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싫지만 경쟁력은 필요한 직장인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3.29 07:07 / Category : 직장인 필진/어서와. 첫직장




'경쟁'은 죄가 없다.


 

'경쟁'이 가끔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경쟁'의 그라운드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류에게 경쟁이란 운명이자 곧 숙명이다. 3억 분의 1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땅에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경쟁을 경험했다. 인류는 경쟁의 역사를 통해 생존했고, 또한 수많은 경쟁을 통해 번영했다. 우리는 '경쟁'이라는 DNA를 타고 났다이제 경쟁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 세 가지 경쟁에 대한 기본 원칙을 기억하면 좋겠다. 

 



첫 번째, 우리의 삶은 곧 '경쟁'이다.


"나는 경쟁력이 있는 사람인가?"


혹시 나는 경쟁을 하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하는가그렇다면 위의 질문은 어떨까? 이런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경쟁의 틈바구니에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으면 경쟁력도 없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나는 임원은 바라지도 않아, 부장으로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목표야. 그게 더 좋지 뭐"  개인의 가치판단의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한 번은 되짚어 보자.  혹여 이솝 우화의 사례처럼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고 자위하는 것은 아닌가?  (사실은 높이 달려있어서 먹을 수 없는 것임에도..) 승진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사람이 대리, 과장, 차장으로 승진할 수 는 없다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넘친다상위 직급으로 올라 갈수록 상황은 더 힘들어진다혹자는 승진을 하기 위한 경쟁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승진을 위해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결과에 따라 승진을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경쟁 없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두 번째, 경쟁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경쟁이 문제고,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문제다.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다. 세월호 사태가 발생했을 때 박근혜 정부는 그 책임을 물어 해경의 해체를 선언했다. 그런데 해경의 무능함이 잘못이라 해서 해경이라는 조직 자체를 없애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경쟁도 마찬가지다. ‘경쟁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 해서 경쟁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문제는 경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있다. 때로는 경쟁도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신선한 자극과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경쟁구도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가수들을 끌어 모아 경쟁을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감히(?) 경쟁의 틀 안에서 배틀을 치를 것을 요구하고 이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인기의 비결이었다.  물론 잡음도 있었다. 김건모의 경우가 그렇다. 다른 출연 가수들은 탈락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반면, 그는 '립스틱 퍼포먼스'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남들은 경연 무대를 '경쟁'으로 인식했는데 김건모만 나 홀로 '예능'으로 받아들여서 문제가 된 것이다.


혹시 우리도 직장 생활하면서 '경쟁' '예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조직의 생리는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경쟁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경쟁력'이란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아름다운 몸을 갖고 싶다면 열심히 근력 운동을 하면 되는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보다 경쟁력을 갖춘 직업인이 되고자 한다면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세 번째, 경쟁에도 룰이 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선의'의 경쟁이다. 선의의 경쟁이란 곧 함께하는 경쟁이다. '경쟁'을 통해 성과를 내어도 그 방법이 올바르지 못하면 타인에게 인정받기 어렵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팀의 일부가 비난을 받는 이유도 이들이 공정한 경쟁의 룰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혜시비와 왕따 논란 밀어주기식 선수운영으로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모두가 인정할만한 경쟁의 룰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질 때에 비소로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김연아 선수에게는 아사다 마오가 있었고, 메시에게는 호날두가 있다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경쟁관계에 있었기에 우리는 희대의 명곡을 마주할 수 있었다선의의 경쟁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서로에게 자극과 도전 의지를 주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 하는 또는 강요 받는 순간, 그것은 이미 경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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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경쟁, 경쟁력,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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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숙명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1.23 07: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어서와. 첫직장



울지 않으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함정에서 벗어나기


직장인의 숙명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처럼 말이다. 만일 개인의 역량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가치 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직무전환이나 이직 혹은 퇴직 등을 통해 가치의 밸런스를 맞추게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인의 생존은 곧 '가치 싸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 ‘모수자천(毛遂自薦)'의 지혜가 필요


모 제과업체 광고의 CM송 중에 유명한 가사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그저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하지만 안타깝게도 직장 생활은 그렇지 못하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회사에서는 울지 않는 아이에게 절대로 젖을 주지 않는다.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과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힘들게 일구어낸 성과물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상사의 공적으로 둔갑하게 될 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로 자기위안을 하곤 한다.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의미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어디서든 빛을 발하게 되어있다는 의미)









‘직업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의미 있는 이야기다.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발할 그 날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업인이기 전에 직장인이다. ‘직장인’의 관점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에 대한 의미는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사실 관심조차 없을 때가 더 많다. 안타깝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때문에 타인의 ‘인정’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는 스스로의 일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꾸준히 증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직장인에게는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아닌 ‘모수자천(毛遂自薦)'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모수자천(毛遂自薦)'은 사기(史記) 평원군 열전(平原君列傳)에서 유래한다. 


진나라를 막고자 초나라와 연합을 하길 원했던 조나라의 평원군은 자신의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중 20명을 선발하여 초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한다. 그런데 20명 중 19명은 어렵지 않게 채웠으나, 마지막 1명이 마땅치 않아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때 ‘모수’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천거하며 나선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기용된 ‘모수’는 큰 공을 세우게 되고 그 이후로 중요한 일에는 어김없이 중용되는 영광을 누렸다. 






