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별과 출발_ 간이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4.17 08: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벨제붑의 노래


 

우우웅~우우웅~”

여보세요.”

~XX, 빨리 안 일어나! 지금 난리 났어! 얼른 출근해서 확인하고 전화 해!”

? . 알겠습니다.”

 

겨우 눈을 뜨니 새벽 6, 숙취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이고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휴대폰에는 토요일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계속 눈만 껌벅거렸다. 어제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던져버렸던 그 일이 터져버린 게 분명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문을 열고, 냉수 한 컵에 타이레놀 한 알을 하고 털어 넣고는 자리에 앉았다. 멍한 정신도 잠시, 이내 정신 없이 전화기를 돌려댔다. 오늘 새벽에 공항 창고에 도착했어야 하는 물건이 배송이 안 됐고, 그 짐을 기다리다 전체 스케줄이 꼬여 버렸다. 주말 출근에 가뜩이나 짜증이 난 창고 소장님의 불만이 고스란히 내게 터졌다.


통화에 통화를 거듭해 화물을 찾았고, 늦어진 스케줄을 조정하기 위해 항공사 화물 담당 부서와 몇 차례 언성이 오가고 나서야 겨우 일을 마무리 했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지만, 회사의 팩스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미국에서 주말에 들어오는 화물 선적 서류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고~’

한 숨을 내쉬면서 그대로 몸을 의자에 던졌다. 한 끼도 먹지 못하고 달렸더니 스르륵 졸음이 밀려왔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팩스기 아래 가득 쌓인 서류 더미들을 채 정리하지도 못한 채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내일 다시 출근해서 마무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할 것 같습니다. 수고하세요

 

월요일 출근길에 날아든 문자 한 통에 숨이 턱 막혔다. 한 달 전 내 밑으로 들어온 신입 직원이 보낸 문자였다. 벌써 세 명째, 근성 없는 신입 직원을 원망하는 대신에 그 동안 번듯한 휴일 없이 일만 하느라 고생했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패기 넘치던 신입 직원들이 채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는 그 곳에서 두 해나 견뎌낸 내가 참 미련스럽다는 생각이 새삼 밀려왔다.

 

거울 속에 나는 예전보다 주름이 늘었고, 다크 서클은 볼까지 내려와 거뭇거뭇했다. 입사할 때 산 셔츠와 바지는 2년 간 차곡차곡 쌓은 뱃살 때문에 철이 바뀔 때면 입을 수도 없었다. 나는 어느새 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영락없는 아저씨가 되어 하루 하루 살아내기에 바쁜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었다.

 

회사는 본사가 부산으로 사업 확장을 위해 신규 부서를 만들고 있었다. 내가 입사하고 공교롭게도 그 부서에 계시던 분들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거나 퇴사를 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업무를 제대로 알려줄 사수는 없었고 홀로 맨땅에 헤딩하며 일을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정의 순간마다 정석이 아닌 변칙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순간의 곤궁을 피하려고 임기응변이나 요령만 찾고 간혹 일이 잘못되면 그 때부터는 끝없는 야근의 연속 이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하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꾼이 될 것 같은 기분만 들었다.



출근길에 졸음을 쫓기 위해 무심코 펼친 신문에서 발견한 대학원 입학 공고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도 머릿속 한곳에 계속 웅크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필요다. 대학원을 계기로 더 도약하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커졌다. 결국 대학원 도전을 결심하고 시간을 쪼개 조금씩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토익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떠듬떠듬 영어 면접도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큰일 나겠다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간절해졌다.

 

서류 접수를 마치고 얼마 후 대학원 교수님들 앞에서 영어 면접도 마쳤다. 하루 하루 기도 하는 심정으로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발표 일 아침부터 모니터 앞에 앉아 죄 없는 손톱만 물어뜯어댔다.

 

따르릉~”

네네, 여보세요!”

여기 OOO대학원 입학처 입니다.”

 

합격이었다. 그리고 얼마 정도의 장학금까지 같이 받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은행에 들러 2년 간 넣었던 적금을 해지해 등록금을 송금했다. 그리고는 남은 돈으로 2년간의 생활비를 헤아렸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사직서를 받은 상무님께선 놀란 표정이었지만 예기를 들으시고는 이내 웃으며 축하해주셨다. 그 동안 이 곳에서 휴일 없이 일하느라 너무 고생했고,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마지막 날까지 잘 부탁한다고 했다뭔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릎에 힘이 없었다. 시원 섭섭하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난 2년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스쳐갔다. 휴일도 없이 스스로를 태우면서 스스로 참 많은 것들을 잃었다고 원망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얻은 것도 있었다. 회사라는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울고 웃었다. 스스로 상황을 잘 관리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 탓에 원망과 분노만 가득 키웠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 선택한 대학원이라는 중간 기착점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나를 돌아보고 정비하며 다음 행선지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기찻길을 만들고 그곳을 향해 다시 달릴 것이다. 지금 보다 더 나은 나를 보여주기 위해 신발끈을 동여맬 것이다. 이렇게 나의 첫 회사는 나를 이 만큼 키운 채 철길 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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