 사람들이 이쪽 일을 많이 한다. 그런 분들은 옷에는 전문가지만 비즈니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비즈니스를 잘 알았다. 옷을 만드는 공장은 전문가다. 문제가 생기면 알려준다. 원단, 단추, 공장 공급처는 많다. 내가 테일러드 수트의 자체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것을 아는 한국인 파트너가 있었고 홍보, 마케팅 쪽의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 맞춤 정장 샵은 프렌차이즈 형태도 많다. 어떤 기회를 보았나?

요기요 같은 배달앱이 있듯이 ‘Bird Riders’ 라는 외국음식 전문 배달 업체가 있다. 물론 전화하면 외국인이 전화를 받는다. 이렇듯 시장에는 틈새가 있다. 제가 이있었던 테일러샵의 일차 타겟은 외국인이고 둘째가 한국인이다. 나의 한국인 타겟은 옷을 엄청나게 잘 입는 사람보다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단지 옷을 맞춰주는 것뿐 아니라 전체적인 이미지와 수트를 입는 문화와 생각을 판매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수트를 입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수트를 입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그 시장은 고가와 저가로 나뉘어 있다. 고가는 부담스럽고 저가를 선택하기에는 이미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주요한 타겟이다. 시장이 늘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고객이 줄어 들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Well Dressed를 떠났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2015 7월에 일을 그만 뒀다. 함께 일하는 분은 재능이 있고 유능한 분이었다. 물론 일에 대한 자존심도 강했다. 나와 함께 일하면서 Well Dressed의 모든 관심이 나에게 쏠리면서 본인은 약간 소외되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러는 과정에서 의견차이가 생겨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Well Dressed가 나의 네트워크와 브랜드를 좀더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 회사를 떠난 후의 충격은 겪어봐야만 안다. 고정적으로 나오는 수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두려움까지 느끼게 한다.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나 상실감도 심한 경우가 있다. 본인의 경우는 어땠는가?

물론 나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그래서기회라는 것에더 포커스를 맞추려고 한다. 나는 김밥천국을 운영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들과는 다르게 할 것이니까. 작년에 아는 지인이 책을 냈다. 7년간의 항공사 일했던 경험을 책으로 냈다. 그 친구의 출판 기념회를 내가 있던 샵에서 했다. 그 기념회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샵이 홍보가 되었다. 꼭 옷 가게에서 옷만 파는 것이 아니다. 옷가게 에서 옷만 판다는 생각을 버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고 알릴 수 있었다. 담배회사도 담배 피우라고 대 놓고 광고하지 않는다. 홍보와 마케팅을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에 녹아 들게 해야 한다.

 

▶ 회사를 나온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나?

스트레스는 없이 홀가분 했다. 다만 회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좀 있다. 한전은 대단한 회사다. 할 수 있는 역량도 크다. 더 많은 일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알면서도 그 기회를 잡지 않는 것 같다. 직원들이 말로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회사라고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가능성이 넘치는데 활용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한국인의 강점은 뭐라 생각하나?

한국은 아직도 여전히 Potential이 정말 크다. 많은 미국사람들은 미국밖에 모른다. 미국이 전부인줄 알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말 조금밖에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정보와 시스템 등의 인프라가 너무 잘 갖춰져 있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다. 많은 나라로 연수, 여행, 공부를 간다. 작은 나라지만 열려 있는 나라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해외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수 있는 기술과 경험이 있다. 세계에서 원전을 지을 수 있는 나라는 몇 개 밖에 없다고 한다. IT 인프라와 시스템, 교육 시스템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장점을 너무 안보는 것 같다. 아직도 후진국들이 한국을 모델로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와서 배우는 곳이 많은 것 봐도 그렇다.

 

▶ 젊은 청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봤다. 안정을 선호하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에 entrepreneurship (기업가 정신)이 많았던 시절이 과거에 있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둔화 되면서 그 정신이 줄어 드는 것 같다. 기회가 줄어드는 안에서도 틈새는 있을 것 같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준비와 인맥 그리고 운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기회에 대한 개인의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남들이 늘 하는 것처럼만 하면 그 기회는 줄어든다.

나는 아들이 둘 있는데 첫째가 고1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아들에게 외국어 특히 중국어의 중요성, 그리고 사회를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신문, 책을 읽고 사람을 많이 만나라는 말을 한다. 자신감도 매우 중요하다. 능력이 있어도 자신감이 없으면 기회는 줄어든다. 자신감, 인맥, 기회를 보는 시각은 학교에서만 기를 수는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Will Power (하고자 하는 의지)는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를 이기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 힘들게 노력해서 회사에 들어와서 금방 지치고 좌절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회사'와 '일' 모두 본질은 선택이다.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 나는 신의 직장에서 두 번이나 나왔다. 그건 개인의 문제다.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책임 질 수 있는 힘을 길렀다면 나와도 될 것 같다. 그게 없다면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그 힘을 기르기를 바란다.

 

▶ 누군가 결혼해서 자녀도 있는데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데 자신이 뭘 잘하는 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은 개인만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가 침체이고 중국이 밀고 오는데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회사도 많다. 혼자서 자신의 방향성 못 찾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모를 수도 있다. 지인에게 물으면 객관적으로 날카롭게 실제적인 얘기를 해 주는 경우는 적다. 답은 내 안에 있지만 그것을 못 찾겠다면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정말 객관적으로 제대로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좋겠다.

 

▶ 회사를 그만두고 무엇으로 벌어서 먹고 사는지를 궁금해 한다. 벌이는 어떤가?

작년 맞춤 정장 샵을 오픈 하자마자 세월호 사건으로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힘들었다. 큰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는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했었다. 지금은 한국에 어느 정도 네트워크가 있다 보니 그것을 통해서 소개를 시켜 주거나 홍보 등의 컨설팅을 해 주는 일을 하려고 생각 중이다.

또한 나를 돕기를 원하는 대학생과 함께 나의 브랜드를 더 잘 만들어 줄 블로그를 준비하고도 있다. Life Style brand에 대한 블로그가 될 것이다. 또 아프리카 TV에서 개인방송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이 나와서 스타일과 맛집에 대해서 말한다면 독특할 것이다. 니즈를 파악했다면 그것을 남들과 다르게 보여주고 공급해 준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네트워킹 모임도 지속하고 있다. “Make something out of nothing” 이다. 장소만 있고 약간의 음식만 있어도 모임을 만들 수 있다. 재미있다면 다음 모임은 더 커진다. 지금은 150명까지 커졌다. 네트워킹 모임은 혼자 와야 한다. 뻘쭘함에 대한 두려움도 혼자 극복해야 한다. 나에게 집중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 회사를 그만두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은?

어떻게 “Make something out of nothing” 할 것인 것 고민을 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 자신에게 더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면 자신의 부족한 영어실력, 어제 출장에서 늦게 돌아온 것을 먼저 말한다. 사람들은 발표자의 문제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냥니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자체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듣는 그런데 남을 더 많이 의식하다 보니 자꾸 양해를 구한다. 당신도 당신에게 집중해야 하고 나도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발표자는 발표에 집중하고 듣는 나는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들으면 되니까 말이다. 회사에서도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만의 브랜드와 기회를 찾기 위해 “Keep focus on ME” , 자신에게 더 많이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미리 경험해 보는 서비스, 내가 원하는 나, 워너미 Wanname.kr

 

▶ 살아오면서 후회스러웠던 것은 없었나?

건국대학교에서 8년동안 강사를 했던 시간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9시 출근, 2시 퇴근 하면서 쉽고 나태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자기개발을 하지 못했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내가 시간을 그냥 흘려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강사로서 가르쳤던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그 시간을 다르게 활용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 인생의 모토가 있다면 무엇인가?

남들과는 다르게. 요즘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유명한 사람을 팔로잉해서 보고 있다. 그들이 유명한 형식이나 주제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그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꼭 사무실이나 책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를 보는 팔로워들이 천 만명 이라면 회사로부터 광고비를 받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적중률이 더 높은 광고 채널이 될 수도 있다.





▶   타드샘플. 그는 전략가 였다. 어느것 하나 우연히 결정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또한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기회를 찾아내는 탐험가 였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점을 찾아내서 개발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파란눈을 가진 외국인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것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용기가 있다면 회사를 떠나도 좋다고 말했다. 한국말을 잘 하지만 미국인 특유의 마인드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을 나와서 자신에게 보이는 기회를 연결하며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그의 길을 항상 주목해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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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7 14:41

    비밀댓글입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5.09.07 14:44 신고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의 인터뷰도 계속 관심있게 지켜봐 주세요. 세상이 참 좁네요. 만나보신 분이라니... ^^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12 _ 계획된 우연을 성공으로 구워내다. 훕훕베이글 박혜령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7.29 08: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훕훕베이글 사장으로서의 일과는 어떤가?