‘자기(가치) 관리’란 무엇인가? 

: 장점은 드러내고, 단점은 최대한 가리는 것


정말 대단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조직생활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이야기 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주머니 속의 송곳이 될 만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거나 혹은 평범한 사람일 지라도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증명을 해내지 못하면 자연스레 도태될 수밖에 없다. 꾸준한 자기관리는 필수다. 그러나 책 읽고, 외부 강연 듣고, 운동하고 금연/금주하는 것만이 자리관리가 아니다. 


직장생활에서의 '자기관리'에는 숨겨진 단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가치'다. '자기 가치 관리'가 곧 직장생활의 핵심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자기관리를 잘 한다라는 것은 자신의 단점은 최대한 가리고, 장점과 성과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조직에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라는 말이 있다. 불편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주인의식'보다는 '책임의식'을 

'자기 헌신'보다는 '자기 몰입'을 

'묵묵히'보다는 '톡톡히'를 

'Hard Working' 보다는 'Smart Working'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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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싸움(fight) vs. 갈등(conflict)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7.10 20:28 / Category : 직장인 필진/직장 담론



우리를 묻고 답하다


싸움(fight)과 갈등(conflict)

 

 


회사에서 우리는 갈등을 겪습니다. 상대방과 나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아 생기는 괴리감입니다. 생각의 다름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흔히 아는 다름을 틀림으로 인정할 때 생깁니다. 이 경우 갈등은 싸움으로 번집니다. 싸움은 갈등과는 달리 개인의 감정이 개입됩니다. 사사로운 감정이 갈등에 녹아 드는 순간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맙니다.

 

회의 때도 갈등이 생깁니다. 회의와 토론의 목적은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만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적은 사라지고 과정에 집중한 나머지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느 누구도 양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이론을 고수하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회의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한 때 유행했습니다. 타인의 의견을 비난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 동안 무조건 결론을 내기 위한 의사결정 기법들이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를 하다 보면 그러한 기법들은 이상적인 수준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훌륭한 기법들도 우리의 갈등 관리를 원활하게 해소해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모여 회의 기법을 배울 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돌아서면 이전과 똑 같은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싸우자는 거냐! 

갈등이 증폭되면 감정 싸움이 됩니다. 그러면 갈등의 목적을 잊게 됩니다. 나중에는 왜 싸웠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집니다.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고 우리는 싸움만 했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갈등은 더 두렵고 불편하기만 합니다. 결국 더 이상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갈등이 싸움으로 끝나는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이해와 존중입니다. 둘째, 양보와 배려입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틀렸다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사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다음으로 상대방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양보의 미덕을 갖고 노력을 기울이는 배려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하려면 협상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어느 한 쪽만의 양보와 배려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서로가 한 걸음씩 양보하고 한 걸음씩 배려하면 절충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러한 태도만으로도 갈등이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막을 수 있습니다.

 

계층 간 갈등, 지역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등 수많은 갈등의 원천은 자기 주장만을 고수하는 아집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을 확고하게 갖는 것은 신념이지만 자기 생각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집입니다. 신념과 아집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상대방을 갈등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 사람과 나는 갈등 관계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계산을 합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승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협상은 대립 각을 세워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닙니다. 상호 간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을 조성해가기 위한 발전적인 관계의 장인 것입니다. 그러니 신념은 고수하되 아집은 버려야만 합니다. 상대방의 신념과 나의 신념을 절충하고 상대방의 아집과 나의 아집을 조율해 가는 것, 그것이 갈등의 묘미입니다. 그것은 보다 나은 한 걸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통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싸우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결국 당신처럼 더 나은 결과를 원하는 당신과 똑같은 처지의 동료입니다. 그와 싸운다고 해서 어느 누가 내 편을 들어주지도 않을 겁니다. 만약 그가 당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면 싸움의 패배자는 당신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만약 그가 당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면 당신은 지위를 남용한 악덕 선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목적을 가진 대등한 존재와 머리를 맞대 고민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당신은 그가 없으면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도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것 하나만 기억합시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한 솥 밥 먹어야 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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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멋진 삶의 경계_ 성공 vs. 성장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5.29 13:43 / Category : 직장인 필진/직장 담론



나를 묻고 답하다

성공(success)과 성장(growth)

 

 


성공한 삶이 멋질까? 성장하는 삶이 아름다울까?

 

두 질문 모두 맞는 대답입니다. 성공한 삶이 어찌 멋지지 않으며 성장하는 삶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고 성장해야 성공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공부했던 곳은 故구본형 선생님의 제자인 정예서 선생님이 운영하신 함께성장연구소라는 단체입니다. 3단계로 구성된 과정은 저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습니다. 1단계는 치유와 코칭의 100일 쓰기라는 주제로 100일 동안 100개의 주제어를 가지고 매일 A4 용지 한 장 정도의 글을 썻습니다. 잘 쓰지 않아도 좋으니 쏟아내라는 선생님의 주문에 거침없이 써내려 갔습니다. 그 결과 나 자신에 대해 발견하게 되는 기회를 가졌고 그 가운데 선생님의 자상한 코칭이 곁들여져 삶이 정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2단계는 인문의 숲으로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읽고 감상문과 관련된 칼럼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수 천년 전 시대를 풍미했던 현자들의 책을 읽으며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전을 어떻게 읽을까라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시중에는 어려운 고전을 쉽게 풀이해 놓은 책들이 많으니 여러분들도 서슴지 말고 서점에서 동양 고전과 서양 철학 책을 선택해 보시기 바랍니다.

