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일까?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5.28 07:00 / Category : 직장인/직장인 생각들



“어머님, 제가 어제 밤새도록 차린 밥상입니다.”

 

“이게 뭐냐, 국은 싱겁고 나물은 소여물 같잖아. 또 고기는 왜이리 질겨

 

“갈비는 어머니가 가져다 주신 고기로 했고 시금치 나물하고 국은 어머니가 알려주신 레시피 그대로 한건데요.

 

“어디서 따박 따박 말대꾸야? 맛없다면 맛없는 줄 알지. 맛있으면 너나 먹어라. 

 그리고 참, 바다에 나가 참돔 좀 잡아와라”


“바다에서 참돔을요? 제가 직접요?

 바다는 가려면 2시간이 넘고 저는 낚시를 해 본적도 없는데요.. 그냥 장터에서 사오면 안될까요?”

 

“맨날 똑 같은 생선 말고 뭔가 새로운 것 좀 잡아오란 말야. 세상에 없는 걸로.”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무서워 말도 못하고 길을 나선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잡아 올지 확신도 못하는 상황으로 말이다.  

 








며느리가 바다로 나가자  시어머니는 물린 그 밥상의 찌개에 파를 썰어 넣는다.

또, 나물에 깨를 좀 뿌리고 미원 좀 넣는다.

그리고는 새 밥상을 다시 차려서 영감님에게 직접 가지고 간다.

 

“영감님, 드세요. 이거 다 제가 직접 차린 거에요.”

 

“아. 잘 했네요. 맛이 있어요.

 역시 당신이 차린 밥상이 내 입맛에 딱 맞아요. 잘 했어요. 정말 애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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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아래 보기의 회사의 직원과 위의 이야기 등장인물을 올바르게 매칭하시오 


① 현업 실무자     ② 팀장, 중간관리자    임원, 본부장

1. 며느리    (     )

2. 시어머니 (     )

3. 영감       (     )

 

 

Q2) 위의 이야기 중 가장 근본적으로 잘못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1. 며느리 : 어쩔 수 없이 삽질을 해야 하는 사람

2. 시어머니 : 며느리의 노력을 폄하하고 또, 공을 빼앗아 가는 사람 

3. 영감 : 아무것도 모르고 차린 밥만 먹는 사람



Q3)  Q2의 답을 선택한 이유를 두괄식으로 설명하시오. (주관식) 

(                                                                                      )








본 글은 페이스북 친구 Shin Choonsuk 님의 포스팅을 허락을 받고 각색한 것입니다.  



Tags : 공 빼앗기, 내가 한일, 채리피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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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원 2018.05.28 15:48 신고

    무조건 2번이라고 생각합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8.05.31 15:06 신고

      첫 포스팅 이후 문제를 3개로 업데이트 했습니다. 한번 답을 적어 주시면 어떨까요? ^^

      EDIT

[퇴근후2시간] 회사. 그 다음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5월 18일 (금)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5.03 06:30 / Category : 교육,강연,상담









직장인의 미래를 바꾸는 

퇴근 후 2시간



5월 모임의 주제

<회사 그 다음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퇴사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 하고 묻고 학교라는 곳도 찾아갑니다. 

하지만 해답은 찾기 힘듭니다. 


사실 퇴사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답이 있는 수학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회사 이후의 삶을 위한 첫번째 단추를 끼워볼 겁니다. 

그 첫번째는 질문은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입니다. 

  

당신의 5년후를 위해서

회사안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한명이 말을 하고 상대는 책상에서 듣기만 하는 

 일방향적인 강연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손을 움직여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보고

머리속의 생각을 서로 이야기 하는 자리가 될겁니다.   







<포스터가 클래식 합니다. ^^>




신청접수는  02-2148-3932로 전화를 주십시요.

종로구청의 도서관인 삼봉서랑에서 진행하는 것이라 전화로만 받습니다.

(주말제외, 일과 시간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늘 그러했듯이 원하시는 분에 한해서 뒤풀이 모임도 합니다. ^^







감사합니다. 



