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27_ 박사, 팀장, 교수를 버리고 일인 기업이 된 사람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8.24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연구하는 1인 연구소,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최윤섭 소장입니다.

 

▶ 회사 (연구소) 중심의 커리어는?

포항공대 01학번으로 컴퓨터공학 그리고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했다. 생명과학이라는 주제에 대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생물정보학분야가 전공이다. 2006년에 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생활 중에 스탠포드 대학에 잠시 방문 연구도 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서울의대 암 연구소에서 연구조교수로 3년 가량 일했다. 그 후 KT 종합기술원 헬스케어 팀장으로 2년 정도 일했다. 마지막 직장은 짧았지만 서울대병원에서의 연구조교수로 있었던 것이다.

  

▶ 포항공대 나온 사람 처음 본다. 공부를 잘했나?

서른 여섯 되어서 공부 이야기를 하니까 좀 그렇다. 고등학교 때는 그럭저럭 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교에 가보니 어마어마한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 의대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은 무언가? 월급을 받는 건가?

그렇다. 교수 타이틀이 있는 연구원이라고 보면 된다. 월급을 받는다.

 

▶ KT 종합기술원 헬스케어 팀장으로 일한 것이 유일한 사기업인가?

맞다. 서울의대에서 연구 중일 당시 KT에서 신사업을 준비하는데 IT와 헬스케어에 모두 전문가인 사람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연구소를 벗어나서 산업계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고민하고 있었던 차에 팀까지 만들어 준다고 해서 이직을 결심했다. 중간 관리자로서 리더십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우리 팀의 목표는 나중에 사업화가 될 연구, 쉽게 말해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삼십 대 초반의 최연소 팀장이었다.

 

▶ 결국 2년도 안 되어 그만 두었다. 왜 인가?

처음에는 팀 인력도 뽑아주고 연구비도 지원해준다는 등 여러 지원을 약속했지만 결국에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회장이 바뀌면서 많은 조직을 갈아 엎어버렸다. 그 와중에 팀이 없어지고 나는 다른 신사업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의 팀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어려웠고, 내가 팀원들과 세웠던 목표와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높은 분의 말 한마디에 조직에 평지풍파가 이는 것을 보면서 쓴맛을 봤다. 그 후 다시 서울대병원에서 제안이 와서 가게 되었다.

 


▶ 서울대병원 생활이 길지 않았다.

4개월 정도 있었다. 당시 맡았던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당시 내가 맡았던 단순 업무의 대부분은 솔직히 고등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잡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알고 보니 잡무가 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실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아닌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대우받기가 매우 어렵다. 기업에서도 병원에서도 나는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의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당시 병원 안에서는 인정을 못 받았지만, 밖에서는 전문가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조직 내부와 외부의 괴리가 커지자 결국 조직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 업계에서 최윤섭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전문가로 알리기 시작했나?

KT 근무 이전인 2014년부터 시작했던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블로그 때문이었다. 특별한 목적 없이재미있게 공부한 것을 글로 남기고 공유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공부하고 배운 것을 꾸준히 글로 정리하다보니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에 이 글을 책으로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내 이름이 알려졌던 것 같다. 출판사에서 먼저 출판하자고 연락이 왔지만, 나는 이미 블로그에 공개된 글을 책으로 만든다고 누가 사서 읽을까?’ 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 인생을 바꿔준 기폭제였다. 정부, 학교, 회사, 병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반향이 있었다. 전문적인 소재를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게 쓴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 내 기억으론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헬스케어 분야를 선택했다는 기사가 그때쯤 나온 것 같다.

맞다. 그런 분위기에서 운 좋게 내 책이 나온 것이다. 헬스케어 분야가 각광받을 것을 예상하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는데 타이밍이 좋았다. 계속 공부하고 일하면서 흥미있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쌓아갔더니, 그게 시대의 흐름과 맞아 떨어지면서 전문성의 가치가 올라갔던 것 같다. 나중에 다양한 기업에 강의를 하기도 했고, 삼성 계열사에서도 많이 불러주셨다. 한동안 삼성에서 승진하시는 분들은 인재개발원에서 거의 내 강의를 들었다.

 


▶ 대학 학과를 선택할 때 헬스케어 분야는 그다지 인기가 없지 않았나?

당시는 닷컴 버블이 터졌고 병역특례도 없앤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그저 내 흥미를 보고 학과를 선택했었다. 후배들에게도 당시의 트렌드 보다는 자신의 흥미와 원하는 가치를 따라서 전공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선택 기준이라고 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컴퓨터 공학자가 되는게 막연하긴 했지만 꿈이었다. 그렇게 컴공과에 들어와 보니 적성에 아주 안 맞지도 않았지만, 100% 맞지도 않았다.

 

▶ 복수전공을 한데는 이유가 있었나?

표면적인 이유는 두 가지 이상의 분야를 전공하여 배우고 융합적인 인사이트를 끌어내고 싶었다.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는 컴퓨터공학만 전공해서는 경쟁력이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포항공대에는 과학고등학교 나와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친구들이 부지기 수였다. 그들과 똑같이 코딩만 해서는 경쟁이 어려울 것 같았때문에 나만의 유니크한 전문성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고민 끝에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조합으로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다.


 

▶ 국내 최고의 공대를 나왔다. 박사까지 한 이유는?

나만의 전문분야를 꼭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학부에 있을 때부터 박사까지 하려고 마음을 정했었다. 후배들이 박사과정 관련해서 물어보면 답은 하나다. 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일에 박사라는 학위를 통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해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직접 필드에서 경험을 쌓으라고 말한다. 생 학문을 할 것이 아니라면, 박사 학위는 일종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박사를 따려면 최소 5-6년은 기본이니, 기회비용이 매우 크다. 그렇기에 더더욱 반드시 학위가 필요한 사람만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면 좋겠다. 그렇게 시작하더라도 학위 과정을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또한 현실적으로 박사학위가 취업에 꼭 유리한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도 포지션에 맞는 경력을 원한다. 자리에 맞지 않게 너무 스펙만 높으면 회사에서 부담스러워한다.


 

▶ 스펙이 너무 좋다. 좋은 대학, 박사, 작가, 1인 기업, 또 잘생겼다. 엄친아다.

스펙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요즘 말로 현실은 시궁창이다. 1인 기업으로 독립하면 무제한의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그 대가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헤엄쳐 살아남아야 한다. 축복이자 저주다. 겉으로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살아남기 위해 매일 끊임 없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왜 회사를 그만두었나?

내적인 이유와 외적인 이유가 있었다. 내적인 이유는 조직 속에서 일하는 방식에 의문과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형식, 허례 허식, 조직 구조 등의 비본질적인 부분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정작 본질적인 일은 등한시하는 것이 한국의 조직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루 종일 비본질적인 잡일만 하다가 업무 시간을 다 보내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날이면 정말 기분이 뭐 같았다. 나는 내 한 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비본질적인 일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외적인 이유는 내가 조직 내에서보다 조직 밖에서 전문가로서 더 인정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나 출판했던 책, SNS에서의 활동들이 기반이 되었고, 조직 속에서의 나보다 조직 밖에서의 나의 존재감이 커졌다. 회사에서는 조직 개편으로 팀이 공중분해되고, 최고 전문가를 모셔왔더니 인사팀에서 퇴짜를 놓았다. 병원에서는 고등학교 나온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잡일을 하고 있었지만, 조직 밖에서는 시장에서 나만이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커져갔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내려야 할 선택은 명확해 보였다.

 


▶ 1인 기업가가 되기 위해 회사 안에서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나도 조직 밖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보았다. 하지만 홀로서기에 대한 100% 확신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네 가지 정도를 준비했던 것 같다. <전문성 / 브랜드 / 네트워크 / 수익모델>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전문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전문성을 갖추게 되면 나머지 세 가지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수 있다.


 

▶ , 지금은 나가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언제 굳혔나?

위에서 말한 것 중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수익모델에 대한 확신이다. 수익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통장에 찍히는 돈이 최소 얼마 이상 이라고 정량적으로 정하거나, ‘현재 몇 %의 노력으로 얼마를 벌 수 있으니 전업으로 하게 되면 얼마가 가능하겠구나 라고 예측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의 경우는 우선 나 혼자 한달 동안 먹고 살려면 얼마가 필요한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회사 이외에 주말 강연 및 인세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혼자 먹고 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굶어 죽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때 나왔다. 그 기준은 개인별로 각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


 

▶ 네트워크는 어떤가? 연구원으로 있다 보니 학회나 세미나 등의 모임을 통해서 생긴 거 아닌가?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함께 일하며 생기는 타이트한 인적 고리뿐 아니라, 느슨한 여러 가지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개인의 힘이 어느 때보다 가장 큰 시기라고 생각한다. SNS나 블로그 등 IT 인프라를 기반으로 개인도 얼마든지 무한대의 연결을 만들 수 있다.

나는 블로그를 기반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슬라이드 쉐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10년전에 이런 일을 하려고 했다면 작은 회사 하나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만 노력하면 거의 모든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전달 할 수 있다. 내가 올려놓은 영어 자료를 보고 심지어 외국에서도 연락이 오기도 한다. 이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면 누구나 자신의 전문성을 전파할 수 있다.

네트워킹의 핵심은 내가 누군가를 찾아가서 만나는 것보다, 내가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찾게끔 만드는 것이 최고의 네트워킹 전략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키맨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안다. 내가 당장 키맨이 될 수 없다면, 키맨이 나라는 사람의 전문성과 강점을 알고, 3자에게 소개해줄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네트워킹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 본인은 전문가고 박사다. 하지만 주위에는 전문성을 갖추기 힘든 아주 General한 일을 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가치와 그에 맞는 업무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문성은 그 다음이다. 거기에 맞게 전략적으로 일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직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자신이 더 확대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회사에서 내가 원하는 전문성을 발전시킬 수 없고, 그저 회사의 필요에 의해 커리어가 표류한다면 적극적으로 다른 일을 모색해보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 회사를 나가기 전 2년 정도는 주말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했다. 스스로 공부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해외 연구 결과를 공부했다. 퇴사를 위해서 주말에 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퇴사결심에 도움이 되었다. 남들과 똑같이 놀면서 남들과 차별화되는 전문성을 갖고 싶다는 것은 그저 욕심일 뿐이다. 그렇게 일했던 덕분에 책을 낼 수 있었고, 이는 내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기꺼이 여가 시간을 포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으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 경력에 공백이나 방황이 없다. 너무 부드럽게 이어져 왔다. 그 배경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미리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 크다고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은 직장인이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경우는 운이 좋았다. 나는 대학생 때 연구실도 떠돌고 여러 분야에 기웃기웃 거리면서 경험과 고민을 많이 했다. 한 번 사는 인생 의미 없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 말로 하면 나는 진지충이라고 불리울 거다. 학생 때 진지하게 열심히 고민했다. 또 몸으로 하는 알바, 국토 대장정 등 몸으로 구르면서 <진지한 고민+경험>을 쌓았던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지금 대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남들이 가는 방향이 나에게도 옳은 것인가?” 하는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생략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요즘에 너도나도 공무원 준비를 한다.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연히 모든 사람의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직업 안정성만을 중시하다 보니, 정작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게 원했던 대기업에 입사해서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것 때문이라고 본다. 정작 들어가보니 여기가 아닌가 보다하는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자신만의 길에 오히려 답이 있을 수도 있다.

 



▶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좋은 대학, 박사학위 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거 아니냐?' 라는 반문이 있다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좋은 대학과 학위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학위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는 아니라고 본다. 소위 명문대학 나와서 박사학위 있는 가방 끈 긴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도 않다. 반대로 1인 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고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분들 중에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성공한 1인 기업가들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포지셔닝과 차별화된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다. 출신 대학과 학위가 한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 “최윤섭의 Healthcare innovation”이라는 블로그를 축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중요도 순으로 5가지만 알려달라.

사실 이 모든 활동이 연결되어 있기에 따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1인 기업으로 내가 가진 자원은 무척 한정적이기 때문에, 내 모든 자원을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다. 내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에 대해서 논문, 기사, 책을 읽고 공부하고, 다른 전문가들에게 배우고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의 근간이다. 두 번째는 집필이다. 나는 블로그, SNS, 신문 칼럼, 잡지 등을 통해서 내가 연구한 결과를 글로 쓴다. 이 글이 충분히 쌓이면 책으로 출판한다. 내 전문성을 가장 잘 증명하고 전파할 수 있는 통로다.

세 번째는 강의를 하고, 네 번째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 다섯 번째가 개인 브랜딩과 네트워킹 정도다.

 


▶ 동일한 이름의 책도 쓰고, 하나의 프로필 사진으로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 같다. 개인 브랜딩에 상당히 관리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만의 퍼스널 브랜딩 노하우를 하나만 얘기한다면?

개인 브랜딩에 중요한 것은 세 가지 정도다. <1. 일관성  2. 유용성  3. 지속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지속성이다. 일관적이고도, 유용한 메시지를 대중에게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보내야 한다. 지속되지 않는 메시지는 결국 사라진다.

예를 들어, 블로그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시작하지만, 1년 이상 지속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나와 주변의 경험을 돌아보면, 블로그를 통해서 시장에 알려지고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전에 포기하면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

사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나의 강점 중에 하나다. 주짓수라는 운동도 8년을 하고 있고 블로그도 4년이 넘었다. 무언가를 잘하는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지속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꾸준히 오래하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 회사를 떠나서 1인 기업으로 일한지 3년차가 되었다. 회사생활을 돌아봤을 때 좋았던 점은?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다양한 종류의 조직에서 일하고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다. 학교, 연구소, 기업, 대학병원, 또 미국에도 잠시 있었다. 컴퓨터 관련 연구실에도 있었고 생명공학 연구소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쌓으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일하는 방식도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한 조직 내에서 오래 있었으면 그 조직 하나의 방식에 매몰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원 시절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6개월간 머물렀을 때 국내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연구 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결국 다양한 경험에 나를 노출 시킨 것이 좀 더 유연하고 넓은 생각을 갖고, 국내 조직의 방식에 의문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 책을 읽어보니 오래 전부터 전문성 있는 1인 기업에 대해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작고하신 구본형 선생님의 책을 좋아한다. 대학 시절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를 읽고 1인 기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책을 읽고 모두가 걷는 길이 아닌 다른 길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지도 밖에도 길은 있다. 나도 어쩌면 미래에 그러한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 퇴사하고 1인 기업이 되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

퇴사를 해야만 1인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퇴사를 하지 않아도 회사 안에서도 1인 기업이 될 수 있다. 쉽지 않겠지만 회사 내에서도 내가 맡은 일을 수행해 나가는 하나의 1인 기업이라는 생각으로 일 할 수도 있다. 이는 구본형 선생님이 주창하신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상한 상사, 예측 못하는 변수, 자기 관리는 회사 밖에서도 만나는 것들이다. 조직 내의 통제된 환경 속에서도 독립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조직 밖에서 혼자 일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좋아하는 린 스타트업에 이런 식의 문구가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혁신적인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조직은 큰 기업이든 신생 기업이든, 정부 조직이든 모두 스타트업이다.’ 1인 기업도 형식이나 좁은 정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1인 기업으로서 가지는 철학과 자세가 중요하다. 회사 안에서도 주인의식, 열정, 전문성도 없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온다고 해서 독립적이 되고 절제력이 생기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각자도생이 시대다. 그렇게 도생하기 위한 능력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 2부로 이어집니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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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1인기업, 일인기업, 최윤섭, 퇴사, 헬스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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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임원의 마지막 편지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5.10 15:35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의 일기



相見時難別亦難 東風無力百花殘

상견시난별역난 동풍무력백화잔

서로 만나기도 어렵더니 이별도 어렵구나, 봄바람이 약해 지니, 온갖 꽃이 다 떨어지네.

 


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또 한번 신나게 장사 해 보려던 계절의 여왕 5월이 코 앞인데 갑작스러운 작별을 고하게 되어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라는 기치 아래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 우리 손으로 함께 만들자’는 다짐으로 고객, 협력업체, 매장직원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 했습니다.

 


부문장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많은 임직원들을 승진시켰고, 계약직 직원들을 정직원으로 바꾸어 안정된 근무를 도와주고, 인턴직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신입사원들을 합격시킨 동시에, 압박 속에서도 인위적인 감원을 하지 않은 유일한 부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직원들이 경영진이나 타 부문으로부터 간섭 받지 않고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도록 노력했고, 잘못된 판단으로 징계를 받을 뻔한 직원들을 끝까지 투쟁하여 그들을 살린 것입니다.



- 중 략 -  



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인유비환리합 월유음청원결

인생이란 슬프다가도 기쁘고 헤어졌다가도 또 만나는 것이요, 달이란 흐렸다가도 맑고, 찼다가 또 기우는 것. ㅇㅇ에서의 여러분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입니다. 아프지만 웃으면서 떠납니다.

 



- 중 략 -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회당릉절정 일람중산소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의 작음을 보리라.

 










대한민국 1등 조직!

