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30_ 삼성전자 개발자에서 외식업 브랜드 기획자로 변신.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5.03 06: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회사를 나오게 된 계기가 무엇으로부터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으로 향하기 위해서 였던거 같다.

그건 내가 삼성이 첫 회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삼성전자라는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그 안에 있을 때는 몰랐고 나와 보니 확실히 알았다사회적 시선도 그렇지만 연봉도 매우 훌륭한 회사다직장인 상위 5%안에 들 거다삼성을 나와서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면서 후회도 했다그러다 보니 이 회사를 나가면 후회할거야라는 생각이 있었다그렇기에 싫어서 떠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형태를 띄게 된 것 같다적지 않은 회사를 옮겨보니 여기가 싫어서 나간다.’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다지금 삼성전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분명 장점도 많다그런 상황에서 단점만을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그런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단점만 볼 거다하지만 그 장점을 안에 있을 때는 거의 느끼는 경우가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회사원일 때 본인을 한 마디로 말해본다면?

본 헤이터 (Born Hater)나는 비 합리적이고 비 상식적인걸 못 참는다다른 사람이 그냥 관습적이기 때문에 아무 고민도 없이 그냥 받아 들이는 것그냥 이 집단이 이렇기 때문에 너도 이래야 해원래 그런 거야라는 것을 싫어했다.

 

▶ 회사를 완전히 떠났다후회되는 점은 없나?

글쎄굳이 말하자면 임원이 못된 것은 아쉽다대기업에서 임원 정도 되면 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일을 할 수 있다결국은 나의 아이디어나 일의 가치에 대해서 남이 알아주고 그것을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모두 원한다삼성전자나 IBM에서 상품 기획자로 제대로 아이디어를 냈다면 내가 만든 것을 전세계 사람들이 사용 했을 것이다또 아쉬운 점은 많이 배우고 함께 목표를 함께 일했던 팀원들이 아쉽다삼성전자에 있을 때 열명 정도의 팀이 팀웍이 너무 좋았다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의 기쁨을 알 수도 있었다혼자 외식업 사장으로 외롭게 일하는 지금은 그때의 느낌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 개발자로서의 삶과 브랜드 마케터로서의 삶다소 상반된 일인데 어떤 일이 더 맘에 드나?

브랜딩을 하는 일이 더 맘에 든다죽을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브랜드와 관련된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지금 외식업을 하면서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개발자의 일도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고 결과를 만들어 날 때 희열이 있다개발 일이 너무 싫다기 보다 브랜드 마케터의 일이 더 좋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개발자로서 일한 경험에서 무얼 배웠나그냥 없어질 경험은 아니지 않나?

회사를 나오고 나니 개발자로 일했던 것은 좋은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다대학 4년 동안의 학습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 것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푸는 학습을 하는 거였다컴퓨터는 내가 하면 100년 걸릴 일을 10초면 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가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뿐인 것이다컴퓨터가 모든 일을 다 하는 세상이다심지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그런 상황에서 컴퓨터가 하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영어를 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컴퓨터라는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있게 프로세스를 만들고 적절한 언어로 말해주는 것이 개발자의 일이다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다시 순서를 따라가면서 문제를 찾아내고 디버깅을 한다이렇게 문제를 구조화 하고 프로세스대로 사고하고 생각하는 훈련이 개발자가 가질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다그런 논리적인 생각 프로세스는 컴퓨터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개발 일은 문제가 생겼을 때 호미로 잠깐 막는다고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다시 다른 곳에서 오류가 생긴다그렇기에 반드시 문제의 명확한 원인을 찾고 그 근원적인 원인을 해결해야만 한다그래야만 문제가 풀린다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습성도 갖게 된 것도 배운점이다.

 

▶ 결국 외식업의 세계로 뛰어 들었다어떤 계기였나?

결혼 후 첫째를 낳은 후 나는 우아한 형제들은 다니고 있을 때 아내가 먼저 2015년에 윤경양 식당을 열었다사실 아내는 무용을 전공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원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투잡으로 한 것이다원래 계획은 아내는 외식업을 하고 나는 회사를 다니는 거였다투 트랙 전략이었다첫 식당이 운이 좋게도 시작하자마자 잘 되었다그리고 아내가 둘째를 갖게 되고 내가 회사를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뛰어 들게 된 것이다사실 아내가 먼저 시작했고 그 다음에 내가 뛰어든 것이다아내가 사업가적 기질이 뛰어나다.

 

▶ 식당 브랜드를 소개해 달라.

돈가스 전문인 윤경양식당수제 버거를 파는 Gony’s, 떡복이와 부대찌개를 삼삼하우스피자 전문점 소마이피자 이렇게 4개 브랜드의 6개 매장을 하고 있다. ‘윤경양식당은 아내의 이름인 윤경을 딴것이다. ‘윤식당을 패러디한 것은 아니다. Gony’s는 내 이름을 딴것이다삼삼하우스는 첫째 아들의 태명을 딴것이다소마이피자는 딸의 이름인 ’ (SOMY)를 따서 지었다어찌 보면 가족 브랜드다. ^^

 

▶ 외식업을 시작한지 3년 째 인데 매장이 6개다매장을 많이 늘린 이유는?

솔직히 하루라도 빨리 한푼 이라도 더 벌고 싶었다생각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싶었다또 당시에는 자신이 있었다이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2개까지 늘렸을 때 너무 잘 되었다그러다 보니 자만심이 약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잠실과 제주점도 있다살짝 벅찬 부분도 있다.

 

▶ 다루는 메뉴가 다양하다선택의 기준이 있었나?

돈가스는 만들기 어렵지 않고 자신이 있어서 시작했다예전 건대에서 시작한 가게가 망한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해서 라고 생각한다어느 날 홀에서 이렇게 보니 한쪽에서는 할아버지할머니 분이 앉아 계셨고다른 쪽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젊은 여성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그걸 보고 무릎을 탁 쳤다스타일에는 남녀노소가 있지만 음식장사에는 남녀노소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선택의 폭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전만 해도 패션 브랜드도 아주 명확한 타겟컨셉 등이 있었다강한 특징 있는 브랜드들이 많았다하지만 지금은 유니클로처럼 고객의 Age가 넓어야 선택 받을 확률도 늘어난다고 생각한다다만 입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이삼 십대 여성분들이니 그 분들에게 맞는 인테이리어를 컨셉으로 했다십 년 전에도 팔았고 십 년 후에도 좋아하고 팔 수 있는 음식을 하려고 했다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을 남다르게 팔아보자는 것이 모토가 되었다.

 

▶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돈을 잘 버나?

어떻게 매출을 얘기해야 하나? ^^ 투자한 금액이 아직 빛으로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회사 다닐 때 보다 5배는 버는 것 같다영업이익이 곧 모두 수익이라고 치면 그렇다는 것이다지금은 빛을 갚아나가고 재 투자를 하고 있다누군가는 우와 많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매장이 6개다 그 정도는 벌어야 하는게 맞다.

외식업을 창업하고 처음 생각한 것은 5년을 연습게임으로 보자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연습게임 기간 동안 손해는 볼 수 없었다아이가 둘이다그리고 5년후에 점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년간 열심히 그 원동력을 찾아보자고 했다메뉴를 정하고 장소를 찾은 것이 아니라매장을 먼저 구한 후에 여기에서 뭐할까?’ 를 생각했다모두 권리금이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 2층이 구해지면 여기서 뭐하지이면 도로 골목 안에서는 뭘 해야 할까이렇게 고민했다.

 










▶ 성수동에서만 매장이 4개다성수동을 선택한 이유는?

홈 그라운드 이기 때문이다지금 성수동에 살고 있고 초,,고를 여기에서 나왔다잘 아는 곳이었다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오피스도 들어오고 있어서 주중도 괜찮고 서울숲도 있어서 주말 장사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이렇게 주중주말 상권 모두 다 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은 것 같다괜찮은 선택이라고 본다.

 

▶ 계속 성장하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긴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너무 재지 않는다는 말이다말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다여태껏 그런 인생을 살았다일단 시작하면 무슨 식이든 해 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그리고 남들도 다 하는데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너무 큰 대상이긴 하지만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내가 되지 못할 이유도 굳이 없다고 생각한다생각을 한정하고 싶지는 않았다신중한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수도 있다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100%를 추구하지만 80%만 되고 인정하고 내려 놓는 것도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 자영업 하는 분들은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올바른 태도 (Attitude)의 중요성이다일에 대한 태도와 사람에 대한 태도를 제대로 갖추길 바란다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의 소중함남이 아닌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생각일을 대하는 자세이 일이 천직은 아니더라도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자영업 하면서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나도 일반적인 자영업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이 엄청나게 오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걸 안다하지만 너무 태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10명을 면접보기로 하면 5명이 온다그 중 3명을 뽑아서 일을 하다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 2명은 나간다일하는 중에 핸드폰을 보지 말라는 얘기였다내가 일하러 왔지 너에게 잔소리 들으러 온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며 떠났다.

 

▶ 예전에 자영업자 인터뷰에 비슷한 얘기를 분이 있었다거기에 악플이 달렸다. ‘니가 최저 임금만 겨우 주고 부려 먹으니까 그런 거지’, ‘너는 그런 태도로 일해서 회사 뛰쳐 나왔냐?’ 뭐 그런 악플이었다어떻게 생각하나고용인으로 있을 때와 고용자로 있을 때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직장인과 사장 사이에는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고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는것 같다나도 그랬다내가 사장이 되어 보니 완전히 알지 못했던 세상 이었다회사 입장에서 보면 월급을 많이 주면 그만큼 효율이 나고 효과가 난다고 믿는 것에는 리스크가 있다그래서 회사도 퍼포먼스를 먼저 보여주면 그에 맞게 인센티브도 주고 하는 것 같다서비스업자영업은 한달 벌어 한달 사는 사람들이 작은 규모로 운영하는 곳이 맞다영업이익을 못 내는 즉사장이 한 달에 직원 월급 보다도 못 가져 가는 분들도 많다그렇기에 먼저 직원들에게 선 투자 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 같다나도 월급을 더 주기도 하고 주5일 근무 하면서 모든 휴일을 다 챙겨주고 더 쉬라고 하기도 했다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대부분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직장인 시절에 누리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정말로직장인이 누리는 무형의 것들은 야생으로 나와서야 보일 것이다.

 

▶ 치킨집 수렴의 법칙이 있다. (문과생-백수,사업,작가-치킨집 공대생-과로-치킨집>이다어떻게 생각하나?

다행이 난 과로로 인해서 회사를 퇴사하고 치킨집을 하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을 좀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치킨 프랜차이즈들은 그냥 기름 넣고 닭만 튀기셔서 배달은 아웃소싱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할 것이다그리고 매출이 엄청 잘나오는 상위 매장을 보여줄 것이다세상에 쉬우면서 돈 많이 버는 일은 없다. 내가 그 매출이 잘나오는 매장이 아닐 확률이 대부분이다그걸 말하지 않는 것이 사회고 그걸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 외식업은 고단한 일이다특히 가족의 이해와 도움 없이는 더더욱 그렇다본인은 어땠나?

좋은 질문이다나는 아내가 먼저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우리의 길은 우리 부부가 직접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노력하는 사람을 만난 건 정말 내 인생의 행복인 것 같다아내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다결혼을 안 한 분이 있다면 반드시 같은 곳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다성향은 조금 달라도 된다그 다른 성향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나는 직원에게 살갑게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고 이런거 잘 못하는데 아내는 그 부분을 정말 잘 한다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아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까지 못했을 것이다.

 

▶ 하루 일과는 어떤가?

오전에 일어나서 아이 둘을 밥을 먹이고 어린이 집에 보낸다그리고 오전에 아내와 함께 성수동 매장 중에 하나로 출근해서 점심 시간 넘어서까지 일을 한다그리고 사무 볼일이나 세금 결제 등 업무 처리를 한다그리고 저녁에는 아이를 데리고 오고 저녁을 먹고 일과를 마무리 한다이렇게 한지는 오래 되지는 않았다누가 보면 조금 여유롭다고 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완전 달랐다당시 회사를 다니던 나는 점심 시간에 매장에 나와서 서빙을 했다밥을 못 먹었다그리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서 일하다가 퇴근하고 다시 가게로 와서 일하고 청소 마감까지 다 하고 12시가 넘어서 들어갔었다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는 당연히 오전 준비부터 밤 마무리까지 모두 다 했었다그렇게 거의 3년 동안 기본 하루 12 시간 이상을 일했었다.

 

▶ 매장이 6개면 직원은 몇몇 정도인가?

매니저부터 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한 30명 정도쯤 될 것 같다.

 

▶ 30명 월급을 주는 사람이면 중소기업 사장님이나 마찬가지다월급 150만원이라고 그냥 퉁쳐도 4,500만원이다그냥 잘되는 곳 두 개만 운영하면서 골머리 아프지 않게 살고 싶지는 않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지금은 아까 말한 5년의 연습 과정이다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지금의 방식도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거다그리고 나면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을 거다(Lean)하게 작고 소소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더 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 더 잘 만들어 나가고 싶다.

 

▶ 수제버거의 달인으로 TV에도 소개 되었다대단하다.

그건 방송작가의 친구분이 우리 Gony’s에서 버거를 먹고 너무 맛있어서 친구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고 들었다그래서 2016년에 수제버거의 달인으로 방송 되었다얼마 전 생방송 투데이란 곳에서도 연락이 와서 출연하게 되었다정말 감사하게도 운이 좋았다사실 외식업뿐 아니라 무엇을 하더라고 눈에 띄는고객이 느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윤경양 식당은 플레이팅이 정말 예술적이다따라하는 곳까지 있다무난하게 해서는 차별점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자신만의 날카로운 모난 부분을 갈고 닦아야 한다.