 

3단계는 책쓰기 연구원으로 자신의 주제를 가지고 직접 글을 쓰는 단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그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 글이 아직 서툰 것은 성장하는 중인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구구절절 함께성장연구소에서의 활동을 열거한 것은 제가 그 시간 동안 성장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사실 저는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성장 없는 성공은 없다. 무턱대고 성공하면 성장할 기회도 없다. 그래서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성장해야 성공이라는 열매도 달고 맛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정에서 선생님의 말씀대로 징검다리처럼 중간 중간 작은 성공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작은 성공들은 제가 각 단계를 완수했을 때의 기쁨일 수도 있고 괜찮은 글 한 편을 썼을 때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그러한 작은 성공들은 앞으로 꿈꾸는 성공의 징검다리가 되는 듯합니다.

 

성공한 사람의 삶은 화려합니다. 모자람이 없어 보이고 사람들이 칭송합니다. 어딜 가나 대우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가장 화려할 때가 가장 두렵다고. 화려함이 조명이 꺼지면 지독한 고독과 소외감이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성장입니다.

 









지속성장. 

많은 기업들이 "지속성장"이라는 단어를 쫒습니다. 개인도 기업도 매 순간 성장하지 않으면 성공은 단지 찰나의 것일 뿐입니다. 하나의 히트곡을 내고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가수가 되어 버립니다.  머무르는 성공은 추월 당하기 마련이고 과거의 영광으로 잊혀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성공의 순간 보다는 성장의 과정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니, 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장을 유지해 가야 합니다. 성공의 순간을 연장하는 유일한 방법이 성장이듯 성공의 순간을 맞이하는 유일한 방법 또한 성장뿐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일부 신입사원들이 입사를 하면 회사의 사장이 될 거라며 포부를 내놓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성장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입사하자마자 요직에 앉는 상황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입니다. 세상은 성장하는 사람들 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성장하지 않고 머물러 있다면 다른 사람의 성장과 성공을 구경하게 될 뿐입니다.

 

성공이라는 꿈은 멋집니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여정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성장 끝에 이룬 성공이라 멋질 테고,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게 해준 성장이라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연수원 입구에는 날로 새롭게라는 창업주의 메시지가 커다란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같이 성장하라는 다른 표현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었습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내가 될까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성공을 꿈꾸며 어떤 성장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되새기며 오늘도 성장한 자신을 칭찬하고 내일도 성장할 자신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공은 달지만 이내 곧 쓰고

성장은 쓰지만 이내 곧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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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입사원 때의 포부는 허언이었나요?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5.02 18:03 / Category : 직장인 필진/직장 담론




나를 묻고 답하다

야망(ambition)과 포부(aspiration)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꿈’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성공하고 말겠다는 ‘야망’을 품었을 테고 다른 어떤 이는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열망’을 품었을 겁니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 미국의 학자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William Smith Clark의 유명한 말처럼 꿈을 이루기 위한 다짐과 의지를 불살라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야망’에 대한 해석입니다. 사실 야망과 포부는 다른 개념이 아니지요. 하지만 야망이라는 말에서 종종 잠재된 ‘공격성’을 느낍니다. 한자로 풀이하면 조금 쉽습니다. 야망(野望)의 ‘들 야’자는 들판, 야생의, 거친 등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약간은 부정적인 느낌을 전합니다. 그래서 야망은 좋은 말로 적극적이고 나쁜 말로 공격적입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달려들어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반면, 열망 (熱望)으로 대변되는 포부 (抱負)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는 사전적으로 ‘마음 속에 품은 앞날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 희망, 자신’을 의미합니다. 이는 간절한 희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준비와 태도에 대한 개념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망보다는 포부를 가지자는 것입니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두 말의 개념은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만, 제가 감지한 단어의 뉘앙스 (nuance)의 차이로 말하는 것이니 다른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그 미묘한 차이에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야망을 품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는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포부를 가진 혈기 왕성한 젊은이는 성공이라는 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선별할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이 제가 감지한 두 말의 뉘앙스 차이입니다.









누구에게나 야망은 있습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야망은 욕심이라는 감정과 공격이라는 태도를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내 눈앞의 목표에만 집중한 나머지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기적이거나 독단적인 판단과 선택을 하기 십상입니다. 물론 성공할 확률은 매우 높아 보입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야심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야망을 이룬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대우를 받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회사에서 쳐다볼 수 없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야심가일지도 모릅니다. 목표를 위해 독단적이고 직원의 사소한 희생은 무시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야심가는 아닐 겁니다. 

그들 중에는 열망을 위해 포부를 갈고 닦은 이들도 많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성공한 사람들이지요. 야심가들의 성공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자기 존중과 타인에 대한 겸손’입니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과의 융화를 통해 ‘함께’ 성장하고 성공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론 야심에 휩싸이면 불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는 일에 집중하거나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로채 자신의 것인 양 과시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야망을 불태워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성공에 박수를 칠 사람은 없겠지요. 반면 자기 존중과 타인에 대한 겸손을 갖춘 이들의 열망은 오히려 다른 이들의 지원과 응원, 축하를 받습니다. 세세한 예를 들어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알아챌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겁니다.



