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받을까 말까? 모르는 번호.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4.03 11:00 / Category : 직장인 필진/퇴사 어게인


받을까 말까?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끝이 보이지만 난 그래도 온리유 걸, 어바웃 럽!

 

3분을 남겨 놓고 선택한 노래는 빅뱅의 마지막 인사. 역시 마지막 곡으로 이만한 노래가 없다. 이리저리 방방 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더니 이력서 때문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날아갔다. 노래가 끝나고 탬버린과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몇 시나 된 거야?’ 핸드폰액정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02-ooo-oooo”

아 머야, 스팸 이네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잠깐, 02면 설마…” 얼마 전 면접을 봤던 회사가 생각났다.

 

“여보세요?

“한춘희씨 맞죠? 면접 보셨던, 회사에요.

“아. 네네.

“축하합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 하실 수 있나요?

“그럼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겼음에도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허공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취업이 되었다는 사실이 들뜨고 기뻤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썼던 이력서, 읽고 또 읽어 외울 지경이 되어버린 자기소개서도 이제 안녕이다. 학교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짐을 싸서 집으로 올라왔다.



 

빳빳한 새 옷을 입고, 아직 길들여 지지 않아 뒤꿈치가 살짝 아파오는 새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깜깜하고 차가운 아침공기를 ‘흡’ 하고 깊게 들이 마셨다. 상쾌하면서도 긴장되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어. 잘할 수 있지? 힘내자. 파이팅, 파이팅!

어느새 회사 앞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널찍한 책상에 정장이 아직은 어색해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준비해온 서류와 등본을 제출하고 슬그머니 의자를 빼서 앉았다. “김태연씨, 박진희씨, 원용재씨, 한춘희씨는 설계1팀 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교실을 찾아가는 학생들처럼 한 줄로 나란히 줄을 서서 설계실이 있다는 지하로 내려갔다. 어떤 곳에서 일하게 될지 기대가 되고 궁금했다.

 

‘끼익’ 하고 문을 열었다.

쾌적하고 일할 맛 나는 사무실을 예상했는데, 오 마이 갓!

도면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책상과 의자는 낡고 허름했다. 먼지 가득한 환풍기에 환기를 기대할 수 없었고, 천장에서는 석면가루가 금방 이라도 머리에 내려 앉을 것 같았다실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그 곁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쭈뼛쭈뼛 서 있었다. 다들 자신이 속한 팀을 찾아가고 덩그러니 나만 남았다.

 

“윤정아. 일로 와봐.” ‘드디어 내 차롄가? 팀장님이 여자분 이신 가보네.

“예.” 예상과는 달리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땅딸막한 키에 덥수룩한 머리, 그래도 눈웃음은 조금 귀여운 남자가 나타났다. 자를 시기를 놓친 건지, 기르는 중 인 건지, 머리카락이 자꾸 내려와 눈을 가렸다. 삽살개 같았다.

“니네 팀 신입사원이야. 잘해줘.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답답한지 머리를 흔들며 앞장섰다.

“춘희씨 인사해. 여긴 홍연이, 성호.

“안녕하세요.

 

선배들은 여동생처럼 챙겨주었다. 행여 자리를 바꿔야 할 때면 책상과 컴퓨터를 옮겨주었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라는 나의 말에도 막무가내 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들고 바뀐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지런히 움직였던 무수리가, 갑자기 양반집 규수로 신분상승이 되었다. 이런 호의도 받아본 사람이나 받는다고 낯설고 불편했다. 동기인 태연씨와 용재씨는 남자 막내라는 이유로 형광들을 갈고, 복사용지 배달에 생수통 교체를 했다. 그에 비해 여자 막내에게 주어지는 대접은 황송할 정도였다.

 

“몇 살이에요? 집이 어디에요? 남자친구 있어요?

이런 시시껄렁한 질문에 대답하고, 커피 마실 때 따라가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한동안 회사 가서 하는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일상도 오래가지 못했다. 삽살개 팀장님이 이런 나를 가만히 둘 리 없다.

 

“춘희씨, 잠깐 와봐.

물량 산출하는 법, 판넬 그리는 법.. 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성호야, 니꺼 춘희씨 줘라. 제작도 시켜.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동기들은 이런 내가 부럽다고 했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지겹다고 빨리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고, 어차피 배울 것이라면 빨리 배우는 게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솔직히 나는 천천히 배우고 싶었다. 일보다는 사람들 하고 이야기 하고 친해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도 빨리 일을 배우게 되었다고 투덜투덜 했었던 때가 좋았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출근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으니 말이다.


- 5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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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0 / Comments 2

  • 미오대리 2015.04.03 17:33 신고

    삽살개에서 뿜.. ㅎㅎㅎㅎ 기대됩니다 다음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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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희 2015.04.05 16:39 신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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