 

▶ 전공자도 아닌데 레시피는 어떻게 만들었나?

우선 모든 책인터넷 사이트의 레시피로 음식을 모두 만들어 봤다돈가스함박스테이크 메뉴를만들 때 는 일본이 돈가스는 세계에서 제일 잘하니까 일본의 쿡패드라는 가장 큰 레시피 사이트를 유료 결제를 해서 하나하나 모두 확인했다나는 어떤 음식을 할 때 그 음식을 최고로 잘 하는 셰프의 레시피를 찾아서 그대로 만들었다그 다음은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그 레시피는 레시피를 공개한 사람 중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의 것이기에 비싼 식재료를 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맛의 끝을 잡아서 기준을 정하고 오퍼레이션을 쉽게 만드는 법을 찾았던것 같다.

 

▶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있나?

상품기획을 하는 일이라면 돌아가고 싶다아이디어를 내고 시작을 해서 판매까지 하는 모든 프로세스를 다 해보는 일이라면 회사로 돌아가서 해보고 싶다요즘은 외식업체에서 브랜드를 런칭하는 일에 많이 끌린다내가 시장을 분석하고 고민해서 만들어낸 요리상품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소비하는 것에 엄청나게 희열을 느낀다그런 일이라면 회사에서 하고 싶다.

 

▶ 동료나 친구들이 장사는 잘되냐나도 프랜차이즈 하나 내 줘회사 그만두고 이거 해야겠다.” 이런 질문은 없나?

다행이 만나는 친구는 개발자 이거나 다양한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어서 아직까지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 요즘 가장 중점을 두고 하는 일은 무엇인가?

비즈니스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큰 관점으로 보니 외식업으로 크게 성공하는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우선은 임금임대료는 올라간다또 직장인들이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트랜드도 생기고 있다직장인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벨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 야근이 줄고 있고 회식도 1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방향은 잡혔고 이제 악셀만 밟으면 더 가속화 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똑같이 팔면 마진은 줄어들고 이익도 줄어든다외식업은 부침도 크고트랜드도 제법 빠르다이런 사회의 큰 흐름 속에서 나는 이미 외식업계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맞추어 나갈까를 가장 고민하고 있다.

 

사실 오픈하고 얼마전까지는 계속해서 배우고 학습하고 부딪히고 또 배우던 시간이었다그 대상은 대박집을 배우는 것이었다아내에게 이런 변화 속에서 다른 게임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해온 일은 같은 게임을 같은 방법으로 했던 것이다이미 수십 년이 넘게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이길 수가 없다그들은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그 대답은 외식업계에 강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올해 열심히 차별점을 찾고 변화 하려고 한다.

 









▶ 몸이 두 개로 분리 된다면 각각의 몸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하나는 지금처럼 일을 할 것이고한 명은 새로운 것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채우면 좋겠다그럼 확실히 더 빨리 성장 할 수 있을 것 같다.


▶ 현재의 삶에 점수를 매겨본다면?

한 80점은 될 것 같다하고 싶은 사업하고 있고 아이도 있고 아내도 있고 건강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고나쁠 이유가 딱히 없다생각해 보니 90점은 넘을 것 같다이 점수가 낮으면 이 인터뷰를 하면 안될 것 같다. ^^

 

▶ 지금의 선택이 잘 한 것이다 라고 느끼는 순간은?

고민할 필요 없다아이들과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다보통 자영업 하면 모두가 얽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조금 시간외 된다직장인 일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낸다그게 가장 좋다.

 

▶ 취업이 너무 힘들다취업을 원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한번에 모든 일이 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그러면 좌절하지 말고 조금 돌아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목표하는 회사가 있다면 당장 거기를 갈 수 없다면관련된 중소 기업에 먼저 취업을 하고 실력을 쌓으며 기회를 보면 된다물론 당연히 그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을 원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예전에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정말 이유가 보였다여자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그림을 그려서 주고조개 껍데기로 목걸이를 만들어 준다이건 정말 아니었다항상 자기 위주 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경쟁자들도 모두 하는 똑같이 제너럴한 스펙만 쌓은 후 스펙이 이렇게 높은데 왜 날 안 알아 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남이 원하는 것을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많은 모임 등에 나가면서 관련분야 사람을 만나면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라. “어떤 사람을 선호하냐어떤 기술이 있어야 하냐가장 중점적으로 필요한 역량이 뭐냐어느 회사 출신의 어느 능력이 있는 경력사원이 많이 오나?”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자신만의 원칙 혹은 스스로 묻는 질문이 있나?

이 일을 하면 가족이 행복할까라는 거다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게 있어도 아내의 동의가 없다면 하지 않는다가족의 행복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돈 많이 버는 것도 그 끝에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끝이 있었다또 하나는 최고로 가장 탁월한 사람회사라는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무언가를 이뤄낸 탁월한 사람조직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까라는 질문으로 스스로 갇힌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5년후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가?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가 단순히 고객들에게만 가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특히 어린이들에의 식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그리고는 가족이 평안했으면 좋겠다아이를 낳고 나니까 세상의 모든 행복이 리셋되는 느낌이었다이보다 더 큰 희열과 행복이 없기 때문이다아이는 완전히 없던 존재이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존재다나에게 희망이자 힘이다가족이 평안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남 눈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길 바란다그런 기준을 가지고는 행복할 수가 없다그리고 관심이 있다면 재발 부디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보길 바란다.










▶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벗어나거나 향해 가거나.'가 그것이다.  그는 지금에서 도망가기 보다는 원하는 것으로 향하는 선택을 해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확정시켜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계속 배웠고 알게 된 것을 표현했다. 행동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새로운 사람들은 생각과 경험을 확장 시켜 주었다. 외식업 사장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 업태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미래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랬다. 5년후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기대가 된다.  이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 다시 한번 성수동의 그의 식당에 한번 가봐야겠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삼성전자, 직장생활연구소, 퇴사자, 퇴사후 식당, 퇴사후 음식점,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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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30_ 삼성전자 개발자에서 외식업 브랜드 기획자로 변신.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5.02 06: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를 부탁

4개의 브랜드로 6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외식업에 종사하는 81년생 이남곤 입니다.

 

▶ 간략히 커리어를 소개해 달라

서울의 한 대학교를 00학번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운 좋게 4학년 1학기에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그래서 삼성전자에서 핸드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삼성전자에서 3년을 일하고 겁없이 회사를 퇴사하고 길거리부터 시작해서 건대 근방에 작은 외식업 가게를 창업했었다. 그러다가 일 년 만에 다시 면접을 보고 IBM에서 일했다. 그 후에 다시 운 좋게 스카웃 되어 하고 싶던 일이던 브랜드 컨설팅업무를 1년 동안 빡세게 배우며 구르며 일했다. 다시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에서 마케팅 팀에서 약 1년 반을 일했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먹고 살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아내가 아내 이름을 걸고 윤경양식당을 성수동에 오픈 했다. 운 좋게 식당운영이 잘 되던 차에 괜찮은 자리가 생겨서 내 이름 걸고 ‘Gony's’ 라는 수제 버거집을 열었다. 둘째를 아내가 임신하면서 나도 회사를 나와서 전업으로 외식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운 좋게 20169월에 생활의 달인수제버거의 달인으로 소개 되었다. 이에 탄력 받아서 ‘33haus 삼삼하우스이라는 즉석 떡볶이 가게를 또 오픈했다. 운을 계속 이어나가서 성수동이 아닌 윤경양식당잠실점과 제주 신화 월드점을 열었고, ‘SOMY Pizza&beer’까지 오픈 했다. 정리하자면 지난 3년여간 브랜드 4, 매장 6개를 잔뜩 벌려 놓았다.

 

▶ 삼성전자 출신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막연히 컴퓨터로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컴퓨터공학과를 갔다. 대학교에서 코딩을 못하거나 성적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치도록 컴퓨터가 좋아서 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3학년 2학기부터 삼성전자의 인턴을 시작해서 같은 과에서 2명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그 후 4학년 1학기에 면접을 보고 삼성전자 입사를 확정을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등한시 한 건 아니었다. 입사 확정 이후 4학년 1학기에 학교 학점에 올 A+이었다.

 

▶ 삼성전자에서 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다. 내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피처폰에서 스마트 폰으로 막 넘어가던 시기였다. 윈도우 모바일 폰이었던 옴니아개발에도 참여 했었다. 코딩을 하는 것은 좋았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재미도 있었다. 당시 나는 보통의 개발자들보다 좀더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개발자들은 주로 컴퓨터와 대화를 많이 한다. 나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도 좋았다. 컴퓨터 이외에 패션, 트랜드, 마케팅 등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회사에 들어가서 한 달씩 미국, 멕시코, 폴란드 이런 곳에서 머물면서 모바일 폰 테스트를 했다. 외국에 머물 때 보고 느끼고 경험한 바깥 세상이 너무 좋았다. 개발은 혼자 하기도 하지만 2명이 팀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선배가 너무 잘해서 나는 다소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삼성에 다니는 사람 치고는 시간이 비교적 많았다. 개발자의 일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천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그럼 자신과 어떤 일이 맞다고 생각했나?

삼성전자에 다니면서도 평소에 관심분야였던 패션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했다. 브랜드와 클래식 패션에 대해서 글과 사진을 올렸고 당시 하루에 3,000~4,000명씩 들어왔다. 회사 일에서 큰 재미는 없었고 패션 블로그를 제법 열심히 했다. 그 블로그가 인연이 되어 패션 디자이너, 잡지 에디터, 홍보 일하는 사람들을 제법 알게 되었다. 그래서 브랜드 런칭 행사’, ‘잡지 촬영이런 곳을 가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환경에 노출 되다 보니 회사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뭘까 생각해 보니 상품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전자에 모바일폰이라는 생활 밀착형 상품이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인 상품 기획일과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기획 일을 하는 팀으로 옮기고 싶어서 시도를 했지만 안되었다. 개인의 의지보다는 회사의 필요가 인사에는 더 중요한 것 같다.

 

▶ 그 다음은 어땠나?

블로그도 꾸준히 하고 당시에 Hot했던 트위터도 팔로워가 팍팍 늘어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뭐를 해도 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준비를 해서 길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삼성본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트위터를 사용해서 알리고 판매를 했다. 그 후 푸드 트럭, 길거리 좌판은 합법은 아니었기 때문에 건대 앞에 작은 자리를 얻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SNS를 사용한 작은 이벤트들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미디어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너무 많이 써서 유치한 워딩이긴 하지만 삼성 때려치우고 샌드위치 장사하는 청년뭐 이런 제목으로 미디어에 실리기도 했다.

 

▶ 좀 천천히 얘기를 해보자. 삼성전자를 나온 이유가 그게 다였나?

계기는 있었다. 당시 나는 모바일폰 테스트를 위해 해외에 한달 이상 머무르는 출장을 자주 갔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건축 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둘이 채팅으로 회사욕을 막 하다가 둘이 힘을 합쳐서 뭔가 다른 일을 하자라고 의기투합을 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회사를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 정도 스펙으로 삼성전자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들어와서 이 정도의 연봉과 혜택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이이었다. 전체 직장인 중에서 상위 5%안에 들것이다. 삼성전자를 나가서 이보다 좋은 회사를 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대화를 나누었던 그 친구가 덜컥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그리고 나를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나도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질러 버린 거였다. 결국 삼성전자를 2007년에 입사해서 3년 다니고 2010년에 그만 두었다. 당시 나이가 서른이었다.

 

▶ 친구가 나오자고 해서 그냥 나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그렇게 쉽게 회사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는 회사를 쉽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입사지원서를 딱 한번 써서 모든 과정을 한번만 겪으며 삼성전자에 들어가니까 취업 준비의 고단함을 잘 몰랐던 것이다. 취준생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그런 오기와 열정이 남들보다는 적은 상태로 회사에 들어가니 로열티가 적었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어린 마음 이었고 세상을 잘 몰랐던 것 같다.

 

 








▶ 그럼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회사를 그만 둔건가?

친구의 회사가 삼성동 이었고 아침에 김밥을 파는 사람들을 보았다. 청년 둘이 말끔하게 차려 입고 좀 색다르게 샌드위치나 김밥을 팔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는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조금은 무모했다.

 

▶ 처음으로 오픈한 가게는 무엇이었나? 

회사를 그만두기 전 친구와 뉴욕 여행을 갔다. 거기에서 할랄가이즈를 먹어봤다. 너무 맛있었고 한국에서 하면 잘 될 것 같았다. 그걸 한국에서 만들어 보고 길거리에서부터 팔았다. 트위터를 이용해서 내가 가는 장소를 알렸다. 그러다가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건대 근방에 싼 곳을 찾았다. 친구와 같이 인테리어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도 블로그에 올렸고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에서 먹어보고 한국에 없으니 막연히 잘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실패하는 정해진 루트였다.

 

▶ 결국 일년 만에 그만두었다. 어떤 이유였나?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작 한 것이 이유였다. 그냥 막연한 마음에 시작했기에 원가 개념도 운영도 모른 채로 시작했다. 무모한 깡이었다. ‘둘이 젊은데 뭘 못하겠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마케팅에 자신도 있었고 잘 먹혀서, 사람들이 와서 줄서서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두어 달 후 돈 계산을 해 보니 마이너스였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냥 몸만 힘들었다.

 

▶ 재 취업을 마음먹은 계기는?

