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유배달과 선교사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4.03 08: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벨제붑의 노래

4. 우유배달과 선교사_ 넘어짐에서 배우는 인생의 맛


인생이란 도로를 걷다 보면 참 많은 요철들이 발에 채인다

쉽게 피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피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나의 20대는 늘 울퉁불퉁했고 피하거나 넘다 걸려 쓰러짐의 반복이었다새벽까지 술을 나르고 돌아와 잠을 청할 때면 당시 동거인이었던 형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맞다. 예전에 나랑 모기채를 팔았던 그 형이다. 우리 두 사람은 군 전역 후 다시 함께 지냈고, 생활비를 벌며 아슬아슬하게 하루 하루를 버티던 그런 시절이었다처음엔 그 형이 이른 새벽마다 나가는 걸 보며 무슨 막노동을 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우유 배달을 한다고 했다. 고시를 준비하던 형은 낮 시간에 최대한 공부해야 했기에, 잠을 줄이고 최대한 새벽 시간을 쪼개 할 수 있는 그 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나도 사정이 있었지만, 막상 형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맘이 먹먹했고, 한 두 번 도와주기 시작했고, 어느새 새벽 우유 배달부에 삶에 맞춰가기 시작했다.


우유 배달은 집집마다 원하는 제품이 다르고 유통기한이 있어 분류하고 배달을 마치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하루 평균 100군데 정도 배달을 하면 어느 정도 능숙하단 말을 듣는데, 그 형은 이미 300군데가 넘는 집을 도맡아 배달하던 베테랑 배달부가 되어 있었다. 나도 형을 통해 요령을 익히고 점점 배달의 기수로서 겨울 바람을 뚫고 달리고 있었다종종 승강기가 없는 고층 빌라에 배달을 하게 되는데, 7-8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운동이 된다. 우리끼리 오죽했으면 우유 받아 먹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우리가 더 건강히 장수할 것 같다는 말을 했을까. 한 달 정도 지나니 나도 7-80군데 정도 맡아서 배달할 수 있었고, 배달 하며 틈틈이 마셨던 우유 덕분인지는 몰라도 하루 4시간을 채 못 자고도 일하고 공부하며 열심히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뺑소니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똑같이 동네를 누비며 배달 중이었는데, 순간 옆 쪽에서 검은색 승용차가 튀어나왔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내 배달 오토바이는 구석으로 처박혀 버렸다. 정신을 차려보고 나니 이미 운전자는 도망가버렸고 도로 한 가득 우유와 요거트가 쏟아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헬멧 덕분에 얼굴은 무사했는데, 무릎을 다쳐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마침 배달을 끝낸 형 덕분에 그날은 어찌 끝냈지만, 그 날부터 난 사실상 잠정 휴업 신세가 되었다.



절뚝거리면서 경찰서에 사고 접수를 하고, 수소문을 하며 다녔지만, 이른 새벽 뺑소니 사고라 목격자도 없었고, 하필 그 길엔 cctv도 없었다. 임시 치료를 위해 다니던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을 해서 엑스레이도 찍고 심하면 MRI도 촬영하여 상태를 진단해야 한다고 권했다. 하지만 뺑소니로 신고한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이라 보험 적용이 되지 않은 상태라 부담이 컸다. 중간 정산을 하러 갔다가 향후 진행될 예상 진료비 가격을 듣는 순간 통증이 사라졌다. 아니 더 이상 아파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 맞출 수 있는 좋은(?) 무릎을 그때 얻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졸업이 코 앞으로 다가 왔고, 취업을 못하면 꼼짝없이 실업자 신세였다. 유학은 고사하고 어학 연수 가본 적도 없었던 터라 취업을 위해 마냥 토익 시험에만 매달렸는데, 그 해부터 영어 말하기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취업 시장을 강타했다. 생활비도 부족한 판에 어떻게 영어 회화 공부를 해야 하냐며 고민하던 차에 형이 좋은 소식이 있다며 나를 불렀다. 다음 날 형을 따라 집 근처에 한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입구에서 왠 양복 입은 외국인 2명이 웃으며 우릴 반겼다. 알고 보니 선교를 하러 한국에 온 선교사들인데, 모집이 힘들어서 고민하다, 30분 정도 영어 회화를 도와주고, 끝나고 30분 정도 선교할 시간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홍보하던 차에 형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속으로 이게 또 뭔 가 싶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 전이란 생각으로 헬로우를 마구 마구 외쳤다. 그 후로 일주일에 2-3번씩은 외국인 선교사 친구들과 영어 공부를 했고, 그들의 어눌한 한국어 선교도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교구로부터 받는 급여가 너무 적어, 좁은 고시원에서 살면서 항상 걸어 다니고 끼니도 자주 걸러 자기들도 많이 힘들다고 했다.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자주 밥도 사줬고, 심지어 형은 돈도 빌려줬다.

나의 온갖(?) 노력에도 졸업 전 취업이라는 미션은 끝내 이룰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이력서를 보낸 지도 모를 정도로 노력했지만 취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지금 이 상황을 버텨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 졸업을 해서 오전, 오후 시간이 여유 있어서, 그 시간 동안 식당에서 일을 해 생활비를 벌었고, 퇴근 후엔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이력서를 쓰는 생활을 시작했다.


다시 글을 적으면서 그때를 떠올리면 그 막연했던 불안감에 한숨부터 나온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졸업과 함께 사라졌고 믿을 건 나 하나였다. 텅 빈 지갑과 불확실한 내 모습에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그럴 때 마다 웃었다. 일부러 더 크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진짜 맛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난 그 순간에만 허락된다. 나는 안다. 넘어짐이 반복될수록 인생의 맛은 더 진해지고 멋스러워 진다는 것을. 이 글을 읽은 당신도 꼭 그 맛을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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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브라운 아이즈의 그대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27 12:18 / Category : 직장인 필진/퇴사 어게인


브라운 아이즈의 그대

 

눈물로 시작한 캠퍼스라이프도 어느새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었다. 마지막 방학을 남겨둔 우리들에게 교수님께서는 책자를 한 권씩 나눠주셨다. 문제집 맨 뒷장에 끼워져 있는 해설서처럼 얇은 두께의 그 책자에는 현장실습이라고 적혀있었다.