조직의 크기는 리더의 비전의 크기만큼만 자랍니다. 저는 여러분 곁을 떠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ㅇㅇ를 1등으로 만들고 여러분 스스로가 대한민국 1등 프로가 되길 바랍니다. 회사라는 조직의 목표, 여러분 본부/팀의 목표, 여러분 개개인의 목표가 일치되었을 때, 행복하게 회사 생활 할 수 있습니다. 늘 말씀 드렸지만, 여러분 모두가 우주이며,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여러분의 행복 이상의 가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강불식! 여러분 스스로의 실력 만이 여러분의 행복을 보장할 유일한 무기이므로 반드시 해당 분야에서 1등이 되십시오. 절대로, 절대로 타인에게 여러분의 운명을 맡기지 마십시오.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십시오. 자중자애 하십시오.

 


지금까지의 ㅇㅇ의 성장사에 조그만 힘을 보탰었던 사람으로서, 하루 하루 신화와 전설을 써 왔던 지난 날들을 돌아 보며,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는 추억은 바로 우리 임직원 여러분이었습니다. 함께 해 왔던 여러분은 진정으로 저의 자랑이었고 희망이었으며 사랑이었고 영웅이었습니다. 정말 잘 하셨고 각각의 자리에서 최고의 프로페셔널이었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 드리고 격려와 치하를 아끼지 않습니다. 일일이 찾아 뵙고 인사 드리는 것이 도리이나 우선 메일로 진실한 고마움을 표합니다.

 


처음으로 팀장 승진 후 첫 회식자리에서 우리 팀원들에게 ‘여러분들이 언제나 안심하고 밟고 지나갈 수 있는 튼튼한 징검다리가 되겠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지난 16년간 맡은 부문은 다르더라도 항상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저 개인의 이해와 여러분들의 행복이 상충 될 경우에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여러분 편에 섰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우주’이며, 세상의 ‘중심’이요, 여러분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늘 말씀 드렸지만, 여러분 개개인의 행복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회사의 성장이나 발전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서로간의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며 소중한 친구와 가족들과의 시간과 회사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고,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더라도, 더 잘 되어 있어야만 반갑게 만나서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중자애, 자강불식’으로 계속 성장하고 업계 최고의 프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동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 주고, 상경하애의 문화를 바탕으로, 정으로 똘똘 뭉쳐 신바람 나는 ㅇㅇ를 계속 만들어 가시길 ‘떠나는 한 사람’ 으로서 부탁 드립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여러분들을 믿고, ㅇㅇ가 늘 번창하기를 바라는, 입사할 때와 똑같은 처음의 마음으로 떠납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큰 영광이 있기를 기원하고, 온 가족의 건강과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길 축복 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했던 시간은 천국이었습니다. 함께 걸었던 길들은 진정 꽂길 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소중하게 생각했고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매일 매일 많이 웃으시는 좋은 날 되시고, 가정의 평화와 건강, 축복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영원한 자유인

ㅇㅇㅇ 올림





본 글은 16년 전 평직원으로 입사하여 임원으로 퇴직한 분의 마지막 편지를 편집한 것입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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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부사장, 임원, 퇴사, 퇴임, 퇴임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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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퇴사가 꿈이 되어 버린 당신을 위해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2.27 07: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직장 담론



나를 묻고 답하다

입사(入社)와 입문(入門)

 

 

입사를 축하합니다!

기억나십니까? 수십 개의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며 그 지난한 복사하기와 붙여 넣기, 회사이름 찾기와 바꾸기 끝에 일궈낸 단 하나의 쾌거. 나를 받아주기로 큰 결심을 한 회사가 보내준 정성 가득한(?) 답변에 폴짝거리며 기뻐했던 날 말입니다.

 

퇴사를 축하합니다!

요즘은 퇴사한 사람에게 이렇게 인사를 한답니다. 핍박과 고통의 세월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감행한 이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있습니다. 이미 회사를 떠나 자리를 잡은 사람도 여전히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퇴사를 걱정하기보다는 일단은 축하하는 분위기입니다.

 


직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일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조직보다 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가정을 내팽개치고 일을 했고 조직을 위해서라면 희생도 불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일 없는 삶은 로망이 됐고 내가 없는 조직 공동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입사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퇴사를 꿈꿉니다. 단순히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소모적인 삶에서 생산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퇴사를 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대의 직장인들은 비전보다는 꿈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냅니다. 앞일에 대한 책임쯤 스스로 감당해내겠다는 강단이 있습니다.

 

다만 퇴사가 꿈이 된 현실의 이면에는 탈출을 감행하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벗어나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퇴사라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퇴사를 갈구하지만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래서 퇴사한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하지만 탈출은 퇴사를 부러워할 만한 이유가 못 됩니다. 현실의 굴레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벗어나기 위한퇴사는 실패로 끝나거나 미수에 그칩니다.

 







대안과 준비가 없는 퇴사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만 선사합니다. 그간 착실히 일하면서 모은 퇴직금을 몽땅 날려버리는 재정적 위험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진정 퇴사를 축하 받고 싶다면 사전에 대안을 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퇴사를 염려해야 할지 축하해야 할지는 바로 이 순간 결정됩니다. 그래서 퇴사는 벗어나기가 아닌 뛰어들기여야 합니다. 무엇으로부터(from)가 아닌 무엇으로(to)여야 합니다. 입사할 때는 목적지향적이었지만 퇴사할 때는 현실도피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섣불리 퇴사를 결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진중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국면이 바뀌는 중차대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의 결단에 나의 의지와 무관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쳐서는 안됩니다. 오롯이 내 뜻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도적인 선택이 될 겁니다.나의 선택이라고 하겠지만 진정 그런 것인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될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퇴사는 다른 터(직장), 다른 삶으로의 입문入門입니다. 사실 과거의 입사도 그랬어야 합니다. ‘무엇을 배우는 길에 처음 들어섬을 뜻하는 입문은 삶이 배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곱씹게 합니다. 우리가 입사했던 건 돈, 사회적 지위 때문은 아니었을까? 견실한 대기업의 회사원이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나는 지금 퇴사를 꿈꾸고 있는 걸까? 그것은 삶에서 맞이하는 수많은 입문의 순간들을 폄하했기 때문입니다. 배움만이 아닌 입문한 삶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취지가 외면됐다는 뜻입니다. 애당초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회사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된다 한들 이상할 것 없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여! 입사하지 말고 입문하시게! 비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입문할 마음이 없이 입사한다면 분명 퇴사가 꿈이 될 겁니다. 애써 들어간 회사를 나조차도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로 나가게 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퇴사가 새로운, 또 다른 입문의 순간이기를 원한다면 지금의 선택도 입문이길 기대해 봅니다. 입사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만 입문한 사람은 열심히 깨우칩니다. 입사한 사람은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입문한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원합니다. 그게 입사와 입문의 차이입니다.

 

퇴사를 꿈꾸는 나에게 묻습니다. ?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면 퇴사라는 대안은 나에게 적절한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앞으로의 담론에서 그 이유를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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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욱 2017.02.27 14:42 신고

    다른 삶으로의 입문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 입문이라는거, 입사보다 더 어려운것 같아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야 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REPLY / EDIT

    • 밤토리 2017.03.06 21:10 신고

      파이팅!
      그래도 입사라는 소중한 경험 덕분에
      입문이라는 깨달음과 용기도 얻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선택은 우리를 풍요롭게 할
      입문이기를 바랍니다~

      EDIT

  • 김현성 2017.02.27 16:50 신고

    비록 직장인 아닌 사람이지만,
    좋은 글에 공감하고 갑니다.
    자영업자로 살아가고있지만
    때론 직장인의 생활이 그리울때가 저로써는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고 자주 이제 오도록 노력해볼게요.

    REPLY / EDIT

    • 밤토리 2017.03.06 21:14 신고

      감사합니다~ 자주 오십시오~
      직장생활을 하셨던 분들의 그리움 때문이라도
      지금의 직장생활을 즐겁게 해야겠어요^^
      역설적이게도 직장이라는 굴레가 선사하는
      편의와 안정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DIT

  • 차고넘치는 운빨 2017.02.28 12:35 신고

    소모적인 삶에서
    생산적인 삶으로
    살겠습니다
    베스트공감입니다

    REPLY / EDIT

    • 밤토리 2017.03.06 21:21 신고

      요지는 그것이었어요~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 삶이 닳아 없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 믿어요.
      내일은 오늘과는 또 다른, 성장하는 날이 되기를!

      EDIT

  • 박상준 2017.03.06 14:12 신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입문하는 삶, 공감합니다!

    REPLY / EDIT

    • 밤토리 2017.03.06 21:22 신고

      감사합니다^^
      직생연에 입문한 우리를 응원합니다~

      EDIT

  • 분홍이를품은그대 2017.03.07 11:22 신고

    입사 후 첫 출근날이 생생히 떠오르네요 ㅋㅋ 그 날의 총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퇴사를 꿈꾸는 직딩의 삶이 어쩜 당연하다 생각했었는데.. 입문 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니, 다르게 생각할 수 있구나 아차!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PLY / EDIT

    • 밤토리 2017.03.07 13:47 신고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이 아쉽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이 축복이지요~^^
      감사합니다.

      EDIT

  • 사탕수수 2017.03.09 15:46 신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입사 5년차에 들어서면서 퇴사를 생각하거나 실행하는 동기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글 쓰신 것처럼 그들의 선택은 참 부럽기만 하고, 심지어는 저를 초조하게 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그들을 응원해주면서 저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5년 전과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고, 과연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
    혹시 직급과 호봉만 높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납니다 -ㅁ-...

    당장 시작해야겠습니다.
    입문자의 자세로, 지금 이 자리에서 하루하루 더 생산적으로 살도록 변하는 것을요.

    REPLY / EDIT

    • 밤토리 2017.03.13 16:26 신고

      생각의 변화와 실천으로의 다짐,
      정말 축하드리고 응원합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길을 제대로 가는 것.
      파이팅입니다~^^

      EDIT

[6회 퇴근 후 2시간] "떠나려는 당신이 준비하는 출사표" 후기

Author : 케빈스페이시 / Date : 2016.12.06 07:30 / Category : 교육,강연,상담






퇴근 후 워크샵이 <직장인의 미래를 바꾸는 :: 퇴근 후 2시간>으로 돌아왔습니다.






6번째 퇴근 후 2시간 "떠나려는 당신이 준비하는 출사표" 모임이 지난 2일 신촌에서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연구소 연구진이 꾸려진 이후 처음으로 갖는 모임이었는데요.

이번에는 주제가 회사를 떠나려는 당신이 준비하는 출사표였던 만큼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영업에서부터 인사까지, 신입사원에서부터 20년차 직장인까지 다양한 분들이 퇴근 후 2시간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모임 당일 퇴직한 3년차 직장인의 출사표에 대해 듣는 것을 시작으로 간단한 자기소개가 이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직무와 업종에서 종사했지만, 공통된 관심사는 크게 '다른 직장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자기소개 이후에는 실제로 퇴사한 직장인들의 인터뷰와 관련 영상을 보며 혼자서 고민했을 때는 미쳐 고려하지 못한 여러 사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이미 직장을 옮겼지만 그게 최선인지 모르겠고, 어떤 게 자신의 방향성인지 모르겠다는 직장인들의 끝없는 고민이 쏟아졌습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이야기가 무르익을 수록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었습니다.^^




마음 속에 퇴사를 고민한다면, 꼭 고려해야만 하는 체크리스트들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체크리스트들을 하나씩 제안하며 생각을 공유하니, 조금 더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각자 회사를 떠나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다보니 어느덧 끝날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퇴근 후 2시간은 어쩌면 이렇게 빠를까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참가자들이 이번 모임에 대한 피드백을 정성스레 남겨주었습니다. 





퇴근 후 2시간에 대해 기대하는 것들이 다양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던 것만큼 직장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도울 수 있는 모임의 장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겠습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비해 한정된 시간이 야속할 따름입니다. 많은 분들이 퇴근 후 2시간 모임의 아쉬움을 뒷풀이에서 이어갔습니다. 아무래도 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이다 보니 훨씬 더 많은 직장인의 애환(?)이 공유되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뒷풀이에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수다가 이어졌습니다.





직장생활의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어 즐거운 모임이었습니다. 지금도 끝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우리 직장인들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직장인들을 위해 건배~!

직생연은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다음 모임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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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힘들게 내린 주체적인 결정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10.28 12:57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퇴사"

::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린 가장 '주체적'인 결정


지난 22개월간 26명을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내린 정의다.







인터뷰 대상 물색,섭외                                            1시간
인터뷰 대상 조사 및 질문서 작성                              1.5 시간 
만나러 가는 길.                                                     1 시간
인터뷰 실제 시간                                                   3 시간
돌아오는 길.                                                         1 시간
녹취한것 들으며 옮겨 적는 시간 최소                         7 시간
적은것 퇴고 편집 하는 시간                                     1.5 시간
인터뷰이한테 보내고 받은것을 다시 편집하는 시간          1 시간
최종 정리본을 "직장생활연구소"와 Daum 직장IN 에 사진과 함께 편집해서 올리는 시간 1 시간





한 명을 인터뷰 해서 결과물을 만드는데 까지 18시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빼도 회사 근무 시간으로 치면 이틀이 넘는다. 회사를 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정리를 하려면 인터뷰 이후 최소 3주 길면 한달이 넘게 걸린다.



때론 인터뷰는 길어지기도 한다. 두가지 경우가 있다. 인터뷰이가 지나치게 질문과 동떨어져 자신의 말만 하는 경우. 또 그간의 힘듬과 감정의 곡절들이 인터뷰 중에 폭발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경우.


전자의 경우 계속해서 기다리다가 가이드를 준다.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하면 또 질문이 이어질 것이니 질문에 맞는 답을 먼저 해 주면 좋겠다. 라고.  모두 인터뷰라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나 역시 그랬던 경험이 있으니까...    후자의 경우는 5시간 동안 얘기할 때도 있었고, 최대 6시간을 얘기한 적도있었다. (배가 고파서 밥까지 같이 먹었다.) "이런 수준의 얘기까지는 안해 주어도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깊은 곳에 있는 얘기를 꺼내준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같이 눈물을 흘린적도 있다. T.T









내가 이렇게 심층적으로 인터뷰 하는 이유는 하나다. 회사를 떠나는 그 심정은 한순간의 찰나의 감정이 아니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진심어린 생각과 감정을 꺼내기 위함이다. 또, 오늘도 밤을 새우며 불안과 공포, 그리고 잠깐의 긍정과 혼돈에 고민하는 "퇴사고민자" 들에게 먼저 행동한 사람의 진심을 전해주고 싶어서다. 먼저 행동한 사람들이 망설이는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등대처럼 가이드가 되어 줄 수 있다. 




퇴사의 심정을 논하는 건 퇴근길 안주집 노가리 처럼 씹어대며 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4년차의 눈에는 10년차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애석하지만, 누군가는 꼰대라고 하겠지만 그런 참 트루다. 서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게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치열하고 절박한 삶에 누군가의 비지니스 모델의 잣대를 들이 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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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6_ 꿈이 있었다. 그래서 떠날 수 있었다.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10.11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84년 생, 서른 세 살. 항공사 조종사로 입사 준비 중인 ㅇㅇㅇ 입니다. 동시에 항공기 조종사 교관과정도 준비 중 입니다.

 

▶ 커리어 소개

ㅇㅇ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02 학번 이다. 군생활을 마치고 같은 전공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첫 직장은 2010, 무기체계 개발관련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군대에서 쓰는 다양한 무기 중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을 나는 것, 하늘을 나는 물건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무기 중에서 미사일에 관심이 너무 많아서 선택한 최초의 회사였다. 하지만 부서는 미사일과 관련 없는 분야였다. 그러다가 2012년에 ㅁㅁ으로 이직을 했다. 그곳은 정부기관 산하 국책기관이었다. 국가에서 큰 로드맵으로 개발하는 기술에 대해 기획을 하고 업체 선정해서 개발하는 과정을 평가, 관리하는 것이었다.

조종사가 되기 위한 준비는 회사를 떠나기 7개월 전부터였다. 당시는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교육을 받으면서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회사생활은 두 곳을 합쳐서 약 4년을 했다.

 

▶ 무기와 관련된 일은 생소하다. 어떤가?

다소 경직된 분위기였다. 무기와 관련된 분야다 보니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고 군대관련 분야다 보니 그런 것 같다.

 

▶ 한번 이직을 했는데 사기업에서 공공기관으로 갔다. 안정성을 따라간 건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 질문이 이해는 간다. 아무래도 직장인들에게 직업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결론만 말하면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과 달라서 이직을 했다. ㅇㅇ 에서는 지상군과 수중 무기를 다루었다. 일은 재미있고 사람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배우고 익혀온 분야와 관련된 일을 하기를 계속해서 원했다.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고 하기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직을 했다. 직업적 안정성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을 쫓았다면 아예 퇴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히 공공기관인 ㅁㅁ에서 항공우주 기술 관련 프로젝트 관련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 곳이 마침 내가 원했던 항공, 비행과 관련된 일이라 주저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 ㅇㅇ에서도 항공, 우주 관련 분야로 옮겨서 일할 수도 있지 않았나?