6시반에 일을 시작한다전날 만들어 놓은 반죽으로 빵을 만든다. 11시부터는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한다그리고 2시 정도되면 빵 만드는 것이 끝난다점심을 먹은 후 다음날 사용할 반죽을 5~6시까지 또 만든다그리고 나서는 문 닫을 때까지 빵을 판다지금은 다행이 좀 알려져서 빵이 영업 종료 전에 다 팔리는 경우가 많아서 다행이다. ^^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해서 일하는 시간이 적지는 않다.

회사 다닐 때보다 휠씬 낫다내 일이기 때문이다회사 다닐 때는 7시 출근에 거의 야근에 주말 출근도 잦았다일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지만 내 일이기 때문에 좋다다만 안 좋은 점을 굳이 꼽으라면 거의 똑같은 매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그래도 회사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 다이나믹함이 있다이 일은 빵을 준비하고 만들고 파는 일은 정말 똑 같은 반복의 연속이다그런 부분에서 오는 지루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회사 일의 반복에 대해서 지겨워 하시는 분이 많은데 형태는 다르겠지만 반복’ 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반복 없는 성공은 없지 않을까 싶다.


 작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기의 성공 노하우를 하나만 알려 준다면?

실제 회사에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소비자를 만나지 않는다머리로 구상하고 사례를 보고 얘기만 듣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니 손님들을 매일 만나는 것이 엄청나게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다월요일에 온 손님이 수요일에 다시 찾아오고 맛있다는 피드백을 직접 받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은 겪어보니 중독이 된다. MOT (Moment of Truth)를 경험 하며 소통하고 피드백을 받으니 자부심도 생기고 용기도 생긴다회사에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종류의 성취감을 느낀다회사일 잘해서 매출이 오르고 그래서 칭찬받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뿌듯함이다굳이 노하우라고 한다면 손님을 직접 만나고 대면하면서 정말 감사한 감정과 성취감을 느끼고 다시 힘을 내서 일하는 것인 것 같다


 직접적인 질문이다회사 다닐 때 비교해서 벌이는 어떤가?

처음에는 딱 월세와 재료비만 벌었다내 인건비는 없었다첫 달에 마이너스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 다음달은 몇 십만 원몇 달 후에는 인건비까지 이렇게 조금씩 매출이 늘었다지금은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훨씬 더 번다회사 다닐 때 월급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 어머니 생활비 드리고 같이 일하는 남동생 월급 주고같이 일하는 올케 월급도 준다그리고 가게 새 내고 저축도 조금 한다그런 것 생각하면 월급쟁이 때보다는 낫다.


 처음 가게를 열고 지금까지 2년 반 정도 지났다자신에게 몇 점 정도 줄 수 있는가?

한 8점 정도 줄 것 같다나머지 2점은 내가 야심이 없어서 뺏다나는 지금이 행복하다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에서 어머니와 가족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걸로 저축도 하고 가게도 조금 커져서 일하는 환경도 더 나아졌기 때문이다그리고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손님들이 있어서 더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일을 더 키울 기회는 있었지만 지금이 너무 행복하기에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의미에서 욕심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훕훕 베이글의 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베이글에 다양한 시도를 해 봤으니 또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베이글이 주가 되니 베이글로 만든 샌드위치를 오피스에 위치한 곳에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여유가 생긴다면 그런 재미있는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조금 더 다이나믹 하고 반복에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일 할 수 있다면 나중에는 해보고 싶다.

 

 최근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언가?

어느 정도까지 확장을 해야 할까바로 이 질문이다매장 수와 크기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꼭 매장에 나와야만 베이글을 사먹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Hey Bread도 그렇고 요즘은 배송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쉽게 맛볼 수 있다백화점에서도 입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내가 정말 정성 들여 만든 빵은 많은 곳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좋은 것인데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건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음식은 또 건강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내가 책임 질 수 있는 범위를 매일 고민 하고 있다.

 

 혹시 다시 회사로 돌아갈 의향은 있나?

있다식음료를 하는 큰 유통회사 같은 곳에서 일해 보고 싶다더 크게 일하는 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 어찌 보면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인 것 같다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어도 배울 수는 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짜 배움은 직접 경험해 보는 것 같다.

나도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그런데 회사에서 나오고 나서 멀리 떨어져서 제 3자의 시선으로 나와 회사를 바라보니 또 달랐다나는 많이 배웠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또 커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3데의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할 때마다 내가 배웠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회사를 떠나고 나서야 내가 배운 것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안에서 내가 배우고 깨달아 알게 되고 성장한 것을 제대로 평가해 본다면 회사의 의미는 또 달라질 것 같다그런데 회사를 다니면 매일 야근하고 너무 지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일상이 문제인 것 같다.

 

 삶의 가치관은 무언가?

하루하루를 알차고 뿌듯하게 사는 것그것이 좌우명이다그냥 바쁘게만 살아서 피곤하고 소진된 것 보다 꽉 찬 성취감과 부듯함으로 가득한 하루를 살고 싶다.

 

 회사 일이 자신과 맞지 않아서 내가 꿈꾸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동료나 후배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그럼 해 보라는 것이다.

나는 브랜드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막연히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무얼 해야 될지 몰랐다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배우러 다녔다배우는데 돈을 많이 써서 5년 회사 생활하고 3000만원 밖에 안 남은 것 같다. ^^ 내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원재료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좋았다그래서 그냥 다양한 것들을 배우러 다녔다하다 보니 금방 시들해 지는 것이 많았다그럼에도 계속 시도 했다.

그런 와중에 빵은 시들해 지지 않았다너무 재미 있었고 즐거웠다어찌 보면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배우면서 내가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의 범위를 좁힐 수 있었던 것 같다그리고 빵이라는 분야가 결정되고 나니 점점 더 깊게 파면서 지식이나 경험의 깊이를 더했던 것 같다. 솔직히 이런 것들을 의도하고 한 것은 아니었다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아야 한다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핸드폰만 보면서 난 뭘 잘하지내가 되고 싶은 건 뭘까?’ 고민하지 않으면 좋겠다.


 


 요즘 젊은이들이 첫 직장을 얻는 것이 너무 힘들다취준생 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답은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내가 모르는 것에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누군가는 읽은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한 것 같다. 회사나 사회생활도 그런 면에서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단지 대기업 몇 군데를 찍어놓고 여기만 가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나는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많은 친구들이 금융계를 가거나 대기업에 많이 갔다나처럼 에이전시를 가는 친구는 없었다선배들도 말렸다대기업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인턴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이 왔다인턴을 해 보니 일이 재미 있을 것 같고 배울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궁금한 일들이 많았고 흥미가 있었기에 주저 없이 회사를 결정했다회사를 옮기는 기준도 그러했고 지금의 베이글을 만드는 일을 선택할 때도 같은 기준이었다재미와 흥미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이 있으니 그럼 해보자라는 것이 기준 이었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의 모든 것나의 생계 전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많이 듣는 말이겠지만 꼭 대기업을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내 동기들 봐도 대기업 갔다가 2~3년 안에 그만 두고 후회하는 친구도 많았다재미와 흥미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수없이 두드려 보고 흥미와 재미를 찾았다면 시도해 보길 바란다젊을 때 해야 한다. 결혼한 사람 30대 중반만 되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어렵다.

 

음부터 이 일이곳 아니면 안돼라고 못박지 않았으면 좋겠다많은 경험을 한 후에 결정해도 된다가끔 학교에 가서 특강을 하는데 질문이 나온다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일단 회사는 가야 하니까 원서 쓰고 스팩 쌓는 친구들이 많다. 그렇게 접근하니 취업도 안되고 본인도 쉽게 지치는 것 같다그 시간에 작은 곳이라도 흥미가 가는 곳에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고 다시 아니라면 털고 일어나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조언을 하는 것이 많이 조심스럽다내 얘기가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혜령씨를 보고 나도 나만의 작은 가게를 하고 싶다며 연락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주위 지인들도 꽤 많이 물어 본다그럼 나는 돈을 못 벌 수도 있어’ 라는 것을 전재로 깔고 시작하고 싶으면 해봐.’ 라고 말한다사람들이 나만의 가게를 하면서 두는 가치의 기준이 대부분 돈이기 때문이다처음 나와서 수입이 “0” 이었다자존감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마치 내 값어치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그나마 월급쟁이는 한 달에 한번이지만 자영업은 그게 매일이다. 매일 매출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처음에는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너무 힘들었다맨탈이 버티기가 어려웠다.