현장실습이 뭐냐 하면, 졸업 후에 하게 될 일에 대해서 미리 산업체에 가서 경험해 보는 거예요. 지금 나누어준 것은 현장실습일지인데 그 곳에 매일 한 일과 담당자의 싸인을 받아서 현장실습이 끝나면 제출하면 되요. 나중에 나한테 와서 교수님, 현장실습 어떻게 해요. 회사 못 찾았어요.’ 하지 말고 미리미리 현장실습 할 곳을 알아보세요.”

 

운이 좋게도 현장실습을 하게 될 회사를 구했다. 회사는 오금동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서 정반대인 그 곳을 어떻게 다녔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 나에게 그곳으로 출퇴근 하라고 한다면 오금이 저릴 테지만, 그때 나에게 회사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장실습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13층에 도착했다. 1층에서 건네받은 목걸이를 가져다 대니 문이 열렸다.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들어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혹시, 현장실습생이에요?”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개발1팀 팀장이에요.”


고개를 들어 팀장님의 얼굴을 보았다. ‘외국인 같아.’ 팀장님의 첫 인상이었다. 검은 눈동자가 아닌 갈색눈동자가 주는 신비로운 느낌이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악수를 했다. 하얗고 보드라웠다현장실습을 하는 동안 공장을 데려가 주시기도 하고, 교육을 시켜 주시기도 했다. 출시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셨다. 세심하고 자상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회사생활이 즐거웠다, 식사시간만 빼면 말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근처식당으로 가서 식권을 내고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권을 낼 때, 나는 노란 식권을 내야 했다. 파란식권 사이에서 슬그머니 노란 식권을 내밀어 할 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팀장님의 호의에 팀원이 된 듯한 착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주는 경고 같은 것 이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현장실습이 끝나가고 있었다. 도면정리나 카탈로그를 보느라 두 달이 너무 지겨웠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팀장님께 고마운 마음을 꾹꾹 담아 카드를 썼다.


팀장님, 이거..”

? 이게 뭐야?”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서 준비했어요.”

마지막 날 이였어? 난 내일인 줄 알았는데.”

그 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뭘 이런 걸다. 허허. 와이프 이후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카드네. 고마워.”

처음 그날처럼 책상을 돌며 인사를 드리고 가방을 챙겼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와 목걸이를 반납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 ‘다시는 올일 없겠지?’ 다시 한 번 로비를 쓱 돌아보고 느릿느릿 걸었다.

 

춘희 씨! 잠깐만.”

팀장님.”

파란색 식권 여러 장을 손에 쥐어주시며 말을 건넸다.

마지막 인줄 알았으면 준비라도 하는 건데, 이것 밖에 줄게 없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냐. 받으라니까. 요 앞 빵집 있지? 거기서도 식권 받거든. 가면서 빵이라도 좀 가지고 가.”

아니에요. 저 괜찮은데.”

받으래도. 내 마지막 선물이야.”

감사합니다.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두 달 동안 받기만 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넘치게 받기만 했다.

 

나의 첫 팀장님은 첫 눈 같았고, 첫 사랑 같은 분이셨다.

어렴풋이 카드에 썼던 내용이 기억난다. 취직하면 맛있는 걸 사들고 찾아오겠다고 했었다.

아직 오금동에 계시는지, 여전히 다정하신지, 나를 기억 하실지..

다정했던 갈색눈동자의 그가 그리워진다.


- 2편  "브라운 아이즈의 그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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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카즈믹 폴릿음"의 추억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27 08: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벨제붑의 노래


"카즈믹 폴릿음"의 추억


55일 어린이날, 반짝거리는 전역 증과 까맣게 때가 탄 영어 책을 손에 쥐고 난 무사히 전역했다. 군대 물이 빠지기 전에 무식하게 유학 준비를 시작했고, 몇 개월간의 사투 끝에 원하던 영어 성적과 한 외국 대학의 입학 허가서를 손에 넣었다그러나 기쁨도 잠시,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어학 연수가 아닌 입학이다 보니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돈이 많이 필요했고, 이와 반대로 집안 사정은 더 나빠질 게 없었다. 한 번만 도와달라는 부탁을 위해 잡은 수화기 속에서 당신의 힘 빠진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욕심은 사치였다.


졸업까진 이제 1년도 채 안 남았던 가을의 그 밤은 유난히도 소주가 썼다. 취직을 위해선 영어 실력이 필수였고, 굶어 죽지 않으려면 생활비가 필요했다. 남은 1년을 어떻게 버틸지를 고민하다 문득 이태원이라는 동네가 눈에 밟혔다. 발 품을 팔며 고르다 한 바(Bar)에 자릴 잡았고, 그 날부터 오전 오후는 학교 도서관에서, 저녁부터 새벽까진 바에 직원으로 일했다. 여느 다른 아르바이트 보다 시급도 좋고, 일이 다 그렇지 별 거 있겠냐 라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곳은 레스토랑, 베이커리, , 까페가 같이 섞인 규모 있는 가게였다. 바를 담당하시던 매니저 분이 바텐더 출신이라 굉장히 깐깐했기에 하루 하루가 긴장과 실수의 범벅이었다.

 

처음 몇 주간은 주방에서 계속 설거지만 했는데, 너무 바빠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고, 깨진 유리컵 덕분에 항상 손 주위에 밴드를 달고 살았다.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홀에서 서빙을 시작할 수 있었다. VIP 고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보니, 주말에는 물도 사서 마셔야 할 정도로 가격도 상당했다. 외국인들의 출입도 잦았기에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모습은 가관이었다.

가게가 이태원에 있다 보니 영어 쓸 일이 빈번했는데, 공교롭게도 꼭 한국 분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다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분이 외국인 친구들과 가게에 들러 주문을 했다. 외국 분들도 있고 혹시라도 주문을 잘못 받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쉬웠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 여기~ ~   카즈믹 폴릿음~플리즈"

“네?

“카즈믹 폴릿음~유 노?

……?