결국은 생계 때문이었다. 가져갈 수 있는 수입은 별로 없고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내가 투자한 것은 모두 그대로 두고 다시 회사에 지원을 했다.

 

그 후에 SK 플래닛 (당시 SK 컴즈)에 기획파트에서 두 달 근무를 했다. 당시 그 회사는 WAP기술을 이용해서 피처폰에서 전자 상거래 서비스를 했다. 2010년이면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시장이 넘어간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피처폰 서비스를 붙잡고 있는 것이 마치 죽은 자식 뭐만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곧 없어질 기술을 위해 롱텀 플랜을 세우는 것도 답답했다. 그 회사는 SK Telecom의 자회사였기에 함께 시너지를 낼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역시 답답했다. 또 당시 네이트온이 메신저 일등이었는데 그걸 모바일 버전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도 정말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SK Telecom에서는 문자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카카오톡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답답함이 너무 심해서 두 달 만에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 IBM으로 옮겼다. 능력이 좋다.

잡 서칭을 하는 중에 운이 좋게 IBM에서 모바일 신사업을 하는 팀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시 주말에 함께 운영했었던 가게 일을 도와 줬다. 그 때 면접 본 팀장이 슬쩍 와서 내가 일하는 것을 보고 갔다고 들었다. 이런 일을 하는 친구라면 IT 영업도 잘 할거라고 생각을 해서 나를 채용했다고 했다. IBM에서 IT 서비스를 판매하는 팀이었는데 모바일 용으로 개발한 서비스를 처음으로 이마트에 판매를 했다. 사무실 컴퓨터로 하던 일을 모바일 폰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팀에서 내가 유일한 주니어였는데 많은 선배들이 도와 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은 좋았는데 협상하고 관계를 맺고 하는 영업은 조금 힘이 들었다. 영업을 잘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1년 후 팀이 해체가 되고 보안 서비스를 판매를 하게 되었다. 보안은 잘 몰랐고 또 모르다 보니 퍼포먼스도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냥 저냥 일을 했다.

 

▶ 그럼 IBM은 왜 떠나게 되었나?

IBM에 들어오면서도 브랜딩,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열망은 늘 있었다. IBM에서도 마케팅 부서로 옮기기 위한 노력도 했지만 잘 안됐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블로그 활동은 꾸준히 했다. 그러던 중에 중국에 계신 전 샤넬 홍보부장을 했던분께 메일을 한 통 받았다. 패션관련 책을 쓰기 위해서 나를 인터뷰 하고 싶다고 했다. 영광스러운 일이라 인터뷰를 했고 그 분이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게 되었고 친해지게 되었다. 그분의 소개로 대기업의 마케팅 디렉터로 일하셨고 지금은 브랜드 컨설팅 일을 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당시 동경하던 일을 하는 분이었고 그 분도 저를 잘 봐 주셔서 함께 일을 해 보자는 제안까지 받게 되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 과감히 IBM을 떠날 수 있었다. IBM에서 일한 기간은 17개월 정도였다.

 

▶ 보통은 회사가 싫어서 벗어나려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무언가를 향해가기 위해 회사를 떠난 것 같다.

맞다. 회사밖에는 엄청나게 다른 새롭고 다양한 것이 많다. 그런데 퇴근 이후에도 회사의 삶을 연장해서 사는 것이 싫었다. 회사는 회사고 퇴근 후는 나였다. 퇴근 후에는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주말에도 관심 있는 행사, 힙한 곳도 일부러 찾아 다녔고, 돈을 내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적극적으로 배웠다. 당시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아 당시 박원순 대표가 운영했던 희망제작소에도 가서 쇼셜 디자인 스쿨이런 것도 배우기도 했다. 브랜딩에 관련된 공부도 했다. 물론 모두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나 주말에 찾아 다니며 배운 것들이다.

 

▶ 그 때부터 이미 워라벨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삼성에 다닐 때 회사에서의 팀원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회사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같이 놀러가고 하는 것도 좋았지만 더 좋아하는 게 있었다. 퇴근 후에는 그냥 술 먹고 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잡지사 친구들, 브랜딩 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회사일과 완전 다른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경험을 했다. 회사 안에 앉아서 돈버는 것 말고 다른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쪽으로 더 많이 관심이 갔다. 공부도 꾸준히 했다

 

▶ 새로 이직한 회사는 어떤 곳이었나?

Ranee&Company 라는 곳이었다. 브랜딩, 디자인을 하는 창의적인 회사였다. 많이 배웠고 챌린지도 많이 받았다. 그 동안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만 했었지 그것을 일로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챌린지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장점은 Broad한 관심 이었다. 패션, 브랜딩, 음악, 음식 모두 어느 대화에서나 주도하면서 얘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 같았다. 장점일 수도 또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 어떤 일을 했나? 기억에 남는 일은?

당시 현대 자동차의 Young라인 이었던 PYL 관련 일을 했을 때가 기억난다. 가로수길에 팝업 스토어를 만드는데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경쟁 PT를 했고 일을 따냈다. 젊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런칭 행사를 하는 일의 PM으로 일했다. 전체적인 컨셉 설정, 행사기획, 섭외, 진행 등의 일을 했었다. 처음 하는 일이었는데 상당히 큰 일이었고 보통은 시니어가 하는 일이었다.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엄청나게 많이 배웠다. 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배울 것 투성이었다.

 

▶ 결국 그곳도 떠나게 되었다. 계기는 뭔가?

윗 분의 기대와 실무자로서의 괴리, 그리고 대행사 일을 하면서 을로 당하는 그런 답답함 들이 모두 얽혔던 것 같다. 현대차 프로젝트를 마치고 수고했다고 휴가를 얻어 남해로 여행을 갔다. 내 전화가 배터리가 없어서 꺼져 있었는데 여자친구 (현재 부인)의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하는데 업무 얘기를 한 시간이 넘게 했다. 그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나에게 한 얘기도 모두 돌아가서 회사에서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분이 많이 상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같이 일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대표님도 같은 생각이었고 그래서 나오게 되었다.

 

▶ 경력이 뭐랄까 좀 짧고 일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서는 사기 치는거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다. 이렇게 시작과 현재가 다른 경력으로 이런 성과를 낸 것이 말이 되느냐? 그냥 발끝만 담그고 니가 했다는 거 아니냐?” 뭐 그런 의구심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고서는 백수 생활을 좀 했다. 결혼을 했는데 백수가 되어 버렸다.

 

▶ 그 다음은 우아한 형제들에 취업했다. ‘배달의 민족아닌가?

맞다. 이제는 커리어가 브랜딩으로 이어가야겠다고 여러 회사에 지원을 했고 우아한 형제들에 면접을 보고 취업을 했다. 지인 찬스도 없이 지원하고 면접을 모두 보고 들어갔다. 하지만 경력은 단 일년만 인정 받았다. 사회경험으로는 8년차 였는데 브랜딩을 일로 한 것은 일년밖에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어서 오케이를 하고 입사를 했다. 당시가 2014년 이었다.

 

▶ 배달의 민족에서 어떤 일을 했나?

마케팅 실에서 일을 했다. 어느 하나 정해진 일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두루두루 모든 일을 했던 것 같다. 좋게 말하는 모두 했던 거고 나쁘게 말하면 체계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당시는 회사가 막 커나가는 단계여서 업무가 프로세스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이것 재미있겠는데 하면 해 보고 그랬던 것 같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내가 삼성과 IBM에서 특히 많이 배웠던 것은 일의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대한 힘이었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IBM에서는 서비스 판매 계약을 하나 하려 해도 거의 직능의 부서가 Engage 되어 있기에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심지어 잘 모르는 Account쪽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했다. 설득을 해서 오케이를 받지 못하면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프로세스가 전세계 IBM이 동일 했다. 당시 IBM에 있을 때는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떠나고 나서 보니 서비스 판매 전에 모든 RISK를 없애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고 그 프로세스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이 다듬어진 것이었다.

 

IBM에 들어가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삼성이 부러워하는 회사가 IBM이라고 들어서 도대체 무얼 닮고 싶어하는지알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과 상관없이 경계를 넓히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일을 왜 이렇게 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제안서를 하나 써도 나는 세일즈 부서였기 때문에 기술자 그룹에 있는 사람의 시간을 사서 일하는 구조였다. 같은 회사에서 그냥 , 이런거 하는데 좀 도와줘이런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IBM은 일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 인력, 그리고 벌어들이는 Benefit을 정량화 하면서 측정할 수 있는 단위로 만들었던 것 같다.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Risk Management 였던 것 같다. 그렇게 세계에서 제일 가는 프로세스, 효율 중심의 회사에 근무를 했었다 보니 배달의 민족의 당시 모습이 너무 미숙하고 답답해 보였다. 물론 스타트업이고 아직 기업 생장주기로 보면 초창기 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많이 답답했다. 분명 좋은 회사이고 잘나가는 회사이기는 한데 나의 나이와 커리어를 볼 때 오래 있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 회사의 업태와 역사에 따라 많이 다른 점을 느낀 것 같다.

배달의민족은 사회초년생들이 많이 있었고, 직원들의 대표님에 대한 애정과 신뢰도가 엄청났다. 대표님을 거의 스타로 생각하고 (스타가 맞긴 맞다) 팬처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너무 열광을 하면 조금 아니, ?”라며 의구심을 갖는 스타일 이다. 직원들이 모든 것을 회사에 올인하고 직원들과 너무 친하고 여행도 다니고 했다. 나는 결혼도 했고 나이도 있고, 경험한 것이 다르기에 생각도 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회사고 좋은 회사이지만 나와는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었다. 직원들과의 나이차이도 그 중 하나였다.

 

▶ 당신은 하고싶은 걸 학창시절에 이미 알았다. 어떻게 그걸 찾았나?

지금 30대 정도의 성인이라면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뭘 할 때 가장 좋았지?’, ‘주말에 시간이 나면 나는 뭘 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학생 때 주말에 동대문, 이대, 강남, 이태원 등의 옷 가게를 돌아 다니면서 뭘 파는지를 보고 사람들이 뭘 입는지를 봤다. 시간이 나면 도서관의 정기 간행물실에 가서 여러 종류의 잡지를 다 봤었다. ‘이런걸 다루는 잡지가 있어?’ 하는 특이한 것도 읽어 보았다. 사실 그 과정은 많은 인풋을 받는 과정이었다. 많이 들어와야 그 중에 나와 맞는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일을 하다보니 상충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과거의 사소한 행동을 살펴 보면서 하나하나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거 같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잘 모른다. 조언을 해 준다면?

가장 큰 문제는 학원좀비로 키워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에 정답이 있는 문제 풀이에만 익숙하다. 사고 자체가 정답만을 찾는 것에만 익숙해 져서 정답이 없는 사회에 들어 왔을 때 답답해 하는 것 같다. 스펙을 쌓는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무엇 무엇을 원한다더라, 어떤 타이틀이 있어야만 인정받는다고 이미 알고 있고 그것만을 위해 행동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삶은 학원에서 해결해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작은 관심이라도 있으면 해 보길 바란다. 페이스북에서 좋은 교육이 있어도 좋은 명언이 있어도 그게 그냥 끝이다. 실제로 내가 뛰어들어 해보고 경험해 보는 사람은 적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제 행동으로 한발 더나아가지 않는 거다. 딱 한발만 더 나가서 실제로 모임에 참석해 보면 된다. 설령 가서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하더라도 잠깐이라도 가보는 것만으로도 , 이런 곳에 관심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구나. 이렇게 관심있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거다. 쭈뼛쭈뼛 거리더라도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나만 그런 거겠어? 다른 사람도 어색하겠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걸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작은 관심이 있으면 딱 한발만 더 나가면 좋겠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Tags : 개발자, 개발자퇴사, 식당, 외식업, 요식업, 퇴사,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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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 현자와 도서관 학자의 차이 (Street wise vs. Book smart)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4.18 06:00 / Category : 직장생활/직장생활 칼럼



사람이 똑똑함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학문적 똑똑함과 현실적 현명함이 바로 그것이다. 학문적 똑똑함 (Academically smart, Book smart) 이란 지식과 정보를 이해하고 외우고 정리하여 축적시킨 다음 필요에 따라 그것을 끌어내어 활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말 그대로 학교 식으로 똑똑한 사람들을 말하며 흔히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게 많이 붙여지는 꼬리표이기도 하며 입시, 혹은 공부 두뇌가 뛰어나다는 말로 설명을 한다.

 

이에 반해 길바닥 현명함 (Street wise, Street smart) 이란 유무형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말 그대로 "길바닥"처럼 정형화 되지 않은 여러 채널을 통해 지혜를 배우고 삶의 방향을 배워 나가면서 얻게 되는 현명함을 말한다. 이 경우는 완전히 미지의 상황이나 대책이 없을 것 같은 불명확한 경우에 직면 했을 때 현명한 판단으로 그 능력과 진가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회사 내에서도 이런 구분 기준은 명확하게 적용되며 Academic smart 하거나 Street wise 하다고 구분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Academic smart 한 사람은 회사에 통상적으로 고학력이거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은 대학이라고 말하는 곳을 나온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입사면접 당시에도 그 학력을 바탕으로 면접에 대해 준비한 대로만 진행이 된다면 어렵지 않게 입사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아울러 그들은 입사 이후에도 일을 배우거나 배운 그대로의 일을 할 때는 능력을 발휘하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낸다. 정형화 되어 있는 업무의 틀 안에서 일을 할 때 능력을 발휘하고, 변칙적이거나 다양한 변수에 직면했을 때는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번번히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런 적이 있었다.

