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31_ 서른살. 너무 빨리 회사를 그만뒀다.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9.11 06: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를

저는 89년생 서른 살. 유튜브 영상 크리에이터 김성훈 입니다.

 

▶ 회사 중심의 간단히 이력을 알려 달라

서강대학교 07학번으로 미국문화와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했다. 2014년 겨울 BC카드에 입사해서 5개월간 회사 생활을 하고 퇴사하고 2015년 가톨릭대학교 교직원으로 입사 후 10개월 일을 했다. 그 후 다른 곳에 취업준비를 1년간 하다가 지금은 유튜브 영상에 관심을 갖고 영상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2018 9월이 퇴사한지 2년이 되는 해다.

 

▶ BC카드에서는 어떤 팀에서 일했나?

매입 기획팀이었다. 카드사의 수수료 중에 가맹점 수수료를 책정하고 계산하고 가맹점과 카드사의 이익을 조율하는 그런 일을 하는 팀이었다. 쉽게 말하면 가맹점의 수수료체계를 관리하는 일이다. 국가에서 영세 자영업자들의 수수료를 낮춰 달라고 요청을 하면 대응해서 적정 요율을 산정하는 일을 한다.

 

▶ 연봉도 적지 않은 금융대기업 입사 후 5개월 만에 퇴사했는데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빠른 선택이었다는 것 맞다. 회사의 팀에 선임 차장님이 있었다. 그분 말씀이 있을 거면 오래 있고 나갈 거면 빨리 나가란 말을 했다. 물론 5개월은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회사 안에서의 나의 미래 모습을 그려 보았을 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회사에서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회사 안에 있기 보다는 회사 밖에서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 그 차장님은 왜 신입사원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라는 이유를 생각해 본적 있나?

처음에는 그 얘기가 농담 반 전담반이었다. 정확한 의도는 내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좋은 점도 있고 회의감도 있기 마련인데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빨리 결단하는 게 나을 거라는 의중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내 앞에 입사했던 신입사원들이 퇴사를 했다고 들었다. 그것도 이유였을 것 같다.

 

▶ 5개월 만의 퇴사 이유 치고는 좀 단순한 것 아닌가?

사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좋은 곳에 합격해서 일하고 돈 벌면 행복할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들어와 보니 4년 선배인 사수가 있었다. 실적도 좋고 능력도 인정 받았는데 내부적으로는 정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면서 정글에서 맹수와 혼자 싸우며 일했다. 그러면서 사수도 회사 그만두고 유학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술자리에서 종종 했다. 팀장도 워커홀릭 수준이었다. 주말에는 오로지 자면서 기력을 충전하고 주중에는 정말 팀원 없이도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또 내 자리 앞에 앉은 상무님도 임원회의 등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상무님은 나에게 신입때는 고시공부하듯이 카드업계를 공부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뭘 위해서 그렇게 살아 남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수, 팀장, 상무님을 내 미래라고 생각했을 때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물론 5개월은 짧은 시간 이란 걸 잘 알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삼십 대 중반 이전의 퇴사자를 만나보면 나는 내 옆의 저 대리처럼, 저 팀장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꼭 한다. 자신의 미래를 회사 안 다른 사람에게 투영해서 그게 자신의 미래라고 동일시한다. 그리고 암울해하고 그것이 퇴사의 이유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도 그런 거였나?

당시에는 조직안에서 내가 온전히 나로서 성장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개인이 조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고 회사도 원하는 유형의 인간형이 있을 텐데 내가 그 모습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잘나가는 사수, 팀장, 상무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만년 과장으로 지속적으로 승진에서 누락 된다거나 하는 분들 말이다. 잘 나가거나 아니거나 그런 사람들을 봤을 때 어떤 모습이라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뻔한 대답일 수 있는데 한번사는 인생인데 조직안의 어떤 모습이라도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 혹시 너무 쉽게 회사에 들어가서 금방 그만 둔건 아닌가?

그건 아니었다. 인턴도 많이 했고 필요한 자격증도 따고 면접도 많이 봤다. 당연히 입사지원서도 대략 70번은 넘게 썼던 것 같다. 대략 열 군데 정도 본 면접 중에서 BC카드는 추가 합격한 소중한 곳이었다. 내가 문과이고 회사에서 많이 선호하는 전공이 아니어서 나름 힘들게 들어갔었다.

