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30_ 삼성전자 개발자에서 외식업 브랜드 기획자로 변신.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5.03 06: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회사를 나오게 된 계기가 무엇으로부터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으로 향하기 위해서 였던거 같다.

그건 내가 삼성이 첫 회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삼성전자라는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그 안에 있을 때는 몰랐고 나와 보니 확실히 알았다사회적 시선도 그렇지만 연봉도 매우 훌륭한 회사다직장인 상위 5%안에 들 거다삼성을 나와서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면서 후회도 했다그러다 보니 이 회사를 나가면 후회할거야라는 생각이 있었다그렇기에 싫어서 떠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형태를 띄게 된 것 같다적지 않은 회사를 옮겨보니 여기가 싫어서 나간다.’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다지금 삼성전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분명 장점도 많다그런 상황에서 단점만을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그런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단점만 볼 거다하지만 그 장점을 안에 있을 때는 거의 느끼는 경우가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회사원일 때 본인을 한 마디로 말해본다면?

본 헤이터 (Born Hater)나는 비 합리적이고 비 상식적인걸 못 참는다다른 사람이 그냥 관습적이기 때문에 아무 고민도 없이 그냥 받아 들이는 것그냥 이 집단이 이렇기 때문에 너도 이래야 해원래 그런 거야라는 것을 싫어했다.

 

▶ 회사를 완전히 떠났다후회되는 점은 없나?

글쎄굳이 말하자면 임원이 못된 것은 아쉽다대기업에서 임원 정도 되면 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일을 할 수 있다결국은 나의 아이디어나 일의 가치에 대해서 남이 알아주고 그것을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모두 원한다삼성전자나 IBM에서 상품 기획자로 제대로 아이디어를 냈다면 내가 만든 것을 전세계 사람들이 사용 했을 것이다또 아쉬운 점은 많이 배우고 함께 목표를 함께 일했던 팀원들이 아쉽다삼성전자에 있을 때 열명 정도의 팀이 팀웍이 너무 좋았다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의 기쁨을 알 수도 있었다혼자 외식업 사장으로 외롭게 일하는 지금은 그때의 느낌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 개발자로서의 삶과 브랜드 마케터로서의 삶다소 상반된 일인데 어떤 일이 더 맘에 드나?

브랜딩을 하는 일이 더 맘에 든다죽을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브랜드와 관련된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지금 외식업을 하면서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개발자의 일도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고 결과를 만들어 날 때 희열이 있다개발 일이 너무 싫다기 보다 브랜드 마케터의 일이 더 좋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개발자로서 일한 경험에서 무얼 배웠나그냥 없어질 경험은 아니지 않나?

회사를 나오고 나니 개발자로 일했던 것은 좋은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다대학 4년 동안의 학습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 것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푸는 학습을 하는 거였다컴퓨터는 내가 하면 100년 걸릴 일을 10초면 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가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뿐인 것이다컴퓨터가 모든 일을 다 하는 세상이다심지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그런 상황에서 컴퓨터가 하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영어를 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컴퓨터라는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있게 프로세스를 만들고 적절한 언어로 말해주는 것이 개발자의 일이다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다시 순서를 따라가면서 문제를 찾아내고 디버깅을 한다이렇게 문제를 구조화 하고 프로세스대로 사고하고 생각하는 훈련이 개발자가 가질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다그런 논리적인 생각 프로세스는 컴퓨터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개발 일은 문제가 생겼을 때 호미로 잠깐 막는다고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다시 다른 곳에서 오류가 생긴다그렇기에 반드시 문제의 명확한 원인을 찾고 그 근원적인 원인을 해결해야만 한다그래야만 문제가 풀린다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습성도 갖게 된 것도 배운점이다.

 

▶ 결국 외식업의 세계로 뛰어 들었다어떤 계기였나?

결혼 후 첫째를 낳은 후 나는 우아한 형제들은 다니고 있을 때 아내가 먼저 2015년에 윤경양 식당을 열었다사실 아내는 무용을 전공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원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투잡으로 한 것이다원래 계획은 아내는 외식업을 하고 나는 회사를 다니는 거였다투 트랙 전략이었다첫 식당이 운이 좋게도 시작하자마자 잘 되었다그리고 아내가 둘째를 갖게 되고 내가 회사를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뛰어 들게 된 것이다사실 아내가 먼저 시작했고 그 다음에 내가 뛰어든 것이다아내가 사업가적 기질이 뛰어나다.

 

▶ 식당 브랜드를 소개해 달라.

돈가스 전문인 윤경양식당수제 버거를 파는 Gony’s, 떡복이와 부대찌개를 삼삼하우스피자 전문점 소마이피자 이렇게 4개 브랜드의 6개 매장을 하고 있다. ‘윤경양식당은 아내의 이름인 윤경을 딴것이다. ‘윤식당을 패러디한 것은 아니다. Gony’s는 내 이름을 딴것이다삼삼하우스는 첫째 아들의 태명을 딴것이다소마이피자는 딸의 이름인 ’ (SOMY)를 따서 지었다어찌 보면 가족 브랜드다. ^^

 

▶ 외식업을 시작한지 3년 째 인데 매장이 6개다매장을 많이 늘린 이유는?

솔직히 하루라도 빨리 한푼 이라도 더 벌고 싶었다생각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싶었다또 당시에는 자신이 있었다이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2개까지 늘렸을 때 너무 잘 되었다그러다 보니 자만심이 약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잠실과 제주점도 있다살짝 벅찬 부분도 있다.

 

▶ 다루는 메뉴가 다양하다선택의 기준이 있었나?

돈가스는 만들기 어렵지 않고 자신이 있어서 시작했다예전 건대에서 시작한 가게가 망한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해서 라고 생각한다어느 날 홀에서 이렇게 보니 한쪽에서는 할아버지할머니 분이 앉아 계셨고다른 쪽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젊은 여성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그걸 보고 무릎을 탁 쳤다스타일에는 남녀노소가 있지만 음식장사에는 남녀노소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선택의 폭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전만 해도 패션 브랜드도 아주 명확한 타겟컨셉 등이 있었다강한 특징 있는 브랜드들이 많았다하지만 지금은 유니클로처럼 고객의 Age가 넓어야 선택 받을 확률도 늘어난다고 생각한다다만 입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이삼 십대 여성분들이니 그 분들에게 맞는 인테이리어를 컨셉으로 했다십 년 전에도 팔았고 십 년 후에도 좋아하고 팔 수 있는 음식을 하려고 했다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을 남다르게 팔아보자는 것이 모토가 되었다.

 

▶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돈을 잘 버나?

어떻게 매출을 얘기해야 하나? ^^ 투자한 금액이 아직 빛으로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회사 다닐 때 보다 5배는 버는 것 같다영업이익이 곧 모두 수익이라고 치면 그렇다는 것이다지금은 빛을 갚아나가고 재 투자를 하고 있다누군가는 우와 많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매장이 6개다 그 정도는 벌어야 하는게 맞다.

외식업을 창업하고 처음 생각한 것은 5년을 연습게임으로 보자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연습게임 기간 동안 손해는 볼 수 없었다아이가 둘이다그리고 5년후에 점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년간 열심히 그 원동력을 찾아보자고 했다메뉴를 정하고 장소를 찾은 것이 아니라매장을 먼저 구한 후에 여기에서 뭐할까?’ 를 생각했다모두 권리금이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 2층이 구해지면 여기서 뭐하지이면 도로 골목 안에서는 뭘 해야 할까이렇게 고민했다.

 










▶ 성수동에서만 매장이 4개다성수동을 선택한 이유는?

홈 그라운드 이기 때문이다지금 성수동에 살고 있고 초,,고를 여기에서 나왔다잘 아는 곳이었다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오피스도 들어오고 있어서 주중도 괜찮고 서울숲도 있어서 주말 장사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이렇게 주중주말 상권 모두 다 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은 것 같다괜찮은 선택이라고 본다.

 

▶ 계속 성장하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긴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너무 재지 않는다는 말이다말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다여태껏 그런 인생을 살았다일단 시작하면 무슨 식이든 해 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그리고 남들도 다 하는데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너무 큰 대상이긴 하지만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내가 되지 못할 이유도 굳이 없다고 생각한다생각을 한정하고 싶지는 않았다신중한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수도 있다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100%를 추구하지만 80%만 되고 인정하고 내려 놓는 것도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 자영업 하는 분들은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올바른 태도 (Attitude)의 중요성이다일에 대한 태도와 사람에 대한 태도를 제대로 갖추길 바란다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의 소중함남이 아닌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생각일을 대하는 자세이 일이 천직은 아니더라도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자영업 하면서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나도 일반적인 자영업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이 엄청나게 오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걸 안다하지만 너무 태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10명을 면접보기로 하면 5명이 온다그 중 3명을 뽑아서 일을 하다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 2명은 나간다일하는 중에 핸드폰을 보지 말라는 얘기였다내가 일하러 왔지 너에게 잔소리 들으러 온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며 떠났다.

 

▶ 예전에 자영업자 인터뷰에 비슷한 얘기를 분이 있었다거기에 악플이 달렸다. ‘니가 최저 임금만 겨우 주고 부려 먹으니까 그런 거지’, ‘너는 그런 태도로 일해서 회사 뛰쳐 나왔냐?’ 뭐 그런 악플이었다어떻게 생각하나고용인으로 있을 때와 고용자로 있을 때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직장인과 사장 사이에는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고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는것 같다나도 그랬다내가 사장이 되어 보니 완전히 알지 못했던 세상 이었다회사 입장에서 보면 월급을 많이 주면 그만큼 효율이 나고 효과가 난다고 믿는 것에는 리스크가 있다그래서 회사도 퍼포먼스를 먼저 보여주면 그에 맞게 인센티브도 주고 하는 것 같다서비스업자영업은 한달 벌어 한달 사는 사람들이 작은 규모로 운영하는 곳이 맞다영업이익을 못 내는 즉사장이 한 달에 직원 월급 보다도 못 가져 가는 분들도 많다그렇기에 먼저 직원들에게 선 투자 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 같다나도 월급을 더 주기도 하고 주5일 근무 하면서 모든 휴일을 다 챙겨주고 더 쉬라고 하기도 했다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대부분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직장인 시절에 누리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정말로직장인이 누리는 무형의 것들은 야생으로 나와서야 보일 것이다.

 

▶ 치킨집 수렴의 법칙이 있다. (문과생-백수,사업,작가-치킨집 공대생-과로-치킨집>이다어떻게 생각하나?

다행이 난 과로로 인해서 회사를 퇴사하고 치킨집을 하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을 좀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치킨 프랜차이즈들은 그냥 기름 넣고 닭만 튀기셔서 배달은 아웃소싱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할 것이다그리고 매출이 엄청 잘나오는 상위 매장을 보여줄 것이다세상에 쉬우면서 돈 많이 버는 일은 없다. 내가 그 매출이 잘나오는 매장이 아닐 확률이 대부분이다그걸 말하지 않는 것이 사회고 그걸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 외식업은 고단한 일이다특히 가족의 이해와 도움 없이는 더더욱 그렇다본인은 어땠나?

좋은 질문이다나는 아내가 먼저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우리의 길은 우리 부부가 직접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노력하는 사람을 만난 건 정말 내 인생의 행복인 것 같다아내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다결혼을 안 한 분이 있다면 반드시 같은 곳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다성향은 조금 달라도 된다그 다른 성향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나는 직원에게 살갑게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고 이런거 잘 못하는데 아내는 그 부분을 정말 잘 한다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아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까지 못했을 것이다.

 

▶ 하루 일과는 어떤가?

오전에 일어나서 아이 둘을 밥을 먹이고 어린이 집에 보낸다그리고 오전에 아내와 함께 성수동 매장 중에 하나로 출근해서 점심 시간 넘어서까지 일을 한다그리고 사무 볼일이나 세금 결제 등 업무 처리를 한다그리고 저녁에는 아이를 데리고 오고 저녁을 먹고 일과를 마무리 한다이렇게 한지는 오래 되지는 않았다누가 보면 조금 여유롭다고 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완전 달랐다당시 회사를 다니던 나는 점심 시간에 매장에 나와서 서빙을 했다밥을 못 먹었다그리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서 일하다가 퇴근하고 다시 가게로 와서 일하고 청소 마감까지 다 하고 12시가 넘어서 들어갔었다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는 당연히 오전 준비부터 밤 마무리까지 모두 다 했었다그렇게 거의 3년 동안 기본 하루 12 시간 이상을 일했었다.

 

▶ 매장이 6개면 직원은 몇몇 정도인가?

매니저부터 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한 30명 정도쯤 될 것 같다.

 

▶ 30명 월급을 주는 사람이면 중소기업 사장님이나 마찬가지다월급 150만원이라고 그냥 퉁쳐도 4,500만원이다그냥 잘되는 곳 두 개만 운영하면서 골머리 아프지 않게 살고 싶지는 않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지금은 아까 말한 5년의 연습 과정이다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지금의 방식도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거다그리고 나면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을 거다(Lean)하게 작고 소소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더 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 더 잘 만들어 나가고 싶다.

 

▶ 수제버거의 달인으로 TV에도 소개 되었다대단하다.

그건 방송작가의 친구분이 우리 Gony’s에서 버거를 먹고 너무 맛있어서 친구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고 들었다그래서 2016년에 수제버거의 달인으로 방송 되었다얼마 전 생방송 투데이란 곳에서도 연락이 와서 출연하게 되었다정말 감사하게도 운이 좋았다사실 외식업뿐 아니라 무엇을 하더라고 눈에 띄는고객이 느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윤경양 식당은 플레이팅이 정말 예술적이다따라하는 곳까지 있다무난하게 해서는 차별점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자신만의 날카로운 모난 부분을 갈고 닦아야 한다.

 

▶ 전공자도 아닌데 레시피는 어떻게 만들었나?

우선 모든 책인터넷 사이트의 레시피로 음식을 모두 만들어 봤다돈가스함박스테이크 메뉴를만들 때 는 일본이 돈가스는 세계에서 제일 잘하니까 일본의 쿡패드라는 가장 큰 레시피 사이트를 유료 결제를 해서 하나하나 모두 확인했다나는 어떤 음식을 할 때 그 음식을 최고로 잘 하는 셰프의 레시피를 찾아서 그대로 만들었다그 다음은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그 레시피는 레시피를 공개한 사람 중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의 것이기에 비싼 식재료를 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맛의 끝을 잡아서 기준을 정하고 오퍼레이션을 쉽게 만드는 법을 찾았던것 같다.

 

▶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있나?

상품기획을 하는 일이라면 돌아가고 싶다아이디어를 내고 시작을 해서 판매까지 하는 모든 프로세스를 다 해보는 일이라면 회사로 돌아가서 해보고 싶다요즘은 외식업체에서 브랜드를 런칭하는 일에 많이 끌린다내가 시장을 분석하고 고민해서 만들어낸 요리상품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소비하는 것에 엄청나게 희열을 느낀다그런 일이라면 회사에서 하고 싶다.

 

▶ 동료나 친구들이 장사는 잘되냐나도 프랜차이즈 하나 내 줘회사 그만두고 이거 해야겠다.” 이런 질문은 없나?

다행이 만나는 친구는 개발자 이거나 다양한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어서 아직까지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 요즘 가장 중점을 두고 하는 일은 무엇인가?

비즈니스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큰 관점으로 보니 외식업으로 크게 성공하는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우선은 임금임대료는 올라간다또 직장인들이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트랜드도 생기고 있다직장인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벨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 야근이 줄고 있고 회식도 1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방향은 잡혔고 이제 악셀만 밟으면 더 가속화 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똑같이 팔면 마진은 줄어들고 이익도 줄어든다외식업은 부침도 크고트랜드도 제법 빠르다이런 사회의 큰 흐름 속에서 나는 이미 외식업계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맞추어 나갈까를 가장 고민하고 있다.

 

사실 오픈하고 얼마전까지는 계속해서 배우고 학습하고 부딪히고 또 배우던 시간이었다그 대상은 대박집을 배우는 것이었다아내에게 이런 변화 속에서 다른 게임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해온 일은 같은 게임을 같은 방법으로 했던 것이다이미 수십 년이 넘게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이길 수가 없다그들은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그 대답은 외식업계에 강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올해 열심히 차별점을 찾고 변화 하려고 한다.

 









▶ 몸이 두 개로 분리 된다면 각각의 몸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하나는 지금처럼 일을 할 것이고한 명은 새로운 것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채우면 좋겠다그럼 확실히 더 빨리 성장 할 수 있을 것 같다.


▶ 현재의 삶에 점수를 매겨본다면?

한 80점은 될 것 같다하고 싶은 사업하고 있고 아이도 있고 아내도 있고 건강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고나쁠 이유가 딱히 없다생각해 보니 90점은 넘을 것 같다이 점수가 낮으면 이 인터뷰를 하면 안될 것 같다. ^^

 

▶ 지금의 선택이 잘 한 것이다 라고 느끼는 순간은?

고민할 필요 없다아이들과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다보통 자영업 하면 모두가 얽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조금 시간외 된다직장인 일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낸다그게 가장 좋다.

 

▶ 취업이 너무 힘들다취업을 원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한번에 모든 일이 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그러면 좌절하지 말고 조금 돌아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목표하는 회사가 있다면 당장 거기를 갈 수 없다면관련된 중소 기업에 먼저 취업을 하고 실력을 쌓으며 기회를 보면 된다물론 당연히 그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을 원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예전에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정말 이유가 보였다여자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그림을 그려서 주고조개 껍데기로 목걸이를 만들어 준다이건 정말 아니었다항상 자기 위주 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경쟁자들도 모두 하는 똑같이 제너럴한 스펙만 쌓은 후 스펙이 이렇게 높은데 왜 날 안 알아 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남이 원하는 것을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많은 모임 등에 나가면서 관련분야 사람을 만나면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라. “어떤 사람을 선호하냐어떤 기술이 있어야 하냐가장 중점적으로 필요한 역량이 뭐냐어느 회사 출신의 어느 능력이 있는 경력사원이 많이 오나?”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자신만의 원칙 혹은 스스로 묻는 질문이 있나?

이 일을 하면 가족이 행복할까라는 거다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게 있어도 아내의 동의가 없다면 하지 않는다가족의 행복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돈 많이 버는 것도 그 끝에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끝이 있었다또 하나는 최고로 가장 탁월한 사람회사라는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무언가를 이뤄낸 탁월한 사람조직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까라는 질문으로 스스로 갇힌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5년후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가?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가 단순히 고객들에게만 가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특히 어린이들에의 식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그리고는 가족이 평안했으면 좋겠다아이를 낳고 나니까 세상의 모든 행복이 리셋되는 느낌이었다이보다 더 큰 희열과 행복이 없기 때문이다아이는 완전히 없던 존재이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존재다나에게 희망이자 힘이다가족이 평안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남 눈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길 바란다그런 기준을 가지고는 행복할 수가 없다그리고 관심이 있다면 재발 부디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보길 바란다.










▶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벗어나거나 향해 가거나.'가 그것이다.  그는 지금에서 도망가기 보다는 원하는 것으로 향하는 선택을 해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확정시켜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계속 배웠고 알게 된 것을 표현했다. 행동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새로운 사람들은 생각과 경험을 확장 시켜 주었다. 외식업 사장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 업태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미래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랬다. 5년후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기대가 된다.  이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 다시 한번 성수동의 그의 식당에 한번 가봐야겠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삼성전자, 직장생활연구소, 퇴사자, 퇴사후 식당, 퇴사후 음식점,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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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30_ 삼성전자 개발자에서 외식업 브랜드 기획자로 변신.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5.02 06: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를 부탁

4개의 브랜드로 6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외식업에 종사하는 81년생 이남곤 입니다.

 

▶ 간략히 커리어를 소개해 달라

서울의 한 대학교를 00학번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운 좋게 4학년 1학기에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그래서 삼성전자에서 핸드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삼성전자에서 3년을 일하고 겁없이 회사를 퇴사하고 길거리부터 시작해서 건대 근방에 작은 외식업 가게를 창업했었다. 그러다가 일 년 만에 다시 면접을 보고 IBM에서 일했다. 그 후에 다시 운 좋게 스카웃 되어 하고 싶던 일이던 브랜드 컨설팅업무를 1년 동안 빡세게 배우며 구르며 일했다. 다시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에서 마케팅 팀에서 약 1년 반을 일했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먹고 살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아내가 아내 이름을 걸고 윤경양식당을 성수동에 오픈 했다. 운 좋게 식당운영이 잘 되던 차에 괜찮은 자리가 생겨서 내 이름 걸고 ‘Gony's’ 라는 수제 버거집을 열었다. 둘째를 아내가 임신하면서 나도 회사를 나와서 전업으로 외식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운 좋게 20169월에 생활의 달인수제버거의 달인으로 소개 되었다. 이에 탄력 받아서 ‘33haus 삼삼하우스이라는 즉석 떡볶이 가게를 또 오픈했다. 운을 계속 이어나가서 성수동이 아닌 윤경양식당잠실점과 제주 신화 월드점을 열었고, ‘SOMY Pizza&beer’까지 오픈 했다. 정리하자면 지난 3년여간 브랜드 4, 매장 6개를 잔뜩 벌려 놓았다.