 

관악구에 있는 대학을 나온 김과장이 있었다. 업무를 하던 중 실수를 하고 외국인 임원에게 큰 질책을 받았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만에 상품을 만드는 MD와 업무를 서로 바꾸게 되었다. 실수가 너무 큰 것 이어서 외국인 부사장은 그를 자르라고 했지만 해당 본부장이 겨우 설득해서 다른 사람과 업무를 바꾼 것이다.

 

새로운 그의 팀은 팀원 대부분이 여자들만 있었다. 그 동안 해왔던 업무는 세일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이 커뮤니케이션이 주였지만 MD업무는 상황이 완전 달랐다. 디자인 팀과 매일 협업하여 새로운 상품을 찾아 내고, 협력업체와 개발을 해야 하는 상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전에 맡았던 일보다 업무의 강도는 거의 3배 이상으로 많았다. 사람들은 그가 MD와 일부 업무를 협업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업무의 프로세스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인 상품개발 프로세스 조차 몰랐다. 새롭게 일하게 된 팀원은 처음에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고 그를 함께 팀원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신입사원처럼 설명해 주지 않으면 이해를 못하고, 또 그 이해의 속도가 너무 느려 속 터지는 일을 경험했다.

 

게다가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등 숫자를 다루는 툴을 사용하는 수준이 거의 신입사원 수준이었다. 업무에서 병목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물량을 산정해 주는 기획팀, 디자인 팀, 그리고 수많은 협력업체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데 그 유관 부서까지 느린 속도로 피해를 주고 있었고 납기는 늦게 되었다.

 

하나하나 자신의 식으로만 이해를 해야 하는 습성 때문에 가르치던 과장들은 지쳤고, 그냥 방치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그가 제 시간에 처리 못한 업무 때문에 야근을 하게 되고 이에 화가나서 그와 얘기조차 하지 않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낮은 직급의 후배들도 그에게 말이 점점 짧아지고, 서로가 언성을 높이는 일이 생겼다. 빨리 배우지 못하고 팀원들에게 짐이 되어 버린 그는 불필요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팀을 옮긴지 4개월만에 회사를 떠났다. 이직도 아니고 계획도 없이 현실을 벗어나고 만 것이었다.

 

 

김과장은 전형적으로 Academic 하게만 Smart 한 사람이었다.

그의 문제는 세가지 였다. 속도와 구조화 그리고 태도.

 

오랫동안 일했던 방식에서 갑자기 다른 방식의 일을 다른 사람들과 해야 하는데 빨리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빨리 파악하고 머리 속에서 이미지화 시켜서 어떤 순서로 일을 해야겠다고 판단하는 구조화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아마도 공부를 할 때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기에 다른 이가 가르쳐 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배움이 느린 상황에서 부족한 업무를 빨리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아 남에게 피해를 준 것 이었다. 능력과 이해가 부족하고 느리다면 일을 하는 시간이라도 늘려서 일의 총량을 따라잡는 것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떤 노력조차 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업무를 맡아 누구나 용인해 주는 소위 허니문기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천천히 자신만의 스텝으로 일을 배우는 것에 익숙했던 그는 빠른 상황변화에 적응 하지 못하고 관계까지 나빠졌다. 그리고는 더 이상 회사를 버텨내지 못하고 도망치게 된 것이다.

  

Street Wise 하다는 말은 학문적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과 새로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현명함을 말한다. 영화 속에서 학생 시절에는 공부도 별로였고 놀기만 좋아하던 쾌활했던 친구가 우연히 다시 만난 동창회에서 성공한 기업가의 모습으로 나타나 동창회장의 중심에 서서 분위기를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주 쉽게 얘기하면 사기꾼을 제외하고 이런 사람들이 Street wise 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Street Wise (Street Smart)

 

-      경험 Oriented, 우선 실제 부딪혀 행동 함

-      그 일을 먼저 해본 사람에게 배움현장에서 배움

-      별종 인간들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임기 응변대응이 빠름응용력이 뛰어남.

-      인사이트도 좋지만 그것을 상황에 맞추어 풀어내는 아웃사이트가 더 좋음.

 

 

Academically Smart (Book Smart)

 

-      전통적인 배움 중시

-      책상에서 이야기를 듣는 정형화된 학습 중시

-      공부만 잘하는 책벌레 라는 이미지가 있기 도 함

-      일반적인 상식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신봉하고 벗어나지 않음

-      아주 일반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에 대한 대응력이 부족함

-      응용력이 다소 약함.

-      하나의 목표를 위해 집중하고 연구하고 digging하는 것에 능함

하지만 그것을 파생시켜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까지 미치지 못하는 겨우 있음

 

 



INPUT의 차이

 

결국 둘의 차이는 INPUT의 차이다. 교육으로 배우느냐 혹은 경험하며 배우느냐의 차이다.  책이 아닌 현실에서의 경험에서 기회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Street wise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학업과 교과서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책상머리에서 나아가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며 자기 내공을 쌓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학교-도서관>이라는 좁은 인간 관계와 제한된 경험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은 일반적인 또래보다 INPUT의 폭을 넓혀 준다. 

 

이처럼 Street wise 하려면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 이외에 새롭고 다양한 INPUT이 있어야 한다. 학교 교육을 통한 배움은 단지 정형화 될 뿐이다. 남들과 모두 똑같이 받는 정규 교육만 받고 남들과 다르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학교를 다니면서 가르쳐 주는 것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는 능력만을 강요 받고, 그 평가를 정답이 있는 시험을 통해 받는다. 그렇기에 이런 다양한 INPUT을 받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리고 그 INPUT에 질문을 하거나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Street Wise 한 사람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INPUT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단순히 현상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알고 있는 정보와 현상들을 하나로 모아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능력이 독보적인 경우가 많다. 단순히 새롭지만 실현 가능성이 적은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내는 새로움이 아니다. 근거를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모아 기회를 찾는 능력이 우수한 것을 말한다. 굳이 어려운 말로 하면 통섭을 통한 연결을 만들고, 인사이트를 찾고 행동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Street Wise한 사람

 

무한도전에서 맹활약 했었던 노홍철씨도 Street wise 한 사람이다. 대학시절 학업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데 시간을 보냈다. 학창시절에 중국전문여행사를 차리기도 했고 파티를 기획해 주는 회사를 만든 경험도 있다. 공부보다는 아마도 새로운 시도를 즐겨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시도의 사업적으로는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길바닥에서 살아있는 경험을 충분히 쌓으면서 배웠다. 그리고 우연히 참가하게 된  "특이한 수염"을 가진 사람을 뽑은 컨테스트에서 방송관계자의 눈에 띄어 방송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또 그가 가지고 있는 사기꾼이라는 예능 캐릭터도 그가 Street wise 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들을 속이는 사기꾼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심리를 알아야 하고, 그럴듯해 보일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람을 혹하게 만들 수 있는 말발도 필요하다.

 

상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최초로 골든벨을 울리고 영국계 석유회사에 매니져로 일하다가 현재는 꿈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수영씨도 Street Wise 한 사람일 것이다. 가난했던 가정 형편 때문에 사회에 삐딱한 시선을 가지에 되고, 가출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일. 수많은 학창 시절의 방황 끝에 명확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고 골든벨을 울리고, 외국 기업에 취직하여 영국에서 살게 된 일. 젊은 나이에 암을 극복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제는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고, 행복한 일을 하겠다고 꿈 전도사로 나섰다. 많은 힘든 경험을 축적하여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어 세계라는 무대로 뛰어든 그녀,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이 행복할 수 있게 꿈 전도사를 외치며 꿈의 소중함을 심어주고자 열심히 뛰는 그녀. Street Wise에 가깝다.

 



절대 상식은 없다

 

우리 주위에서 서로 반대되는 속담이나 상식을 볼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일단 시작하라, 그리고 보완하라.

 

아침에 일어나는 새가 일찍 먹이를 잡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먼저 잡아 먹힌다. (이 말은 농담임)

 

A word to the wise is sufficient. 
Talk is cheap.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Clothes make the man. 


The squeaking wheel gets the grease. 
Silence is golden. 


이렇게 속담이나 상식에도 서로 상충되는 것들이 많다. , 절대적인 진리보다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때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것이다. <Academically Smart Street Wise>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둘 모두 옳다. 하지만 Street 만 있으면 논리가 없고, Book 만 있으면 실생활과 동떨어진것이 된다. 한 곳에 편중될 필요는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어느 것이 확실히 더 낫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가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강요 한다면 나는 ‘Street Wise’를 선택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을 할 정도로 일단 정규 교육 과정을 제대로 마쳤다는 것을 전재로 한다면 말이다. 변화가 빠른 상황에서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 그리고 새로운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Street wise 한 사람이 앞으로 더 각광을 받을 확률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기본 바탕이 되는 공부가 전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기본적으로 현명하고 지혜롭다 (Wise)는 것은 진정한 천재를 제외하고는 학문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는 생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이찬 교수가 강연 시 언급한 학습법을 요약하면 이렇다. “10%는 책상과 책에서 배우고, 70%는 실제로 행동하고 부딪히며 배우고, 나머지 20%는 그 일을 해 본 경험자에게 습득한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INPUT은 어떤 형태를 띄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는 어떤 인간형이 되고 있는지, 사회는 어떤 인간형을 더 원하는지도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직장생활연구소  kickthecompany.com written by 손성곤


Tags : Book smart, Street smart, Street wise, 길바닥 배움, 김수영, 노홍철,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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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직급의 직원이 상사가 되었습니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4.16 06:00 / Category : 교육,강연,상담



남편이 사십대 중반이고, 현재 사기업 해외 주재원으로 생산 담당 매니저입니다. 고참 부장이고, 그 전 승진들은 빠른 편이었습니다. 최근 현재 대표가 갑자기 지병으로 쓰러지면서 새롭게 대표를 이 곳 근무자 중에서 뽑게 되었는데, 밑에 직급인 차장이 고참 부장인 남편 대신 대표로 승진했습니다.

 

그 분은 과장이었다가 여기 해외에서 차장으로 승진한 경우고, 팀장으로 일해 본경력이 없는 분입니다. 이번 대표가 된 차장은 생산과 영업을 조율 기획하는 파트에서 일했고, 전반을 잘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인사의 이유라고 합니다. 저희 남편은 공장 매니저로 오래 일했고 해외도 이번이 다른 나라 포함 두번째 경우이고, 한국에서 팀장도 했었고, 한국에서 지방 공장에서 근무한 적도있고, 그 분과 비교해 많은 경험이 있습니다

 

남편은 쭉 생산 담당이라 업무에 치중 될 것이라는게 전반적 업무를 아우르는 대표가 되기 어려웠다는게 이유라더군요.  여기 해외 사업장은 각 파트가 대표로 나온 분위기로 차장이 가장 낮은 직급이고, 이번에 대표된 차장의 입사 동기도 2명 다른 파트에서 일하고 있고, 회계 쪽 부장님( 이 분은 여기 온지 1년 밖에 안 된 것이 승진 탈락 이유) 있고, 생산 쪽 부장인 저희 남편이렇게 해외 현지인들과 일하고 있습니다

 

 

부장도 거치지 않은 사람이 현 대표가 쓰러진 이런 시점에 대표로 발탁된건 이 회사에서 처음입니다. 저희 신랑은 자신이 못 해서 이런 인사가 생긴거라 합니다. 현 대표님 이전 대표 (2년간 이곳을 맡았었던 분)가 출장온 사이에 현대표가 지병으로 입원하고 현지에서 대표를 뽑는 과정에 전례 없는 인사가 이루어졌어요. 회사에서 남편을 달래며, 다른 해외 사업장 갈 기회를 곧 줄테니 거기서 잘 해 보라 한다는 군요.

 

제조업 업종이고, 차장이 탐장 경험 없이 바로 부장들 제끼고 이 곳 대표를 맡을만한 능력을 보인 것이 뭔지 납득이 어려워요. 남편은 자기가 부족하고 회사가 자신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에 놀랐다 합니다. 여기 2년 동안 있던 전 대표에게 그 차장이 상당히 잘 보인 것이라 여겨집니다. 파견 직원 10명 되는 해외에서 물론 현지 작원들은 많지만, 까마득한 후배를 대표로 모시며 지내야 하네요.

 

이런 파격 인사가 나올만한 그의 객관적 능력을 잘 모르겠단 분위기고, 남편에게 위로를 슬쩍 하는 분위기에요. 그만 두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든 생각이 드네요.. 조언 구하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안녕하세요.

 

망설이다가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가 망설인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우선은 저는 상담을 글로 하지 않습니다. 만나서만 합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한 조언을 하는데 짧은 글만 보고 내리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글을 쓰신 이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용을 전해 듣고 글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개인의 주관이 두번이나 개입되게 됩니다. 굳이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이런 상담, 조언 요청의 글에 저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답을 길게 남겨도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심정에 이곳에 글을 남기셨으리라 생각이 되어 짧게 나마 솔직하게 회신을 드립니다.

 

위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회사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 위로 올라가게 된 경우 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회사에서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저도 많이 봐 왔습니다. 가장 흔한 이유는 회사 내 인적 자원을 한꺼번에 정리하기 위해서 입니다. 검사, 판사, 군인처럼 기수문화가 있는 경우 아랫 기수가 장으로 올라가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 보셨을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일차원적으로는 그보다 기수가 높지만 직위가 낮은 사람들을 정리하려는 암묵적인 표현입니다.