 

▶ 금융대기업을 뛰쳐나온 것이 후회는 없나?

후회나 미련은 없다. 하지만 아쉬운 순간은 있다. 지금 알바를 하고 있는데 월말쯤 되면 돈이 다 떨어진다. 그래서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는 표를 구할 돈이 조금 부족했다. 어머니에게 돈을 좀 보내 달라고 전화를 했을 때 좀 자괴감이 들었다. BC카드 입사 동기들 카톡방에서 동기들이 차 뭐 살까?’ 를 고민하고 해외로 휴가 다녀온 사진 올리고 할 때 보면 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경제적으로 직장인만큼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실적은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퇴사를 결정할 때 어떤 원칙이나 기준이 있었나?

나는 어릴 적부터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군대에 있을 때 나는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나는 말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주고 싶었다. 일반 회사에 가도 내부 직원이나 고객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안에서 갑으로 일하면서 그건 요원한 일이었고 내부 직원들과도 치열했으면 치열했지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는 힘들었다. 알게 모르게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것이 회사안에서는 불가능 했던 것 같다.

 

▶ 퇴사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주는 일을 회사 퇴근 후나 주말에 해도 되지 않냐취미로 해라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 그런 원칙을 가지고 회사를 나왔는데 다시 들어간 곳이 교직원이다. 경쟁 없이 칼 퇴근 하는 그런 좀 편안한 삶을 원했던 건가?

내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면서 할 수 있는 따뜻한 일이 뭘까 고민했다. 심리 상담교수님을 찾아가 의견을 여쭙기도 하고 서비스업도 맞다고 생각해서 백화점 VIP라운지에서도 일해 봤다. NGO에 일하는 친구도 만나서 거기는 어떤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일반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뜻한 일을 하겠다는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생각은 엄청 바보 같고 Naive 한 것이었다. 회사라면 어느 곳이라도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회사 생활을 해야 한다면 주말까지 빡세게 일하지 않고 여유가 좀 있고 퇴근 이 후의 시간이 보장되는 일을 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직원을 선택하게 되었다. 또 월급도 빵빵하게 받고 복지도 좋았던 회사를 나오니 직업이 없던 시간 동안 상대적 박탈감이 컸던 것도 이유였다. 동기도 말리고 인사팀도 말리고 부모님도 말렸는데 박차고 나온 회사였는데 빨리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그래서 돈은 적더라도 편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큰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 그렇게 다시 힘들게 들어간 교직원일을 하고 수습에서 정직원이 되지 못하고 내쳐졌다. 왜 그랬나?

나의 종교는 개신교다. 가톨릭대학 입사 면접을 본 신부님은 그런 종교적인 면에서 개방적이어서 크게 신경을 안 쓰셨다. 그런데 그 신부님께서 나가셨고 다른 분께서 오셨다. 그 신부님은 가톨릭기관의 교직원이 개신교라는 것을 조금은 탐탁치 않게 생각하신 듯하다. 나 또한 종교를 버리면서까지 반드시 이 대학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습 7개월을 마치고 전환평가를 봤는데 5명중 나만 떨어졌다. 평가관 에게 욕하지만 않으면 붙는다는 평가에서 떨어진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평가 일주일 전에 주제가 바뀌었고 내 종교도 그렇고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하며 자존심도 심하게 상했다. 그리고 나서 3개월 정도 더 근무를 하고 다시 발표평가를 다시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번째 평가는 정말 정말 열심히 준비를 했다. 프레젠테이션도 잘 했다. 평가를 마치고 일주일 정도 후에 인사팀에서 나를 불렀다. 발표 내용도 썩 내키지 않을뿐더러, 내가 가지고 있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 나중에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제목이 안 될 것 같다고 들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리더의 역할을 말하는 걸 듣고 이건 그냥 핑계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 전 인사팀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할 의향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만약에 받으면 그러겠다고 얘기하라고 들었는데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실 그 질문은 면접 때 나오지는 않았다. , 내가 학교에서 하는 미사에 개신교라서 가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팀장에게 한 적이 있다. 그런 일련의 상황들이 면접전에 보고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2번의 평가에서 모두 떨어지면서 수습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2016년에 교직원을 그만둬야 했다.

 

▶ 스스로 나온것과 내쳐진 것은 큰 차이가 있을 텐데 어땠나?