인생이라는 연극의 주인공은 분명 ‘나’, ‘자기 자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나의 무대보다는 타인의 무대에 시선을 돌리고 그 연극보다 내 연극이 나아야 한다거나 그 연극이 망해야 내 연극이 빛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야망이라는 왜곡된 생각과 태도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무대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실 다른 이의 무대가 어쩌고 저쩌고 간섭할 겨를도 없습니다. 그저 나의 무대에서 나의 역할에 충실하면 될 일입니다. 물론 다른 이의 연극을 감상하고 배울 점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굳이 비교하지도 간섭하지도 맙시다. 그렇게 야망보다는 포부를 갖고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갑시다.





야망은 다 보이지만 몰래 품고

포부는 안보이지만 한껏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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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겨우 살아내기 위한 삶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3.30 10:13 / Category : 직장인 필진/직장 담론



삶을 묻고 답하다

생존(survival)과 영위(operating)

 

 

생존경쟁의 시대 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다른 누군가와 견주어 평가를 받고 또 상대방을 가늠합니다. 인구 감소로 상대해야 할 경쟁자의 수는 줄어든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경쟁의 강도는 훨씬 더 커진 것 같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제치고 짓밟지 않으면 삶이 불가능한 것처럼 세상은 우리를 채찍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실패를 하면 올바른 경쟁에서 진 것이니 그냥 받아 들이라고 말합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거론된 적자 생존이라는 말은 놀라울 정도로 진화한 우리들의 삶을 여전히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약육강식이라는 물고 뜯기는 처절함 마저 당연한 것처럼 다가옵니다.

 

네 삶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

교과서에나 등장할 법한 문구는 이제 감흥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적자생존의 환경과 약육강식의 논리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기에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자존감의 상징이며 이는 아직까지 진화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삶은 살기보다 견디기에 급급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삶을 마음껏 누리도록 내버려 두질 않습니다. 그러니 갈팡질팡할 수밖에. 추구하는 가치와 당면한 현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일 수밖에 없는 그 현실이 밉습니다.

 

 

회사에서도 살아남기바쁩니다.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 하지요. 그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자 내가 이 회사에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잊혀지면 끝이다. 무조건 살아남자. 지면 죽는다. 무조건 이기자.” 그러니 경쟁과 투쟁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대안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 특히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경쟁자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제치고 앞서 가야만 나의 존재가 부각되고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줍니다. 그러니 삶이 팍팍해 집니다. 친구? 직장에서는 친구는 사치스러운 표현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위건 아래건 서로를 경계하고 자석의 같은 극처럼 밀어내기 바쁜 곳이 직장이라며 한탄을 쏟아내기도 하지요.

 

 

안타깝습니다.

이렇듯 삶을 비집고 들어가 쟁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금 사는 삶은 삶이 아닌 것처럼, 새로운 삶을 학수고대합니다.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 그 공간을 내가 차지하고 둘레를 높은 벽으로 막아두어야 할 것 같은 세상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넓은 공간에 드러눕고 다른 어떤 사람은 발 디딜 여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그 소유의 영역을 넓히려고 합니다. 생존하는 삶은 이렇듯 언제나 결핍의 연속이자 욕망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얼까요?

산다는 건 영위한다는 겁니다. 한자어를 풀이하면 꾸려 간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오퍼레이션operation, ‘운영한다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개인의 삶이 살아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 될삶을 살아남기 위해삽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내 삶의 주인 자리를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한 질서에 나 자신과 삶을 정렬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곱게 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나의 삶을 다른 누군가의 삶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비교는 결핍의 원천입니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결핍을 경험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만족을 했다 하더라도 비교의 대상은 언제나 더 만족스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핍을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하는데 남보다 모자라서 결핍이라고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경쟁이 당연시됩니다. 경쟁에서 비롯된 욕심과 갈등이 삶을 퍽퍽하게 만듭니다. 나아가 자존감을 땅바닥으로 떨어 뜨립니다.

 








답은 뻔합니다. 

머리 속으로는 잘 알지요. 나는 내 삶을 살면 된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됩니다. 더불어 불필요한 위기감을 조성하고 불 같은 경쟁에 뛰어들길 강요하는 세상의 논리가 우릴 가만히 내버려 두지도 않습니다. 사람 심리가 또 남들이 다 그러면 나만 이상한 것 아닌가 싶어 편승하게 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뻔할수록 간과하기 쉽습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기준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요구하는 질서에 편승하지 마십시오. 다른 누군가를 해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모습으로 당신의 질서로 당신의 삶을 추구하십시오. 비정상의 세상은 당신을 비정상이라며 손가락질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힘은 비정상에 대항하는 비정상, 즉 우리가 선택한 삶입니다.