 

아울러 회사에서는 한 가지 분야만 판 사람 보다는, 전문 분야가 있는데다가 다른 영역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표라는 자리에 맞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흔히 T자형 인재라고 부릅니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업무인 대표는 다양한 분야게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품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 회사에서도 단지 상품, 생산, 소싱 뿐 아니라 매장 운영, 마케팅, 재무, 인사 등에 두루 경험이 있는 사람을 대표로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정말 회사를 이끌어 나갈 대표가 아니라 약 일, 이년 정도를 명확한 목적을 위해 대표로 뽑는 경우도 있습니다. 리더로 뽑는게 아니라 사람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시켜서 효율을 극대화할 요량으로 사람을 선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회사의 재무구조가 악화 될 경우는 재무통인 사람을 선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 경우인지 먼저 파악하셔야 합니다. 

 

개인에 대한 평가는 회사가 내립니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 잘하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회사가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입니다.  옳던 그르던 그것이 냉정하지만 현실입니다. 심지어 동료들도 좋은 사람, 일 잘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평가하는 사람 (보통은 상급자)이 그렇게 않다면 아닌 게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최대한 나를 제대로, 혹은 70밖에 못하더라도 100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씁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를 하고 쇼잉을 하고 아부를 하는 등의 잘못된 방식도 사람들은 선택하곤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가설은 남편분도 회사생활을 거의 20년 정도 하셨을 것이기에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상황에서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암묵적인 요청, 강요를 받아들이고 회사를 떠날지, 아니면 계속 남아서 훗날을 도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우선은 이 인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 내용은 남편분이 가장 잘 파악 할 수 있을 겁니다.

 

정보가 너무 없어서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결정은 남편 분께서 직접 내리셔야만 합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미안해하며 다른 사업장을 맡도록 권면했다는 것으로 유추해 볼 때 섣부르게 회사를 나가는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저의 51%의 추정입니다. 급작스러운 상황이기에 남편분이 아직 준비가 안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우선을 맡은 일을 하면서 훗날을 도모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의견 드립니다. (절대로 정답이 된다고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회사를 떠나는 결정을 내리신다고 하면 회사와 협상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상황은 그냥 퇴직금을 받는 것 이상의 것을 회사에 요청하셔도 될듯 합니다. 아마도 회사도 어느 정도는 그런 요청을 염두해 두고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남편분을 다그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편에게이렇게 될 때까지 넌 뭐했냐?” 등의 말씀을 하지 마시면 좋겠습니다. 글쓴이께서 회사 생활을 하신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괴롭고 힘든 사람은 남편 입니다. 생각하시는 것보다 10배는 괴로울 겁니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금 현재를 냉정히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심적으로 조임을 받지 않도록 힘을 주십시요. 이 기간을 부부가 협심해서 슬기롭게 넘기셔야 합니다. 앞으로의 30년 넘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조급하고 채근을 받으면 올바르게 판단하기 힘듭니다.

 

남편분을 믿고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힘드시겠지만 냉정히 고민하시고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  kickthecompany.com by  Dr.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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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낮은 직급 상사,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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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싫지만 경쟁력은 필요한 직장인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29 07:07 / Category : 직장인 필진/어서와. 첫직장




'경쟁'은 죄가 없다.


 

'경쟁'이 가끔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경쟁'의 그라운드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류에게 경쟁이란 운명이자 곧 숙명이다. 3억 분의 1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땅에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경쟁을 경험했다. 인류는 경쟁의 역사를 통해 생존했고, 또한 수많은 경쟁을 통해 번영했다. 우리는 '경쟁'이라는 DNA를 타고 났다이제 경쟁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 세 가지 경쟁에 대한 기본 원칙을 기억하면 좋겠다. 

 



첫 번째, 우리의 삶은 곧 '경쟁'이다.


"나는 경쟁력이 있는 사람인가?"


혹시 나는 경쟁을 하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하는가그렇다면 위의 질문은 어떨까? 이런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경쟁의 틈바구니에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으면 경쟁력도 없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나는 임원은 바라지도 않아, 부장으로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목표야. 그게 더 좋지 뭐"  개인의 가치판단의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한 번은 되짚어 보자.  혹여 이솝 우화의 사례처럼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고 자위하는 것은 아닌가?  (사실은 높이 달려있어서 먹을 수 없는 것임에도..) 승진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사람이 대리, 과장, 차장으로 승진할 수 는 없다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넘친다상위 직급으로 올라 갈수록 상황은 더 힘들어진다혹자는 승진을 하기 위한 경쟁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승진을 위해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결과에 따라 승진을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경쟁 없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두 번째, 경쟁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경쟁이 문제고,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문제다.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다. 세월호 사태가 발생했을 때 박근혜 정부는 그 책임을 물어 해경의 해체를 선언했다. 그런데 해경의 무능함이 잘못이라 해서 해경이라는 조직 자체를 없애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경쟁도 마찬가지다. ‘경쟁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 해서 경쟁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문제는 경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있다. 때로는 경쟁도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신선한 자극과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경쟁구도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가수들을 끌어 모아 경쟁을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감히(?) 경쟁의 틀 안에서 배틀을 치를 것을 요구하고 이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인기의 비결이었다.  물론 잡음도 있었다. 김건모의 경우가 그렇다. 다른 출연 가수들은 탈락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반면, 그는 '립스틱 퍼포먼스'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남들은 경연 무대를 '경쟁'으로 인식했는데 김건모만 나 홀로 '예능'으로 받아들여서 문제가 된 것이다.


혹시 우리도 직장 생활하면서 '경쟁' '예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조직의 생리는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경쟁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경쟁력'이란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아름다운 몸을 갖고 싶다면 열심히 근력 운동을 하면 되는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보다 경쟁력을 갖춘 직업인이 되고자 한다면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세 번째, 경쟁에도 룰이 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선의'의 경쟁이다. 선의의 경쟁이란 곧 함께하는 경쟁이다. '경쟁'을 통해 성과를 내어도 그 방법이 올바르지 못하면 타인에게 인정받기 어렵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팀의 일부가 비난을 받는 이유도 이들이 공정한 경쟁의 룰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혜시비와 왕따 논란 밀어주기식 선수운영으로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모두가 인정할만한 경쟁의 룰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질 때에 비소로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김연아 선수에게는 아사다 마오가 있었고, 메시에게는 호날두가 있다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경쟁관계에 있었기에 우리는 희대의 명곡을 마주할 수 있었다선의의 경쟁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서로에게 자극과 도전 의지를 주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 하는 또는 강요 받는 순간, 그것은 이미 경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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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경쟁, 경쟁력,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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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일기_ 맞벌이 부부의 짧은 하루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28 07:00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의 일기



밤 9시 10분. 
퇴근 길에 문자가 왔다. 팀장이었다. 
 
내일 아침 9시 본부장과 부사장과의 판매 부진 대책회의가 잡혔다. 
본부장이 팀장들에게 8시 회의를 소집했다. 
팀장은 파트장들에게 7시에 출근해서 자료를 만들라고 했다. 
오늘 부터 시작한 회사의 큰 행사에 첫날 매출이 좋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내리 사랑은 계속 된다.
물론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발이 불타고 있어야만  움직인다. 

 

밤 10시.
집에 도착하니 아이가 누워있다. 
아침부터 몸이 별로 안좋다고 하더니 학교에 돌아와서 토했다고 한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말라버린 입술을 보니 마음이 아팟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쌀죽을 겨우 몇 숟갈 먹였다. 

밤 11시.
쌀죽을 다 토해냈다. 힘들어 하며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 1시.
울면서 깨어나더니 아까 다시 먹었던 물마저도 다 토해냈다. 
아이는 계속 울었다. 새벽 2시가 되어서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 7시까지 출근하려면 6시 10분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아침 6시.
4시간도 자지 못했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겨우 7시에 회사에 도착해서 자료를 만들어 주었다. 
팀장은 본부장 회의에 들어갔다. 

8시 30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픈 아이를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데려다 주려 하는데 아이가 계속 운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장염인가 보다. 걸을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것 같아서 학교에 못가겠다는 것이다. 
아내는 교육 담당자다. 9시반 부터 있을 교육에 직접 강의를 해야 한다. 
아내의 마음도 거의 울고 있으리라. 

바로 휴가를 올렸다. 
시간이 8시 30분이니 아직 출근 전이다. 
당연히 조퇴나 반차도 쓸 수 없다. 
하루 휴가를 올렸다. 행선지에 '자녀병원'이라고 적었다. 

팀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외투를 집어들고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탔다.
거꾸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았다. 
 












아내는 미안해 한다. 
"이번 달 말이 고과평가 기간이라, 하루 빠지거나 하면 영향이 있을까봐. 미안해 남편"
이해한다.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내도 다시 택시를 타고 회사로 뛰어 갔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학교에 가려고 옷을 입은채 그대로다.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앞으로 최소 40년은 더 살아야 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렵더라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돈으로 바꾸는 노동에서 나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으로,
내가 없는 일에서 내가 중심이 되는 의미 있는 일로 바꿔야 한다. 


다른이가 말해서 시작된 변화가 아닌, 나의 간절한 필요에 의한 변화가 필요하다.  
남과 환경에 떠밀린 변화는 변화가 아니라 순응일 뿐이다. 

그렇게 12년차 맞벌이 부부의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2016. 03   아픈 아이를 위해 새벽 출근 후 돌아온 날 

Tags : 맞벌이, 맞벌이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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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장시 느낀 단상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26 07:00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 생각들



중국의 의류 패션 사업

 

중국에서 단순히 의류 생산만 하는 것은 이제 경쟁력이 없다. 중국은 더 이상 의류 쪽에서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의류상품은 디테일이 있는 상품 혹은 신규 소재를 사용한 개발 상품이 더 많다. 일반적인 디자인의 상품 생산은 베트남 중심으로 모두 옮겨갔다. 베이직 티셔츠 기본 바지 등의 물량이 큰 상품은 임금이 더 싼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중국은 소재 개발, 및 복잡한 스타일 / 베트남 등 동남아는 메인 생산 기지 / 방글라데시는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많은 양을 꼬매는 곳>으로 단순화 할 수 있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에서 생산을 하더라도 아직도 원단 및 원사 개발은 주로 중국 것을 사용한다. 방글라데시에서 꼬매 더라도 중국원단을 쓰는 경우가 있고 그 경우 생산자의 임금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 원단, 원사가 특이점이 있는 디자인 물이라면 중국이 여전히 경쟁력 있는 상품도 있다고 봐도 된다.

중국은 이제 단순이 옷 (Clothing)에서 토탈 라이프 스타일 (Total Life Style)로 큰 방향이 넘어가는 중이다. 옷을 중심으로 생활소품, 가구, 주방 상품 등의 토탈 라이프 스타일 상품을 모두 취급 하려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중국에서 그러한 세계적 규모의 리빙페어가 열리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진화하는 패션 2세대.

 

중국의 생산 중심의 패션, 의류 산업은 정점을 지났다. 중국의 섬유 산업을 이끌었던 세대는 은퇴할 나이가 되었고, 2세들이 공장을 물려 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디자인을 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개념의 패션업에서 더 나아가 디지털과 4차 산업에 더 관심이 많다. 그것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10여년 전만해도 한국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는 중국에 수억 대의 몸값을 받고 스카웃 되었다. 그 후 다른 산업군과 마찬가지로 2~3년 정도 노하우를 전달하고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중국 시장에 살아 남아있는 한국의 디자이너는 중국어를 배우고, 단지 디자인뿐 아니라 새로운 비지니스 쪽의 니즈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한 소수의 사람들 이다. 패션 산업의 2세들 혹은 사업으로 규모가 커진 패션업종의 관계자 들도 패션업에만 안주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사업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돈이 생기면 한국인은 집을 사려고 하고, 중국인은 사업을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중국의 패션업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상해 시내의 중국 SPA 브랜드, 할인 폭이 크다>



 

Drive by 국가정책

 

상해에서 다른 지역의 업체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5년만에 상해에 눈이 내려 일부 열차의 운행이 취소 되었다. 그 정도 눈에 기차편이 취소되는 것도 이해가 어려웠지만 별다른 항의가 없는 중국인들이 더 놀라웠다.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아서 기차, 비행기 등의 운송수단에서 사고가 나면, 자칫 국가에서 관리를 잘못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국가 운영에 저해 요소가 될 수 있기에 국가에서는 사고 발생을 미연에 막으려 노력을 한다. 중국인들은 국가에서 하는 정책과 결정에 거의 토를 달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못 되었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는 아직도 여전한 공산주의 기반의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국가에서 한번 정책을 정하면 반드시 실행되도록 밀어 부치는 많은 선례들도 국민들이 국가를 믿고 따르는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 했다. 

중국에서 부자가 되려면 국가의 정책을 명확히 알고 빨리 사업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국가에서 힘을 실어 밀어주는 정책의 산업군에서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국가의 정책과 반하는 사업으로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믿는다. 큰 나라지만 강력한 국가 중심주의의 나라다.  

