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라디오 인터뷰_ 직장인의 시간은 줄고, 직업인의 시간은 는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22 07:00 / Category : 교육,강연,상담



YTN 라디오 생생인터뷰]  직장인의 시간은 줄고, 직업인의 시간은 는다.


생방송 인터뷰는 늘 긴장이 됩니다. ^^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우성PD
■ 대담 :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




<내용 듣기>




  
◇ 김우성PD(이하 김우성)> 사상 최악의 취업난, 재취업의 어려움, 경단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럼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있는 사람은 안심할까, 이런 생각하실 텐데요. 그렇지 않다는 말도 많이 들립니다. 평생직장, 더 이상 없다는 인식도 흔하고요. 기술 사회 문화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서 안정적인 일자리 수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직장에 충성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가져갈 수 있을까요? 걱정도 오래됐죠. 젊은이들은 직장이 아니라 직업에 관심을 갖는다고 합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실질적으로 직업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따고 배운다는 얘기, 기술 배우기 열풍으로 읽힙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슬기로운 퇴사 준비, 직장생활, 직업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분이죠,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이하 손성곤)> , 안녕하세요.

◇ 김우성> 과거에도 사실 자격증 열풍이 많이 불었거든요. 최근 젊은 세대들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기술배우기, 자격증 취득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 어떤가요?



◆ 손성곤

간략하게 말하면 살아갈 날은 길어지는데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생 이모작 같은 용어는 익숙한 상황이 됐고요. 운 좋게 정년까지 회사를 다녀도 그 이후의 삶에도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거죠. 예전 직장인들의 자기계발은 취업, 승진 시험처럼 회사에 들어가거나 승진하는데 중점을 뒀는데요. 요즘 자기계발은 새로운 수입원을 찾거나 새로운 직업을 만들기 위해서 실전용 자격과 실력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산업인력공단 자료에 따르면 건물 외벽, 마무리 등의 기술자인 미장기능사 실기접수생은 2년 새 130여 명에서 213명으로 약 두 배가량 늘기도 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도배, 타일 기술 자격증 시험도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 김우성> 예전에는 비하의 의미로 기술이나 배우지, 이런 말도 있었는데 이제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손성곤 소장님 이야기를 들어봐도 스펙용으로 자격 쌓고 기술배우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일을 하려고 배운다는 게 새로운 상황인데요. 직장 생활을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불안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특히 평생직장 대신 평생직업을 갖자, 와 닿았는데요.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은퇴 앞두신 분들까지 평생직업이 세대를 통틀어 관심사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십니까?



◆ 손성곤

우리가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하면 회사원, 직장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사람들을 직업인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왜냐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자율성이 좀 떨어지고요. 회사라는 조직이 없이는 스스로 경제활동 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년까지 경제 활동을 하는 비중도 낮아지고 있어서 조직 없이 경제활동을 하는 직업, 그 자체에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50대 이상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특이한 점은 20, 30대처럼 젊은 세대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요. 특정 직장에 소속되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전부였던 회사 중심의 관점에서 개인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적극적인 살 길을 모색하는 인식의 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퇴생, 퇴준생이라고 부르면서 자기 직장이 싫고 회사가 답답해서 떠나는 직장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 김우성> 예전에는 직장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직장에 대한 의존이 높았는데, 그 의존으로부터 벗어난다, 회사가 아니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들. 사실 선진국에서는 많다고 알려졌는데요. 지난번 저희와의 퇴준생 인터뷰 때도 말씀해주셨지만, 여기 아닌 어딘가가 더 좋을 것이라는 엘도라도를 꿈꾸기보다는 현재를 열심히 살면서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지금 불고 있는 기술 배우기나 자격증 열풍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준비하고 바라보아야 할까요?




◆ 손성곤

맞습니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인데 조금 안 맞고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바로 다른 길을 해야겠다고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진 않고요. 어떤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조직의 생리, 인간관계, 조직 안에서 일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한 곳에서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결과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면 다른 직업이나 기술을 선택하더라도 그 기술을 영위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거든요. 실제로 회사에서 일하고 배운 것을 기반으로 두 번째 직업을 만들어내는 분들도 많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나와 정말 맞는 일이 무엇인지, 나의 강점을 파악하고 충분히 탐색한 후에 두 번째 일을 준비하는 것이 맞습니다. 두 번째 일을 선택했는데 그 일마저 나와 맞지 않고 원하지 않은 일이라면 직업적으로 방랑자가 되어버릴 수 있거든요. 또한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자격증이나 기술 등 커뮤니티도 많습니다. 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충분히 찾아보고 나아가 그 일을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면밀한 사전 노력도 필요합니다




◇ 김우성>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작품이 떠오르는데요. 현재 직장에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자기 성과를 얻는 경험이 있어야 회사를 벗어나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얘기, 와 닿는데요. 실제로 여러 직장인들과 모여 여러 공부, 세미나 준비를 마련해주시는 입장이시니까 여러분들께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고요. 자격증도 마찬가지로 정보를 열심히 찾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두려워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술 잘 배워도, 해외처럼 배관공만 해도 먹고 사는 나라가 있는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기술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지 않느냐는 말이 많습니다. 직업보다는 직장을 선호하는 이유일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손성곤

직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안정성이나 성공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안정성과 성공에 대한 기준을 개인에 맞게 다시 정의하는 게 필요합니다. 안정성은 짧게 바라보면 안 되고요. 3, 5년이 아니라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최소 80년 정도까지 평생이라는 기준으로 늘려서 안정성을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성공의 기준도 단지 돈을 많이 벌고 일반적인 기준에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는 것에서 조금 작더라도 개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바꿔 나갈 필요가 있는 거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공의 기준을 나 스스로의 원칙과 가치에 맞게 정의하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예전에 저도 기사를 봤는데요. 어떤 부부가 도배를 배워서 서울을 떠나고 새로운 삶을 사는 변화를 택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가 사회적 기준으로 몸을 움직여서 하는 직업이 무시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상황은 직업에 대한 사회적 시선, 개인의 관점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시점이라고 보기 때문에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도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는 시기가 곧 올 거라고 예상합니다




◇ 김우성> 자기의 가치와 기준으로 삶을 산다, 언뜻 보면 추상적인 말 같은데요. 사실 조직에 속한 사람은 조직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기에 답답한 서울을 떠난 용기, 도배를 한다는 생각도 두려울 수 있는데요. 이 흐름 속에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이신 것 같고요. 손성곤 소장도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이시면서 직장인이시잖아요. 여러 가지 나은 삶, 직장 등을 많이 이야기하실 텐데요. 세미나 교육 계속하고 계시죠?

◆ 손성곤> , 지금도 매달 하고 있고요. 저는 일단 직장 안에서 개인의 기준으로 원칙을 찾고 자신이 매몰되지 않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8년도에는 직장인에서 변화를 택해 다른 직업인으로 살고 있는 분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실제 삶은 어떤지 현실을 알려드리는 다양한 세미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 김우성> 많은 분들이 막연하게 힘들어서 퇴사를 생각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하고 소중하니까요. 지금 새로운 준비를 하시는 사람처럼 다양한 고민과 꿈을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손성곤> , 감사합니다



◇ 김우성>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이었습니다.

 

Tags : YTN, 경제, 손성곤, 인터뷰, 직업인, 직장생활연구소,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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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9_ 30세 퇴사후 세계여행. 긍정적 백수가 되다.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15 08:17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현재 수입은 없다버틸 만 한가?

혼자 살고 있다퇴직금은 여행경비로 썼고 이제는 모아 놓은 돈을 꺼내서 아껴 살고 있다월세휴대폰비 등만 해도 솔직히 적은 돈은 아니다하지만 감사하게도 잘 버티고 있다언젠가 이렇게 벌지 못하고 준비를 해야하는 웅크리는 인고의 순간이 올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딱 지금인 것 같다.

 


▶ 여행도 다녀왔고이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구상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탐구 중이다아이디어는 굉장히 많다돈이 될 만한 것내가 할 수 있는 것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고심 중이다그것을 실행하기 전까지 돈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도 고려 요소 중 하나다.

 


▶ 나이가 서른이다다시 경력직으로 이직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큰 조직생활에 대한 로망은 없다그래서 이직은 고려해 본적이 아직 없다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큰 조직의 한 부문 한 팀에서 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처음에는 창직창업처럼 내 능력으로 무언가 새로 하는 걸 생각했었다.

 


▶ 그럼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 건가?

굳이 말하자면 돈벌이를 하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돈과 가치의미를 분리해서 돈벌이는 돈벌이대로 하고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기도 하다그런 일을 찾는 과정으로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으며 배울 수는 있을 것 같다지금 나 혼자 무슨 일을 당장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화장품 일을 하는 지인이 있어서 함께 일하는 것도 생각 중이고외국인 친구들과 논의 중인 일도 있다무역과 관련된 일이라고 보면 되겠다개인적으로 집중하는 키워드는 4차 산업, AI 처럼 기술적인 부분은 아니다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지방분권그리고 고령화라는 큰 트랜드를 생각하고 있다그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 요즘 하루 일상은 어떠한가?

8시쯤 일어나서 오전에는 관심 있는 분야의 기사나 동향을 읽는다백수가 되고 난 이후로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있다도서관에 거의 매일같이 가고 있다관심 있는 분야의 강연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사람들을 주로 많이 만나고 있다개인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영어공부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여행 어플을 통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 백패커 들에게 서울 가이드를 해주기도 한다내가 여행할 때를 생각해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되고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하기 때문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백수의 특권인 것 같다.


 

▶ 딱 까놓고 얘기해 보자. <서른 살대기업 퇴사 후 세계여행그리고 그냥 백수냉정히 지금 상태만 보면 이렇다전형적으로 근성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미래 계획도 없는 젊은 친구라고 기성세대가 보면 취급할 수 도 있다.  혹시 있을 수 있는 누군가의 이런류의 비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비난이라고 생각지 않는다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의 잣대로 싸잡아 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정말 이상과 허무맹랑한 꿈만 좇으며 퇴사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YOLO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욜로한 삶만을 즐기는 사람은 미친놈이다현실은 현실이다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다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삶이 없었던 사람들이 욜로라는 키워드로 각자의 인생을 탐구하려는 시도이고트렌드라고 생각한다현실을 충분히 고려하고 미래에 대해 전략적으로 탐구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본다.








 


▶ 일년 안에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는 비율이 거의 30%에 육박한다고 한다본인이 직접 겪으면서 보기에 진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서베이에 나온 것 말고 진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우선은 조직에 대해 정보가 너무 없다는 거다대부분의 취준생들은 겉으로 보이는 조직의 하드웨어는 알아도 실제 그 조직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는 모른다소프트 웨어는 사람문화서로간의 태도이기 때문에 그건 경험해 봐야만 아는 거다학생 시기에 스펙을 쌓거나 취업 자체가 급하다 보니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보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또 하나는 그냥 남들이 인정하는 회사 이름만 보고 취업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개인의 측면으로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잘하는 일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취업을 위한 절박한 취준생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하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 하고 싶은 일 이라는 말이 나왔다당신은 그걸 찾았나?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다는 건 실제 그 일을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심지어 조금 관심 있는 분야라고 해서 파보고 공부하고 일해보니 아닌 경우도 많다그런 사람들이 99%일 것이다나도 그걸 모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만 살아왔었다지금 드는 생각은 그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실패를 하다 보면 자존감이 줄어든다나는 부족한 사람인가제대로 일을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나도 겪어봐서 안다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최고로 좋겠지만그렇지 않다고 해서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나는 좋아하는 일이 뭔지 도저히 몰랐다하지만 정말 싫어하는 일나와 맞지 않는 일내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알았다그래서 그 일을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그 선택지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하기 싫은 일은 단지 아침에 출근하는 것월요일에 회사 가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꿈을 찾아 가세요가슴 뛰는 일을 하세요라는 말이 다수에게는 언어적인 폭력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아무리 찾아봐도 노력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하고 싶은 일을 못 찾은 대부분에게는 **을 향해 가는 자유 보다는 **로 부터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회사 업무에서도 내가 정말 지긋지긋하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 할 만한 다른 일을 더 잘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하기 싫은 일을 다 안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안다어떤 지향점을 찾았다면 또 그 지향점으로 가기 위해 어떤 하기 싫은 일을 만난다면 그 일은 감내를 해야 한다고 본다마법의 성으로 가기 위해 늪을 건너고 괴물과 싸워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만약 그 하기 싫은 일이 정말 죽기 보다 싫다면 그 지향점으로 갈 수 없다그런데 과정에서 오는 하기 싫은 일을 만날 때마다 거부한다면 성인으로서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그냥 개인의 의견이다.


 

▶ 상충의 시대돈을 아껴쓰며 미래를 준비하는 그레잇하게 살고 싶지만동시에 YOLO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부딪힌다고 본다어느 쪽이 맞는다고 보나?


그레잇’ 이거나 YOLO 모두 개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이다욜로를 택한 사람도 마냥 즐기고 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평소와 다른 여유 있는 시간에서 또 다른 나를 찾고 앞으로 다음 단계를 고민할 것이다욜로하면서 돈을 다 탕진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굳이 답을 말하자면 51%는 현실을 발판으로 그레잇을 선택할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 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변화 중 하나가 Its Me라고 생각한다남을 의식하거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나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는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 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처럼 기술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서로간의 인식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본다.

 


▶ 본인 행동의 원칙기준을 말해 준다면?


<행복한가후회하지 않을까더 나아간다면이 일이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인가?> 라는 질문이 기준이다.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으면 하지 마라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모르면 해라는 말이다좀 말장난 같지만 해야 하는지혹은 해도 되는지중에서 해야 하는 것을 고르려고 한다사실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고 팀장님과 저녁에 술을 한잔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나는 나중에 결혼해서 오뚜기에 다니면서 이 일을 하면서 자녀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녀에게 보여 줄 수 있을 만큼 떳떳한 일을 하고 싶었다이건 가치관의 차이인 것 같다.