 

▶ 삼성전자 출신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막연히 컴퓨터로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컴퓨터공학과를 갔다. 대학교에서 코딩을 못하거나 성적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치도록 컴퓨터가 좋아서 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3학년 2학기부터 삼성전자의 인턴을 시작해서 같은 과에서 2명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그 후 4학년 1학기에 면접을 보고 삼성전자 입사를 확정을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등한시 한 건 아니었다. 입사 확정 이후 4학년 1학기에 학교 학점에 올 A+이었다.

 

▶ 삼성전자에서 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다. 내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피처폰에서 스마트 폰으로 막 넘어가던 시기였다. 윈도우 모바일 폰이었던 옴니아개발에도 참여 했었다. 코딩을 하는 것은 좋았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재미도 있었다. 당시 나는 보통의 개발자들보다 좀더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개발자들은 주로 컴퓨터와 대화를 많이 한다. 나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도 좋았다. 컴퓨터 이외에 패션, 트랜드, 마케팅 등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회사에 들어가서 한 달씩 미국, 멕시코, 폴란드 이런 곳에서 머물면서 모바일 폰 테스트를 했다. 외국에 머물 때 보고 느끼고 경험한 바깥 세상이 너무 좋았다. 개발은 혼자 하기도 하지만 2명이 팀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선배가 너무 잘해서 나는 다소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삼성에 다니는 사람 치고는 시간이 비교적 많았다. 개발자의 일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천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그럼 자신과 어떤 일이 맞다고 생각했나?

삼성전자에 다니면서도 평소에 관심분야였던 패션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했다. 브랜드와 클래식 패션에 대해서 글과 사진을 올렸고 당시 하루에 3,000~4,000명씩 들어왔다. 회사 일에서 큰 재미는 없었고 패션 블로그를 제법 열심히 했다. 그 블로그가 인연이 되어 패션 디자이너, 잡지 에디터, 홍보 일하는 사람들을 제법 알게 되었다. 그래서 브랜드 런칭 행사’, ‘잡지 촬영이런 곳을 가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환경에 노출 되다 보니 회사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뭘까 생각해 보니 상품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전자에 모바일폰이라는 생활 밀착형 상품이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인 상품 기획일과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기획 일을 하는 팀으로 옮기고 싶어서 시도를 했지만 안되었다. 개인의 의지보다는 회사의 필요가 인사에는 더 중요한 것 같다.

 

▶ 그 다음은 어땠나?

블로그도 꾸준히 하고 당시에 Hot했던 트위터도 팔로워가 팍팍 늘어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뭐를 해도 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준비를 해서 길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삼성본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트위터를 사용해서 알리고 판매를 했다. 그 후 푸드 트럭, 길거리 좌판은 합법은 아니었기 때문에 건대 앞에 작은 자리를 얻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SNS를 사용한 작은 이벤트들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미디어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너무 많이 써서 유치한 워딩이긴 하지만 삼성 때려치우고 샌드위치 장사하는 청년뭐 이런 제목으로 미디어에 실리기도 했다.

 

▶ 좀 천천히 얘기를 해보자. 삼성전자를 나온 이유가 그게 다였나?

계기는 있었다. 당시 나는 모바일폰 테스트를 위해 해외에 한달 이상 머무르는 출장을 자주 갔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건축 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둘이 채팅으로 회사욕을 막 하다가 둘이 힘을 합쳐서 뭔가 다른 일을 하자라고 의기투합을 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회사를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 정도 스펙으로 삼성전자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들어와서 이 정도의 연봉과 혜택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이이었다. 전체 직장인 중에서 상위 5%안에 들것이다. 삼성전자를 나가서 이보다 좋은 회사를 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대화를 나누었던 그 친구가 덜컥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그리고 나를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나도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질러 버린 거였다. 결국 삼성전자를 2007년에 입사해서 3년 다니고 2010년에 그만 두었다. 당시 나이가 서른이었다.

 

▶ 친구가 나오자고 해서 그냥 나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그렇게 쉽게 회사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는 회사를 쉽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입사지원서를 딱 한번 써서 모든 과정을 한번만 겪으며 삼성전자에 들어가니까 취업 준비의 고단함을 잘 몰랐던 것이다. 취준생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그런 오기와 열정이 남들보다는 적은 상태로 회사에 들어가니 로열티가 적었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어린 마음 이었고 세상을 잘 몰랐던 것 같다.

 

 








▶ 그럼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회사를 그만 둔건가?

친구의 회사가 삼성동 이었고 아침에 김밥을 파는 사람들을 보았다. 청년 둘이 말끔하게 차려 입고 좀 색다르게 샌드위치나 김밥을 팔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는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조금은 무모했다.

 

▶ 처음으로 오픈한 가게는 무엇이었나? 

회사를 그만두기 전 친구와 뉴욕 여행을 갔다. 거기에서 할랄가이즈를 먹어봤다. 너무 맛있었고 한국에서 하면 잘 될 것 같았다. 그걸 한국에서 만들어 보고 길거리에서부터 팔았다. 트위터를 이용해서 내가 가는 장소를 알렸다. 그러다가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건대 근방에 싼 곳을 찾았다. 친구와 같이 인테리어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도 블로그에 올렸고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에서 먹어보고 한국에 없으니 막연히 잘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실패하는 정해진 루트였다.

 

▶ 결국 일년 만에 그만두었다. 어떤 이유였나?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작 한 것이 이유였다. 그냥 막연한 마음에 시작했기에 원가 개념도 운영도 모른 채로 시작했다. 무모한 깡이었다. ‘둘이 젊은데 뭘 못하겠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마케팅에 자신도 있었고 잘 먹혀서, 사람들이 와서 줄서서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두어 달 후 돈 계산을 해 보니 마이너스였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냥 몸만 힘들었다.

 

▶ 재 취업을 마음먹은 계기는?

결국은 생계 때문이었다. 가져갈 수 있는 수입은 별로 없고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내가 투자한 것은 모두 그대로 두고 다시 회사에 지원을 했다.

 

그 후에 SK 플래닛 (당시 SK 컴즈)에 기획파트에서 두 달 근무를 했다. 당시 그 회사는 WAP기술을 이용해서 피처폰에서 전자 상거래 서비스를 했다. 2010년이면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시장이 넘어간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피처폰 서비스를 붙잡고 있는 것이 마치 죽은 자식 뭐만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곧 없어질 기술을 위해 롱텀 플랜을 세우는 것도 답답했다. 그 회사는 SK Telecom의 자회사였기에 함께 시너지를 낼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역시 답답했다. 또 당시 네이트온이 메신저 일등이었는데 그걸 모바일 버전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도 정말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SK Telecom에서는 문자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카카오톡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답답함이 너무 심해서 두 달 만에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 IBM으로 옮겼다. 능력이 좋다.

잡 서칭을 하는 중에 운이 좋게 IBM에서 모바일 신사업을 하는 팀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시 주말에 함께 운영했었던 가게 일을 도와 줬다. 그 때 면접 본 팀장이 슬쩍 와서 내가 일하는 것을 보고 갔다고 들었다. 이런 일을 하는 친구라면 IT 영업도 잘 할거라고 생각을 해서 나를 채용했다고 했다. IBM에서 IT 서비스를 판매하는 팀이었는데 모바일 용으로 개발한 서비스를 처음으로 이마트에 판매를 했다. 사무실 컴퓨터로 하던 일을 모바일 폰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팀에서 내가 유일한 주니어였는데 많은 선배들이 도와 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은 좋았는데 협상하고 관계를 맺고 하는 영업은 조금 힘이 들었다. 영업을 잘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1년 후 팀이 해체가 되고 보안 서비스를 판매를 하게 되었다. 보안은 잘 몰랐고 또 모르다 보니 퍼포먼스도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냥 저냥 일을 했다.

 

▶ 그럼 IBM은 왜 떠나게 되었나?

IBM에 들어오면서도 브랜딩,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열망은 늘 있었다. IBM에서도 마케팅 부서로 옮기기 위한 노력도 했지만 잘 안됐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블로그 활동은 꾸준히 했다. 그러던 중에 중국에 계신 전 샤넬 홍보부장을 했던분께 메일을 한 통 받았다. 패션관련 책을 쓰기 위해서 나를 인터뷰 하고 싶다고 했다. 영광스러운 일이라 인터뷰를 했고 그 분이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게 되었고 친해지게 되었다. 그분의 소개로 대기업의 마케팅 디렉터로 일하셨고 지금은 브랜드 컨설팅 일을 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당시 동경하던 일을 하는 분이었고 그 분도 저를 잘 봐 주셔서 함께 일을 해 보자는 제안까지 받게 되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 과감히 IBM을 떠날 수 있었다. IBM에서 일한 기간은 17개월 정도였다.

 

▶ 보통은 회사가 싫어서 벗어나려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무언가를 향해가기 위해 회사를 떠난 것 같다.

맞다. 회사밖에는 엄청나게 다른 새롭고 다양한 것이 많다. 그런데 퇴근 이후에도 회사의 삶을 연장해서 사는 것이 싫었다. 회사는 회사고 퇴근 후는 나였다. 퇴근 후에는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주말에도 관심 있는 행사, 힙한 곳도 일부러 찾아 다녔고, 돈을 내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적극적으로 배웠다. 당시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아 당시 박원순 대표가 운영했던 희망제작소에도 가서 쇼셜 디자인 스쿨이런 것도 배우기도 했다. 브랜딩에 관련된 공부도 했다. 물론 모두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나 주말에 찾아 다니며 배운 것들이다.

 

▶ 그 때부터 이미 워라벨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삼성에 다닐 때 회사에서의 팀원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회사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같이 놀러가고 하는 것도 좋았지만 더 좋아하는 게 있었다. 퇴근 후에는 그냥 술 먹고 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잡지사 친구들, 브랜딩 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회사일과 완전 다른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경험을 했다. 회사 안에 앉아서 돈버는 것 말고 다른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쪽으로 더 많이 관심이 갔다. 공부도 꾸준히 했다

 

▶ 새로 이직한 회사는 어떤 곳이었나?

Ranee&Company 라는 곳이었다. 브랜딩, 디자인을 하는 창의적인 회사였다. 많이 배웠고 챌린지도 많이 받았다. 그 동안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만 했었지 그것을 일로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챌린지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장점은 Broad한 관심 이었다. 패션, 브랜딩, 음악, 음식 모두 어느 대화에서나 주도하면서 얘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 같았다. 장점일 수도 또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 어떤 일을 했나? 기억에 남는 일은?

당시 현대 자동차의 Young라인 이었던 PYL 관련 일을 했을 때가 기억난다. 가로수길에 팝업 스토어를 만드는데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경쟁 PT를 했고 일을 따냈다. 젊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런칭 행사를 하는 일의 PM으로 일했다. 전체적인 컨셉 설정, 행사기획, 섭외, 진행 등의 일을 했었다. 처음 하는 일이었는데 상당히 큰 일이었고 보통은 시니어가 하는 일이었다.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엄청나게 많이 배웠다. 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배울 것 투성이었다.

 

▶ 결국 그곳도 떠나게 되었다. 계기는 뭔가?

윗 분의 기대와 실무자로서의 괴리, 그리고 대행사 일을 하면서 을로 당하는 그런 답답함 들이 모두 얽혔던 것 같다. 현대차 프로젝트를 마치고 수고했다고 휴가를 얻어 남해로 여행을 갔다. 내 전화가 배터리가 없어서 꺼져 있었는데 여자친구 (현재 부인)의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하는데 업무 얘기를 한 시간이 넘게 했다. 그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나에게 한 얘기도 모두 돌아가서 회사에서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분이 많이 상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같이 일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대표님도 같은 생각이었고 그래서 나오게 되었다.

 

▶ 경력이 뭐랄까 좀 짧고 일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서는 사기 치는거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다. 이렇게 시작과 현재가 다른 경력으로 이런 성과를 낸 것이 말이 되느냐? 그냥 발끝만 담그고 니가 했다는 거 아니냐?” 뭐 그런 의구심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고서는 백수 생활을 좀 했다. 결혼을 했는데 백수가 되어 버렸다.

 

▶ 그 다음은 우아한 형제들에 취업했다. ‘배달의 민족아닌가?

맞다. 이제는 커리어가 브랜딩으로 이어가야겠다고 여러 회사에 지원을 했고 우아한 형제들에 면접을 보고 취업을 했다. 지인 찬스도 없이 지원하고 면접을 모두 보고 들어갔다. 하지만 경력은 단 일년만 인정 받았다. 사회경험으로는 8년차 였는데 브랜딩을 일로 한 것은 일년밖에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어서 오케이를 하고 입사를 했다. 당시가 2014년 이었다.

 

▶ 배달의 민족에서 어떤 일을 했나?

마케팅 실에서 일을 했다. 어느 하나 정해진 일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두루두루 모든 일을 했던 것 같다. 좋게 말하는 모두 했던 거고 나쁘게 말하면 체계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당시는 회사가 막 커나가는 단계여서 업무가 프로세스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이것 재미있겠는데 하면 해 보고 그랬던 것 같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내가 삼성과 IBM에서 특히 많이 배웠던 것은 일의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대한 힘이었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IBM에서는 서비스 판매 계약을 하나 하려 해도 거의 직능의 부서가 Engage 되어 있기에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심지어 잘 모르는 Account쪽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했다. 설득을 해서 오케이를 받지 못하면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프로세스가 전세계 IBM이 동일 했다. 당시 IBM에 있을 때는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떠나고 나서 보니 서비스 판매 전에 모든 RISK를 없애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고 그 프로세스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이 다듬어진 것이었다.

 

IBM에 들어가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삼성이 부러워하는 회사가 IBM이라고 들어서 도대체 무얼 닮고 싶어하는지알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과 상관없이 경계를 넓히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일을 왜 이렇게 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제안서를 하나 써도 나는 세일즈 부서였기 때문에 기술자 그룹에 있는 사람의 시간을 사서 일하는 구조였다. 같은 회사에서 그냥 , 이런거 하는데 좀 도와줘이런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IBM은 일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 인력, 그리고 벌어들이는 Benefit을 정량화 하면서 측정할 수 있는 단위로 만들었던 것 같다.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Risk Management 였던 것 같다. 그렇게 세계에서 제일 가는 프로세스, 효율 중심의 회사에 근무를 했었다 보니 배달의 민족의 당시 모습이 너무 미숙하고 답답해 보였다. 물론 스타트업이고 아직 기업 생장주기로 보면 초창기 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많이 답답했다. 분명 좋은 회사이고 잘나가는 회사이기는 한데 나의 나이와 커리어를 볼 때 오래 있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 회사의 업태와 역사에 따라 많이 다른 점을 느낀 것 같다.

배달의민족은 사회초년생들이 많이 있었고, 직원들의 대표님에 대한 애정과 신뢰도가 엄청났다. 대표님을 거의 스타로 생각하고 (스타가 맞긴 맞다) 팬처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너무 열광을 하면 조금 아니, ?”라며 의구심을 갖는 스타일 이다. 직원들이 모든 것을 회사에 올인하고 직원들과 너무 친하고 여행도 다니고 했다. 나는 결혼도 했고 나이도 있고, 경험한 것이 다르기에 생각도 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회사고 좋은 회사이지만 나와는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었다. 직원들과의 나이차이도 그 중 하나였다.

 

▶ 당신은 하고싶은 걸 학창시절에 이미 알았다. 어떻게 그걸 찾았나?

지금 30대 정도의 성인이라면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뭘 할 때 가장 좋았지?’, ‘주말에 시간이 나면 나는 뭘 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학생 때 주말에 동대문, 이대, 강남, 이태원 등의 옷 가게를 돌아 다니면서 뭘 파는지를 보고 사람들이 뭘 입는지를 봤다. 시간이 나면 도서관의 정기 간행물실에 가서 여러 종류의 잡지를 다 봤었다. ‘이런걸 다루는 잡지가 있어?’ 하는 특이한 것도 읽어 보았다. 사실 그 과정은 많은 인풋을 받는 과정이었다. 많이 들어와야 그 중에 나와 맞는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일을 하다보니 상충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과거의 사소한 행동을 살펴 보면서 하나하나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거 같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잘 모른다. 조언을 해 준다면?

가장 큰 문제는 학원좀비로 키워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에 정답이 있는 문제 풀이에만 익숙하다. 사고 자체가 정답만을 찾는 것에만 익숙해 져서 정답이 없는 사회에 들어 왔을 때 답답해 하는 것 같다. 스펙을 쌓는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무엇 무엇을 원한다더라, 어떤 타이틀이 있어야만 인정받는다고 이미 알고 있고 그것만을 위해 행동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삶은 학원에서 해결해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작은 관심이라도 있으면 해 보길 바란다. 페이스북에서 좋은 교육이 있어도 좋은 명언이 있어도 그게 그냥 끝이다. 실제로 내가 뛰어들어 해보고 경험해 보는 사람은 적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제 행동으로 한발 더나아가지 않는 거다. 딱 한발만 더 나가서 실제로 모임에 참석해 보면 된다. 설령 가서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하더라도 잠깐이라도 가보는 것만으로도 , 이런 곳에 관심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구나. 이렇게 관심있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거다. 쭈뼛쭈뼛 거리더라도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나만 그런 거겠어? 다른 사람도 어색하겠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걸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작은 관심이 있으면 딱 한발만 더 나가면 좋겠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Tags : 개발자, 개발자퇴사, 식당, 외식업, 요식업, 퇴사,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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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9_ 30세 퇴사후 세계여행. 긍정적 백수가 되다.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15 08:17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현재 수입은 없다버틸 만 한가?

혼자 살고 있다퇴직금은 여행경비로 썼고 이제는 모아 놓은 돈을 꺼내서 아껴 살고 있다월세휴대폰비 등만 해도 솔직히 적은 돈은 아니다하지만 감사하게도 잘 버티고 있다언젠가 이렇게 벌지 못하고 준비를 해야하는 웅크리는 인고의 순간이 올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딱 지금인 것 같다.

 


▶ 여행도 다녀왔고이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구상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탐구 중이다아이디어는 굉장히 많다돈이 될 만한 것내가 할 수 있는 것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고심 중이다그것을 실행하기 전까지 돈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도 고려 요소 중 하나다.

 


▶ 나이가 서른이다다시 경력직으로 이직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큰 조직생활에 대한 로망은 없다그래서 이직은 고려해 본적이 아직 없다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큰 조직의 한 부문 한 팀에서 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처음에는 창직창업처럼 내 능력으로 무언가 새로 하는 걸 생각했었다.

 


▶ 그럼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 건가?

굳이 말하자면 돈벌이를 하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돈과 가치의미를 분리해서 돈벌이는 돈벌이대로 하고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기도 하다그런 일을 찾는 과정으로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으며 배울 수는 있을 것 같다지금 나 혼자 무슨 일을 당장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화장품 일을 하는 지인이 있어서 함께 일하는 것도 생각 중이고외국인 친구들과 논의 중인 일도 있다무역과 관련된 일이라고 보면 되겠다개인적으로 집중하는 키워드는 4차 산업, AI 처럼 기술적인 부분은 아니다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지방분권그리고 고령화라는 큰 트랜드를 생각하고 있다그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 요즘 하루 일상은 어떠한가?

8시쯤 일어나서 오전에는 관심 있는 분야의 기사나 동향을 읽는다백수가 되고 난 이후로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있다도서관에 거의 매일같이 가고 있다관심 있는 분야의 강연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사람들을 주로 많이 만나고 있다개인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영어공부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여행 어플을 통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 백패커 들에게 서울 가이드를 해주기도 한다내가 여행할 때를 생각해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되고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하기 때문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백수의 특권인 것 같다.