물론 나도 돈은 못 벌 수도 있어.’ 라고 생각하고 진입했지만실제 매출이 적은 날에는 너무 힘들었다스스로 괜찮다 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어도 힘들었다매출에 초연하기는 너무 어렵다일단은 먹고 살아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아이템이 가장 우선이다그리고 그 아이템으로 잘 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홍대에 있을 때와 지금 이 동네로 왔을 때 다른 점은 무언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오픈 한달 후에 시작한 온라인 판매에서도 그랬다그러면서 꼭 매장에서만 오프라인으로만 판매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도 많이 봤다홍대에서 손님은 블로그를 보거나 SNS를 보고 호기심에 오는 경우가 많다그런데 그들이 오는 것은 빵을 사는 것 자체가 아니다홍대에서 친구랑 놀다가 생각나서 구매하는 거였다그러다 보니 고민하다가 한 두 개만 사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동네는 달랐다사서 먹어보고 입에 맞으면 아이를 위해서 사고 하다 보니 객단가가 홍대에 비해 높았다고객이 다르니 구매행태가 달랐고 객단가가 다르게 나타났다마케팅 원론 책의 내용을 실제로 겪었다.

홍대에 있다가 동네로 오면서 매출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각오를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의도하지 않았는데 동네로 오면서 새로운 발견을 많아 했다우리집 빵은 4시면 다 팔리고 없었다파리바게트는 10시가 넘어도 빵이 있었다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그저 가게가 좁아서 조금밖에 못 만들고 빵이 많이 팔리니 일찍 동이 난 것이었다그러다 보니 고객들이 처음에는 이게 뭐냐라고 이해를 못했다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품절 마케팅이 되어 버렸다. ‘여기 빵이 잘 팔려서 빨리 가지 않으면 없다.’ 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그러다 보니 VJ 특공대에서 찾아오고 또 그것이 단골을 불러오는 선 순환이 이어졌다환경이 바뀌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기회들을 많이 만났다.

 

 5년 후에 본인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설명한다면?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빵집으로 뛰어오면 내가 안아주며 웃는 모습이 그려진다그러면 행복할 것 같다계속 행복한 빵을 만들고 싶다그랬으면 좋겠다. ^^



 

 

▶▶ 그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그리고 행동하는 것을 주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 즐거운 것을 찾기위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렇게 일을 하고 시도를 하고 나니 그녀의 몸에는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한 것들이 쌓이게 되었다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시도하면서 빵더 구체적으로 베이글을 찾게 되었다마치 이것들이 계획된 우연처럼 그녀를 지금의 행복한 성공으로 이끌었다그녀의 지금 모습이 운처럼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계획된 우연” 이었다일터에서 힘들게 일하며 쌓은 마케팅 내공과 관심분야를 좁히고 찾고 그것에 깊이를 더하게 된 것그것을 누가 우연혹은 운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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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계획된 우연, 박혜령, 직장생활연구소, 회떠사, 회사를 그만두다, 회사를 떠난 사람들, 훕훕베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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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티즌 2015.07.29 16:53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매번 올라오는 글을 읽는데 소중한 정보들 같습니다. 오늘 12번째 분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네요.

    REPLY / EDIT

    • 손성곤 2015.07.29 17:46 신고

      안녕하세요.

      이번 인터뷰어는 솔직히 편집을 해도 버릴 얘기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내용이 길어 졌네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찾고 회사에서 배운 것으로 자신만의 일과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그녀의 노력이 저에게도 참 귀감이 되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DIT

  • Name 2015.07.29 17:49 신고

    멋집니다. 자기 일을 찾아 가는 용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example 같습니다.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5.07.29 18:12 신고

      이름모를 이름님.

      저랑 생각이 같으시네요.
      나쁜 예도 있지만 이분은 회사일에서 자신을 찾는 법을 보여주는 Good Example 인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DIT

  • zard 2015.08.08 05:33 신고

    인생에 대한 가치관과 행동 등이 매우 명료하시고 명쾌하신것같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활동적인 인상도 함께요.
    부럽습니다~~~

    REPLY / EDIT

  • zard 2015.08.08 05:34 신고

    감사합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5.08.08 12:44 신고

      안녕하세요

      저도 인터뷰를 하면서 인생의 가치관이 명확한 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인생의 나침반과 나아가야할 방향이 확고한 분 이었습니다. 이런 확고한 방향성이 회사를 떠나서 스스로 서게 해주는 힘이 되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12 _ 계획된 우연을 성공으로 구워내다. 훕훕베이글 박혜령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7.28 08: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자기소개 부탁 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혜령이고 나이는 32살 입니다. 훕훕베이글 (HoopHoop Bagel)이라는 베이글 전문 동네 빵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커리어를 대학교, 회사와 직업 중심으로 소개해 달라.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03학번이다. 어떤 큰 뜻을 품고 경영학부를 선택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경영학부를 골랐다. 그리고 가장 재미가 있는 마케팅을 전공으로 공부했다.

처음에는 ‘9 fruits media’ 라는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에 취업을 했다. 당시 디지털 마케팅, 배너광고 등이 뜨고 있어서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클라이언트 미팅 시 컨설팅 회사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컨설팅 일이 더 멋있어 보이고 한 단계 위의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대행사에서 1년 근무 후 ‘Plans ahead’ 라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로 이직을 했다. 자동차, 은행, 소비재, 식음료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하다 보니 내가 식음료 분야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해서 그랬나 보다. ^^

컨설팅 회사에서 2년을 일하다 보니 조금 답답한 부분이 생겼다. 컨설팅에 대한 실제적인 액션은 컨설팅을 받은 회사에서 하는데 결과물이 좀 이상했다. ‘왜 저렇게 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있었다. 동시에 그런 회사는 어떻게 일을 할까?’ 라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이랜드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랜드에서는 새로운 신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은 마케팅 대행사(에이전시) 1, 마케팅 컨설팅 사 2, 이랜드 2년으로 총 5년을 하고 퇴사를 했다.

 

 회사 다닐 때는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대행사에서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했다. 그런데 대기업에 와보니 최고가 아닌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을 보았다. 가장 좋은 선택이 있어도 사내의 관계나 상사들의 이익 때문에 최고가 아닌 최선의 것을 고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부분이 답답했고 내 상사가 일의 결과에 대해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더 열심히 잘 최고의 결과를 위해서 일하는데 왜 결과는 이럴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과정이나 결과에 모두 만족하지 못하니 답답함이 심했다.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럴 거면 나와서 내일을 하던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커리어가 을부터 시작해서 갑으로 바뀌었다.

주변의 지인은 일하면서 커리어가 계속 좋아진 케이스라고 말한다. 사회 통념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직접 안에서 일을 하니 나의 경우 그런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만족하는 일의 퀄리티나, 동료애, 파트너 십을 보면 을의 입장이 훨씬 더 정직하게 일하는 것 같았다. 또 대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많은 협력업체가 있었다. 함께 일하는 MD와 함께 업체를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다. 너무 영세한 업체에서 사장님이 런닝 셔츠만 입고 직원 4명이랑 땀을 뻘뻘 흘리며 선풍기 2대에 의지해서 좁고 힘든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을 봤다. 그런 분들에게 단가를 후려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회사의 이익이라는 목표 때문에 강요하는 것이 나의 가치관과 상충되었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데 억지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3년에 문제가 되었던 남양유업 직원이 거래처 사장에게 협박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회사에서는 회사의 목표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내 머리 속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상품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MD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품을 알아야 마케팅을 하기에 MD와 협력업체를 종종 방문하고는 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업체에게 회사가 준 기준을 맞추기 위해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것 들이 내 경우 참 견디기 힘들었다.

그저 더 열심히, 좋은 결과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하나의 이유다.




 회사를 떠나기 전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고 나온 건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5년간 이직을 하면서 그 사이에 쉬어본 적이 없었다. 이 참에 쉬면서 내가 원하는 식음료 쪽으로 커리어를 바꿀지, 아니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에이전시 돌아갈지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201212월에 이랜드를 그만두었다. 1월이면 인센티브가 나오는 달이었는데 그냥 미련 없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 베이글 가게를 하는 것을 보면 많은 준비를 하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맞다. 왜냐하면 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회사를 다니면서 요리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 출근이나 야근이 너무 많아서 자격증은 도전할 엄두를 못 냈다. 하지만 워낙 요리를 좋아해서 꾸준히 배웠다. 처음에는 당일만 하는 단기 클래스를 들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빵을 만드는 베이킹 쪽에 특히 끌렸다. 그래서 주말 출근이 없는 토, 일요일에는 빵을 만드는 일만 했다. 회사 일이 힘들고 짜증이 나서 무언가 회사 일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잡생각을 없애고 다른 곳에 전념하고 싶었다. 싶었다. 주말 이틀 동안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는 하드한 과정도 했다. 힘들기 보다는 재미 있었다.


 베이글을 선택한 이유는?