 












▶ 남들보다 조금 긍정적인 사람 같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예전에 어머니가 내려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그 때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께 어떻게 살겠다는 내용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그리고 내일로 열차를 타고 일주일간 국내 여행을 혼자 했다전라도 장성을 지나고 있는데 12월 한겨울 눈밭이었는데 유독 한 곳만 너무 예쁘게 녹색 풀이 나 있었다그 곳만 봄인 것 같았다그 모습을 보고 너무 행복했다마치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들이킨 것 같은 시원함과 행복감 이었다당시의 감정에 대해 <두 눈 두 팔두 다리만 있어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노트에 메모를 했던 것 같다건강하고 자유로우면 행복한 것 같다.

 

해외여행을 하다가 느낀 점은 평일 낮에 여유롭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돌아와서 한국에서 한강 공원을 일부러 나가 봤는데오후 3시에 운동하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대한민국에도 좋은 요소는 너무 많다내 외국인 친구도 한국을 너무 부러워한다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안 좋은 것만 찾아내서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인 이불을 뒤집어 쓰는 것 같다.

 


▶ 퇴사 후 여행도 다녀오고 지금은 경제 활동을 안하고 있는데 불안함이나 초조함은 없나?


물론 있다하지만 그 감정은 나를 지배하는 감정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예전에 취업 전에 어떤 불안이 나를 뒤덮었던 적도 있었다지금 느끼는 불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시간은 없고 내가 현재 그 일을 할 능력이 없다는 데서 좀 불안과 짜증은 있다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매일 나를 전체적으로 덮고 있지는 않다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 지금 입사동기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한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동기 한 명이 그만둔다는 얘기를 들었다나는 회사 안에서 더 많이 발버둥 쳐보라고 얘기하겠다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발버둥을 쳐 보라고 말해보고 싶다현재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부서장과도 싸워본다든가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든가아니면 내가 이런 제안을 하면 회사가 받아 들여 줄까? 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해보라고 말해주겠다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나오라고 말하겠다사실 나는 부당한 것에 대해 제대로 말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상황에 맞게 알고 있던 사회적인 스킬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 퇴사하기를 잘 했구나 라고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시간과 기회가 많다는 것을 느낄 때다한국인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직장인이지만 야구선수와 같이 퇴사하면 FA선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FA가 되면 다시 계약이 안될 리스크도 있지만 연봉을 몇 배로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회사에 종신계약을 맺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 채로 살기를 원한다그건 가치관의 차이고 이상적인 차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기회를 만난다는 것이 좋았다물론 회사 안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도 있지만회사 밖의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 배우는 것들로부터 얻는 경험과 인사이트는 엄청나게 많다.

 


▶ 5년 후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가?


지금 모색 중인 분야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그것으로 한층 더 성숙해나가는 과정에 있었으면 좋겠다다시 어떤 조직에 속하든 창업또는 프리랜서든 주체적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어떤 방향을 선택하든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서 지금 공부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다.

 


▶ 마지막 질문이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한 분이 세계여행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블로그 이웃 중에 대단히 능력이 있고 여성분이 있었다어느 날 그 분의 블로그의 내용에 위암과 관련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알고 보니 그분이 위암 말기였다병원에서 앞으로 몇 개월이라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으면 사망보험금을 미리 받을 수 있다고 한다그 분은 그 보험금마저 미리 받았을 정도로 안 좋았다내용에 응급실에 실려갔다오늘은 겨우 버텨냈다새로운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이런 내용이 드문드문 올라왔다어느 때는 글이 안 올라오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분을 응원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누군가 에게나 결정적인 순간이 올 텐데 그 순간에 충분히 후회 없는 인생을 나는 살고 있나?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그 생각을 가지고 순간순간에 후회 없이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맞추며 살고 싶다.

 

 







▶   처음에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다른 인터뷰이 처럼 이룬것도 없고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도 없고이제 겨우 찾고 헤매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과정'의 날것을 그대로 듣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기다렸고 결국 승낙했다.  그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이었다퇴사하고 이렇게 긍정적이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설령 그 긍정이 무지 혹은 무경험에서 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긍정의 힘은 세다


그는 서른 살 이다아직은 이제 겨우 한 챕터를 넘긴 그의 인생 노트의 다음 장에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기대가 된다그의 머리속에 있는 아직은 희미한 그림이 명확해 지길 바란다. 그는 과정을 걷는 사람이었다.  10년후에 다시 만나면 되겠다. 그가 발끝만 바라보고 오늘을 사는 '요즘 것들'이 될지 밝고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될지 궁금해 진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세계여행, 인터뷰, 퇴사, 퇴사후세계여행,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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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9_ 30세. 퇴사후 세계여행. 생산적 백수가 되다.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13 07: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를

저는 1989년생. 서른 살. 식품회사를 퇴사하고 세계여행 후 돌아온 생산적 백수 박상준 입니다.


 

▶ 커리어를 간략히 알려달라

서울의 4년재 대학교 07학번 국제학부 러시아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남들보다 취업을 좀 빠르게 했다. 26살인 2013년에 오뚜기에 취업을 했다. 생일이 빨랐고 군대와 교환학생을 모두 빠른 시기에 마쳐서 조금 빨리 입사를 한 편이었다. 오뚜기에서는 국내사업부에서 유통,영업관리 업무를 정확히 3년간 하고 201612월에 퇴사했다.


 

▶ 회사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했나?

국내사업부의 B2C영업을 했다. 마트나 대리점의 오뚜기 제품의 유통과 매출을 담당하는 영업관리였다. 서울 지역에 공급되는 모든 오뚜기 제품이 우리팀의 소관이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 공급되는 오뚜기 상품의 매출 달성이 주요 업무였다.


 

▶ 오뚜기라는 회사의 외부 이미지는 갓뚜기다. 좋은 회사인가?

어떤 면에서는 좋고 어떤 면에서는 아니다. 좋은 측면은 고용 안정성이 높아 함부로 사람을 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에 나오는 계약직 정규직 전환도 모두 그런 장점의 한 모습이다. 또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평가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보상체계도 좋다. 조금 나쁜 측면으로 보면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이건 베스트 셀링 아이템을 가진 식품 제조업의 특징인 것 같다. 부서 이동도 거의 없는 뭐랄까 흐르지 않는 물 같은 느낌 이었다.


 

▶ 회사 안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부분은 무엇인가?

다른 제조업 회사의 영업조직들도 비슷하겠지만 매출압박이 심했다. 그 상태에서 상명하복 찍어 누르기 등의 폐쇄적 조직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서이동도 적기 때문에 변화할 수 없다는 것도 답답한 부분이었다.

 


▶ 3년차가 매출 압박을 받나? 보통 위의 선임이나 팀으로 목표가 나오지 않나?

팀의 목표에서 개인별로 명확한 거래처별 목표가 있었다. 선배들이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업무에 관여하거나 일을 해 주지는 않는다. 물론 선배들에게 술 한잔 하면서 영업 노하우에 대해 배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영업 활동에 대한 책임은 모두 개인별로 있었고 담당이 아니면 그 업무를 대체하기가 힘든 구조였다.

 


▶ 전공이 어문계열이었다. 취업은 잘 되었었나?

이건 케바케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비교적 취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당시는 열린 채용이라고 전공에 관계없이 사람을 뽑는 직군이 영업이었다. 그래서 전공을 살릴 수는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영업관리를 선택했다. 나중에 선배에게 들어보니 내가 나온 학교 정도면 바로 그만두지도 않고 또 모자라지 않게 빠릿빠릿하게 일할 것 같아 뽑았다고 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 이었나?

조직의 시선으로 보면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일하기 보다는 욕먹기 싫어서 일을 했었다. 보수적인 기업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고 그것으로 압박하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다른 동기들과 비교를 하며 욕먹고 뒤쳐지는 것은 너무 싫었다. 나는 당근을 보고 앞으로 뛰는 것이 맞는 사람이었는데 채찍만 있었던 것 같다. 뒤에서 채근이 심했기에 내가 스스로 내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동기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그저 머리 숙이고 일만 했던 것 같다.

 


▶ 회사에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직장생활 고작 3년차였는데 늘 고민했던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앞으로 뭐해 먹고 살지?였다. 계속 비교와 목표 달성 때문에 Push를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선배들도 다른 옵션이 없기에 그냥 일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사실 영업관리라는 것이 자신만의 경력과 전문성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직군이기도 하다. 그것도 이유인 것 같다.










 


▶ 왜 퇴사했나?


한마디로 말하면 기회비용 때문이었다. 공채로 안정된 직장에 들어와서 연수를 받으며 임원들의 강연을 들었다. 이렇게 직장생활을 해야 해, 나 때는 잠도 줄여가면서, 가족보다 회사를 위하면서 회사와 함께 컸어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돌아서면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는 동경의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난 저렇게 살기 싫은데, 꼭 저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승진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럼 루저 (Loser)인가? 실패한 인생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분이 멋지기는 했지만 동시에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 회사랑 잘 안 맞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래도 똥인지 된장인지 알려면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최소 3년은 일해 보자. 그래야 뭐가 뭔지 알 수 있고, 또 경력직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보험이 될 수 있으니까. 아직 어리니 3년이 지나도 서른이고 다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 또 결혼 전이니 또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기로 전략적으로 결정했다. 그 이후에 회사와 맞는다면 더 배울 것이 있다면 다니고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는 계획이었다. 그 기준점이 3년 이었다. 3년 동안 계속 이게 최선일까? 고민을 했다. 후회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회사를 계속 다닐 때와 회사를 떠날 때를 기회비용이란 측면으로 봤을 때 나의 상황에는 떠나는 것이 후회를 더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3년이라는 시간은 판단하기에 좀 짧은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다. 3년을 다니면 딱 그 수준밖에 안보일 것이다. 하지만 10년을 다녀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한 것처럼 나의 나이 등을 고려했을 때 3년이면 판단을 하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삼십 대 초반 퇴사자들과 인터뷰를 하면 나는 내 옆자리의 선배처럼 되기 싫었다.라는 말을 한다. 본인의 경우는 어땠나?


내 선배들은 내가 아니다. 그저 우연히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할 뿐이다. 업무 외적으로 모두 다른 세계, 다른 시선,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고 본다. 회사 내에서의 선배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다른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오히려 포커스를 사람이 아닌 업무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하고 있던 업무가 나와 맞지 않고 싫어서 퇴사를 선택한 거지 하고 있는 일을 하는 선배라는 사람을 보고 퇴사를 결정한 건 아니다. 업무 때문에 야근하고 스트레스 받는 건 선배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청춘과 시간을 바쳐서 노동력을 회사의 이 일에 투입하는 것이 맞는지가 더 중요했다. 기준을 사람이 아니라 업무에 맞춰서 생각한다면 굳이 옆자리 선배의 모습에 자신을 대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업무를 하는 5년 후 미래의 나 스스로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 모습을 내 옆자리 선배의 모습으로 박제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선배의 인생과 내 인생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 퇴사 후 자체 안식년이라고 했다. 이제 서른인데 안식년이 필요한 건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안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찾기 위해 대학생들이 잠시 휴학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을 갭이어 (Gap year)라고도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워딩을 안식년이라고만 한 것이다. 굳이 다른 말을 찾자면 신조어인 Me-Time이라고 나를 찾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른 상황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꼭 몇 년일 필요도 없이 누군가에게는 며칠이 될 수도 몇 주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꼭 여행을 해야 한다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규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충분하다.

 


▶ 퇴사 후 여행. 몇 해 전부터 이게 루틴 혹은 유행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그런 루틴을 따른 것은 아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Me-Time을 갖는데 그 형태가 여러 가지일 수 있는데 나는 여행을 택한 것일 뿐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퇴사하고 친구를 만나서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에 맥주를 한잔하면서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생산적인 백수가 되겠다.라는 말을 열심히 설명했다. 결국 그 친구는 그래서 뭘 할 건데? 라는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냥 여행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카이 스캐너로 검색을 해서 태국 가는 표를 그냥 예약해 버렸다. 그러고 나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후 리마인드 알람을 보고 부랴부랴 짐을 구려서 여행을 떠났다. 어찌 보면 조금은 충동적이었던 것 같다.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잠재적 호기심이 충동처럼 일어났던 것 같다.

 


▶ 언제 돌아온다는 생각을 없었나?

누군가는 여행을 간다면 그냥 가지 말고 영상을 찍거나 여행기를 쓰면서 자신만의 컨텐츠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꼭 그래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를 생각하면 나에게 집중하지 못할것 같았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편도 티켓만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옷도 여름옷만 가지고 갔었다.

 


▶ 그럼 회사를 떠나기 전에 퇴사 후 계획이 따로 있었나?

있었다.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다. 나라에도 국책 사업이 있듯이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나만의 꼭 해야 하는 나만의 숙원사업을 정했다. 그 중 하나가 영어를 제대로 배우는 것 이었다. 영어를 잘 하면 더 많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유럽 국가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면 여행도 할 수 있고 영어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특별히 다르지 않아서 한 2~3개월 지나면 또 똑같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한국사람 만나고 놀게 된다. 대학생 때 러시아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그런 친구들을 많이 봤었다. 그렇게 정해 놓고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여행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 퇴사하기 전에 실제적으로 행동하며 준비한 건 없었나?