 

▶ 딱 까놓고 얘기해 보자. <서른 살대기업 퇴사 후 세계여행그리고 그냥 백수냉정히 지금 상태만 보면 이렇다전형적으로 근성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미래 계획도 없는 젊은 친구라고 기성세대가 보면 취급할 수 도 있다.  혹시 있을 수 있는 누군가의 이런류의 비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비난이라고 생각지 않는다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의 잣대로 싸잡아 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정말 이상과 허무맹랑한 꿈만 좇으며 퇴사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YOLO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욜로한 삶만을 즐기는 사람은 미친놈이다현실은 현실이다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다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삶이 없었던 사람들이 욜로라는 키워드로 각자의 인생을 탐구하려는 시도이고트렌드라고 생각한다현실을 충분히 고려하고 미래에 대해 전략적으로 탐구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본다.








 


▶ 일년 안에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는 비율이 거의 30%에 육박한다고 한다본인이 직접 겪으면서 보기에 진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서베이에 나온 것 말고 진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우선은 조직에 대해 정보가 너무 없다는 거다대부분의 취준생들은 겉으로 보이는 조직의 하드웨어는 알아도 실제 그 조직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는 모른다소프트 웨어는 사람문화서로간의 태도이기 때문에 그건 경험해 봐야만 아는 거다학생 시기에 스펙을 쌓거나 취업 자체가 급하다 보니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보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또 하나는 그냥 남들이 인정하는 회사 이름만 보고 취업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개인의 측면으로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잘하는 일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취업을 위한 절박한 취준생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하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 하고 싶은 일 이라는 말이 나왔다당신은 그걸 찾았나?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다는 건 실제 그 일을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심지어 조금 관심 있는 분야라고 해서 파보고 공부하고 일해보니 아닌 경우도 많다그런 사람들이 99%일 것이다나도 그걸 모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만 살아왔었다지금 드는 생각은 그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실패를 하다 보면 자존감이 줄어든다나는 부족한 사람인가제대로 일을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나도 겪어봐서 안다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최고로 좋겠지만그렇지 않다고 해서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나는 좋아하는 일이 뭔지 도저히 몰랐다하지만 정말 싫어하는 일나와 맞지 않는 일내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알았다그래서 그 일을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그 선택지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하기 싫은 일은 단지 아침에 출근하는 것월요일에 회사 가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꿈을 찾아 가세요가슴 뛰는 일을 하세요라는 말이 다수에게는 언어적인 폭력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아무리 찾아봐도 노력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하고 싶은 일을 못 찾은 대부분에게는 **을 향해 가는 자유 보다는 **로 부터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회사 업무에서도 내가 정말 지긋지긋하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 할 만한 다른 일을 더 잘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하기 싫은 일을 다 안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안다어떤 지향점을 찾았다면 또 그 지향점으로 가기 위해 어떤 하기 싫은 일을 만난다면 그 일은 감내를 해야 한다고 본다마법의 성으로 가기 위해 늪을 건너고 괴물과 싸워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만약 그 하기 싫은 일이 정말 죽기 보다 싫다면 그 지향점으로 갈 수 없다그런데 과정에서 오는 하기 싫은 일을 만날 때마다 거부한다면 성인으로서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그냥 개인의 의견이다.


 

▶ 상충의 시대돈을 아껴쓰며 미래를 준비하는 그레잇하게 살고 싶지만동시에 YOLO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부딪힌다고 본다어느 쪽이 맞는다고 보나?


그레잇’ 이거나 YOLO 모두 개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이다욜로를 택한 사람도 마냥 즐기고 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평소와 다른 여유 있는 시간에서 또 다른 나를 찾고 앞으로 다음 단계를 고민할 것이다욜로하면서 돈을 다 탕진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굳이 답을 말하자면 51%는 현실을 발판으로 그레잇을 선택할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 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변화 중 하나가 Its Me라고 생각한다남을 의식하거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나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는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 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처럼 기술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서로간의 인식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본다.

 


▶ 본인 행동의 원칙기준을 말해 준다면?


<행복한가후회하지 않을까더 나아간다면이 일이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인가?> 라는 질문이 기준이다.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으면 하지 마라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모르면 해라는 말이다좀 말장난 같지만 해야 하는지혹은 해도 되는지중에서 해야 하는 것을 고르려고 한다사실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고 팀장님과 저녁에 술을 한잔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나는 나중에 결혼해서 오뚜기에 다니면서 이 일을 하면서 자녀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녀에게 보여 줄 수 있을 만큼 떳떳한 일을 하고 싶었다이건 가치관의 차이인 것 같다.

 












▶ 남들보다 조금 긍정적인 사람 같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예전에 어머니가 내려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그 때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께 어떻게 살겠다는 내용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그리고 내일로 열차를 타고 일주일간 국내 여행을 혼자 했다전라도 장성을 지나고 있는데 12월 한겨울 눈밭이었는데 유독 한 곳만 너무 예쁘게 녹색 풀이 나 있었다그 곳만 봄인 것 같았다그 모습을 보고 너무 행복했다마치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들이킨 것 같은 시원함과 행복감 이었다당시의 감정에 대해 <두 눈 두 팔두 다리만 있어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노트에 메모를 했던 것 같다건강하고 자유로우면 행복한 것 같다.

 

해외여행을 하다가 느낀 점은 평일 낮에 여유롭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돌아와서 한국에서 한강 공원을 일부러 나가 봤는데오후 3시에 운동하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대한민국에도 좋은 요소는 너무 많다내 외국인 친구도 한국을 너무 부러워한다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안 좋은 것만 찾아내서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인 이불을 뒤집어 쓰는 것 같다.

 


▶ 퇴사 후 여행도 다녀오고 지금은 경제 활동을 안하고 있는데 불안함이나 초조함은 없나?


물론 있다하지만 그 감정은 나를 지배하는 감정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예전에 취업 전에 어떤 불안이 나를 뒤덮었던 적도 있었다지금 느끼는 불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시간은 없고 내가 현재 그 일을 할 능력이 없다는 데서 좀 불안과 짜증은 있다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매일 나를 전체적으로 덮고 있지는 않다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 지금 입사동기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한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동기 한 명이 그만둔다는 얘기를 들었다나는 회사 안에서 더 많이 발버둥 쳐보라고 얘기하겠다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발버둥을 쳐 보라고 말해보고 싶다현재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부서장과도 싸워본다든가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든가아니면 내가 이런 제안을 하면 회사가 받아 들여 줄까? 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해보라고 말해주겠다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나오라고 말하겠다사실 나는 부당한 것에 대해 제대로 말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상황에 맞게 알고 있던 사회적인 스킬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 퇴사하기를 잘 했구나 라고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시간과 기회가 많다는 것을 느낄 때다한국인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직장인이지만 야구선수와 같이 퇴사하면 FA선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FA가 되면 다시 계약이 안될 리스크도 있지만 연봉을 몇 배로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회사에 종신계약을 맺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 채로 살기를 원한다그건 가치관의 차이고 이상적인 차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기회를 만난다는 것이 좋았다물론 회사 안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도 있지만회사 밖의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 배우는 것들로부터 얻는 경험과 인사이트는 엄청나게 많다.

 


▶ 5년 후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가?


지금 모색 중인 분야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그것으로 한층 더 성숙해나가는 과정에 있었으면 좋겠다다시 어떤 조직에 속하든 창업또는 프리랜서든 주체적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어떤 방향을 선택하든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서 지금 공부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다.

 


▶ 마지막 질문이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한 분이 세계여행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블로그 이웃 중에 대단히 능력이 있고 여성분이 있었다어느 날 그 분의 블로그의 내용에 위암과 관련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알고 보니 그분이 위암 말기였다병원에서 앞으로 몇 개월이라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으면 사망보험금을 미리 받을 수 있다고 한다그 분은 그 보험금마저 미리 받았을 정도로 안 좋았다내용에 응급실에 실려갔다오늘은 겨우 버텨냈다새로운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이런 내용이 드문드문 올라왔다어느 때는 글이 안 올라오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분을 응원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누군가 에게나 결정적인 순간이 올 텐데 그 순간에 충분히 후회 없는 인생을 나는 살고 있나?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그 생각을 가지고 순간순간에 후회 없이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맞추며 살고 싶다.

 

 







▶   처음에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다른 인터뷰이 처럼 이룬것도 없고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도 없고이제 겨우 찾고 헤매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과정'의 날것을 그대로 듣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기다렸고 결국 승낙했다.  그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이었다퇴사하고 이렇게 긍정적이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설령 그 긍정이 무지 혹은 무경험에서 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긍정의 힘은 세다


그는 서른 살 이다아직은 이제 겨우 한 챕터를 넘긴 그의 인생 노트의 다음 장에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기대가 된다그의 머리속에 있는 아직은 희미한 그림이 명확해 지길 바란다. 그는 과정을 걷는 사람이었다.  10년후에 다시 만나면 되겠다. 그가 발끝만 바라보고 오늘을 사는 '요즘 것들'이 될지 밝고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될지 궁금해 진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세계여행, 인터뷰, 퇴사, 퇴사후세계여행,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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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냥 2018.03.15 23:06 신고

    그냥 날 것

    REPLY / EDIT

    • 손성곤 2018.03.19 17:38 신고

      안녕하세요.

      본 인터뷰는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윤색되지 않는 날것 그대로 입니다. ^^

      고맙습니다.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29_ 30세. 퇴사후 세계여행. 생산적 백수가 되다.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13 07:0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를

저는 1989년생. 서른 살. 식품회사를 퇴사하고 세계여행 후 돌아온 생산적 백수 박상준 입니다.


 

▶ 커리어를 간략히 알려달라

서울의 4년재 대학교 07학번 국제학부 러시아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남들보다 취업을 좀 빠르게 했다. 26살인 2013년에 오뚜기에 취업을 했다. 생일이 빨랐고 군대와 교환학생을 모두 빠른 시기에 마쳐서 조금 빨리 입사를 한 편이었다. 오뚜기에서는 국내사업부에서 유통,영업관리 업무를 정확히 3년간 하고 201612월에 퇴사했다.


 

▶ 회사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했나?

국내사업부의 B2C영업을 했다. 마트나 대리점의 오뚜기 제품의 유통과 매출을 담당하는 영업관리였다. 서울 지역에 공급되는 모든 오뚜기 제품이 우리팀의 소관이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 공급되는 오뚜기 상품의 매출 달성이 주요 업무였다.


 

▶ 오뚜기라는 회사의 외부 이미지는 갓뚜기다. 좋은 회사인가?

어떤 면에서는 좋고 어떤 면에서는 아니다. 좋은 측면은 고용 안정성이 높아 함부로 사람을 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에 나오는 계약직 정규직 전환도 모두 그런 장점의 한 모습이다. 또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평가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보상체계도 좋다. 조금 나쁜 측면으로 보면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이건 베스트 셀링 아이템을 가진 식품 제조업의 특징인 것 같다. 부서 이동도 거의 없는 뭐랄까 흐르지 않는 물 같은 느낌 이었다.


 

▶ 회사 안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부분은 무엇인가?

다른 제조업 회사의 영업조직들도 비슷하겠지만 매출압박이 심했다. 그 상태에서 상명하복 찍어 누르기 등의 폐쇄적 조직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서이동도 적기 때문에 변화할 수 없다는 것도 답답한 부분이었다.

 


▶ 3년차가 매출 압박을 받나? 보통 위의 선임이나 팀으로 목표가 나오지 않나?

팀의 목표에서 개인별로 명확한 거래처별 목표가 있었다. 선배들이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업무에 관여하거나 일을 해 주지는 않는다. 물론 선배들에게 술 한잔 하면서 영업 노하우에 대해 배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영업 활동에 대한 책임은 모두 개인별로 있었고 담당이 아니면 그 업무를 대체하기가 힘든 구조였다.

 


▶ 전공이 어문계열이었다. 취업은 잘 되었었나?

이건 케바케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비교적 취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당시는 열린 채용이라고 전공에 관계없이 사람을 뽑는 직군이 영업이었다. 그래서 전공을 살릴 수는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영업관리를 선택했다. 나중에 선배에게 들어보니 내가 나온 학교 정도면 바로 그만두지도 않고 또 모자라지 않게 빠릿빠릿하게 일할 것 같아 뽑았다고 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 이었나?

조직의 시선으로 보면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일하기 보다는 욕먹기 싫어서 일을 했었다. 보수적인 기업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고 그것으로 압박하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다른 동기들과 비교를 하며 욕먹고 뒤쳐지는 것은 너무 싫었다. 나는 당근을 보고 앞으로 뛰는 것이 맞는 사람이었는데 채찍만 있었던 것 같다. 뒤에서 채근이 심했기에 내가 스스로 내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동기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그저 머리 숙이고 일만 했던 것 같다.

 


▶ 회사에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직장생활 고작 3년차였는데 늘 고민했던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앞으로 뭐해 먹고 살지?였다. 계속 비교와 목표 달성 때문에 Push를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선배들도 다른 옵션이 없기에 그냥 일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사실 영업관리라는 것이 자신만의 경력과 전문성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직군이기도 하다. 그것도 이유인 것 같다.










 


▶ 왜 퇴사했나?


한마디로 말하면 기회비용 때문이었다. 공채로 안정된 직장에 들어와서 연수를 받으며 임원들의 강연을 들었다. 이렇게 직장생활을 해야 해, 나 때는 잠도 줄여가면서, 가족보다 회사를 위하면서 회사와 함께 컸어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돌아서면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는 동경의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난 저렇게 살기 싫은데, 꼭 저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승진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럼 루저 (Loser)인가? 실패한 인생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분이 멋지기는 했지만 동시에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 회사랑 잘 안 맞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래도 똥인지 된장인지 알려면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최소 3년은 일해 보자. 그래야 뭐가 뭔지 알 수 있고, 또 경력직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보험이 될 수 있으니까. 아직 어리니 3년이 지나도 서른이고 다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 또 결혼 전이니 또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기로 전략적으로 결정했다. 그 이후에 회사와 맞는다면 더 배울 것이 있다면 다니고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는 계획이었다. 그 기준점이 3년 이었다. 3년 동안 계속 이게 최선일까? 고민을 했다. 후회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회사를 계속 다닐 때와 회사를 떠날 때를 기회비용이란 측면으로 봤을 때 나의 상황에는 떠나는 것이 후회를 더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3년이라는 시간은 판단하기에 좀 짧은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다. 3년을 다니면 딱 그 수준밖에 안보일 것이다. 하지만 10년을 다녀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한 것처럼 나의 나이 등을 고려했을 때 3년이면 판단을 하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삼십 대 초반 퇴사자들과 인터뷰를 하면 나는 내 옆자리의 선배처럼 되기 싫었다.라는 말을 한다. 본인의 경우는 어땠나?


내 선배들은 내가 아니다. 그저 우연히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할 뿐이다. 업무 외적으로 모두 다른 세계, 다른 시선,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고 본다. 회사 내에서의 선배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다른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오히려 포커스를 사람이 아닌 업무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하고 있던 업무가 나와 맞지 않고 싫어서 퇴사를 선택한 거지 하고 있는 일을 하는 선배라는 사람을 보고 퇴사를 결정한 건 아니다. 업무 때문에 야근하고 스트레스 받는 건 선배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청춘과 시간을 바쳐서 노동력을 회사의 이 일에 투입하는 것이 맞는지가 더 중요했다. 기준을 사람이 아니라 업무에 맞춰서 생각한다면 굳이 옆자리 선배의 모습에 자신을 대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업무를 하는 5년 후 미래의 나 스스로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 모습을 내 옆자리 선배의 모습으로 박제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선배의 인생과 내 인생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 퇴사 후 자체 안식년이라고 했다. 이제 서른인데 안식년이 필요한 건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안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찾기 위해 대학생들이 잠시 휴학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을 갭이어 (Gap year)라고도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워딩을 안식년이라고만 한 것이다. 굳이 다른 말을 찾자면 신조어인 Me-Time이라고 나를 찾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른 상황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꼭 몇 년일 필요도 없이 누군가에게는 며칠이 될 수도 몇 주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꼭 여행을 해야 한다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규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충분하다.

 


▶ 퇴사 후 여행. 몇 해 전부터 이게 루틴 혹은 유행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그런 루틴을 따른 것은 아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Me-Time을 갖는데 그 형태가 여러 가지일 수 있는데 나는 여행을 택한 것일 뿐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퇴사하고 친구를 만나서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에 맥주를 한잔하면서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생산적인 백수가 되겠다.라는 말을 열심히 설명했다. 결국 그 친구는 그래서 뭘 할 건데? 라는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냥 여행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카이 스캐너로 검색을 해서 태국 가는 표를 그냥 예약해 버렸다. 그러고 나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후 리마인드 알람을 보고 부랴부랴 짐을 구려서 여행을 떠났다. 어찌 보면 조금은 충동적이었던 것 같다.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잠재적 호기심이 충동처럼 일어났던 것 같다.

 


▶ 언제 돌아온다는 생각을 없었나?

누군가는 여행을 간다면 그냥 가지 말고 영상을 찍거나 여행기를 쓰면서 자신만의 컨텐츠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꼭 그래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를 생각하면 나에게 집중하지 못할것 같았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편도 티켓만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옷도 여름옷만 가지고 갔었다.

 


▶ 그럼 회사를 떠나기 전에 퇴사 후 계획이 따로 있었나?

있었다.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다. 나라에도 국책 사업이 있듯이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나만의 꼭 해야 하는 나만의 숙원사업을 정했다. 그 중 하나가 영어를 제대로 배우는 것 이었다. 영어를 잘 하면 더 많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유럽 국가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면 여행도 할 수 있고 영어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특별히 다르지 않아서 한 2~3개월 지나면 또 똑같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한국사람 만나고 놀게 된다. 대학생 때 러시아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그런 친구들을 많이 봤었다. 그렇게 정해 놓고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여행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 퇴사하기 전에 실제적으로 행동하며 준비한 건 없었나?


있었다. 바로 마음의 준비였다. 젊은 친구들이 명확한 사유나 목적, 준비 없이 그냥 그만 두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었는데, 마음까지 느슨한 채로 퇴사하는 건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절박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시뮬레이션을 굉장히 많이 했다. 10년뒤 내 나이 40이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이 나은 것일까를 고민했고 글로 많이 적어 봤다. , 사회적 지위,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처럼 제목을 정하고 그것을 글을 써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 내가 회사를 떠났을 때 닥칠 최악의 상황이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집중했다. 최악의 경우 회사 그만두고 친구들은 집도 사고 결혼하고 자녀와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돈도 없어 친구도 못 만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계속 고민했다. 최악을 고민하고 적어 보았고 감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 최악을 감내할 만한 절박함이 준비였다.

 


▶ 혹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없었다. 혹 있었다 하더라도 나에게 얘기하지 않으셨다. 원래 가족들과 친하게 지냈고 나 개인의 삶을 존중해 주셨다. 니 인생은 니가 사는 거다. 라고 하셨다.

 


▶ 여행은 얼마나 갔었나?

230, 8개월 동안 25개국 정도를 갔었다. 태국부터 시작해서 동남아를 거쳐 중국, 러시아를 통과해서 유럽을 갔고 터키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귀국했다.

 















▶ 어느 나라의 어느 곳이 가 볼만 한가? 이런 질문은 하지 않겠다. 오랜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조금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8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하다는 것을 정말 크게 느끼게 되었다. 자유로운 나라인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행복했다. 외국 친구들 중 대한민국 여권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고,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도 행복했다. 또 부모님이 건강하고 아직도 경제활동을 하시는 것도 감사했다. 짧은 회사 생활 동안 많지는 않지만 돈도 모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건강한 것에도 감사했다. 전 세계에 70억이 살고 있다면 이렇게 세계여행을 하는 나는 전 세계 상위 1%안에 들 것이다. 그것도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평상시라면 크게 느끼지 못할 것들이 여행을 하면서 정말 감사한 것으로 변했다. 아니 나의 생각의 관점이 바뀌었다.


또 하나는 꼭 직장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곳에 소속되어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작게 벌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내 블로그의 어느 글에 달린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생각보다 길은 많아요 라는 댓글이 나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되었다. 오후 3시에 밖을 나가보면 직장인이 아니면서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 조급함과 완벽주의가 없어졌다. 여행을 하면서도 매일 매일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또 정보를 얻는 대로 움직였기 때문인 것 같다. 완벽하게 살려다 보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추상적이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이 큰 의미였다.

 


▶ 돈은 좀 모았었나? 여행 경비는 얼마나 들었나?