겨우 살아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삶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사실은 여러분도 저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삶을 한번 잘 살아가 봅시다.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저는 저대로, 가끔은 부족하게 가끔은 넉넉하게, 삶의 출렁임을 만끽하며 살아봅시다.  조금 더 가진들 조금 더 높은들, 이 땅보다는 낮지 않으며 저 하늘보다는 높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물의 이치가 그렇다는 겁니다.  하늘과 땅 사이, 그 광활한 시공간에서 우리는 동등합니다. 그러니 우리끼리 싸우느라 먼지 폴폴 날리지 말고 경건하고 차분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생존하는 삶은 결국 죽고

영위하는 삶은 다시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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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삽질을 막아주는 힘_비전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3.23 07: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직장 담론


회사를 묻고 답하다

목표(goal)와 비전(vision)

 


우리회사는 비전이 없어 

한 번쯤은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비전이 없더라도 직장인으로 매일 해야 하는 ‘목표’는 있었지요. 어떻습니까?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비전이 보였습니까아마 많은 분들이 ‘그렇지는 않다’고 하실 겁니다그것은 어딘지 모를 이상향을 향해 일단 눈앞에 보이는 곳에 이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물론 작은아니 단계별 목표를 달성해가는 노력은 비전을 이루기 위한 초석입니다하지만 순서가 조금 잘못된 것 같습니다저는 비전 vision이 목표 goal를 견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는 중단기적으로 기업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에 조직을 운영하기에는 효과적입니다하지만 비전을 잃은 목표는 표류 합니다.

 

명확하지 않은 비전은 방향성을 잃게 합니다. ‘이 산이 아닌가벼!’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진다는 겁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말로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말처럼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그 목표가 궁극적인 비전을 향하고 있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목표를 달성해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도 이게 회사의 미래를 위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결론적으로는 회사가 위험을 피하는 계기가 될 때도 있습니다이처럼 목표는 비전에 비해 근시안적입니다모든 목표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비전과 동떨어진 목표들의 부작용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비전의 부재는 비슷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무엇을 위해 이 전공을 선택했는지무엇을 위해 이 회사에 들어왔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아니 '그 무엇을 위해'라는 것이 있었는지 조차 의문입니다. 교수님이 가르치는 대로 배웠습니다회사에서 하란 대로 했습니다그러니 ‘의미’를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자신의 의지와 동떨어진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그러다 보면 의구심도 생기고 불안감도 듭니다분명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알고 있고 했지만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습니다.

 









오랫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제 겨우 유치원생인 자식 얘기가 나왔습니다. 


“너는 네 아들이 어떻게 컸으면 좋겠냐? 


친구는 제가 대답하기도 전에 특정 직업을 거론하며 애쓰지 않아도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세뇌시킬 거라고 했습니다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이해는 갔습니다. 힘든세상을 자녀가 겪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한편으로 정작 제 친구 녀석은 부모님 말씀은 잘 듣지도 않았으면서 제 자식에게는 바라는 것도 많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친구가 제 생각을 물었을 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가족 건사하고 남들한테 피해주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하고싶은 일을 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너무 이상적이라는 겁니다하지만 저는 달리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친구의 딸이 그 직업을 선택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0%입니다하지만 저의 바람은 거진 99% 가능하지요친구의 딸 아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놓이거나 갈등을 겪을 겁니다. 하지만제 아이는 골치는 좀 아파도 선택의 자유가 충분할 겁니다.  친구의 아이는 선택의 책임을 강요 받겠지만제 아이는 선택의 책임을 감당할 겁니다친구는 명확했고 저는 조금 두루뭉실했기에 가능한 추론입니다하지만 친구의 바람은 ‘목표’요저의 바람은 ‘비전’이었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그럴 예정인 겁니다.^^

 

제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고단한 살이 될 테지요알아서 살라는 부모를 만나 한탄도 할 겁니다하지만 비전은 ‘방향’을 제시합니다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제시하고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그러면 뭘 해야 할 지가 분명해집니다지난한 탐색과 시행착오를 경험할 겁니다하지만 그것은 ‘투자’입니다제 아들 녀석도 부모인 저도 함께 노력해가야 할 일입니다다만 그렇게 형성된 비전은 확고하여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하는 일은 적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방향성이 정해지면 제거해야 할 요소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비전이 없고 목표가 난무하는 조직은 더하기(+)만 반복됩니다

들에게 하라는 것이 점점 많아집니다. 끝내 목표에 치여 비전을 기억하거나 바로 세울 겨를이 없습니다하지만 비전이 확고한 조직은 빼고(-) 또 뺍니다.  비전을 향하는데 불필요한 것을 제거 합니다. 그래서 목표로 가는 길이 명확해집니다.  그 유명한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자원은 꼭 필요한 일에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효과는 극대화됩니다실패해도 감당해야 할 손실은 한정적입니다그래서 비전이 바로 서야 하고 그래야 목표가 뚜렷해집니다비전에 부합하는 목표 말이죠그러면 직원들도 선택에 따라 집중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겁니다.