내가 원해서 들어간 교직원이었는데 또 연금도 나오는 교직원 이었는데 10개월 동안이 즐겁지는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면서 스스로 나는 왜 이러지? 직장 부적응자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경력이 10개월이고 수습이라서 이력서에도 쓸 수도 없었다. 남들이 보면 허송세월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딘가에서 넌 필요치 않아하고 내쳐졌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고 사람도 거의 만나지도 않았다. 말하기 창피하지만 혼자 밤에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 그 이후는 그럼 취업을 포기했던 건가?

그렇지는 않았다. 자괴감과 우울감을 이겨내려고 한달 후부터 하반기 공채에 열심히 지원을 했다. 2군데서 최종면접을 봤지만 결국 탈락 했다. 그리고 2017년 상반기에 다시 도전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 볼 기회도 점점 줄어 들었다. 그 후 중소, 중견 기업까지 지원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시 취업을 해도 예전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는데,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취업 자체에 대한 회의감까지 생겼다. 내가 바뀌지 않았는데 갑자기 회사를 들어간다고 해서 회사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뀔 리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계적으로 원서를 넣고 몇 번은 면접을 보러 가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꼭 취업만이 답은 아니다. 나도 무언가 혼자서 하는 일이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짧은 기간이었지만 회사 다닐 때 본인을 평가하자면?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성실하고 예의 바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스스로는 자유롭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상하 체계나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 회사안에서 주체성을 키워 나가면서 일하는 것을 생각해 본적은 없나?

당시에는 회사 안에서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들이 시키는 일에 우선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회사의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 그렇게 주체적으로 일하려면 혼자 하던가 본인이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맞다. 그래서 지금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 혼자 일을 하고 있고, 또 쇼핑몰도 협업이긴 하지만 같이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 다수의 직장인은 회사에 불만이 있어도 회사가 잘못한다고 생각해도 적성과 안 맞아도 회사를 다닌다. 그런 사람들은 왜 싫어도 버틴다고 생각하나?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서 직장인이라는 일 이외에 내가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또 매달 나오는 월급이 퇴사라는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 본인이 계속 말하는 따뜻한 공감과 위로의 정의는 무언가?

예전에는 그냥 가슴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어떻게 그 따뜻함을 전달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유튜브를 하면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영상이라는 매체로 표현하고,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도 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사실 자신의 생각에 동의해 주는 공감은 성별, 나이, 직위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은 엄청나게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 2 부에서 계속 - 



©직장생활연구소: 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손성곤이 인터뷰 했습니다.



Tags : BC카드, vlog, 김성훈, 김성훈남, 브이로그, 서른, 유튜버, 유튜브, 크리에이터, 퇴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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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4_방송작가에서 인디밴드의 베이시스트가 된 박주원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18 09: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회사 (2003~2013 10/ 중간에 학업으로 2년 쉼)

: G TV, 서울시청 인터넷 방송, 롯데 백화점, 외환은행 관련 방송 작가  

 

 회사를 떠나서 (2014 1 ~)

: 록 밴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음악 공부 중 

 

 자기소개

저는 얼마 전 홍대로 이사온 박주원 입니다. 현재는 ECE 라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고, 소소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간략히 말해 주세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글을 쓰는 것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2때 국어 선생님 통해서 문예 창작과 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으니 문예 창작과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98년도에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갔다. 과의 특성상 그것으로 돈을 많이 벌거나 할 수 있는 직업을 원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결정이 이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보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문창과에 가면 당연히 소설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 

물론 그 당시 IMF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서 이것 저것을 해야 하는 취업이 힘든 시기는 아니었던것 같다. 지금은 너무 힘들지 않나. 졸업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할 일이 적었다. 주로 출판사, 잡지자, 방송작가로 많이 갔다. 졸업 후 방송작가 생활만 약 10년 정도 일했다. 베이스는 작가일을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이 하고 싶어서 베이스를 잡았고 연습을 했다. 홍대에서 베이스를 한지는 8년 째고 지금 몸담고 있는 밴드는 햇수로 3년째다.  

 

 방송작가의 일은 어떤가요?