그곳에도 항공관련 일을 하는 부서가 있었다. 당연히 가고 싶어서 많이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TO였다. 그 부서에 자리가 나야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며 TO를 늘려서라도 받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또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그 부서에서 원하는 백그라운드를 갖춘 사람은 아니었다. 나도 부서를 원하지만 부서도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가려서 뽑는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라는 것이 간절히 원하고 부딪히면 되는 부분도 일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내가 아닌 회사의 필요와 요구라는 서로간의 욕구가 맞아야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 그런데 ㅁㅁ에 와서도 우주, 항공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랬나? 그 쪽으로 지원한 것 아니었나?

ㅁㅁ에서 항공관련 일을 하는 부서가 있다. 하지만 사람을 뽑을 때 그 부서로 뽑은 것이 아니라 큰 카테고리로 뽑았고 내가 원하는 부서는 사람을 뽑지 않았다. 그래서 자동차 기술 관련된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순환보직을 하는 곳이기에 언젠가는 원하는 부서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자동차 관련 부서에서 일할 때도 재미 있었다. 다른 분야이기에 배울 것 너무 많았다. 짧은 직장생활 동안 최고라 할 수 있는 너무 좋은 분들과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동차도 Automobile 관련 분야는 운송이라는 큰 범주는 나의 생각과 일치 했기에 즐거웠다. 좋은 사람, 성장하는 느낌, 원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는 업무. 그러다 보니 , 이곳에서 오래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그런데 그 곳도 결국 18개월 만에 나왔다. 왜 그랬나?

자동차 관련 부서에서 내가 주로 했던 일은 전자쪽 이었다. 사실 나는 대학, 대학원 모두 기계 베이스로 배웠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공부해야 했고 또 회사에서도 그러길 원했다. 그렇게 배우며 부족함을 채워나가며 일하던 중 갑자기 부서가 바뀌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출장 도중 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순환보직을 하는 회사다 보니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새로 바뀐 부서는 매우 다양한 분야를 다뤘다. 우리나라가 미래에 먹고 살만한 모든 기술을 다 개발한다는 명목을 가지고 그런 사업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전자베이스 시스템을 개발, 관리 하는 일을 했다. 이전 부서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환경이다 보니 처음부터 적응해야 될 것들이 많았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너무 다른 조직으로 가니 충격이 컸다. 그 부서는 관리, 평가 부서로였고 일단 업무량이 너무 많았다. 열 시, 열한 시 퇴근은 기본이었다. 확실한 한가지 사실은 나의 관심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전혀 관심도 가지 않고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부서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 출근길마다 고민이 되었다.

거울을 보고 스스로 질문을 해서 오늘 그 일을 하다가 죽어도 행복한가? 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했을 때 대답이 아니요 라면, 그 일을 그만두어도 된다.” 이런 류의 말을 스티브 잡스가 했던걸로 기억한다. 이 때는 이 말이 그렇게도 와 닿았다. 아침마다 그 말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대답은 아니요였다.

아침마다 회사를 가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때론 과도한 스트레스와 앞날의 걱정으로 인해 지하철에서 멀미를 했다 또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할 정도였다. 10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이러다 보니 스티브 잡스의 질문에 나의 대답은 아니요일 수 밖에 없었다.

 






▶ 혹시 퇴사라는 선택을 할 때 도움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적은 없나?

나와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을 만났다. 그러니까 자동차 회사를 다니다가 다시 공부와 훈련을 해서 조종사가 된 분을 만났다. 예전에 잠시 저널리스트로 일을 했는데 거기에서 만난 분이었다. 또 취미로 배우면서 알게 된 직장인에서 조종사로 직업을 바꾼 선배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자극이었다. 보기만 해도 자극을 받았다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상황에 따라서 내 마음 상태까지 모두 이해하고 알고 있었다. 조언을 해 줄 때는 해 주었고, 조언보다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면 그리해 주었다.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남의 진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 일을 미리 겪은 사람을 찾아서 만나보는 것도 대단히 힘들다. 그런 사람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퇴사 결정을 하기 까지는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바로 그 분이었다.

 

▶ 회사에 다닐 때 좋았던 경험은?

우선은 내가 개발한 아이템이 세상에 나올 때 좋았다. 내가 만드는데 기여한 무기가 세상에 나올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 물론 무기라서 사람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또 내가 쓴 글과 논문이 세상에 나올 때, 성과로 나왔을 때도 보람이 있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 이었나?

회사에서 나는 조금 튀는 사람이었다. 색깔이 뚜렸한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룰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가장 컸던 것은 휴가였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공동의 일에 해가 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정을 세우고 휴가를 내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조금 보수 적이었던 회사의 일부 사람들은 그걸 싫어했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일이 널널해서 혹은 여행 준비하느라고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밥 먹을 때도 항상 같이 비슷한 메뉴를 골라야 했다. 식단 관리를 위해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튄다고 생각하는 주의 사람들이 있었다.

 

▶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굉장히 특이하고 미친 친구다.’ 라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 회사는 공공기관이었다. 직업적 안정성도 사기업에 비해 높았다. 그런 곳을 깡통처럼 차버린다고 생각하니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게다가 조종사를 한다고 하니 꿈을 쫓는 어린 친구 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젊을 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게 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린 객기에 꿈 사냥을 떠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

처음에 ㅇㅇ에 입사했을 때 매우 좋아하셨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큰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2년만에 ㅁㅁ기관으로 회사를 옮겼다. 지원할 당시엔 그 기관은 들어보지 못한 곳이었고 계약직일 가능성이 높아서 매우 싫어하셨다. 그러다가 공공기관이고 정규직이고 합격했다고 예기를 하니 상당히 좋아하셨다. 이 회사를 오래 다니고 여기 다니면서 결혼해서 잘 살면 되겠구나 생각하셨다. 그러다가 그 안정된 회사를 때려치우고 조종사를 한다고 하니난리가 났었다. 퇴사를 말씀 드리고 그 날 미친 듯이 싸웠고 약 한달 동안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말을 걸지 않았다는 게 맞는 것 같다.

 

▶ 퇴사까지 하고 새로운 직업으로 조종사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적부터 비행, 조종에 관심은 있었다. 1996년 이었나 내가 학생 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에어쇼라는 것을 했다. 그래서 호기심에 가서 봤다. 그 때도 가슴이 뛰면서 조종사가 되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지금 사는 곳도 성남공항과 멀지 않아서 비행기를 자주 본다. 계속해서 비행기를 보며 꿈을 리마인드 한 것도 지금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게 된 원동력인 것 같다.

어느 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쉬며 인터넷을 보고 있었다. 어느 조종사가 고프로 같은 카메라로 비행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8분이 넘는 영상을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바라봤다. 마치 머리를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크게 번쩍이는 느낌을 받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바로 사설 비행교육기관에 등록해서 훈련을 받았다. 그 영상이 내 안에 원래부터 있었던 회사 일을 하면서 꾹꾹 눌러왔던 욕망에 불씨를 붙여 주었던 것 같다.

 

▶ 어찌 보면 하는 일을 바꾸는 전직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현실적인 전직을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우선 어떤 일을 할건지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를 모른다. 나를 먼저 찾는 질문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당장 직업자체를 바꾸고 예전과 똑같이 돈을 버는 일은 적다. 물론 그것도 사람이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은 먹고사니즘, 당장의 생활비에 목을 매기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는 예전부터 하늘을 날고 조종사가 되는 것을 꿈꿨기 때문에 한번의 충격이 계기가 되었다. 어찌 보면 운이 좋은 케이스다. 꿈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일을 정했다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도별로 분기별로 월별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회사에서 월별 계획 주별 계획은 당연한 건데 자신의 일을 찾으려는 사람이 그런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보통 직장인은 한 분야만 깊게 아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일을 할 때는 백지 상태다. 그럴 때 계획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버티는 거다. 하기로 결정을 했으면 무조건 버텨야 한다. 새로운 일을 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너무 너무 많이 만난다. 정보가 없으니 예상을 못하고 그렇기에 거의 매일 매일이 예측 불가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변수와 예측 불가능에서 오늘 좌절들을 버티는 힘과 태도가 필요하다. 직업을 바꾸면서 꽃 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가 직접 글로 쓴 2016년의 목표>




 

▶ 회사에 있을 때와 가장 달라진 점은?

삶과 시간에 있어서 주도적이 된 것이다. 회사에서는 남이 내 계획을 세워줬다. 내 뜻대로만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 마음대로만 움직일 수 없는 건 더더욱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퇴사 이후에는 당연히 하루 24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 책임을 지고 계획, 목표도 스스로 세우고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도 내가 해야 했다. 자기 주도적이 된 것이 가장 달라진 점이다. 당신이 쓴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도 읽어 봤다. 거기에 월급에 중독이 되면 주체성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예가 된다는 말이 나왔던 것 같다. 회사에서 남이 시키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 지면 또 준비 없이 갑자기 퇴사하면 스스로 시간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퇴사하면 여행 길게 다녀오고 나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평소 하지 못했던 여가만 하면서 몇 달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그건 그 사람이 회사에서 주체성을 박탈당한 삶을 너무 오래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

 

엊그제 친구를 만나러 여의도에 다녀왔다. 점심시간이었는데 전부 금융계 사람들이 넥타이를 맨 모습 속에 혼자 반바지에 티를 입고 있는 내가 있으니 굉장히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묘한 희열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러면서 . 나는 소속이 없구나라는 느낌도 받았다. 처음엔 그것이 불안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괜찮다

 

▶ 본인이 원하는 일을 준비하면서 겪은 변수는 무엇이었나?

모든 것이 변수였다.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 일을 매우 적었다. 좋아하는 일을 준비했는데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상황만 벌어지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연별, 월별 계획도 다 세웠다. 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적은 없었다. 기상 문제로 비행을 못하는 경우, 계획은 한번의 실패도 없이 시험 통과였지만 시험에 떨어진 적도 있었다. 나는 그런 적은 없었지만 불안한 미래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거나 부모님의 반대 같은 것도 겪는 동료들을 보았다. 하지만 계획을 세웠기에 변수에 대해서도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계획 자체가 돌발 상황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 힘든 일은 없었나?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재 취업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사설 기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정식 비행 교육기관에 들어 갔었다. 일단 가보니 공부의 양이 어마 어마 했고 훈련도 힘들었다. 당연히 모두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히니 이런 또 달랐다. 그러다가 국방산업과 관련된 국책기관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을 보고 지원하려고 생각도 했었다. 이력서 까지 썼었다. 불안감은 당연한 거였다. 나이 삼십 넘어서 대기업, 국책기관 나와서 조종사라는 꿈을 꾸는 것은 누군가 보기에는 어린아이가 대통령, 과학자 같은 꿈을 꾸는 것처럼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 그렇게 얘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준비 기간 동안 자존감이 떨어지니 스스로 그런 생각도 했다. 스트레스에 원형 탈모까지 생겼다.

 

비행 연습하는 교장은 밤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시골 구석에 있었다. 완전 깡 시골 이었다. 그 곳에 고립돼 있다 보니 불면, 불안증까지 생겼다. 그러다 보니 혼자 가만히 있으면 가끔 불안과 스트레스가 점점 커졌다. 그럼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정인 생각을 자양분으로 해서 점점 더 커졌다. 가끔은 그런 불안감이 극에 달해 새벽에 찬장의 그릇을 모두 꺼내서 다시 닦아 정리하는 강박도 있었다.

 

▶ 어떻게 극복했나?

부모님께서 도와주셨다. 너무 힘이 들어서 부모님께 그만 하겠다고 말씀 드렸었다. 그랬더니 너 지금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느냐? 지금 그만 두면 다시 원점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큰 힘을 얻었다. 또 하나는 책을 읽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편안함을 주는 책을 많이 읽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별 것 아닌 뻔한 얘기들 이었지만 워낙 힘든 순간들이어서 도움을 받았다. 또 라디오도 많이 들었다. 사람목소리가 그리웠다. 말한 것처럼 워낙 깡촌이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덮어 버리려고 책을 읽었고, 혼자라는 생각을 버리기 위해 라디오를 들었던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직장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있다.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

최근에 만난 친구는 난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용기가 없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용기라는 것을 내지는 않았다. 용기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발을 들어서 앞으로 내 딛는 작은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럼 그 행동이 다시 다음 발을 내 딛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용기라는 거창하고 큰 말보다는 살짝 옆으로 발은 내딛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는 것 같다. 용기를 내는 것은 가진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 같다. 지금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 중 일부는 버려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지금 가진 것,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누리면서 변화를 꾀할 수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가진 것을 놓는 용기 필요한 것 같다.

또 하나 얘기하자면 벽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벽이 있으면 모두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벽의 크기만 생각한다. 그 벽이 크고 높아서 겁을 먹는다. 그리고 저 높은 저 넓은 벽을 어떻게 뚫지 하고 두려워만 한다. 가끔은 똑똑두드려 보기만 한다. 그리고 이 벽은 너무 크고 그리고 콘크리트처럼 두꺼울 거야하고 스스로 포기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벽의 두께를 생각하지 않는다. 크고 높은 벽이긴 한데 벽의 두께가 얇을 수 있다. 그 벽이 창호지처럼 얇을 수도 있다.

 

▶ 본인의 경우는 어땠나?

결론만 말하면 벽은 내 앞에도 뒤에도 있었다. 내 경우 뒤에 있는 벽이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제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 그렇게 마냥 시간이 흐르는 것, 그것이 나 뒤에서 나를 밀어내는 벽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명확했기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괴리감이라는 벽이 나를 밀어냈던 것 같다.

 

▶ 본인은 어릴 적부터 명확히 하고 싶은게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걸 모르는데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글쎄. “이게 방법이다. 나를 따르라.” 라고 내가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더 경험해 보는 것이 답인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인터넷에서 감동적이고 자극을 주는 카드 뉴스 같은걸 많이 본다. 거기 보면 ‘어제와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저 그 뿐이다. 그 글을 보는 당시에는 고개도 끄덕이고 공감하고 다짐을 하지만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에 본 영화 주토피아중에 “Try Everything” 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범죄 혹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 아니면 모두 많이 해보는 것이 방법일 듯 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만 생각을 담아두지 말고 글로 써 보면 좋겠다. 머리 속에만 고여있는 생각은 썩는다. 그리고 당연히 현실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글로 쓰는 순간, 머릿속의 생각이 밖으로 나오면 행동으로 이어지는 가능성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반드시 써 보길 바란다.

 


 





- 2 편으로 이어집니다 -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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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전직, 조종사, 직업변경,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파일럿,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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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데이 워너미 클래스 후기] 소중한 내돈 지켜주는 부동산 계약법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8.18 16:07 / Category : Wanna Me


소중한 내 자산 지켜주는 '전세,월세 계약 해결 워크샵" 원데이 워너미 모임을 마쳤습니다. 


원데이 워너미는 인터넷에서 굴러다니는 정보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소중한 경험에 근거한 정보를 전달 합니다. 

전세,월세 계약을 체결하는 전체 프로세스와 그 과정에서 꼭 확인 해야할 사항들에 대해 배웠습니다. 

실제 계약이 체결된 계약에 대한 등기부 등본을 하나씩 뜯어 보면서 확인 할 부분도 알아보았죠.

중요한 것은 등기부 등본에 나타나지 않는 잠재적 문제를 피하기 위한 대비였습니다. 

실제 현업에서 경험을 쌓은 공인중개사가 아니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 였습니다. ^^








단지 책에 나오거나 인터넷에 있는 글에서 나오는 정보가 아닌

6년 동안 실제 거래를 성사시키고 수 많은 사람들의 계약문제를 상담하면서 쌓인 진짜 노하우가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번 모임에 이어서 연속 2번째로 모든 분들이 10점 만점을 준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듯 합니다. 


참석하신 분중에 제주도에서 집 계약을 앞두고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하고서 "아, 그 부동산에서 한 얘기가 이런 뜻이었구나. 이건 조심해야 겠네요." 라고 연신 고객를 끄덕였습니다. 

  


워너미는 작은 것을 포장하지 않고 경험에 근거한 진짜 사실만을 전합니다. 

진실된 경험을 전달하며 경험과 직업체험의 중요성에 계속 알려나가는 원데이 워너미가 되겠습니다. 







현직 공인중개사와의 만남 모임은 매달 1회씩 진행 할 예정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워너미 홈페이지 (Wanname.kr)에 문의를 남겨주시면 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일, 미리 경험하고 시작하세요.

TEST DRIVE YOUR NEW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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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경험하고 시작, 손성곤, 워너미,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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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03 11:10

    비밀댓글입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6.12.04 12:20 신고

      안녕하세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원데이 워너미는 내년 2월 부터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

      EDIT

  • 지나가는사람 2017.02.24 17:13 신고

    저분은 누구시죠 설명 되게 쉽게해주시는듯한데 짧은영상이지만.
    그리고 언제계획되어있나요?

    REPLY / EDIT

    • 손성곤 2017.02.26 12:00 신고

      안녕하세요.

      이분은 현직 공인중개사 분이자, 직업체험 서비스 워너미의 파트너 분 이십니다.