베이킹을 배우면서 든 생각은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것 이었다. 빵을 만드는데 계란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많은 양을 생산 할 때는 계란을 대체하는 액체를 사용한다. 버터도 쇼트닝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고려했을 때 건강한 빵은 치아바타, 바케트, 베이글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가지 중에서 베이글에 끌렸다. 베이글은 좀 무딘 빵이었다. 만드는 과정도 예민하지 않고 쉬운 편이었다. 투박하지만 건강하고 단순한 빵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베이글을 많이 만들어 먹게 되면서 장비를 구입했다.

베이글을 만들면서 동시에 정보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정보를 찾고 모으기 시작했다. 외국에는 정말 다양한 베이글이 많았다. 일반적인 플레인, 블루베리뿐 아니라 초콜릿이나 과육, 채소가 들어간 것도 많았다. 그 때 회사 다니면서 퇴근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었다. 만든 것을 혼자 다 못 먹으니 회사나 주변에 나누어 주었다. 그랬더니 너무 맛있다며 그것을 사먹고 싶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식으로 관심 분야에 대해서 깊이를 늘려 가기 시작했다.

 




 베이글을 알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맞다. 브랜딩과 마케팅을 공부하고 일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함께 일하는 MD나 디자이너도 많았기에 디자인이나 포장재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쌓인 것을 베이글에 풀어 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내가 만든 베이글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베이글을 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처음에는 전혀 없었다. 어찌 보면 가장 좋아한 일에 흥미 수준에서 더 나아가 깊이를 더하고, 게다가 내가 잘하는 일인 브랜딩을 결합한 것이 쉽게 일을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 같다.

 

 회사에서는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다.

나름 재미 있었다. 회사에 있는게 너무 싫어서 나왔다기 보다는 더 열심히 제대로 집중해서 일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배운 것도 많았다. 에이전시에 있을 때는 하나의 작은 분야만 다루었는데 유통과 제조를 모두 하는 대기업에 있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분야를 배울 수 있었다. 꼭 나의 업무가 아니더라도 동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도 배웠고 상사를 보면서 조직을 이끄는 방법이나 시스템을 갖추는 과정도 보고 배웠다. 회사에서 즐겁게 정말 많이 배웠다. 회사가 나에게 준 좋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결국에는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잘하는 일 즐거운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다. 솔직히 나올 당시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나오고 나서 뒤를 돌아보고 생각해 보니 그렇다. 회사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해도 되는 것이 가장 좋다.

 

 퇴사를 결심한 가장 큰 계기를 하나만 말해 달라.

굳이 말하자면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의사결정의 구조 때문이었다. 나는 마케팅을 하는 사람인데 마케팅을 하는 의사결정을 브랜드가 아닌 다른 팀에서 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임원들 간의 파워게임이 있었고, 일이 잘못되면 책임이 나에게 떨어졌다. 그 말도 안 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생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회사에서 많이 배웠고 기본적으로 즐거운 곳이었지만 그 부분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회사원으로 참 운이 좋은 케이스다. 브랜딩, 마케팅 일을 했고 좋아하는 빵, 베이글을 깊이 있는 취미로 했다. 그 두 가지가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어떤 직장인은 회사일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접점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어떤 조언을 해 주겠는가? 

회사일과 아무런 접점이 없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명확히 있고, 그것이 단순 취미 수준이 아닌 자신만의 인사이트와 깊이를 더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마케팅 일을 했고 빵이 너무 좋아서 소위 ‘빵투어’까지 했다. 서울에 있는 유명하고 맛있다는 빵집을 거의 다 가봤다. 또 마케팅 컨설팅을 하다 보니 전체 산업의 트랜드와 방향성을 보는 나름의 안목이 생겼다. 그래서 모든 빵이 아닌 한 분야의 빵을 장인 정신을 가지고 판매하는 것이 승산이 있겠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만약 내가 꽃집을 하고 싶은데 하는 일은 작은 회사의 경리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히, 그리고 깊이 있게 많이 자신이 직접 겪어 보는 것이다. 나는 베이글 빵집을 하겠다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정말 충분히 많이 그 일을 해 봤었다. 회사 다니면서 일년이 넘도록 거의 매일 퇴근 후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베이글과 베이커리에 대해 알고 싶어서 10일 동안 휴가를 내서 일본의 유명 베이글과 빵집 투어를 했다. 사업을 위한 시장조사는 아니었다. 그냥 좋아해서 더 깊게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은 내 일을 위한 시장조사가 되어 있었다. 결론만 보면 나는 빵이 너무 좋아서 빵을 만드는 연습을 거의 일년이 넘도록 했고, 매일 인터넷 서핑을 하며 트랜드를 익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베이글 집을 할 수 있을 만큼 배우고 느끼고 인사이트도 갖추었던 것 같다. 이렇게 정말 나 스스로가 흠뻑 빠지고 적셔질 정도로 그 일을 먼저 경험하고 해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유명한 장인이 하는 집처럼 딱 한가지 아이템만 취급하고 오늘 만든 양만 다 팔면 문을 닫는다. 오늘 준비한 것 다 판매 되었으니 장사 끝 하고 3시에 문 닫는 그런 장인이 하는 30년된 곰탕집 말이다.  이런 완판, 품절 마케팅은 의도한 것이었나?

반은 의도한 것이었고 반은 아니었다. 한 가지 잘할 수 있는 아이템, 하고 싶은 아이템이 명확히 있었고 그것을 내가 만들 수 있는 양도 한정되어 있었다. 건강한 빵이라는 기준에 베이글 한 가지만 했고 두 명이 만들 수 있는 양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판매가 잘되면 일찍 동이 났다. 그냥 무작정 베이글 좋다고 뛰어드는 것보다 아마도 회사일을 하면서 마케팅에 대한 마인드가 몸에 배인 것도 이유일 것 같다. 한가지 아이템만 다루는 것,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기에 좋은 재료로 건강한 베이글을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말했듯이 베이글을 원래 투박하고 정직한 빵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인 트랜드와 잘하는 것이 잘 맞았다고 생각이 든다.


 


 회사를 떠나면서 드는 감정의 변화는 없었나? 불안감, 자아 상실감, 가족간의 불화 등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딱히 불안함 점은 없었다. 이유는 잃을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3평짜리 공간에서 정말 작게 했기에 잘 안되면 접고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는 결혼을 한 것 도 아니었고 부양할 가족도 없었기에 잃을 건 약간의 돈 밖에 없었다. 충분히 회사로 다시 돌아갈 만한 능력도 있다고 스스로를 믿었다. 몸이 가벼워서 남들보다는 쉽게 결정을 했던 것 같다.

 

 그럼 어느 순간에 내가 좋아하는 빵으로 일을 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나?

처음 시작은 내가 좋아하는 빵집 중 하나였던 홍대의 크로와상 가게 한 켠을 빌려서 했다. 좋아하는 빵집이니 자주 갔었고 그러다 보니 주인 언니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크로와상 가게 한 구석 3평 남짓한 공간에 샵인샵 형태로 시작했다. 딱 일년만, 그리고 수중의 돈인 3000만원만 다 쓸 때까지 해 보자고 했다.  

홍대샵에서 함께 베이글을 팔다가 Hey Bread라는 빵만 배달해 주는 곳과 운이 좋게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따로 사업자를 낼 필요가 생기곤 했다. 어머니와 둘이 빵을 만드는데도 공간도 너무 좁았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로 가게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시점이 본격적인 일이 된 것 같다. 지금 위치인 이곳에는 오픈 2주전에 계약해서 혼자 다 알아보면서 꼭 필요한 것만 인테리어를 하고 광명시 집 앞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 보면 처음에 3평 공간에서 집 앞에 6평 공간을 얻고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13평으로 확장된 것이 너무 행복하다.

 

 창업을 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맞다. 남들처럼 엄청나게 힘든 스토리는 없었다. 왜냐면 너무 작게 시작해서 그런 것 같다. ^^

 

 전체적으로 운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운이 모두 계획된 우연 (Planned Happenstance)’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주위에서도 운이 좋다고 말한다. 내가 만약 브랜딩, 마케팅 일을 하지 않았다면 베이글 모양을 본딴 훕훕베이글 (HoopHoop)이라는 이름이나 디자인은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빵 패키지의 단발머리 캐릭터나 길쭉한 모양의 베이글을 넣어주는 패키지도 마찬가지다. 단지 빵만 만드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는 것을 어려웠을 것 같다. 예전부터 했던 일이 내 안에 쌓여 있있고 그것이 필요할 때 툭 하고 튀어 나온 것 같다. 내가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하면서 배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내 일에 써먹었다. 어찌 보면 월급 받으면서 많이 배운 경우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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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11 _ 회사 때려 치우고 음식점이나 할까? 직장인 창업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7.14 08: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39세 회사원이자 서울 화곡동에서 화르르 사르르 닭갈비 (이하 화사닭’)를 운영하고 있는 전진호 입니다.