3년 동안 월급의 60% 정도는 늘 저축을 했다. 여행은 그 돈이 아니라 900만 원 정도의 퇴직금만 가지고 했다. 호텔에 묵지 않았다. ^^ 상당히 적게 썼고 해외에서 친구들을 만나 숙소비 등도 아낄 수 있었다.

 


▶ 8개월 만에 귀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더 이상 여행할 필요가 없어지면 돌아와야겠다고 생각 했었다. 개인적으로 그 때는 나를 내려놓고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을 때라고 생각했다. 나의 여행은 꼭 유명한 장소를 가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만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 결혼식 사회를 보기로 약속했던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세계여행, 손성곤, 인터뷰,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퇴사후세계여행,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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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성블 2018.03.13 16:38 신고

    와~ 생산적 백수가 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용기가 넘 멋지시네요^^

    REPLY / EDIT

    • 손성곤 2018.03.15 09:57 신고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떠난 어떤 사람도 이 과정이 없이는 회사 밖에서 설수 없을테니까요. 그런 과정과 생각 용기를 보여주는 인터뷰 입니다.

      감사합니다.

      EDIT

  • parisagain 2018.03.14 14:30 신고

    글을 읽어 보니 본인이 가장 많은 고민과 다짐이 필요했던 거 같군요. 그냥 멋지기만 했던 게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더 멋질 거 같아 부럽습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8.03.15 09:58 신고

      앞으로 더 많은 좌절과 고민이 있을듯 합니다. 그 과정을 이겨낼거라 싶습니다.

      EDIT

  • hksap 2018.03.15 09:29 신고

    길은 많다는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8.03.15 09:59 신고

      인터뷰시 나눈 이야기인데, <왜 꼭 직장인이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길을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나의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여는 그 과정을 걷는 것이 어려울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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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8_ 38세. 희망을 찾아 퇴사. 자영업을 발판으로 자기 사업에 도전하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10.25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소개를

올해 서른 여덟 살. 80년생.  커피숍을 하면서  제조업에 도전하는 ㅇㅇ 입니다.

 

▶ 학교, 회사 중심의 커리어는

서울안의  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학교 때부터 제조, 유통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입학 당시 면접에서도 제조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상품을 만들고 가치를 만들고 그 상품을 사람들이 구매하는 그런 과정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꼭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요즘은 공장이 많이 첨단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여서 IT 전산 쪽도 복수전공을 하고 학교 다니면서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다. 2005년에 아웃도어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나는 구매, 생산관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업 관리 업무를 시켰다. 당시만 해도 남자 사원도 적었다. 회사를 그만둘 당시 알게 된 건데 남자, 특히 상경계는 뽑아서 구매, 생산관리직을 시키면 일을 하다가 어느 정도 배우고 알게 되면 그만두고 나가서 자기가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영업관리를 계속 시켰던 것이었다.

 

▶ 왜 그만뒀나?

함께 일하는 직원 30명 중 나 혼자 남자였다. 여초 회사의 남자 혼자는 생각보다 힘들다. 상무, 전무 같은 임원들에게 대하는 것보다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 말 한마디라도 삐끗하면 도마에 올라 난도질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작은 부분 때문에 뒷말을 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있어서 힘들었다. ‘평생 사회 생활을 이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일년 다니고 회사를 나왔다.

 

▶ 그 이후에는 어떻게 했나?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궁극적인 꿈은 외국계 ㅇㅇ회사의 SI 컨설턴트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영학과 이었지만 웬만한 전산학과 출신 보다 더 자격증도 많이 땄었다. 그 회사는 신입을 안 뽑고 경력만 뽑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그 회사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어서 계속 지켜보다가 6년만에 신입을 뽑는다고 해서 신입으로 지원했다. 오래 기다렸던 꿈을 좇았던 것이다. 그 회사는 국내 유명 상위 대여섯 개 대학 이외에는 캠퍼스 리크루팅도 하지 않았다. 운이 좋게 서류에서 합격을 하고 최종면접까지 갔다. 아마도 면접 기간이 4개월은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 면접에 집단 토론을 했는데 거기에서도 잘 했다. 하지만 결과는 떨어졌다.

 

▶ 그럼 꿈을 접은 건가?

사회생활을 일년 정도 하고서 고민한 후 꿈을 좇는 것과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별개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꿈은 꿈으로 두고 사회생활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대단히 현실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ㅇㅇ 회사를 떨어진 이유 중 하나가 '뛰어나지 않은 서울의 중위권 대학교 출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당장 내가 넘을 수가 없었다.  꿈만 좇아가다가 계속 허송세월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회사에 취업을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 꿈 대신 선택한 다른 회사는 어땠나?

그 이후 국내에서 의류생산으로 유명한 회사에 입사를 했다. 이전에 해왔던 일이기에 적응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곳은 평균 퇴근 시간이 거짓말 안 보태고 아마 12시는 되었던 것 같다. 선배들은 한약 등의 약값으로 지출하는 돈이 많을 정도였다. 매일 야근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곳이었지만 그만큼 연봉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떠 안아야 할 책임도 엄청나게 큰 곳이었다. 그 곳에서는 내 개인의 삶은 포기하고 오로지 돈을 버는 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개인 생활이 아예 없고 나의 모든 24시간은 회사를 위해 써야 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여자 친구랑 데이트도 제대로 못했고 어쩌다 만나면 미안한 마음에 선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 생활을 5년 정도 했다.

 

▶ 결국 또 한번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5년 정도 내 삶이 사라진, 나는 없는 곳에서 일만 했다. 결혼도 안 했기 때문에 돈은 모았다. 하지만 팔팔한 30대 초반에 체력은 무너졌고 정신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그냥 힘들다고만 표현하고 있지만 당시는 더 이상은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5년이면 오래 버틴 거였다. 업무량이 너무 많았기에 배운 것도 엄청나게 많았다. 결국은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 하는 중에 헤드헌팅 연락을 받고 ㅇㅇ 회사의 의류사업부로 옮기게 되었다. 그 곳은 의류 소싱을 위해 전문가가 필요했고 나는 일 이외에 내 삶을 찾을 회사가 필요했다. 헤드헌터를 통해서 회사를 옮기고 한 일년 동안은 이전회사에 비해 편하기도 했고 보람도 있게 만족스럽게 일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이었나?

자신의 신념대로 일하고 행동했던 사람이었다. 남들이 내 일에 대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나의 신념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살리고 성장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다. 회사의 부속으로 그저 맡은 일만 하기 보다는 이 회사가 잘되는 방향에 대해 항상 고민했다. 그대로 안되면 좀 답답해 했다. 한국에는 의류 소싱으로는 세계적인 회사가 있는데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는 없다. 조금 아이러니였다. 나는 싸고 트랜디하고 좋은 옷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정책 등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회사 욕도 많이 했고 사람에게 불만도 많았다. 

 

그런데 이 신념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어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고집이나 아집 일 것이었다. 그리고 내 신념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 곳에서는 오래 일하지 못했던 것 같다.

 

▶ 마지막 회사는 ㅇㅇ회사의 의류사업부 였다. 마지막 회사를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를 옮길 때마다 명확한 목적과 이유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희망이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자 하려는 의지가 아예 사라질 것 같았다. ‘평생 일을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굳이 풀자면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사 때문에 나 인생의 열정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를 떠났다.

 

▶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면?

마지막으로 모셨던 부문장인 임원에게 기대가 매우 컸다. 의류 쪽에서 많은 경험이 있었던 전문가 였기에 그 사람이라면 나의 생각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옷을 싸게 만들어서 많이 팔고, 회사가 이윤을 남기려는 기본적인 생각과 다른 의사결정을 했다. 또 사람들의 안목이 나와 많이 달랐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실망감들이 쌓여 희망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소싱 전문가로 좋은 퀄리티 싼 가격의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방향은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제대로 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은 내가 바꿀 수가 없었다.

 







▶ 일반적인 직장인 이라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 회사에서 원하는 것이 다르다면, 짜증이 나더라도 회사가 원하는 방향대로 한다. 본인은 계속 자신이 끝까지 맞다고 생각하고 결국에는 회사를 때려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까 말한 것처럼 기대에 희망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왔다. 물론 그것이 외부 상황 때문에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얻는 이외에 성취감 같은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 버티기는 힘들었다.

예를 들어 통신회사에서 25년 동안 전파 쪽 개발 일을 하던 사람이 필요 없어졌다고 갑자기 지점으로 발령을 내서 영업을 시킬 수 도 있다. 월급은 똑같이 들어오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 그 사람을 내쫓기 위해 그런 것이지만 그런 사람은 대부분 그만둔다. 인간으로서 의미가 없고 나아가 삶의 의미까지 없어져 버리는 극심한 상실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회사 안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하면 월급은 나오고 시간은 가지만 내 인생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되는건 싫었다. 난 그것은 견딜 수 없었다.

 

▶ 회사의 생각과 개인의 생각이 100% 일치하는 곳은 원래 없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희망이 없다는 것은 참담한 것이다. 유통회사의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있었고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편하게 쇼핑을 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살 수 있게 만들까 하며 늘 이렇게 저렇게 노력하고 시도 하는 사람이 있다치자. 그래서 그는 빼빼로 과자로 로봇도 만들어 진열도 하고 자신의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정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회사에서는 전혀 알아봐 주지도 않고 갑자기 순전히 회사의 이익을 위해 물류창고의 재고 관리 업무로 보냈다고 하면 어떨까? 그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몰라주는 회사도 밉겠지만 더 큰 좌절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고 느낄 거다. 내 심정이 그랬다. 원래 회사는 개인의 생각을 믿어주지 않는 곳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면 회사 생활은 그저 돈을 버는 것 이외의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거다. 인생에서 가장 멋져야 할 삼십 대 중반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 자신의 만족 같은 성취감이 가장 중요한 건가?

맞다. 내가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 뿌듯함 일하면서 내가 살아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첫 직장을 선택할 때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이직을 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요소다.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아도 조금 월급이 낮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도 변하고 회사는 망하기도 하고 내 직업은 인공지능이 빼앗아 갈 수도 돈을 많이 벌 수도 못 벌 수도 있다. 그렇기에 최소한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면 자기 만족을 얻고 일을 하면서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의 기준이다.


▶ 그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그건 선택의 문제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누가 옳고 그른 건 아니다.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누군가는 빨간색을 좋아하는 거고 단지 나는 파란색을 좋아할 뿐인 거다. 회사가 더 나아질희망도 없고, 개인이 더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 다른 사람들 모두 그냥 버텨만 낸다. 하지만 그냥 월급은 나온다. 이게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오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다. 나와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일을 못하는 사람. 아니면 지 고집만 세고 남들과 함께 동화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회사를 나온 지금에서야 되돌아 보면 당시 나는 불만만 많고 시키는 대로 잘 안 하는 불량 사원이었을 수도 있다.

 

▶ 그럼 지금껏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뿌듯했던 경험을 하나만 말해달라

예전 의류 생산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외국의 한 브랜드를 맞았는데 새벽 2시 넘어서 바이어와 계속 실시간으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할 때 였다. 결국은 문제를 원만히 해결은 했는데 그 바이어가 니가 거기 회사 사장이니? 한국시간으로 새벽 아니니?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해?’ 라고 물었다. ‘나는 사장도 아니고 그냥 직원인데, 내가 맞은 브랜드가 좋은 상품을 생산하도록 돕는 일이 내 일이어서 열심히 하는 거야이런 이메일을 주고 받았었다. 그 바이어는 내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서 나 때문에 일이 잘 되어서 너무 고맙다.’ 라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회사를 나올 때까지 그 바이어는 여러 면에서 나를 도와 주었다. 열심히 일하고 인정을 받고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답답했던 순간은?

자기 일처럼 하지 않은 모든 순간이 그랬다. 상품의 원가를 낸 후, 상품이 입고되고 나서 사후원가는 따져보지도 않았다. 과연 내 사업이라면 돈이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빠져 나갔는지 당연히 따져볼 텐데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산을 해 보니 예상과 달리 돈이 어떻게 움직였구나라는 체크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런 모든 일들이 답답했다. 내 일이지만 남 일처럼 멀뚱멀뚱 관리도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일을 또 남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 넘기는 것은 특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고개만 쳐박고 전체 일이 아닌 코딱지 만한 부분만 하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 회사원으로 누구 밑에 있는게 잘 안 맞는 것 같다. 자신이 장(長)이어야 만족 하는거 같은데?

그런면이 있다. 정보가 임원에서 팀장에게 까지만 가는게 답답했다. 주체적으로 일하는 계획을 세우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그런게 없다가 갑자기 변화를 맞곤 했다. 실무자에게 많은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보의 제한, 피드백도 부족이 너무 싫었다. 그런 것이 있어야 같은 목표를 향해 사람들이 같이 갈 것 아닌가? 답답해서 정보를 늦게 준 팀장과 싸우는 일이 있었다. 사장이 100을 임원에게 말하면 필요한 50만 팀장에게 내려온다. 팀장은 직원들에게 20만 전달하고 실무자 대리는 5의 일만 한다. 난 다 알고 싶은데 말이다. 그리고는 그냥 너는 닥치고 5의 일만해라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정보가 내려오다 보면 왜곡되어서 실무자는 사장이 원하는 일과 다른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삽질의 과정이 너무 많았다.

 

▶ 내가 보기에 대기업이 아니라 조금 작은 회사가 본인과 맞는 것 같은데?

맞다. 조금 작은 규모라도 내가 모든걸 움켜쥐고 내가 계획을 세우고 일하는게 맞는 스타일 인것같다.

 

▶ 이직은 왜 하지 않았나?

회사를 나와서 8개월 동안 이런 저런 일과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든 생각은 나는 조직의 장으로 일해야 하지, 바보 같은 팀장 밑에서 일하는 건 못 견디는 스타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내 스타일 내 본성을 깨달은 것이 큰 수확이었다. 다른 회사도 대기업이었는데 그곳에 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움켜쥐고 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럴 바에는 내 개인이 하는 일을 만들어서 거기에 열정을 쏟아 부어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 회사에 있을 때 이렇게 할걸하는 후회는 없나?

회사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장단에 춤을 춰 줬어야 했다는 생각도 있긴 하다. 사실 그 당시에는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었다. 그냥 불평만 했다. 그래도 큰 후회는 없다. 다시 돌아가도 나의 본성이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대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부서의 장이 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의미는 없을 것 같다.

 






▶ 그런데 결국 퇴사하고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열었다. 좀 의외다.

우선 일단 당장 수익을 내야 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서 창업을 하는 것을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으로는 너무 리스크가 컸다. 그래서 ㅇㅇ 커피숍을 선택했다. 보통 창업을 하면 최초에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지 않으면 자괴감에 빠지고 맨탈이 무너진다. 그러면 자충수에 빠지는 행동을 하고 수익은 더 악화된다. 결국 폐업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커피숍이었다. 또 커피숍을 밑바탕에 안정적으로 깔고 그걸 바탕으로 내가 다른 일이나 사업을 할 때도 함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다른 요식업을 하면 수익은 더 클 수도 있겠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온전히 쏟아 부어야 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초보 창업자가 음식점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장이 온전히 신경을 안 쓰면 망한다.

 

▶ 또 커피숍은 다른 자신의 일을 위한 어떤 안정적인 보험 같은 건가?

그렇다. 그래서 내가 가져가는 것을 좀 줄이면서 직원의 안정화를 위해 시급을 좀 높게 주고 있다. 계속 원활하게 돌아가는 곳을 만들려고 했다.

 

▶ 어떻게 이걸 선택하게 되었는지 조그만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나의 선택 기준은 당장 수익, 적은 리스크, 안정적 오토화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자영업 폐업률이 90%라고 하는데 3년 동안 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10%만 성공,아니 살아 남는 다는 것이 느껴진다. ‘고작 프렌차이즈 커피숍 할라고 회사를 떠났나?’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커피숍은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면서 내가 당장 수익을 내는 소중한 일터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과 시간으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ㅇㅇ커피 프렌차이즈다. 내가 조사한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쭈욱 엑셀에 기입해 보았다. 대형 커피숍과는 다르게 가성비 좋은 중저가로 인식되어 있고, 또 저가 커피의 레드오션에 휘말리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객들에 대한 인지 (Perception)이 좋은 곳을 골랐다.

 

▶ 어떤가?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돈은 벌고 있나?

당시 비슷한 시기에 교육을 받고 창업을 한 곳에 28곳이었는데 그 중에서는 가장 잘된다.

 

▶ 창업과정을 좀 알려달라.

창업 박람회, 전시회 프렌차이즈 본사도 찾아가서 설명도 들었다. 최대한 많은 인풋을 받았다. 위에서 말한 3가지 기준 중 적은 리스크, 당장 수익을 기준으로 찾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완전 새로운 장소에 인테리어도 다 해서 들어가는 생판 창업을 리스크가 너무 컷다. 현재 운영중인 곳 중에 인수해서 할 만한 곳을 중점적으로 찾았다. 그런 매물을 찾는 건 개인이 어려웠다. 그래서 창업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았다. 현재 운영하는 사장들이 가게를 넘길 때는 창업컨설턴트에게 매물을 내 놓기 때문이다. 그냥 부동산에 집 내 놓는 거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6개월 동안 계속 찾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딱 봤을 때 내가 하면 현재보다 더 나아질 만한 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지금의 이곳이었다. 사람적인 이유로 전 사장이 일을 접고 싶어 했고 관리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조금 낡고 먼지도 낀 그런 매장 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맘에 들었다.

 

▶ 원래 있던 곳을 양수 받아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계속 말하지만 리스크 헤징과 당장 수익이라는 대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양수를 받을 가게를 찾는 사람은 이 매장 깨끗하고 잘 되어있고 너무 좋아. 왠지 장사가 잘 될 것 같아.’ 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매장이 되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되고 낡아가기 시작한다. 그걸 생각을 별로 안 한다. 차라리 지금은 잘 안되지만 입지 조건만 나쁘지 않다면 고쳐 나가면 매출도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의 매출도 투명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이었다.

 

▶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불안이다. 나는 내 모든걸 쏟아 부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완전히 모르는 일, 그리고 시장에 대한 불안함은 늘 있었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면 세상 모든 자영업이 다 잘 될 거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새벽 2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도 한 6개월 동안은 잠을 잘 못 잤다.  게다가 한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가 힘들 거라는 불안도 있었다. 그 불안은 직장인일 때 월요병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불안하고 엄청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보니 불안을 잊기 위해서 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한 것 같다.

 

▶ 일과는 어떤가? 

양수를 받고 한 3개월 동안을 아침에는 영업을 하고 밤에 문닫고는 매장을 고쳤다. 직접 페인트도 칠하고 자재도 사서 새롭게 만들었다. 일을 배워야 했고 그리고 점심 시간에 손님이 많기에 점심도 거르고 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자연스러운 일일 일식과 육체노동으로 살도 빠졌다.

 

▶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언가? 커피숍으로 먹고 살려고 퇴사한 건 아니지 않나?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일하고 싶다. 조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생각보다 그저 회사에 맞춰가면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의욕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른 형태의 제대로 된 카페를 만들고 싶다. 일을 하면서 뿌듯해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멋진 카페를 만들고 싶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소중하다. 아직 결혼을 안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 3년 동안 운영을 하면서 계속 카페에 대한 시장조사를 했다. 일단은 1년 정도 더 현재의 카페를 잘 운영하고 좋은 직원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서 안정이 되면 내가 원하는 사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카페시장의 경쟁은 점점 심해질 거고 월세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월세 계약이 끝나면 나가야 할 수도 있다. 리스크를 줄여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사실 지금도 준비중이다.

 

▶ 커피숍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하고픈 말은?

글쎄. 이제 3년차가 되었는데 무슨 말을 해 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한다면 자신의 촉을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완전 다른 일을 하다가 카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무슨 촉이 있겠느냐? 차라리 데이터를 믿는게 낫다. 회사에서도 매일 매출 숫자로 말하지 않나? 나도 그래서 일부러 매출 데이터가 있는 곳을 양수 받았다. 한국처럼 한번 망하면 재기하기 힘든 곳에서 사업에 운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는 것 믿지 말아야 한다. 

 








▶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당신에게 남은 것은?

사람이 가장 크다. 일에 대한 스킬 이나 지식보다는 그게 더 많다. 인간관계를 넓히려고 억지로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런 인위적인 관계는 오래 갈 수가 없다. 나의 열정과 생각을 이해해 준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연락을 하고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한다. 사실 업무적 지식은 회사를 떠나서 일년만 지나도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 같다.

 

▶ 회사를 떠난 이후에 배운 것은?