      보시는 영상은 무료 강연인 원데이 워너미의 한 장면 입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새롭고 더 큰 강연을 준비중 입니다. 공지는 직장생활연구소 페이스북과 본 페이지에 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DIT

  • 직생연 2017.05.06 10:09 신고

    언제쯤 부동산관련강연이있을까요?기다리는1인인데

    REPLY / EDIT

    • 손성곤 2017.05.11 22:03 신고

      안녕하세요. 본 강연은 6월에 날짜를 잡아 진행 할 예정입니다. 해당 강연은 부동산 투자에 대한 강연이 아니라, 처음 집을 구하는 직장인 들을 위한 계약법에 관련된 내용이 될 것 입니다.

      감사합니다.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22 _ 일 년의 멈춤이 나를 완전히 바꿨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21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간략한 자기 소개

저는 1976년생 올해 마흔 한 살의 ㅇㅇ 입니다. 지금은 ㅇㅇ회사의 상품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위는 차장 입니다. 

 


 본인의 커리어를 회사와 직업 중심으로 소개해 달라.


나는 흙수저였다. 어릴 적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폭음과 이어진 가정폭력 어머니의 눈물이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TV에 나와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은 학교와 집뿐이었다. 아버지는 대 놓고 대학은 안 보내 주겠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나 배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열심히 공부만 했다. 그렇게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환경 때문에 선택한 차선이었다. 그러다가 육사를 일년 후에 자퇴했다. 짧게 이유를 말하자면 그곳은 나에게 원하는 틀이 있었다. 그 틀이 트러블이 심했던 아버지가 나에게 강요한 것과 비슷했다. 아버지의 틀을 벗어나려고 육사를 선택했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틀을 강요 당하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만약 4년만 버티면 끝이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생활을 계속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아버지의 그늘에서 평생을 사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는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퇴를 했다. 그 이후에 다시 4년재 대학의 광고 홍보학과에 진학을 했다. 첫 직장은 생활소비재 회사의 MD 였다. 중견 규모 회사에서 2003년 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소기업이기는 했지만 상장기업이어서 당시에는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 그 후에 두 번의 이직을 하고 2016년 현재 14년 차 직장인으로 유통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원으로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창피하지만 위에 내 배경을 설명한 이유는 그 당시의 모습이 회사원으로 나의 모습에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그저 성공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승승장구 해서 연봉을 많이 받는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목표였다. 그래서 성공을 하려면 죽기살기로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를 완전히 버리고 회사에 나를 던지는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오직 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은 회사였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 보는 것은 잘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정말 인간미 없이 무조건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상사의 지시는 무조건 따랐지만, 부하직원에게는 업무적으로 강요를 하는 그런 부류였다. 당신이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라는 책에 쓴 것처럼 정말 회사가 시키면 주말도 없이 일했던 ‘회사가 가장 원하는 인재’였다. 나를 버리고 회사일 자체가 나인 것처럼 일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 적으로 묻겠다. 왜 육아휴직을 냈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외국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극에 달했다. 사실 영어 때문에 회사 내에서 성장을 못한다는 위기의식, 피해의식이 굉장히 컸다. 현재 직무를 하기 전 다른 업무를 할 때에는 누구보다도 인정을 받고 있었고 업무적으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을 하면서 영어에 대한 절박함이 갈급해 졌다. 팀장도 바뀌었고 또 주변 상황이 휴직이 가능할 것 같아 다시 신청했다. 어찌 보면 회사에서 나의 존재감이 작아진 느낌이 휴직을 신청할 용기를 내게 해 준 것 같다.

 

두 번째는 인생의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결심 때문 이었다. 지금 보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내가 스스로 원했다기 보다는 주변 상황에 대한 압박 때문에 그렇게 결정한 것 같다. 예전에는 그저 회사 안에서 승진하고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공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졌다. 나와 가족과 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바뀐 기준에 따라 내 인생의 지향점을 설정하는 것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꽤 힘들었다.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회사 안에서의 성공만 쫓다가 인생관이 바뀐 것 같다. 그 이유는 뭔가?


나는 직장생활을 14년 동안 하다 보니 별별 경험을 다 했다. 그 경험은 업무적인 것뿐 아니라 업무외적인 부분도 많았다. 진짜 얘기를 하면 ‘미친 것이 확실하다.’고 말할 정도의 사람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사람들과의 미친 것 같은 사건들로 인해 사람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12년차쯤 되었을 때 크게 한번 아픈 적이 있었다. 한달 넘게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일주일 정도는 마냥 좋았다. 푹 쉬고 푹 자고 잘 먹고. 그러다가 누워있는 기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고민 중에 잠을 설쳐 가며 계속해서 깊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는 누구, 아니 무엇인가?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유치한 질문은 나를 바꾸는 촉매가 되었다.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을 돌아보니, 회사에서의 성장과 성공은 가족, 그리고 개인 생활의 포기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만났던 주변 상사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회사 안에서의 성공보다 인간 ㅇㅇ 으로서의 개인적인 행복에 무게 중심이 옮겨가게 되었다. 그래서 과감히 휴직을 해야겠다 라고 결심 할 수 있었다.  손에 쥐려고 맹목적으로 쫓기만 했던 회사 안에서의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만약 아파서 쉬지 못했다면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냥 지금도 맹목적으로 회사에 충성하며 나와 가족을 버리고 일 했을 것이다. 그런 쉬는 기간이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고 결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4년차차장 직위에 육아휴직을 냈다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나아니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난 건가?


남자 사원이 육아 휴직 후 돌아 왔더니 이상한 팀으로 전배를 보내고 자리를 빼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실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받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 기회가 된다면 돌아오지 않을 생각은 있었다. 여기서 기회라는 것은 새로운 직장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서의 기회를 의미한다. 다른 관점에서, 지금의 회사가 아니라도 다른 곳에 내가 갈 수 있는 있을 것 이라는 확신이 있다. 단지, 이번에 다른 길을 찾는다면,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다.


 

 지금 회사에서 불만은 없었나?


불만 보다 답답한 것을 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기업문화에서는 기한 내에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못하면 일 못하는 놈혹은책임감 없는 놈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회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일을 다 처리 못한다고 뭐라고 하는 것은 회사의 책임인 것 같다. 퇴근 시간 1시간 전에 일을 주고 해 내라는 것은 그저 야근을 하라는 것이고 이는 회사가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회사가 먼저 근로계약을 어기는 것이다.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한다면 역량을 길러주던지 일을 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윤활하게 만드는 것이 중간관리자인 팀장의 역할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개인의 무능과 책임으로 돌리면 팀장은 편해진다. 자신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 팀장이 팀장인지 의문이 든다. 이 회사에서 내가 만나고 본 모든 팀장은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의 입장에서만 냉정히 보면 개인이 회사에 다니는 목적은 자신을 위해서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 회사생활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회사도 이득이라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그런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퇴근 1시간 전에 일을 주고 안 한다고 난리를 치는 거다. 이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회사는 단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을 계산해서 맞게 부여해야 한다. 회사의 프로세스 안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이 팀장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팀장에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휴직 당시 팀장에게 나의 존재는 꼭 필요한 필수요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불편한 존재였다고 보는게 맞다. 나는 차장 2년차였고 실무 경험이 없었던 팀장보다 휠씬 전문가였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내가 너무 잘 알다 보니 ‘자신의 무지를 들킬 수 있는 존재’ 혹은 ‘팀장인 내 자리를 뺐어 갈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빠진다는 것에 대한 대안을 미리 준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는 했다. 그리고는 두 번의 추가 면담 후에 육아휴직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개인사업이직 등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그런 시선을 느낀 적 있나?


거의 100% 그런 시선을 느꼈다. 회사 동료들의 반응은 ‘쉬면서 이직준비 후 이직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어디 좋은데 가냐?”고 노골적으로 물었다. 나를 잘 아는 친한 동료들은 쉬지 말고 차라리 회사내의 다른 부서로의 전배를 권했다. 회사외부의 반응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사업을 하기 위해 휴직을 했다. 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나중에 친한 후배를 통해서 들은 말이다.


 

 육아휴직 결심을 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혹은 사건은?


우선 위에서 말한 나의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된 병원에 있었던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같이 일하는 상사와의 신뢰상실이라는 외적인 이유였다. 상사와 부하직원에게 저지르는 부조리 때문에 신뢰가 사라져 버린 것도 큰 이유였다. 간단히 말하면 팀장 바로 밑, 내 바로 위의 차장이 대표이사를 포함해 수천 명이 넘는 전 직원들에게 팀장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장문의 메일을 쓰고 퇴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짜증이 나서 말하기도 싫다.

 


 남자 육아휴직은 매우 드물다좋은 회사인가 보다회사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점수는 한 40점 정도 주고 싶다. 좋은 점 보다는 나쁜 점이 크다. 건강을 챙길 수 없을 정도로 업무가 많았다. 마흔 둘은 젊다면 젊고 아재라면 아재인 나이다. 그 나이에 허리디스크, 목 디스크, 간질환, 비타민 결핍, 스트레스성 만성 두통, 비만 등 많은 질병을 달고 있다. 두 번째로, 군대식 기업문화로 인해 잘못된 가치관으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폭압적인 문화가 너무 당연시 여겨지면서 욕하고, 윽박지르는 등의 몰상식적인 행동들도 많았다. 나도 이런 것들을 보고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생각에 물들었다. 내 밑에 직원의 인격을 무시하면서 나 스스로 이것이 잘못이라는 걸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었다. 지금은 이것을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도 굳어진 이 관성을 고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아이는 누가 봐주나?


우리 아이는 반은 국가가 키웠다. 나와 아내 모두 야근이 많아서 어린이 집, 유치원 모두 가장 먼저 등교했고 가장 늦게 하교를 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3살때에 11시넘어서 데리러 간 적도 많았다. 당시 어린이 집 원장님이 우리 사정을 이해해 주어서 자신의 집에 우리 애를 데려가서 봐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회사에서 꽤 잘 나갔었고, 회사의 일이 가장 우선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첫 아이라 정말 너무 내 생각으로만 키웠던 것 같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이런 일에 대한 미안함이 늘 가슴속에 있었다. 육아휴직을 통해서 아이와 하루의 반을 함께 하면서 더더욱 과거의 회사일 때문에 혼자 남겨둔 것이 아이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깨닫고 나니 더욱 미안했다.


 

 휴직을 하기 전에 계획을 세운 것이 있다면?


휴직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었다. 건강의 회복과 아이와 함께 시간 보내기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안을 만들었다. 제주도에서 6개월 살기, 아이와 세계여행 등등. 여러 가지 안 중에서 선택한 것이 해외연수였다. 사실 처음 계획은 가족이 모두 같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도 휴직계를 제출했었다. 그러나, 상사들의 눈치 때문인지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지만 구두로 승인을 받고 4개월간 질질 끌다가 회사 사정으로 휴직은 취소했다. 그래서 아이와 단둘이 하는 해외에서 함께 생활하며 영어 공부를 하는 연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휴직하고 나이 42살에 영어공부라니진짜 이유가 뭔가뭔가 다른 이유가 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두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바로 학력과 영어가 그것이다. 그 때문에 항상 영어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회사 생활이 끝난 후의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야근에 지친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와 쓰러져 잠들고 아침이면 일어나 씻고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기계 같은 생활을 멈춰야만 했다. 나는 회사 생활을 모두 마치고 나면 제주도 같은 곳에서 외국인 들을 위한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며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영어였다. 독학도 해보고, 나름 학원도 다녀봤지만 그렇게 해서 배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연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와 함께 할 시간, 미래를 생각할 시간, 미래를 준비할 시간의 필요 때문에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아내는 혼자 일을 하고 아이와 함께 해외에 다녀왔다아내가 화내지는 않았나? 


앞서 얘기 했지만 원래 계획은 아내도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일찍 귀국하려 했는데 오히려 기왕 시작한 것 제대로 공부하고 오라고 지원해주었다. 아내에게 감사하고 미안하고 또 고마울 뿐이다.


 

 일년간 해외에서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면 얼마나 드나?

다녀와서 계산해 보니 한 8천 만원 정도 든 것 같다. 물론 내 연봉을 기회비용에 합치면 1억은 훌쩍 넘을 것이다.

 


 살림은 넉넉한가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휴직을 하면 기획비용까지 2배가 마이너스다.


결혼 후 양가 부모로부터 단 한 푼의 도움 없이 두 사람만의 힘으로 버텨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모아봐야 얼마나 모았겠는가? 아직도 서울의 외곽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찾았고 아내와 공유했었기에 결정할 수 있었다. 또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결정하게 된 동기인 것 같다.

 


 자신의 커리어가 끊길 것을 감내하고 휴직을 냈다경단남이 되는 걱정은 없었나돌아오면 회사에서 책상을 빼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나 경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라도 있을 거라는 확인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게 두려웠다면 육아휴직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지낸 해외에서의 일년어땠나?


육아휴직을 한 일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었던 기간이었다. 내 스스로 힘든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정말 알차게 살았다. 회사에서 매일 야근하며 시간을 보내며 늘 꿈처럼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는 독립성이 습관화 되었다. 자기 일을 스스로 하고 또 남을 존중하는 법을 유치원에서 배웠다. 많은 액티비티와 여행을 함께 하며 아빠와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갖게 되었다. 캠핑을 떠나 만났던 하늘의 별, 너구리가 가져간 저녁밥, 그리고 개울가에서 물놀이 등은 아직도 반복해서 얘기한다. 나이아가라 폭포, 푸르른 공원, 아이슬란드의 빙하, 순록, , , 온천 등은 아이에게는 너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이 되었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아이의 그 모든 기억에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육아 휴직 일년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비로서 아이와의 관계가 진짜 아빠와 아들 사이가 된 것 같다. 그 전까지는 그저 주중에는 맡기고 찾아오는 사람, 주말에는 힘들지만 억지로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자기를 위하는 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은 물어보려 한다. 상대적으로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게 흠인 것 같다.







 

 아이와 많이 각별해 진 것 같다. 이에게는 어떻게 살라고 얘기해 주고 싶나?


물어보지 않는다면 굳이 얘기해 주지 않을 거다. 그 대신 질문을 할 것이다. “그거 하면 재미있어? 그건 어때?  뭐하고 싶어? 니 생각은 어때? 어디 갈까? 어떤 모습이 되고 싶어?” 부모는 질문을 해서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틀만 만들어 주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아이는 대답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모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원하는 일을 찾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인생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돕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에 가는 것이 죽도록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우리 아이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나의 바램을 말로 하거나 직접 가르쳐서 알게 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느끼게 하고 싶다. 그래서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자원봉사를 같이 다닐 것이고, 올바른 시가가 되면 해외 배낭여행을 지원할 계획이다. 대신, 그 이후의 인생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지, 어디서 살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휴직하고 일년간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잃은 것은?  


얻은것은 너무 너무 많다. 내가 세운 인생의 목표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내가 쉼 없이 달려가던 길에서 살짝 벗어나서 돌아봤던 나. 그 과정에서 다시 깨달았던 나의 잘못된 행동들. 그리고 앞으로의 내 태도 변화에 대한 방향성. 아이와의 평생 안고 갈 소중한 추억. 해외의 새로운 사고방식.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한 고민.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  결론적으로는 잠시 멈춤으로 나의 방향성을 찾았고 돈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이와의 추억을 얻었다. 잃은 것은 돈 뿐이었다.

 


 휴직이 당신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멈추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달리기만 하면 방전되어 버려지는 직장인들에게 쉼은 더더욱 중요하다. 멈춤과 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건 당신의 쓴 책인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에서 같은 내용을 읽었다. 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가능한 업무적으로 만나는 것을 줄이려고 한다. 비즈니스, 돈과 연결된 관계에서 진실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능한 회사 밖에서 진심이 통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회사 안에서는 내가 해서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중이다. 14년차에 이런 것을 찾는다는 것이 웃기기도 한데 지금이라도 노력해 보겠다.



 복직 후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아니 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이 50대 되었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이다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행동놀면서 돈만 받아가는 월급 루팡들아부와 비열한 행동만 일삼는 사람들이 너무 짜증나고 싫었다또 회사에서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도 정말 많이 의식을 했다내가 남보다 중요한 일을 맞고회의 시간에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서 인정받고 하는 것처럼 나를 드러내는 것을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하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또 뻔히 수가 보이는 이상한 짓을 하는 또라이들을 보면 예전처럼 화가 나기 보다는 불쌍하게 느껴졌다.

 

지금 나의 가치의 중심은 나의 미래를 위해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이다상대적으로 예전에는 회사 일이 나의 가치의 99%였고 일이 많을 때야근할 때스트레스 받을 때 정말 힘들었다하지만 지금은 일이 많고 적음 회사 내에서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육아휴직 복직 후 회사가 어떻게 느껴지는가? 달라진 점이 있나?


같은 팀으로 복귀 했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내 일은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서 하고 있다. 그 일은 많은 금액을 좌지우지 하는 제법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예상은 했었다. 단지 예상이 빗나가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래서 이질감이 조금 더 느껴진다. 나는 일년간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변화 했는데 회사 안의 다른 이들은 내가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정말 작고 사소한 것으로 서로 반목하고 무시하고 싸우고 헐뜯는 것이 안타깝다.