 

한국말로 주문을 할 거라 방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여성 분은 계속 그 정체 모를 단어를 외쳤고, 난 계속 반문했다. 급기야 그분은 어깨를 과도하게 들썩이며 매니저를 불러 따지듯 물었다. 결국 주문한 음료와 추가 서비스 안주가 나가고 사태가 진압되었다. 가게 구석에 숨어 멍 때리고 있던 나를 매니저가 불렀다. 아까 뭐 때문에 그런 거냐 라고 묻길래 나는 ‘카즈믹 폴릿음’ 이라는 칵테일을 처음 들어봐서 계속 되물었다고 했다.

 

"그거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라는 칵테일이야. 저 양반이 혀를 무지 꼬긴 했네. 평소엔 한국말 잘 하다가 외국인이랑 오면 꼭 저러는 애들 있어. 혀 잔뜩 굴리면서 과하게 행동하는 애들 말이야...... 

불쌍한 애들이야 다음에 오면 잘 해줘. 하하하”


대체 어디서 영어를 배우면 코스모 폴리탄이란 단어를 카즈믹 폴릿음(솔직히 ''은 들리지도 않았다)으로 발음할 수 있는 걸까? 정말 나도 좀 배우고 싶었다. 그 엘레강쓰하고 뽠따스띡한 발음을.

 

이 곳에서 일한 지 3달이 지났지만, 누구 말마따나 하도 욕을 많이 먹어 영생의 길로 접어들 지경이었다. 서비스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덕분에 근무가 끝나도 선배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반복해서 교육을 받았고 또 받았다. 지겹도록.


", 넌 바텐더가 무슨 뜻 인줄은 알아?"

 

새로 들어온 병 맥주를 냉장고에 채워 넣고 있는 내 등뒤로 매니저의 질문이 날아 들었다. 또 시작이구나 싶어 대충 농을 쳤다.

 

"? 치킨 텐더는 아는데, 바텐더는 잘 모르겠네요."

"그래! 그게 그거야! 잘 알고 있네. 공부 좀 했나 봐"

“헐……

 

알고 보니 텐더(Tender)라는 말 속에 부드럽게 하다라는 뜻과 돌보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내가 재차 바텐더의 진짜 의미가 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이야기 해 주었다. 바텐더는 항상 기꺼이 가게를 찾아준 손님을 위해주고, 상대가 자주 찾는 술과 음식을 기억해 제공하고, 손님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이 머무는 이 공간(Bar)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내 눈에 보이던 그는 어제까지 내가 죽도록 싫어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두 모금도 채 안 되는 칵테일 한 잔을 위해, 수 백 번을 연습하고 양 손 가득 악성 주부습진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새벽 4시에 마감 끝내고도 가게에 남아 외국 서적을 뒤지며 칵테일을 연구하고 한 잔 한 잔에 인생을 담으려 노력하는 지독한 사람이었다.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눈 앞에 있는 벽을 두들겨 부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 손이 계란인지, 바위인지는 생각지도 않고 그냥 부셔져라 두들겼고 안 되면 세상을 탓하며 주저 앉자 세상을 원망했다. 돈이 없어 유학을 못 간 것도, 여기서 새벽까지 일하는 것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다 세상 탓이었다. 나를 불편하게 하던 손님들이 문제였고, 나를 잡아먹을 듯이 다그치는 바텐더가 죽일 놈이었다. 하지만 그와 세상이 내게 해주고 싶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진상은 나였고, 죽일 놈 또한 나였다.


시간이 흘러 그 곳에서의 마지막 마감일 이었다. 그는 내게 선배로서 마지막 잔소리를 해주고 싶다며 손수 칵테일 한 잔을 만들어주었다.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들 땐 항상 베이스를 이루는 술을 기준으로 다양한 리큐르(알코올 음료)를 섞는다. 좋은 평가를 받는 칵테일은 기본이 된 베이스를 잃지 않으면서도 리큐르의 새로운 풍미가 잘 묻어 나오는 것이라 했다.

 

칵테일하고 우리 인생이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세상이 힘들고 더럽다고 스스로 준비하지 않고, 원망만 하고 있으면 안돼.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좌절과 자책이라는 늪과 같은 리큐르에 자신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지. 맛이 없어진 리큐르는 그냥 하수구에 버려져. 어떤 것을 섞어도 맛없는 칵테일이 되니까.”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비록 네가 껌껌한 오크 통 속 위스키처럼 빛이 보이지 않을 거야. 막막하겠지. 하지만 그 순간이 너를 더 깊게 만들어 주는 순간이 되지. 그리고 그 순간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면 나중엔 그 어떤 리큐르와도 잘 어울려 최고의 풍미를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난 세상 탓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인 채 인 것 같다. 언젠가 꼭 그 가게를 다기 찾아가리라. 그리고 그 때 그 칵테일을 주문하며 웃을 날이 오길 상상해 본다. 나의 리큐르는 지금 더 숙성되고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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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자 모기채_어서 여기서 꺼져 !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20 09:00 / Category : 직장인 필진/벨제붑의 노래


전자 모기채어서 여기서 꺼져!

 

지루한 재수 생활을 끝내고, 대학교 문턱을 넘은 나를 반긴 건 설렘이 아닌 허무였다. 1년 동안 그토록 질리도록 겪었던 그 허무함을 대학에서 다시 만났다. 대학 가면 다 된다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은 건 아니었지만, 1년 지난 중고 신인을 반겨줄 무대를 찾기란 쉽지 않았고, 서서히 나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부초처럼 떠다니기 시작했다.