있었다. 바로 마음의 준비였다. 젊은 친구들이 명확한 사유나 목적, 준비 없이 그냥 그만 두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었는데, 마음까지 느슨한 채로 퇴사하는 건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절박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시뮬레이션을 굉장히 많이 했다. 10년뒤 내 나이 40이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이 나은 것일까를 고민했고 글로 많이 적어 봤다. , 사회적 지위,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처럼 제목을 정하고 그것을 글을 써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 내가 회사를 떠났을 때 닥칠 최악의 상황이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집중했다. 최악의 경우 회사 그만두고 친구들은 집도 사고 결혼하고 자녀와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돈도 없어 친구도 못 만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계속 고민했다. 최악을 고민하고 적어 보았고 감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 최악을 감내할 만한 절박함이 준비였다.

 


▶ 혹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없었다. 혹 있었다 하더라도 나에게 얘기하지 않으셨다. 원래 가족들과 친하게 지냈고 나 개인의 삶을 존중해 주셨다. 니 인생은 니가 사는 거다. 라고 하셨다.

 


▶ 여행은 얼마나 갔었나?

230, 8개월 동안 25개국 정도를 갔었다. 태국부터 시작해서 동남아를 거쳐 중국, 러시아를 통과해서 유럽을 갔고 터키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귀국했다.

 















▶ 어느 나라의 어느 곳이 가 볼만 한가? 이런 질문은 하지 않겠다. 오랜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조금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8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하다는 것을 정말 크게 느끼게 되었다. 자유로운 나라인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행복했다. 외국 친구들 중 대한민국 여권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고,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도 행복했다. 또 부모님이 건강하고 아직도 경제활동을 하시는 것도 감사했다. 짧은 회사 생활 동안 많지는 않지만 돈도 모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건강한 것에도 감사했다. 전 세계에 70억이 살고 있다면 이렇게 세계여행을 하는 나는 전 세계 상위 1%안에 들 것이다. 그것도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평상시라면 크게 느끼지 못할 것들이 여행을 하면서 정말 감사한 것으로 변했다. 아니 나의 생각의 관점이 바뀌었다.


또 하나는 꼭 직장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곳에 소속되어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작게 벌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내 블로그의 어느 글에 달린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생각보다 길은 많아요 라는 댓글이 나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되었다. 오후 3시에 밖을 나가보면 직장인이 아니면서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 조급함과 완벽주의가 없어졌다. 여행을 하면서도 매일 매일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또 정보를 얻는 대로 움직였기 때문인 것 같다. 완벽하게 살려다 보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추상적이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이 큰 의미였다.

 


▶ 돈은 좀 모았었나? 여행 경비는 얼마나 들었나?

3년 동안 월급의 60% 정도는 늘 저축을 했다. 여행은 그 돈이 아니라 900만 원 정도의 퇴직금만 가지고 했다. 호텔에 묵지 않았다. ^^ 상당히 적게 썼고 해외에서 친구들을 만나 숙소비 등도 아낄 수 있었다.

 


▶ 8개월 만에 귀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더 이상 여행할 필요가 없어지면 돌아와야겠다고 생각 했었다. 개인적으로 그 때는 나를 내려놓고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을 때라고 생각했다. 나의 여행은 꼭 유명한 장소를 가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만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 결혼식 사회를 보기로 약속했던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세계여행, 손성곤, 인터뷰,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퇴사후세계여행,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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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8_ 38세. 희망을 찾아 퇴사. 자영업을 발판으로 자기 사업에 도전하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10.25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소개를

올해 서른 여덟 살. 80년생.  커피숍을 하면서  제조업에 도전하는 ㅇㅇ 입니다.

 

▶ 학교, 회사 중심의 커리어는

서울안의  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학교 때부터 제조, 유통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입학 당시 면접에서도 제조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상품을 만들고 가치를 만들고 그 상품을 사람들이 구매하는 그런 과정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꼭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요즘은 공장이 많이 첨단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여서 IT 전산 쪽도 복수전공을 하고 학교 다니면서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다. 2005년에 아웃도어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나는 구매, 생산관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업 관리 업무를 시켰다. 당시만 해도 남자 사원도 적었다. 회사를 그만둘 당시 알게 된 건데 남자, 특히 상경계는 뽑아서 구매, 생산관리직을 시키면 일을 하다가 어느 정도 배우고 알게 되면 그만두고 나가서 자기가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영업관리를 계속 시켰던 것이었다.

 

▶ 왜 그만뒀나?

함께 일하는 직원 30명 중 나 혼자 남자였다. 여초 회사의 남자 혼자는 생각보다 힘들다. 상무, 전무 같은 임원들에게 대하는 것보다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 말 한마디라도 삐끗하면 도마에 올라 난도질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작은 부분 때문에 뒷말을 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있어서 힘들었다. ‘평생 사회 생활을 이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일년 다니고 회사를 나왔다.

 

▶ 그 이후에는 어떻게 했나?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궁극적인 꿈은 외국계 ㅇㅇ회사의 SI 컨설턴트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영학과 이었지만 웬만한 전산학과 출신 보다 더 자격증도 많이 땄었다. 그 회사는 신입을 안 뽑고 경력만 뽑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그 회사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어서 계속 지켜보다가 6년만에 신입을 뽑는다고 해서 신입으로 지원했다. 오래 기다렸던 꿈을 좇았던 것이다. 그 회사는 국내 유명 상위 대여섯 개 대학 이외에는 캠퍼스 리크루팅도 하지 않았다. 운이 좋게 서류에서 합격을 하고 최종면접까지 갔다. 아마도 면접 기간이 4개월은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 면접에 집단 토론을 했는데 거기에서도 잘 했다. 하지만 결과는 떨어졌다.

 

▶ 그럼 꿈을 접은 건가?

사회생활을 일년 정도 하고서 고민한 후 꿈을 좇는 것과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별개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꿈은 꿈으로 두고 사회생활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대단히 현실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ㅇㅇ 회사를 떨어진 이유 중 하나가 '뛰어나지 않은 서울의 중위권 대학교 출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당장 내가 넘을 수가 없었다.  꿈만 좇아가다가 계속 허송세월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회사에 취업을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 꿈 대신 선택한 다른 회사는 어땠나?

그 이후 국내에서 의류생산으로 유명한 회사에 입사를 했다. 이전에 해왔던 일이기에 적응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곳은 평균 퇴근 시간이 거짓말 안 보태고 아마 12시는 되었던 것 같다. 선배들은 한약 등의 약값으로 지출하는 돈이 많을 정도였다. 매일 야근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곳이었지만 그만큼 연봉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떠 안아야 할 책임도 엄청나게 큰 곳이었다. 그 곳에서는 내 개인의 삶은 포기하고 오로지 돈을 버는 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개인 생활이 아예 없고 나의 모든 24시간은 회사를 위해 써야 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여자 친구랑 데이트도 제대로 못했고 어쩌다 만나면 미안한 마음에 선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 생활을 5년 정도 했다.

 

▶ 결국 또 한번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5년 정도 내 삶이 사라진, 나는 없는 곳에서 일만 했다. 결혼도 안 했기 때문에 돈은 모았다. 하지만 팔팔한 30대 초반에 체력은 무너졌고 정신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그냥 힘들다고만 표현하고 있지만 당시는 더 이상은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5년이면 오래 버틴 거였다. 업무량이 너무 많았기에 배운 것도 엄청나게 많았다. 결국은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 하는 중에 헤드헌팅 연락을 받고 ㅇㅇ 회사의 의류사업부로 옮기게 되었다. 그 곳은 의류 소싱을 위해 전문가가 필요했고 나는 일 이외에 내 삶을 찾을 회사가 필요했다. 헤드헌터를 통해서 회사를 옮기고 한 일년 동안은 이전회사에 비해 편하기도 했고 보람도 있게 만족스럽게 일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이었나?

자신의 신념대로 일하고 행동했던 사람이었다. 남들이 내 일에 대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나의 신념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살리고 성장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다. 회사의 부속으로 그저 맡은 일만 하기 보다는 이 회사가 잘되는 방향에 대해 항상 고민했다. 그대로 안되면 좀 답답해 했다. 한국에는 의류 소싱으로는 세계적인 회사가 있는데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는 없다. 조금 아이러니였다. 나는 싸고 트랜디하고 좋은 옷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정책 등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회사 욕도 많이 했고 사람에게 불만도 많았다. 

 

그런데 이 신념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어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고집이나 아집 일 것이었다. 그리고 내 신념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 곳에서는 오래 일하지 못했던 것 같다.

 

▶ 마지막 회사는 ㅇㅇ회사의 의류사업부 였다. 마지막 회사를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를 옮길 때마다 명확한 목적과 이유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희망이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자 하려는 의지가 아예 사라질 것 같았다. ‘평생 일을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굳이 풀자면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사 때문에 나 인생의 열정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를 떠났다.

 

▶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면?

마지막으로 모셨던 부문장인 임원에게 기대가 매우 컸다. 의류 쪽에서 많은 경험이 있었던 전문가 였기에 그 사람이라면 나의 생각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옷을 싸게 만들어서 많이 팔고, 회사가 이윤을 남기려는 기본적인 생각과 다른 의사결정을 했다. 또 사람들의 안목이 나와 많이 달랐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실망감들이 쌓여 희망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소싱 전문가로 좋은 퀄리티 싼 가격의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방향은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제대로 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은 내가 바꿀 수가 없었다.

 







▶ 일반적인 직장인 이라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 회사에서 원하는 것이 다르다면, 짜증이 나더라도 회사가 원하는 방향대로 한다. 본인은 계속 자신이 끝까지 맞다고 생각하고 결국에는 회사를 때려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까 말한 것처럼 기대에 희망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왔다. 물론 그것이 외부 상황 때문에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얻는 이외에 성취감 같은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 버티기는 힘들었다.

예를 들어 통신회사에서 25년 동안 전파 쪽 개발 일을 하던 사람이 필요 없어졌다고 갑자기 지점으로 발령을 내서 영업을 시킬 수 도 있다. 월급은 똑같이 들어오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 그 사람을 내쫓기 위해 그런 것이지만 그런 사람은 대부분 그만둔다. 인간으로서 의미가 없고 나아가 삶의 의미까지 없어져 버리는 극심한 상실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회사 안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하면 월급은 나오고 시간은 가지만 내 인생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되는건 싫었다. 난 그것은 견딜 수 없었다.

 

▶ 회사의 생각과 개인의 생각이 100% 일치하는 곳은 원래 없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희망이 없다는 것은 참담한 것이다. 유통회사의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있었고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편하게 쇼핑을 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살 수 있게 만들까 하며 늘 이렇게 저렇게 노력하고 시도 하는 사람이 있다치자. 그래서 그는 빼빼로 과자로 로봇도 만들어 진열도 하고 자신의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정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회사에서는 전혀 알아봐 주지도 않고 갑자기 순전히 회사의 이익을 위해 물류창고의 재고 관리 업무로 보냈다고 하면 어떨까? 그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몰라주는 회사도 밉겠지만 더 큰 좌절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고 느낄 거다. 내 심정이 그랬다. 원래 회사는 개인의 생각을 믿어주지 않는 곳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면 회사 생활은 그저 돈을 버는 것 이외의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거다. 인생에서 가장 멋져야 할 삼십 대 중반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 자신의 만족 같은 성취감이 가장 중요한 건가?

맞다. 내가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 뿌듯함 일하면서 내가 살아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첫 직장을 선택할 때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이직을 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요소다.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아도 조금 월급이 낮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도 변하고 회사는 망하기도 하고 내 직업은 인공지능이 빼앗아 갈 수도 돈을 많이 벌 수도 못 벌 수도 있다. 그렇기에 최소한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면 자기 만족을 얻고 일을 하면서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의 기준이다.


▶ 그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그건 선택의 문제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누가 옳고 그른 건 아니다.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누군가는 빨간색을 좋아하는 거고 단지 나는 파란색을 좋아할 뿐인 거다. 회사가 더 나아질희망도 없고, 개인이 더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 다른 사람들 모두 그냥 버텨만 낸다. 하지만 그냥 월급은 나온다. 이게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오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다. 나와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일을 못하는 사람. 아니면 지 고집만 세고 남들과 함께 동화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회사를 나온 지금에서야 되돌아 보면 당시 나는 불만만 많고 시키는 대로 잘 안 하는 불량 사원이었을 수도 있다.

 

▶ 그럼 지금껏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뿌듯했던 경험을 하나만 말해달라

예전 의류 생산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외국의 한 브랜드를 맞았는데 새벽 2시 넘어서 바이어와 계속 실시간으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할 때 였다. 결국은 문제를 원만히 해결은 했는데 그 바이어가 니가 거기 회사 사장이니? 한국시간으로 새벽 아니니?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해?’ 라고 물었다. ‘나는 사장도 아니고 그냥 직원인데, 내가 맞은 브랜드가 좋은 상품을 생산하도록 돕는 일이 내 일이어서 열심히 하는 거야이런 이메일을 주고 받았었다. 그 바이어는 내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서 나 때문에 일이 잘 되어서 너무 고맙다.’ 라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회사를 나올 때까지 그 바이어는 여러 면에서 나를 도와 주었다. 열심히 일하고 인정을 받고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답답했던 순간은?

자기 일처럼 하지 않은 모든 순간이 그랬다. 상품의 원가를 낸 후, 상품이 입고되고 나서 사후원가는 따져보지도 않았다. 과연 내 사업이라면 돈이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빠져 나갔는지 당연히 따져볼 텐데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산을 해 보니 예상과 달리 돈이 어떻게 움직였구나라는 체크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런 모든 일들이 답답했다. 내 일이지만 남 일처럼 멀뚱멀뚱 관리도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일을 또 남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 넘기는 것은 특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고개만 쳐박고 전체 일이 아닌 코딱지 만한 부분만 하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 회사원으로 누구 밑에 있는게 잘 안 맞는 것 같다. 자신이 장(長)이어야 만족 하는거 같은데?