한 마디로 말하면 대중이 없다. 특히 프리랜서 작가의 경우는 일이 절대로 끝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기획 회의를 하고 아이템을 정하고 취재를 하고 글을 쓰고 편집이 끝나고 일이 계속 되었다. 밤에 불려나가는 일도 있어 힘들었다. 방송 하나가 마치 단기 프로젝트와 같았다. 퇴근을 해도 퇴근 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방송작가는 방송 소재를 찾기 위해 늘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고 있어야 한다. 최신 트랜드를 아는 것은 기본이고 24절기를 다 알고, 제철과일, 생선, 지방 음식 등을 다 알고 있어야 시의 적절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방송작가는 이번 주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짧으면 2주 후 길게는 한달 후를 살아야 한다. 항상 방송 계획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퇴근을 해도 일과 단절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과 함께 사는 느낌이었다. PD가 편집이 끝나면 그걸 보고 맞는 나레이션을 다 만들어야 하고 자막도 써야 한다. 세상에서 영원히 퇴근하지 않는 일이다. 노트북 한대만 있으면 어디서 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했다.

 

 왜 회사를 그만 두었는가?

G TV (케이블 방송), 서울시청, 롯데 백화점, 외환은행 이런 기업에서 사내 방송 작가로 주로 일을 했다. 마지막 직장은 외환은행 이었다.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한 건 G TV에 있을 때 였는데 이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작가일도 재미 있었고, 베이스도 재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거의 두어시간 잠자면서 베이스도 배우고 일을 했었다. 베이스를 처음 배울 때라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일하다 보니 일과 베이스를 병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 졌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일을 그만 두었을 때 더 후회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했다. 방송작가 일은 이 정도면 되었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방송용 말고 진짜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그만 둬도 글을 계속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음악은 누가 당장 지금 너 이거 하지마라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방송에서 뭐랄까 방송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과장하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힘들었다. 일을 하면서 성취감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웠다. 롯데 백화점 방송을 준비할 때는 소재를 찾으려고 내 돈 써가며 물건도 사보고 하루 종일 백화점에 살았었다.


 


 방송작가로서 메인 스트림인 공중파로 갈 생각은 안 했는지?

안 했다. 왜냐면 돈이 궁핍한 시절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막내부터 중간이 되는데 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지상파 라도 막내작가의 월급은 정말로 작은 수준이다. 막내작가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보니 개인적으로 오래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창과를 나와선지는 몰라도 방송작가로 대성하겠다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돈을 번다는 느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외환은행 다닐 시절 세 번째 밴드인 지금의 밴드와 함께 음악을 했다. 오디션 등에서도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맘에 드는 밴드를 만나게 되었다. 밴드의 Potential이 좋고 사람도 좋았다. 20148월에 정식 앨범이 나왔다. 내 생에 첫 앨범이었다. CD 커버, 포스터, 디자인, 녹음, 믹싱까지 맴버들이 다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밴드 안에서도 내가 해왔던 일을 위해 할 일이 있었다. 글 쓰고 방송 만들고 홍보하는 것이었다. 직접 보도자료도 썼고 기자도 만나러 다녔고 페이스북 홍보도 했다. 작가라는 첫 번째 직업에 충분히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썼으니 나의 두 번째 하고픈 일인 음악에 시간을 쏟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잘했던 능력(글쓰기, 방송)을 가지고 내가 잘하고픈 일 (밴드 홍보)에 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그만 둘 수 있었다. 2013년 겨울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만 하기로 결정 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홍대 근처로 이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돈을 어떻게 벌고 있나?

우선 남편이 벌고 있고, 나는 오전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적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고 싶은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오전에만 하기 때문에 밴드 일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며 세상을 깨닫는 재미도 있다. 지금은 돈이 목적이 되어서 일한다기 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가? 수입은 줄었는데?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돈을 좀 버니 라는 어쩔 수 없는 질문.

결론부터 말하면 예전보다 좋다. 직장에 다닐 때 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얻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했다. 홍대 근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진 것의 50% 이상을 버렸다. 집이 작아서 이기도 했지만 버리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버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이사를 하며 몸소 느꼈다. 물건을 버리면서 내가 그 동안 놓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구나. 그래서 행복이 들어올 틈이 없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지금 내가 버는 돈이 예전에 벌던 것에 비하면 3/1 수준인데 웃긴 건 돈이 모자라지 않다는 거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니 불필요한 것들 거추장스러운 것들에 돈을 쓰지 않게 되고 모자라지도 않게 된 것 같다.  이사하면서 물건을 버리면서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깨달을 것이 없었다면 계속 돈을 더 벌어야 겠다.” 라는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밴드 ECE (Emergency Call Equipment)는 어떤 밴드인가?