Tags : 강연, 퇴근후2시간, 퇴사, 퇴사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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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isagain 2018.05.04 00:25 신고

    제가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 근처네요. 위 전화번호로 신청하면 되죠? 저도 신청 합니다!

    REPLY / EDIT

    • 손성곤 2018.05.04 09:23 신고

      안녕하세요.

      함께 오셔서 뵙고 얘기도 나누면 좋겠네요.

      EDIT

회사를 떠난 사람들 30_ 삼성전자 개발자에서 외식업 브랜드 기획자로 변신. 2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5.03 06: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회사를 나오게 된 계기가 무엇으로부터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으로 향하기 위해서 였던거 같다.

그건 내가 삼성이 첫 회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삼성전자라는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그 안에 있을 때는 몰랐고 나와 보니 확실히 알았다사회적 시선도 그렇지만 연봉도 매우 훌륭한 회사다직장인 상위 5%안에 들 거다삼성을 나와서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면서 후회도 했다그러다 보니 이 회사를 나가면 후회할거야라는 생각이 있었다그렇기에 싫어서 떠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형태를 띄게 된 것 같다적지 않은 회사를 옮겨보니 여기가 싫어서 나간다.’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다지금 삼성전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분명 장점도 많다그런 상황에서 단점만을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그런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단점만 볼 거다하지만 그 장점을 안에 있을 때는 거의 느끼는 경우가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회사원일 때 본인을 한 마디로 말해본다면?

본 헤이터 (Born Hater)나는 비 합리적이고 비 상식적인걸 못 참는다다른 사람이 그냥 관습적이기 때문에 아무 고민도 없이 그냥 받아 들이는 것그냥 이 집단이 이렇기 때문에 너도 이래야 해원래 그런 거야라는 것을 싫어했다.

 

▶ 회사를 완전히 떠났다후회되는 점은 없나?

글쎄굳이 말하자면 임원이 못된 것은 아쉽다대기업에서 임원 정도 되면 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일을 할 수 있다결국은 나의 아이디어나 일의 가치에 대해서 남이 알아주고 그것을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모두 원한다삼성전자나 IBM에서 상품 기획자로 제대로 아이디어를 냈다면 내가 만든 것을 전세계 사람들이 사용 했을 것이다또 아쉬운 점은 많이 배우고 함께 목표를 함께 일했던 팀원들이 아쉽다삼성전자에 있을 때 열명 정도의 팀이 팀웍이 너무 좋았다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의 기쁨을 알 수도 있었다혼자 외식업 사장으로 외롭게 일하는 지금은 그때의 느낌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 개발자로서의 삶과 브랜드 마케터로서의 삶다소 상반된 일인데 어떤 일이 더 맘에 드나?

브랜딩을 하는 일이 더 맘에 든다죽을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브랜드와 관련된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지금 외식업을 하면서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개발자의 일도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고 결과를 만들어 날 때 희열이 있다개발 일이 너무 싫다기 보다 브랜드 마케터의 일이 더 좋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개발자로서 일한 경험에서 무얼 배웠나그냥 없어질 경험은 아니지 않나?

회사를 나오고 나니 개발자로 일했던 것은 좋은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다대학 4년 동안의 학습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 것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푸는 학습을 하는 거였다컴퓨터는 내가 하면 100년 걸릴 일을 10초면 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가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뿐인 것이다컴퓨터가 모든 일을 다 하는 세상이다심지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그런 상황에서 컴퓨터가 하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영어를 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컴퓨터라는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있게 프로세스를 만들고 적절한 언어로 말해주는 것이 개발자의 일이다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다시 순서를 따라가면서 문제를 찾아내고 디버깅을 한다이렇게 문제를 구조화 하고 프로세스대로 사고하고 생각하는 훈련이 개발자가 가질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다그런 논리적인 생각 프로세스는 컴퓨터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개발 일은 문제가 생겼을 때 호미로 잠깐 막는다고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다시 다른 곳에서 오류가 생긴다그렇기에 반드시 문제의 명확한 원인을 찾고 그 근원적인 원인을 해결해야만 한다그래야만 문제가 풀린다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습성도 갖게 된 것도 배운점이다.

 

▶ 결국 외식업의 세계로 뛰어 들었다어떤 계기였나?