  



<상해 시내 이동 중 눈오는 풍경을 찍은 것인데. 공안 차량이 주인공이 되었음>




More than 자본주의

우리나라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고 목표를 달성해도 그 보상의 정도가 작다. 반대로 일을 못한다고 해도 보상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보상에 대한 기준이 개인 vs. 회사가 아니라, 그저 팀이라는 조직의 일원으로 평가를 받는다. 급여의 편차가 성과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평준화 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채용 시부터 '개인 대 회사'로 인센티브 계약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력직은 그 사람의 능력자체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그 계약조건이 확실한 경우가 많다. 설령 채용 시 그러한 계약이 없었더라도 프로젝트 별로 성공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면 매출의 * %’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식의 계약을 맺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인센티브 계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센티브와 계약과 함께 목표 달성을 못하면 매입금액의 * %를 너의 연봉에서 제한다.’ 이러한 류의 패널티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개별적인 계약은 사람을 성과에 몰입하게 만들고, 굳이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고, 성과를 위해 근무시간 연장도 불사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어떤 이의 계약 연봉은 우리나라 돈으로 30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2017년에 성과급으로만 1억 원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의 서구식 자본주의의 메카인 미국보다 평가와 보상, 그리고 반대급부에 대한 기준까지 명확한 곳이 중국이다. 어떤 이는 이를 자본주의 보다 더 자본주의라고 표현했다. 이런 파격적인 보상으로 10억을 인센티브로 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시장이 워낙 켜서 매출 1조를 하는 패션 회사가 있고 거기에서, 10%의 매출 신장을 만들어 냈다면 그 금액은 1천억이다. 1천억 중 10억이라는 돈은 1% 수준이다. 만약 누군가 10%의 매출 신장에 기여한 바가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성과의 1%10억을 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인은 한번 친해지면 중국인 특유의 정을 기반으로 한 친구 먹는문화가 있다. 하지만 돈 문제가 걸린 사안이나 비즈니스에서는 정색을 하면서 칼같이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처음 들어왔던 시기에 한국인 오너 회사에서는 이러한 평가, 보상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고, 대충 말로 때웠던 경우가 있어서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시 차를 타고 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비싼 음식점에서는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100만원에 10접시 시킬 수 있다. 돈이 있으면 그래도 된다하지만 내가 만약 20만원 밖에 없다면 그 돈으로 20접시 시킬 수 있는 저렴한 곳에 가서 먹는다. 나는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상해 홍차오 기차역 아침 8시 풍경. 춘절을 앞두고 있어 북적인다.>

<외국인 여행객이 혼자 이 역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모바일 페이의 미친 발전

 

출장 기간 동안 우리와 함께 한 에이전트는 단 한번도 현금을 사용하지 않았다. 2017년에 중국에서는 길거리 음식도 모바일 페이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기사가 현실이었다. 사람은 직접 경험해 봐야만 비로소 안다고 했던가? 실제로 눈으로 보니 신기하고 또 경이로웠다.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의 바코드만 찍으면 결제가 끝났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가 양대 산맥으로 중국의 모바일 페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앱의 경우도 활용도가 우리나라보다 휠씬 더 앞서 있다. 교통수단에 대해서는 택시, 우버 등을 부르는 것이 모두 ‘띠띠따처(嘀嘀) 줄여서 띠띠’라는 하나의 앱으로 가능하다. 카카오택시에서 이번에 적용하기로 한 가격 올려주기 기능은 이미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비나 눈이 오는 궂은 날씨에는 특히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상해에 있는 동안 사실 단 한번도 택시를 이용한 적이 없다. 모두 우버를 사용했다. 마냥 길가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사용하기가 택시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이용 후 결제 시에도 주행거리 확인하고 바로 모바일 페이 결제하면 끝났다. 기차를 타고 항주로 이동할 때에도 당연히 앱으로 기차 예매 후 모바일 페이 결제로 끝이다. ‘그 정도는 한국에서도 가능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니 그 과정의 단순함과 빠른 속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삼성페이로 편의점에서 현금없이 음료수를 사고, 카카오 페이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결제를 하면서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었다생각해 보니 삼성페이나, 카카오페이는 모두 신용카드의 결제를 쉽게 해주는 것일 뿐이었다중국 직장인들이 워크샵을 할 때 위챗 단톡방에 들어오라고 해서 게임해서 맞추면 바로 축하금을 위챗 페이로 바로 쏜 사례도 있다고 한다.


2017년 말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방문 이틀째 되는  아침베이징의  서민식당에서 노영민 주중국 대사 부부와 식사를 했다. 노영민 대사가 식사 후 결제를 현금이 아닌 모바일 폰 결제 앱으로 처리하는 모습이 기사화 되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 후 약 한 달여 후 대한민국 정부는 공인 인증서와 액티브 액스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2018 1 4  기사의 제목은 ‘무 현금 사회가 도래했다 - 그러나 아직은 중국에서만 (The Cashless Society Has Arrived - Only Its In China)’ 이었다. 그만큼 전 세계 국가 중 모바일 페이가 발전하고 실생활에서 널리 사용되는 나라는 전세계에 유일무이 하다. 2016년 중국에서만 모바일 페이로 지불한 금액이 한국 돈으로 약 6,300조원 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 배운 이후 실생활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들어보는 단위인 듯 하다. 참고로 기획 재정부 홈페이지를 보면 2017년 한국의 국가 총 예산이 약 400조이다. 중국은 대한민국의 국가 예산보다 24배가 많은 돈이 모바일 페이로 거래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후덜덜하다.  

 




<눈내리는 와이탄, 수년만의 눈이라 SNS가 난리가 났다고 한다>





 왕홍

왕홍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꾸면 파워 블로거혹은 인플루언서정도가 될 것이다. 인터넷 (网络) 유명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왕홍이 우리에게 알려진 지는 3년이 넘었다. 이 왕홍도 중국의 SNS와 모바일 붐을 타고 변화하고 있다. 실시간 방송을 하면서 상품을 파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이다. 해외로 퍼져 나가며 또 모바일로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 동대문 도매 시장에서 맘에 드는 옷을 한 장 구입한다. 그걸 바로 갈아 입고 돌아다니면서 상품에 대한 후기와 소감을 얘기해 준다. 이 모든 것이 모바일 방송으로 가능하다. 물론 방송 중에 주문이 가능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왕홍의 설명을 들으면서 바로 핸드폰으로 모바일 주문을 한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약 5백장의 주문이 쌓이게 되고, 이를 정리해서 바로 해당 도매상에 주문을 한다. 그리고 도매상은 사이즈, 칼라별로 상품을 중국에 있는 핸들링 업체에 보내주면 된다. 그리고 중국에서 고객들에게 배송하면 된다. 방송 시청, 주문, 한국의 상품을 받는 과정이 모두 일주일 내에 이루어 진다. 해외 상품을 라이브 방송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MCN으로 불리는 개인 방송이 모바일로 이어지고 이것이 한국 상품이 바로 중국까지 가서 팔리는 놀라운 판매 혁신을 이끌어 낸다.

 



생각의 차이

상해에서 차를 타고 3시간이 넘는 공장으로 가던 중 휴게소의 맥도날드에 들렀다. 놀랐던 것은 사람들이 먹고 셀프로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내용은 과거에 포털의 기사에서도 보았던 것 같다. 사실 이건 문화의 차이다. 중국은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먹고 나면 다 치워주기 때문에 치우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사실 단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음식점에 가서 식사 후 고객이 직접 치우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보고 미개한 문화라고 손가락질 할 이유는 없다. 사실 중국 사람은 우리나라 국민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청나게 쿨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청소하는 분이 있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바닥에 그냥 버린다. 바닥에 보이는데 버려야 청소원이 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인이라면 쭈뼛거리며 쓰레기통을 찾아 버렸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상식과 다른 현상을 보더라도 자신의 잣대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 보다는 우선 ‘다르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생각과 상식과 다른 것을 보더라도 ‘Disgusting’ 이라는 표현 보다는  ‘Interesting’ 이라고 표현이 더 낫다. 




2018년 1월.  4일 동안의 출장 동안 중국 현지 에이전트와 업체와 얘기를 나누고 실제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을 정리해서 글로 남겨봅니다.  직장인은 회사에 돈을 벌어 주기 위해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알게 되는 유무형의 지식과 노하우는 직장인을 살찌웁니다.  나를 스쳐가는 것에서 의미와 인사이트를 찾아내고 내것으로 만드는 작은 행동이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개인' 을 만들어 준다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쳐 지나가는 물에도 더 성장하는 콩나물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연구소  kickthecompany.com written by 손성곤




Tags : 왕홍, 중국, 중국우버,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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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인터뷰_ 직장인의 시간은 줄고, 직업인의 시간은 는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22 07:00 / Category : 교육,강연,상담



YTN 라디오 생생인터뷰]  직장인의 시간은 줄고, 직업인의 시간은 는다.


생방송 인터뷰는 늘 긴장이 됩니다. ^^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우성PD
■ 대담 :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




<내용 듣기>




  
◇ 김우성PD(이하 김우성)> 사상 최악의 취업난, 재취업의 어려움, 경단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럼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있는 사람은 안심할까, 이런 생각하실 텐데요. 그렇지 않다는 말도 많이 들립니다. 평생직장, 더 이상 없다는 인식도 흔하고요. 기술 사회 문화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서 안정적인 일자리 수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직장에 충성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가져갈 수 있을까요? 걱정도 오래됐죠. 젊은이들은 직장이 아니라 직업에 관심을 갖는다고 합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실질적으로 직업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따고 배운다는 얘기, 기술 배우기 열풍으로 읽힙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슬기로운 퇴사 준비, 직장생활, 직업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분이죠,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이하 손성곤)> , 안녕하세요.

◇ 김우성> 과거에도 사실 자격증 열풍이 많이 불었거든요. 최근 젊은 세대들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기술배우기, 자격증 취득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 어떤가요?



◆ 손성곤

간략하게 말하면 살아갈 날은 길어지는데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생 이모작 같은 용어는 익숙한 상황이 됐고요. 운 좋게 정년까지 회사를 다녀도 그 이후의 삶에도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거죠. 예전 직장인들의 자기계발은 취업, 승진 시험처럼 회사에 들어가거나 승진하는데 중점을 뒀는데요. 요즘 자기계발은 새로운 수입원을 찾거나 새로운 직업을 만들기 위해서 실전용 자격과 실력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산업인력공단 자료에 따르면 건물 외벽, 마무리 등의 기술자인 미장기능사 실기접수생은 2년 새 130여 명에서 213명으로 약 두 배가량 늘기도 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도배, 타일 기술 자격증 시험도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 김우성> 예전에는 비하의 의미로 기술이나 배우지, 이런 말도 있었는데 이제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손성곤 소장님 이야기를 들어봐도 스펙용으로 자격 쌓고 기술배우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일을 하려고 배운다는 게 새로운 상황인데요. 직장 생활을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불안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특히 평생직장 대신 평생직업을 갖자, 와 닿았는데요.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은퇴 앞두신 분들까지 평생직업이 세대를 통틀어 관심사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십니까?



◆ 손성곤

우리가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하면 회사원, 직장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사람들을 직업인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왜냐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자율성이 좀 떨어지고요. 회사라는 조직이 없이는 스스로 경제활동 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년까지 경제 활동을 하는 비중도 낮아지고 있어서 조직 없이 경제활동을 하는 직업, 그 자체에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50대 이상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특이한 점은 20, 30대처럼 젊은 세대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요. 특정 직장에 소속되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전부였던 회사 중심의 관점에서 개인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적극적인 살 길을 모색하는 인식의 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퇴생, 퇴준생이라고 부르면서 자기 직장이 싫고 회사가 답답해서 떠나는 직장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 김우성> 예전에는 직장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직장에 대한 의존이 높았는데, 그 의존으로부터 벗어난다, 회사가 아니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들. 사실 선진국에서는 많다고 알려졌는데요. 지난번 저희와의 퇴준생 인터뷰 때도 말씀해주셨지만, 여기 아닌 어딘가가 더 좋을 것이라는 엘도라도를 꿈꾸기보다는 현재를 열심히 살면서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지금 불고 있는 기술 배우기나 자격증 열풍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준비하고 바라보아야 할까요?




◆ 손성곤

맞습니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인데 조금 안 맞고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바로 다른 길을 해야겠다고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진 않고요. 어떤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조직의 생리, 인간관계, 조직 안에서 일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한 곳에서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결과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면 다른 직업이나 기술을 선택하더라도 그 기술을 영위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거든요. 실제로 회사에서 일하고 배운 것을 기반으로 두 번째 직업을 만들어내는 분들도 많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나와 정말 맞는 일이 무엇인지, 나의 강점을 파악하고 충분히 탐색한 후에 두 번째 일을 준비하는 것이 맞습니다. 두 번째 일을 선택했는데 그 일마저 나와 맞지 않고 원하지 않은 일이라면 직업적으로 방랑자가 되어버릴 수 있거든요. 또한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자격증이나 기술 등 커뮤니티도 많습니다. 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충분히 찾아보고 나아가 그 일을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면밀한 사전 노력도 필요합니다




◇ 김우성>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작품이 떠오르는데요. 현재 직장에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자기 성과를 얻는 경험이 있어야 회사를 벗어나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얘기, 와 닿는데요. 실제로 여러 직장인들과 모여 여러 공부, 세미나 준비를 마련해주시는 입장이시니까 여러분들께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고요. 자격증도 마찬가지로 정보를 열심히 찾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두려워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술 잘 배워도, 해외처럼 배관공만 해도 먹고 사는 나라가 있는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기술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지 않느냐는 말이 많습니다. 직업보다는 직장을 선호하는 이유일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손성곤

직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안정성이나 성공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안정성과 성공에 대한 기준을 개인에 맞게 다시 정의하는 게 필요합니다. 안정성은 짧게 바라보면 안 되고요. 3, 5년이 아니라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최소 80년 정도까지 평생이라는 기준으로 늘려서 안정성을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성공의 기준도 단지 돈을 많이 벌고 일반적인 기준에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는 것에서 조금 작더라도 개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바꿔 나갈 필요가 있는 거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공의 기준을 나 스스로의 원칙과 가치에 맞게 정의하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예전에 저도 기사를 봤는데요. 어떤 부부가 도배를 배워서 서울을 떠나고 새로운 삶을 사는 변화를 택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가 사회적 기준으로 몸을 움직여서 하는 직업이 무시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상황은 직업에 대한 사회적 시선, 개인의 관점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시점이라고 보기 때문에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도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는 시기가 곧 올 거라고 예상합니다




◇ 김우성> 자기의 가치와 기준으로 삶을 산다, 언뜻 보면 추상적인 말 같은데요. 사실 조직에 속한 사람은 조직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기에 답답한 서울을 떠난 용기, 도배를 한다는 생각도 두려울 수 있는데요. 이 흐름 속에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이신 것 같고요. 손성곤 소장도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이시면서 직장인이시잖아요. 여러 가지 나은 삶, 직장 등을 많이 이야기하실 텐데요. 세미나 교육 계속하고 계시죠?