 

비전을 명확하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비전이상향이라는 것 자체가 다분히 모호성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일지는 정해두어야 준비할 것이 무엇이고 우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판단이 가능해집니다물론 회사에는 비전이 있습니다지금이라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언제든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그 비전을 우리가 공감하는지회사가 공감해왔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하지만 거꾸로 직원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회사가 어떻게 될 건지는 사실 그들 손에 달렸기 때문입니다또한 직원들은 비전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나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회사가 오래도록 나를 품어줄 수 있는 겁니다직원으로서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의미를 찾는 행위가 비전을 세우는 것 아닐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회사에는 비전이 있습니다그 비전이 허무맹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윤을 창출해야 하다 보니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아등바등 살다 보니 잊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회사와 우리 자신을 위해 망각했던 비전을 깨웁시다그것도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목표는 확실하게

비전은 확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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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사에서의 관계, 그 미묘한 차이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3.07 08:05 / Category : 직장인 필진/직장 담론



회사에서의 관계, 그 미묘한 차이 

교류(exchange)와 교감(communion)

 

당신과 나 사이에는 ‘교류’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렇게 지면과 활자를 통해 만났고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건, 당신과의 교류를 통해 심히 ‘교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무릅쓰고, 생각의 미묘한 차이를 이겨내고, 나는 글로, 당신은 눈으로, 서로 접촉하며 따라 움직이길 원합니다.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서로 접촉하여 따라 움직이는 느낌’을 교감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교류는 ‘물줄기가 섞여 흐름’, ‘사상이 서로 통함’이라는 뜻입니다. 교감이 ‘동행 同行’이라면 교류는 ‘동향 同向’입니다.

 

회사에서도 수많은 교류가 필요합니다내 일이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드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사 용어로 ‘친화력을 겸비하여 폭 넓게 교류하는’ 직원이 되어야 합니다. 흔히 그런 사람들을 ‘마당발’이라고 부르지요. 소위 ‘인맥’이 좋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실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수완’이 좋아 일을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이 가진 능력은 한계가 있기에 다양한 이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넓은 교류는 엄청난 장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류의 한계입니다. 그 원인은 교류 자체가 아닌 교류하기 위한 방법에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이 오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정치를 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필요에 의해 관계를 형성하면 벽에 부딪히고 오래가지 못합니다상대방이 관계의 목적을 알아차리면 내가 원하는 만큼이 아닌 상대방이 허용한 만큼의 정보만 얻게 됩니다. 때로는 거절이나 외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왕 ‘마당발’이 될 거라면 속내를 감추고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이런 관계는 흔합니다. 흔하다 보니 메리트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필요에 의한 교류는 뭔가 부족합니다.

 

‘사무적’이라고 하면 느낌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회사에서 교류할 때는 대부분 사무적입니다. 하지만 ‘교감’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교감은 교류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교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요구에서 시작되지만, 교감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공감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감은 관계적 측면에서 일시적이고 정적인 상태라기 보다는 지속적이고 동적인 태도에 가깝습니다. 교류는 갈등을 지양하지만 교감은 갈등도 수용합니다. 이처럼 교류와 교감은 시작점 자체가 다릅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접촉하여 따라 움직이는부대끼는 관계가 교감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류는 목적이 달성되면 끝이 나지만 교감은 목적 이후에도 지속됩니다.

 









당신과 나의 교류는 얼마든지 멈출 수 있습니다. 페이지를 닫아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다 나은 직장생활과 삶을 위해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글에서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논의할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교감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합니다. 그런 교감은 우리의 관계를 보다 성숙하고 발전적으로 이끌 겁니다.

 

기획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보통 지원부서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CEO 보고 후 공지되기 전까지는 타 부서에 공유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재무 목적의 보고서를 제외한 기획서들은 사실상 다른 부서 혹은 부문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보고서 초안을 들고 다른 부서의 고수들을 찾아 의견을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는 반응이었지만 ‘어떻게 됐어?’ ‘잘 돼가?’라며 오히려 관심을 기울여주고 묻지도 않은 아이디어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것은 교감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작성된 기획서들은 직원들의 반감이 적었습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반감과 부작용을 개선할 만한 대안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는 겁니다. 교감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원하는 것을 서로 묻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교류를 시도해온다면 ‘당신이 필요해!’라는 말입니다. 교감을 시도해온다면 ‘당신이 필요한 건 뭐야?’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사실 단편적인 필요나 목적은 같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지향하는 목적은은 완전히 다른 셈입니다. 교류로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교감을 통해서는 서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Give & Take’라는 원초적인 물물교환의 형식에 얽매이지 맙시다. 물물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원칙은 ‘대등한 가치’입니다. 가치의 균형이 깨지면 교류에도 금이 갑니다.

 

교감은 나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것 입니다. 결국 내 것만 중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서로 따지고 잴 일이 없습니다. 그저 묻고 답하고 토론하며 발전할 뿐입니다. 종종 겪게 되는 갈등도 결론적으로는 성장통입니다. 나의 가치가 원래보다 더 드러나 보이는 것은 교감이 선사하는 선물입니다. 함께 나눈 술잔 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한 관계의 취함입니다.

 

서로 눈치 보며 필요에 의한 교류만 하지 맙시다. 함께 눈을 맞춰 교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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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퇴사가 꿈이 되어 버린 당신을 위해

Author : 손성곤 / Date : 2017.02.27 07: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직장 담론



나를 묻고 답하다

입사(入社)와 입문(入門)

 

 

입사를 축하합니다!

기억나십니까? 수십 개의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며 그 지난한 복사하기와 붙여 넣기, 회사이름 찾기와 바꾸기 끝에 일궈낸 단 하나의 쾌거. 나를 받아주기로 큰 결심을 한 회사가 보내준 정성 가득한(?) 답변에 폴짝거리며 기뻐했던 날 말입니다.

 

퇴사를 축하합니다!

요즘은 퇴사한 사람에게 이렇게 인사를 한답니다. 핍박과 고통의 세월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감행한 이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있습니다. 이미 회사를 떠나 자리를 잡은 사람도 여전히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퇴사를 걱정하기보다는 일단은 축하하는 분위기입니다.

