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감정노동에서 이기적 노동으로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5.29 08:00 / Category : 직장인 필진/벨제붑의 노래


간만에 맞이한 느긋한 주말 아침의 평화는 여지없이 깨진다. 휴일임에도 어김없이 상사의 메일과 카톡이 날아들기 때문이다. 업무 일지에 적힌 내용을 하나씩 물어가며 일장 훈시가 이어진다. 분명히 어제 여러번 보고한 내용 임에도 계속 묻고 묻는다. 해당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휴일에도 하릴없이 상사의 연락에 마음 졸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싫다. 그렇다고 무시했다간 내일 한바탕 난리가 보듯 뻔하다 보니, 그저 멍하니 계속 휴대폰을 보게 된다.


오전 내내 쌓였던 짜증은 결국 옆에 같이 앉아있던 여자친구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 모처럼 쉬는 날에 만났지만 제대로 놀지도 못한 터에 그녀도 덩달아 폭발해버렸다. 이런 식이냐며 팔짱을 끼고 인상을 쓰는 모습에, 나는 졸지에 상사와 여친, 양쪽에 굽실거려야만 했다. 주문한 파스타가 식기도 전에 자릴 박차고 가버린 여친 덕분에 나는 떠버린 시간을 일하는 있었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근처 도서관에 가득 짐을 짊어지고 가서 노트북 전원을 켰다. 이내 쏟아지는 메일과 정리 못한 각종 파일들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는 것만 같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이게 하는 짓인지 맥이 풀리고 일할 맘이 가신다. 도대체 공휴일 오후에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만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화풀이 상대가 없어 앞에 놓은 연습장에 무작정 끄적이기 시작했다. 하얗던 종이가 까맣게 되고 나니 마음이 누그러진 같았다. 무기력해지기 전에 얼른 모니터를 보며 일을 시작해본다. 그런데 아까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 같아 잠시 갸우뚱거리며 이메일 하나를 열어봤다. 순간 메일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불필요한 감정의 껍질 아래에 놓인 지시 사항들이 보였다.

 

과장님이 내게 보낸 메일은 일을 언제까지 어떻게 처리하면 된다고 적은 단순한 지시였다. 하지만 눈을 가린 일을 지시하는 상사의 말투였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실제 들리는 같은 어투와 온갖 단어들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메일 말투다. 메일을 보고 나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결국 업무 지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직장에서 때로는 일에서 감정을 덜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장황하고 복잡한 메일 사이에서 필요한 내용만 추려내니 정작 줄이 되지 않는다. 내용을 마무리할 무렵 다른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번엔 억지 섞인 최대리의 메시지다. 맘이 상할 까봐 아예 메신저 창을 내려 놓고 전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창을 열어 글을 읽어봤다. 중요한 물건을 금요일까지 해외로 전달해야 한다. 내일 출근해 오전 중에 처리해도 같다. 하지만 성질 급한 최대리는 일이 잘못될까 무서워 벌써 내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메일을 보내고 자신은 방관자가 되기로 했나보다. 대리님의 메신저 내용을 복사해 메모장에 옮겨놓고 내용을 지워나가면서 핵심을 추려보았다.

 

얼른 대답하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계속 이어졌지만 판단대로 하기로 했다.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감정을 덜어내고 메신저 창에 답을 했다.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정확히 이해 했습니다. 내일 출근  11시까지 처리 후 회신 하겠습니다.

이내 메신저 옆에 있던 숫자가 사라졌다. 얼마 있어 알겠다라는 짧은 답변 이내 잠잠해졌다. 별거 아니었지만 뭔가 스스로 기분이 들었다.

 

내친 김에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적어보았다. 그리고 적은 일들 위에 요일을 적고, 중요한 것들은 별표를 하면서 다시 옮겨 적어보았다. 일일이 손으로 적느라 시간은 걸렸지만, 동안 스스로 얼마나 두서없이 일을 했었는지 있었다. 밀린 메일과 업무 파일과 주의 업무 계획도 정리했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소 나른 하긴 했지만 뭔가 내가 중심이 되어 업무와 일정을 정리해 뿌듯함이 컷다.

 

동안 일의 중요도가 아닌 업무 상대의 감정의 크기에 맞춰 억지로 일했던 것이다.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음에도, 내게 와서 닦달하거나 엄포를 놓는 사람들의 일을 처리하느라 전체 흐름을 자주 놓쳤다. 결국 처리 못한 업무는 야근과 주말 근무로 이어졌다. 당연히 나의 개인 일상은 사라졌고 스스로 무너져 갔던 것이다. 나부터 제대로 순서대로 일할 있어야 그것이 회사를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감겨진 만큼 움직이던 태엽인형의 모습에서 벗어나 보다 당당하고 이기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 그것이 상대와 , 사람이 있는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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