 

학교와 회사 중심의 커리어를 소개해 달라

저는 1995년에 단국대학교 건축과에 입학해서 2004년에 졸업했다. 건축과 출신으로 설계사가 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설계사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학위를 따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나는 설계사로 밥을 먹고 살 정도로 창의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이 없었다. 나 스스로 원하는 일을 주체적으로 하고 싶다는 소망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군 제대 후 회계사와 감정평가사 준비를 했다. 회사는 2004년에 SK 네트웍스 구매부에 들어갔다. 건설 현장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구매하는 MRO 사업 쪽에서 일했다. MRO는 단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일이 생기고 뭔가 창의적인 일이 아니었다. 물론 입사 초기의 짧은 생각이었지만 스스로 무언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다.

 

건축과 출신인데 회계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도전은 좀 의외다. 어떻게 공부를 하게 되었나?

스스로를 고용하는 일,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늘 있었다. 학생 때 친한 친구가 CPA 준비를 하면서 같이 공부를 시작했다. 감정평가사 건축과에서 공부한 것과 그리고 CPA준비와도 일정 부분에 교집합이 있어서 함께 준비 했다. 1년을 휴학하고 준비 했는데, 1년은 택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2차를 공부할 것인가 아니면 취업 준비를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집안에서도 첫째였고 부모님의 기대가 있어서 결국 공부는 접고 취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공부한 것에 아쉬움이 남아 SK 네트웍스를 1년 반 다닌 후 그만두고 감정평가사 2차 공부를 했다. 결론은 떨어졌다. 그 이후 고민 없이 중소기업으로 회사를 옮겨 기술 영업의 일은 3년 반정도 했다. 이전 회사의 경력이 짧아서 회사원으로 경력을 제대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가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그 후 해외로 설비를 수출하는 회사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2년을 더 근무하고 나니 35살이 되었고, 내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회사생활은 시험을 준비했던 일년을 제외하고 7년을 하고 그만 두었다.

 

 회사 다닐 때 어떤 사람인지 한 마디로 요약해 달라.

한마디로 나는 내가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일한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일을 정말 열심히 했고 성과도 좋았다. 주위의 평가와 평판도 괜찮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의 일이 내 사업을 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윗사람이 일을 시켜도 그냥 하고 생각 없이 하지 않았다. 이렇게 의사결정을 내린 이유는 뭘까? 이 일을 통해서 그 다음 일은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을 스스로 하고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일을 다른 사람의 기대보다 조금은 더 잘하고 많이 했던 것 같다.

 

 회사를 떠나게 된 계기는 내가 진짜 주인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였나?

아니다. 계기는 회사 안이 아니라 밖에서 시작됐고 그리고 정말 의도하지 않은 것 이었다. 와이프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신도림에 가게를 덜컥 계약했다. 어머니께서 내가 어릴 적에 음식점을 운영하셨다. 그것만 믿고 음식점을 하겠다고 계약한 것이었다. 자영업으로 그것도 음식점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정말 당황스러웠다. 음식점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해 보신 경험이 있으니 그것만 믿고 결정해 버린 것이었다.

나는 사회 생활을 해 봤고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나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다. 음식점 하나를 가도 테이블 수, 회전율, 객단가, 가게임대료, 인건비 이런 것을 머리 속으로 계산하며 예상 매출을 그려보곤 했다. 음식점을 어머니와 아내만으로 운영하면 매우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서 내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 불씨를 된 건 덜컥 계약한 가게 때문이었다.

 

 그럼 회사 일에 불만이 있거나 맞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라고 봐야 하나?

맞다. 회사에서 이제 일을 배워서 제대로 좀 하고 있었고 인정도 받았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때도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잡았다. 내가 일한 만큼 돈이든 평가든 성취감이든 있었다. 회사로 인한 이유로 떠난 건 아니었다.





회사 다닐 때 배우게 된 건축 자재, 영업 이런 부분이 음식점과 전혀 연관이 없다. 그래서 음식점을 창업하고 시행착오도 꽤 있었을 것 같다.

아니다. 시행 착오는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잘 됐다. 어머니가 원래 음식점을 하셨고 나도 그 모습을 계속 보면서 자랐다. 어머니 일을 도우면서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 말하는 방법, 서비스 마인드, 그와 함께 사장 마인드까지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거창한 건 아닌데 음식점에서는 진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님보다 나를 낮추고 좋은 음식 건강한 음식을 서비스 한다는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신도림에서 화사닭을 운영하다가 조금 알게 된 어떤 손님이 나에게 사장님이랑 얘기를 해 보니 대학은 나온 사람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어찌 보면 그 질문이 음식점을 하는 자영업자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 같았다. 어떤 다른 회사에서 회식 온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내기를 했다고 하며 정중히 사장님은 뭘 전공했습니까?’ 라고 물어 보았다. ‘무얼 전공했기에 가게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하고 서비스를 잘하냐?’라는 것이었다. ‘경영학과를 나와서 경영을 잘하냐? 심리학과를 나와서 손님들의 마음에 잘 맞춰주냐?’ 라고 물었다. 솔직히 기분이 좋은 질문이었다. 내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손님들이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기억이 난다.

회사 일이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직접적으로는 연관이 없었지만 기술 영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나 방법 등은 알게 모르게 음식점 경영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하시는 분을 만나본 적이 있다. 그 분들 중에 손님을 위해 서비스를 하고 맞춰주는 것을 아예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회사 다닐 때의 자신의 위치가 사회에서도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영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접했던 경험이 많아서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가 파는 물건을 사 주는 사람은 회사에서나 밖에서나 최고로 소중한 사람이다.

 

회사 일만 하던 7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음식점을 창업했다. 두려움이나 불안한 점은 없었나? 자영업 특히 음식점 같은 경우 폐업률이 90%가 넘는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불안감 같은 경우는 크지 않았다. 그 때는 35살 이었고, 일에 대한 전문성도 있었다. 또 회사가 싫어서 뛰쳐나온 것도 아니었기에 안되면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게를 얻은 자리가 이전에도 음식점을 하다가 망해서 나간 자리였다. 그래서 권리금도 2,000만원 보증금도 4,000만원 정도였다. 그 좋은 상권에 비한다면 싸게 얻었다. 여러 가지 가게를 얻기 위한 부동산 비용과 집기 비용까지 합하니 일억 천 만원 정도 투자를 했다.

돈이 부족해서 8,000만원 가량은 대출을 받았다. 그 대출금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다. 정말 장사가 안 돼서 망해도 열심히 일하면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비교적 젊었고 아내나 어머니도 원해서 한 일이기에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보면 새롭게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신문기사에서 폐업률이 90%라고 하면 나는 10%안에 들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시작한다. 시작할 때는 나만은 잘 될 꺼다.’ 라고 믿기에 큰 걱정이 없는 것 같다. 약 두 달 정도 지나고 오픈발이 꺽인 후 매출을 보면서 이렇게 하다가는 큰일 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공포감이 가장 심한 것 같다.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음식점은 아니었는데 장사가 잘 되었던 것 같다. 얼마나 잘 됐었나?

일반적인 프렌차이즈가 아닌 음식점 기준을 보면 정말 아껴서 타이트 하게 잡아도 최소 일억 정도는 투자를 한다. 그리고 월세는 250~300 정도라고 한다면 하루 매출이 최소 70~80만원 정도는 되어야 회사 생활 할 때만큼 벌 수 있다. 물론 월세와 투자규모 업종과 마진에 따라 모두 다르기는 하다. 흔히 음식점 장사할 때 하루 매출 백 만원 이면 잘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내 경우 신도림 화사닭은 하루 매출이 어림잡아 백오십 만원은 됐었다.

닭갈비 집을 오픈 한다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는 중에도 손님들이 들어와서 언제 오픈 하냐고 물어봤었다. 그만큼 그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서 사람들의 확실한 니즈가 있었던 아이템이었다. 내가 노력해서 마케팅 하지 않았지만 오픈 전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동네도 닭갈비 집 생긴다며 입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었다. 장사도 잘 됐었다. 한 달 매출이 4,000~5,000만원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장사가 잘 되었던 화사닭 신도림점의 사업을 접었다. 왜 그랬나?