배운 것, 생각만 한 것,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모두 다는 거다. 회사 밖을 나와서 3년동안 가장 크게 배운 건 그거다. 삶 전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넓어진 것 같다. 회사 안에서는 비슷한 학식의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생각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회사를 나와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부류의 인간들도 많았고 그 사람들을 겪으면서 내 시각 전체가 넓어진 것 같다. 인터뷰 한다고 해서 당신이 쓴 나는 무적의 회사원도 읽어 봤는데 거기 마지막 장에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회사 밖의 사람을 만나라라는 말을 3년만에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이 되기도 하더라. 회사를 떠나고서 만난 사람들에게 쉽게 모든걸 오픈 하지는 않는다. 사기꾼도 발에 채일 정도기 때문이다.

 

▶ 회사를 떠나기를 잘했다. 퇴사하기를 잘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순간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많다. 한적한 오후를 보낼 때, 혼자 여행할 때, 내가 하기 싫은 일 안 해도 될 때, 월요일 아침에 스트레스 안받을 때 등등이다. 그런데 이런 건 아주 지극히 파편적인 일부다. 그냥 젊은 친구들이 카드뉴스나 만들고 미디어에서 짧은 인터뷰 할 때, 술자리에서 친구들한테나 하는 말일 뿐이다. 퇴사학교라는 곳이 생겨서 들어가 보고 실제로 한번 모임에 참석도 해 봤는데, 방금 말한 그런 짧은 단편적이고 감성적인 것들만 있었다. 이미 떠난 입장에서 보면 매우 별로 였다. 그런 걸로 비즈니스 모델을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총론적으로 볼 때 퇴사하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은 없다. 회사를 떠나서는 더 싫은 인간 더 미친 인간이 많았다. 그나마 회사는 면접을 거쳐서 한번은 걸러진 상태기 때문에 조금 낫다. 진짜다. 그리고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하기 싫은 일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어느 정도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 까지는 그래야 하는 것 같다. 그게 현실이다.

 

▶ 지금은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건가?

아주 초기 단계라 뭐라 말하기는 힘들다. 배운게 도둑질 이라고 10년간 해왔던 일을 내 사업으로 하려고 준비 중이다. 의류 제조업을 생각 중이고 행동으로 준비 하고 있다.

산업의 큰 그림부터 생각하고 있다. 우선 미국 시장을 보면 아마존이 식품부터 의류까지 시장을 정말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있다. 기존 질서와 유통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온라인을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조금 멀리 보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 세상이었다. 처음에는 중국 상품을 저가의 허접한 거라고 무시 했지만 지금의 중국산은 소싱하는 입장에서 보면 고급상품이다. 그리고 환경도 변해서 중국도 쉽지 않다. 베트남도 오랫동안 보고 있었는데 봉제로 베트남을 들어가기에는 조금 늦었다. 중국보다 더 빨리 현대화 될 거고 곧 포화가 될 거다. 그래서 동남아의 더 미 개발 국가를 통해 상품을 만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를 생각한 거다. 물론 10년까지 버티면 되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을것 같다.

 

▶ 벌써 나이가 38살이다. 도전하기에 늦지 않았나?

맞다. 늦었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또 일년이 늦어지게 되고 3년 후면 또 3년이 늦어지는 거다.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하다면 지금 하면 되는거 같다. 그나마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해서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나. 아직 결혼도 안 했고 나이도 적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는 큰 시도라고 생각한다. 카페를 했을 때처럼 다시 바 쏟아 부어 볼꺼다.  여기서 실패하면 결혼도 못 할거 같다. ^^

 

▶ 지금 어떤 단계인가?

함께 할 사람은 찾았고 돈은 그 동안 10년 동안 월급 저축한 것 그리고 카페를 통해서 버는 것으로 준비했다. 생각보다 돈이 너무 너무 많이 나간다. 움직이기만 해도 돈이다. 치기만 해도 돈이다. 욕나올 것 같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리고 회사에서 10년 일했지만 이 바닥의 디테일한 부분들은 잘 몰랐던 것 같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오래 일해도 전체의 일부만 본다. 분명 모르는 부분이 더 크다. 계속 부딪히면서 실행하고 있다.

 

▶ 계속해서 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나?

궁극적인 것을 쫒는 것 같다. 내가 회사에서 어찌 보면 외골수에 자기 고집이 있는 답답한 놈이 었던 이유는 내 소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신과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사업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의 접점이 이 새로운 사업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한 3년정도 후에 사업이 잘 되면 한번 더 연락을 드리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회사를 떠나서 지금 이렇게 도전하는 단계까지 온 것은 운이 좋아서 였다. 만약에 카페가 망했다면 나는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운은 그저 운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하나의 기운 같다. 그 기운이 나를 살려준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명확히 알면 좋겠다. 대부분은 자신을 잘 모르고 또 잘 안다고 생각해도 완전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또 다른 자신이 튀어나온다. 신문기사 가십거리 보는 것 보다 자신을 알아가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쓰면 좋겠다. 내가 뭘 알고 뭘 모르고, 뭘 잘하는지에 대해 아는 메타 인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혹은 이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성향이라도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남이 보는 나 말고 최소한 내가 보는 나의 성향이라도 알면 좋겠다. 회사에서 자신을 잘 관찰하면 좋겠다. 내가 일을 끝내는데 집착하지 않고 그냥 그냥 월급 받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면 계속 망설이다가 회사를 떠나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나를 납득할 수 있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가 책임 질 자신만 있다면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뭐라도 행동했으면 좋겠다.






▶ 철저히 회사의 측면에서 볼 때 그는 회사에서 원하는, 필요로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자신의 주관이 명확했고, 자신이 일을 모두 쥐고 일하고 싶어했다. 책임을 지고 싶어 했고, 원칙에 맞게 일하고 싶어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일부는 부딪혔을 수도 있다. 그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총론적으로 볼 때 퇴사하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은 없다회사를 떠나서는 더 싫은 인간 더 미친 인간이 많았다그나마 회사는 면접을 거쳐서 한번은 걸러진 상태기 때문에 조금 낫다진짜다그리고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하기 싫은 일도 많이 해야 한다내가 어느 정도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 까지는 그래야 하는 것 같다그게 현실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힘들지만 명확히 원하는 모습을 향해 걸어가는 그를 응원한다.  3년 후, 그를 다시 만나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그는 명확한 방향성과 목표를  가지고 떠났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연구소 :: 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 손성곤이 인터뷰 함.

Tags : 인터뷰, 퇴사, 퇴사자인터뷰, 회떠사,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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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객 2018.01.23 09:57 신고

    38살의 도전,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님의 주체적인 삶의 결정에 응원을 보내고 싶군요.
    저는 지금 50살에 막 도달한 사람입니다. 일찍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살다보니 가족의 생존을 위해 지금까지 조직이 바라는 전형적인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 회사인으로써의 내 유통기한이 이제 거의 끝에 와 있는 지금,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가족의 기둥으로 잘 버텼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많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 원하는 것은 철저히 포기하고 살았지요. 지금까지가 수입, 조직구성원 측면에서 내 인생의 정점이었다면, 남은 10년은 조용한 출구전략이 필요한 시점이겠지요. 평생을 월급을 받고 살아온 인생으로써 불행히도 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야 할지 계획도 실천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님은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님이 뜻한 바 그대로 인생을 치열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8.01.28 18:15 신고

      과객님의 경험에서 우러난 진정성 있는 응원 감사합니다. 저도 직장인으로서의 유통기한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개인이 선택한 삶에는 모두 장단점이 있는듯 합니다.

      38살이면 누군가에게는 이미 많은 나이일 수 있는데 또 누군가에게는 아직 괜찮은 나이라는 다른 관점을 얻게 됩니다. 인터뷰 하신 분도 이 글을 보고 힘을 얻을 것 입니다. 감사합니다.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27_ 박사, 팀장, 교수를 버리고 일인 기업이 된 사람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8.25 08:06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조직이 주는 타이틀을 버리고 홀로선 남자




▶ 중요한 질문이다얼마나 벌고 있나?

매달 일정하지는 않지만 회사에 있을 때보다는 많이 벌고 있다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2년 넘게 1인 기업가로 활동을 하다보니 수입에 대해 여러 개의 낚시대를 드리울 수 있게 되었다단기적인 강연이나 일 년 계약의 자문으로 월급처럼 들어오는 등 다양한 수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고 있다.


 

▶ 1인 기업가로서의 고민은?

단기적 수익과 장기적 생존에 대한 균형이 가장 큰 고민이다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다예를 들어단기적으로 들어오는 강연 요청을 모두 수락하면 수익은 날 것이다이렇게 당장 내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하지만 지나치면 내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여력은 줄어든다또 반대로 너무 장기적인 발전에만 몰두하면 당장 내일 굶어 죽을 수도 있다이 사이의 균형을 잡기가 지금도 쉽지 않다최근에는 강연은 최대한 줄이고 딥러닝이라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꼭 필요한 공부인데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부분이어서 한 달 동안은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갖고 있다.

 

또한 시장의 불확실성과 빠른 변화는 예측이 쉽지는 않다는 점도 고민이다내가 공부하는 속도와 양보다 기술 발전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기술의 발전 추이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최근의 빠른 기술 발전의 위력을 안다최근 어느 정부기관에서 자문이 왔다. ‘2030년 한국의 헬스케어 산업의 예측을 원했는데 나는 내 능력 밖이라고 말씀드리며 정중히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당장 5년 뒤의 예측도 어려운 시대다.

 

▶ 1인 기업은 교육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형식의 문제보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나는 지식 소매상으로 자문강연집필 등의 일을 한다이런 형태가 전문가 개인으로서 접근하기 쉬운 일이고수입과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다른 형태의 제조업유통업 분야의 1인 기업도 있을 수 있겠지만하지만 혼자서 하기에는 활동의 폭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 내 인생의 주도권과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조직의 단점인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형식과 카테고리는 크게 중요치 않은 것 같다.


 

▶ 무식한 질문이다헬스케어 분야의 1인 기업가면 하얀 가운을 입고 스포이드랑 현미경을 들고 연구하는 것을 처음에는 생각했다어떤 연구를 하는 건가?

실제로 대학원생 때부터 연구소에 있을 때까지 그렇게 연구해왔다그렇게 연구하는 것은 다소 좁은 의미에서의 연구로 보통 결과물로 논문이 나온다지금 나는 논문을 쓰는 연구는 하지 않는다마치 유시민 작가가 말한 지식소매상과 같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산업 트렌드에 대해 공부연구한다그것을 융합해서 새로운 통찰력을 만들어내고방향을 제시하며새로운 스타트업을 육성하기도 한다이러한 것들이 내가 1인 연구소로서 하고 있는 연구 활동이다.

 


▶ 누군가가 삐딱한 시선으로 그럼 너는 직접 연구하고 생산해 내는것이 없지 않냐남이 연구한 거 짜깁기 하는거 아니냐?’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언급했던 지식소매상이라는 일 자체가 기존에 있는 것을 융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중에서 내가 처음 만들어낸 지식은 엄밀히 말해서 거의 없다하지만 그것이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경계를 정하지 않고 배우고 공부한다그래서 스페셜리스트이자 제네럴리스트다미국의 어떤 교수가 연구해서 발견해 낸 것과 완전히 다른 분야의 결과물을 보고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일이다상관 없는 점들을 이어가는 것 (connecting the dots)이다인공지능과 의학을 연계하여 의료인공지능에 대해 공부를 하고웨어러블 디바이스와 UX디자인보험 산업을 연계한 새로운 사업모델의 사례를 공부하는 식이다이는 특정 조직에서 정해진 직무를 가지고 있다면 하기 어려운 역할이다새로운 것들을 함께 공부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길 위에 있다고 이해해 달라.

 

 

▶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라는 책을 썼다소개해 달라.

회사를 떠나 1인 기업으로 두 발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엮은 것이다지난 1년 반 동안 브런치에 연재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글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나?

퇴사하여 1인 기업을 준비하는 사람이제 막 1인 기업을 시작한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조금 범위를 넓히면 직장인 중에서 회사에서 이렇게 일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나?”라는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겠다.

 

▶ 다른 1인 기업가 관련 책과 다른 점은 뭔가왜 이 책을 읽어봐야 하나?

내가 1인 기업으로 왜 독립했는지그런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준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 있다나는 1인 기업이 단순히 일을 하는 방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인생을 살아가는 철학과 태도라고 생각한다책에는 개인 브랜딩이나 강연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실무적인 노하우도 담겨 있다하지만 이런 스킬에 그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1인 기업가로서의 일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또한 내가 1인 기업의 철학을 만들고 독립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받은 책들도 소개했다1인 기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일인기업의 준비, 스킬 뿐 아니라 태도, 마음가짐까지 볼 수 있는 책이다. 

나도 읽어 봤다. 추천한다. 





▶ 이 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언가세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

1. 일은 매우 숭고한 것이다하지만 조직 속에서 남들과 똑같이 일하는 것 외에도 대안은 있다.

2. 독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3.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 책에 “본질” 이라는 단어가 꽤 많이 나온다자신이 신봉하는 하나의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본인의 삶의 모토에 대해 묻고 싶다.

아주 크게 보면 나로 인해 세상 한 부분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그러한 과정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사실 의료헬스케어 분야를 선택한 것도 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디지털 기술과 의료의 융합을 통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사실 이 소망은 의료와 헬스케어 분야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외과의사는 수술을 통해서제약사 연구원이라면 신약의 개발을 통해서헬스 트레이너라면 운동 코칭을 통해서 이를 추구할 것이다나도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


 

▶ 뭔가 Well Organized된 사람이고 그런 하루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하루의 일반적인 루틴은 어떤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9시는 되야 일어난다일어나면 세수하고 커피 한잔 집어들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오후 1시 정도에 점심 먹으러 갈 때까지 계속 일한다혼자 식당에 가면 눈치 주거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점심을 조금 늦게 먹는다점심 먹고 오면 또 논문 읽고 해외 기사 읽고 글 쓰면서 또 일한다그냥 일일이다사실 나는 일 중독자에 가깝다.

저녁 6시 정도까지 일하고저녁 먹고 운동 간다주로 주짓수나 헬스를 한다.  헬스는 15년차주짓수는 8년차다내가 저녁형 인간인 것은 주로 운동을 밤에 하기 때문이다운동 후에 새벽 2시쯤 잠자리에 든다나름대로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건강 관리도 철저하게 하려고 한다대기업과 달리 1인 기업은 안전망이 없다병가도 낼 수 없다나 자신이 기업이니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회사 전체가 멈추는 것과 마찬가지다.

 


▶ 아침에 일어나 몸이 두 개로 분리 돼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다시 합쳐지는 능력이 생겼다고 치자그렇게 10년 동안 살 수 있다면 새로 생긴 몸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재미있는 질문이다. 내가 한 명 더 있으면 옆에 앉혀 놓고 함께 일하고 싶다두 배로 더 공부하고 연구하니 생산성을 두 배로 높일 수 있어서 매우 좋을 것 같다지금도 공부하고 연구할 것이 너무 많아서 벅찬 탓에실제로 하루가 48시간이 되거나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혹은 한 명은 장기적 목표를 위해서 연구만 하고다른 한 명은 단기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 강의나 외부 활동을 하는 식으로 분업할 수도 있겠다지금 실제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 최윤섭이라는 이름은 업계에서 어느 정도 급인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고 또 조심스럽다하지만 1인 기업이니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는 있어야 한다남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헬스케어에 대해 검색 하다보면 결국에는 최박사님 블로그로 귀결된다’, 혹은 ‘S전자 헬스케어 사업부에 책상마다 최박사님 책이 꽂혀 있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 불확실성이란 측면에서 개인과 기업 어느 쪽이 나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준비된 1인 기업이라면 개인 쪽이 조금 나을 것 같다너무 빨리 변화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조직에서 특정 역할을 맡고 연간 목표를 세워놓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조직의 유연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그 측면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에 속한 개인이 가장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조직 속의 개인도 1인 기업의 유연함과 민첩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 4차 산업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된다개인적으로 그런 큰 변화는 역사적 관점에서 지나고 나서 그 후에 평가하고 명명하는게 맞는다고 생각한다분야는 다르지만 박사님 관점에서 의견을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4차산업 혁명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한국에서 정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단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외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기도 하다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의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다만 변화가 아주 크고 엄청난 속도로 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지난 10년 간의 변화도 매우 컸지만앞으로 다가올 십 년 동안의 변화는 지난 1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광범위할 것이다나는 이를 쓰나미에 비유하곤 한다.


 

▶ 이런 엄청나고 빠른 변화가 35세 평범한 직장인에게 어떤 분야에서 큰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나?

내 분야가 아니라 정확한 답을 할 만큼 전문적이지는 않다하지만 헬스케어 분야에 국한되어 이야기한다면 인공지능이 가장 임팩트가 클 것 같다단순하고 기계적인 반복 업무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또 사라지고 있었다인공지능이 인간 전문가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현재 100명이 하는 일을 10명이 할 수 있게 된다면 큰 변화의 촉매가 될 것이다지금과는 인간 전문가들의 크게 역할이 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이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이 준 타이틀을 벗고 스스로 홀로선 헬스케어 분야의 일인 기업가 최윤섭

이 글을 누르면 그의 데이터 뱅크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이 나온다.





▶ 회사를 떠나서 책을 쓰고 1인 기업이 되고 인생이 바뀌고 자유인이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꿈을 쫓아 1인 기업이 되려고 하는 대학생직장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1인 기업이라는 형태는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형식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누군가에게는 조직에 남아서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에 더 잘 맞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자율적인 삶의 태도를 선택하려는 사람에게는 도전해볼만한 형태의 일이라고 본다이를 위해서는 전문성브랜드수익모델 등에 대해 가설을 충분히 검증한 뒤에 독립하여 1인 기업에 뛰어드는 것이 맞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 1인 기업으로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진짜 삶을 한번 보는 것이다. 내 책을 읽어도 좋고, 1인 기업 팟캐스트를 듣거나, 관련 모임에 나가봐도 된다. 1인 기업은 단순히 일을 하는 방식이라기 보다는삶을 살아가는 태도이자 철학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수입자유 등의 단적인 측면만 보고 독립하면 낭패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외적인 측면보다는 실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 요즘 학생들은 조금 더 취업이 쉽고 돈을 벌기 쉽고 사회적 시선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직업을 택하려고 한다대학생들에게 선배로서 인생의 방향성 등에 대해서 한마디 조언을 해 준다면?

자신의 가치관이 정말로 그러하다면 그렇게 선택해도 된다그런데 그 가치관이 정말로 내가 원하고 있는 근본적인 것인지부모님이나 사회상 등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학생 때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 없이 던져야 한다이 질문에 솔직하지 않거나질문을 건너 뛰거나답 없이 사회로 나오면 결국 방황하게 된다.

 

이는 학생들 탓만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요즘 취업이 너무 안 되어서 고민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한 답 없이는 힘들여 취업하더라도 사상누각인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통계를 보면 대기업 신입사원 중에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남들이 다 가는 길이라고 하더라도이 길이 나에게도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 조직에 속한 사람으로서 일했던 것의 점수는?

상사나 함께 일하는 팀원에 따라서 달라졌던 것 같다존경할 수 있는 상사 아래에 있을 때는 80점 이상이었다인간적으로실력적으로도 존경하지 못하는 상사나 교수님 아래에 있을 때는 10점 이하였다이 때는 정말로 출근하기가 너무 싫었다전문가로서나 인간적으로 존중 받지 못하고 나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했던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조직에서 내가 상사나 팀원교수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택 불가능성에도 오는 비본질적인 일의 폭풍 때문에 점수가 낮을 수 밖에 없다퇴사할 때 흔히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사를 떠나는 것이다.’ 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 1인 기업으로 일하는 것의 만족도를 점수로 나타낸다면?

90점 정도 주겠다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조직에서 일할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가장 좋은 점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 5년후 모습을 한 장의 사진처럼 그려본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5년 뒤에도 지속하고 있으면 좋겠다지금과 똑같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전파하면서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내고 싶다그렇게 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인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이 결국 지속가능성이다.


 

▶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연구소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본인 삶의 의미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란다다른 사람 모두가 택한 삶이라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 이유는 없다지도 밖에도 길은 얼마든지 있다책에서는 1인 기업을 강조했지만모두가 반드시 이런 형태의 삶을 택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내 삶의 방향성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한 후에 나온 결론이라면 어떤 형태로 일하든지 상관 없을 것 같다나에게는 그 답이 1인 기업이었을 뿐이다부디 자신만의 길을 찾으시고그 길을 용기 있게 걸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란다.