 

 

 그럼 돌아와서 일은 어떤가? 할 만 한가?

예전보다 일이 줄었다. 팀장이 나에게 일을 많이 주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팀장 바로 아래 있기 때문에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 나를 견제하는 건지, 혹은 내가 언제라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안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월급은 그대로 인데 하는 일이 적으면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결론부터 말하면 일이 적어서 스트레스다. 물어본 것처럼 일이 적으면 좋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일의 양을 육아휴직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30% 수준 정도다. 내가 차장인데 이건 주임 수준의 일을 준다. 옆에 사람은 일이 많아서 바쁜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MD인데 돌아와서 2달이 넘었는데 정확히 담당하는 것이 없다. 가끔 떨어지는 ad hoc성의 일 밖에 없다. 때로는 일이 없어서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내 스스로가 일을 안 하니 회사원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지는 것 같고 조직의 일원으로서 회의 할 때도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망설여 진다. 회사 생활이 엄청 위축되고 뒤쳐지는 느낌이다. 팀장도 하루 종일 내가 별 일이 없다는 것을 알 텐데, 가끔 자리를 비우거나 멍하게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말 했듯이 예전부터 나는 일을 미친 듯이 했던 사람이기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사실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루틴이 없다는 것 자체가 휠씬 힘든 것 같다. 이건 성취감과 관련된 부분이다. 일이 많아도 내 일이 있으면 내가 의사결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성공도 거두며 기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보람 같은 것이 있었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굴곡 속에서 살아 있는 느낌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 축 쳐져 있는 느낌이다. 못 할 짓이다.


 

 팀장 입장에서 일을 나누면 전체 팀원 전체의 사기도 올라갈 텐데 이상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회사 내에서 육아휴직 복귀자에게 조직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팀장이라는 사람 개인의 의지인 것 같다. 팀장이 나와 성별이 달라 쉽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오해가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달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을 것이다. 그럼 저 친구가 하고 있는 일 주세요라고 하면 그 일을 내가 뺏어가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망설이는 거다. 내가 팀장이라면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일을 나누었을 것이다. 팀원들도 해피하고 나도 스트레스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회사 일의 계획은 어떤가개인가족 삶의 계획은?


일단 회사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일을 재정립하고 싶다. 재미 혹은 의미가 있는가?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으로 일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만약 이직을 통해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 할 것이고, 팀을 옮겨야 된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미래를 위해 투자할 거다. 아내와 나는 은퇴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우선 건강을 회복하는데 투자할 것이고, 다음으로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우리 가족도 건강이 우선, 그리고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신중하되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다. 행동하는 것의 힘을 일년간 너무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고 노트에 끄적이기만 하고 말만 하고서 행동하지 않는 그런 실수는 이제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왜 모두 이렇게 비슷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나?

예를 들면 좋은 학교 나오려고 애쓰고대학교에서는 좋은 직장 돈 많이 주는 직장 가려고 애쓰고. 그러다가 문득 소모되어 회사에서 불필요하다고 버림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것 말이다.

 

어려운 질문이다. 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유교문화 때문인 것 같다.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로 인식하는 문화적 특성이 한 원인인 것 같다. 또 초,,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다. 남이 세워놓은 대오를 이탈하는 삶이 곧 낙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일을 하면 즐겁고 행복할까?’가 아니라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를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연수를 했던 나라에서는 다름을 인정한다. 면접, 학교, 직장 등의 어떤 곳에서도 나이, 출신, 성별, 종교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나아가 직업의 차이에서 오는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를 쿨하게 인정한다.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은 주말에도 일을 하는 학원강사다. 그는 10년 넘은 차를 아직도 탄다. 그는 자신의 일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거라고 얘기했다.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고 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버스 운전기사나 배관공이나 은행원이나 그냥 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지금 어느 누군가는 당신처럼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다면뭐라고 해 주겠는가?


그건 철저히 본인의 결정이다. 한가지 바라는 것은 그 결정은 그 사람의 명확한 가치관이 서고 난 후에 내리면 좋겠다. 그 사람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믿는 가치가 있고 그걸 믿는다면 뭔가 해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칫하면 육아휴직 기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라 당신이 소중하게 붙잡아야 할 결정적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 휴직을 하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우선 회사 다니면서 시간을 내서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 확신이 생기면 그때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휴직을 하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에서 남자의 육아휴직이 주는 임팩트는 생각보다 너무 강하다. 마치 이력에 빨간 줄이 쳐진 느낌까지 든다. 그렇기에 좀더 신중히 다시 판단하라고 권하겠다.

 


 휴직기간에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나와 아이의 경험과 아내의 경험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내가 느끼는 이 생각들을 나는 단지 말로써 아내를 이해시켜야 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숙제다. 나와 아이는 아이 스스로의 독립적 생활방식을 셋업하고 왔는데, 엄마는 아이를 또다시 예전 5살의 아이처럼 대하기 때문에 아이가 다시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비어버린 통장잔고를 볼 때 후회한 적은 없었나?


휴직 후 연수를 떠날 때 적금, 보험 등을 모두 정리했다. 마음은 이미 그때 한번 아팠고, 돌아와서 전세 만기가 끝나서 새로운 집을 찾을 때 한번 더 아팠다. 다행히도 은행이 도와주기에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삭일 수 있었다. 지금은 이제 다시 채워야지라는 생각이다. 누가 물어보더라도 일년 동안 돈밖에 잃은 것이 없다. 그래서 후회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남자가 아내 혼자 일하게 두고 지는 외국에서 공부나 하고 팔자 좋은 놈이다정신차려라 임마.” 라는 악플이 달렸다면 거기에 뭐라고 리플을 달고 싶은가?

 

아내를 잘 만났어요.” “결혼을 잘했어요.” “대신 아이는 내가 키웁니다.” 뭐 이런 글을 남기겠다. 사실 그런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미래에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금 하고 있는 준비는 있나?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50살까지만 회사생활을 하고 싶다. 8년 남았다. 50살에 은퇴 후에는 제주도에서 팬션을 하고 싶다. 돈을 벌기 위한 것 보다는 생활 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이익이 나지 않아도 좋다. 50살 이후 남은 인생을 가족과 즐겁게 살고 싶다. 그 팬션을 외국인 전용으로 해서 아이에게도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본인이 말한 삶의 행복과 인생관과 하고픈 일이 100% 맞지는 않는 것 같다. 팬션을 하는 것이 본인의 삶의 가치와 맞다고 생각하나?

100% 맞지는 않을 수 있다. 내 인생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고 싶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말 뒤에는 금전적인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 일년간 회사, 그리고 한국과도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생활을 했다. 우리는 겪어서 알게 된 삶에 구속된다.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단지 좋다라는 느낌보다는 무언가 따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

 

해외에서 일년간 있으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외국 애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Why not?’ 이라는 말이 있다. 참 신기한 말이었다. 이 말이 나왔을 때 말문이 턱 막히는 경험이 많았다. 맞다고 생각하면 하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어떤 대화에서 “Why?”라는 질문을 했을 때 너 혼자만 잘 되는게 무슨 의미야, 니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봐. 그럼 우리가 이렇게 행동해야 하지 않겠니?” 또는 너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 라는 늬앙스의 말을 제법 많이 들었다. 그리고 휴가를 가도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오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헤비타트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사람들이 부자가 아니라 소형차도 10년넘게 타고 다니는 중산층 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에게는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팬션을 하면서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다니는 삶을 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나의 아이가 나밖에 모르는 삶이 아닌 주위를 돌아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남을 도우며 함께 사는 삶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렇게 늙어가고 그렇게 죽고 싶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의 가치관은 현재 흐르고 있는 문화에서 기인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차별, 남을 밟아야 내가 돋보이는 조직.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작은 바램은 직장인들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언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같은 유치하지만 꼭 필요한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바빠 죽겠는데 뭔 개소리냐?” 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 우리가 직장에 다니는 이유가 행복을 위해서이고, 그 행복이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봐줄 줄 알고, 어울려 살아 갔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지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까이는 내 아이, 내 아내의 행복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형제 부모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이웃과 이웃나라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14년간의 회사생활 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 기쁨은 생각보다 컷다.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통해서 삶의 방향성을 찾고 그 길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직장인으로서 성공만을 위해 회사 인간이었던 그는 일년의 멈춤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두가지 였다. 자신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멈추어 일에서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고맙게도 내 책을 읽어 주었고 그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에게 인터뷰를 먼저 요청해 주었다. 어찌보면 직장인이자 글을 쓰는 나에게는 가장 감사한 사람이었다. 내 작은 글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이 한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 이라고 부르고 싶다. 많은 직장인 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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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회사를 그만두다, 회사를 떠나다, 회사를 떠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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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희욱 2016.06.24 10:20 신고

    긴 글이지만 천천히 모두 읽었네요. 그냥 앞만보고달리기만하면 생각하고 돌아볼수 없다는 말이 정답인듯 하네요. 그러다가 원치않게 떠밀리게 되고요. 우리 회사도 가능 하다면 한번쯤은 나를 돌아보는쉼도 좋을것 같아요

    REPLY / EDIT

    • 손성곤 2016.06.24 22:43 신고

      안녕하세요.

      인터뷰의 내용이 짧지 않고 모바일로 많은분들이 들어오셔서 끝까지 읽기 버거울 수 있는데 다 읽어 주셨다니 고맙습니다. 멈춤은 직장인에게 필수입니다. 멈추지 않으면 방전되서 버려질 수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EDIT

  • 장호순 2016.06.28 15:59 신고

    저는 극단적으로 멈춤이 필요할 때 회사를 접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비교하며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어서 좋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

    REPLY / EDIT

    • 손성곤 2016.06.30 12:07 신고

      안녕하세요. 장호순님.

      대부분의 직장인 들은 자신이 멈춤이 필요하다는 사인을 잘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충격에 어쩔 수없이 멈춤을 당하죠. 그 멈춤의 때를 알고 자신을 돌아보고 사업을 시작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직장생활연구소 계속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21 _ 40대 직장인. 정해진 길 밖으로 핸들을 꺽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5.10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1974년 생 43. ㅇㅇㅇ 입니다. 현재 ㅇㅇㅇ에서  HR 담당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회사 중심의 간단한 커리어 소개.

회사 생활은 약 16년 가량 하고 있고 지금 다니는 곳은 두 번째 직장이다. 회사 생활 16년간 계속 인사 업무를 했다. 첫 번째 회사는 중간규모의 금융회사였다. HR 팀에서 채용, 교육, 인사평가, HR 프로세스 등의 거의 모든 업무를 했다. 사실 입사한 2000년에는 대부분 금융권에서 사람을 많이 뽑았다. IMF 이후에 금융장세의 시작으로 금융업이 활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에 비하면 그 당시는 취업이 힘든 시기는 아니었다. 뭘 해야겠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돈 많이 주고 일은 좀 적은 회사를 찾았던 것 같다. 나도 평범하게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넣어보고 되는 곳을 들어간 케이스다. 입사해서 점심시간에 여의도를 조금만 걸어 다니면 많은 동창들을 만날 정도로 금융투자업계에서 사람을 많이 뽑았다. 어쩌면 2000년대 초반이 금융업의 베이비 부머 세대다. 20158월에 퇴사를 했다. 그러다가 20161월에 다시 지금의 비영리 재단에 재 취업을 했다.

 

▶ 본인은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아주 아주 평범한 직장인 이었다. 그냥 직장인의 평균을 내면 나오는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타고난 관리직정도일 것이다. 조율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잘 했던 것 같다.

 

▶ 첫 직장을 15년 다녔다. 또 인사팀이었다. 왜 회사를 그만두었나?

한마디로 하면 경력이 막혔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회사를 떠나게 됐다. 월급을 받으려고 회사를 다니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전에는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해 보려고 꾸준히 노력을 했는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작은 규모의 오래된 조직이어서 성장이 정체되고 승진하려면 질퍽한 사내정치의 늪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내가 정치를 잘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내가 있던 회사는 업의 특성상 첫 직장은 돈만 잘 벌면 장땡이인 곳이었다.) 조직의 미래와 비전을 보고 인사를 전략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었다. 윗선에서 이렇게 발령을 내라고 지시가 그냥 내려 오면 인사팀은 행정처리 하듯이 처리만 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없는 조직에서 나는 부품일 뿐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받는 것 이외에는 의미도 성취감도 없었다. 이런 부분도 회사를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 사람들이 너무 적체되어 있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구조였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도 있었지 않나? 그런데 왜 그냥 때려 치운건가?

이 질문은 재 취업 면접 시 정말 많이 받았다. 사실대로 대답해도 아무도 수긍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찮아서 그냥 말을 바꿨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지어낸 것이다. “여자친구랑 사귀다가 다른 여자친구를 먼저 물색해 놓고 내 사람이 되고 나서 전 여친을 차버리는 것이 성격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서 직장을 찾았다.” 이렇게 말했다.

 

▶ 그럼 면접관에게 한 거짓말 말고 솔직한 이유는 뭔가?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마음으로 지금의 회사를 대충 다니며 일을 하는 것이 회사에 몹쓸짓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리 말하고 회사에는 후임을 뽑을 시간도 충분히 주고 그 후임이 입사해서 인수인계도 충분히 하고 나왔다. 거의 두 달이 넘게 걸렸다.

 

▶ 모든 커리어 관련, 이직 관련 책에서는 다른 회사를 정해 놓기 전에 절대로 지금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다. 전혀 다르게 행동했는데.

맞다. 책의 내용을 100%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가치기준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 사실 나는 이직,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퇴사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회사를 그만두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회사 이후의 플랜을 세우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모든 커리어 관련 책 혹은 커리어 컨설턴트의 말을 그대로 따르다가는 그 전에 회사에서 내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강제로라도 판을 뒤집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 판을 바꾼다는 말.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회사를 다니면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면 기본적으로 시야가 좁아진다. 내가 그저 지금 머물고 있는 산업과 업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회사가 미치도록 싫고 지금의 일이 죽을만큼 싫다고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일, 이년 후에 보면 이 업계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지낸다

나는 업계를 떠나고 싶었고 제대로 된 그리고 내가 일을 하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조직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15년을 해온 일을 계속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프레임, 다른 땅 위를 딛고 뛰어다니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회사를 다니면서는 불가능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 그럼 회사를 떠나면서 새로운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던 건가?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다. 회사 때려치우고 뭐 할래? 그 질문에 구직활동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좀 쉬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집안 살림도 하고 운동 좀 하려고.”이렇게 말했다.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1순위는 재 취업이었다. 2순위 노무사 시험, 3순위 9급 공무원까지 생각했었다.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불안해 하는 와이프가 뭐라도 해야지 않겠냐 라며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나의 전문성과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HR 일과 관련이 있는 노무사에 도전하는 것이 2순위로 포함되어 있는 이유다. 사실 마흔 세 살에 회사를 떠나서 아등바등해서 다시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얼마나 다시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랫동안 쌓았던 인간관계도 다시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밀어주고 끌어줄 기반도 없는 곳에서 말이다.

 








▶ 43세면 무작정 회사를 나오기에는 적지 않는 나이다. 아내의 반대는 없었나?

우선 내가 워낙 오랫동안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처럼 골골거리고 있었기에 그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솔직히 아내는 내가 나의 꿈과 이상을 좇겠다.’ 라는데 동의해서 회사를 그만두라고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죽을 만치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동의해 준 것이다. 아내는 보수적인 사람이기에 그만두어도 남자는 얼마가 되더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내가 용인해 줄 만큼 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서 허락해 준 것 일 수도 있다. 나는 처가어른들과 같이 사는데 그 분들도 허락을 해 주실 정도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 미친듯이 사람을 짤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나.

회사가 성장기에는 피라미드형 인력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다가 산업 정체기에는 신규인력을 뽑지 않는다. 그럼 인력이 병목현상이 생기고 적체가 된다. 그럼 고임금의 인건비가 감당이 안되고 당연히 성과주의’, ‘효율우선으로 회사의 기조를 바꾼다. 인력들의 연봉을 줄이거나 사람자체를 쳐내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2015년 말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 인력 쳐내기가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남아있는 곳이 금융업, 제조 대기업쪽 일 것이다.

첫 회사에서 15년차고 사십대 중반인 나는 남자 직원 중에 거의 막내였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은행의 선배는 마흔 일곱 살인데 은행 지점의 남자 중 거의 막내다. 그만큼 금융계가 신입사원을 거의 뽑지 않고 고임금 비효율 형태가 되었다는 반증이다. 다른 업은 업태의 변화나 부침이 추세를 타고 오는데 금융업은 추세가 별로 없이 주가처럼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사람을 쉽게 뽑고 쉽게 자르는 것이 다른 업태와 조금 다른 부분이다. 내가 입사 당시 금융계 종사자가 3만명에서 2.5만명까지 떨어 졌다가 활황일 때 6만까지 찍고 지금은 미친 듯이 인력은 다시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 개인적으로 인사팀은 일반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가 궁금하다. 인사팀은 회사의 사측에 가깝다는 선입견이 있지 않은가?

