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누가 뭐라고 한것도 아닌데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5.29 08: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퇴사 어게인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시작했던 구직의 결과, 두 번째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일이었지만, 두 번째 맞는 매라 그런지 처음보다는 덜 아팠다.

새로운 회사는 퇴근시간이 비교적 일정한 곳 이었다. ‘설마 정시에 퇴근을 하겠어?’ 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했다. 팀장님, 실장님이 퇴근을 하지 않으셔서 눈치를 보는 것은 이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퇴근을 해도 하늘에 해는 그대로 였고,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퇴근 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고, 감사했다. 월급이 적었지만 괜찮았다. 칼퇴를 할 수 있는데 돈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뭐랄까 회사라기보다는 도서관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출근을 해서 각자 할 일을 하고 돌아가는 그런 곳 이었다. 같은 층에 있어도 얼굴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회식도 거의 없었다. 팀이라고는 하지만 명목상일 뿐이었다. 주어진 일만 잘 해 낸다면 터치하는 사람도 없었다. 개인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신입이라고 불리는 시간이 지날 때쯤 나에게도 업무가 주어졌다. 이제 내 역량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일을 받았는데 어쩌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터치하는 사람도, 관리하는 사람도 없으니 신입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쌓는 그 시기를 허송세월 한 것이다. 눈앞이 깜깜했다.



 

저기.. 대리님 바쁘세요?”

왜요?”

제가 이 부분을 잘 모르겠는데요.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이걸 내가 왜? 노하우를 춘희씨 알려주면 뭐 먹고 살라고? 내 밥줄인데, 경쟁력이 없어지는 거잖아.”

그런 뜻이 아닌데.. , 알겠습니다.”

 

도움을 요청했다가 꾸지람만 듣고 자리로 돌아왔다. 대리님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대리님은 프리랜서였다.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은 프리랜서에게는 예민한 부분일 수 있으니까 그의 까칠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하고 치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쉬운 건 나였다. 음료수도 사드리고 원래 성격과는 반대로 살갑게 굴면서 모르는 것 들을 배워나갔다. 원리는 간단했다. 비위 맞춰주는 것이 싫으면 많이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배워야 할 것 들이 많은 나는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다. 칼퇴근이 가능한 것도 프리랜서가 많아 개인주의가 강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누가 그림 그리랬어? 그림을 그리지 말고 설계를 하라고!” 업무를 지시한 과장님이었다.

죄송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죄송하다는 말로 상황을 넘겼다

과장님, 죄송한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시면.’ 이라고 말했다가는 육두문자를 듣게 될 것이 뻔했다.


과장님께서 올라가고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노려보기도 했다가 팔짱을 껴보기도 하다가 다시 화면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행여 누가 볼까 봐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커버를 내리고 앉아서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나왔다.  오늘은 그냥 가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일 다시 시작할까?’ 아니다. 이건 내일이다.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억울하고 서러워도 결국 내가 해야 한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눈물이 또 툭 하고 떨어진다. 눈물이 빨리 마르길 바라며 선풍기 바람을 얼굴로 쏘였다. 상기된 얼굴을 진정시켰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데 능숙한 업무능력이 없으니 미련함으로 승부하느라 힘이 들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자꾸 눈물이 났다. 능력이 부족한 것을 스스로 알기에 더 답답했다. 나의 부족함이 빰을 타고 흐르는 것만 같았다.  




- 14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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