 

 

 


 

▶    5년 후에도 지금처럼 살고 싶다는 사람은 태어나 처음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5년후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던가 혹은 막연하게 말한다아주 소수만 명확한 모습을 말한다그는 스스로 방향을 명확히 하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지금이 행복한 모양이다지금 행복한 공부와 본질적인 일을 하고 있고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또 그는 본질’, ‘의미’, ‘방향성’ 그리고 과정 중에 있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말은 사람의 가치를 드러낸다.  짧은 인터뷰에서 실마리를 찾았다면 그의 책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를 읽어보기 바란다. 1인 기업관련 책 중에서 한 권만 고른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괄목할 만큼 좋고 무엇보다 진실된 책이다. 5년 후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지금처럼 일하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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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7_ 박사, 팀장, 교수를 버리고 일인 기업이 된 사람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8.24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연구하는 1인 연구소,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최윤섭 소장입니다.

 

▶ 회사 (연구소) 중심의 커리어는?

포항공대 01학번으로 컴퓨터공학 그리고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했다. 생명과학이라는 주제에 대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생물정보학분야가 전공이다. 2006년에 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생활 중에 스탠포드 대학에 잠시 방문 연구도 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서울의대 암 연구소에서 연구조교수로 3년 가량 일했다. 그 후 KT 종합기술원 헬스케어 팀장으로 2년 정도 일했다. 마지막 직장은 짧았지만 서울대병원에서의 연구조교수로 있었던 것이다.

  

▶ 포항공대 나온 사람 처음 본다. 공부를 잘했나?

서른 여섯 되어서 공부 이야기를 하니까 좀 그렇다. 고등학교 때는 그럭저럭 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교에 가보니 어마어마한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 의대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은 무언가? 월급을 받는 건가?

그렇다. 교수 타이틀이 있는 연구원이라고 보면 된다. 월급을 받는다.

 

▶ KT 종합기술원 헬스케어 팀장으로 일한 것이 유일한 사기업인가?

맞다. 서울의대에서 연구 중일 당시 KT에서 신사업을 준비하는데 IT와 헬스케어에 모두 전문가인 사람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연구소를 벗어나서 산업계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고민하고 있었던 차에 팀까지 만들어 준다고 해서 이직을 결심했다. 중간 관리자로서 리더십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우리 팀의 목표는 나중에 사업화가 될 연구, 쉽게 말해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삼십 대 초반의 최연소 팀장이었다.

 

▶ 결국 2년도 안 되어 그만 두었다. 왜 인가?

처음에는 팀 인력도 뽑아주고 연구비도 지원해준다는 등 여러 지원을 약속했지만 결국에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회장이 바뀌면서 많은 조직을 갈아 엎어버렸다. 그 와중에 팀이 없어지고 나는 다른 신사업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의 팀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어려웠고, 내가 팀원들과 세웠던 목표와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높은 분의 말 한마디에 조직에 평지풍파가 이는 것을 보면서 쓴맛을 봤다. 그 후 다시 서울대병원에서 제안이 와서 가게 되었다.

 


▶ 서울대병원 생활이 길지 않았다.

4개월 정도 있었다. 당시 맡았던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당시 내가 맡았던 단순 업무의 대부분은 솔직히 고등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잡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알고 보니 잡무가 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실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아닌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대우받기가 매우 어렵다. 기업에서도 병원에서도 나는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의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당시 병원 안에서는 인정을 못 받았지만, 밖에서는 전문가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조직 내부와 외부의 괴리가 커지자 결국 조직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 업계에서 최윤섭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전문가로 알리기 시작했나?

KT 근무 이전인 2014년부터 시작했던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블로그 때문이었다. 특별한 목적 없이재미있게 공부한 것을 글로 남기고 공유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공부하고 배운 것을 꾸준히 글로 정리하다보니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에 이 글을 책으로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내 이름이 알려졌던 것 같다. 출판사에서 먼저 출판하자고 연락이 왔지만, 나는 이미 블로그에 공개된 글을 책으로 만든다고 누가 사서 읽을까?’ 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 인생을 바꿔준 기폭제였다. 정부, 학교, 회사, 병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반향이 있었다. 전문적인 소재를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게 쓴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 내 기억으론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헬스케어 분야를 선택했다는 기사가 그때쯤 나온 것 같다.

맞다. 그런 분위기에서 운 좋게 내 책이 나온 것이다. 헬스케어 분야가 각광받을 것을 예상하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는데 타이밍이 좋았다. 계속 공부하고 일하면서 흥미있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쌓아갔더니, 그게 시대의 흐름과 맞아 떨어지면서 전문성의 가치가 올라갔던 것 같다. 나중에 다양한 기업에 강의를 하기도 했고, 삼성 계열사에서도 많이 불러주셨다. 한동안 삼성에서 승진하시는 분들은 인재개발원에서 거의 내 강의를 들었다.

 


▶ 대학 학과를 선택할 때 헬스케어 분야는 그다지 인기가 없지 않았나?

당시는 닷컴 버블이 터졌고 병역특례도 없앤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그저 내 흥미를 보고 학과를 선택했었다. 후배들에게도 당시의 트렌드 보다는 자신의 흥미와 원하는 가치를 따라서 전공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선택 기준이라고 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컴퓨터 공학자가 되는게 막연하긴 했지만 꿈이었다. 그렇게 컴공과에 들어와 보니 적성에 아주 안 맞지도 않았지만, 100% 맞지도 않았다.

 

▶ 복수전공을 한데는 이유가 있었나?

표면적인 이유는 두 가지 이상의 분야를 전공하여 배우고 융합적인 인사이트를 끌어내고 싶었다.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는 컴퓨터공학만 전공해서는 경쟁력이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포항공대에는 과학고등학교 나와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친구들이 부지기 수였다. 그들과 똑같이 코딩만 해서는 경쟁이 어려울 것 같았때문에 나만의 유니크한 전문성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고민 끝에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조합으로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다.


 

▶ 국내 최고의 공대를 나왔다. 박사까지 한 이유는?

나만의 전문분야를 꼭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학부에 있을 때부터 박사까지 하려고 마음을 정했었다. 후배들이 박사과정 관련해서 물어보면 답은 하나다. 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일에 박사라는 학위를 통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해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직접 필드에서 경험을 쌓으라고 말한다. 생 학문을 할 것이 아니라면, 박사 학위는 일종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박사를 따려면 최소 5-6년은 기본이니, 기회비용이 매우 크다. 그렇기에 더더욱 반드시 학위가 필요한 사람만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면 좋겠다. 그렇게 시작하더라도 학위 과정을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또한 현실적으로 박사학위가 취업에 꼭 유리한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도 포지션에 맞는 경력을 원한다. 자리에 맞지 않게 너무 스펙만 높으면 회사에서 부담스러워한다.


 

▶ 스펙이 너무 좋다. 좋은 대학, 박사, 작가, 1인 기업, 또 잘생겼다. 엄친아다.

스펙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요즘 말로 현실은 시궁창이다. 1인 기업으로 독립하면 무제한의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그 대가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헤엄쳐 살아남아야 한다. 축복이자 저주다. 겉으로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살아남기 위해 매일 끊임 없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왜 회사를 그만두었나?

내적인 이유와 외적인 이유가 있었다. 내적인 이유는 조직 속에서 일하는 방식에 의문과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형식, 허례 허식, 조직 구조 등의 비본질적인 부분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정작 본질적인 일은 등한시하는 것이 한국의 조직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루 종일 비본질적인 잡일만 하다가 업무 시간을 다 보내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날이면 정말 기분이 뭐 같았다. 나는 내 한 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비본질적인 일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외적인 이유는 내가 조직 내에서보다 조직 밖에서 전문가로서 더 인정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나 출판했던 책, SNS에서의 활동들이 기반이 되었고, 조직 속에서의 나보다 조직 밖에서의 나의 존재감이 커졌다. 회사에서는 조직 개편으로 팀이 공중분해되고, 최고 전문가를 모셔왔더니 인사팀에서 퇴짜를 놓았다. 병원에서는 고등학교 나온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잡일을 하고 있었지만, 조직 밖에서는 시장에서 나만이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커져갔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내려야 할 선택은 명확해 보였다.

 


▶ 1인 기업가가 되기 위해 회사 안에서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나도 조직 밖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보았다. 하지만 홀로서기에 대한 100% 확신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네 가지 정도를 준비했던 것 같다. <전문성 / 브랜드 / 네트워크 / 수익모델>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전문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전문성을 갖추게 되면 나머지 세 가지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수 있다.


 

▶ , 지금은 나가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언제 굳혔나?

위에서 말한 것 중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수익모델에 대한 확신이다. 수익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통장에 찍히는 돈이 최소 얼마 이상 이라고 정량적으로 정하거나, ‘현재 몇 %의 노력으로 얼마를 벌 수 있으니 전업으로 하게 되면 얼마가 가능하겠구나 라고 예측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의 경우는 우선 나 혼자 한달 동안 먹고 살려면 얼마가 필요한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회사 이외에 주말 강연 및 인세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혼자 먹고 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굶어 죽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때 나왔다. 그 기준은 개인별로 각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


 

▶ 네트워크는 어떤가? 연구원으로 있다 보니 학회나 세미나 등의 모임을 통해서 생긴 거 아닌가?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함께 일하며 생기는 타이트한 인적 고리뿐 아니라, 느슨한 여러 가지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개인의 힘이 어느 때보다 가장 큰 시기라고 생각한다. SNS나 블로그 등 IT 인프라를 기반으로 개인도 얼마든지 무한대의 연결을 만들 수 있다.

나는 블로그를 기반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슬라이드 쉐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10년전에 이런 일을 하려고 했다면 작은 회사 하나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만 노력하면 거의 모든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전달 할 수 있다. 내가 올려놓은 영어 자료를 보고 심지어 외국에서도 연락이 오기도 한다. 이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면 누구나 자신의 전문성을 전파할 수 있다.

네트워킹의 핵심은 내가 누군가를 찾아가서 만나는 것보다, 내가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찾게끔 만드는 것이 최고의 네트워킹 전략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키맨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안다. 내가 당장 키맨이 될 수 없다면, 키맨이 나라는 사람의 전문성과 강점을 알고, 3자에게 소개해줄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네트워킹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 본인은 전문가고 박사다. 하지만 주위에는 전문성을 갖추기 힘든 아주 General한 일을 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가치와 그에 맞는 업무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문성은 그 다음이다. 거기에 맞게 전략적으로 일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직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자신이 더 확대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회사에서 내가 원하는 전문성을 발전시킬 수 없고, 그저 회사의 필요에 의해 커리어가 표류한다면 적극적으로 다른 일을 모색해보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 회사를 나가기 전 2년 정도는 주말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했다. 스스로 공부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해외 연구 결과를 공부했다. 퇴사를 위해서 주말에 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퇴사결심에 도움이 되었다. 남들과 똑같이 놀면서 남들과 차별화되는 전문성을 갖고 싶다는 것은 그저 욕심일 뿐이다. 그렇게 일했던 덕분에 책을 낼 수 있었고, 이는 내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기꺼이 여가 시간을 포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으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 경력에 공백이나 방황이 없다. 너무 부드럽게 이어져 왔다. 그 배경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미리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 크다고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은 직장인이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경우는 운이 좋았다. 나는 대학생 때 연구실도 떠돌고 여러 분야에 기웃기웃 거리면서 경험과 고민을 많이 했다. 한 번 사는 인생 의미 없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 말로 하면 나는 진지충이라고 불리울 거다. 학생 때 진지하게 열심히 고민했다. 또 몸으로 하는 알바, 국토 대장정 등 몸으로 구르면서 <진지한 고민+경험>을 쌓았던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지금 대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남들이 가는 방향이 나에게도 옳은 것인가?” 하는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생략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요즘에 너도나도 공무원 준비를 한다.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연히 모든 사람의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직업 안정성만을 중시하다 보니, 정작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게 원했던 대기업에 입사해서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것 때문이라고 본다. 정작 들어가보니 여기가 아닌가 보다하는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자신만의 길에 오히려 답이 있을 수도 있다.

 



▶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좋은 대학, 박사학위 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거 아니냐?' 라는 반문이 있다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좋은 대학과 학위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학위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는 아니라고 본다. 소위 명문대학 나와서 박사학위 있는 가방 끈 긴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도 않다. 반대로 1인 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고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분들 중에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성공한 1인 기업가들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포지셔닝과 차별화된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다. 출신 대학과 학위가 한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 “최윤섭의 Healthcare innovation”이라는 블로그를 축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중요도 순으로 5가지만 알려달라.

사실 이 모든 활동이 연결되어 있기에 따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1인 기업으로 내가 가진 자원은 무척 한정적이기 때문에, 내 모든 자원을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다. 내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에 대해서 논문, 기사, 책을 읽고 공부하고, 다른 전문가들에게 배우고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의 근간이다. 두 번째는 집필이다. 나는 블로그, SNS, 신문 칼럼, 잡지 등을 통해서 내가 연구한 결과를 글로 쓴다. 이 글이 충분히 쌓이면 책으로 출판한다. 내 전문성을 가장 잘 증명하고 전파할 수 있는 통로다.

세 번째는 강의를 하고, 네 번째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 다섯 번째가 개인 브랜딩과 네트워킹 정도다.

 


▶ 동일한 이름의 책도 쓰고, 하나의 프로필 사진으로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 같다. 개인 브랜딩에 상당히 관리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만의 퍼스널 브랜딩 노하우를 하나만 얘기한다면?

개인 브랜딩에 중요한 것은 세 가지 정도다. <1. 일관성  2. 유용성  3. 지속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지속성이다. 일관적이고도, 유용한 메시지를 대중에게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보내야 한다. 지속되지 않는 메시지는 결국 사라진다.

예를 들어, 블로그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시작하지만, 1년 이상 지속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나와 주변의 경험을 돌아보면, 블로그를 통해서 시장에 알려지고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전에 포기하면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

사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나의 강점 중에 하나다. 주짓수라는 운동도 8년을 하고 있고 블로그도 4년이 넘었다. 무언가를 잘하는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지속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꾸준히 오래하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 회사를 떠나서 1인 기업으로 일한지 3년차가 되었다. 회사생활을 돌아봤을 때 좋았던 점은?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다양한 종류의 조직에서 일하고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다. 학교, 연구소, 기업, 대학병원, 또 미국에도 잠시 있었다. 컴퓨터 관련 연구실에도 있었고 생명공학 연구소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쌓으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일하는 방식도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한 조직 내에서 오래 있었으면 그 조직 하나의 방식에 매몰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원 시절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6개월간 머물렀을 때 국내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연구 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결국 다양한 경험에 나를 노출 시킨 것이 좀 더 유연하고 넓은 생각을 갖고, 국내 조직의 방식에 의문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 책을 읽어보니 오래 전부터 전문성 있는 1인 기업에 대해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작고하신 구본형 선생님의 책을 좋아한다. 대학 시절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를 읽고 1인 기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책을 읽고 모두가 걷는 길이 아닌 다른 길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지도 밖에도 길은 있다. 나도 어쩌면 미래에 그러한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 퇴사하고 1인 기업이 되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

퇴사를 해야만 1인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퇴사를 하지 않아도 회사 안에서도 1인 기업이 될 수 있다. 쉽지 않겠지만 회사 내에서도 내가 맡은 일을 수행해 나가는 하나의 1인 기업이라는 생각으로 일 할 수도 있다. 이는 구본형 선생님이 주창하신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상한 상사, 예측 못하는 변수, 자기 관리는 회사 밖에서도 만나는 것들이다. 조직 내의 통제된 환경 속에서도 독립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조직 밖에서 혼자 일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좋아하는 린 스타트업에 이런 식의 문구가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혁신적인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조직은 큰 기업이든 신생 기업이든, 정부 조직이든 모두 스타트업이다.’ 1인 기업도 형식이나 좁은 정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1인 기업으로서 가지는 철학과 자세가 중요하다. 회사 안에서도 주인의식, 열정, 전문성도 없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온다고 해서 독립적이 되고 절제력이 생기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각자도생이 시대다. 그렇게 도생하기 위한 능력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 2부로 이어집니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손성곤



Tags : 1인기업, 일인기업, 최윤섭, 퇴사, 헬스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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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힘들게 내린 주체적인 결정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10.28 12:57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퇴사"

::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린 가장 '주체적'인 결정


지난 22개월간 26명을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내린 정의다.


학교에 다닐 때는 좋은 성적, 중고등 학교 때는 좋은 대학.

대학에 들어가면 돈 많이 주는 누구나 아는 회사.

사회인이 되면 남들 보기에 창피하지 않은 하루하루.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기준과 목적이 된다. 

회사에 들어와서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남들이 말하는' , '남들이 그래야 한다는'

혹은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대로 따라 가기만 했다. 대부분은 그렇다.  


이렇게 살아온 우리는 스스로의 의견과 생각 가치관을 가지고 고심해서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다. 

그것이 대부분의 직장인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회사 생활로 인한 고민은 인생의 고민으로 커지고 마침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첫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은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도 아닌 오롯이 자신만의 주체적인 결정이다. 

그것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태어나서 가장 고민을 많이한 주체적인 결정을 일반적으로 삼십대가 되어서 내린다. 

그렇게 주체적인 결정으로 우리는 다시 태어나고 진짜 삶은 시작된다. 

  








인터뷰 대상 물색,섭외                                            1시간
인터뷰 대상 조사 및 질문서 작성                              1.5 시간 
만나러 가는 길.                                                     1 시간
인터뷰 실제 시간                                                   3 시간
돌아오는 길.                                                         1 시간
녹취한것 들으며 옮겨 적는 시간 최소                         7 시간
적은것 퇴고 편집 하는 시간                                     1.5 시간
인터뷰이한테 보내고 받은것을 다시 편집하는 시간          1 시간
최종 정리본을 "직장생활연구소"와 Daum 직장IN 에 사진과 함께 편집해서 올리는 시간 1 시간





한 명을 인터뷰 해서 결과물을 만드는데 까지 18시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빼도 회사 근무 시간으로 치면 이틀이 넘는다. 회사를 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정리를 하려면 인터뷰 이후 최소 3주 길면 한달이 넘게 걸린다.



때론 인터뷰는 길어지기도 한다. 두가지 경우가 있다. 인터뷰이가 지나치게 질문과 동떨어져 자신의 말만 하는 경우. 또 그간의 힘듬과 감정의 곡절들이 인터뷰 중에 폭발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경우.


전자의 경우 계속해서 기다리다가 가이드를 준다.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하면 또 질문이 이어질 것이니 질문에 맞는 답을 먼저 해 주면 좋겠다. 라고.  모두 인터뷰라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나 역시 그랬던 경험이 있으니까...    후자의 경우는 5시간 동안 얘기할 때도 있었고, 최대 6시간을 얘기한 적도있었다. (배가 고파서 밥까지 같이 먹었다.) "이런 수준의 얘기까지는 안해 주어도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깊은 곳에 있는 얘기를 꺼내준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같이 눈물을 흘린적도 있다. T.T









내가 이렇게 심층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 이유는 하나다. 다양한 경우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나도 회사를 떠나는 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가 절대로 일반화 될 수 없기에 또 내 얘기를 들어달 라고 하는 것보다 실제로 다양한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회사를 떠나는 그 심정은 한순간의 찰나의 감정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진심어린 생각과 감정을 꺼내어 만들어진 복합적인 감정이다. 단 한마디로 이렇다고 말하기는 너무 어렵다.  또, 오늘도 밤을 새우며 불안과 공포, 그리고 잠깐의 긍정과 혼돈에 고민하는 "퇴사고민자" 들에게 먼저 행동한 사람의 진심을 전해주고 싶어서다. 먼저 행동한 사람들이 망설이는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등대처럼 가이드가 되어 줄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퇴사의 심정을 논하는 건 퇴근길 안주집 노가리 처럼 씹어대며 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4년차 퇴사자의 눈에는 10년차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애석하지만, 누군가는 꼰대라고 하겠지만 이건 참 트루다. 세상에는 절대로 겪어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서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게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퇴사를 고민하는 그들의 치열하고 절박한 삶에 누군가의 비지니스 모델의 잣대를 들이 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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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퇴사,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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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6_ 꿈이 있었다. 그래서 떠날 수 있었다.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10.12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조종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예전에는 항공사에서 훈련을 시키던가, 공군에서 복무하다가 전역 후 조종사가 되었다. 또 대학에서 항공 운항과를 나오는 것도 방법이었다. 문이 넓지 않았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그랬다. 몇 년 전부터 여행 수요가 증가하고 저가 항공사가 생기면서 조종사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부흥해서 사설 및 전문기관 비행교육원들이 많이 생겼다. 물론 미국에서도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교육의 기회가 넓어졌다. 그러면서 조종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 통상적인 교육기간은 얼마나 걸리나?