중견크기의 회사였지만 인사팀의 권한은 없었다. 임원급에서 이렇게 발령을 내라고 서류가 그냥 내려왔다. 전사적으로 인력배치를 조율하는 것 보다는 그저 행정처리를 하는 느낌이 매우 강했다. 솔직히 말하면 인사팀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다른 일을 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의 잘못된 방향성에 대한 불만, 그리고 조직 안에서 커나갈 수 없다는 답답함이 아닐까 싶다. 통상적으로 인사팀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강한 경우가 많다.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다.’ 는 목표가 있는데 조직에서 그것을 도와주지 못할 때, 즉 개인의 욕구와 회사의 필요가 어긋나면서 생기는 충돌 때문에 많이 그만 두는 것 같다.

 

▶ 인사는 HRD 팀이다. 이것은 회사를 위한 인간 자원 개발하는 것이다. 개인 보다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하는게 목표라고 본다. 사람을 회사를 위한 자원으로 보는 것 같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우선 사람을 Resource라고 보는 관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나도 공감하는 바다. 회사 입장에서만 본다면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하는게 맞을 수도 있다. 보는 관점상의 차이인 듯 하다. 나는 퇴사 이후 다시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면접을 열 번도 넘게 봤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HRD를 테크닉이나 기술처럼 생각하는 회사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MBO를 해 봤냐? KPI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같은 질문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성과주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는데 성과주의라는 개념은 큰 틀에서 볼 때 지금과는 점점 맞지 않는 오래된 개념이 되고 있다.

 

▶ 금융회사에서 일했으면 더욱 성과주의라는 개념이 많았을 것 같다.

맞다. 노골적으로 그랬다. 개인이 얼마를 벌어오면 그것을 회사와 개인이 나눠먹는 느낌이 있었다. 회사와 직원의 관계가 마치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장님과 본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인사팀의 말을 듣지를 않았다. 인사팀의 말을 잘 듣는 직원은 성과가 조금은 낮은 직원들이었다. 정말로 돈만 잘 벌면 장땡이었다. 금융계에서는 철저히 개인의 성과에 따라 월급이나 특히 성과급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성과주의의 극치는 이 업계에서 이미 고착화 된 것이다. 모 회사는 성과에 따른 배분으로 직원들간의 단합에 문제가 되어 아예 성과급제를 없애거나 실시하지 않는 곳도 있다.

 

▶ 회사의 주인은 누구라고 보나? 인사팀은 어떻게 생각하나?

회사의 주인을 주주라고 부르는 주주 자본주의가 지배적이긴 한데 직원 입장에서는 전혀 와닿지 않는 얘기다. 그저 책상 위에서 학자들이 말하는 얘기다. 생각해 봐라. 그 회사에 정말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주식을 사고 주주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주주는 주가가 올라서 돈만 벌면 장땡일 것이다. 굳이 정답을 내자면 이해당사자가 아닐까 한다. 존슨앤존슨 같은 경우에는 종업원, 고객, 거래사, 주주 이런 순서로 중요한 고객이라고 말하더라. 회사는 회사의 오너가 아니고서는 솔직히 설명하기 어렵다. 굳이 꼽아보자면 실제로 일을 해서 회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종업원이기에 종업원이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라고 본다.

 

▶ 결국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재 취업에 성공했다. 새로운 회사를 선택하는 본인만의 가치 기준이 있었을 것 같다. 뭔가?

나는 반드시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회사형 인간에 가깝다. 어떤 사람이 영업력이 있거나, 자신만의 기술력이 있다면 그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조직에 관한 일을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나는 회사라는 숙주가 있어야 하고 그 숙주에 기생(?) 해야만 살 수 있는 그런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혼자서 일하기에 잘 맞지 않는 성향이다. 회사를 떠나서 나에 대해 계속해서 돌아보고 고민하고 내가 해온 일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나보니 회사 안에서의 나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바로 볼 수 있었다.

 

▶ 마흔세 살에 퇴사 그리고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기분은 어땟나?

사는 게 뭐라고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어떤 할머니가 우울증이 있었는데 유방암에 걸렸다. 2년 밖에 못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즉시 우울증이 사라졌다. ‘어차피 2년만 살고 죽을거니까 남은 인생 내 마음껏 살아야겠다.’ 라고 마음먹으니 우울증이 도망간 것이다. 그리고 바로 1억이 넘는 페라리를 샀다. 그 이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았다고 했다.

만약 내가 재취업을 준비했던 여섯 달 후에 갈 곳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 기간은 짧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재 취업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있었던 날이 없었다. 하루 하루가 불안했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가장 불편한 것은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 재취업을 하려고 노력하던 기간 동안 특히 신경 쓴 것은?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노력했다.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운동 하고 아침밥도 꼭 챙겨 먹었다. 백수의 하루 일과는 아침이 좌우 한다. 늘어지면 하루가 눈 깜빡 할 사이에 끝난다. 핸드폰이라도 들고 침대에 누우면 한 두 시간은 그냥 버리는 거다. 또 주말에 도서관에서 도서 대여 반납 일도 했다. 살림도 김장까지 할 정도로 익숙해 졌다.

 

▶ 회사를 떠나고 가장 크게 바뀐 감정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나는 담배를 꽤 오랜 기간 동안 피우다가 지금은 끊은지 일년이 넘었다. 거의 20년이 넘게 피워서 내가 담배를 끊으려면 정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쉽게 끊을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떠나보니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구직활동을 하면서 드는 하루하루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일상을 탄탄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미칠것 같은 불안을 이겨낸 후에 얻게 된 자신감이 가장 큰 변화다.

 

▶ 회사를 떠난 후 자신이 가고 싶은 일하고 싶은 조직에 대한 생각이 명확했을 것 같다. 어떤가?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 되었다. 큰 조직이나 시스템이 잘 갖춰진 조직은 나와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곳은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할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오래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일만 했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런데 가면 일을 잘 못할 것이다. 규모가 작지만 좋은 기업문화를 가지고 HR을 만들어 가는 그런 회사를 가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 학습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기준이었다.

 

▶ 조직문화가 좋다는 것을 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일단은 남을 짓밟으며 성장하는 마초적인 문화가 없어야 한다. 면접을 보는데 이런걸 물었다. ‘A는 신입으로 들어와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연봉이 5000만원 이다. A와 똑 같은 일은 하는 B를 경력으로 뽑았다. 그런데 B의 연봉은 1억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라는 거였다. 내가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능력이 비슷한데 연봉이 그렇게 차이나게 회사는 결정했냐?’ 면접관은 내가 질문했으니 너는 그냥 답하면 된다.’ 라고 얘기하더라. 그래서 그 이후의 면접은 대충 보고 나왔다. 문제는 회사에 있고 저지른 것도 회사인데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기는 문화가 있는 곳일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인사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면접 질문은 뭐가 좀 다른가?

질문보다는 태도에 대해서 예기하고 싶다. 인사팀의 팀장, 부장 이런 사람은 면접을 볼 때 사람을 쭉 훑어 본다. 그리고는 이력서를 한번 보고 다시 한번 또 훑어 본다. 마치 쇠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으면 쉽게 찾아 왔냐? 차라도 한잔 하겠느냐?’ 라는 스몰 토크부터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인사를 오래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만나자 마자 그저 겉모습과 서류만을 훑어 보면서 사람을 평가하려고만 한다. 사람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의 시작을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질문도 스킬파악에 가까운 것이 많다. “그저 ㅇㅇ 해봤어요? ㅇㅇ 해본 경험 있어요?” 이런 질문만을 던질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인사업무에 너무 충실 하다보니 기본적인 사람간의 관계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 면접은 몇 번 봤나? 13년 만에 면접관이 아닌 면접자 입장이 되었는데.

지원은 세어보지 못할 정도로 많이 했다. 백 번도 넘었을 것이다. 면접은 총 열 번 정도 봤다. 요즘 신입사원이 지원보다는 조금 양호한 정도인 것 같다. 면접 중 한 서너 번 까지는 감을 잡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 그렇게 많이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힘든 구직과정을 거치면서 회사를 괜히 나왔나?’ 하는 후회는 없었나?

없었다. 그저 그 조직을 떠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사팀 치고는 이직할 곳을 정하지 않고 회사를 떠나는 것처럼 정상적인 순서와는 다르게 떠났다는 것을 잘 안다. 모든 HR 담당이나 헤드헌터는 이직할 곳을 정해 놓고 가라고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미리 갈 곳을 정해 놓고 회사를 떠나는 것이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예전에도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알아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니 회사일에 제대로 집중 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만두고서 다른 일을 알아본 것이다. 또 이 회사를 계속 다니다가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회사를 끊어버리고 나왔다. 이건 아마도 성격적인 이유가 클 것이다.

나는 그냥 흘러온 인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려고 공부했고 대학 때는 저학년 때는 적당히 놀다가 4학년 되서 취업 준비했다. 그리고 모든 곳에 다 지원해서 붙은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저 남들이 하라는 대로 혹은 그렇게 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세상이 말하는 대로 살았다. 이런 인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를 나온 것 이다. 내 인생에는 방향키가 없었다. 그냥 바람이 부는대로 흘러 왔던 것 같다. 지금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조금만 더 나이를 먹었으면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중에 퇴사는 내가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이라서 후회는 별로 없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내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은 늘 했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료와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했을 때 그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대로 살다가는 남은 선택이 자살밖에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그는 계속 선택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 HR 출신이 회사를 떠나서 취업을 돕는 컨설팅, 강의 등으로 1인기업으로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가?

일인 기업도 자신의 성향과 맞는 사람이 하는 것 같다. 컨설팅을 하는 것에 조금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컨설턴트는 제너럴리스트다. 컨설팅하는 조직의 특징과 업의 형태를 파악하는데 시간의 반을 쓴다. 그리고 결과도 제너럴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정말 문제를 잘 아는 사람에게 맞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내부 인력을 믿지 못하기에 컨설팅을 맡기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회사, 조직이 필요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조직이 있는 상태에서 그 조직을 잘 관리해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하고 돕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인기업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 지금은 비영리 재단에서 인사일을 하고 있다. 본인이 생각한 일과 잘 맞는가?

그렇다. 여기서는 나 혼자 인사, 총무에 관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 전체 인력은 한 60명 정도 된다. 보통은 영리조직과 비영리 조직의 인사도 똑같다. 채용, 급여, 교육, 복리후생 등 모두 똑같다. 같은 일을 하는데 시간은 적게 걸린다. 여기는 직급도 하나 뿐이기에 체계가 단순하게 돌아간다.

 

▶ 이직을 하고서 만족도는 어떤가?

버는 돈은 금융계에 있을 때보다 반으로 줄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평생소득은 늘려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다른 영리 회사로 갔다면 회사 생활을 오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기업 보다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또 돈을 버는 1차적인 목표 이외에 지금의 조직에서는 작은 조직의 인사라는 부분을 일하며 배워나갈 수 있다

평생소득이 늘어날 수 있고 아직도 일에서 배우며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면 충분히 멋진 이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돈과 직장수명의 연장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작은 기업은 대기업에서 쓰는 인사 제도 등을 그저 줄여서 쓰는 경우가 있다. 이직을 준비하며 공부를 하는 동안 작은 조직, 비영리 조직의 인사에 관련한 책들과 논문을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작은 조직에 맞는 인사 형태에 대해 시도해 보고 싶은 솔루션들을 문서로 정리해 놓았다. 그렇게 준비했던 것들을 실제로 적용해 보고 싶다. 그렇게 배우고 성취감을 얻으며 발전하는 것은 연봉이 주는 만족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 40대 중반에 첫 이직을 했다. 그 다음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직을 준비하면서 명확한 목적지와 목표를 세웠다. 거창한 건 아니고 중소 규모의 회사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것을 보급하는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지금 근무하는 조직에서 내 목표가 성공한다면 지금 근무하는 조직은 중소 규모 조직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보급하는 일을 하는 비영리 단체를 인큐베이팅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 다음의 목적지다.

 

▶ 신입사원도 회사에서 짤리는 것이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본인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인사팀의 담당자라면 어떻게 했겠나?

그런 것을 어둠의 HR (Dark HR)이라고 부른다. 천사의 날개가 있지만 악마 같은 그런 존재다. 그런 일을 한번 하게 되면 계속 그 사람에게만 시킨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을 시켰다면 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킨 일을 하지 않는다고 압박을 한다면 그만 두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좀 개탄스럽고 바보처럼 느껴진다. 힘들게 사람을 뽑아 놓고 바로 신입사원을 자를 정도면 100% 경영진의 문제다. 이건 조직의 평균 아이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행동이다.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나는 신입사원도 안타깝지만, 그렇게 바보같이 조직을 관리하는 회사에게 더 분노가 생긴다. 아마도 회사가 너무 크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인 것 같다.

 

▶ 앞으로의 조직은 어떤 형태가 될 것 같나?

앞으로 조직이나 회사가 생기게 되면 우리가 아는 이름 있는 회사처럼 수천, 수만 명의 인력을 거느리는 회사는 극히 소수가 될 것 같다. 정보의 인프라도 풍부하고 월급을 주는 사람들에게만 일을 시켜야 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원에게 시키던 일을 외부에 의뢰하는 형태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 같다. 물론 그런 아웃소싱 전문회사 프리랜서의 모임과 같은 회사도 어느 정도는 늘어날 것 같다.

 

▶ 신입사원도 짤리는 판국이다. 회사를 떠나는 것, 버티는것 어떤 것이 맞다고 보나?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얘기해 보겠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단 회사에 남아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불안 때문에 그냥 뛰어나오면 안 된다. 이 대답은 내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나는 조직이 있어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은 자신의 능력과 준비, 그리고 자신이 혼자 일할 수 있는 성향을 갖추었는지가 대답이 될 것 같다. 누구라도 이 질문을 받는다면 답하기 전에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 꼭 돌아보면 좋겠다.

 

▶ 인사팀이 볼 때 일 잘하는 사람이란?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소통에는 남뿐 아니라 자신과의 소통도 포함한다. 빠르게 배우고 그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배워서 익힌 것을 다른 사람에게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또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고 봐도 된다. 그런 사람은 개인 뿐 아니라 조직 전체를 발전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결국 소통을 하는 사람이 발전한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무언가를 혼자서 이루어 내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 그럼 회사에서 불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보나?

회사에서 정보를 독점하거나 좋은 아이디어를 흐르지 못하게 막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발전하지도 못하고 남의 발전을 막는 사람이다. 남이 잘되는 것을 막아야 자신이 뒤쳐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조직에 절대적으로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 취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해 준다면?

이 질문은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취업 전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면 트랜드를 너무 쫓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기업이 안정적이고 좋다더라, 빅데이터가 유망하다더라 라는 등의 것 말이다. 솔직히 그렇게 해서 사람이 쏠리게 되면 다시 다른 빈자리가 생기게 된다. 그런 트랜드를 개인이 알아낸 다는 것은 사람 매우 힘들다. 그 트랜드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알 수 없는 기술의 발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조금이라고 하고 싶은 일, 관심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처럼 회사가 아니라 모바일 전문가, 자동차 디자인 이렇게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꼰대가 되겠지만 40대 중반인 지금 보면 그렇다.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기준으로 일을 고를 것 같다. 물론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볼 기회가 없을만큼 힘들게 산다는 것 알고 있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ㅇ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내 나이의 내 입장에서 조심스레 말해 본다.

 

▶ 만약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회사 그만둔다.”를 입에 달고사는 후배가 있다면 뭐라고 해 주겠는가?

조언은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공허한 소리다. 하지만 인터뷰니까 얘기해 본다면 나도 마흔 넘어서 해 봤는데 너도 한번 해 보렴. 니가 감당 할 수 있다면, 또 니가 죽지 않는 다면 너를 발전시킬 경험이 될 거야.” 라고 할 것 같다.

 

▶ 구직 기간 동안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직장생활연구소 인터뷰는 솔직한게 멋인 것 같다. 멋진 얘기만 하지는 않겠다. 실제로 신세 한탄도 많이 했고, 술도 많이 먹었고, 찌질한 패배 의식에 허우적대기도 했다. 그만큼 회사를 떠난 다는 것은 힘들다는 얘기다. 회사에서의 반복된 일상을 막연히 저주했지만 그 반복을 떠나면 또 사람은 미치도록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를 떠난다는 건 문을 여는 것 같다. 한 번도 열어본 적을 없지만 늘 있었던 문. 그 문은 바깥에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여는 것은 100% 본인의 자유의지다. 그 방에 괴물이 있을지 보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방이 아무것도 없는 빈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빈방에는 반드시 또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그게 문의 이름이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사람은 현재를 벗어나려는 시도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 본인처럼 40대 중반에 다시 일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40대 중반이라면 개인의 삶의 무게도 꽤 무거운 나이다. 아이는 중학생 이상일 것이고 돈이 나갈 곳도 많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제대로 승진을 못하면 밀려나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그 동안 무얼 했나 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용히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이랑 소주 한잔 먹으면서 하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고민하게 된다.