결혼 후 첫째를 낳은 후 나는 우아한 형제들은 다니고 있을 때 아내가 먼저 2015년에 윤경양 식당을 열었다사실 아내는 무용을 전공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원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투잡으로 한 것이다원래 계획은 아내는 외식업을 하고 나는 회사를 다니는 거였다투 트랙 전략이었다첫 식당이 운이 좋게도 시작하자마자 잘 되었다그리고 아내가 둘째를 갖게 되고 내가 회사를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뛰어 들게 된 것이다사실 아내가 먼저 시작했고 그 다음에 내가 뛰어든 것이다아내가 사업가적 기질이 뛰어나다.

 

▶ 식당 브랜드를 소개해 달라.

돈가스 전문인 윤경양식당수제 버거를 파는 Gony’s, 떡복이와 부대찌개를 삼삼하우스피자 전문점 소마이피자 이렇게 4개 브랜드의 6개 매장을 하고 있다. ‘윤경양식당은 아내의 이름인 윤경을 딴것이다. ‘윤식당을 패러디한 것은 아니다. Gony’s는 내 이름을 딴것이다삼삼하우스는 첫째 아들의 태명을 딴것이다소마이피자는 딸의 이름인 ’ (SOMY)를 따서 지었다어찌 보면 가족 브랜드다. ^^

 

▶ 외식업을 시작한지 3년 째 인데 매장이 6개다매장을 많이 늘린 이유는?

솔직히 하루라도 빨리 한푼 이라도 더 벌고 싶었다생각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싶었다또 당시에는 자신이 있었다이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2개까지 늘렸을 때 너무 잘 되었다그러다 보니 자만심이 약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잠실과 제주점도 있다살짝 벅찬 부분도 있다.

 

▶ 다루는 메뉴가 다양하다선택의 기준이 있었나?

돈가스는 만들기 어렵지 않고 자신이 있어서 시작했다예전 건대에서 시작한 가게가 망한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해서 라고 생각한다어느 날 홀에서 이렇게 보니 한쪽에서는 할아버지할머니 분이 앉아 계셨고다른 쪽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젊은 여성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그걸 보고 무릎을 탁 쳤다스타일에는 남녀노소가 있지만 음식장사에는 남녀노소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선택의 폭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전만 해도 패션 브랜드도 아주 명확한 타겟컨셉 등이 있었다강한 특징 있는 브랜드들이 많았다하지만 지금은 유니클로처럼 고객의 Age가 넓어야 선택 받을 확률도 늘어난다고 생각한다다만 입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이삼 십대 여성분들이니 그 분들에게 맞는 인테이리어를 컨셉으로 했다십 년 전에도 팔았고 십 년 후에도 좋아하고 팔 수 있는 음식을 하려고 했다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을 남다르게 팔아보자는 것이 모토가 되었다.

 

▶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돈을 잘 버나?

어떻게 매출을 얘기해야 하나? ^^ 투자한 금액이 아직 빛으로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회사 다닐 때 보다 5배는 버는 것 같다영업이익이 곧 모두 수익이라고 치면 그렇다는 것이다지금은 빛을 갚아나가고 재 투자를 하고 있다누군가는 우와 많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매장이 6개다 그 정도는 벌어야 하는게 맞다.

외식업을 창업하고 처음 생각한 것은 5년을 연습게임으로 보자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연습게임 기간 동안 손해는 볼 수 없었다아이가 둘이다그리고 5년후에 점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년간 열심히 그 원동력을 찾아보자고 했다메뉴를 정하고 장소를 찾은 것이 아니라매장을 먼저 구한 후에 여기에서 뭐할까?’ 를 생각했다모두 권리금이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 2층이 구해지면 여기서 뭐하지이면 도로 골목 안에서는 뭘 해야 할까이렇게 고민했다.

 










▶ 성수동에서만 매장이 4개다성수동을 선택한 이유는?

홈 그라운드 이기 때문이다지금 성수동에 살고 있고 초,,고를 여기에서 나왔다잘 아는 곳이었다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오피스도 들어오고 있어서 주중도 괜찮고 서울숲도 있어서 주말 장사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이렇게 주중주말 상권 모두 다 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은 것 같다괜찮은 선택이라고 본다.