 

표준말을 쓰는 게 어색하다 보니 내 말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5개의 선택지 중 하나의 정답만을 고르던 내가 백지 위에 너의 생각을 표현하라는 서술 방식은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 같았다. 아니 헐벗은 느낌이 들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어두침침한 도서관에 다시 들어가 책과 씨름하는 건, 1년이나 손해보고 들어온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동기들과 즐겁게 어울리지도 못했다. 마지막 카드로 휴학을 만지작거리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만약 내가 그 날, 그 곳에서 그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대학 생활은 파도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학과 사무실에 서류를 제출하라는 문자를 받고, 입학 후 처음으로 학과 건물로 갔다. 건물을 헤매다 한 동아리 실 문을 잘못 열었고, 한참 밴드 연주 중인 동아리 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이내 사과하고 나가려는 나를 한 선배가 붙잡고는 크게 반가워하며 악수를 청했다. 안 그래도 신입 부원이 필요하던 찰나였는데, 잘 왔다고 하며 나를 억지로 끌고 들어와서 자리에 앉혔다. 어쩌다 보니 그날부터 난 동아리에 기획 부장이 되었고 운명적인 그 선배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악기도 만질지도 악보도 읽을 줄도 몰랐다. 하지만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즐거웠다. 기획 부장으로서 동아리 생활이 적응될 무렵, 저녁 술자리에서 선배가 내게 말했다. 우리 같이 일 한 번 해보자고. 예전부터 그 선배의 호기가 맘에 들었던 나는 흔쾌히 제안에 찬성하긴 했다. 하지만 도대체 뭘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건가 싶어 재차 물었다.

 

“뭐긴 뭐야, 전자 모기 채를 팔자는 거지!

“그게 뭔데?

 

전자 모기 채는 당시 선배 고향 부산에서는 여름 철이나 낚시 다닐 때 많이 쓰는 제품이었는데, 서울 자취방에 모기가 많아 청계천에 사러 갔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없는 게 없다던 그 청계천 전자상가를 하루 종일 뒤져도 찾을 수 없었고, 상인들에게 미친 놈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종일 발 품 판 게 너무 짜증나 억울해하는 찰나, 이 걸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아리 사람들과 같이 한 번 시작해보자고 했다.


선배는 각종 알바로 벌어놓았던 돈으로 모기 채를 주문했고 도착하는 날짜에 맞춰 집으로 날 불렀다. 나도 전자 모기 채는 처음 보는 터라 내심 기대하면서 선배 자취방 문을 열었다. 원룸 문을 열자마자 원룸 입구 신발장까지 가득 찬 모기 채 박스와 공포가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그 선배의 표정…… 웃프다라는 표현이 바로 그 뜻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가진 건 열정밖에 없던 대학생들 아니던가! 특히 선배는 당장 모기 채를 팔지 못하면 그 달 월세를 못 낼 판국이었으니, 없는 명분까지 만들어서 매달려야 할 판국이었다.



 다음 날, 가방 한 가득 모기 채를 채워 넣고 서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종로로 향했다. 간밤에 집 앞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서 가져온 좌판까지 들고서. 우리는 예정대로 광화문 광장 길 한 켠에 판을 펼치고 모기 채를 진열하기 시작했다. 지나던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인상 험악한 아저씨 몇 분이 우리 가게(?) 앞으로 오더니 발로 좌판을 툭툭 차면서 시비를 걸어왔다.

 

“여기 누구 허락 받고 하는 거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저희가 학비를 벌려고 이렇게

“아니 그니까, 누구 허락 받고 하는 거냐고?

“에이~ 허락은 무슨 허락입니까? 저희도 서울 시민인데 여기서 장사 한 번만 할게요

 어차피 학생이라 오래 하지도 못합니다. 하하하”

“아니 이 새끼들이 장난하나! 당장 치워, 치우라고”

 

좌판을 손으로 들었다 놨다 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산으로 갔고, 행인들이 무슨 구경거리 났나 싶어서 몰려 들었다. 나는 첫 날부터 재수 옴 붙었구나 싶어 눈치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선배의 사투리가 터져 나왔다.

 

“와 이기 다 니 땅이가? 아니 돈 없는 학생들이 학비 좀 벌라꼬 장사 좀 한다는데 뭐가 문젠데?

“뭐! 뭐라고? 너 지금 초면에 반말 하는 거냐?

“와~ 쫄리나? 시비는 느그가 먼저 안 걸었나? ~마 지기삘라!

 

선배의 유려한 사투리 욕지거리에 아저씨들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고, 밀리지 않으려 계속 목소리를 높였다. 겨우 주변 상인들의 만류로 상황은 수습 되었고, 우리는 방학 기간만 장사를 한다는 조건으로 그 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강남 역에 상인들과 다시 한바탕 하고선 2호점을 열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장마가 짧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모기들이 더욱 극성을 부렸지만, 난생 처음으로 모기에게 감사한 여름을 보냈다. 모기 채는 입 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우리는 동아리 후배 몇 명을 더 고용했고, 오토바이까지 이용해 계속 물건을 실어 날랐다. 처음에 우릴 보고 죽일 놈, 금방 망해 없어질 놈들이라며 비웃던 상인들도 슬슬 우리 아이템을 탐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길 건너에 한 노점에서 우리와 비슷한 제품을 가져다 팔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잘 나가던 상점이다 보니 벤치마킹을 당했다고 여겼지만, 그렇게 우릴 욕하던 분들이 이제 돈이 되니 가격을 낮춰가면서 우리 사업 영역을 침범하는 걸 보니 참 기분이 묘했다.

 

신규 경쟁사들이 나타난 그 시점에 우리에겐 또 다른 시련이 닥쳤는데 다름아닌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었다. 당시 그 행사를 위해 구청에서 공무원들이 노점상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온갖 핍박에도 버티던 상인들도 공권력 앞에선 별 수 없었다. 우리도 처음엔 별 수 없이 장사를 접었었는데, 시간만 보내다 여름 한 철 다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단속을 피해 틈틈이 가판을 열었지만 번번이 구청 공무원에 쫓겨나길 수 차례, 너무 속이 상해 선배와 낮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그 가게에 모기가 너무 많아 팔다 남은 모기 채로 모기를 잡으며 술을 마셨는데, 주인 분이 신기한 듯 보다, 계산을 할 때 몇 개 두고 가라고 하셨다. 그 순간 우리는 방문 판매라는 전략을 생각해냈고, 좌판과 병행하며 계속 판매를 이어갔다.