가장 큰 문제는 아르바이트 등의 직원관리 였다. 툭하면 갑자기 나오지 않고 그만두는 경우가 너무 많아 점점 가족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가족들이 투입되어 일을 하면서 의견의 차이가 생기는 일이 잦아졌다. 가게를 운영하는 방침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경영은 시작하기 전에 명확한 경영이념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영업을 하면서 이것을 세우고 만들어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가게가 그랬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일과 삶의 밸런스가 심하게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운영하는 동안 편의점처럼 1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영업을 했다. 심지어 동생 결혼식 날도 가시 사진 찍고 밥 먹고 가게로 달려와서 일을 했다. 매출이 많아도 가게에는 손님이 없는 순간이 있다. 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그 순간은 인건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사장도 사람이니까 그렇다. 그러다 보니 오후 2시간만 바쁘니 그럼 내가 일하지 뭐하면서 가족들이 나와서 일하게 된다. 그러면서 가족 전체가 이 일에 매달렸고 직원 문제도 생기면서 가족들도 힘들어 했다. 급기야 가족 모두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고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회사 다닐 때보다 많이 벌었지만 내 삶은 딱 두 가지 시간뿐이었다. 일하는 시간, 그리고 자는 시간. 삶이 없었다. 무슨 기계 같은 삶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지겨워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영업을 하면 더한 반복이 시달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 이유는 이전의 회사에서 계속 필요하니 다시 나와서 일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에서 회사의 요청을 계속 받으니, 내가 사회에서 쌓아왔던 경력이 아깝다는 생각도 다시 들었다. 내가 회사가 너무 싫어서 그만둔 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화사닭 신도림점은 장사가 잘 되었지만 시즌 1을 종료하고 문을 닫았다.

 

그러면 화사닭 신도림점을 접고 마지막에 일했던 회사로 돌아간 건가?

그렇다. 사장님도 내가 만약 망했으면 나를 다시 부르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나가서 자기 일을 하는데 더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장님을 저런 놈을 데리고 와서 우리 회사에서 일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를 떠날 때 보다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직책으로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회사로 돌아가서 2년 정도 일을 하니 예전과는 마음가짐이 좀 달랐다. 한 번 회사를 떠난 경험도 있고 내 일을 하면서 성공한 경험까지 있으니, 예전처럼 이 일이 내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솔직한 얘기인 것 같은데 내가 회사의 주인이다.’라는 마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높은 직급에서 나오는 회사의 기대도 커졌었다. 그에 대한 스트레스도 꽤 심했다.

 

지금은 강서구 화곡동에 화르르 사르르 닭갈비를 시즌2로 다시 열었다. 그 계기는 무언가?

결국 다시 내일을 하고 싶었다. 요식업이 아닌 다른 분야를 생각했다. 공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공부를 하고 대신 아내가 생활전선에서 돈을 벌기로 했다. 아내는 그래도 예전에 경험해 봤고 장사도 잘되고 했으니 음식점을 하자라고 해서 결국 다시 같은 메뉴와 상호로 문을 열었다. 나도 공부를 하면서 시간이 나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독이었다. 예전의 성공의 방정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 안이한 생각이었다. 예전에 비추어서 강점을 더욱 강하게 할 생각만 했고 약점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의 경우 강점을 강하게 하라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자영업 장사에서는 하나의 큰 약점을 메우지 못한 채로 강점을 강하게 해도 그 약점으로 모든 것이 새어 나가는 것 같다. 그 약점은 바로 위치였다.

 

 그럼 지금 회사 일을 하면서 화사닭을 집을 운영하는 것 아닌가?

애초에는 운영에 아예 개입 하지 않으려 했다. 선장이 많으면 배가 마운틴으로 간다. 의사결정은 한 명이 해야 한다. 특히 가족의 경우는 의까지 상한다. 나는 그것을 이미 겪어 봤었다. 부부가 함께 자영업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절대 반대다. 장사가 잘 된다면 모르겠지만 장사가 잘 안되면 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관계도 문제가 생긴다. 작은 가게라 하더라도 경영에 대한 신념은 명확하고 확고해야 한다. 내 주위에서 부부가 함께 장사하는 분들을 보면 장점은 딱 하나 인건비 세이브밖에 없다. 그대신 단점은 매우 많다.

 

 화사닭 시즌 1인 신도림점과 시즌 2 화곡동점은 운영해 보니 어떻게 다른가?

다른 점은 손님이다.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이 닭갈비 먹으로 오는 사람으로 다 똑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신도림은 회식과 가족 식사 연인도 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화곡동은 그저 술을 먹으러 오는 동네였다. 단지 어떤 음식과 술을 먹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다른 손님의 취향과 니즈를 알아내고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쉽지가 않다. 회사에서는 그것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내 돈을 쓰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사를 하면서 그것을 찾는 것은 솔직히 쉽지만은 않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파느냐?’어디에서 파느냐. 간략히 말하면 아이템과 로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두 가지가 각각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함께 중요하다. 장사가 잘되려면 아이템과 로케이션, 두 가지가 모두 딱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템이 아무리 좋아도 로케이션이 안 좋으면 안 된다. 장소가 아무리 좋아도 그 자리에 맞지 않는 아이템이라면 이 역시 안 된다. 


화사닭 1기 신도림 점은 두 가지가 모두 딱 맞았다. 오픈 하려고 현수막 걸고 인테리어를 거의 마쳐가던 즈음에 손님들이 그냥 들어 왔다. ‘인테리어 다 끝났죠? 하면서 한 회사의 팀에서 회식을 예약하고 갔다. 어쩔 수 없이 재료 수급해서 그 팀을 받았다. 아직 인테리어가 다 끝나기 전인데 말이다. 그 팀을 받으니 손님들이 몰아쳤다. 그 정도로 잘 아이템과 위치가 모두 잘 맞았다. 돼지고기는 지겹고 소고기는 비싼 직장인들에게 닭갈비는 호불호가 적은 음식으로 대안이 되었다. 그리고 고기류 중에서는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매운맛을 사용할 수 있는 고기가 닭고기 라는 것도 통했다. 그리고 인천, 안양, 안산 등 서울 근교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자 만남의 장소인 신도림 이라는 위치는 서로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음식점으로 자영업을 하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자문을 구한다면 해 줄 예기가 무지 많다. 장사가 매우 잘되 본 경험도 있었고, 지금처럼 고군분투 하는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직장인으로 일을 하다가 자영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럼 음식점으로 자영업의 미래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에 이슈가 많이 되고 언론에 소개가 많이 되는 독특한 마케팅으로 많이 알려진 음식점들이 아주 약간은 조심스럽다. 지나치게 보여지고 알려지는 마케팅 중심적으로만 가는 것 같아서 그렇다. 너무 트랜드를 쫓는 것은 음식점뿐만 다른 업종에서도 아니라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음식장사의 본질은 재 방문이다. 그 본질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건강한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다. 그 본질을 지켜서 20, 30년 후에도 생존하고 사람들이 찾는 음식점을 만들고 싶다. 음식점도 지속가능 경영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 지속 가능성은 매출이 받쳐 줘야 가능한 것이고 매출을 만드는 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한 고민은 위치가 조금 좋지 않은 곳이다 보니 이곳을 계속 끌고 갈까? 아니면 새로운 장소를 구할까?’에 대한 고민은 늘 있다.

예전에 어떤 삼겹살집 사장님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분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장사가 잘되면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손님이 아니라 돈으로 보인다고 했다. 3명이면 삼겹살 3인분, 맥주 3, 소주 2해서 58천 원짜리로 보인다는 거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라는 목소리도 작아진다. 그리고 어차피 너 아니어도 올 손님을 있어이렇게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분의 얘기를 들으며 단지 돈만을 버는 것보다는,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 더 큰 가치를 위해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는데 음식점이나 할까?’ 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연령별로 다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자꾸 보여지는 것만 신경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나치게 마케팅만 신경을 쓰고 재미만을 쫓다가 안되면 말지 뭐라는 가벼운 생각만 가지고 지속적으로 오래 가게 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

50대가 되어 회사를 떠나서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자신을 새로운 세상에 온전히 던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50대 라면 회사에서 임원 정도는 하거나 관리자로 일 하다가 나온 분들이 꽤 많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이런 일을 했었고, 내 밑에 직원이 몇 명이었는데..’ 라며 과거의 향수에만 젖어 있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이 장사를 하면 경영자가 아니라 투자자가 된다. 나는 돈이 있으니 투자만 하고 운영은 월급을 주는 사람에게 맞기는 경우다. 사람을 비용으로만 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주로 프렌차이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프렌차이즈는 매출은 높을지 몰라도 투자효율은 낮은 경우가 많다. 수익이 나도 5년 후 리뉴얼을 위한 인테리어를 하면서 그 수익이 다시 프렌차이즈 본사로 들어가는 곳도 있다. 월수입 300백만원 가져가려고 7~8억씩 투자해서 가게를 여는 건 잘못 된 것 같다

창업을 할 때 '~~이나 할까?' 라는 마인드로는 절대 성공 못한다. '~~ 아니면 안된다.' 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회사 일이 나와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후배가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 주겠는가?

