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유배달과 선교사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4.03 08: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벨제붑의 노래

4. 우유배달과 선교사_ 넘어짐에서 배우는 인생의 맛


인생이란 도로를 걷다 보면 참 많은 요철들이 발에 채인다

쉽게 피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피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나의 20대는 늘 울퉁불퉁했고 피하거나 넘다 걸려 쓰러짐의 반복이었다새벽까지 술을 나르고 돌아와 잠을 청할 때면 당시 동거인이었던 형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맞다. 예전에 나랑 모기채를 팔았던 그 형이다. 우리 두 사람은 군 전역 후 다시 함께 지냈고, 생활비를 벌며 아슬아슬하게 하루 하루를 버티던 그런 시절이었다처음엔 그 형이 이른 새벽마다 나가는 걸 보며 무슨 막노동을 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우유 배달을 한다고 했다. 고시를 준비하던 형은 낮 시간에 최대한 공부해야 했기에, 잠을 줄이고 최대한 새벽 시간을 쪼개 할 수 있는 그 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나도 사정이 있었지만, 막상 형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맘이 먹먹했고, 한 두 번 도와주기 시작했고, 어느새 새벽 우유 배달부에 삶에 맞춰가기 시작했다.


우유 배달은 집집마다 원하는 제품이 다르고 유통기한이 있어 분류하고 배달을 마치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하루 평균 100군데 정도 배달을 하면 어느 정도 능숙하단 말을 듣는데, 그 형은 이미 300군데가 넘는 집을 도맡아 배달하던 베테랑 배달부가 되어 있었다. 나도 형을 통해 요령을 익히고 점점 배달의 기수로서 겨울 바람을 뚫고 달리고 있었다종종 승강기가 없는 고층 빌라에 배달을 하게 되는데, 7-8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운동이 된다. 우리끼리 오죽했으면 우유 받아 먹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우리가 더 건강히 장수할 것 같다는 말을 했을까. 한 달 정도 지나니 나도 7-80군데 정도 맡아서 배달할 수 있었고, 배달 하며 틈틈이 마셨던 우유 덕분인지는 몰라도 하루 4시간을 채 못 자고도 일하고 공부하며 열심히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뺑소니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똑같이 동네를 누비며 배달 중이었는데, 순간 옆 쪽에서 검은색 승용차가 튀어나왔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내 배달 오토바이는 구석으로 처박혀 버렸다. 정신을 차려보고 나니 이미 운전자는 도망가버렸고 도로 한 가득 우유와 요거트가 쏟아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헬멧 덕분에 얼굴은 무사했는데, 무릎을 다쳐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마침 배달을 끝낸 형 덕분에 그날은 어찌 끝냈지만, 그 날부터 난 사실상 잠정 휴업 신세가 되었다.



절뚝거리면서 경찰서에 사고 접수를 하고, 수소문을 하며 다녔지만, 이른 새벽 뺑소니 사고라 목격자도 없었고, 하필 그 길엔 cctv도 없었다. 임시 치료를 위해 다니던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을 해서 엑스레이도 찍고 심하면 MRI도 촬영하여 상태를 진단해야 한다고 권했다. 하지만 뺑소니로 신고한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이라 보험 적용이 되지 않은 상태라 부담이 컸다. 중간 정산을 하러 갔다가 향후 진행될 예상 진료비 가격을 듣는 순간 통증이 사라졌다. 아니 더 이상 아파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 맞출 수 있는 좋은(?) 무릎을 그때 얻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졸업이 코 앞으로 다가 왔고, 취업을 못하면 꼼짝없이 실업자 신세였다. 유학은 고사하고 어학 연수 가본 적도 없었던 터라 취업을 위해 마냥 토익 시험에만 매달렸는데, 그 해부터 영어 말하기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취업 시장을 강타했다. 생활비도 부족한 판에 어떻게 영어 회화 공부를 해야 하냐며 고민하던 차에 형이 좋은 소식이 있다며 나를 불렀다. 다음 날 형을 따라 집 근처에 한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입구에서 왠 양복 입은 외국인 2명이 웃으며 우릴 반겼다. 알고 보니 선교를 하러 한국에 온 선교사들인데, 모집이 힘들어서 고민하다, 30분 정도 영어 회화를 도와주고, 끝나고 30분 정도 선교할 시간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홍보하던 차에 형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속으로 이게 또 뭔 가 싶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 전이란 생각으로 헬로우를 마구 마구 외쳤다. 그 후로 일주일에 2-3번씩은 외국인 선교사 친구들과 영어 공부를 했고, 그들의 어눌한 한국어 선교도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교구로부터 받는 급여가 너무 적어, 좁은 고시원에서 살면서 항상 걸어 다니고 끼니도 자주 걸러 자기들도 많이 힘들다고 했다.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자주 밥도 사줬고, 심지어 형은 돈도 빌려줬다.

나의 온갖(?) 노력에도 졸업 전 취업이라는 미션은 끝내 이룰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이력서를 보낸 지도 모를 정도로 노력했지만 취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지금 이 상황을 버텨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 졸업을 해서 오전, 오후 시간이 여유 있어서, 그 시간 동안 식당에서 일을 해 생활비를 벌었고, 퇴근 후엔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이력서를 쓰는 생활을 시작했다.


다시 글을 적으면서 그때를 떠올리면 그 막연했던 불안감에 한숨부터 나온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졸업과 함께 사라졌고 믿을 건 나 하나였다. 텅 빈 지갑과 불확실한 내 모습에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그럴 때 마다 웃었다. 일부러 더 크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진짜 맛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난 그 순간에만 허락된다. 나는 안다. 넘어짐이 반복될수록 인생의 맛은 더 진해지고 멋스러워 진다는 것을. 이 글을 읽은 당신도 꼭 그 맛을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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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0 / Comments 4

  • 好的♥ 2015.04.03 08:53 신고

    벨제붑님의 글만 읽어도 참 긍정적이신 분 같으세요. 긍정적이면 안될 일도 풀리고 불행한 일도 불행으로 보이지 않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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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왕 2015.04.03 11:40 신고

      긍정 ! 또 긍정 입니다 !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죠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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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오대리 2015.04.03 17:23 신고

    정말 멋지시네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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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왕 2015.04.08 12:01 신고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ㅎㅎ 칭찬 감사합니다 ㅎㅎ 미오대리님도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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