 

항상 좋은 결과를 낸 건 아니었지만, 방판 덕분에 남은 물건의 상당수를 잘 처리할 수 있었고 행사가 끝난 후 다시 가판에서 더욱 힘을 내 장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집주인을 몰아낼 정도로 쌓여 있었던 모기 채 박스들은 어느덧 바닥을 드러냈고, 나는 고대하던 등록금을, 선배는 중고차를 살 수 있을 만큼의 많은 돈을 벌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걸 했나 싶다. 경험 많던 그 선배와 다르게 나는 당시 길 한 켠에 좌판을 펼 자신도 없었고 행인들에게 한마디 말 거는 것도 힘들었다. 장사는 말할 것도 없고, 알바 경험도 전무했던 나를 덥석 불러 앉힌 그 선배의 과감성과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충실히 과제를 수행했던 내 모습이 콜라보를 이뤄 좋은 결과를 낸 것이었다.

 

무한 경쟁시대,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의 나선을 걷다 보면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잃어버리곤 한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우울함과 허무함 빠져 몸부림치며 빛을 잃어간다. 나는 그럴 때 마다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린다. 여전히 나는 나를 파는 것에 자신이 없지만, 그때 그 소중한 경험이 내 뒤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우리는 문득 세상이 ‘툭’하고 던져주는 경험이라는 선물을 그냥 지나치거나 피하곤 한다. 하지만 그 경험들을 하나씩 만나고 소화시켜 내 속에 발현시킬 때 내실을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세상이 내게 던져줄 경험의 반에 반도 겪어보지 못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다는 것 안다. 그래도 세상은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딱 그만큼만 볼 수 있는 것 같다. 경험하고 또 경험하자. 부딪히고 또 부딪히자. 오늘의 실패는 언젠간 크나큰 영적 성숙으로 그대를 축복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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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적성은 없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20 08: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퇴사 어게인


적성은 없다.

 

기대라고는 전혀 없는 학기가 시작되었다. 수업을 들으러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기숙사에서 강의실까지 걸음을 세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공학관에 도착했다. 초록색 공기였다. 문과생인 네가 이곳에는 무슨 일이니?도도하고 차가웠다. 강의실 문을 열었다. 칠판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솜사탕처럼 하얀 머리와 웃을 마다 동그란 안경너머로 사라지는 . 힘주어 말씀하실 때면 소년처럼 빨갛게 상기되는 . 딱딱한 수학공식 대신 몸을 창가에 기대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시를 읽어주실 같은 느낌이었다.

 

김가영”     “.

이다혜”     “.” 

한춘희?”    “.


키득키득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간, 특히 출석을 부를 때면 흔히 있는 이였다. 출석을 부르셨는지 교수님께서는 출석부를 덮고 칠판에 크게 적성이라고 적으셨다.

 

여러분, 적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 당연하죠!마음속으로 외쳤다.

 

아마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크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 에요

 그런데 .. 내가 여러분보다 오래 살았잖아요? 내가 살아보니까 적성이라는 것은 없는 같아요.


교수님은 마커를 만지작거리면서 교단 위를 왔다 갔다 하신다. 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신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공학을 공부 하다 보면 어렵다는 생각이 때가 많아요. 그럴 때면 이건 적성이 아닌가?다른 것을 공부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거에요. 그런데 적성은 따로 있는 아니에요. 하면 되요. 어렵다고 하지만 하면 다됩니다. 공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우리 한번 공학을 적성으로 만들어 봅시다. 열심히 해봅시다!

 

교수님께서는 한쪽 눈을 찡긋 하시더니 출석부를 챙겨 강의실을 나가셨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어쨌거나 나의 선택으로 오게 된 이곳에서 언제까지 웅크리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면 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털고 일어나기로 했다. 그날부터 매 수업시간마다 앞으로 한 칸씩 자리를 옮겼다. 용의 꼬리가 되지 못했으니 뱀의 머리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학공식에 괴로웠고, 복잡한 형상을 척척 만들어 내는 친구를 볼 때면 자괴감에 빠졌다. 그럴 때마다 ‘이러면 안 돼’ 마음을 다잡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A반 한춘희 입니다.

“응 그래. 무슨 일이지?

“모델링 실습시간에 배운 것들을 연습해보려고 하는데요, 컴퓨터실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기숙사 생활하지? 노트북으로 하지 왜?

“네, 노트북이 있긴 한데, 사양이 좋지 않아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자꾸 꺼지고 느려서 연습하기가 어려워서요..

“음.. 열쇠를 줄 께. 대신 깨끗하게 사용해야 해. 연습 끝나면 정리하고 가고, 아침에도 일찍 와서 문 열어 놓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컴퓨터실 문지기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저녁을 먹고 다시 컴퓨터실로 왔다. 분명 수업시간에 교수님과 함께 할 때는 되던 것이, 혼자 하니까 왜 안 되는지.. 답답한 노릇 이였다. 몇 시간 동안 선하나 그은 적도 있었고,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여러 번 이었다.

 

“춘희야, 잠깐 이것 좀 봐줄래?

“응.

 

친구의 자리로 가서 마우스를 만지려는데 기분이 묘했다. 수업시간에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보라야, 보라야.’ 하며 내가 애타게 찾았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문지기 생활 한 학기 만에 일어난 일 이었다. ‘하면 정말 다 되나 봐.’ 공학이 내 적성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 2편  적성은 없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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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전문대 적성, 직장인 글쓰기, 직장인 에세이, 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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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물로 시작한 캠퍼스 라이프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06 10:31 / Category : 직장인 필진/퇴사 어게인

눈물로 시작한 대학 생활

 

수능이 끝났다

성적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점수를 짐작할 있었다. 친구들은 사물함 뒤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모의채점결과와 배치표를 번갈아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나도 무리에 끼고 싶었지만 그럴 없었다. 배치표에 내가 있는 학교는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까지는 벼락치기로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유지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달랐다. 이상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았다. 성적은 쭉쭉 떨어졌다. 성적을 올려보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노력이 부족했는지, 방법이 못되었는지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결국 수능을 망쳤다.