 

▶ 계속 성장하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긴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너무 재지 않는다는 말이다말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다여태껏 그런 인생을 살았다일단 시작하면 무슨 식이든 해 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그리고 남들도 다 하는데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너무 큰 대상이긴 하지만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내가 되지 못할 이유도 굳이 없다고 생각한다생각을 한정하고 싶지는 않았다신중한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수도 있다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100%를 추구하지만 80%만 되고 인정하고 내려 놓는 것도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 자영업 하는 분들은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올바른 태도 (Attitude)의 중요성이다일에 대한 태도와 사람에 대한 태도를 제대로 갖추길 바란다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의 소중함남이 아닌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생각일을 대하는 자세이 일이 천직은 아니더라도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자영업 하면서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나도 일반적인 자영업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이 엄청나게 오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걸 안다하지만 너무 태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10명을 면접보기로 하면 5명이 온다그 중 3명을 뽑아서 일을 하다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 2명은 나간다일하는 중에 핸드폰을 보지 말라는 얘기였다내가 일하러 왔지 너에게 잔소리 들으러 온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며 떠났다.

 

▶ 예전에 자영업자 인터뷰에 비슷한 얘기를 분이 있었다거기에 악플이 달렸다. ‘니가 최저 임금만 겨우 주고 부려 먹으니까 그런 거지’, ‘너는 그런 태도로 일해서 회사 뛰쳐 나왔냐?’ 뭐 그런 악플이었다어떻게 생각하나고용인으로 있을 때와 고용자로 있을 때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직장인과 사장 사이에는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고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는것 같다나도 그랬다내가 사장이 되어 보니 완전히 알지 못했던 세상 이었다회사 입장에서 보면 월급을 많이 주면 그만큼 효율이 나고 효과가 난다고 믿는 것에는 리스크가 있다그래서 회사도 퍼포먼스를 먼저 보여주면 그에 맞게 인센티브도 주고 하는 것 같다서비스업자영업은 한달 벌어 한달 사는 사람들이 작은 규모로 운영하는 곳이 맞다영업이익을 못 내는 즉사장이 한 달에 직원 월급 보다도 못 가져 가는 분들도 많다그렇기에 먼저 직원들에게 선 투자 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 같다나도 월급을 더 주기도 하고 주5일 근무 하면서 모든 휴일을 다 챙겨주고 더 쉬라고 하기도 했다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대부분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직장인 시절에 누리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정말로직장인이 누리는 무형의 것들은 야생으로 나와서야 보일 것이다.

 

▶ 치킨집 수렴의 법칙이 있다. (문과생-백수,사업,작가-치킨집 공대생-과로-치킨집>이다어떻게 생각하나?

다행이 난 과로로 인해서 회사를 퇴사하고 치킨집을 하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을 좀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치킨 프랜차이즈들은 그냥 기름 넣고 닭만 튀기셔서 배달은 아웃소싱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할 것이다그리고 매출이 엄청 잘나오는 상위 매장을 보여줄 것이다세상에 쉬우면서 돈 많이 버는 일은 없다. 내가 그 매출이 잘나오는 매장이 아닐 확률이 대부분이다그걸 말하지 않는 것이 사회고 그걸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 외식업은 고단한 일이다특히 가족의 이해와 도움 없이는 더더욱 그렇다본인은 어땠나?

좋은 질문이다나는 아내가 먼저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우리의 길은 우리 부부가 직접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노력하는 사람을 만난 건 정말 내 인생의 행복인 것 같다아내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다결혼을 안 한 분이 있다면 반드시 같은 곳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좋겠다성향은 조금 달라도 된다그 다른 성향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나는 직원에게 살갑게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고 이런거 잘 못하는데 아내는 그 부분을 정말 잘 한다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아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까지 못했을 것이다.

 

▶ 하루 일과는 어떤가?