 


직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일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조직보다 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가정을 내팽개치고 일을 했고 조직을 위해서라면 희생도 불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일 없는 삶은 로망이 됐고 내가 없는 조직 공동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입사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퇴사를 꿈꿉니다. 단순히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소모적인 삶에서 생산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퇴사를 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대의 직장인들은 비전보다는 꿈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냅니다. 앞일에 대한 책임쯤 스스로 감당해내겠다는 강단이 있습니다.

 

다만 퇴사가 꿈이 된 현실의 이면에는 탈출을 감행하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벗어나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퇴사라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퇴사를 갈구하지만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래서 퇴사한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하지만 탈출은 퇴사를 부러워할 만한 이유가 못 됩니다. 현실의 굴레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벗어나기 위한퇴사는 실패로 끝나거나 미수에 그칩니다.

 







대안과 준비가 없는 퇴사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만 선사합니다. 그간 착실히 일하면서 모은 퇴직금을 몽땅 날려버리는 재정적 위험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진정 퇴사를 축하 받고 싶다면 사전에 대안을 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퇴사를 염려해야 할지 축하해야 할지는 바로 이 순간 결정됩니다. 그래서 퇴사는 벗어나기가 아닌 뛰어들기여야 합니다. 무엇으로부터(from)가 아닌 무엇으로(to)여야 합니다. 입사할 때는 목적지향적이었지만 퇴사할 때는 현실도피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섣불리 퇴사를 결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진중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국면이 바뀌는 중차대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의 결단에 나의 의지와 무관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쳐서는 안됩니다. 오롯이 내 뜻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도적인 선택이 될 겁니다.나의 선택이라고 하겠지만 진정 그런 것인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될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퇴사는 다른 터(직장), 다른 삶으로의 입문入門입니다. 사실 과거의 입사도 그랬어야 합니다. ‘무엇을 배우는 길에 처음 들어섬을 뜻하는 입문은 삶이 배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곱씹게 합니다. 우리가 입사했던 건 돈, 사회적 지위 때문은 아니었을까? 견실한 대기업의 회사원이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나는 지금 퇴사를 꿈꾸고 있는 걸까? 그것은 삶에서 맞이하는 수많은 입문의 순간들을 폄하했기 때문입니다. 배움만이 아닌 입문한 삶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취지가 외면됐다는 뜻입니다. 애당초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회사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된다 한들 이상할 것 없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여! 입사하지 말고 입문하시게! 비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입문할 마음이 없이 입사한다면 분명 퇴사가 꿈이 될 겁니다. 애써 들어간 회사를 나조차도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로 나가게 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퇴사가 새로운, 또 다른 입문의 순간이기를 원한다면 지금의 선택도 입문이길 기대해 봅니다. 입사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만 입문한 사람은 열심히 깨우칩니다. 입사한 사람은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입문한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원합니다. 그게 입사와 입문의 차이입니다.

 

퇴사를 꿈꾸는 나에게 묻습니다. ?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면 퇴사라는 대안은 나에게 적절한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앞으로의 담론에서 그 이유를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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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의 값싸지만 소중한 꿈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10.20 07: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평생직장인



아이들의 꿈은 순수하다. 나아가 웃음이 나올만큼 허무하기까지 하다. 우주 여행사, 소방관, 가수.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영웅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내 나이 서른 넷.  내 꿈은 뭘까

그저 나, 우리 가족 잘 먹고 잘사는 것, 그것이 꿈이 되어 버렸다이기적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타인까지 배려하고 사는 삶을 꿈꿨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 생각하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나만 잘 먹고 살기에도 너무나 힘든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요즘 세상에서 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된다. 세상을 모르는 어린 아이로 취급한다.

 

하루를 버티며 산다는 말이 익숙한 세상이다

내일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먹고 살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인듯 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언론에서는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는 방법과 같은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 보다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어릴적 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간의 사치나 마찬가지다. 

 

여유가 없는 세상, 현실적에 고개만 파뭍고 산다. 

"월급 100만원만 더 받았으면 좋겠다. 좋은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명품 가방을 사고 싶다" 처럼 세속적인 모습에 연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꿈이 된다. 월급을 현재 500만원에서 700만원을 받는 게 꿈이 된다. 좋은 차를 사는 게 꿈인 세상이 되었다. 저렴한 꿈이 현실이다.








 

저렴한 꿈이라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다. 각박한 세상을 만드는 현실의 모습만 바라보기 때문인것 같다. 뉴스에 나오는 내용은 극단적이다. 누가 역경을 딛고 부자가 되었거나, 혹은 먹고 살기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까지 나온다. 많은 미디어에서 돈을 말한다. 돈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운다. 그리고 시청률이 올라간다. 그러다보니 더욱 자극적인 이야기들만 화면에 도배 된다. 그리고 10억을 벌고, 100억을 버는 것이 정말 멋지고, 환상적인 것처럼 만든다.