 

수능을 보기 전까지는 3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갑질을 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니 죄인이 되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소복을 입고서 석고대죄를 하고 싶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함 없이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죄송했다. 팍팍한 공무원 월급에도 과외 시켜 달라, 학원 보내 달라공부에 필요한 것이라면 모두 들어주셨다. 성공하려면 좋은 학교를 가야 하는데, 그럴 없으니 답답했다. 깜깜한 터널 속에 있는 같았다. 살아야 이유가 없었다. 대학에 가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자.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아프지 않게 죽을 있을 같았다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면 의심을 있으니, 여러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제를 조금씩 샀다. 어느새 서랍에 수면제가 수북해졌다.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언제, 어떻게 죽을까?’ 머릿속에는 온통 죽는 생각뿐 이였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빠는 신문을 내밀었다

취업 특성화된 학교라면서 지원해보라고 하셨다. 취직하기에는 공대가 좋을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취업에 특성화된 학교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전공과목이 공대 과목 이였다. 형편없는 성적 중에서도 수학, 과학은 정말 형편없었다. 수학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수학을 혐오했다. 그러나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이었던 내가 얼떨결에 공대에 지원했다. 비록 지방에 있는 전문대였지만 어느 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던 나를 받아준 학교가 고마웠다. 통학하기에는 조금 곳에 위치하고 있어, 기숙사 생활을 하기로 했다.

 

입학식이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차에 짐을 싣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밖으로 논과 밭이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네비게이션의 안내음성이 나왔다. 차문을 열자, 구수하지만 그리 반갑지 않은 거름냄새가 반겨주었다. 분명 면접을 보러 한번 와본 곳인데 낯설기만 했다.

입학식을 마치고 부모님과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가 나왔는데 먹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나와 같은 기분이신지 우리 셋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고기를 썰어 꾸역꾸역 입으로 넣었다. 씩씩하게 먹지 않으면 같았다.


캠퍼스라고 하기에는 좁은 잔디밭,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대학보다는 고등학교라는 말이 어울렸다. 교정을 둘러보고 부모님께서는 기숙사 건물까지 데려다 주셨다.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실내화를 꺼내 신은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갔다. 다시 부모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하고 뒤를 돌아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멀리였지만 있었다. 소매로 눈가를 훔치시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이상 달려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씩씩하자고 다잡았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쩌다 인생 이렇게 불쌍하게 걸까. 동생에게는 떳떳하지 못한 언니가 되었고, 엄마를 울린 불효녀가 되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입을 틀어막고 하수구 귀퉁이에 쭈그려 앉았다. 제대로 씹지 않고 삼켜버린 돈가스 때문인지, 아니면 이러고 있는 역겨운 모습 때문인지. 점심으로 먹은 것들을 그대로 게워냈다. 두들겨 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 차례 그렇게 게워내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머리에 묻은 것들을 떼어낼 힘도 없었다. 가만히 토사물을 보았다.


너희들도 쓸모 없어서 흡수되지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구나.” 

완전히 혼자가 기분이 들었다



- 1편 눈물로 시작한 캠퍼스 라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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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글쓰기_퇴사 어게인:: 전문대 졸업자의 취업 에세이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06 10:14 / Category : 직장인 필진/퇴사 어게인


제목: 퇴사 어게인 – 전문대 졸업자의 취업 에세이


직장생활연구소 필진 4_ 필명 "춘희" 

글을 쓰는 3개월을 ‘춘희’ 라는 이름으로 살기로 했다. 

봄에 태어났다고 그리고 ‘춘희'라는 이름이 될 뻔했기에

좋아하는 ,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봄이 오기를 바라는 5년 차 직장인.


이들을 위해 펜을 들었다. 

 

수능을 봤으니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을 했으니 취직을 위해 정신 없이 달려기만 한 직장인들.

원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홀로 자취하고 있는 20대 직장인 여성, 

퇴근 후 집에와 씻고 누우면 12시가 되는 똑딱이 생활을 하는 직장인

이직할까? 시집갈까? 때려 치고 여행이나 갈까? 고민하는 20대 후반여성

당차게 입사했지만 하는 일은 복사용지 나르기, 형광등 갈기생수통 교체 등 

꿈꿔왔던 회사생활과 다른 현실에 괴로워하고 있는 신입사원

 

전문대를 졸업한 직장인들에게는 공감을 주고 4년제를 졸업한 직장인들에게는 위로와 위안이 되어준다.




글 순서

. 집을 떠나

 - 눈물로 시작한 캠퍼스 라이프

 - 적성은 없다.

 - 브라운 아이즈 그대

 - 받을까, 말까?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 세 그루 나무

- 억울한 기분

- 현장 다녀 올게요.

- 샴푸 가자!

- 소독약 냄새 나는 병실에 누워

- 저는 왜 안되나요?

- 사직서


. 퇴사 후

- To the back

- 이상과 현실

-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 나마스떼! 민폐 수강생

- 퇴사 어게인


Tags : 글쓰기, 전문대 취업, 직장인 책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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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글쓰기_실패를 꿰어가며 부르는 벨제붑의 노래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04 10:10 / Category : 직장인 필진/벨제붑의 노래

 

제목: 실패와 실패를 꿰어가며 부르는 벨제붑의 노래


직장생활연구소 필진 2호_ 필명 해적왕 


재수생활, 불황과 취업난, 직장 초년생활, 사업 실패와 빚, 재취업 으로 이어진 지난 10년의 세월. 

그 경험 글로 토해내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펜을 들었다. 

남들보다 항상 늦었던 경험담을 전달하여 독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고 사업에 실패하고 빚을 지고 끝내  자살

까지 생각했던 그 순간의 경험을 돌이켜 불안와 불황 그리고 불행의 시대를 이겨나가고자 하는 독자

와 소통하고 싶다.  




글 순서

1. 1호선 노량진 역지옥철의 땀냄새 보다 먼저 만난 그 아침 비린내

2. 전자 모기채어서 여기서 꺼져!

3. “카즈믹 폴릿음”_ 외국인 보다 더 혀를 꼬던 고상했던 이태원 된장녀

4. 우유배달과 선교사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했던 MRI

5. 취 직요즘 젊은이들은 눈이 높아 큰일이야. 중소 기업에선 사람 못 구해 난린데 말야

6. Refresh-_ 대학원과 취업난 그리고 나꼼수

7. 퇴근무심한 이야기에 지옥을 맛보다.

8. 살의(殺意)와 사리아직 이것도 못해요?

9. 지옥에서 탈출하다직장을 떠나고 싶은 자

10. 홍역맑소 슬픈 강아지의 마지막 눈빛

11. 현금 서비스탈출하라지옥의 무한 루프

12. 그래도 친구마 됐다우린 친구 아이가

13. 직원vs사장돈 받는 자와 주는 자.