그런면이 있다. 정보가 임원에서 팀장에게 까지만 가는게 답답했다. 주체적으로 일하는 계획을 세우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그런게 없다가 갑자기 변화를 맞곤 했다. 실무자에게 많은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보의 제한, 피드백도 부족이 너무 싫었다. 그런 것이 있어야 같은 목표를 향해 사람들이 같이 갈 것 아닌가? 답답해서 정보를 늦게 준 팀장과 싸우는 일이 있었다. 사장이 100을 임원에게 말하면 필요한 50만 팀장에게 내려온다. 팀장은 직원들에게 20만 전달하고 실무자 대리는 5의 일만 한다. 난 다 알고 싶은데 말이다. 그리고는 그냥 너는 닥치고 5의 일만해라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정보가 내려오다 보면 왜곡되어서 실무자는 사장이 원하는 일과 다른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삽질의 과정이 너무 많았다.

 

▶ 내가 보기에 대기업이 아니라 조금 작은 회사가 본인과 맞는 것 같은데?

맞다. 조금 작은 규모라도 내가 모든걸 움켜쥐고 내가 계획을 세우고 일하는게 맞는 스타일 인것같다.

 

▶ 이직은 왜 하지 않았나?

회사를 나와서 8개월 동안 이런 저런 일과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든 생각은 나는 조직의 장으로 일해야 하지, 바보 같은 팀장 밑에서 일하는 건 못 견디는 스타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내 스타일 내 본성을 깨달은 것이 큰 수확이었다. 다른 회사도 대기업이었는데 그곳에 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움켜쥐고 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럴 바에는 내 개인이 하는 일을 만들어서 거기에 열정을 쏟아 부어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 회사에 있을 때 이렇게 할걸하는 후회는 없나?

회사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장단에 춤을 춰 줬어야 했다는 생각도 있긴 하다. 사실 그 당시에는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었다. 그냥 불평만 했다. 그래도 큰 후회는 없다. 다시 돌아가도 나의 본성이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대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부서의 장이 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의미는 없을 것 같다.

 






▶ 그런데 결국 퇴사하고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열었다. 좀 의외다.

우선 일단 당장 수익을 내야 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서 창업을 하는 것을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으로는 너무 리스크가 컸다. 그래서 ㅇㅇ 커피숍을 선택했다. 보통 창업을 하면 최초에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지 않으면 자괴감에 빠지고 맨탈이 무너진다. 그러면 자충수에 빠지는 행동을 하고 수익은 더 악화된다. 결국 폐업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커피숍이었다. 또 커피숍을 밑바탕에 안정적으로 깔고 그걸 바탕으로 내가 다른 일이나 사업을 할 때도 함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다른 요식업을 하면 수익은 더 클 수도 있겠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온전히 쏟아 부어야 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초보 창업자가 음식점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장이 온전히 신경을 안 쓰면 망한다.

 

▶ 또 커피숍은 다른 자신의 일을 위한 어떤 안정적인 보험 같은 건가?

그렇다. 그래서 내가 가져가는 것을 좀 줄이면서 직원의 안정화를 위해 시급을 좀 높게 주고 있다. 계속 원활하게 돌아가는 곳을 만들려고 했다.

 

▶ 어떻게 이걸 선택하게 되었는지 조그만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나의 선택 기준은 당장 수익, 적은 리스크, 안정적 오토화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자영업 폐업률이 90%라고 하는데 3년 동안 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10%만 성공,아니 살아 남는 다는 것이 느껴진다. ‘고작 프렌차이즈 커피숍 할라고 회사를 떠났나?’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커피숍은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면서 내가 당장 수익을 내는 소중한 일터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과 시간으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ㅇㅇ커피 프렌차이즈다. 내가 조사한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쭈욱 엑셀에 기입해 보았다. 대형 커피숍과는 다르게 가성비 좋은 중저가로 인식되어 있고, 또 저가 커피의 레드오션에 휘말리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객들에 대한 인지 (Perception)이 좋은 곳을 골랐다.

 

▶ 어떤가?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돈은 벌고 있나?

당시 비슷한 시기에 교육을 받고 창업을 한 곳에 28곳이었는데 그 중에서는 가장 잘된다.

 

▶ 창업과정을 좀 알려달라.

창업 박람회, 전시회 프렌차이즈 본사도 찾아가서 설명도 들었다. 최대한 많은 인풋을 받았다. 위에서 말한 3가지 기준 중 적은 리스크, 당장 수익을 기준으로 찾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완전 새로운 장소에 인테리어도 다 해서 들어가는 생판 창업을 리스크가 너무 컷다. 현재 운영중인 곳 중에 인수해서 할 만한 곳을 중점적으로 찾았다. 그런 매물을 찾는 건 개인이 어려웠다. 그래서 창업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았다. 현재 운영하는 사장들이 가게를 넘길 때는 창업컨설턴트에게 매물을 내 놓기 때문이다. 그냥 부동산에 집 내 놓는 거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6개월 동안 계속 찾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딱 봤을 때 내가 하면 현재보다 더 나아질 만한 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지금의 이곳이었다. 사람적인 이유로 전 사장이 일을 접고 싶어 했고 관리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조금 낡고 먼지도 낀 그런 매장 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맘에 들었다.

 

▶ 원래 있던 곳을 양수 받아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계속 말하지만 리스크 헤징과 당장 수익이라는 대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양수를 받을 가게를 찾는 사람은 이 매장 깨끗하고 잘 되어있고 너무 좋아. 왠지 장사가 잘 될 것 같아.’ 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매장이 되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되고 낡아가기 시작한다. 그걸 생각을 별로 안 한다. 차라리 지금은 잘 안되지만 입지 조건만 나쁘지 않다면 고쳐 나가면 매출도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의 매출도 투명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이었다.

 

▶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불안이다. 나는 내 모든걸 쏟아 부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완전히 모르는 일, 그리고 시장에 대한 불안함은 늘 있었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면 세상 모든 자영업이 다 잘 될 거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새벽 2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도 한 6개월 동안은 잠을 잘 못 잤다.  게다가 한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가 힘들 거라는 불안도 있었다. 그 불안은 직장인일 때 월요병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불안하고 엄청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보니 불안을 잊기 위해서 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한 것 같다.

 

▶ 일과는 어떤가? 

양수를 받고 한 3개월 동안을 아침에는 영업을 하고 밤에 문닫고는 매장을 고쳤다. 직접 페인트도 칠하고 자재도 사서 새롭게 만들었다. 일을 배워야 했고 그리고 점심 시간에 손님이 많기에 점심도 거르고 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자연스러운 일일 일식과 육체노동으로 살도 빠졌다.

 

▶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언가? 커피숍으로 먹고 살려고 퇴사한 건 아니지 않나?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일하고 싶다. 조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생각보다 그저 회사에 맞춰가면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의욕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른 형태의 제대로 된 카페를 만들고 싶다. 일을 하면서 뿌듯해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멋진 카페를 만들고 싶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소중하다. 아직 결혼을 안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 3년 동안 운영을 하면서 계속 카페에 대한 시장조사를 했다. 일단은 1년 정도 더 현재의 카페를 잘 운영하고 좋은 직원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서 안정이 되면 내가 원하는 사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카페시장의 경쟁은 점점 심해질 거고 월세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월세 계약이 끝나면 나가야 할 수도 있다. 리스크를 줄여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사실 지금도 준비중이다.

 

▶ 커피숍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하고픈 말은?

글쎄. 이제 3년차가 되었는데 무슨 말을 해 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한다면 자신의 촉을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완전 다른 일을 하다가 카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무슨 촉이 있겠느냐? 차라리 데이터를 믿는게 낫다. 회사에서도 매일 매출 숫자로 말하지 않나? 나도 그래서 일부러 매출 데이터가 있는 곳을 양수 받았다. 한국처럼 한번 망하면 재기하기 힘든 곳에서 사업에 운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는 것 믿지 말아야 한다. 

 








▶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당신에게 남은 것은?

사람이 가장 크다. 일에 대한 스킬 이나 지식보다는 그게 더 많다. 인간관계를 넓히려고 억지로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런 인위적인 관계는 오래 갈 수가 없다. 나의 열정과 생각을 이해해 준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연락을 하고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한다. 사실 업무적 지식은 회사를 떠나서 일년만 지나도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 같다.

 

▶ 회사를 떠난 이후에 배운 것은?

배운 것, 생각만 한 것,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모두 다는 거다. 회사 밖을 나와서 3년동안 가장 크게 배운 건 그거다. 삶 전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넓어진 것 같다. 회사 안에서는 비슷한 학식의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생각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회사를 나와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부류의 인간들도 많았고 그 사람들을 겪으면서 내 시각 전체가 넓어진 것 같다. 인터뷰 한다고 해서 당신이 쓴 나는 무적의 회사원도 읽어 봤는데 거기 마지막 장에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회사 밖의 사람을 만나라라는 말을 3년만에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이 되기도 하더라. 회사를 떠나고서 만난 사람들에게 쉽게 모든걸 오픈 하지는 않는다. 사기꾼도 발에 채일 정도기 때문이다.

 

▶ 회사를 떠나기를 잘했다. 퇴사하기를 잘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순간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많다. 한적한 오후를 보낼 때, 혼자 여행할 때, 내가 하기 싫은 일 안 해도 될 때, 월요일 아침에 스트레스 안받을 때 등등이다. 그런데 이런 건 아주 지극히 파편적인 일부다. 그냥 젊은 친구들이 카드뉴스나 만들고 미디어에서 짧은 인터뷰 할 때, 술자리에서 친구들한테나 하는 말일 뿐이다. 퇴사학교라는 곳이 생겨서 들어가 보고 실제로 한번 모임에 참석도 해 봤는데, 방금 말한 그런 짧은 단편적이고 감성적인 것들만 있었다. 이미 떠난 입장에서 보면 매우 별로 였다. 그런 걸로 비즈니스 모델을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총론적으로 볼 때 퇴사하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은 없다. 회사를 떠나서는 더 싫은 인간 더 미친 인간이 많았다. 그나마 회사는 면접을 거쳐서 한번은 걸러진 상태기 때문에 조금 낫다. 진짜다. 그리고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하기 싫은 일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어느 정도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 까지는 그래야 하는 것 같다. 그게 현실이다.

 

▶ 지금은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건가?

아주 초기 단계라 뭐라 말하기는 힘들다. 배운게 도둑질 이라고 10년간 해왔던 일을 내 사업으로 하려고 준비 중이다. 의류 제조업을 생각 중이고 행동으로 준비 하고 있다.

산업의 큰 그림부터 생각하고 있다. 우선 미국 시장을 보면 아마존이 식품부터 의류까지 시장을 정말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있다. 기존 질서와 유통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온라인을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조금 멀리 보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 세상이었다. 처음에는 중국 상품을 저가의 허접한 거라고 무시 했지만 지금의 중국산은 소싱하는 입장에서 보면 고급상품이다. 그리고 환경도 변해서 중국도 쉽지 않다. 베트남도 오랫동안 보고 있었는데 봉제로 베트남을 들어가기에는 조금 늦었다. 중국보다 더 빨리 현대화 될 거고 곧 포화가 될 거다. 그래서 동남아의 더 미 개발 국가를 통해 상품을 만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를 생각한 거다. 물론 10년까지 버티면 되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을것 같다.

 

▶ 벌써 나이가 38살이다. 도전하기에 늦지 않았나?

맞다. 늦었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또 일년이 늦어지게 되고 3년 후면 또 3년이 늦어지는 거다.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하다면 지금 하면 되는거 같다. 그나마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해서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나. 아직 결혼도 안 했고 나이도 적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는 큰 시도라고 생각한다. 카페를 했을 때처럼 다시 바 쏟아 부어 볼꺼다.  여기서 실패하면 결혼도 못 할거 같다. ^^

 

▶ 지금 어떤 단계인가?

함께 할 사람은 찾았고 돈은 그 동안 10년 동안 월급 저축한 것 그리고 카페를 통해서 버는 것으로 준비했다. 생각보다 돈이 너무 너무 많이 나간다. 움직이기만 해도 돈이다. 치기만 해도 돈이다. 욕나올 것 같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리고 회사에서 10년 일했지만 이 바닥의 디테일한 부분들은 잘 몰랐던 것 같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오래 일해도 전체의 일부만 본다. 분명 모르는 부분이 더 크다. 계속 부딪히면서 실행하고 있다.

 

▶ 계속해서 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나?

궁극적인 것을 쫒는 것 같다. 내가 회사에서 어찌 보면 외골수에 자기 고집이 있는 답답한 놈이 었던 이유는 내 소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신과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사업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의 접점이 이 새로운 사업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한 3년정도 후에 사업이 잘 되면 한번 더 연락을 드리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회사를 떠나서 지금 이렇게 도전하는 단계까지 온 것은 운이 좋아서 였다. 만약에 카페가 망했다면 나는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운은 그저 운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하나의 기운 같다. 그 기운이 나를 살려준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명확히 알면 좋겠다. 대부분은 자신을 잘 모르고 또 잘 안다고 생각해도 완전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또 다른 자신이 튀어나온다. 신문기사 가십거리 보는 것 보다 자신을 알아가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쓰면 좋겠다. 내가 뭘 알고 뭘 모르고, 뭘 잘하는지에 대해 아는 메타 인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혹은 이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성향이라도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남이 보는 나 말고 최소한 내가 보는 나의 성향이라도 알면 좋겠다. 회사에서 자신을 잘 관찰하면 좋겠다. 내가 일을 끝내는데 집착하지 않고 그냥 그냥 월급 받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면 계속 망설이다가 회사를 떠나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나를 납득할 수 있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가 책임 질 자신만 있다면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뭐라도 행동했으면 좋겠다.