 

우리는 자신의 평가 잣대보다, 사회가 정한 평가 기준에 맞춰야 더 멋진 인생을 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사회가 정하고,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에는 부합하지만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삶이 과연 잘 산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만족하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은 획일화 되어 있지 않다. 회사에서 정한 규정과 기준이 없다. 내가 만드는 삶이다. 내가 정한 기준과 규정에서 벗어나 잊고 지낸 나의 진짜 꿈을 다시 꿔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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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서 뛰는 게임을 하고 있는가?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7.18 07: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평생직장인



어디에서 뛰는 게임을 하고 있는가?

 

직장인 5년차. 여름 장마처럼 먹구름이 가득한 허무함이 찾아왔다. 내리는 허무감의 비는 내 삶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일을 하지만 즐겁지 않았다. ‘나는 인생의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공허한 태풍의 눈 한 가운데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30대 중반의 인생에 허무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그리고 내가 이 일을 한 게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라는 계산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를 지배한 이런 생각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분명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삼켜서, 나의 모습까지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젠장이 부정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방법은 없었다.  그저 인지하고만 있을 뿐이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다. 그럴수록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이어지는 허무함에서 활력을 잃어갔다. 직장의 반복적인 삶이 원인일까? 어떤 이유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반복이 만들어내는 삶은 규칙적이긴 하지만, 활력적이진 않다.

 

활력을 찾아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보낸 여행의 순간은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돌아온 일상에서 허무함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일을 할수록 그 허무함은 더욱 나를 찾아왔다. 영업맨으로서 좋은 실적과 새로운 거래처는 내가 원하는 삶에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계속 머물렀다.




 


내 인생에는 어떤 목표와 원칙이 있고 어떤 전략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만든 나의 인생은 규칙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본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직장인의 삶으로 반복되는 삶에 익숙해지고, 시키는 것에만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게임의 법칙을 만들고 싶다. 내가 뛰어 놀 수 있는 나만의 플레이 그라운드를 만들고 싶다. 죽을 때 나의 묘비명에 평범하게 살다가 죽다.’ 라는 문구밖에 떠오르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한 달 넘게 고민하고 직장생활연구소와 상담한 후 내가 정한 첫 번째 게임의 법칙은 소통으로 넓히기.

한번에 한가지에만 집중하겠다. 우선은 갇혀있는 생각을 넓히고 새로운 자극과 세상을 만나보려 한다. 그래서 지금 찾아온 허무함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고 한다. 직장 선배에게, 가족에게 말을 할 것이다. 또 처음 만나는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에게도 말해 볼 생각이다. 이 생각이 좋은지 나쁜 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민 끝에 내가 방법을 찾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이 일이 마냥 좋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긍정과 부정의 조화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한 쪽에 치우치면 안 된다. 흔히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그것만 먹으면 몸이 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도 조화가 필요하다. 항상 좋은 것만이 있을 수도 없다.

 

허무함의 장마비에 우두커니 서서 쫄딱 젖은 축축하고 음습한 30대 중반을 보내지 않기 위해 행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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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 비어간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24 07:30 / Category : 직장인 필진/평생직장인


차대리는 일 처리를 빠르게 하고, 분석도 기가 막히게 한다. 회사에서 익힌 엑셀과 회사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그가 당장 내일 퇴사를 하거나 혹은 회사가 망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리가 하던 엑셀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은 다른 직장에 가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직장을 떠나게 된다면? 혼자 회사 밖에서 혼자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에서 얻은것은 과연 무엇일까? 직장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서 써 먹을 수 있는 기술을 무엇일까? 

 

회사에서는 누구나 회사형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가 원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되도록 애를 쓴다는 말이다. 해당 회사에서만 사용되는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뽑아낸다. Raw 데이터를 엑셀로 옮겨 빠르게 인사이트를 뽑아낸다. 그리고는 PPT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칭찬을 받고 실행해서 결과를 만든다. 이런 아주 일반적인 사무직 회사원들이 하는 일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특히 회사를 떠나도 중요한지에 대해서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배운 것은 뭘까? 행복해 지는 방법은 있는걸까? 그저 월마다 나오는 월급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걸까? 월급을 받아도 어느 순간부터는 행복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날이 되면 통장에 숫자가 찍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월급날이 언제인지 잊어먹은 적도 있다. 그저 통장에 숫자가 찍히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디지털화 된 카드값이 통장에 침입해 돈을 빼간다.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직장인으로 먹고 살기 위해, 더욱 더 직장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직장인으로 잘 살아가는 것을 배웠다. 사람 관계에서도 진정한 인간관계보다는 처세술이 늘었다. 잘 보이기 위한 발언, 해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이제는 구분한다.

 

회사는 순환보직 즉,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높인다고 한다. 이런 순환보직 제도로 여기서 3~5년이 시간이 흐르고, 저기서 흐른다. 전문성은 없고, 모르는 일을 배우기에 급급하다. 대리, 과장이 새로운 부서로 발령받고, 신입사원처럼 하나씩 가르쳐주는 일은 없다. 대리, 과장은 배우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성과가 필요하다. 배움의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동시에 다른사람의 인내심도 줄어든다. 혹자들은 회사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서로 헐뜯고 자신만 아니면 되고, 나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배움일까? 진짜 배움으로 채워지지 않는 인생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다.  

 

배움이 없는 삶은 너무나 지루하다. 회사를 위해 소모되는 삶만을 사는 나는 내가 불쌍하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계바늘은 돌아가고 목표는 달성해야 하고 보고서는 써내야 한다. 그렇게 직장인의 하루가 비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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