나는 그런 친구를 만나면 얼마나 깊게 일에 젖어 봤느냐? 라고 묻고 싶다. 사람들은 각자 인지할 수 있는 깊이와 범위가 다르다. 물론 개인차이는 있겠지만 회사생활의 경험에 따라서 캐치할 수 있는 범위와 깊이는 달라진다. 내가 회사랑 맞지 않는다면 도대체 정확히 회사의 어떤 부분과 나의 어떤 부분이 상충이 되는지 깊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남의 밑에서 지시를 받는 것은 모두 싫어한다. 회사를 떠나서 자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의 대부분은 바보 같은 남밑에서 지시 받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자기 일을 하면 직장생활보다 최소 2배 이상은 힘들다. 최근에 일본의 경영의 대가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을 하는가?’ 라는 책을 읽었다. 회사에서 힘들고 슬럼프가 생길 때 마다 일에 더 깊숙이 들어감을 통해서 그 슬럼프를 극복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안타까운 상황은 일은 하는데 자기 시간은 자기 시간대로 없고, 야근도 애매하게 하고, 그렇다고 회사에서 원하는 성과를 내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힘들고 괴로워서 바닥으로 떨어졌다면 최소한 지하수가 나올 때까지 밑으로 들어가 보기 바란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심정으로 파 보기를 원한다. 더 깊이 계속 파고 들어가서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진짜 원인을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냥 회사가 짜증난다면 왜 짜증나는지? 김팀장이 괴롭혀서? 그럼 왜 괴롭히는지?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지랄해서. 그럼 그는 왜 너에게 지랄을 했는지. 이런 식으로 계속 질문을 통해서 내려 가면서 표면적인 이유가 아닌 진짜 이유를 찾아보면 좋겠다. 그렇게 질문해 보고 답을 냈는데 회사를 떠나는 게 맞다면 떠나면 된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해 보고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그만두면 사회에 나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회사에서는 김팀장이 짜증나게 하지만, 자영업을 해보면 김팀장 보다 100배 더 짜증나게 하는 사람을 소비자로 만나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겪어 보니 그렇다.

내가 만난 친구 중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정말 납득이 가는 친구가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내가 회사에서 정말 이렇게 죽을 힘을 다해서 일을 했으니 여기서 배운 지식과 경험으로 내 일을 하면 잘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겠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성격과 일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했다.

 



뜬금없는 질문인데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내 아는 후배 중 하나는 나는 평생 월급쟁이만 할 꺼에요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자기가 사업할 깜냥과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 후배는 회사에서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 왜냐면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월급쟁이만 평생 하겠다는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심을 다해 일한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을 수도 있다.

또 미디어에서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했더니 성공했어요.’라는 기사가 많이 나오는 것도 상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우선은 성공의 시작과 끝을 억지로 하고 싶을 일을 한 것이라는 기획기사의 결론으로 내 놓고 끼워 맞추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 정말 수 많은 시간을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은 것은 별로 부각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 성공의 비결이 뭡니까?’ 라고 물으면 운이 좋아서요. 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엄청난 성공을 거뒀기에 예전에 고생한 것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그 고생담을 풀어 놓기도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계속 얘기하지만 무언가에 정말 미치도록 깊게 빠져들어 파보고 노력한 사람만이 성공의 준비태세를 갖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 찾아와서 당신에게 음식점 영업에 대해 살아 있는 내용을 배우고 싶다. 나의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라고 요청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화사닭 1기 신도림에서는 체인점 문의가 세 번 정도 있었다. 전부 말렸다. 왜냐하면 얘기를 들어보니 요청한 분들의 생각이 자영업을 하기에는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조리 방법이나 재료 수급 양념 비법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조금은 짧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분들은 폐업 90%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성공해도 오래 못 갈꺼다

자영업 음식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들 이었다. ‘하루 매출 30만원이면 곱하기 30하면 거의 천 만원은 되네. 혹은 11시에 열어서 10시에 닫는다고? 나쁘지 않은데다 이렇게 말했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경영계획을 세우거나 할 때 단순하게 엑셀로만 계산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일 거다. 실제 상황은 그것과 다르다. 실제로 프렌차이즈 회사나 창업 컨설팅을 할 때도 이런 식으로 계산해서 사람을 홀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프렌차이즈 같은 경우는 개인에 집중하지 않는다.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설렘과 긴장을 가지고 가진 재산을 전부 털어서 일을 준비하는가를 고심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사람을 매출의 수단으로만 본다.

만약 누가 찾아 온다면 일단은 ‘No’를 할 것 같다. 성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는 성공하는 10%에 든다고 믿고 시작한다. 나도 10% 안에 들었다가 지금은 90%이다. 자영업은 할게 너무 많다. 노가다, 마케팅, 손님응대, 청소, 서빙, 재료 다듬기, 회계, 세금, 직원 관리 등등. 사장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다. 회사 다닐 때보다 기본 4배는 바빠지는 것 같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지면서 불화도 생긴다. 나는 아이가 둘인데 다시 시작하면서 둘째를 어찌 키워야 하나 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정말 큰 어려움 이었다. 나는 좋은 아빠이고 싶고 자식을 잘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자영업을 하면서 그렇게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 했다.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면 금방 티가 나고 선생님한테 전화도 온다. 정말 슬픈 일이었다.

아까도 얘기 했지만 직장인으로서 일에 혼신을 다해서 내일처럼 젖어본 사람만이 자영업을 해도 그나마 성공가능성이 올라간다고 본다. 회사에서 일 설렁설렁하고 나는 월급 받은 만큼만 해야지 했던 사람은 자영업 사장되면 잘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설렁한 마인드를 벗기 위해 고군분투 하다가 망할 수 있다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무언가에 미치도록 노력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온다면 기꺼이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돕고 싶은 마음 당연히 있다.

 



▶▶ 회사 생활을 하다가 음식점으로 자영업에 뛰어 들었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그 외의 많은 부분을 잃기도 했다.  다시 회사 생활로 돌아와서 이제는 음식점의 지속경영을 위해서 회사일과 음식점을 병행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는 직장인이 상상만 했던 일들을 실제로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발판으로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미치도록 깊게 빠져보고 파고 들어본 자만이 성공 할 수 있는 기본을 갖춘 것이라는 그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얼마나 일에 젖어 보았는가?' 청년의 때를 지나 중년을 향하는 마흔의 고개를 넘는 그의 말의 깊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이 일이나 할까?' 라는 마음이 아닌 '이 일 아니면 죽는다'는 절박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어깨 위에 얹고, 사회에 뛰어들어 온몸을 다 적시며 일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Dr. son

음식은 맛나게 배터지게 먹고 제 카드로 계산 했음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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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닭갈비, 음식점 창업, 직작생활연구소, 창업, 화르르 사르르 닭갈비, 회떠사, 회사를 떠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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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is again 2015.07.17 08:14 신고

    자영업에 좋긴한데 주말까지 올린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첨에 시작할 땐 주말은 알바를 써야지 하다가도 막상 인력관리가 안되기 일쑤라 주인들이 나오더군요.주변에 카피숍 창업한 지인과 우리동네 새로 창업한 편의점주가 그런 얘길 하는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5.07.19 11:52 신고

      안녕하세요.

      인터뷰한 전진호 님도 가장 힘든점이 인력관리라고 말하더군요. 갑자기 안나오고 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이 동원되고 그러다 보니 가족간의 불화가 생기면서 문제가 커진다고 하더군요.

      어찌보면 직장인 보다 자영업자가 시간관리 측면에서는 더 힘들것 같아요.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4_방송작가에서 인디밴드의 베이시스트가 된 박주원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18 09: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회사 (2003~2013 10/ 중간에 학업으로 2년 쉼)

: G TV, 서울시청 인터넷 방송, 롯데 백화점, 외환은행 관련 방송 작가  

 

 회사를 떠나서 (2014 1 ~)

: 록 밴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음악 공부 중 

 

 자기소개

저는 얼마 전 홍대로 이사온 박주원 입니다. 현재는 ECE 라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고, 소소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간략히 말해 주세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글을 쓰는 것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2때 국어 선생님 통해서 문예 창작과 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으니 문예 창작과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98년도에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갔다. 과의 특성상 그것으로 돈을 많이 벌거나 할 수 있는 직업을 원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결정이 이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보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문창과에 가면 당연히 소설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 

물론 그 당시 IMF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서 이것 저것을 해야 하는 취업이 힘든 시기는 아니었던것 같다. 지금은 너무 힘들지 않나. 졸업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할 일이 적었다. 주로 출판사, 잡지자, 방송작가로 많이 갔다. 졸업 후 방송작가 생활만 약 10년 정도 일했다. 베이스는 작가일을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이 하고 싶어서 베이스를 잡았고 연습을 했다. 홍대에서 베이스를 한지는 8년 째고 지금 몸담고 있는 밴드는 햇수로 3년째다.  