▶ 철저히 회사의 측면에서 볼 때 그는 회사에서 원하는, 필요로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자신의 주관이 명확했고, 자신이 일을 모두 쥐고 일하고 싶어했다. 책임을 지고 싶어 했고, 원칙에 맞게 일하고 싶어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일부는 부딪혔을 수도 있다. 그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총론적으로 볼 때 퇴사하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은 없다회사를 떠나서는 더 싫은 인간 더 미친 인간이 많았다그나마 회사는 면접을 거쳐서 한번은 걸러진 상태기 때문에 조금 낫다진짜다그리고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하기 싫은 일도 많이 해야 한다내가 어느 정도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 까지는 그래야 하는 것 같다그게 현실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힘들지만 명확히 원하는 모습을 향해 걸어가는 그를 응원한다.  3년 후, 그를 다시 만나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그는 명확한 방향성과 목표를  가지고 떠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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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인터뷰_ 퇴사충동? 먼저 직장생활부터 충실하게.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9.20 07:30 / Category : 교육,강연,상담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우성 PD

■ 대담 :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


◇ 김우성PD(이하 김우성)> 지금 YTN 라디오 들으시는 청취자분들 중에 1955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분들 많으시죠? 베이비붐 세대이고요. 인구의 14%, 730만 명인데요. 이분들이 본격적으로 은퇴 접어드는 시기입니다. 직장 생활의 끝, 이렇게 생각하기보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시작, 새로운 삶을 마련하는 의미인데요. 은퇴 연령뿐만 아니라 20대에서도 한창 돈을 벌고 있는 40대에서도 은퇴라는 말이 멀지 않습니다. 직장을 퇴사하고 새로운 도전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취준생이 아니라 퇴준생이라는 말도 유행한다고 하는데요.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 자체로는 무모한 일이 될 수 있고요. 제대로 준비하면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겠죠. 전문가와 함께 이 문제 생각해보겠습니다.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 연결합니다. 안녕하십니까.


◆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이하 손성곤)> 네, 안녕하세요. 


◇ 김우성> 경총 조사에서도 신입사원들이 입사 1년 만에 퇴사하는 게 30%라는 보도를 봤는데요. 애써서, 어렵게 취준생들 직장에 들어갔는데 또 퇴준생이 되어 퇴사를 꿈꾼다는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어떤 얘기입니까?


◆ 손성곤> 저희가 보통 힘들게 오랜 시간 동안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스펙을 쌓아 입사를 하죠. 그렇게 힘들게 입사하고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현실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준비하는 분들을 부르는 말이 퇴준생이라는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사용하진 않습니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직업적으로 탐색을 더 하고 퇴사 후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이직 형태가 있을 거고요. 또 하나는 지금 하는 일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으려는 미래를 준비하는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김우성> 요즘 젊은이들은 본인의 삶과 일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해서 워라밸, 라고 줄여서 말하더라고요. 워크 라이프 밸런스. 그만큼 인식이 달라졌다고 봐야겠죠?


◆ 손성곤> 그럼요. 그 부분에서는 이유가 간단합니다. 성공에 대한 기준이 예전 세대와 지금 젊은 세대가 많이 바뀐 거죠. 


◇ 김우성> 성공의 기준이 바뀌었다. 


◆ 손성곤> 예전에는 직장 생활을 하면 임원,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고 돈을 더 많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성공의 기준이었죠. 하지만 지금 세대는 세속적인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전과 달리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며 생긴 변화라고 보면 되죠. 


◇ 김우성> 개인에 더 집중하는 시대, 조직 내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나의 행복에 집중하는 태세, 이런 변화도 있는데요. 과거에는 퇴사라는 말,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IMF 때도 회사가 어려우니 나가라는 얘기들, 극단적 선택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이제는 개인이 알아서 나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거든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봐야겠죠?










◆ 손성곤> 그럼요. 직장인에게 적용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든 직장인은 회사를 떠난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스티브잡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죠.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또 하나는 시기, 결정의 주체가 많이 달라요. 예전에는 큰 사고만 안 치면 무난하게 정년을 채우고 퇴직금을 많이 받아 떠났는데, 지금은 그 시기가 30대 초반까지 엄청나게 앞당겨졌고, 그리고 또 예전과 달리 회사를 떠나고자 결정하는 주체가 자신, 직장인 개인인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죠. 


◇ 김우성> 여러 가지 인식과 변화, 들으시면서 끄덕이실 것 같습니다. 자영업자 수가 많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결과일 수 있는데요. 직장생활연구소에서 퇴사 충동, 불치병인가. 이러한 제목의 세미나를 봤습니다. 재미있었는데요. 퇴사에 대한 꿈들을 많이 꾸시고 생각하시니까 그러한데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퇴사 그냥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어떤 것들이 중요합니까?


◆ 손성곤> 일단 준비의 시작은 현재 있는 직장에 더 충실하는 게 가장 좋은 준비입니다. 제가 회사를 떠난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고 인터뷰를 오래 했는데요. 가장 후회스러운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온 대답 딱 하나예요. 회사에 있을 때 내 일처럼 주체적으로 끝까지 책임지면서 일해 본 경험을 더 했었어야 했다고 말하는 거죠.  남들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나 스스로 일을 찾아서 그 일을 주체적으로 한 경험이 있었으면 퇴사 후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말을 많이 합니다. 


◇ 김우성> 역설적으로 퇴사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열심히 했던 경험이 퇴사 후에 쓸모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 손성곤> 자양분이 되는 거죠. 또 하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사 안에서만 통용되는 지식이 아니라 회사 밖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지식, 재능에도 고민하고 키워나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회사 안에서만 통용되는 지식을 우리는 컴퍼니 스페시픽 (Company Specific) 이라고 부르는데요. 이것을 회사 밖에서도 사용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능력도 중요한 거죠. 


◇ 김우성> 본인의 활용도가 높아지겠네요. 


◆ 손성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에 대한 큰 방향성을 정하는 겁니다.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많은 분들을 만났을 때 이것을 궁극적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길 원하는가 찾는 게 가장 중요하죠. 어떻게 보면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정하고, 그 다음에 계획을 세우는 게 필요해요. 


◇ 김우성> 지금 말씀하신 것은 입사 퇴사도 인생 안에 있는데요. 입사, 퇴사를 떠나서 자기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기왕이면 퇴사 고민하시는 분들, 하시면 좋겠네요. 


◆ 손성곤> 맞습니다. 왜냐면 이 방향성에 대해서 내가 평생 쫓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3년 후, 5년 후 똑같은 고민을 다시 하게 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 김우성>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답답하고 화가 나서 퇴사할래,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전략이 필요하고 삶 속에서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직장생활 연구소 소장이세요. 직장인이신 거죠?


◆ 손성곤> 저는 15년째 일을 하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 김우성> 직장인이면서 직장생활연구소장, 다양한 고민을 모아 놓은 집단지성 같은 글들, 홈페이지에 재미있는 것들이 꾸며져 있던데요. 퇴근 후 2시간이 중요하다. 이러한 주제도 있고요. 직장생활연구소 소개 부탁드릴게요. 


◆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는 2012년부터 시작해서 5년째 운영되고 있고요.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합니다. 제가 아직도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인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저도 회사에서 너무너무 힘든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그 경험을 남들에게 알려서 다른 직장인들이 조금 덜 힘들게 돕고자 시작하게 됐고요. 말씀하신 퇴근 후 2시간은 2년 전부터 시작됐는데요. 매달 직장인에게 도움이 되는 강연이나 워크숍을 하는 모임이죠. 퇴근 후에는 술을 동료들과 마시거나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보고 무의미하게 흘러버릴 시간인데요. 퇴근 후 두 시간을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라는 주제로 가지고 있죠. 







<클릭하시면 인터뷰 전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 김우성> 퇴근 후 두 시간을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라. 지금 함께하시는 분들이 많나요?


◆ 손성곤> 2년 전부터 매달 한 번씩 강연이나 워크숍,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요. 올해 진행한 것들은 예를 들어서 직장인들 미래를 준비하라, 혹은 경제적인 자유인이 되어라, 직장인이 알아야 하는 필수 노동법, 이런 것들처럼 직장인에게 필요한 현실적 강연이나 세미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참여하시는 인원은 50~100여 명 꾸준히 참석하시고 계시고요. 보통 만나보면 나 혼자만 이렇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줄 알았는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진부하고 나태했던 직장 생활에 자극이 되어 좋았다는 의견도 받고 있습니다. 


◇ 김우성> 이 정도 되면 지금 혹시 기업 경영자분들, 경제계에 계신 분들이 이 방송을 들으시는데요. 우리 회사에 강연으로 불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 고민을 남들과 같이 나누어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나선 것도 대단하고 박수칠 일인 것 같고요. 1호 퇴사 컨설턴트입니다. 사실 퇴사 컨설턴트도 낯설 수 있는데요. 어쨌든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퇴사의 중요한 준비라는 얘기만 들어도 많은 분들이 끄덕이실 텐데요. 잘 된 케이스 소개해줄 만한 이야기가 있나요?


◆ 손성곤> 제가 기억하기로는 두 분 정도 기억이 나는데요. 회사에서 하셨던 업무의 특성을 살려서 1인 기업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이 계세요. 창업하신 분인데 아프리카 관련 개발 업무를 회사에서 주로 하셨는데, 밖에서도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자신의 지식을 더 정리하고 공부를 많이 하셨어요. 회사를 나와서 지식 기반 창업을 하신 후에 지금은 해당 분야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계십니다. 


나이가 어린 분들의 경우에는 직업을 아예 바꾸신 분이 계세요. 회사에 들어가 일을 했는데 자신과 정말 안 맞는 거예요. 전공까지 그 일이었는데도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와 이 일이 나와 정말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자신을 탐색하고 고민하고 알아봤더니 나는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을 택하겠다고 생각하고 퇴사 후 3년 정도 엄청나게 공부해 3년 전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따시고 지금 감정평가사로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준비를 꾸준히 오랜 기간 동안 하셨다는 게 특징입니다. 


◇ 김우성>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 가장 빠르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어 본 말인데요. 확실하게 선택하고 준비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싫어서 그만두는 퇴사, 그건 아니라는 얘기. 퇴준생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중요한 얘기인 것 같고요. 끝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회사, 조직 문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중요한 것 같아요. 꼭 필요한 조언, 몇 가지 정리 부탁드립니다. 


◆ 손성곤>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우리 모든 직장인에게 현실입니다. 지금까지는 남들이 시켰던 일, 남들이 이 일을 하면 좋다고 말한 일을 고민 없이 선택해왔던 사람들이 저희들이죠. 그런데 퇴사 이후에는 시키는 사람도 없어집니다. 어떤 느낌이냐면, 지도는 있는데 비어 있는 거죠. 목적지도 없고 가는 방법도 나와 있지 않은 지도를 가지고 서 있는 거죠. 그 안에서 내가 남은 인생 동안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가치를 좇아야 하는지 고민을 해보시고 목표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회사 안에서 회사에서의 일과 사람에 대해 더 많이 공부를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우성> 퇴사 이후의 모든 것들은 퇴사 이전에도 준비하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 평소에 못 해봤던 생각이네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손성곤> 네, 감사합니다. 


◇ 김우성>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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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7_ 박사, 팀장, 교수를 버리고 일인 기업이 된 사람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8.25 08:06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조직이 주는 타이틀을 버리고 홀로선 남자




▶ 중요한 질문이다얼마나 벌고 있나?

매달 일정하지는 않지만 회사에 있을 때보다는 많이 벌고 있다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2년 넘게 1인 기업가로 활동을 하다보니 수입에 대해 여러 개의 낚시대를 드리울 수 있게 되었다단기적인 강연이나 일 년 계약의 자문으로 월급처럼 들어오는 등 다양한 수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고 있다.


 

▶ 1인 기업가로서의 고민은?

단기적 수익과 장기적 생존에 대한 균형이 가장 큰 고민이다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다예를 들어단기적으로 들어오는 강연 요청을 모두 수락하면 수익은 날 것이다이렇게 당장 내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하지만 지나치면 내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여력은 줄어든다또 반대로 너무 장기적인 발전에만 몰두하면 당장 내일 굶어 죽을 수도 있다이 사이의 균형을 잡기가 지금도 쉽지 않다최근에는 강연은 최대한 줄이고 딥러닝이라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꼭 필요한 공부인데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부분이어서 한 달 동안은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갖고 있다.

 

또한 시장의 불확실성과 빠른 변화는 예측이 쉽지는 않다는 점도 고민이다내가 공부하는 속도와 양보다 기술 발전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기술의 발전 추이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최근의 빠른 기술 발전의 위력을 안다최근 어느 정부기관에서 자문이 왔다. ‘2030년 한국의 헬스케어 산업의 예측을 원했는데 나는 내 능력 밖이라고 말씀드리며 정중히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당장 5년 뒤의 예측도 어려운 시대다.

 

▶ 1인 기업은 교육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형식의 문제보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나는 지식 소매상으로 자문강연집필 등의 일을 한다이런 형태가 전문가 개인으로서 접근하기 쉬운 일이고수입과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다른 형태의 제조업유통업 분야의 1인 기업도 있을 수 있겠지만하지만 혼자서 하기에는 활동의 폭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 내 인생의 주도권과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조직의 단점인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형식과 카테고리는 크게 중요치 않은 것 같다.


 

▶ 무식한 질문이다헬스케어 분야의 1인 기업가면 하얀 가운을 입고 스포이드랑 현미경을 들고 연구하는 것을 처음에는 생각했다어떤 연구를 하는 건가?