오전에 일어나서 아이 둘을 밥을 먹이고 어린이 집에 보낸다그리고 오전에 아내와 함께 성수동 매장 중에 하나로 출근해서 점심 시간 넘어서까지 일을 한다그리고 사무 볼일이나 세금 결제 등 업무 처리를 한다그리고 저녁에는 아이를 데리고 오고 저녁을 먹고 일과를 마무리 한다이렇게 한지는 오래 되지는 않았다누가 보면 조금 여유롭다고 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완전 달랐다당시 회사를 다니던 나는 점심 시간에 매장에 나와서 서빙을 했다밥을 못 먹었다그리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서 일하다가 퇴근하고 다시 가게로 와서 일하고 청소 마감까지 다 하고 12시가 넘어서 들어갔었다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는 당연히 오전 준비부터 밤 마무리까지 모두 다 했었다그렇게 거의 3년 동안 기본 하루 12 시간 이상을 일했었다.

 

▶ 매장이 6개면 직원은 몇몇 정도인가?

매니저부터 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한 30명 정도쯤 될 것 같다.

 

▶ 30명 월급을 주는 사람이면 중소기업 사장님이나 마찬가지다월급 150만원이라고 그냥 퉁쳐도 4,500만원이다그냥 잘되는 곳 두 개만 운영하면서 골머리 아프지 않게 살고 싶지는 않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지금은 아까 말한 5년의 연습 과정이다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지금의 방식도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거다그리고 나면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을 거다(Lean)하게 작고 소소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더 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 더 잘 만들어 나가고 싶다.

 

▶ 수제버거의 달인으로 TV에도 소개 되었다대단하다.

그건 방송작가의 친구분이 우리 Gony’s에서 버거를 먹고 너무 맛있어서 친구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고 들었다그래서 2016년에 수제버거의 달인으로 방송 되었다얼마 전 생방송 투데이란 곳에서도 연락이 와서 출연하게 되었다정말 감사하게도 운이 좋았다사실 외식업뿐 아니라 무엇을 하더라고 눈에 띄는고객이 느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윤경양 식당은 플레이팅이 정말 예술적이다따라하는 곳까지 있다무난하게 해서는 차별점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자신만의 날카로운 모난 부분을 갈고 닦아야 한다.

 

▶ 전공자도 아닌데 레시피는 어떻게 만들었나?

우선 모든 책인터넷 사이트의 레시피로 음식을 모두 만들어 봤다돈가스함박스테이크 메뉴를만들 때 는 일본이 돈가스는 세계에서 제일 잘하니까 일본의 쿡패드라는 가장 큰 레시피 사이트를 유료 결제를 해서 하나하나 모두 확인했다나는 어떤 음식을 할 때 그 음식을 최고로 잘 하는 셰프의 레시피를 찾아서 그대로 만들었다그 다음은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그 레시피는 레시피를 공개한 사람 중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의 것이기에 비싼 식재료를 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맛의 끝을 잡아서 기준을 정하고 오퍼레이션을 쉽게 만드는 법을 찾았던것 같다.

 

▶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있나?

상품기획을 하는 일이라면 돌아가고 싶다아이디어를 내고 시작을 해서 판매까지 하는 모든 프로세스를 다 해보는 일이라면 회사로 돌아가서 해보고 싶다요즘은 외식업체에서 브랜드를 런칭하는 일에 많이 끌린다내가 시장을 분석하고 고민해서 만들어낸 요리상품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소비하는 것에 엄청나게 희열을 느낀다그런 일이라면 회사에서 하고 싶다.

 

▶ 동료나 친구들이 장사는 잘되냐나도 프랜차이즈 하나 내 줘회사 그만두고 이거 해야겠다.” 이런 질문은 없나?

다행이 만나는 친구는 개발자 이거나 다양한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어서 아직까지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 요즘 가장 중점을 두고 하는 일은 무엇인가?

비즈니스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큰 관점으로 보니 외식업으로 크게 성공하는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우선은 임금임대료는 올라간다또 직장인들이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트랜드도 생기고 있다직장인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벨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 야근이 줄고 있고 회식도 1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방향은 잡혔고 이제 악셀만 밟으면 더 가속화 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똑같이 팔면 마진은 줄어들고 이익도 줄어든다외식업은 부침도 크고트랜드도 제법 빠르다이런 사회의 큰 흐름 속에서 나는 이미 외식업계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맞추어 나갈까를 가장 고민하고 있다.