나는 최근에 라이선스를 땄다.  2년 반이 걸렸다. 조금 오래 걸린 경우다. 한국에서는 통상 2년정도 걸리는 것 같다. 국내는 땅이 좁고 군 관련 항공 구역이 있어서 비행할 수 있는 폭도 적다. 물론 날씨의 영향도 있다. 미국에서 하면 1년으로 줄어든다. 우선 땅이 넓기에 비행 가능한 상공 자체가 넓고 캘리포니아 쪽은 날씨도 통상적으로 좋아서 그렇다. 비행의 장애가 적어서 그렇다.

 

▶ 돈은 얼마나 드나?

교육비 만으로는 팔천 만원이 넘은 것 같다. 교육받으면서 생활비까지 하면 일억이 넘는다. 길을 걷다가 자동차 판매장을 지나가면서 , 저 차 두 대를 내가 교육받는데 썼구나.’ 뭐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 교육 받은 기간에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포기한 기회비용까지 친다면 일억 칠천 만원을 쓴 거나 마찬가지다. 후회는 없나?

결론만 말하면 지금 후회하지는 않는다. 우선 조종사 라이선스라는 큰 산을 하나 넘었고 2년의 교육과정 속에서 나를 돌아보며 성장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2년이 지금 이 상황에서 후회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이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8부능선을 넘은 지금은 후회하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과정상에서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 후회는 비단 돈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저축도 했을 거고 결혼도 할 수 있었을 거고 평온하고 평탄하게 살았을 텐데 나는 왜 지금 이 시골에 처박혀서 이 짓을 하고 있나 라는 후회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괜히 회사를 그만뒀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는?

주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하는 모습을 볼 때 그랬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걷고 있고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조금은 불안정하구나 하는 상태일 때 그랬다. 동기들을 대리도 되고 회사에서 순차적으로 잘 나가는 것을 볼 때도 그랬다. 나는 왠지 지지부진한 상태인 것 같아 그런 것 같다. 사실 라이선스는 땄지만 배워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다고 느끼기에 그런 것 같다. 지금도 대학생 때 아니 고등학교 수험생처럼 공부를 하고 있다. 조종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항공법, 지리, 지구과학, 항공기상, 비행원리 같은 것도 배워야 한다. 정말 훌륭한 조종사 교관을 보면 이런 이론들이 머릿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어떤 사람은 저 사람 머릿속을 끄집어 내면 비행기 한대가 나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지식이 방대한 사람도 만났다. 그들을 보면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 직업적 안정성과 연봉 때문에 조종사를 선택한 건 아닌가? 이런 삐딱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에 대신해서 물어보는 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연봉은 ㅇㅇ자동차, ㅇㅇ전자 같은 대기업 수준이다. 직업적 안정성이라면 나는 마지막 회사인 공공기관이 더 나았을 것이다. 조종사를 다짐하게 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꿈에서 시작된 거였다. 하지만 조종도 일이라 하다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나도 교육 받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맑은 날씨에 하늘에 날아올라 하늘을 바라보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조종사를 택한 의미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비행은 행복, 아름다움 그런 단어 이상의 감정인 것 같다. 나는 하늘을 나는게 좋다.

 

▶ 불안한 감정을 어떻게 이겨냈나?

불안은 내 안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먹이를 주고 키웠던 것 같다. 불안감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 불안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생겼던 것 같다. 무언가 플러스로 가는 행동을 계속 하면서 이겨냈던 것 같다. 무언가를 계속 하면서 나에게 맞는 적용 가능한 방법을 찾아서 그것을 하는 것이 방법이다. 라디오를 듣고, 긍정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책을 읽고 했던 것도 그 행동 중 나에게 맞는 것이었다. 솔직히 불안감을 이겨낸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불안감은 이겨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커졌던 것 같다. 지금도 불안한 감정은 늘 있다. 불안감을 제어 혹은 관리한다 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내 경우는 현재의 나를 바탕으로 미래의 모습을 계속 생각했던 것이었다. 내가 지금 목표까지 가는 이 과정에 있으니 앞으로 이것 이것을 하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왜 조종사가 되려고 했는가?’를 되새김질 했다. 한마디로 하면 목적을 생각하고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었다.







 


▶ 본인의 인생 모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그저 하늘을 날고 싶었다.’ 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왜 조종사가 되고 싶지?’ 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여행을 갈 때 공항을 간다. 그 때부터 설렘은 시작된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라서 이륙하는 순간 그 감정을 최고가 된다. 사람들이 느끼는 그 셀렘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조종사가 되고 싶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나는 하나의 선례가 되고 싶다. ‘잘나가는 직장 때려 치우고 꿈을 쫓아 가는 젊은이가 아니다. 그저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서 마침내 사람들의 셀레임을 완성시킨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이 당신 옆에 있을 법한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노력해서 인고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원하는 바를 이뤄낸 그런 선례가 되고 싶다. 너무 잘난 사람들의 사례 말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작은,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선례가 되고 싶다.

 

▶ 그럼 꿈을 현실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위한 조언을 해 준다면?

대단한 건 없다. 머리 속의 상상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글로 써보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자기계발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나에게 더 필요한 능력, 하고 싶은 것,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 그 일을 하면 얻을 수 있는 것, 그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생기는 장, 단점, 특히 내가 이루어야 하는 이유와 명분 등을 적어 봐야 한다. 머리 속에서 생각만 하면 뒤죽박죽이 되고 정리가 안 된다. 써보길 바란다. 쓰다 보면 전략이 수립이 된다. 글로 써 봐야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언제 해야 할지,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깨닫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적으면 행동할 확률도 대단히 높아진다. 모든 사람들이 아는 얘기고 다 안다고 생각하기에 무시하는 내용이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은 것 같다.

맞다. 많이 읽었다. 도움이 되는 것도 많았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그저 합리적인 근거없이 막연한 희망과 긍정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라는 말이 필요한 상황도 있지만 대부분은 더 냉정해 져야 한다. 막연히 감성팔이, 개소리 라고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냉정해질 필요는 있다.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에 대입해 보고 위안을 얻는 것도 때론 필요하지만 막연한 위안은 그저 진통제일 뿐이다. 진통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아니라고 본다. 특히 청춘에게 하는 말들은 더욱 그렇다. 자신과 앞에 놓인 세계에 대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용기를 가지는 것이 시작된다.

 

▶ 이미 회사를 떠나서 꿈을 찾아 준비를 하고 있고 거의 목표에 다가왔다. 이 시점에서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회사 후배나 학교 후배들이 많이 물어 본다. ‘내 상황이 이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을 하는게 맞을 까요? 어떻게 할까요?’ 라는 것이 주요 질문이다. 내가 답을 내려 줄 수 있는 문제의 질문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Yes / No를 내려 줄 수도 있지만 답을 주지는 않는다. 좀 재수 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정말 조종사를 하고 싶은 사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한 사람은 할까? 말까?’를 묻지 않는다. 그들의 질문은 다르다. “이 일을 하려는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해? 내가 이렇게 준비하려는데 부족한게 뭐지?” 이렇게 묻는다. 이미 그 사람들은 내면의 의지가 목표를 향하는 길로 가 있는 셈이다. 그 경우에는 답을 내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내 경험이 정답은 아니기에 하나의 예시 차원에서 말해 준다.

 

▶ 우리는 왜 비슷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나? 좋은 학교 가려고 노력하고 좋은 회사 가려고 노력하고 그리고는 안 잘리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은 내쳐지고 다시 힘들게 자신을 찾는 과정을 거치는 것 말이다.

사회 시스템 때문이라고 본다. 교육을 그렇게 받아 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원하는 사고방식, 교육방식대로 주입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어릴 적에 가족여행을 갈 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아빠 속초까지 얼마나 걸려요? 어디가 막혀요?”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글쎄, 도로에 차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어떤 길로 갈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네가 질문하는 데에 답이 다 달라지지 않을까?” 라고 말씀하셨다. 즉 한국사회에서 늘 강요해왔던 정답만을 원하는 질문을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조금 더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대화를 했다. 그렇게 교육받아오면서 수동적이기 보다는 능동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교육부터 회사까지 윗사람들이 정답을 내 놓고 그냥 따라오기만 하라고 한다. 그러다가 일부는 화석처럼 회사에 굳어져 버리는 것을 선택한다. 또 다른 일부는 주체적인 삶을 위해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것 같다. 어찌되었든, 요즘 세상의 키워드는 혁신, 창의 등등인데, 한국 사회가 좀 더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 되려면 이러한 시스템과 사람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럼 주체적인 삶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WHY”. 당연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더라도 왜 그래야 하지?’ 라고 질문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상식을 믿고 그 상식에 어긋나고 이해가 안 된다면 질문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정말 즐겁게 일했던 부서에서 팀장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 ‘넌 항상 왜 라는 질문을 해야 성장한다. 선배들이 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면 절대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없다. 성장하고 싶다면 항상 왜 라는 질문을 해라.’ 그 때 모시고 일했던 팀장님에게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신입 사원이 고참들이 일을 맡겼을 때 그걸 제가 왜 해야 되요?”라고 묻는 건 내가 말하는 왜가 아니다. 일을 명확히 파악하고 왜 나에게 이 일을 시켰을까?’ ‘내가 이 일을 통해서 얻는 것은 무얼까?’ 라는 질문을 한 후에 답이 안 나오면 질문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질문을 할 때도 어휘 선택에 좀 더 신경을 써서 하면 좋을 듯 하다.

 

▶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후반의 경우 내 옆의 대리, 과장처럼 되고 싶지 않다 라는 말을 꼭 한다. 본인의 경우는 어땠나?

나도 힘들 때면 내 옆의 선배들을 봤다. 그리고 , 나도 여기 이렇게 있으면 저 사람과 비슷하게 살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생각은 적었다. ‘그들은 저 삶은 선택했구나. 내가 선택해야 할 삶의 모습이 아니다. 그럼 나는 다른 삶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회사를 떠났지만 회사 안의 삶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도 즐겁게 일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또 승진하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난 과장, 팀장 중에는 일에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며 자신을 발전시키며 멋지게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내가 반바지를 입는 것, 그는 청바지를 입는 것 같은 선택이다.  








 

▶ 요즘 일상은?

항공사에 지원을 한 상태다. 필기시험도 보고 패스해야 다음 면접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법규 및 운항 관련해서 탄탄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한차례의 시험을 보고 깨달은 건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계속 공부 중이다. 덧붙이자면, 조종사도 전문직이기 때문에 자기관리와 자기계발, 학습과 훈련을 끊임 없이 해야 한다. 조종사의 인생은 평가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 본인의 지금 선택이 잘했구나 하고 느꼈을 때는?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서 교관 동승 없이 비행을 하는 과정이 있다. 솔로 비행 (Solo Flight) 이라고 하는데, 그 과정을 홀로 마쳤을 때 희열 같은 것 느꼈다. 그리고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나서 내 선택에 자부심을 느꼈다. 물론 정식 조종사로 취업을 하는 과정이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고 그것의 거의 80%까지 도달했다는 것에도 큰 성취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과정이라는 길을 걷는 중일 뿐이다.

 

▶ 보통 이 질문에 월요병이 없어졌다. 내 시간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한다. 상당히 목표 지향적인 것 같다.

. 그런가? 내가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란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목표를 세우고 퇴사 이후에 시간에 대해서 더 강박적이 되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는 점심 먹고 나면 늘어지고 쉬고 싶고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목표가 생겼고 그것을 위해서 자투리 시간도 아껴 쓰게 되었다. 퇴사 이후에는 맘껏 늘어진 적이 없던 것 같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태함 속에 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휴식과 일에 대한 시간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 지금 취업이 엄청 힘들다. 본인은 그들이 그렇게 가려고 하는 좋은 회사를 나왔다. 취업 준비 중인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명분 말이다. 내가 첫 번째 회사를 나와 두 번째 회사가 가기 직전, 한 선배가 얘기했던 것이 그것이다. “모든 일에는 자신만의 명분이 주어져야 한다.’ 라는 말이다. , 앞서 일하고 있는 부기장 선배도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 전,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해야 하는가?” 라는 얘기를 해준 적도 있다. 취업에 어떤 명분이 있는지 어떤 이유로 취업을 하려고 하는지 꼭 생각해 보고 글로 적어 봤으면 좋겠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 혹은 부모님이 원하니까. 아니면 지금 할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이런 외부적인 이유 말고 진짜 자신이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라도 결론을 내려보길 바란다. 그 결론이 무엇이건 간에 결론이 나왔으면 그것에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취업을 하더라도 막연한 취업이 아닌 명분 있는 취업이 될 것이다. 또 자신이 세운 그 명분을 면접 때 상황에 맞게 얘기한다면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로 전직 하려는 동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두려움을 바로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직업을 바꾸는 것에 대한 가장 큰 두려움은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놓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마주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인데 . 이 나이에…’ 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삼심대 초반에 행동을 하고 있는데 내 또래 친구들이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KFC 할아버지가 육십이 넘어서 창업한 뻔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내 주위에도 서른 일곱에 회사에서 나와서 조종사 준비를 해서 마흔이 넘어서 조종사가 된 분도 있다. 진부한 얘기지만 무엇을 하기에 너무 늦었거나 빠른 시간은 없다고 믿는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십 대 초반을 나이가 먹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지금 회사에 있는데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Try Everything 이다. 삼십 대 초반이고 무언가 자신과 맞는 일을 찾으려는 절박함이 있다면 다른 시도를 해보길 바란다. 그런 절박한 정신이 있는데 다단계 같은 헛일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찾을 수 있게 된다. 콩나물에 물이 스치듯이 아래로 떨어지지만 어떤 콩나물은 그 물을 움켜쥐고 성장한다. 경험이란 그런 것이다. 계획이 없다고 고민하는 시간에 무언가를 하는게 나을 것 같다.

또 주변의 카더라 하는 예기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사짜들이 정말 많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도 못했으면서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포장해서 그 해결책을 돈 주고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접하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가 내가 고민하는 것을 알려준다고 하기 때문이다. 큰 돈만 내면 말이다. 이런 사짜들의 너무 많은 정보는 사람을 흔들리게 만든다.

잊지 말기 바란다. 그 문제에 대해서 당신보다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은 적다. 선배에서 동기에게 물어봐도 그들의 대답은 아주 일반적인 수준일 뿐이다. 나도 조종사 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후에 정말 황당한 이야기 들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 허위 사실들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을 보니 결국 이루어 내는 사람은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꾸준히 지키면서 끝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 본인만의 모토가 있다면?

마음가짐이 나의 세계를 만든다.’ 이다. 추가 비행훈련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떠올랐다. 퇴사를 하던 이직을 하던 전직을 하던 혹은 창업을 하더라도 그 목표의 끝에는 개인의 행복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세운 목표를 이룬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나도 퇴사를 하고 비행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하고 마침내 라이센스를 땄다. 그리고 나서 행복한가 봤을 때 늘 항상 그러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퇴사를 하지 않고 회사에 있다고 해서 불행만 한 것도 아니다. 되게 늙다리 같은 말일 수 있는데 나의 지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의미부여를 하느냐가 행복과 관련 있는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도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이 아니기에 조심스럽다. 회사일, 퇴사, 이직, 전직, 창업, 실패, 좌절, 도전 어떤 선택이던 도망이 아니라 행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한 뼘의 용기면 된다. 그 말이 하고 싶다. 또 하나를 덧붙이자면 누구를 맹목적으로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따라 하다가 나를 잃는 경우도 있다. 또 그의 방법이 나와 맞는 것 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면 자신만의 길을 정할 수 있다고 본다. 남을 카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기자신의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증명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 "아직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라며 그는 인터뷰를 고사했다. 하지만 길을 걷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인터뷰의 취지에 공감하고 그는 말문을 열었다.  그는 힘들었지만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직업을 바꾸는 고생길을 시작했다. 길을 잃기도 했고 멈취서서 다시 돌아가려고도 했지만 목표와 꿈을 되새기며 버텨냈다.  벽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벽의 두께는 모두에게 다르다. 행동해야 변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행동은 누구나 하지 않는다. 꿈을 지켜내고 불안을 이겨내고 행동했고 계속 전진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꿈이 있는 사람은 이미 한걸음 먼저 시작한것과 다름이 없다. 그가 부러웠다. 일년 후 그를 다시 만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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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인 2016.10.19 22:23 신고

    잘봤습니다. 멋진 인터뷰네요.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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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곤 2016.10.19 23:21 신고

      고맙습니다. 인터뷰어인 저를 칭찬해 주시다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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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ksion 2016.10.27 00:48 신고

    잘 읽었습니다. 첫번째 회사가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 같네요^^. 꿈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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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곤 2016.10.28 12:58 신고

      정독을 하셨나 봅니다. 같은 회사임을 짐작하시다니.... 그렇다면 더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을것 같네요..... 인터뷰이 분을 많이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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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6_ 꿈이 있었다. 그래서 떠날 수 있었다.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10.11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소개

저는 84년 생, 서른 세 살. 항공사 조종사로 입사 준비 중인 ㅇㅇㅇ 입니다. 동시에 항공기 조종사 교관과정도 준비 중 입니다.

 

▶ 커리어 소개

ㅇㅇ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02 학번 이다. 군생활을 마치고 같은 전공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첫 직장은 2010, 무기체계 개발관련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군대에서 쓰는 다양한 무기 중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을 나는 것, 하늘을 나는 물건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무기 중에서 미사일에 관심이 너무 많아서 선택한 최초의 회사였다. 하지만 부서는 미사일과 관련 없는 분야였다. 그러다가 2012년에 ㅁㅁ으로 이직을 했다. 그곳은 정부기관 산하 국책기관이었다. 국가에서 큰 로드맵으로 개발하는 기술에 대해 기획을 하고 업체 선정해서 개발하는 과정을 평가, 관리하는 것이었다.

조종사가 되기 위한 준비는 회사를 떠나기 7개월 전부터였다. 당시는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교육을 받으면서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회사생활은 두 곳을 합쳐서 약 4년을 했다.

 

▶ 무기와 관련된 일은 생소하다. 어떤가?

다소 경직된 분위기였다. 무기와 관련된 분야다 보니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고 군대관련 분야다 보니 그런 것 같다.

 

▶ 한번 이직을 했는데 사기업에서 공공기관으로 갔다. 안정성을 따라간 건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 질문이 이해는 간다. 아무래도 직장인들에게 직업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결론만 말하면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과 달라서 이직을 했다. ㅇㅇ 에서는 지상군과 수중 무기를 다루었다. 일은 재미있고 사람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배우고 익혀온 분야와 관련된 일을 하기를 계속해서 원했다.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고 하기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직을 했다. 직업적 안정성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을 쫓았다면 아예 퇴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히 공공기관인 ㅁㅁ에서 항공우주 기술 관련 프로젝트 관련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 곳이 마침 내가 원했던 항공, 비행과 관련된 일이라 주저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 ㅇㅇ에서도 항공, 우주 관련 분야로 옮겨서 일할 수도 있지 않았나?

그곳에도 항공관련 일을 하는 부서가 있었다. 당연히 가고 싶어서 많이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TO였다. 그 부서에 자리가 나야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며 TO를 늘려서라도 받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또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그 부서에서 원하는 백그라운드를 갖춘 사람은 아니었다. 나도 부서를 원하지만 부서도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가려서 뽑는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라는 것이 간절히 원하고 부딪히면 되는 부분도 일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내가 아닌 회사의 필요와 요구라는 서로간의 욕구가 맞아야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 그런데 ㅁㅁ에 와서도 우주, 항공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랬나? 그 쪽으로 지원한 것 아니었나?

ㅁㅁ에서 항공관련 일을 하는 부서가 있다. 하지만 사람을 뽑을 때 그 부서로 뽑은 것이 아니라 큰 카테고리로 뽑았고 내가 원하는 부서는 사람을 뽑지 않았다. 그래서 자동차 기술 관련된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순환보직을 하는 곳이기에 언젠가는 원하는 부서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자동차 관련 부서에서 일할 때도 재미 있었다. 다른 분야이기에 배울 것 너무 많았다. 짧은 직장생활 동안 최고라 할 수 있는 너무 좋은 분들과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동차도 Automobile 관련 분야는 운송이라는 큰 범주는 나의 생각과 일치 했기에 즐거웠다. 좋은 사람, 성장하는 느낌, 원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는 업무. 그러다 보니 , 이곳에서 오래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그런데 그 곳도 결국 18개월 만에 나왔다. 왜 그랬나?