실제로 대학원생 때부터 연구소에 있을 때까지 그렇게 연구해왔다그렇게 연구하는 것은 다소 좁은 의미에서의 연구로 보통 결과물로 논문이 나온다지금 나는 논문을 쓰는 연구는 하지 않는다마치 유시민 작가가 말한 지식소매상과 같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산업 트렌드에 대해 공부연구한다그것을 융합해서 새로운 통찰력을 만들어내고방향을 제시하며새로운 스타트업을 육성하기도 한다이러한 것들이 내가 1인 연구소로서 하고 있는 연구 활동이다.

 


▶ 누군가가 삐딱한 시선으로 그럼 너는 직접 연구하고 생산해 내는것이 없지 않냐남이 연구한 거 짜깁기 하는거 아니냐?’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언급했던 지식소매상이라는 일 자체가 기존에 있는 것을 융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중에서 내가 처음 만들어낸 지식은 엄밀히 말해서 거의 없다하지만 그것이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경계를 정하지 않고 배우고 공부한다그래서 스페셜리스트이자 제네럴리스트다미국의 어떤 교수가 연구해서 발견해 낸 것과 완전히 다른 분야의 결과물을 보고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일이다상관 없는 점들을 이어가는 것 (connecting the dots)이다인공지능과 의학을 연계하여 의료인공지능에 대해 공부를 하고웨어러블 디바이스와 UX디자인보험 산업을 연계한 새로운 사업모델의 사례를 공부하는 식이다이는 특정 조직에서 정해진 직무를 가지고 있다면 하기 어려운 역할이다새로운 것들을 함께 공부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길 위에 있다고 이해해 달라.

 

 

▶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라는 책을 썼다소개해 달라.

회사를 떠나 1인 기업으로 두 발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엮은 것이다지난 1년 반 동안 브런치에 연재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글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나?

퇴사하여 1인 기업을 준비하는 사람이제 막 1인 기업을 시작한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조금 범위를 넓히면 직장인 중에서 회사에서 이렇게 일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나?”라는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겠다.

 

▶ 다른 1인 기업가 관련 책과 다른 점은 뭔가왜 이 책을 읽어봐야 하나?

내가 1인 기업으로 왜 독립했는지그런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준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 있다나는 1인 기업이 단순히 일을 하는 방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인생을 살아가는 철학과 태도라고 생각한다책에는 개인 브랜딩이나 강연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실무적인 노하우도 담겨 있다하지만 이런 스킬에 그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1인 기업가로서의 일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또한 내가 1인 기업의 철학을 만들고 독립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받은 책들도 소개했다1인 기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일인기업의 준비, 스킬 뿐 아니라 태도, 마음가짐까지 볼 수 있는 책이다. 

나도 읽어 봤다. 추천한다. 





▶ 이 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언가세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

1. 일은 매우 숭고한 것이다하지만 조직 속에서 남들과 똑같이 일하는 것 외에도 대안은 있다.

2. 독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3.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 책에 “본질” 이라는 단어가 꽤 많이 나온다자신이 신봉하는 하나의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본인의 삶의 모토에 대해 묻고 싶다.

아주 크게 보면 나로 인해 세상 한 부분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그러한 과정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사실 의료헬스케어 분야를 선택한 것도 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디지털 기술과 의료의 융합을 통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사실 이 소망은 의료와 헬스케어 분야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외과의사는 수술을 통해서제약사 연구원이라면 신약의 개발을 통해서헬스 트레이너라면 운동 코칭을 통해서 이를 추구할 것이다나도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


 

▶ 뭔가 Well Organized된 사람이고 그런 하루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하루의 일반적인 루틴은 어떤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9시는 되야 일어난다일어나면 세수하고 커피 한잔 집어들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오후 1시 정도에 점심 먹으러 갈 때까지 계속 일한다혼자 식당에 가면 눈치 주거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점심을 조금 늦게 먹는다점심 먹고 오면 또 논문 읽고 해외 기사 읽고 글 쓰면서 또 일한다그냥 일일이다사실 나는 일 중독자에 가깝다.

저녁 6시 정도까지 일하고저녁 먹고 운동 간다주로 주짓수나 헬스를 한다.  헬스는 15년차주짓수는 8년차다내가 저녁형 인간인 것은 주로 운동을 밤에 하기 때문이다운동 후에 새벽 2시쯤 잠자리에 든다나름대로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건강 관리도 철저하게 하려고 한다대기업과 달리 1인 기업은 안전망이 없다병가도 낼 수 없다나 자신이 기업이니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회사 전체가 멈추는 것과 마찬가지다.

 


▶ 아침에 일어나 몸이 두 개로 분리 돼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다시 합쳐지는 능력이 생겼다고 치자그렇게 10년 동안 살 수 있다면 새로 생긴 몸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재미있는 질문이다. 내가 한 명 더 있으면 옆에 앉혀 놓고 함께 일하고 싶다두 배로 더 공부하고 연구하니 생산성을 두 배로 높일 수 있어서 매우 좋을 것 같다지금도 공부하고 연구할 것이 너무 많아서 벅찬 탓에실제로 하루가 48시간이 되거나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혹은 한 명은 장기적 목표를 위해서 연구만 하고다른 한 명은 단기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 강의나 외부 활동을 하는 식으로 분업할 수도 있겠다지금 실제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 최윤섭이라는 이름은 업계에서 어느 정도 급인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고 또 조심스럽다하지만 1인 기업이니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는 있어야 한다남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헬스케어에 대해 검색 하다보면 결국에는 최박사님 블로그로 귀결된다’, 혹은 ‘S전자 헬스케어 사업부에 책상마다 최박사님 책이 꽂혀 있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 불확실성이란 측면에서 개인과 기업 어느 쪽이 나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준비된 1인 기업이라면 개인 쪽이 조금 나을 것 같다너무 빨리 변화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조직에서 특정 역할을 맡고 연간 목표를 세워놓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조직의 유연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그 측면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에 속한 개인이 가장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조직 속의 개인도 1인 기업의 유연함과 민첩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 4차 산업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된다개인적으로 그런 큰 변화는 역사적 관점에서 지나고 나서 그 후에 평가하고 명명하는게 맞는다고 생각한다분야는 다르지만 박사님 관점에서 의견을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4차산업 혁명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한국에서 정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단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외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기도 하다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의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다만 변화가 아주 크고 엄청난 속도로 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지난 10년 간의 변화도 매우 컸지만앞으로 다가올 십 년 동안의 변화는 지난 1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광범위할 것이다나는 이를 쓰나미에 비유하곤 한다.


 

▶ 이런 엄청나고 빠른 변화가 35세 평범한 직장인에게 어떤 분야에서 큰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나?

내 분야가 아니라 정확한 답을 할 만큼 전문적이지는 않다하지만 헬스케어 분야에 국한되어 이야기한다면 인공지능이 가장 임팩트가 클 것 같다단순하고 기계적인 반복 업무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또 사라지고 있었다인공지능이 인간 전문가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현재 100명이 하는 일을 10명이 할 수 있게 된다면 큰 변화의 촉매가 될 것이다지금과는 인간 전문가들의 크게 역할이 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이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이 준 타이틀을 벗고 스스로 홀로선 헬스케어 분야의 일인 기업가 최윤섭

이 글을 누르면 그의 데이터 뱅크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이 나온다.





▶ 회사를 떠나서 책을 쓰고 1인 기업이 되고 인생이 바뀌고 자유인이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꿈을 쫓아 1인 기업이 되려고 하는 대학생직장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1인 기업이라는 형태는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형식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누군가에게는 조직에 남아서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에 더 잘 맞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자율적인 삶의 태도를 선택하려는 사람에게는 도전해볼만한 형태의 일이라고 본다이를 위해서는 전문성브랜드수익모델 등에 대해 가설을 충분히 검증한 뒤에 독립하여 1인 기업에 뛰어드는 것이 맞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 1인 기업으로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진짜 삶을 한번 보는 것이다. 내 책을 읽어도 좋고, 1인 기업 팟캐스트를 듣거나, 관련 모임에 나가봐도 된다. 1인 기업은 단순히 일을 하는 방식이라기 보다는삶을 살아가는 태도이자 철학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수입자유 등의 단적인 측면만 보고 독립하면 낭패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외적인 측면보다는 실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 요즘 학생들은 조금 더 취업이 쉽고 돈을 벌기 쉽고 사회적 시선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직업을 택하려고 한다대학생들에게 선배로서 인생의 방향성 등에 대해서 한마디 조언을 해 준다면?

자신의 가치관이 정말로 그러하다면 그렇게 선택해도 된다그런데 그 가치관이 정말로 내가 원하고 있는 근본적인 것인지부모님이나 사회상 등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학생 때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 없이 던져야 한다이 질문에 솔직하지 않거나질문을 건너 뛰거나답 없이 사회로 나오면 결국 방황하게 된다.

 

이는 학생들 탓만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요즘 취업이 너무 안 되어서 고민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한 답 없이는 힘들여 취업하더라도 사상누각인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통계를 보면 대기업 신입사원 중에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남들이 다 가는 길이라고 하더라도이 길이 나에게도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 조직에 속한 사람으로서 일했던 것의 점수는?

상사나 함께 일하는 팀원에 따라서 달라졌던 것 같다존경할 수 있는 상사 아래에 있을 때는 80점 이상이었다인간적으로실력적으로도 존경하지 못하는 상사나 교수님 아래에 있을 때는 10점 이하였다이 때는 정말로 출근하기가 너무 싫었다전문가로서나 인간적으로 존중 받지 못하고 나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했던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조직에서 내가 상사나 팀원교수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택 불가능성에도 오는 비본질적인 일의 폭풍 때문에 점수가 낮을 수 밖에 없다퇴사할 때 흔히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사를 떠나는 것이다.’ 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 1인 기업으로 일하는 것의 만족도를 점수로 나타낸다면?

90점 정도 주겠다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조직에서 일할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가장 좋은 점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 5년후 모습을 한 장의 사진처럼 그려본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5년 뒤에도 지속하고 있으면 좋겠다지금과 똑같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전파하면서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내고 싶다그렇게 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인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이 결국 지속가능성이다.


 

▶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연구소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본인 삶의 의미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란다다른 사람 모두가 택한 삶이라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 이유는 없다지도 밖에도 길은 얼마든지 있다책에서는 1인 기업을 강조했지만모두가 반드시 이런 형태의 삶을 택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내 삶의 방향성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한 후에 나온 결론이라면 어떤 형태로 일하든지 상관 없을 것 같다나에게는 그 답이 1인 기업이었을 뿐이다부디 자신만의 길을 찾으시고그 길을 용기 있게 걸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란다.

 

 

 


 

▶    5년 후에도 지금처럼 살고 싶다는 사람은 태어나 처음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5년후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던가 혹은 막연하게 말한다아주 소수만 명확한 모습을 말한다그는 스스로 방향을 명확히 하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지금이 행복한 모양이다지금 행복한 공부와 본질적인 일을 하고 있고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또 그는 본질’, ‘의미’, ‘방향성’ 그리고 과정 중에 있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말은 사람의 가치를 드러낸다.  짧은 인터뷰에서 실마리를 찾았다면 그의 책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를 읽어보기 바란다. 1인 기업관련 책 중에서 한 권만 고른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괄목할 만큼 좋고 무엇보다 진실된 책이다. 5년 후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지금처럼 일하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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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3 _ 개발자. 퇴사 후 두려움의 늪을 건너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8.02 07: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1978년생 39세 ㅇㅇㅇ 입니다. 회사에서는 개발자로 일했고 퇴사 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준비 중 입니다.

 

▶ 학교부터 직장까지의 커리어는?

ㅇㅇ대학교 97학번으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예전부터 로봇 만드는걸 좋아했다. 학부 때 ㅇㅇ연구원에서 위촉연구원으로 들어가서 전기, 전자,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했다. 일이 잘 맞고 재미있어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다. 취업을 앞두고는 로봇에 너무 빠져있었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취업 시 삼성, LG 같은 대기업에 지원하지도 않았다. 사실 토익 점수도 낮았다. 원서를 읽고 공부하는 데는 문제가 전혀 없었기에 토익 공부에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로봇을 만드는 것이 더 좋았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서 셋탑박스를 만드는 회사에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이었고 회사를 얻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에 첫 회사에 들어가서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엔지니어로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행복감을 충분히 느끼며 일을 했다. 인증을 위해 해외 출장도 다니면서 영어실력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엔지니어로 기술력도 느는 것도 정말 행복했다.


첫 회사를 그렇게 5년을 다녔다. 인도에서 가장 큰 미디어 회사의 프로젝트를 했는데 금액이 엄청나게 컸다. 그 프로젝트 때문에 거의 일년 반 이상을 인도에서 살았다. 당시 결혼을 약속한 지금의 아내와 점점 크게 싸우게 되었다. 오래 떨어져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신혼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다시 짐을 싸서 밤 비행기로 인도로 떠났다. 그 정도로 일에 얶매인 삶이었고 당연히 신혼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주일 후에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나라도 또 출장을 갔었다. 이 바닥에서는 사실 이혼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식이기도 하다.


서울 근교의 작은 반지하 전세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아마 그 때부터 아내가 다른 일을 해 보는건 어떠냐?”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왜 그러냐?’라고 물어 봤더니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우울하다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개인의 삶이란 아예 없이 회사밖에 몰랐었다. 아내는 엄청나게 밝은 사람이었는데 우울감이라는 단어를 듣고 눈빛을 보니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2009년도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했다. 이 업계에서 이직 서너번은 다 하는 거고 아직 젊고 내 기술이면 재 취업도 가능하니 회사를 그만두자라고 얘기를 했다. 아내도 나도 퇴사통보를 하고 전세방 한쪽 벽에 유럽전도를 붙여 놓았다. 목표는 3개월간의 유럽 자동차 여행이었다. 이직계획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유럽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은 너무 행복했다. 아내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거였나? 