굳이 얘기를 하자면, 일단 자신을 꼭 돌아보길 바란다. 나도 6개월간 회사를 다니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잔뜩 읽었고,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냥 달리기만 하다보니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이라면 현실을 인정하는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전 회사에서 버는 돈만큼은 벌어야 한다.’ 라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된다. 이해는 하지만 그건 목표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삶을 돌아본 만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에 맞는 목표를 세우면 좋겠다. 꼭 돈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좇는 다른 삶의 형태도 좋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그럼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40대 중반이라도 앞으로 30년은 더 넘게 살아야 한다. 너무 급하게 방향을 잡으면 또 다시 후회할 수 있다. 충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세상에 내쳐진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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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40대 퇴직, 금융권,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회떠사,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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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 2016.05.21 01:53 신고

    이 글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많이 공감도 됐지만
    한 수 배우기도 했습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6.05.21 10:15 신고

      안녕하세요.

      먼저 행동을 한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찾아가는게 이 인터뷰의 목적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DIT

  • paris again 2016.05.25 18:54 신고

    항상 좋은 글이 마음이 와닿습니다. 꾸준히 읽고있습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6.05.25 23:48 신고

      인터뷰를 계속 하다보니 스킬도 늘고 인터뷰이의 심정도 알게 되면서 질문들이 깊게 들어가는것 같네요. 늘 읽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EDIT

  • 재취업에 2017.06.13 10:12 신고

    성공했으니 유유자적한 말만 하는거죠. 저 나이에 재취업 성공한 사람보다 안된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공감이 안되는겁니다. 공무원 합격자가 불합격자의 마음을 알리 없듯이.

    REPLY / EDIT

    • 손성곤 2017.06.14 17:43 신고

      맞습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니 같은 내용도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구요.

      이 댓글을 적으신 분이 다시 찾아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뷰는 그저 개인의 생각이지 주장이나 원칙은 아니라는 것만은 이해해 주시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20 _ 일하면서 배웠다. 그리고 1인 기업가가 되었다.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5.02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1인기업가로서 밥벌이는 어떤가?

운 좋게도 위에 말한 것처럼 바로 정부기관을 도우며 일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데는 회사 다닐 때와 큰 차이 없이 연착륙을 했다.

 

▶ 본인은 아프리카 개발협력 전문가라는 희소하고 또 스페셜한 무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떠나서도 1인기업으로 무난히 일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 일이 개인의 일로 연결되는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라고 본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서 전혀 스페셜한 점을 찾을 수 없어서 1인기업가가 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외부 시각에서 보면 내 일이 특별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특별한 일, 그렇지 않은 일이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자신이 하는 일을 특별하게 해내는 것 중요하다고 본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기존의 루틴한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과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서 더 개선하고 바꿔 나가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은 다르다. 그건 그 사람이 경리일을 하든 영업일을 하든 혹은 다른 의미가 작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삼성물산에서 경리로 입사해서 관리부장까지 올라간 분을 알고 있다. 그 분은 정말 일을 잘한다. 그리고 너무 너무 일을 깊숙이 알고 있다. 또 시야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전체를 보고 계획을 세울 줄 아는 분이었다. 그 분이 해외 공장에 파견을 나갔었다. 어느 해에 그 공장 생산품목 가격 파동이 일어나서 상당수의 회사가 망했다. 하지만 그 분이 나가 있던 곳은 굳건히 살아 남았다. 이유를 보니 그 분은 경리과 출신에 프로젝트로 파견을 나간 것이지만 해당 산업의 특징, 국제가격 흐름,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계속 공부를 했다


그렇게 관리 출신이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해 범위를 넓혀서 산업 전반을 공부하니 눈이 뜨인 것이다. 그리고는 시장에 재고가 지나치게 많다. 위험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파견 나가있던 회사의 재고를 줄이는 정책을 펴서 재고가 거의 제로인 상태로 국제적인 가격파동을 만났던 것이다. 재고를 안고 있던 회사는 모두 회사가 망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는데 그 회사는 거의 충격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남과는 다르게 정말 괄목할 정도로 일을 잘 해내고 시야를 다른 분야까지 넓힌다면 일인 기업으로서 가능성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1인기업으로 일하시는 분들에게 직장인이 아닌 학생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1인기업으로 일하고 싶어하는 경우다. 그런 친구들에게 뭐라고 얘기해 주겠는가?

좋은 질문이다. 나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연구실에 나 말고 두 명의 청년이 있다. 작년에 두산 인프라코어에서 일하던 팀이 없어져서 나온 마흔 살의 친구와 대학원 석사를 마친 서른 살의 청년이다. 마흔 살 친구는 직장생활의 끝을 직감하고 제 때 독립한 반면, 서른 살 친구는 좀 다른 케이스다. 젊어서 직장을 다니는게 일을 하고 배우자고 하는 건데, 요새는 회사에 들어가도 선배, 사수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들은 것이다. 회사 생활이 각박해지고 이기주의가 만연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그런데 석사과정 중에 같이 연구용역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지도교수님과 내가 하는 일을 보면서 확실히 배우는 것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받아서 하면 시간관리를 스스로 하면서도 신입사원 월급은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보통의 경우, 아무 생각없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해서 하거나,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뒤쳐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곳이 없다는 불안과 공포감 때문에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간다. 그런 공포감이 없다면 또 그 공포감을 냉정히 이겨낼 수만 있다면 굳이 직장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 직장에서 1인기업으로 독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두 가지다. 첫째는 직업 전문성, 둘째는 네트워크다. 결국 일과 사람이다. 만약 그 두 가지를 대체할 만한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굳이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일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평범한 대학생이 갖추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만약 다른 기회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고 다른 누군가를 보고 배우면서 점점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회사에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학생들이 원하는 일을 찾고 그 일에서 점점 전문성을 갖추도록 학습과 경험을 하고 관련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스펙을 쌓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전문성이 쌓인다. 그 과정을 열정이라 부르고 싶다. 시켜만 주면 뭐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소리치는게 무슨 열정인가? 자기가 목표로 하는 일을 한참 전부터 꾸준히 해왔다는 증거를 보여주는게 진짜 열정이다. 채용하는 회사도 그런 사람이 당연히 직무를 잘 수행하리라 믿을꺼다. 차라리 그런 방식이 취직도 잘 될 것이다.


네트워크라는 것은 단지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같이 일을 하면서도 타인을 떠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업계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얘기하면 소위 황금을 캐는 일이라도 같이 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사람은 혼자 나와서 1인기업으로 하면 몇 개월을 버텨내지 못한다. 1인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혼자서 외롭게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주와 수행 능력을 극대화 하기 위한 협업은 필수다. 특히, 지식기반 1인기업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번 평판이 나빠지면 거의 회복이 어렵다. 그런 사람이 박사과정을 패스하거나 기술사를 딴다고 해서 1인기업으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1인기업이라고 절대로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만약 내가 1인기업으로 60세가 넘으면 혼자서 일을 따내기는 힘들 수도 있다. 프로젝트 PM 하는 지금 내 나이 (45)정도의 친구가 일을 따낼 것이다. 그 친구들이 기분좋게 함께 일할 동료이자 경험 많은 선배로 나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1인기업으로 평생현역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능력이 중요하지만 관계가 잘못되면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생긴다. 어찌 보면 이건 회사에서도 똑같다. 임원들이 후배들을 잘 가르치고 길러 놓지 않으면 임원이 되어도 밑에서 받쳐주지 못해서 무너지는 경우도 많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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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많이 기사화 되는 내용이 몇 년 후에 없어질 몇 가지 직업뭐 이런 내용이 많다. 그만큼 직업 불안정성이 큰 세상이다. 지금 학생들이 미래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큰 요소는 뭐라고 생각하나?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대체가능성이다. 대체 가능한 일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대체된다. 그건 시간 문제다. 내가 1인기업으로 부가세, 종합소득세를 직접 신고하면서 한가지 느낀 것이 세무사라는 직업이 조만간 대체될 수 있겠구나하는 거였다. 내가 회계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만 하다가 나왔는데 세무사가 하는 일중 일부를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 그럼 자신의 관심분야 보다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것이 대체 가능성이라고 보나?

그렇다. 대체가능한 일을 하면서 불안에 떠는 것은 잘못이다. 바깥에서 보면 잘 모르는데 삼성물산에서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인원을 줄였다. 그러면서 다른 삼성 계열사로도 보냈다. 그렇게 다른 곳으로 차출되어 나가는 후배들이 찾아와서 만나보면 하는 말이 자괴감에 죽을 것 같다.’ 라는 것이다. 그 친구들과 소주를 한잔 하면서 나눈 대화는 이렇다.



형님, 왜 하필 제가 다른 곳으로 가야 할까요? 저는 서울대도 나왔는데요.”

 “니가 서울대를 나와서 그래. 다른 대학 스페인어과를 나온 친구는 그대로 있고 서울대 공대 나온 니가 다른 계열사로 가는 이유를 알아? 삼성물산은 언제라도 서울대 공대, 서울대 상대 나온 친구들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야” “너는 서울대 공대를 나왔지만 특별한게 없잖아. 열심히 일하는 것만 빼고. 그런데 서울대 나와서 열심히 일하려는 애들은 시장에 너무 많아. 그래서 그런거야.”

너는 스페인어과 나온 애 보고 너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 보면 스페인어를 좀 하면서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경력을 가진 애를 유지 하는게 나아. 그런 인력은 자르고 나서 나중에 시장에서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가 없거든.” “그런데 서울대 나와서 특장점 별로 없이 보고서 잘 쓰고 엑셀 빨리 하는 애들은 많거든. 그게 이유야.”

스웨덴의 버스기사가 방글라데시의 버스기사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이유는 운전 능력 때문이 아니야. 운전은 방글라데시 운전기사가 훨씬 잘해. 차선도 없고 소와 사람이 엉켜있는 길에서도 잘 운전하지. 그런데도 스웨덴 운전기사가 월등한 처우를 받는 것은 스웨덴에는 버스기사를 하려는 사람이 적고 방글라데시에는 많기 때문이야. 그것이 대체불가능성이야.”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내가 너라면 회계, 재무를 공부하겠어. 신규개발 프로젝트를 할 때 인정받는 능력이 파이넨싱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거든. 공돌이인데 신규 프로젝트에서 재무모델까지 돌릴 줄 알면 외부 컨설턴트들에게 휘둘리지 않거든. 그게 너의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어

 


결국 그 친구는 2년만에 AICPA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문제 없이 일을 잘 하고 있다.

 

▶ 본인이 퇴사의 아이콘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친정 회사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나갔기 때문이다. 보통은 몸값을 올리려 하거나, 몸값이 떨어지려 하는 순간 또는 승진 등이 막혔을 때 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난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서 나름 잘 나갈 때 퇴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퇴사의 아이콘이라 그런지, 내가 퇴사한 이후에 입사한 신입사원도 퇴사할 때 연락해온 적이 있고, 같이 일했던 젊은 후배들이 가끔 찾아와 퇴사 고민을 털어 놓는다.

 


▶ 회사를 다녔을 때 가장 고마운 점이 있다면?

회사라는 안전망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접했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을 하면 새로운 일을 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고 배웠다.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다.  직장인들이 소모되기만 하는 것이 싫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운이 좋았다. 일반인들은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대리 때부터 출장을 다니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넓혀 나갔다. 동티모르가 독립했을 때는 아무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새로 독립한 나라의 가능성을 찾으러도 출장을 갔었다. 어떤 회사도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러라는 이유로 출장을 보내주지는 않는다. 확실한 목표와 명분이 있어야 보내준다. 하지만 나의 경우 어느정도 성과가 있다 보니 임원도 별다른 태클 없이 보내주곤 했다. 스스로 일을 찾고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면서 배우는 것은 해본 사람만이 아는 엄청난 성장의 기회다. 그런 기회의 혜택을 받았던 것이 나에게는 가장 고마운 일이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획, 그 안에서 고수를 만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이 나에게는 정말 큰 행운이었다.

 


▶ 대부분의 직장인은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반복되는 일을 한다.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배움과 성장의 기회는 어떻게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반복되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좁은 닭장 안에서 사육되는 닭인지 날개를 펴지 않은 독수리 인지, 혹은 백조인지 백조 옆의 오리인지 명확히 현실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독수리인데 닭장 안에 있으면 독수리인지도 모르고 닭에게 쪼이며 산다. 어떤 경우는 백조 옆에 있다는 이유로 자기도 백조인 줄 착각하고 사는 오리도 있다. 겨울이 되면 백조는 따듯한 나라로 날아가는데 오리는 얼어붙는 호수 안에서 얼어 죽고 만다. 그런 오리들이 특히 대기업 안에는 너무나도 많다. 자신이 생계형 직장인이라면 그 현실을 정말 냉철하게 알아야 한다. 현실을 남의 이야기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반복 안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내야만 한다.

 


▶ 회사생활이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두겠다.’라고 말하는 36세의 후배가 찾아 왔다면 어떤 말을 해 주겠는가?

잘 먹고 잘살아라. 난 더럽고 치사해서 떠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실력과 용기를 갖춰야 한다. 그저 회사가 잘 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욕만 한다면 회사 안에서 그 사람은 부정적이어서 잘라내야 할 사람이 된다. 실제로 그렇게 욕하는 사람이 준비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뭐 하러 욕하는가? 짜증만 나고 스트레스를 계속 스스로 쌓는 일이다. 더럽고 치사한 회사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준비를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실을 깨닫고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 행동하기 바란다.

 


▶ 취업이 미치도록 힘들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조직생활을 하느냐 독립해서 일을 하느냐는 어찌 보면 개인의 성향과 취향의 문제다. 잘 맞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은 독립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조건 취업을 하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조직에서 잘 하거나, 나와서 잘 하거나 경쟁력은 하나다. 진짜 실력이다. 그런데 그걸 준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어떤 후배가 찾아와서 현대, 삼성, LG 어디에 원서를 쓸까요?”라고 물었다. 근데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뭘 할지도 모르는데 어느 회사에 가느냐는 건 의미가 없다. 그 친구와 오래 예기를 해 보니 그는 소비재 마케팅을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P&G, 로레알, 아모레 등을 추천해 줬다. 삼성, 현대는 아니었다. 그리고는 모든 소비재 회사들이 타켓으로 삼는 중국 소비자들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해서 블로그에 꾸준히 연재를 해보라고 했다.

덧붙여 말하면 중국의 소비자에게 영향력이 있는 한국에 사는 중국 유학생 들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해서 그런 결과를 블로그에 올리면 된다. 실제로 그렇게만 하면 다른 스펙을 쌓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스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친구는 토익이 930점 이었는데 980점 이상을 얻기 위해서 토익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선배로서 답답했다. 기업들이 원하는 건 토익 800에 마케팅에 미쳐 있고 그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토익 980점짜리 평범한 One of Them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젊은 친구들에게 할 예기가 많은 것 같다.

꼰대스러운 얘기라고 하겠지만 한번 해 보겠다.  

실제로 요즘 젊은 친구들은 지식은 출중하다. 좋은 정보가 인터넷에 많고 좋은 강의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동을 잘 하지 않는다. 직장생활 할 때 실무적인 질문을 해온 대리가 있었다. 한 일년 정도 후에 똑같은 문제로 다시 물으러 왔다. 그 때 그 문제의 해결책을 일러주고, 완벽한 이해를 위해 관련도서를 2권 추천해 주었다. 하지만 그 대리는 듣기만 했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왜 안 했냐고 물어보니 바빴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지금 내가 알려준 내용, 너도 알고 있는 건데 너는 행동을 하지 않아. 그렇게 행동 없이 살면 넌 평생을 그냥 바쁘게만 살게 될거야. 돌아보면 이뤄놓은 것도 없이 말이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남이 시킨 일만 하다가 평생 바쁜 채로 니 삶도 없이 살아야 해.” 라고 했다. 이 정도 심하게 얘기했으면 알아들었기를 바란다. 


물을 구하는 방법을 알려 줬는데도 행동하지 않는 건 아직 버틸 만 하기 때문이다.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은 열일 제쳐 두고 물을 찾는 일부터 할 것이다. 성공의 법칙은 하나다. 절박함의 차이. 그 이상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자기계발서를 욕하는 사람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린다고 말한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별도로 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큰 고민은 뭐였나?

내적 갈등 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회사에서 시키는 일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었다. 쉽게 말해 준거집단과 소속집단이 달랐다. 내 판단과 생각의 기준과 회사에서 나에게 요청하는 것이 달랐다. 아마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새로 계획 짜고 내가 행동하고 책임지고 해내는 일이 아니었다면 회사생활을 그렇게 오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 어찌 보면 본인의 이런 커리어의 시작은 포르투갈어, 그리고 앙골라 파병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이 기회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기회란 이마에 써놓고 찾아 오지 않는다. 그렇게 몰래 찾아오는 기회를 알아채는 방법이 있다면?

돌이켜 보면 나에게 닥치는 작은 일들이 모두 기회였던 것 같다. 안 해본 일은 기회가 아니다. 모든 세상의 기회는 나에게 지금 닥친 일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나에게 닥친 일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 듯이 하는게 맞는 것 같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늘 해주신 말씀인데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나에게 첫 직장을 물어보면 나는 삼성물산이 아니라 군대라고 말한다. 중위 때 모셨던 작전참모가 무척 대단한 분이고 일을 잘했다. 너무 감사하게 많이 배웠다. 그 분을 보고 군대에도 천재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분은 나중에 4성장군이 되셨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힘든 환경에 있는 요즘 청년들에게는 이런 말이 지금 당장은 이해가 안 될 거라는 거다.