14. 도광양회역전의 베테랑다시 전장으로

15. 타짜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까 ?



Tags : 직장생활연구소 필진, 직장인 글쓰기, 직장인 책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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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호선 노량진 역에서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3.04 09:42 / Category : 직장인 필진/벨제붑의 노래



“니는 몇 점이고? 내는 마... 망했다 아이가!

“내도”

300점은 넘었나?
“어...
“내보다 잘 봤네? 새끼, 끄지라!
“뭐라노! 내도 망칫 다니까!

“아 미치긋네, 우짜지?


나는 단군 이래 가장 학력이 낮은 세대,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있을 꺼라 굳게 믿고 있었던 세대였다. 그 여유로웠던 이해찬 세대들은 2002년 수능 시험에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뉴스에서 전설로만 전해지던 풍경들 -수능 시험장에서의 비명소리, 1교시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린 학생들- 을 실제로 목격했고 나 또한 그들과 똑 같은 마음이었다. 새벽부터 어머님께서 정성껏 준비하신 도시락은 채 열어보지도 못했다. 핼쑥해진 얼굴로 도망치듯 시험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 우리 교실은 300점을 넘는 학생들(당시 수능 만점은 400점이었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로 갈렸다. 내가 그 문제를 왜 그렇게 풀었을까 하는 자책과 탄식만이 공허한 교실을 가득 매웠다.

시험이 끝나고 수고했다며 나를 다독이시던 부모님도, 점점 어두워지는 나의 표정을 이내 읽으셨으리라. 나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고, 그냥 말을 잃어 갔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망망대해 위에서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시험 성적표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버지는 근처 중국집으로 외식을 가자 셨다. 간만의 외식에 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탕수육부터 게걸스레 먹어댔다. 요리 접시가 비워지고, 이어 나온 자장면을 먹으려던 순간 어머님께서 나직이 내게 말을 거셨다.

 

“그래...몇 점이라고?

“저...그게

300점은 넘었제?

“아니요”

 

순간 '' 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니 내려치신 게 맞을 거다.

 

“재수할 준비해라.

“저...저는...

“시끄럽다...가자...다 일어나라”


내가 왜 재수를 해야 하는 지 듣고 싶었다. 아니 그 자리에서 싫다고 큰소리로 따지고 싶었다. 정말 답답했다. 하지만 자장면을 먹다 말고 가야 하는 동생들의 원망 섞인 눈빛과 휴지로 입을 닦으며 연신 가슴을 두드리시는 어머님의 애잔함을 이겨낼 순 없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선 아무 누구도, 어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차 안엔 기름진 자장면 냄새만 가득했다.


다음 날부터 어머님은 서울에 계시는 친척분들을 통해 유명한 재수 학원들을 알아보시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계셨다. 상경하는 그날까지 난 집안에 투명인간이었다. 이제 내 모든 삶은 입시,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만가면 다 된다는 그 말을 소나기처럼 맞아가며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난생 처음 집을 나와 타지로 떠나는 그 설레는 첫 경험이 이렇게 장식될 줄이야. 정말 꿈엔들 잊힐 리가 만무했다.

등록한 기숙사에 도착하니, 막 자다 일어난 듯한 감독관이 슬리퍼를 끌며 나와서 나를 안내했다. 방마다 다닥 다닥 붙은 이층 침대, 쾌쾌한 냄새가 나는 한 어느 방 한 켠이 내 자리라고 했다. 짐을 풀고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니 어느새 난 영락없는 노량진 재수생이었다. 감상도 잠시, 전국 각지에서 꾸역꾸역 밀려드는 학생들로 기숙 학원은 이내 가득 차버렸다.


한 강의실에 2-300명이 콩나물 시루처럼 끼어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했다. 교실에 있는 책을 다 쌓으면 하늘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수업은 이어졌고, 대출 이자 갚듯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의고사를 쳤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다음날 어김없이 학원 입구엔 진풍경이 펼쳐진다. 대문짝 만하게 계열별로 1등부터 100등까지 이름, 점수, 석차, 출신 학교가 기재된 방(?)이 붙는다. 콜로세움에서 칼부림을 보듯 학생들은 서로의 점수를 확인해가며 위로 위로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매일 새벽 여섯 시 반이 되면 어김없이 기상 방송이 울렸고, 로봇처럼 일어나 경주마처럼 학원으로 향했다. 3월의 어느 날 아침 내 코끝을 찌르던 짠 내음. 난 노량진에 온 지 한 달이 넘게 지나서야 그곳에 엄청나게 큰 수산 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여전히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 했길래 이 곳에서 이러고 있는 지를 말이다. 수험생이 모인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도 되지만, 그만큼 놀 거리 즐길 거리도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 학원을 땡땡이 쳤던 그날의 노량진은 정말 또 다른 의미의 천국이었다. 음식 가격은 쌌고, 즐길 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노량진에 있던 모든 만화방의 위치와 싸고 맛있는 맛 집을 다 외울 정도가 되었다. 만화방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고민하던 그 순간 마법처럼 그 분이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 , ! ‘오 필승 코리아!’ 이 얼마나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구절이냐며 한참을 비웃던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노량진에서 마포까지 이어진 인간 기차 행렬 사이에 끼어 있었다. 4강에 갈 줄이야. 내가 다시 수능 시험을 잘 쳐서 좋은 대학을 가도 그렇게 기쁘진 않았을 거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여전히 날씨는 좋았고, 2달간 축구에 미쳐있다 돌아와 보니 학원 친구들이 낯설 정도였다. 티셔츠를 괴롭히던 땀방울이 가을 바람으로 식혀질 무렵이 되어서야 난 스스로를 돌아볼 순간을 찾은 듯 했다. 3년간 갇혀있던 내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 고작 1년 간의 자유 박탈이라는 사실이 못 견뎌서였을까? 서울에서 나만 고생하고 있는 게 억울해서였을까? 며칠을 고민했지만 명쾌하게 지금의 날 설명할 순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옆 방 장수 생 형님의 이야기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옆 방에는 4수를 준비하던 형님이 있었다. 시험장에 다시 들어가면 얼마나 떨릴까에 대한 재수생들의 이야기 판에 슬그머니 끼어드셔서 나름의 덕담(?)을 해주셨다. 수능 시험이라는 게 준비하면 할 수록, 반복해 시험을 칠수록 편해지니까 걱정 마라는 뻔한 이야기였다. 평소 같으면 자기나 잘하지 라며 콧방귀나 꼈을 나였지만, 침대에 누워 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남들에 말에 이끌려 시간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닌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이것인가 등의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어설프게 반항하고 방황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1년 간 더 방황해 나중엔 내가 무엇을 꿈꾸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고, 그 장수 생 형처럼 마냥 시험을 치는 데 안주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 무한의 악순환을 계속하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냐, 이것이야 말로 진짜 실패 아니냐!’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부터 팬을 잡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뒤쳐진 진도를 따라잡는 게 힘겹긴 했지만 그 전보다 휠씬 홀가분해진, 다음 해 다시 노량진으로 돌아오진 않았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스스로 실패에 대해 정의내리는 것이다. 재수 1년간 겪었던 경험이 내 스스로 이를 가능케 한 것 같다.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실패를 피하며 살아가는 어설픈 삶보다는 처절한 실패의 경험을 통한 성장이 휠씬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십 여 년 만에 다시 그 곳을 한 번 더 찾아봤다. 장소는 변했지만 여전이 학원들은 붐비고, 수능에서 공무원으로 간판만 바뀐 채 노량진의 시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이 거리를 걷는 이들 중 과연 자기 스스로 실패를 정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이가 얼마나 될까 싶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때의 나처럼 방황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의 삶에 성공과 실패는 오직 자신만이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믿는 그 길을 당차게 걸어가라고. 비록 그 길이 자갈밭이라 온 발이 까지고 터진다 할지라도 언젠가 굳은 살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당신은 그 누구보다 더 힘차게 남은 인생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아직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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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글쓰기_ 직장생활연구소 1기 필진 글쓰기 강의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2.16 12:08 / Category : 직장인 필진