 

 방송작가의 일은 어떤가요?

한 마디로 말하면 대중이 없다. 특히 프리랜서 작가의 경우는 일이 절대로 끝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기획 회의를 하고 아이템을 정하고 취재를 하고 글을 쓰고 편집이 끝나고 일이 계속 되었다. 밤에 불려나가는 일도 있어 힘들었다. 방송 하나가 마치 단기 프로젝트와 같았다. 퇴근을 해도 퇴근 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방송작가는 방송 소재를 찾기 위해 늘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고 있어야 한다. 최신 트랜드를 아는 것은 기본이고 24절기를 다 알고, 제철과일, 생선, 지방 음식 등을 다 알고 있어야 시의 적절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방송작가는 이번 주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짧으면 2주 후 길게는 한달 후를 살아야 한다. 항상 방송 계획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퇴근을 해도 일과 단절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과 함께 사는 느낌이었다. PD가 편집이 끝나면 그걸 보고 맞는 나레이션을 다 만들어야 하고 자막도 써야 한다. 세상에서 영원히 퇴근하지 않는 일이다. 노트북 한대만 있으면 어디서 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했다.

 

 왜 회사를 그만 두었는가?

G TV (케이블 방송), 서울시청, 롯데 백화점, 외환은행 이런 기업에서 사내 방송 작가로 주로 일을 했다. 마지막 직장은 외환은행 이었다.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한 건 G TV에 있을 때 였는데 이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작가일도 재미 있었고, 베이스도 재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거의 두어시간 잠자면서 베이스도 배우고 일을 했었다. 베이스를 처음 배울 때라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일하다 보니 일과 베이스를 병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 졌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일을 그만 두었을 때 더 후회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했다. 방송작가 일은 이 정도면 되었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방송용 말고 진짜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그만 둬도 글을 계속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음악은 누가 당장 지금 너 이거 하지마라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방송에서 뭐랄까 방송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과장하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힘들었다. 일을 하면서 성취감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웠다. 롯데 백화점 방송을 준비할 때는 소재를 찾으려고 내 돈 써가며 물건도 사보고 하루 종일 백화점에 살았었다.


 


 방송작가로서 메인 스트림인 공중파로 갈 생각은 안 했는지?

안 했다. 왜냐면 돈이 궁핍한 시절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막내부터 중간이 되는데 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지상파 라도 막내작가의 월급은 정말로 작은 수준이다. 막내작가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보니 개인적으로 오래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창과를 나와선지는 몰라도 방송작가로 대성하겠다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돈을 번다는 느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외환은행 다닐 시절 세 번째 밴드인 지금의 밴드와 함께 음악을 했다. 오디션 등에서도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맘에 드는 밴드를 만나게 되었다. 밴드의 Potential이 좋고 사람도 좋았다. 20148월에 정식 앨범이 나왔다. 내 생에 첫 앨범이었다. CD 커버, 포스터, 디자인, 녹음, 믹싱까지 맴버들이 다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밴드 안에서도 내가 해왔던 일을 위해 할 일이 있었다. 글 쓰고 방송 만들고 홍보하는 것이었다. 직접 보도자료도 썼고 기자도 만나러 다녔고 페이스북 홍보도 했다. 작가라는 첫 번째 직업에 충분히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썼으니 나의 두 번째 하고픈 일인 음악에 시간을 쏟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잘했던 능력(글쓰기, 방송)을 가지고 내가 잘하고픈 일 (밴드 홍보)에 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그만 둘 수 있었다. 2013년 겨울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만 하기로 결정 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홍대 근처로 이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돈을 어떻게 벌고 있나?

우선 남편이 벌고 있고, 나는 오전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적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고 싶은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오전에만 하기 때문에 밴드 일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며 세상을 깨닫는 재미도 있다. 지금은 돈이 목적이 되어서 일한다기 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가? 수입은 줄었는데?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돈을 좀 버니 라는 어쩔 수 없는 질문.

결론부터 말하면 예전보다 좋다. 직장에 다닐 때 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얻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했다. 홍대 근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진 것의 50% 이상을 버렸다. 집이 작아서 이기도 했지만 버리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버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이사를 하며 몸소 느꼈다. 물건을 버리면서 내가 그 동안 놓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구나. 그래서 행복이 들어올 틈이 없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지금 내가 버는 돈이 예전에 벌던 것에 비하면 3/1 수준인데 웃긴 건 돈이 모자라지 않다는 거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니 불필요한 것들 거추장스러운 것들에 돈을 쓰지 않게 되고 모자라지도 않게 된 것 같다.  이사하면서 물건을 버리면서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깨달을 것이 없었다면 계속 돈을 더 벌어야 겠다.” 라는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밴드 ECE (Emergency Call Equipment)는 어떤 밴드인가?

장르로는 포스트 펑크, 아트락이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맴버들 각자가 장르적 욕심이 많아 장르를 딱히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홍대에서 밴드를 하며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음악 생각을 계속하며 사는 삶이다. 이것도 하나의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밴드 4명이 모두 추구하는 바가 다르긴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안되는 것을 되게 느낌, 각자의 색이 있으면서 그것이 하나로 녹아드는 음악이 되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음악적으로 정체되지 않게 했고 남들과 다른 음악을 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5년후에는 무얼하고 있을 것 같나? 37살이면 이미 밴드를 하기에는 적은 나이는 아니다. 

5년 후에도 더 재미있는 밴드를 할거다. 계속 쭉. 이것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음악은 평생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언제 잘될지 모른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게 두렵다면 재미있는 음악을 하면 될 것 같다. 회사도 사업도 오래 버티는게 이기는 거라고 하는데 음악도 마찬가진 것 같다.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원하는 거라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방송작가의 자신, 지금 밴드의 베이시스트 로서의 자신, 가정에서의 자신 중 가장 소중한 건 무언가?

미안한 얘긴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 밴드 베이스 주자로서의 내가 소중하다. 남편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와 주고 있다. 아마 남편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거다. 나 때문에 못하는 걸꺼다. ^^

  궁극적인 꿈은 무엇인가?

음악을 오래 하고 싶다. 방송작가는 어떤 틀 안에 있는 느낌 이었지만 음악인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른 밴드의 프로모션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그 일이 방송작가의 일과 약간의 교집합이 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밴드의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알리고 기자를 통한 홍보 보도 자료를 쓰는 등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 홍보를 위한 모든 글과 관련된 일을 다 하고 있다. 공연 컨셉, 연습 스케치 모든 것을 다 알린다. 밴드들이 이런 홍보 활동을 많이 안 하는데 좋은 밴드가 있었고 컨텐츠 적으로도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좋은 음악을 하는 멋진 밴드라는 상품이 있어서 더욱 자신있게 하고 있다. 내가 글도 써봤고 밴드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진정성 있게 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꼭 책을 한 권 쓰고 싶다.어설픈 수집가들이라는 제목도 만들어 놨고 컨셉도 잡아 놨다. 벌써 몇 명 인터뷰도 끝냈다. 살다보니 인생의 흔적이 수집이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영화 브로셔를 모으는 사람, 청첩장을 버리기가 어쩌다 보니 미안해 모은 사람, 초코파이 껍질을 모으는 사람, 손 편지를 모으는 사람 등이 있다. 어찌보면 일상의 추억을 수집한 사람들일 것이다. 인디밴드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 때 기차표를 산것에 메모한 것을 모으는 사람도 기억난다.

 

 회사에 들어가기 너무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쉽게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내가 조금 후회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너무 대책 없이 그만두지 말라는 거다. 나도 음악을 1~2년 했던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을 찾는 시간이 너무 중요하다. 양다리를 걸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쉽게 결정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내가 아는 사람도 IT 개발자의 일도 하면서 음악 기획을 하는데 벌써 2년이 넘게 그 일을 병행하고 있다. 물론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말이다. 내가 음악으로 넘어 오기로 확신이 든 것은 음악에서 무엇을 할 것이라는 목표가 명확했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과 자신감이 들고 나서였다. 홍대에서 밴드로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커리어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직업을 바꾸고 커리어를 바꾸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현재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완충지대를 반드시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회사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나와서 찾으면 안 된다. 회사를 떠나면 시간이 다르게 간다. 너무 빨리 간다


▶ 정말 우연한 기회로 만나서 인터뷰까지 했다. 하지만 가장 긴 시간의 인터뷰를 한 것은 서로 수다가 많아서

       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얻는 즐거움이 컷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TV 속 노홍철

       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삶에 행복이 들어올 틈이 없었던 건 너무 많은 것을 움켜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잊지 못하겠다. 일터에서 누구 보다 치열했고 또 새로운 무대에서 나만의 무기로

       치열한 즐거움을 연주하는 박주원님을 열렬히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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