자동차 관련 부서에서 내가 주로 했던 일은 전자쪽 이었다. 사실 나는 대학, 대학원 모두 기계 베이스로 배웠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공부해야 했고 또 회사에서도 그러길 원했다. 그렇게 배우며 부족함을 채워나가며 일하던 중 갑자기 부서가 바뀌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출장 도중 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순환보직을 하는 회사다 보니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새로 바뀐 부서는 매우 다양한 분야를 다뤘다. 우리나라가 미래에 먹고 살만한 모든 기술을 다 개발한다는 명목을 가지고 그런 사업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전자베이스 시스템을 개발, 관리 하는 일을 했다. 이전 부서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환경이다 보니 처음부터 적응해야 될 것들이 많았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너무 다른 조직으로 가니 충격이 컸다. 그 부서는 관리, 평가 부서로였고 일단 업무량이 너무 많았다. 열 시, 열한 시 퇴근은 기본이었다. 확실한 한가지 사실은 나의 관심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전혀 관심도 가지 않고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부서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 출근길마다 고민이 되었다.

거울을 보고 스스로 질문을 해서 오늘 그 일을 하다가 죽어도 행복한가? 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했을 때 대답이 아니요 라면, 그 일을 그만두어도 된다.” 이런 류의 말을 스티브 잡스가 했던걸로 기억한다. 이 때는 이 말이 그렇게도 와 닿았다. 아침마다 그 말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대답은 아니요였다.

아침마다 회사를 가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때론 과도한 스트레스와 앞날의 걱정으로 인해 지하철에서 멀미를 했다 또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할 정도였다. 10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이러다 보니 스티브 잡스의 질문에 나의 대답은 아니요일 수 밖에 없었다.

 






▶ 혹시 퇴사라는 선택을 할 때 도움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적은 없나?

나와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을 만났다. 그러니까 자동차 회사를 다니다가 다시 공부와 훈련을 해서 조종사가 된 분을 만났다. 예전에 잠시 저널리스트로 일을 했는데 거기에서 만난 분이었다. 또 취미로 배우면서 알게 된 직장인에서 조종사로 직업을 바꾼 선배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자극이었다. 보기만 해도 자극을 받았다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상황에 따라서 내 마음 상태까지 모두 이해하고 알고 있었다. 조언을 해 줄 때는 해 주었고, 조언보다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면 그리해 주었다.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남의 진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 일을 미리 겪은 사람을 찾아서 만나보는 것도 대단히 힘들다. 그런 사람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퇴사 결정을 하기 까지는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바로 그 분이었다.

 

▶ 회사에 다닐 때 좋았던 경험은?

우선은 내가 개발한 아이템이 세상에 나올 때 좋았다. 내가 만드는데 기여한 무기가 세상에 나올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 물론 무기라서 사람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또 내가 쓴 글과 논문이 세상에 나올 때, 성과로 나왔을 때도 보람이 있었다.

 

▶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 이었나?

회사에서 나는 조금 튀는 사람이었다. 색깔이 뚜렸한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룰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가장 컸던 것은 휴가였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공동의 일에 해가 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정을 세우고 휴가를 내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조금 보수 적이었던 회사의 일부 사람들은 그걸 싫어했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일이 널널해서 혹은 여행 준비하느라고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밥 먹을 때도 항상 같이 비슷한 메뉴를 골라야 했다. 식단 관리를 위해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튄다고 생각하는 주의 사람들이 있었다.

 

▶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굉장히 특이하고 미친 친구다.’ 라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 회사는 공공기관이었다. 직업적 안정성도 사기업에 비해 높았다. 그런 곳을 깡통처럼 차버린다고 생각하니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게다가 조종사를 한다고 하니 꿈을 쫓는 어린 친구 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젊을 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게 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린 객기에 꿈 사냥을 떠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

처음에 ㅇㅇ에 입사했을 때 매우 좋아하셨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큰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2년만에 ㅁㅁ기관으로 회사를 옮겼다. 지원할 당시엔 그 기관은 들어보지 못한 곳이었고 계약직일 가능성이 높아서 매우 싫어하셨다. 그러다가 공공기관이고 정규직이고 합격했다고 예기를 하니 상당히 좋아하셨다. 이 회사를 오래 다니고 여기 다니면서 결혼해서 잘 살면 되겠구나 생각하셨다. 그러다가 그 안정된 회사를 때려치우고 조종사를 한다고 하니난리가 났었다. 퇴사를 말씀 드리고 그 날 미친 듯이 싸웠고 약 한달 동안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말을 걸지 않았다는 게 맞는 것 같다.

 

▶ 퇴사까지 하고 새로운 직업으로 조종사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적부터 비행, 조종에 관심은 있었다. 1996년 이었나 내가 학생 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에어쇼라는 것을 했다. 그래서 호기심에 가서 봤다. 그 때도 가슴이 뛰면서 조종사가 되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지금 사는 곳도 성남공항과 멀지 않아서 비행기를 자주 본다. 계속해서 비행기를 보며 꿈을 리마인드 한 것도 지금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게 된 원동력인 것 같다.

어느 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쉬며 인터넷을 보고 있었다. 어느 조종사가 고프로 같은 카메라로 비행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8분이 넘는 영상을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바라봤다. 마치 머리를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크게 번쩍이는 느낌을 받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바로 사설 비행교육기관에 등록해서 훈련을 받았다. 그 영상이 내 안에 원래부터 있었던 회사 일을 하면서 꾹꾹 눌러왔던 욕망에 불씨를 붙여 주었던 것 같다.

 

▶ 어찌 보면 하는 일을 바꾸는 전직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현실적인 전직을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우선 어떤 일을 할건지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를 모른다. 나를 먼저 찾는 질문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당장 직업자체를 바꾸고 예전과 똑같이 돈을 버는 일은 적다. 물론 그것도 사람이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은 먹고사니즘, 당장의 생활비에 목을 매기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는 예전부터 하늘을 날고 조종사가 되는 것을 꿈꿨기 때문에 한번의 충격이 계기가 되었다. 어찌 보면 운이 좋은 케이스다. 꿈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일을 정했다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도별로 분기별로 월별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회사에서 월별 계획 주별 계획은 당연한 건데 자신의 일을 찾으려는 사람이 그런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보통 직장인은 한 분야만 깊게 아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일을 할 때는 백지 상태다. 그럴 때 계획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버티는 거다. 하기로 결정을 했으면 무조건 버텨야 한다. 새로운 일을 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너무 너무 많이 만난다. 정보가 없으니 예상을 못하고 그렇기에 거의 매일 매일이 예측 불가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변수와 예측 불가능에서 오늘 좌절들을 버티는 힘과 태도가 필요하다. 직업을 바꾸면서 꽃 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가 직접 글로 쓴 2016년의 목표>




 

▶ 회사에 있을 때와 가장 달라진 점은?

삶과 시간에 있어서 주도적이 된 것이다. 회사에서는 남이 내 계획을 세워줬다. 내 뜻대로만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 마음대로만 움직일 수 없는 건 더더욱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퇴사 이후에는 당연히 하루 24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 책임을 지고 계획, 목표도 스스로 세우고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도 내가 해야 했다. 자기 주도적이 된 것이 가장 달라진 점이다. 당신이 쓴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도 읽어 봤다. 거기에 월급에 중독이 되면 주체성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예가 된다는 말이 나왔던 것 같다. 회사에서 남이 시키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 지면 또 준비 없이 갑자기 퇴사하면 스스로 시간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퇴사하면 여행 길게 다녀오고 나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평소 하지 못했던 여가만 하면서 몇 달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그건 그 사람이 회사에서 주체성을 박탈당한 삶을 너무 오래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

 

엊그제 친구를 만나러 여의도에 다녀왔다. 점심시간이었는데 전부 금융계 사람들이 넥타이를 맨 모습 속에 혼자 반바지에 티를 입고 있는 내가 있으니 굉장히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묘한 희열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러면서 . 나는 소속이 없구나라는 느낌도 받았다. 처음엔 그것이 불안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괜찮다

 

▶ 본인이 원하는 일을 준비하면서 겪은 변수는 무엇이었나?

모든 것이 변수였다.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 일을 매우 적었다. 좋아하는 일을 준비했는데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상황만 벌어지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연별, 월별 계획도 다 세웠다. 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적은 없었다. 기상 문제로 비행을 못하는 경우, 계획은 한번의 실패도 없이 시험 통과였지만 시험에 떨어진 적도 있었다. 나는 그런 적은 없었지만 불안한 미래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거나 부모님의 반대 같은 것도 겪는 동료들을 보았다. 하지만 계획을 세웠기에 변수에 대해서도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계획 자체가 돌발 상황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 힘든 일은 없었나?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재 취업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사설 기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정식 비행 교육기관에 들어 갔었다. 일단 가보니 공부의 양이 어마 어마 했고 훈련도 힘들었다. 당연히 모두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히니 이런 또 달랐다. 그러다가 국방산업과 관련된 국책기관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을 보고 지원하려고 생각도 했었다. 이력서 까지 썼었다. 불안감은 당연한 거였다. 나이 삼십 넘어서 대기업, 국책기관 나와서 조종사라는 꿈을 꾸는 것은 누군가 보기에는 어린아이가 대통령, 과학자 같은 꿈을 꾸는 것처럼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 그렇게 얘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준비 기간 동안 자존감이 떨어지니 스스로 그런 생각도 했다. 스트레스에 원형 탈모까지 생겼다.

 

비행 연습하는 교장은 밤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시골 구석에 있었다. 완전 깡 시골 이었다. 그 곳에 고립돼 있다 보니 불면, 불안증까지 생겼다. 그러다 보니 혼자 가만히 있으면 가끔 불안과 스트레스가 점점 커졌다. 그럼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정인 생각을 자양분으로 해서 점점 더 커졌다. 가끔은 그런 불안감이 극에 달해 새벽에 찬장의 그릇을 모두 꺼내서 다시 닦아 정리하는 강박도 있었다.

 

▶ 어떻게 극복했나?

부모님께서 도와주셨다. 너무 힘이 들어서 부모님께 그만 하겠다고 말씀 드렸었다. 그랬더니 너 지금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느냐? 지금 그만 두면 다시 원점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큰 힘을 얻었다. 또 하나는 책을 읽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편안함을 주는 책을 많이 읽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별 것 아닌 뻔한 얘기들 이었지만 워낙 힘든 순간들이어서 도움을 받았다. 또 라디오도 많이 들었다. 사람목소리가 그리웠다. 말한 것처럼 워낙 깡촌이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덮어 버리려고 책을 읽었고, 혼자라는 생각을 버리기 위해 라디오를 들었던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직장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있다.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

최근에 만난 친구는 난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용기가 없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용기라는 것을 내지는 않았다. 용기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발을 들어서 앞으로 내 딛는 작은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럼 그 행동이 다시 다음 발을 내 딛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용기라는 거창하고 큰 말보다는 살짝 옆으로 발은 내딛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는 것 같다. 용기를 내는 것은 가진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 같다. 지금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 중 일부는 버려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지금 가진 것,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누리면서 변화를 꾀할 수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가진 것을 놓는 용기 필요한 것 같다.

또 하나 얘기하자면 벽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벽이 있으면 모두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벽의 크기만 생각한다. 그 벽이 크고 높아서 겁을 먹는다. 그리고 저 높은 저 넓은 벽을 어떻게 뚫지 하고 두려워만 한다. 가끔은 똑똑두드려 보기만 한다. 그리고 이 벽은 너무 크고 그리고 콘크리트처럼 두꺼울 거야하고 스스로 포기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벽의 두께를 생각하지 않는다. 크고 높은 벽이긴 한데 벽의 두께가 얇을 수 있다. 그 벽이 창호지처럼 얇을 수도 있다.

 

▶ 본인의 경우는 어땠나?

결론만 말하면 벽은 내 앞에도 뒤에도 있었다. 내 경우 뒤에 있는 벽이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제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 그렇게 마냥 시간이 흐르는 것, 그것이 나 뒤에서 나를 밀어내는 벽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명확했기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괴리감이라는 벽이 나를 밀어냈던 것 같다.

 

▶ 본인은 어릴 적부터 명확히 하고 싶은게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걸 모르는데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글쎄. “이게 방법이다. 나를 따르라.” 라고 내가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더 경험해 보는 것이 답인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인터넷에서 감동적이고 자극을 주는 카드 뉴스 같은걸 많이 본다. 거기 보면 ‘어제와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저 그 뿐이다. 그 글을 보는 당시에는 고개도 끄덕이고 공감하고 다짐을 하지만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에 본 영화 주토피아중에 “Try Everything” 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범죄 혹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 아니면 모두 많이 해보는 것이 방법일 듯 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만 생각을 담아두지 말고 글로 써 보면 좋겠다. 머리 속에만 고여있는 생각은 썩는다. 그리고 당연히 현실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글로 쓰는 순간, 머릿속의 생각이 밖으로 나오면 행동으로 이어지는 가능성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반드시 써 보길 바란다.

 


 





- 2 편으로 이어집니다 -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손성곤



 

Tags : 전직, 조종사, 직업변경, 직장생활연구소, 퇴사, 파일럿,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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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24_ 28살. 회사를 떠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쫓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8.16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

1989년생으로 현재 28.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벤처중소기업학을 전공하고 2016년 올 2월에 졸업을 했습니다. 현재 808코인노래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벤처중소기업학은 무얼 배우는 곳인가?

2학년 때까지는 경영학과와 같은 커리큘럼이다. 3학년부터는 창업아이템 개발, 인터넷 창업, 비즈니스 디자인 실습 등을 배운다. 사업계획서를 쓰는 수업이 대부분이다.

 

▶ 벤처중소기업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모의고사를 보고 점수에 맞춰서 학교를 몇 군데 골랐다. 문과는 선택이 폭이 넓지 않아서 회사에 취업할 생각을 했고 취업을 위해서는 경영전공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남들과 비슷한 선택의 시작이었다. 취업시장에 서울대 경영학과도 많은데 내가 중위권대학 경영학과를 나와서는 차별화가 안될 것 같았다. 그것이 선택의 이유다.

 

▶ 대학교 생활은 어땠나?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군대 가기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 처음에 대학에 입학해서는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것처럼 심도 깊은 논쟁을 할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고등학교 때와 똑같았다. 수업에 실망을 많이 해서 학과 공부를 멀리하고 힙합동아리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험성적이 잘 나올리 없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미친 듯이 공부했다. 학점 때문이었다. 복학 이후 계속 장학금을 받았고 동시에 스타트업 인턴십 등을 학교 다니면서 많이 했다. 창업이라는 것이 책상에서 글이나 말로 배우는 것보다 실제로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었다.

 

▶ 스타트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계기는?

학교를 다닐 때 주제를 선정해서 뽑히면 해외에 기업 리서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대회에 참가했다. 나는해외의 스타트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팀을 꾸려서 홍콩에 있는 스타트업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당시 회사는 독일 회사인로켓인터넷의 홍콩지사 였다. ‘로켓인터넷은 전세계의 성공한 IT 비즈니스의 카피캣을 만드는 회사였다. 예를 들면 이베이와 똑같은 모델을 유럽에 만들어서 성공시킨 후 매각하는 것 같은 것이다. 이런 포트폴리오를 전세계적으로 수백 개 정도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똑똑하고 좋은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허름한 공간에 모여서 정말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 곳의 사람들은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 출신 혹은 현지 국가의 최고 대학을 나온 사람들 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대기업을 가면 저렇게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작은 회사에서도 훌륭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성공하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바로 조사했던 회사의 한국 지사의 인턴십에 지원을 해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2011년 대학교 3학년 때였다. 학과 자체가 6개월의 인턴십은 필수였기 때문에 더 좋은 기회였다. 홍콩에 가서 스타트업을 조사한 것이 지금까지 내 인생을 만든 계기였던 것 같다.

 

▶ 그 이후의 회사 생활 커리어는?

우선로켓인터넷이 설립한글로시박스라는 곳에서 마케팅 일을 6개월 간 했다. 창고정리, 짐 나르기 같은 허드레 일부터 고객 응대 전화, 그리고 소셜 미디어 관리 등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그냥 맨땅에 헤딩하면서 일하고 배웠다. 그 후굿닥 (Goodoc)’ 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제품 출시 한달 전에 합류했고 내가 했던 일은 Door To Door 영업이었다. 흔히들 빌딩타기라고 하는 영업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건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병원에 들러서 서비스 소개하고 의사들을 가입시키는 일이었다. 런칭 후에는 앱 마케팅을 했다.

 그 이후는 인턴을 했던글로시박스에 재 입사 했다. 화장품 브랜드를 만나서 파트너십을 맺는 영업을 했다. 대표님의 가치관을 존경하기도 했고 일도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었다. 그러다 보니 성과도 좋았다. 그 후 친구의 추천으로캐시슬라이드로 옮겨서 광고영업 일을 했다. 그 때도 정말 영혼을 쏟아 부어 일했다. 생일날에도 밤을 넘어 그 다음날 퇴근 할 정도였다. 당시는 열과 성을 쏟아 부어서 일을 했고 성과도 좋았고 일하는 성취감이 컸다. 입사할 때 연 매출이 약 200억원 이었는데 1 3개월 동안 일을 하고 나올 때는 연 매출이 400억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모바일 광고시장이 커가는 중이었기에 스타트업 으로서는 급격한 매출 확대가 되는 J커브시기를 직접 경험해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후 지인의 소개를 통해스타일쉐어로 이직을 했다. 그 곳에서는 모바일 광고 사업개발 일을 했다. 상품설계, 시스템 설계, 영업의 일을 했었고 약 1년간 근무했다. 2011년부터 2015 10월까지 총 5년을 회사 생활을 했다. 회사를 떠난지는 9개월이 되었다.

 

▶ 2016년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한 건가?

맞다. 하지만 휴학을 한 3년 정도 했다. 그 기간 동안 회사에서 일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한 건스타일쉐어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곳의 대표님도 대학교를 다니면서 창업을 한 경험이 있어서 내 처지를 잘 일기에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 인간적으로 너무 자주 이직을 한거 아닌가? 왜 이리 많이 옮겼나?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직은 좋은 Offer를 받고 나를 발전 시킬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던지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옮겼다. 회사가 싫어서 돈을 쫓아서 움직인 건 아니었다. 나는 나중에 반드시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많은 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러려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바닥부터 해 보는 것이 필요했다. 또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창업을 경험한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만나고도 싶었다. 창업정신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일반 기준으로 보기에는 다소 잦은 이직인 것 같다.

이직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 5년 동안 5개의 회사를 다녀보니 어느 정도 눈을 좀 뜨게 되었다. 스타트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느 정도 단계의 스타트업은 어떻게 하는 구나 이런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말하자면 잘하는 회사, 못하는 회사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조금은 갖게 되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겠구나하는 나름의 기준도 생겼다.

 

▶ 스타트업 회사 선택의 기준은?

나는 대표님을 가장 많이 본다. 스타트업은 대표가 전부라고 말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기에 대표의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선택의 기준이다. 그 외 나머지 조직문화 등은 참조만 한다.

 

▶ 스타트업은 자율 출퇴근제, 영화 보는 날, 마음껏 책 구입하게 해 주고 하는 등의 파격적인 복지혜택을 주는 곳이 많다. 직접 다녀보니 어떤가?

실제로 그렇다. 대기업에 있는 분들은 실제로 그럴꺼라 상상을 못하시더라. 내가 일할 때도 인터뷰를 보러 온 사람들이 정말 자율출퇴근제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만큼 대기업과 다른 파격적인 복지는 젊은 친구들이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인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복지혜택이 좋은 업무 성과로 100%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복지혜택은 채용을 위해 미디어에 노출하고 보여주기 위한회사 안 Life’에 관한 문제다. 하지만회사의 Life’가 좋아서 들어온 사람은 스타트업이 조금 힘들어져서 혜택을 축소하면 힘들어한다. 그리고 복지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성장을 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던져서 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최고의 복지는 지속적인 회사의 성장 그리고 뛰어난 동료들이라고 생각한다.

 

▶ 가장 잘 맞았던 회사는 어디인가?

일했던 회사는 모두 나와 잘 맞았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맞았던 곳을 꼽자면 캐시슬라이드였다. 나의 일하는 성향과 업무가 잘 맞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