아니다.  퇴사 결심을 하고 여행 준비를 하던 중 알고 있던 업계의 영업사원에게 전화가 왔다. “중국의 큰 회사에서 셋탑박스 사업을 시작하려고 조직을 새로 만들고 있다. 거기에 한국 엔지니어를 모르는데 생각이 있냐?” 라는 것이었다. 중국회사에서 시한 월급은 환율을 생각하면 당시 받던 연봉의 2배가 훌쩍 넘었다. 통장에 꽂히는 돈이 매달 700만원이 넘었다. 우리나라에서 1억 연봉을 받으면 통장에 NET 으로 꽂히는 돈이 600만원 후반인 것으로 안다. 또 집은 당연하고 3개월에 한번씩 휴가와 한국행 티켓을 준다는 조건이었다. 아내는 우울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중국 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후 그 회사에서 비행기표를 보내왔다. 공장 투어를 해 준다는 거였다. 나를 포함해서 업계 사람들 십여 명 정도로 구성된 사람들이 중국으로 날아갔다. 직원수가 육천 명이 넘는 회사고 잘 구성된 연구단지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훌륭한 복지와 놀랄만한 월급이라니 누구라도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이가 서른 두 살 정도였는데 여행을 포기하고 아내도 퇴사를 하고 중국으로 갔다. 26개월 정도 중국의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내와 함께 가장 행복행복 시기였던 것 같다. 아내도 돈 걱정도 없고 회사사람들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부부간의 불화는 도박이나 불륜 정도 아니고서는 당사자간의 문제는 생각보다 적다. 고부간의 갈등 친척, 지인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데 그럴 이유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다. 530분에 퇴근해서 함께 저녁을 먹고 중국 특유의 오랜 휴가도 맘껏 즐겼다.







▶ 어떻게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되었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그냥 짤린거였다. 어느 날 우리를 담당하는 부서의 장이 찾아와서는 폭탄선언을 하고 가버렸다. 회사의 회장이 바뀌면서 외국인으로 구성된 조직을 없애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의 연봉은 외국인 채용 시 정부로부터 받는 돈으로 주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국가에서 받은 돈으로 월급 주면서 나를 포함한 한국 엔지니어의 기술을 쏙 빼먹은 거였다. 그리고 버린 것이었다. 그 후 2달 동안의 시간을 주고 엔지니어 들은 모두 흩어졌다. 그렇게 2012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 회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다시 한국에서 일하는 것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우선 중국에서 월급이 많고 물가가 싸다 보니 몸에 배였던 씀씀이 때문 이었다. 헤프게 쓴 건 아니었는데 꼼꼼하게 가계부를 적으면서 살지는 않았기에 첫 해는 적자였다. 한 일년 정도 지나니 한국에 적응이 다시 되었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다시 큰 프로젝트에 투입되게 되었다. 해외에서의 인증작업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고 하게 되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한국보다 해외에서 일하는 날이 더 많은 삶이었고 다시 아내는 혼자가 되었다. 중국으로 가기 전과 100% 똑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도 답답해 하기 시작했고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간의 벽같은게 생기기 시작했다. 영상통화 백날 해도 그 답답함과 알 수 없는 먹먹함은 심해져 갔다. 마치 권태기의 부부 같았다. 어느 날 똑같이 현지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서 아내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내의 말이 이제는 이 일, 이렇게 사는 삶을 그만두자라고 말했다. 이건 부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우울에 대한 힘든 상황이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찝찔한 것이 입안에 느껴졌다. 거울을 보니 코피였다. 두 달이 넘게 매일 새벽까지 일을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는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다고 하고, 남편은 타지에서 매일 철야로 몸이 망가지고…… 이런 것이 사는건가? 내가 살아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코피를 쓰윽 닦는데 회한이 들어 웃음이 피식 났다.

 

맡았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첫 출근을 한 날. 팀장에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회사에서 거절하기 힘든 것으로 골랐다. 아내와 오래 전부터 계획한 세계일주 여행이었다. 2015 10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정확히 7일 후에 여행을 떠났다. 5살 아들과 함께 한 70일 정도의 여행이었다. 그렇게 딱 10년간 회사생활을 했다.

 

▶ 포털의 퇴사와 관련된 자극적인 글들이 많다.  잘나가는 삼성 때려치고 세계일주 가다” 뭐 이런 제목 많은데 그런 거였나?

전혀 아니다. 살기 위한 여행이었다. 우리 가족의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중국에 가기 전 아내의 우울감이 극에 달했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기로 했던 여행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거였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했지만 아내나 나나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한국 땅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의 삶은 이전과 똑같았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었다. 그냥 잠시 미뤄놓은 것뿐이었다. 사실 여행은 특별한 계획도 없이 떠났다. 예약한 것은 출발하는 비행기와 각 도시별로 숙소 뿐이었다. 네델란드의 아무도 모르는 도시에서 한달, 그리고 스위스의 고산 지대에 있는 한국인을 잘 모르는 도시에서 또 한 달을 살았다. 독일하고 스웨덴에도 오로라를 보기 위해 짧게 다녀왔다.

 


▶ 퇴사를 하는데 아내의 영향이 더 큰것 같다. 어떤가?

아내의 의지가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힘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회사의 일만 보면 싫지는 않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나는 일을 잘했다. 소위 Ace였고 엔지니어로서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나 혼자만 본다면,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정이 있었고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아침에 새벽같이 나가느라 애 얼굴도 못 보고, 밤에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서 또 못 본다. 이것 까지는 뭐 한국의 여느 가장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년에 70% 이상을 해외에서 컴퓨터에 머리박고 일만하고, 아이도 얼굴도 컴퓨터를 통해서만 보는 삶. 뭐 거기까지도 한국이니까 버틸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아내가 던지는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힘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1~2년 후에는 나아진다는 확신이 있느냐?” 답은 없었다. 이 계통의 엔지니어들의 경로는 똑같다. 회사에 남는 것은 두 가지다. 정치를 잘해서 관리자로 올라가는 것. 아니면 오래 다니더라도 똑같이 코딩하고 해외에서 20대와 똑같이 일하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인정을 받았기에 40대 후반까지는 개발자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그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그렇게도 힘들어 하는 삶을 계속 살아가라고 남편으로서 강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생각은 명확했다. 내가 40대 후반까지 개발자 일을 하면 지금과 똑 같은 우울한 날들의 연속일 거고, 40대 후반에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40대 후반까지 남은 10년을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우리 둘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무모한 달리기는 멈추고 세상으로 뛰어 들면 우리 부부 사이가 벌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나이에 조금함을 잠깐 버리고 1~2년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안되면 다시 개발 일을 할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 지금 잠깐 멈추고 미래를 준비하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일 외에 무엇을 잘하는 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솔직히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40대 후반에 다른 일을 하는 거는 우스개 소리로 많이 나오는 개발자 치킨집 수렴의 법칙에 정확히 들어 맞는 것뿐이었다.

 

▶ 그 말에 뭐라고 답했는가?

아내의 말을 한마디로 줄이면 <돈을 벌면서 살 건지, 인간답게 살 건지> 였다. 아내와 나와 잘 맞는 부분이 돈에 큰 욕심이 없다는 거다. 물론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벌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그 상황에 맞추어 살면 된다고 믿었다. 어찌보면 내가 퇴사를 선택한 것은 내 가족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였다. 선택에 정답은 없지만 아내와 나는 같은 가치를 믿고 있었고 그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 회사에는 어떤 사람이었나?

회사일 자체는 재미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좋은 사람들과 합심해서 일하는 것이 좋았다. 인증 성공에서 얻는 희열과 성취감도 좋았다. 말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나름 회사 내에서 Ace로 인정도 받고 있었다.

 

▶ 그렇다면 회사나 일 자체가 싫어서 그만둔 것은 아닌것 같다. 

맞다. 일은 좋았다. 보통의 엔지니어, 개발자 들은 회사내의 암투나 정치 줄대기 이런 것에 그닥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지막에 떠나게 된 회사에서는 원치 않게 이런 끈적끈적한 일들에 얽힐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 이익이 많이 났는데 Profit Sharing을 하지 않고 배당금만 주었다. 사장이 두 개의 법인을 운영했는데 회계적으로 이익을 다른 회사로 돌려서 직원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니 내가 이런 회사에서 이렇게 까지 피땀 흘려 가며 일할 필요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에서부터 시작된 회사에 대한 불신도 하나의 계기였다. 회사와 관련된 오너의 전횡이 많지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서 그렇다. 

 

▶ 회사를 떠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아내다. 아내의 뜻대로 떠난 것에는 후회가 없나?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 회사를 떠나야겠다.’ 라는 갈망은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아내가 얘기를 안 했다면 나는 계속 욕하면서 회사를 다녔을 거고 마이 마흔 후반 되어서 타의로 회사를 나왔을 것이다. 아내의 의사가 반영된 퇴사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가정은 더 평안해 졌고 행복해 졌기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 회사를 그만두고 느낌이 어땠나?

회사에 퇴직의사를 밝혔음에도 인사권자가 나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꼴보기 싫다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상적으로 퇴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게 2달동안 인수인계를 마치고 회사를 나올 때의 느낌은 너무너무 좋았다. 아이를 얻었을 때만큼 좋았던 것 같다.

 

▶ 그만두고서 계획은 있었나?

대책이나 계획은 없었다. 여행계획을 제외하고는

 

▶ 혹시 모아놓은 돈이 많나? 집이 부자인가? 어떻게 먹고 살 대책이 없이 그만뒀나?

아니다. 부모님도 힘들게 아직도 작은 일을 하고 계시고 아내의 부모님도 작은 자영업을 하신다. 부자는 아니다. 

 

▶ 아무리 그래도 인간적으로 너무 무대책 아닌가?

퇴직금 이천만원 받은 것으로 계산기를 두르려 봤다. 아껴서 써서 200만원씩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쓴다면 일년은 버틸 돈이었다. 아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나의 감정상태였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30대 후반에 회사를 그만둔 공돌이 가장. 당신이 얼마나 막막하고 절벽앞에 선 느낌인지 조금은 안다. 그 시간이 너무 힘들거고 어쩌면 아내인 나와도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은 우리 세 가족이 똘똘 뭉치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얘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그러니 이 돈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서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자. 이천만원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이 될꺼다.”

아내의 이 말을 듣고 아냐, 돈 아껴야 돼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무대책'이라는 단어에 가벼움이 묻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단어엔 '안타까움', '절실함' 그리고 중요한 '단순함'이 담겨있기도 하다. 절실함에 이끌려 대책을 세우려 했지만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은 물론이요, 복잡한 세상살이를 향해 '대책 없는게 뭐 어때서!' 라며 어줍지 않은 단순함으로 반항 한번 해보고자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 아이가 출근하지 않는 아빠에 대해 아무 말 안 하나?

아이가 유치원생인데 한번도 아빠는 왜 이제 회사 안가?”라는 질문을 한적이 없다. 아이가 아빠 오늘 회사 안가고 나랑 놀아주면 안되?” 라는 질문에 아빠가 회사를 가야 니가 좋아하는 로봇이나 레고도 사주고 빕스도 데려가 줄 수 있어이렇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질문은 내가 아닌 아내가 받았다. 아내는 아이에게 아빠는 아빠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있어. 사람은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도 있어.” 이렇게 얘기했다고 들었다. 신기한 건 돈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빠의 출근 = =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이라고 가르쳐 본적이 없어서 아예 묻지도 않은 것 같다. <아빠가 출근 안함 = 내가 좋아하는 레고를 얻지 못함> 이라는 인과관계가 아예 생기지도 않은 것 같다.

 

▶ 인터넷에 글도 쓰고 있다. 왜 쓰나?

나를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 죽을듯한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썼다. 나는 10년 동안 일만하고 해외에 처박혀서도 일만했다. 그렇게 일밖에 모르던 내가 아무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다. 그 안에서의 감정의 변화는 어마 어마 하다. 내가 한번도 겪어보지 형용 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 또 아침에 일어 났는데 갈 곳이 아무곳도 없다는 절망감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다. 이런 감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약 두 달 정도는 정말 힘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만약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디 가서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미친듯이 읽었다

그 안에 마음의 평안을 조금씩 얻고 동네 앞에 국수집에도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서 사장님과도 얘기도 많이 했다. 그 분도 회사를 다니다가 나와서 일을 하는 분이라 친형님처럼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면서 감정이 조금씩 변해 갔다. 마치 한번 Impulse 처럼 크게 튀어올라 주체할 수 없던 감정이 조금씩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공돌이고 글쓰기에 큰 소질은 없지만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잊기 전에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썻다. 이제 곧 마흔이 되고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았는데 지금 느끼는 이런 감정의 변화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분명 큰 도움이 될거라 믿었다.

 






▶ 사람들을 만났다는 건 뭔가?

그렇게 감정의 변화를 조금씩 이겨내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부터 만남이 시작되었다. 내 글을 읽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연락해온 것이다. 주로 회사를 떠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먹고 살 준비가 안되어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가정도 있고 아내가 허락을 안 해서 진퇴양난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느낀 감정, 그리고 지금 겪는 미칠듯한 불안과 서서히 자신을 돌아보는 느낌 이런 것이 자신의 감정과 너무너무 똑같다고 생각해서 연락을 했다. 그들이 어떤 답을 구하려고 나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같은 감정을 느끼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큰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나 혼자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게 아니구나’, ‘나와 같은 사람이 있구나라고 공감하는 자체가 소중했다. 공통된 특징이라면 결혼을 했고 가정이 있고 책임을 져야 할 누군가가 있고 무언가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었다는 거다.

 

▶ 왜 우리는 비슷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나? 좋은 학교, 좋은 직장만 쫓다가 용도가 끝나면 버려지고 그 이후에 괴로워하다가 힘들게 새로운 삶을 사는 것 말이다. 특히 개발자라면 개발자 치킨집 수렴의 법칙이라는 인터넷의 우스개 글도 있을 정도다.

