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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 아버지의 퇴사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6.29 06:30 / Category : 직장생활/직장생활 칼럼



퇴사는 어느 순간에 화두가 되었다. 

관련 책과 TV 프로그램이 나왔다.  모임, 강연부터 심지어 '퇴사’ 안의 불안을 앞세워 영리를 추구하는 곳까지 생겨났다. 힘든 취준생 시절을 거쳐 입사 하자마자 퇴사를 결행하는 직장인이 세 명 중 한 명 꼴이다. 대기업도 입사 1년도 되지 않는 신입사원을 구조조정의 대상에 올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퇴사관련 이야기는 젊은 친구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실행하는 그들 대부분은 미혼으로 몸이 가벼운 경우가 많다. 하나의 잘못된 선택지만을 움켜쥐고 긴 인생을 살아가기엔 아직 젊은 나이기에, 그들의 퇴사에는 ‘도전’ 혹은 ‘응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기도 한다. 


반면 40대 이상의 경우에는 퇴사라는 단어의 무게는 젊은이들의 것과는 다르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시시포스처럼 힘겨운 하루를 버텨내야 하기에 그러할까? 꼰대, 아재와 같은 부정적이고 시니컬한 뉘앙스가 깔려 있는 단어가 슬슬 따라오는 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젊은이들의 취업도 힘든 상황에서 40대가 넘어선 나이, 직급의 퇴사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어차피 누군가가 나가야 한다면, 평생 다닐 수 없는 회사라면, 이미 혜택을 먼저 받은 이가 나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깔려 있을 것이다. 


아버지들의 퇴사가 더 무거운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젊은이들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깔려있는 분위기에서 그들의 노력은 안타깝고 씁쓸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할 그들의 새로운 도전은 그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으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 남편, 그리고 우리의 퇴사에는 어떤 기준이 더 필요할까?


 







self-centered decision making



“제 상황이 지금 이러 이러한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퇴사를 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내가 퇴사관련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대부분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이 질문에 나는 대부분 결정을 내려주지 않는다. 아니 그럴수도 없다. 대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계속 던져 가이드를 한다.  두 시간 정도의 시간만으로 인생의 가장 주체적이고 중요한 질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질문에는 맹점이 있다. 대부분 ‘나’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 퇴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맞을까요?” 라고 묻는 사람은 쉽게 만나기 어렵다. 나는 퇴사를 <태어나 처음 내린 가장 주체적인 결정>이라고 정의 한다. 지금까지는 우리는 남들이 그래야 한다는 대로 살아 왔기 때문이다. 중고등 학교 때는 ‘좋은 대학 가야 대접 받는다. 대한민국은 아직은 학벌이다.’ 라는 말을 신봉하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했다. 대학교에서는 ‘좋은 회사 들어가야 한다.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 라는 주위의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듣는다. 당신도 모르게 강요 받아온 이런 생각들은 당신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주위 사람 혹은 세상이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그저 별 생각 없이 따른 것일 뿐이다. 이렇게 내 생각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주입 받아온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채로 회사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당장 혼란에 부딪힌다. 


스스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윗사람이 시킨 일로 매일 야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보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이러려고 회사에 들어온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싹튼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서 이 서있는 환경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퇴사는 인생에서 처음 내린 주체적인 결정이 된다. 이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러하다. 그렇기에 퇴사는 가장 힘들게 그리고 스스로 내리는 첫 번째 중요한 결정이 되어야 한다. 또, 퇴사라는 의사결정에는 중심에 ‘나’를 두어야 한다. ‘나 자신’을 빼 놓은 ‘주변 환경’만 고려해서 내린 결정에 내린 답이 만족스러울 확률은 거의 없다.  










가족의 이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동의’란 ‘approved’나 ‘confirmed’ 가 아닌 ‘이해’, ‘understand’를 말한다. 특히 남편에게 아내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18년 동안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대기업 팀장, 중견기업의 임원을 거친 A가 있었다. 늘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으로 일했고, 전문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중견기업에서 오너와 의견 충돌이 생기면서 강제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아내는 사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두어 달 정도는 출근하지 않는 남편의 생활을 이해 했다. 하지만 석 달이 넘어가면서 “이제 새로운 회사에서 일해야지?” 라며 채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제 돈 안 벌어 올 꺼야?”로 넘어가면서 가족의 불화는 생기기 시작했다. 사기업의 구조와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아내와 의견 출동이 자주 생겼다. 저녁 식사 후 일하고 돌아온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하는 남편의 뒤통수에 “설거지 할라고 회사 때려 쳤어”라는 화살이 꽂힌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는 문을 닫고 방안으로 사라졌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서 생활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내의 채근은 계속 되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 되어버렸다. 


A에게 필요한 것은 아내의 이해뿐이었다. “여보 힘들지, 괜찮아. 아직 힘들지만 준비 잘 해봐.” 라는 따듯한 말 한마디면 충분한 것이다. 그는 상담을 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돈을 잘 벌어올 때의 모습, 가족끼리 해외여행 갈 때의 행복은 가짜였던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했다. 아내가 이토록 나와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 아내는 자신과 다른 곳만 보고 있었다. 충분한 인생 방향성의 이해 없이 맞닥뜨린 갑작스런 그의 퇴사는 절망이 되어 버렸다. 가족은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해야만 현재의 고단함과 급작스럽게 닥친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이 칼럼에 아버지들도 당당하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도 된다는 취지의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아버지에게 마냥 ‘자신만’을 앞세운 자신의 꿈을 쫒는 결정을 하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파랑새가 살고 있는 동화 속 주인공이 아니다. 또 매주 무모한 도전을 하는 예능의 출연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 삶은 방구석 판타지가 된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에 찌들어 버리면 삶의 의미는 사라진다. 아버지의 퇴사는 두 번째 인생의 ‘자신의 가치’를 좇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라면 그 선택이 ‘바로 당신 자신을 중심에 둔 가족의 이해가 있는’ 선택이 되길 바란다. 


단지 아버지의 퇴사를 생계유지 라는 책임감이라는 무게로 짓누르기만 한다면 아버지라는 ‘사람’은 사라진다. 그리고 밥을 먹이면 돈을 벌어오는 ‘기계’ 한 대만 남게 된다. 꿈과 시간, 삶을 포기하면 돈이 나오는 ‘자판기’ 말이다. 바로 자신을 선택의 중심에 두되, 가족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삶의 영점 맞추기’가 아버지의 퇴사에는 꼭 필요하다.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우선이다. 월급이 좀 깎여도 대기업 명함이 없어도 여전히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연구소 :: kickthecompany.com Written by 손성곤
본 글은 이 시대의 아버지를 위한 월간지 <볼드저널>에 기고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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