 


▶ 본인이 하는 일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매우 특이하다. 그리고 대기업 경력도 빵빵하고 정부기관의 일도 하면서 돈도 잘 번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는 좀 다른 삐딱한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그 분은 회계일을 하다가 회사가 법정관리에 넘어갔다. 다른 사람은 다 회사를 떠났는데 이런 것도 경험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법정관리의 모든 절차에 뛰어들어 마지막까지 남아서 그 일을 온몸으로 해냈다. 정말 죽을 만큼 힘이 들었지만 끝까지 해 냈다. 그리고 퇴사를 했는데 자신이 속했던 회사의 법정관리를 담당했던 컨설팅사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자신들과 함께 다른 회사 법정관리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법정관리 일을 처리해 주는 컨설턴트로 1인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이 법정관리 회사에 있어 봤기에 그 회사 사람들의 심정도 잘 알고 더 부드럽게 일이 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유치한 예가 아니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의 일이 특장점이 없고 남들 다 하는 일 모든 회사에 있는 일이라고 깎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은 똑같지만 그 일을 행하는 방법을 특별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 난다. 그런 증거들도 봐왔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았으면 좋겠다. 꿈을 쫓는 것도 좋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현실이 질퍽하든 장밋빛이던 말이다.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면서 배워나갈 수 있고 실력이 쌓인다. 보고서 많이 쓰고 엑셀 잘한다고 그게 실력은 아니다. 회계책을 보고 배운 것은 그 책의 저자의 실력이다. 배운 것을 현실에 써먹을 줄 알고 또 써먹으면서 그것에서 다시 배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직장인의 실력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은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에 있고 그 문제를 인식할 수 있고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현실을 가장 잘 보는 사람도 현업을 하는 직장인이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넓은 시각으로 보고 답을 찾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면 자신만의 능력을 더 개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잘 난 사람이었다. 인터뷰 동안 그의 잘남에 눌려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 생각은 '그럴만 하다.' 혹은 '나도 실력을 쌓아야 겠다.' 는 것으로 바뀌었다. 질문서 없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것은 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능력의 근저에는 십년여동안  아프리카를 뛰어다니며 바닥부터 하나씩 쌓아온 경험에 근거한 실력과 자신감, 그리고 현실에의 깊은 고민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후배들의 투정과 고민에 이렇게 따갑지만 꼭 필요한 얘기를 해 주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혼자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남의 힘듬을 돕는 사람은 요즘 찾기 힘드니 말이다.  

"보고서 많이 쓴다고 엑셀 잘한다고 그것이 실력은 아니다. 배운것을 써먹을 줄 알고 써먹으며 다시 배워나가야 그게 직장인의 실력이다."  나조차 반성하게 되는 말로 이 사족을 닫는다.  ◀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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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직장생활연구소, 직장인 인터뷰, 퇴사, 퇴사이유,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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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0 _ 일하면서 배웠다. 그리고 1인 기업가가 되었다.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4.29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1970년생, 올해 마흔 일곱 살의 김용빈입니다. 개발마케팅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아프리카와 신흥시장에서 신사업 개발과 개발협력 (쉽게 말해 원조) 사업을 만드는 일에 대한 자문, 연구, 강의, 기고를 하고 있습니다.

 

▶ 커리어를 간단히 설명해 달라.

한국외대 포르투갈어 학과 89학번이다. 군대를 학사장교로 갔는데 961월에 앙골라에 평화유지군 파견인력을 뽑는다는 국방일보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앙골라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국가이고, 어학연수를 못 간 나에게 무언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가수 신정환도 1진 인력으로 거기에 있어서 실제로 만났었다. 96년 일 년 동안 앙골라에서 근무를 했었다. 그 우연한 시작 이후로 나의 모든 일과 삶의 나침반이 아프리카로 향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어를 전공한 많은 사람들은 주로 브라질 일을 하는데 나는 군생활의 경험 때문인지 아프리카와 계속해서 인연이 닿았다.

 

▶ 전역 한 이후에는 어땠나?

99년에 전역 이후 다른 회사에 근무하다가 2000년 우연히 삼성물산 상사부문에서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컨츄리마케팅(country marketing)’을 한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봤다. 그걸 보고 무작정 삼성물산 홈페이지의 웹 마스터 이메일을 찾아서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전공했고 앙골라에서 군생활도 했고 외대 경영대학원에서 “(앙골라와 남아공이 포함된) 남부아프리카 경제공동체관련 논문도 썼다. 지금 삼성물산에서 시작하려는 사업에 흥미가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보내고 2시간만에 답장이 왔다. 인사팀에서 보고를 위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이력서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후에 실무자, 임원까지 면접을 보고 2000년에 삼성물산에서 경력공채로 입사를 했다. 당시 삼성물산의 실무자 중 아프리카에 대해 깊게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적었고 아프리카 일을 하기를 모두 꺼려했던 것 같다. 그 후 2011년까지 삼성물산에서 일한 후, GS건설로 옮겨서 3년간 더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 2014년에 회사를 떠나 1인기업가로 독립했다.  

 

▶ 아프리카 관련 일은 생소하다. 어떤 일인가?

내가 몸담았던 곳은 프로젝트 사업부였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 수주하거나 투자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다. 건설, 정유공장, 가스 충전소, 통신라인, 발전소 등의 인프라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하는 조직이었다. 그런 사업을 개발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사업의 모습을 그리는 일을 했다. 구두를 닦는 경우도 찍새딱새가 있다. 찍새는 상품을 물어오는 것이고 딱새는 그 일을 실제로 실행 하는 것이다. 나는 소위 아프리카의 신사업의 아이템을 물어오는 가장 최전방의 찍새였다.

 

▶ 어떤 일을 해서 어떤 성과가 있었나?

오천 헥타르 정도 되는 땅에 관계수로를 만드는 일, 연안 운송 프로젝트, 데이터센터 개설 같은 일에도 관여했다. 해외사업을 하는 사람의 능력은 지역전문성, 기능전문성, 아이템전문성으로 볼 수 있다. 언어와 통상을 전공한 나의 경우 아이템전문성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현장을 찾아 다니며 배웠다. 양계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것에 대해 배우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기본적인 책을 몇 권 읽고, 사료공장, 도계공장 등을 찾아 다니면서 고수들에게 배웠다. 아프리카 최전방에 혈혈단신 혼자 나가서 싸워야 하는데 내가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 커뮤니케이션도 안되고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번 프로젝트마다 공부를 하며 배워서 나갔다. 나는 아프리카라는 지역에 대한 전문가 베이스였기 때문에 늘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 본인이 계획을 세우고 행동도 하고 성과도 얻고 책임도 지는 이런 일을 회사에서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회사를 떠난 지금 보면 엄청나게 소중한 경험인 것 같다.  

지금 보면 너무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하지만 회사 다닐 때는 그것이 힘들고 너무 싫었다. 처음부터 내가 기획하고 내가 실행하고 책임지고 맨땅에 헤딩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배워서 스스로 일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힘들기 때문이다. 대기업 시스템 속에서 편하게 배우는 것을 보통은 원했을 것이다. 입사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던 것도 힘들긴 했다. 삼성물산이 공채 출신에 대한 순혈의식이 매우 강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결원 혹은 신사업 개발을 위한 충원 때문에 뽑힌 것이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메일을 보내서 나 필요하지 않니?’라고 물어서 들어온 사람을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본 것도 사실이었다. 회사를 떠난 지금 돌아보면 회사에 들어가서부터 혼자 일하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 회사원일 때 본인은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삼성스럽거나 직장인스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삼성은 삼성이 원하는 삼성맨’, ‘삼성다움의 가치가 있고 그것을 신입 때부터 가르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회사 다닐 때 내 별명은 영업연구직이었다. 영업을 연구하듯 한다는 뜻인데, 무언가 한번도 선례가 없던 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선배들이 뭐 하러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냐? 시키는 일이나 잘해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선배들이 하던 것과 똑같이 해봐야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야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처음에는 매우 불안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처음에 시작한 몇 개의 프로젝트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나에게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았다. 성과가 나니까 간섭이 확 줄었다.

앙골라 양계사업을 개발할 때 일이 기억난다. 총 규모가 600억이 넘었다. 이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출장도 가야 하고 외부 업체를 동원해 사업성검토(FS) 보고서도 써야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 “뭐 하러 아프리카에 양계사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닭에 대해 뭘 야냐? 고작 프라이드 치킨이나 시켜 먹는 것 빼고 없지 않냐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설득이 안됐다. 그 때 마침 정부에서 주는 신사업개발 지원자금이 있었다. 입찰을 통해 1억원이 조금 넘는 자금을 마련, 컨설팅 회사와 함께 사업계획을 준비했고 결국 수주를 했다. 그렇게 성과를 회사에 보여 주니 그 이후로 아무 말도 없었다.

시작은 정말 쉽지 않았다. 아무도 해본 적이 없으니 안 된다는 Fast follower 문화가 지배하는 회사에서 회사 동의없이 신규 사업을 개발하는 것은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회사의 지원없이 시작하는 일이 있었던 거다. 어찌 보면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혼자 창업해서 일하는 과정을 일부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 회사에서 승승장구 했는데 왜 회사를 그만뒀나?

그 동안 새로운 일을 하면서 계속 배우는 즐거움으로 회사를 다닌 것 같다. 하지만 10년 정도가 되니 한계가 명확히 보였다. 또 다른 이유는 더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 박사과정에 간다고 했을 때 극렬히 반대하는 걸 보고 정이 많이 떨어졌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계속 나를 돌려서 매출을 뽑아내야만 했다. 간단히 말해 회사에는 100억을 버는 소수가 있고 0원을 버는 다수가 있다. 0원을 보는 사람에게 50억을 벌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100억 버는 놈을 다그쳐서 150억을 벌게 하는 건 가능하다. 그래서 시간을 뺄 수는 없다는 것이 회사의 논리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그 동안 그렇게 힘들게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었는데 이 정도 요청도 못 들어 주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학위과정 지원요청에 대해 박사과정이 업무와 연관성이 없다는 인사팀의 회신을 듣고 정말 정이 훅 떨어져 버렸다. 일도 무언가를 채워가면서 해야 한다. 10년간 일했으니 조금 더 채우고 더 달리려는 마음을 몰라주었다. 그냥 회사는 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회사와 트러블이 있었을 때 팀장이 외국어생활관에 가라고 기회를 줬다. 세 달간 언어만 배울 수 있는 삼성의 좋은 시스템이었다. 거기에 가서 기숙사에 가서 조용히 생각을 하며 산을 바라 봤다. 서른 살에 육군에서 제대하며 한 고민은 앞으로 뭐할까?’ 정도였다. 남자가 마흔 살에 느끼는 불안과 답답함은 말로 하기 힘들다. 남자에게 마흔은 엄청나게 큰 의미다. 10년간의 회사 생활 동안 무얼 했나 하고 돌아보니 내 힘으로 한 것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것뿐이었다. 그 때 결심을 했다. 지금 마흔인데 지금을 딛고 일어서서 현역으로 80살까지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금 돌아 보면 나는 삼성이 강요하는 그런 조직문화에 젖어 들지도 않았고 회사가 나에게 크게 강요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삼성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내가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원래부터 회사를 길게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지라 규제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것 같다. 길들여 지지 않은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 단지 그것만이 이유였나?

사업(프로젝트) 개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조직의 이름을 등에 업고 간다. 상품 트레이딩과 달리 조직의 힘과 지원이 있어야만 일이 가능하고 혼자 나가서 프리 에이전트로는 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까지 내가 해온 일과 성과가 개인이 한 일이 아니라 삼성 로고가 찍힌 명함이 한 일인 것 같았다. 냉정히 생각해서 이 성과 중 온전히 내가 만들어 낸 것은 과연 몇 % 일까 궁금해 졌다. 그 질문의 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계속해서 회사에 있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조직을 떠나봐야 알 수 있는 답이었다. 삼성 명함과 내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봐야 나의 역량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다.

 

▶ 회사와의 분리를 위해 준비를 한 것이 있다면?

공부를 했다. 삼성물산에 있을 때부터 박사학위 공부를 했다. 오랫동안 돌아다니며 현장에 부딪히며 실무를 했는데 이런 경험이 이론과 맞물려 있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체의 그림을 모르고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업계는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곳이다. 거의 대부분이 명함에 PH.D. 라고 찍혀 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 회사가 말렸던 박사학위 취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근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공부를 하니 그간에 쌓은 내 경험의 조각들이 맞춰지며 하나의 멋진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공부를 하면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동안은 사업개발이 조직없이 개인적으로 버틸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개발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현실화 시키는데 시간과 돈이 들고 그것을 실행하고 만약 잘 돼서 성과가 나도 몇 년 후에야 현금이 Income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버틸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회사 안에만 있었으면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 1인 기업이다. 보통 회사에서 일한 것의 연장선으로 출간, 강의, 교육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생각하는 1인기업가의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나에게 들어오는 강의도 조금씩 뻔해진다. 뻔해진다는 말은 일반적 (General)이고 범용적인 것을 말한다. 여러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1인기업 독립하기그리고 직장에서 어떻게 배우고 공부해야 하나?’ 이런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위하는 것이기에 원하는 것이 비슷비슷해진다. 그렇다 보니 현재 상태만으로는 1인기업이라는 것도 한계점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주 수입원이 기업들의 사업개발을 돕는 자문이다. 비즈니스 모델로는 관점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을 쓴 박용후 씨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지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여러 회사나 개인의 일을 돕는 것이다. 나도 박용후씨를 보고 1인기업으로서 나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다듬었다. 해외사업개발 쪽으로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회사인데 중량급을 정직원을 채용하기에는 인건비 부담이 있는 중견회사에 사원~대리 월급 정도를 받으며 원하는 일을 해주는 쪽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업 단위나 시간 단위 자문 형식의 계약도 있다. 해외사업 개발이라는 하나의 리소스를 가지고 여러 회사의 일을 해 주는 형태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1인기업 모델이다. 그렇게 하면 나도 시너지가 많이 생긴다. 회사의 사업개발 업무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상대방 국가에서 생기는 대관업무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나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 회사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일인데 내 입장에서 보면 원래 하던 일에 하나의 일을 더 하는 것이기에 양쪽이 모두 좋은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상당기간 유지될 것 같다.

 

▶ 그럼 회사 일을 하면서 일인 기업의 일은 어떻게 준비 했나?

회사 다니면서 개인 일의 시도를 했었다. 간단한 자문이나 글을 쓰는 일을 2년동안 했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직장인에서 1인기업으로 가는 오버랩 기간이었다. 나는 전형적인 생계형 직장인이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그 이후에 1인기업으로 일이 잘 안되면 생활을 해 나가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능력이 혼자서 사회에서 먹힐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돌다리를 두들겨 보는 과정은 꼭 필요했다. 연말에 계산을 해 보니 내 2개월치 월급 정도가 나왔다. 내가 집사람이나 회사도 모르게 일해서 이 정도면 아예 본업으로 뛰어 들면 6개월 정도의 월급은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최소한 굶지는 않고 살아갈 수는 있겠구나 라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확인을 하고 나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준비없이 그냥 박차고 나오는 것은 매우 매우 위험하다.

 

▶ 회사를 나올 때 대기업 부장이었다. 인터뷰이 중 가장 직책이 높다. 연봉도 많았을 텐데 고정수입이 끊긴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조금은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오자마자 첫 달부터 수입이 발생했다. 회사를 나오기 전에 자문계약을 하나 체결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퇴사 전에 KOTRA 사이트의 지역전문가 칼럼란에 교수나 연구원이 쓰는 학술적인 글이 아닌, 잘 읽히고 임팩트도 있는 글을 쭉 연재 하고 있었다. 그 칼럼이 호응도 좋았고 평도 좋아서 정부의 일도 따낼 수 있었다. 마지막 출근 하는 날 정부기관에서 연구용역 계약도 받았다







- 2 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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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1인기업가, 일인기업,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회사를 떠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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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미 원데이 클래스] 퇴사 후 카페 인수를 통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4.08 17:37 / Category : Wanna Me



직장인들을 위한 원데이 워너미가 릴레이가 시작 됩니다. 


공대생에서 엔지니어 회사원으로.  

대기업 퇴사 후 카페를 인수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사람 "유재천 코치" 입니다. 


퇴사 갈등, 회사라는 온실을 떠나 자영업의 거친 세상에 뛰어 들어 좌충우돌 고생.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며 고생한 경험, 자신이 꿈꿔왔던 작가, 코치, 동기부여가, 그리고 의미공학연구소 까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옆의 동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배움은 경험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미리 체험해 보고 확인해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워너미 입니다. 

미리 경험으로 확인해 보는 것만이 실패할 확률을 줄여 주고 적성과 맞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신청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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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카페창업,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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