◆ 손성곤> , 지금도 매달 하고 있고요. 저는 일단 직장 안에서 개인의 기준으로 원칙을 찾고 자신이 매몰되지 않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8년도에는 직장인에서 변화를 택해 다른 직업인으로 살고 있는 분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실제 삶은 어떤지 현실을 알려드리는 다양한 세미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 김우성> 많은 분들이 막연하게 힘들어서 퇴사를 생각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하고 소중하니까요. 지금 새로운 준비를 하시는 사람처럼 다양한 고민과 꿈을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손성곤> , 감사합니다



◇ 김우성>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이었습니다.

 

Tags : YTN, 경제, 손성곤, 인터뷰, 직업인, 직장생활연구소,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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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9_ 30세 퇴사후 세계여행. 긍정적 백수가 되다.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15 08:17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현재 수입은 없다버틸 만 한가?

혼자 살고 있다퇴직금은 여행경비로 썼고 이제는 모아 놓은 돈을 꺼내서 아껴 살고 있다월세휴대폰비 등만 해도 솔직히 적은 돈은 아니다하지만 감사하게도 잘 버티고 있다언젠가 이렇게 벌지 못하고 준비를 해야하는 웅크리는 인고의 순간이 올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딱 지금인 것 같다.

 


▶ 여행도 다녀왔고이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구상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탐구 중이다아이디어는 굉장히 많다돈이 될 만한 것내가 할 수 있는 것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고심 중이다그것을 실행하기 전까지 돈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도 고려 요소 중 하나다.

 


▶ 나이가 서른이다다시 경력직으로 이직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큰 조직생활에 대한 로망은 없다그래서 이직은 고려해 본적이 아직 없다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큰 조직의 한 부문 한 팀에서 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처음에는 창직창업처럼 내 능력으로 무언가 새로 하는 걸 생각했었다.

 


▶ 그럼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 건가?

굳이 말하자면 돈벌이를 하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돈과 가치의미를 분리해서 돈벌이는 돈벌이대로 하고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기도 하다그런 일을 찾는 과정으로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으며 배울 수는 있을 것 같다지금 나 혼자 무슨 일을 당장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화장품 일을 하는 지인이 있어서 함께 일하는 것도 생각 중이고외국인 친구들과 논의 중인 일도 있다무역과 관련된 일이라고 보면 되겠다개인적으로 집중하는 키워드는 4차 산업, AI 처럼 기술적인 부분은 아니다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지방분권그리고 고령화라는 큰 트랜드를 생각하고 있다그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 요즘 하루 일상은 어떠한가?

8시쯤 일어나서 오전에는 관심 있는 분야의 기사나 동향을 읽는다백수가 되고 난 이후로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있다도서관에 거의 매일같이 가고 있다관심 있는 분야의 강연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사람들을 주로 많이 만나고 있다개인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영어공부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여행 어플을 통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 백패커 들에게 서울 가이드를 해주기도 한다내가 여행할 때를 생각해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되고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하기 때문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백수의 특권인 것 같다.


 

▶ 딱 까놓고 얘기해 보자. <서른 살대기업 퇴사 후 세계여행그리고 그냥 백수냉정히 지금 상태만 보면 이렇다전형적으로 근성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미래 계획도 없는 젊은 친구라고 기성세대가 보면 취급할 수 도 있다.  혹시 있을 수 있는 누군가의 이런류의 비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비난이라고 생각지 않는다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의 잣대로 싸잡아 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정말 이상과 허무맹랑한 꿈만 좇으며 퇴사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YOLO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욜로한 삶만을 즐기는 사람은 미친놈이다현실은 현실이다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다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삶이 없었던 사람들이 욜로라는 키워드로 각자의 인생을 탐구하려는 시도이고트렌드라고 생각한다현실을 충분히 고려하고 미래에 대해 전략적으로 탐구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본다.








 


▶ 일년 안에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는 비율이 거의 30%에 육박한다고 한다본인이 직접 겪으면서 보기에 진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서베이에 나온 것 말고 진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우선은 조직에 대해 정보가 너무 없다는 거다대부분의 취준생들은 겉으로 보이는 조직의 하드웨어는 알아도 실제 그 조직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는 모른다소프트 웨어는 사람문화서로간의 태도이기 때문에 그건 경험해 봐야만 아는 거다학생 시기에 스펙을 쌓거나 취업 자체가 급하다 보니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보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또 하나는 그냥 남들이 인정하는 회사 이름만 보고 취업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개인의 측면으로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잘하는 일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취업을 위한 절박한 취준생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하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 하고 싶은 일 이라는 말이 나왔다당신은 그걸 찾았나?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다는 건 실제 그 일을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심지어 조금 관심 있는 분야라고 해서 파보고 공부하고 일해보니 아닌 경우도 많다그런 사람들이 99%일 것이다나도 그걸 모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만 살아왔었다지금 드는 생각은 그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실패를 하다 보면 자존감이 줄어든다나는 부족한 사람인가제대로 일을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나도 겪어봐서 안다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최고로 좋겠지만그렇지 않다고 해서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나는 좋아하는 일이 뭔지 도저히 몰랐다하지만 정말 싫어하는 일나와 맞지 않는 일내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알았다그래서 그 일을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그 선택지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하기 싫은 일은 단지 아침에 출근하는 것월요일에 회사 가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꿈을 찾아 가세요가슴 뛰는 일을 하세요라는 말이 다수에게는 언어적인 폭력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아무리 찾아봐도 노력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하고 싶은 일을 못 찾은 대부분에게는 **을 향해 가는 자유 보다는 **로 부터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회사 업무에서도 내가 정말 지긋지긋하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 할 만한 다른 일을 더 잘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하기 싫은 일을 다 안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안다어떤 지향점을 찾았다면 또 그 지향점으로 가기 위해 어떤 하기 싫은 일을 만난다면 그 일은 감내를 해야 한다고 본다마법의 성으로 가기 위해 늪을 건너고 괴물과 싸워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만약 그 하기 싫은 일이 정말 죽기 보다 싫다면 그 지향점으로 갈 수 없다그런데 과정에서 오는 하기 싫은 일을 만날 때마다 거부한다면 성인으로서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그냥 개인의 의견이다.


 

▶ 상충의 시대돈을 아껴쓰며 미래를 준비하는 그레잇하게 살고 싶지만동시에 YOLO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부딪힌다고 본다어느 쪽이 맞는다고 보나?


그레잇’ 이거나 YOLO 모두 개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이다욜로를 택한 사람도 마냥 즐기고 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평소와 다른 여유 있는 시간에서 또 다른 나를 찾고 앞으로 다음 단계를 고민할 것이다욜로하면서 돈을 다 탕진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굳이 답을 말하자면 51%는 현실을 발판으로 그레잇을 선택할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 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변화 중 하나가 Its Me라고 생각한다남을 의식하거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나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는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 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처럼 기술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서로간의 인식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본다.

 


▶ 본인 행동의 원칙기준을 말해 준다면?


<행복한가후회하지 않을까더 나아간다면이 일이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인가?> 라는 질문이 기준이다.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으면 하지 마라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모르면 해라는 말이다좀 말장난 같지만 해야 하는지혹은 해도 되는지중에서 해야 하는 것을 고르려고 한다사실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고 팀장님과 저녁에 술을 한잔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나는 나중에 결혼해서 오뚜기에 다니면서 이 일을 하면서 자녀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녀에게 보여 줄 수 있을 만큼 떳떳한 일을 하고 싶었다이건 가치관의 차이인 것 같다.

 












▶ 남들보다 조금 긍정적인 사람 같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예전에 어머니가 내려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그 때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께 어떻게 살겠다는 내용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그리고 내일로 열차를 타고 일주일간 국내 여행을 혼자 했다전라도 장성을 지나고 있는데 12월 한겨울 눈밭이었는데 유독 한 곳만 너무 예쁘게 녹색 풀이 나 있었다그 곳만 봄인 것 같았다그 모습을 보고 너무 행복했다마치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들이킨 것 같은 시원함과 행복감 이었다당시의 감정에 대해 <두 눈 두 팔두 다리만 있어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노트에 메모를 했던 것 같다건강하고 자유로우면 행복한 것 같다.

 

해외여행을 하다가 느낀 점은 평일 낮에 여유롭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돌아와서 한국에서 한강 공원을 일부러 나가 봤는데오후 3시에 운동하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대한민국에도 좋은 요소는 너무 많다내 외국인 친구도 한국을 너무 부러워한다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안 좋은 것만 찾아내서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인 이불을 뒤집어 쓰는 것 같다.

 


▶ 퇴사 후 여행도 다녀오고 지금은 경제 활동을 안하고 있는데 불안함이나 초조함은 없나?


물론 있다하지만 그 감정은 나를 지배하는 감정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예전에 취업 전에 어떤 불안이 나를 뒤덮었던 적도 있었다지금 느끼는 불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시간은 없고 내가 현재 그 일을 할 능력이 없다는 데서 좀 불안과 짜증은 있다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매일 나를 전체적으로 덮고 있지는 않다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 지금 입사동기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한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동기 한 명이 그만둔다는 얘기를 들었다나는 회사 안에서 더 많이 발버둥 쳐보라고 얘기하겠다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발버둥을 쳐 보라고 말해보고 싶다현재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부서장과도 싸워본다든가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든가아니면 내가 이런 제안을 하면 회사가 받아 들여 줄까? 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해보라고 말해주겠다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나오라고 말하겠다사실 나는 부당한 것에 대해 제대로 말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상황에 맞게 알고 있던 사회적인 스킬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 퇴사하기를 잘 했구나 라고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시간과 기회가 많다는 것을 느낄 때다한국인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직장인이지만 야구선수와 같이 퇴사하면 FA선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FA가 되면 다시 계약이 안될 리스크도 있지만 연봉을 몇 배로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회사에 종신계약을 맺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 채로 살기를 원한다그건 가치관의 차이고 이상적인 차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기회를 만난다는 것이 좋았다물론 회사 안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도 있지만회사 밖의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 배우는 것들로부터 얻는 경험과 인사이트는 엄청나게 많다.

 


▶ 5년 후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가?


지금 모색 중인 분야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그것으로 한층 더 성숙해나가는 과정에 있었으면 좋겠다다시 어떤 조직에 속하든 창업또는 프리랜서든 주체적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어떤 방향을 선택하든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서 지금 공부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다.

 


▶ 마지막 질문이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한 분이 세계여행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블로그 이웃 중에 대단히 능력이 있고 여성분이 있었다어느 날 그 분의 블로그의 내용에 위암과 관련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알고 보니 그분이 위암 말기였다병원에서 앞으로 몇 개월이라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으면 사망보험금을 미리 받을 수 있다고 한다그 분은 그 보험금마저 미리 받았을 정도로 안 좋았다내용에 응급실에 실려갔다오늘은 겨우 버텨냈다새로운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이런 내용이 드문드문 올라왔다어느 때는 글이 안 올라오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분을 응원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누군가 에게나 결정적인 순간이 올 텐데 그 순간에 충분히 후회 없는 인생을 나는 살고 있나?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그 생각을 가지고 순간순간에 후회 없이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맞추며 살고 싶다.

 

 







▶   처음에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다른 인터뷰이 처럼 이룬것도 없고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도 없고이제 겨우 찾고 헤매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과정'의 날것을 그대로 듣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기다렸고 결국 승낙했다.  그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이었다퇴사하고 이렇게 긍정적이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설령 그 긍정이 무지 혹은 무경험에서 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긍정의 힘은 세다


그는 서른 살 이다아직은 이제 겨우 한 챕터를 넘긴 그의 인생 노트의 다음 장에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기대가 된다그의 머리속에 있는 아직은 희미한 그림이 명확해 지길 바란다. 그는 과정을 걷는 사람이었다.  10년후에 다시 만나면 되겠다. 그가 발끝만 바라보고 오늘을 사는 '요즘 것들'이 될지 밝고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될지 궁금해 진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세계여행, 인터뷰, 퇴사, 퇴사후세계여행,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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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9_ 30세. 퇴사후 세계여행. 생산적 백수가 되다.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13 07: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를

저는 1989년생. 서른 살. 식품회사를 퇴사하고 세계여행 후 돌아온 생산적 백수 박상준 입니다.


 

▶ 커리어를 간략히 알려달라

서울의 4년재 대학교 07학번 국제학부 러시아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남들보다 취업을 좀 빠르게 했다. 26살인 2013년에 오뚜기에 취업을 했다. 생일이 빨랐고 군대와 교환학생을 모두 빠른 시기에 마쳐서 조금 빨리 입사를 한 편이었다. 오뚜기에서는 국내사업부에서 유통,영업관리 업무를 정확히 3년간 하고 201612월에 퇴사했다.