장르로는 포스트 펑크, 아트락이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맴버들 각자가 장르적 욕심이 많아 장르를 딱히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홍대에서 밴드를 하며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음악 생각을 계속하며 사는 삶이다. 이것도 하나의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밴드 4명이 모두 추구하는 바가 다르긴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안되는 것을 되게 느낌, 각자의 색이 있으면서 그것이 하나로 녹아드는 음악이 되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음악적으로 정체되지 않게 했고 남들과 다른 음악을 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5년후에는 무얼하고 있을 것 같나? 37살이면 이미 밴드를 하기에는 적은 나이는 아니다. 

5년 후에도 더 재미있는 밴드를 할거다. 계속 쭉. 이것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음악은 평생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언제 잘될지 모른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게 두렵다면 재미있는 음악을 하면 될 것 같다. 회사도 사업도 오래 버티는게 이기는 거라고 하는데 음악도 마찬가진 것 같다.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원하는 거라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방송작가의 자신, 지금 밴드의 베이시스트 로서의 자신, 가정에서의 자신 중 가장 소중한 건 무언가?

미안한 얘긴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 밴드 베이스 주자로서의 내가 소중하다. 남편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와 주고 있다. 아마 남편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거다. 나 때문에 못하는 걸꺼다. ^^

  궁극적인 꿈은 무엇인가?

음악을 오래 하고 싶다. 방송작가는 어떤 틀 안에 있는 느낌 이었지만 음악인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른 밴드의 프로모션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그 일이 방송작가의 일과 약간의 교집합이 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밴드의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알리고 기자를 통한 홍보 보도 자료를 쓰는 등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 홍보를 위한 모든 글과 관련된 일을 다 하고 있다. 공연 컨셉, 연습 스케치 모든 것을 다 알린다. 밴드들이 이런 홍보 활동을 많이 안 하는데 좋은 밴드가 있었고 컨텐츠 적으로도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좋은 음악을 하는 멋진 밴드라는 상품이 있어서 더욱 자신있게 하고 있다. 내가 글도 써봤고 밴드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진정성 있게 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꼭 책을 한 권 쓰고 싶다.어설픈 수집가들이라는 제목도 만들어 놨고 컨셉도 잡아 놨다. 벌써 몇 명 인터뷰도 끝냈다. 살다보니 인생의 흔적이 수집이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영화 브로셔를 모으는 사람, 청첩장을 버리기가 어쩌다 보니 미안해 모은 사람, 초코파이 껍질을 모으는 사람, 손 편지를 모으는 사람 등이 있다. 어찌보면 일상의 추억을 수집한 사람들일 것이다. 인디밴드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 때 기차표를 산것에 메모한 것을 모으는 사람도 기억난다.

 

 회사에 들어가기 너무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쉽게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내가 조금 후회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너무 대책 없이 그만두지 말라는 거다. 나도 음악을 1~2년 했던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을 찾는 시간이 너무 중요하다. 양다리를 걸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쉽게 결정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내가 아는 사람도 IT 개발자의 일도 하면서 음악 기획을 하는데 벌써 2년이 넘게 그 일을 병행하고 있다. 물론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말이다. 내가 음악으로 넘어 오기로 확신이 든 것은 음악에서 무엇을 할 것이라는 목표가 명확했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과 자신감이 들고 나서였다. 홍대에서 밴드로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커리어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직업을 바꾸고 커리어를 바꾸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현재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완충지대를 반드시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회사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나와서 찾으면 안 된다. 회사를 떠나면 시간이 다르게 간다. 너무 빨리 간다


▶ 정말 우연한 기회로 만나서 인터뷰까지 했다. 하지만 가장 긴 시간의 인터뷰를 한 것은 서로 수다가 많아서

       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얻는 즐거움이 컷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TV 속 노홍철

       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삶에 행복이 들어올 틈이 없었던 건 너무 많은 것을 움켜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잊지 못하겠다. 일터에서 누구 보다 치열했고 또 새로운 무대에서 나만의 무기로

       치열한 즐거움을 연주하는 박주원님을 열렬히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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