나도 생각해 본적은 없다. 지금 고민해 보자면 비슷한 삶의 시작은 비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남보다 좀더 많은 연봉, 옆집 아빠보다는 좋은 차. 이런 것이 비교의 시작이다. 삶의 기준이 남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인 듯 하다. 조금 더 말하면 남이 말하는 것, 그리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시선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삶의 좌표가 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에서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원하는 것만 따라 하면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물이 목까지 차 올라서 곧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밀려와야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 공대 나와서 일을 하는 것인 인문계열보다 낫지 않은가?

공대생 같은 경우는 굵고 짧고 인문계는 가늘고 긴 것 같다. 공대생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당장 필요한 기술자의 경우 많은 돈을 받을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좀 낫다. 하지만 그 수명이 짧고 갑자기 떨어진다. 나도 이제 곧 40대 인데 수명이 거의 끝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인문계열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적은 돈을 벌지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것 같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 비슷한 일을 하는 개발자 후배에게 회사를 나온 입장에서 조언을 해 준다면?

솔직히 결혼을 하지 않은 후배에게는 해 줄 말은 없다

결혼한 후배라면 돈이 전부가 아니다.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 가정에 소홀하지 말아라.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안 그러면 공대 나온 사람은 회사에서 짤리는 순간 끝난다. 아내가 특히 정신적으로 동감을 하고 도움을 준다면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이건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으로서 퇴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의 다스림이다. 아차 잘못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말 정도 일 듯 하다.

나는 안다. 이 느낌 이 지랄맞은 감정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일 뿐이다. 퇴사 후 느끼는 감정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절대 모른다. 경험이 같지 않다면 전혀 공감할 수 없기에 나는 이 감정은 경험한 사람들에게만 혹은 듣기 원하는 사람에게만 얘기한다. 사람들은 그냥 누가 회사를 몇 살에 때려 치고 나와서 창업해서 좀 힘들다가 지금은 잘되 회사 다닐 때보다 몇 배는 더 벌어. 뭐 이런 류의 얘기만 들으려 한다.  

모바일 포털에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몇 년간 세계 일주한 이야기뭐 이런 것들 것 많은데. 그 자체로는 좋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는 그냥 표면적인 성공 세속적인 멋짐만 다루려 한다. 그 과정까지의 감정과 삶의 변화 이런 것에는 그냥 소홀하다. 아쉬운 부분이다. 퇴사한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만 듣는다고 바뀌는 건 없다. 내가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과정 동안의 감정의 변화와 그것을 어떻게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 얘기해 주면 더 좋을 것 같다.

 

▶ 요즘 일상은 어떤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와 같이 아이 밥을 먹이고 유치원에 대려다 준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동네 뒷산을 산책한다. 동네 아줌마들은 많이 만나는데 우리 부부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부러워한다. 가끔은 조조할인 영화도 본다. 돌아오면 아내는 지금 계획 중인 집의 도면을 짜고, 나는 준비하고 있는 소프트 웨어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짠다. 나는 천상 개발자이고 할 수 있는 일도 소프트웨어 개발이기 때문에 이 일을 준비한다. 이걸로 대박을 치거나 하는 생각은 없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내 능력 안에서 적당한 생활비만 벌어도 만족한다.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다. 그러다가 3시가 넘으면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고서 아이와 계속 놀아준다. 힘에 부칠 정도로 놀아준다. 아이가 8시에 잠이 들면 아내와 집의 설계도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블로그에 글도 집중해서 하나 쓴다. 그렇게 지내고 있다.

 

▶ 회사를 그만두고서 얻은게 있다면?

회사를 떠나서 나는 아들을 다시 얻었다. 아이는 어릴 적에 아빠 집을 인도로 알았다. 하도 오랫동안 인도에 출장을 가 있으니 그런 것이다. 또 아이가 아빠얼굴을 보지 않으면 아빠로서의 존엄성은 전혀 없고 무시한다. 나와 아이의 관계가 예전에 그러했다.아빠는 아빠 집이 회사니까 회사나 가. 인도로 가버리고 들어오지 마이런 얘기까지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아빠였다. 이제는 완전 달라졌다. 유치원에서 돌아오자 마자 아빠 오늘은 이거 하고 놀자라고 나에게 달려든다. 힘들 때도 있지만 행복하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함께 논의하고 얘기하고 차마시고 산책하고 또 미래를 고민하고 하는 이 시간 속에서 너무 벅차오르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앞이 너무 깜깜하고 자려고 누워서 잠도 안 오고 답답한데도 손을 잡아 주면서 . 행복하다라고 말해 준다. 그렇게 아들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가 행복함으로 정리되다 보니 나의 자존감도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깜깜하고 어두운 감정이 조금 빨리 사라졌던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이 시간이 이제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이 업계에서는 나를 위한 삶을 생각할 수도 없다. 2~3달 동안 해외로 출장을 나가면 회사에서 나에게 쏟는 돈이 수천 만원 아니 억대가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 . 이번 프로젝트에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만지 알아? 정신차려이런 말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다른 생각을 아예 할 수도 없다. 그저 좀비처럼 일만 하는 거다. 나를 위한 삶,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할 여유는 아예 없다. 그저 살아 숨쉬고 회사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서만 시간을 쓴다. 퇴사한 이후 8개월 동안 내가 겪고 있는 일들 그 안에서 나의 생각과 감정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을만큼 소중하다.  

나는 아들, 아내 그리고 잃어버린 나 자신도 찾고 있다. 잃어버린 것은 정말 돈 뿐이다. 이제는 돈 때문에 상처 받지 않는다. 아내가 나를 믿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든든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건 좀 하고 나올걸하고 아쉬움이 드는 부분은?

그게 없다는 건 거짓말일거다. 나도 얍샵하게 회사생활을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일과 내 삶의 균형을 맞춰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너무 병신처럼 헌신해서 일한 것이 후회된다. 나도 적당히 챙길건 챙기면서 살걸 하는 생각이 크다.

회사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회사는 100이라는 돈을 주고 200 아니 500을 뽑아내려고 한다. 그건 당연한 거다. 냉정하게 말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저 빨대만 꽂혀서 그 빨대를 빼려고 노력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남처럼 거짓말이라도 하면서 뭐라도 배우고 강의도 듣고 경험도 쌓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큰 충격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자신의 소리와 욕망에 귀 기울여 본적 있는가?

생각 해봤다. 하지만 모르겠다는 것이 답이었다. 내 스스로의 욕망은 무언지 찾지 못했다. 물론 찾으려고 노력은 해 봤다. 사실 그 노력이 충분했는지는 모르겠다. 회사라는 새장 속에서 주는 모이만 먹고는 내가 생각하고 고민했던 노력이 불충분 했을 것도 같다. 회사를 나와서 보니 진짜 그렇다. 회사를 나온 지금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지금은 그것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회사 안에서 갖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경험과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며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백만여 원이 넘는 학원도 끊어 봤고 여러 가지를 탐구하고 있다.

회사는 알게 모르게 개인을 위한 생각을 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온전히 회사, 그리고 회사 일에만 집중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아직은 회사를 떠나서 돈을 벌고 있지는 않다. 이에 대한 불안은 없나?

아직은 불안하지 않다. 아직 준비단계이기도 하고 경제활동을 시작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했는데 잘 안되거나 하면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없다.

 

▶ 재취업을 할 생각은 없나? 아직 서른 아홉인데

솔직히 말하면 회사를 그만두면서 마지막으로 믿는 구석이 재취업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나를 써줄 곳, 내 가치를 인정해 줄 곳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내가 자신 스스로를 찾는 탐구,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 아닌 다른 길을 찾으려는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재취업에 대한 믿는 구석 때문이라고 했다. “적당히 해보다가 안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있지?” 라는 질문에 뜨끔했다. 나를 꽤 뚫고 있었다. 아내는 그럼 헤드헌터에게 전화해 보라고 했다. 실제로 전화를 해 보니 이 바닥의 공기는 냉랭했다. 채용계획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아내에게 그렇게 안이한 내 생각을 들키고 난 후, 그리고 시장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재취업의 생각을 우선 접었다. 퇴로를 막고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 서울 근교로 이사할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결심하게 되었나?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내가 함께 세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가족이 함께 여행하면서 프라하에 가보고 오로라를 보는 것도 버킷리스트에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미 이루었다. 또 하나는 마당이 있는 내 땅, 내 집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사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랬다. 회사 생활하면서 주말에 겨우 짬을 내서 양평, 가평 이런 곳을 아내와 돌아다녔다. 괜찮은 곳을 찾기도 했는데 직장문제 때문에 포기했었다. 전원주택,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려면 70km에 육박하는 편도 출퇴근을 감수해야 했다. 하루 4시간을 길바닥에 버려야 했다. 이런 단점을 상쇄시킨 만한 장점을 회사 다닐 때는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직장이 없다보니 상쇄시킬 것 자체가 사라졌다

퇴사 이후에 여행을 다녀온 후 우연히 ㅇㅇ마을 이라는 타운하우스가 생긴다고 해서 한번 가봤다. 가서 설명을 듣고 둘러본 후 아내와 차 안에서 바로 결정했다. 직장이 없어서 출퇴근 걱정이 없기에 가능했다. 웃기지만 그랬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이곳에서 먹고 살만한 일을 찾거나 출퇴근에 구애 받지 않는 일을 알아보자고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생토록 이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저지르지 않으면 변화의 싹이 틀 수가 없었다. 십 년 동안 조금씩 모아온 돈을 탈탈 털어서 샀다.

 

▶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없다. Never. 흔히들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성공은 더더욱 없다. 만나는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하는 생각만 하는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얘기하면 피곤이 몰려온다.

 

▶ 그럼 인생의 모토가 있다면?

적당히 벌어서 잘 살고 싶다. 적당하다는 걸 계산해 보니 3식구로 볼 때 200만원 정도면 되는 것 같다. 세상은 이 제테크를 해야 하고 이걸 해야 해. 안 그러면 나중에 폐지나 줍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대부분은 그 말을 듣고 믿고 겁에 질려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작은 행복감을 느끼고 내가 원하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기에 필요한 돈만 있으면 된다. 그것이 꼭 일년에 수 천만원, 혹은 은퇴 후 몇 십억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경제적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우리의 가치에 맞게 아이를 교육시키면서 살자고 아내와 얘기했다. 인간으로서 존엄, 동시에 자족하는 행복한 삶 그게 나와 내 가족이 원하는 삶이다. 텐인텐이라는 직장인들을 위한 돈 모으기 카페가 있다. 우리나라 일반 직장인들이게 십년안에 십억은 가당찮은 얘기다. 꿈팔이랑 다를게 없어 보였다. 누구나 십년안에 십억을 벌면 그 십억의 가치가 십억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생의 좌표, 되고자 하는 바를 물어보면 경제적 자유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내가 남 보기에 쪽팔리지 않을 만큼 써도 문제 없을 만큼 벌고 싶다는 뜻이다. 이건 한도 끝도 없게 된다. 그런 삶은 없다. 끝이 없다. 남과 비교하며 사는 삶을 끊어냈기 때문에 지금 나는 가능한듯 하다. 나는 인간으로 나의 가치를 잃지 않는 존엄적 가치인이 되고 싶다. 비교하고 싶지 않다. 내 가치가 중요하다.

 

▶ 지금 당신처럼 대책을 세우지 않고 회사를 떠난 사람, 그리고 딱 한 달이 지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내가 그 순간을 겪어 봤기 때문에 어떤 조언도 들리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 시기는 특히 그렇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해 줄 말은 없고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한다면 충분히 들어줄 수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것은 부딪힘과 시간이다.

 

▶ 직장생활연구소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회사를 떠나고 나서 검색창에 퇴사, 퇴직이런 것들은 많이 찾아 봤다. 대부분이 나 오늘부터 회사 안감. 아 너무 좋다.’ 뭐 이런 짧은 순간의 생각들을 적어 놓았다. 직장생활연구소처럼 회사를 떠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 대해서 연재하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즐겨찾기를 해 놓고 퇴사충동이 생길 때 마다 들어가서 글을 읽었다. 내 생각에 대해 지지를 받고 싶었기에 직장생활연구소를 찾아왔던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가장의 퇴사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고 싶다. 내가 이렇게 해서 이렇게 극복했다가 아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에 퇴사가 더해졌을 때 느껴지는 공포감을 나누고 공감해 주고 어루만져주고 싶다. 위로해 주고 싶다.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회사를 떠나서 8개월이 넘은 지금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하나는, 나는 감정과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나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얘기하고 또 남의 심정에 대해 아무 조건없이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같다. 퇴사하기 전에는 몰랐던 퇴사 후에 수없는 감정의 깨짐을 겪고서 알게 된 나의 모습이다. 공대생으로 시작해서 개발자로 살면서 눈에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논리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런 나의 또 다른 모습도 회사를 떠나서 알게 되었다.

 

 

 

 

▶ 대책 없는 퇴사는 10층에서 떨어져 맨몸으로 땅에 부딪히는 것과 같다. 떨어져서 팔다리 뼈가 다 부서졌지만 죽지 않는 느낌. 온몸의 세포들이 절망하는 느낌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져서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결혼을 했다면 자녀가 있는 가장의 것이라면 더욱 더 그 감정은 크고 무섭다.  가장 힘든 것은 이 감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이런 감정을 외면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는 퇴사의 과정을 겪으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있었다. 퇴사라는 선택이 무엇에 기인했든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출해야 빨리 이겨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퇴직 후 찾아오는 죽음과도 같은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자신과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일 것이다.  직장생활연구소의 모토처럼 세상의 모든 직장인, 아니 세상의 모든 아빠, 가장을 응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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