 

▶ 회사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했나?

국내사업부의 B2C영업을 했다. 마트나 대리점의 오뚜기 제품의 유통과 매출을 담당하는 영업관리였다. 서울 지역에 공급되는 모든 오뚜기 제품이 우리팀의 소관이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 공급되는 오뚜기 상품의 매출 달성이 주요 업무였다.


 

▶ 오뚜기라는 회사의 외부 이미지는 갓뚜기다. 좋은 회사인가?

어떤 면에서는 좋고 어떤 면에서는 아니다. 좋은 측면은 고용 안정성이 높아 함부로 사람을 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에 나오는 계약직 정규직 전환도 모두 그런 장점의 한 모습이다. 또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평가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보상체계도 좋다. 조금 나쁜 측면으로 보면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이건 베스트 셀링 아이템을 가진 식품 제조업의 특징인 것 같다. 부서 이동도 거의 없는 뭐랄까 흐르지 않는 물 같은 느낌 이었다.


 

▶ 회사 안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부분은 무엇인가?

다른 제조업 회사의 영업조직들도 비슷하겠지만 매출압박이 심했다. 그 상태에서 상명하복 찍어 누르기 등의 폐쇄적 조직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서이동도 적기 때문에 변화할 수 없다는 것도 답답한 부분이었다.

 


▶ 3년차가 매출 압박을 받나? 보통 위의 선임이나 팀으로 목표가 나오지 않나?

팀의 목표에서 개인별로 명확한 거래처별 목표가 있었다. 선배들이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업무에 관여하거나 일을 해 주지는 않는다. 물론 선배들에게 술 한잔 하면서 영업 노하우에 대해 배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영업 활동에 대한 책임은 모두 개인별로 있었고 담당이 아니면 그 업무를 대체하기가 힘든 구조였다.

 


▶ 전공이 어문계열이었다. 취업은 잘 되었었나?

이건 케바케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비교적 취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당시는 열린 채용이라고 전공에 관계없이 사람을 뽑는 직군이 영업이었다. 그래서 전공을 살릴 수는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영업관리를 선택했다. 나중에 선배에게 들어보니 내가 나온 학교 정도면 바로 그만두지도 않고 또 모자라지 않게 빠릿빠릿하게 일할 것 같아 뽑았다고 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 이었나?

조직의 시선으로 보면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일하기 보다는 욕먹기 싫어서 일을 했었다. 보수적인 기업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고 그것으로 압박하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다른 동기들과 비교를 하며 욕먹고 뒤쳐지는 것은 너무 싫었다. 나는 당근을 보고 앞으로 뛰는 것이 맞는 사람이었는데 채찍만 있었던 것 같다. 뒤에서 채근이 심했기에 내가 스스로 내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동기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그저 머리 숙이고 일만 했던 것 같다.

 


▶ 회사에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직장생활 고작 3년차였는데 늘 고민했던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앞으로 뭐해 먹고 살지?였다. 계속 비교와 목표 달성 때문에 Push를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선배들도 다른 옵션이 없기에 그냥 일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사실 영업관리라는 것이 자신만의 경력과 전문성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직군이기도 하다. 그것도 이유인 것 같다.










 


▶ 왜 퇴사했나?


한마디로 말하면 기회비용 때문이었다. 공채로 안정된 직장에 들어와서 연수를 받으며 임원들의 강연을 들었다. 이렇게 직장생활을 해야 해, 나 때는 잠도 줄여가면서, 가족보다 회사를 위하면서 회사와 함께 컸어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돌아서면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는 동경의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난 저렇게 살기 싫은데, 꼭 저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승진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럼 루저 (Loser)인가? 실패한 인생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분이 멋지기는 했지만 동시에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 회사랑 잘 안 맞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래도 똥인지 된장인지 알려면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최소 3년은 일해 보자. 그래야 뭐가 뭔지 알 수 있고, 또 경력직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보험이 될 수 있으니까. 아직 어리니 3년이 지나도 서른이고 다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 또 결혼 전이니 또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기로 전략적으로 결정했다. 그 이후에 회사와 맞는다면 더 배울 것이 있다면 다니고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는 계획이었다. 그 기준점이 3년 이었다. 3년 동안 계속 이게 최선일까? 고민을 했다. 후회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회사를 계속 다닐 때와 회사를 떠날 때를 기회비용이란 측면으로 봤을 때 나의 상황에는 떠나는 것이 후회를 더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3년이라는 시간은 판단하기에 좀 짧은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다. 3년을 다니면 딱 그 수준밖에 안보일 것이다. 하지만 10년을 다녀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한 것처럼 나의 나이 등을 고려했을 때 3년이면 판단을 하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삼십 대 초반 퇴사자들과 인터뷰를 하면 나는 내 옆자리의 선배처럼 되기 싫었다.라는 말을 한다. 본인의 경우는 어땠나?


내 선배들은 내가 아니다. 그저 우연히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할 뿐이다. 업무 외적으로 모두 다른 세계, 다른 시선,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고 본다. 회사 내에서의 선배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다른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오히려 포커스를 사람이 아닌 업무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하고 있던 업무가 나와 맞지 않고 싫어서 퇴사를 선택한 거지 하고 있는 일을 하는 선배라는 사람을 보고 퇴사를 결정한 건 아니다. 업무 때문에 야근하고 스트레스 받는 건 선배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청춘과 시간을 바쳐서 노동력을 회사의 이 일에 투입하는 것이 맞는지가 더 중요했다. 기준을 사람이 아니라 업무에 맞춰서 생각한다면 굳이 옆자리 선배의 모습에 자신을 대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업무를 하는 5년 후 미래의 나 스스로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 모습을 내 옆자리 선배의 모습으로 박제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선배의 인생과 내 인생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 퇴사 후 자체 안식년이라고 했다. 이제 서른인데 안식년이 필요한 건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안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찾기 위해 대학생들이 잠시 휴학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을 갭이어 (Gap year)라고도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워딩을 안식년이라고만 한 것이다. 굳이 다른 말을 찾자면 신조어인 Me-Time이라고 나를 찾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른 상황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꼭 몇 년일 필요도 없이 누군가에게는 며칠이 될 수도 몇 주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꼭 여행을 해야 한다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규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충분하다.

 


▶ 퇴사 후 여행. 몇 해 전부터 이게 루틴 혹은 유행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그런 루틴을 따른 것은 아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Me-Time을 갖는데 그 형태가 여러 가지일 수 있는데 나는 여행을 택한 것일 뿐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퇴사하고 친구를 만나서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에 맥주를 한잔하면서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생산적인 백수가 되겠다.라는 말을 열심히 설명했다. 결국 그 친구는 그래서 뭘 할 건데? 라는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냥 여행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카이 스캐너로 검색을 해서 태국 가는 표를 그냥 예약해 버렸다. 그러고 나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후 리마인드 알람을 보고 부랴부랴 짐을 구려서 여행을 떠났다. 어찌 보면 조금은 충동적이었던 것 같다.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잠재적 호기심이 충동처럼 일어났던 것 같다.

 


▶ 언제 돌아온다는 생각을 없었나?

누군가는 여행을 간다면 그냥 가지 말고 영상을 찍거나 여행기를 쓰면서 자신만의 컨텐츠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꼭 그래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를 생각하면 나에게 집중하지 못할것 같았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편도 티켓만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옷도 여름옷만 가지고 갔었다.

 


▶ 그럼 회사를 떠나기 전에 퇴사 후 계획이 따로 있었나?

있었다.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다. 나라에도 국책 사업이 있듯이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나만의 꼭 해야 하는 나만의 숙원사업을 정했다. 그 중 하나가 영어를 제대로 배우는 것 이었다. 영어를 잘 하면 더 많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유럽 국가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면 여행도 할 수 있고 영어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특별히 다르지 않아서 한 2~3개월 지나면 또 똑같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한국사람 만나고 놀게 된다. 대학생 때 러시아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그런 친구들을 많이 봤었다. 그렇게 정해 놓고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여행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 퇴사하기 전에 실제적으로 행동하며 준비한 건 없었나?


있었다. 바로 마음의 준비였다. 젊은 친구들이 명확한 사유나 목적, 준비 없이 그냥 그만 두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었는데, 마음까지 느슨한 채로 퇴사하는 건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절박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시뮬레이션을 굉장히 많이 했다. 10년뒤 내 나이 40이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이 나은 것일까를 고민했고 글로 많이 적어 봤다. , 사회적 지위,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처럼 제목을 정하고 그것을 글을 써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 내가 회사를 떠났을 때 닥칠 최악의 상황이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집중했다. 최악의 경우 회사 그만두고 친구들은 집도 사고 결혼하고 자녀와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돈도 없어 친구도 못 만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계속 고민했다. 최악을 고민하고 적어 보았고 감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 최악을 감내할 만한 절박함이 준비였다.

 


▶ 혹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없었다. 혹 있었다 하더라도 나에게 얘기하지 않으셨다. 원래 가족들과 친하게 지냈고 나 개인의 삶을 존중해 주셨다. 니 인생은 니가 사는 거다. 라고 하셨다.

 


▶ 여행은 얼마나 갔었나?

230, 8개월 동안 25개국 정도를 갔었다. 태국부터 시작해서 동남아를 거쳐 중국, 러시아를 통과해서 유럽을 갔고 터키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귀국했다.

 















▶ 어느 나라의 어느 곳이 가 볼만 한가? 이런 질문은 하지 않겠다. 오랜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조금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8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하다는 것을 정말 크게 느끼게 되었다. 자유로운 나라인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행복했다. 외국 친구들 중 대한민국 여권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고,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도 행복했다. 또 부모님이 건강하고 아직도 경제활동을 하시는 것도 감사했다. 짧은 회사 생활 동안 많지는 않지만 돈도 모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건강한 것에도 감사했다. 전 세계에 70억이 살고 있다면 이렇게 세계여행을 하는 나는 전 세계 상위 1%안에 들 것이다. 그것도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평상시라면 크게 느끼지 못할 것들이 여행을 하면서 정말 감사한 것으로 변했다. 아니 나의 생각의 관점이 바뀌었다.


또 하나는 꼭 직장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곳에 소속되어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작게 벌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내 블로그의 어느 글에 달린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생각보다 길은 많아요 라는 댓글이 나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되었다. 오후 3시에 밖을 나가보면 직장인이 아니면서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 조급함과 완벽주의가 없어졌다. 여행을 하면서도 매일 매일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또 정보를 얻는 대로 움직였기 때문인 것 같다. 완벽하게 살려다 보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추상적이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이 큰 의미였다.

 


▶ 돈은 좀 모았었나? 여행 경비는 얼마나 들었나?

3년 동안 월급의 60% 정도는 늘 저축을 했다. 여행은 그 돈이 아니라 900만 원 정도의 퇴직금만 가지고 했다. 호텔에 묵지 않았다. ^^ 상당히 적게 썼고 해외에서 친구들을 만나 숙소비 등도 아낄 수 있었다.

 


▶ 8개월 만에 귀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더 이상 여행할 필요가 없어지면 돌아와야겠다고 생각 했었다. 개인적으로 그 때는 나를 내려놓고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을 때라고 생각했다. 나의 여행은 꼭 유명한 장소를 가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만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 결혼식 사회를 보기로 약속했던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세계여행, 손성곤, 인터뷰,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퇴사후세계여행,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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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세바시 스피치_삽질이 만드는 한방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2.14 07:00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 생각들













 

 

 

 

 

 

 

저는 <헛방의 기술, 숱한 삽질이 한 방을 만든다>라는 주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에헤, 삽질하고 있네.

 

뭔가를 처음 시도할 때 이런 말 듣기 십상이죠.

 

10년 전 회사 변화관리 업무를 할 때입니다.

 

 

 

입사 2년차였던 저는 전 임직원에게 Mind 혁신을 위한 Essay를 직접 써 보냅니다.

 

매주요. 당연히? Spam이죠.

 

무작정 보내지 말라는 타박은 기본이고 일 같은 일 좀 하라는 질타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삽질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지만 4년 동안 단 한 주도 빠짐없이 200번 삽질을 합니다.

 

 


 

4년 뒤 Good-bye 편지를 보냈는데, 의외의 답장이 옵니다.

 

그 동안 고마웠어. 애 많이 썼지? 나 네 팬이야.

 

동료들의 칭찬과 격려는 제게 행복감을 줬고 회사에선 잘했다고 상도 주더라고요.

 

 


 

삽질한다고 비웃음 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삽질이 빛을 보는 날, 한 방이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삽질이, 아직은 빛을 보지 못한 헛방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혹시 삽질 중이신가요?

 

그 삽질이 의미 있다면 Don’t Stop! 멈추지 마십시오.

 

끈기와 열정의 헛방을 Keep Going! 계속 날리십시오.

 

헛방의 다른 이름은 신념이자, 포기하지 않는 도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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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삽질, 세바시, 연구원, 유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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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한마디 21_잘 안되는 이유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2.06 07:00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 한마디













우리 대부분은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책도 너무 많고 강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 안된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영어를 잘하는 방법, 우리 모두 잘 안다. 

서점에만 가도 인터넷 검색만 해도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는 수백개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잘 못한다. 





왜 그럴까?


하고자 하는 동기와 목표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면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면 좋지만, 안해도 살아가는데 크게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의 삶이 지겹고 답답하고 앞이 잘 안보이지만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현재를 유지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이다. 











#안되는이유

#동기 #목적

#절박함

#그래도삶은계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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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잘안되는이유,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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