2월 10일 직장생활연구소 1기 필진 모임과 글쓰기 강의가 열렸습니다.  

선발된 11분의 필진 중에서 8분께서 참석을 해 주셨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은 멀리 부천 안양, 심지어 강원도 에서도 오신 분이 계셨고 특히 교수님과 출판사 에디터 분도 

오셔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모두 글을 쓰고는 싶으나 마음이 약해서 혹은 계기가 없어서 주저하고 계시다는 공통

점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회사생활, 군대와 같은 조직문화, 그리고 의미없이 그냥 흘러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글쓰기를 통해서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또한 매우 컷습니다.


운영자로서 이 글쓰기 프로젝트의 목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 고취
  • 글쓰기를 통한 직장생활의 정리
  • 개인 강점의 발견
  • 개인별 15꼭지 이상 집필
  • 1년 후 작가로서의 도약


누구나 필진에 응모할 수 있지만 3개월의 필진 활동이 끝나고 1기 필진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만큼의 글을 써야 합니다. 글을 쓰지 않는 필진은 무의미 합니다. 그저 인터넷에 글을 올리

는 것이 아니라, 책의 한 챕터를 쓴다는 생각을 가지고 모든 필진이 글을 쓸 예정입니다. 

저는 조금더 정리된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 명확한 타겟을 생각하며 글을 쓸 수 있도록 필진을 도울 것 입니다. 

인터넷에 "글쓰기" 혹은 "책쓰기"를 검색해 보면 엄청난 수강료를 받으며 글을 가르치는 곳도 있습니다. 

꼭 너무 많은 돈을 내지 않아도 반드시 글을 쓰겠다는 절실한 마음과 당장 반드시 무조건 쓰겠다라는 의지가

있으면 직장인 들도 충분히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훌륭한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월 2일 부터 시작되는 필진의 활동을 지켜 보면서 많은 분들이 같이 공감하고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 너무 기대가 됩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을 위한 프로젝트는 계속 됩니다. 

나만의 책쓰기에 도전하고 싶은 직장인들 다음 기수를 기다리지 말고 메일로 연락 주세요.

벌써 출간 계약이 완료되어 글을 쓰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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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연구소 1기 필진이 선발 되었습니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2.02 12:58 / Category : 직장인 필진



직장생활 연구소의 1차 필진을 10인이 선발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샘플원고를 토대로 선발된 분께는 매일로 개별 공지를 드렸습니다. 

 

평소에 글을 쓰고 싶으나 결심이 부족하셨던 분들그리고 글쓰기로 직장생활을 되돌아 보고 싶으신 분들께 최고의 기회가 될 겁니다. 기수별로 운영 될 필진 중 글솜씨가 놀라운신 분들 4명의 글을 가다듬어 출판사에 투고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아울러 2월 10일 혹은 11일에 필진 미팅과 간략한 글쓰기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시작은 작고 사소하지만 글쓰기를 발판으로 큰 끝 모습을 이루어내기를 바랍니다. 

필진으로 선발되신 분들의 놀라운 글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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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연구소 필진을 모집합니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5.01.19 17:00 / Category : 직장인 필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수 많은 답답한 일을 만납니다.

쌓여만 가는 일답답한 상사어처구니 없는 후배.

무엇보다 끝없이 소모되기만 하며 꿈을 잃어가는 당신.

그 때마다 한잔 술로만 풀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고민이 있다면 글로 써보세요. 답답한 일이 있다면 글을 써보세요.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글로 남겨 보세요.

 

글쓰기는 당신의 삶을 돌아보게 해 주고 머리속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 줍니다.

글을 쓰다보면 고민이 해결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왜곡된 거울이 아닌 당신 마음속의 깨끗한 거울로 당신을 비춰보세요

올바른 당신 모습을 바로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아울러 당신이 남기는 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번 해 볼 까?" 하고 고민만 해 봤던 것. 이제는 망설이지 말고 당장 행동해 보세요.

 

직장생활연구소의 1기 외부필진 선발 응모하세요.

글쓰기로 장생활의 가치를 더하고 의미를 바꾸세요.  

 

직.생. 외부 필진 모집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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