 

사실 오픈하고 얼마전까지는 계속해서 배우고 학습하고 부딪히고 또 배우던 시간이었다그 대상은 대박집을 배우는 것이었다아내에게 이런 변화 속에서 다른 게임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해온 일은 같은 게임을 같은 방법으로 했던 것이다이미 수십 년이 넘게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이길 수가 없다그들은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그 대답은 외식업계에 강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올해 열심히 차별점을 찾고 변화 하려고 한다.

 









▶ 몸이 두 개로 분리 된다면 각각의 몸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하나는 지금처럼 일을 할 것이고한 명은 새로운 것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채우면 좋겠다그럼 확실히 더 빨리 성장 할 수 있을 것 같다.


▶ 현재의 삶에 점수를 매겨본다면?

한 80점은 될 것 같다하고 싶은 사업하고 있고 아이도 있고 아내도 있고 건강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고나쁠 이유가 딱히 없다생각해 보니 90점은 넘을 것 같다이 점수가 낮으면 이 인터뷰를 하면 안될 것 같다. ^^

 

▶ 지금의 선택이 잘 한 것이다 라고 느끼는 순간은?

고민할 필요 없다아이들과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다보통 자영업 하면 모두가 얽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조금 시간외 된다직장인 일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낸다그게 가장 좋다.

 

▶ 취업이 너무 힘들다취업을 원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한번에 모든 일이 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그러면 좌절하지 말고 조금 돌아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목표하는 회사가 있다면 당장 거기를 갈 수 없다면관련된 중소 기업에 먼저 취업을 하고 실력을 쌓으며 기회를 보면 된다물론 당연히 그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을 원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예전에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정말 이유가 보였다여자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그림을 그려서 주고조개 껍데기로 목걸이를 만들어 준다이건 정말 아니었다항상 자기 위주 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경쟁자들도 모두 하는 똑같이 제너럴한 스펙만 쌓은 후 스펙이 이렇게 높은데 왜 날 안 알아 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남이 원하는 것을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많은 모임 등에 나가면서 관련분야 사람을 만나면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라. “어떤 사람을 선호하냐어떤 기술이 있어야 하냐가장 중점적으로 필요한 역량이 뭐냐어느 회사 출신의 어느 능력이 있는 경력사원이 많이 오나?”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자신만의 원칙 혹은 스스로 묻는 질문이 있나?

이 일을 하면 가족이 행복할까라는 거다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게 있어도 아내의 동의가 없다면 하지 않는다가족의 행복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돈 많이 버는 것도 그 끝에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끝이 있었다또 하나는 최고로 가장 탁월한 사람회사라는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무언가를 이뤄낸 탁월한 사람조직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까라는 질문으로 스스로 갇힌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5년후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가?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가 단순히 고객들에게만 가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특히 어린이들에의 식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그리고는 가족이 평안했으면 좋겠다아이를 낳고 나니까 세상의 모든 행복이 리셋되는 느낌이었다이보다 더 큰 희열과 행복이 없기 때문이다아이는 완전히 없던 존재이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존재다나에게 희망이자 힘이다가족이 평안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남 눈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길 바란다그런 기준을 가지고는 행복할 수가 없다그리고 관심이 있다면 재발 부디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보길 바란다.










▶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벗어나거나 향해 가거나.'가 그것이다.  그는 지금에서 도망가기 보다는 원하는 것으로 향하는 선택을 해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확정시켜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계속 배웠고 알게 된 것을 표현했다. 행동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새로운 사람들은 생각과 경험을 확장 시켜 주었다. 외식업 사장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 업태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미래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랬다. 5년후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기대가 된다.  이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 다시 한번 성수동의 그의 식당에 한번 가봐야겠다. ◀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인터뷰 by 손성곤


Tags : 삼성전자, 직장생활연구소, 퇴사자, 퇴사후 식당, 퇴사후 음식점,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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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난 사람들 30_ 삼성전자 개발자에서 외식업 브랜드 기획자로 변신. 1

Author : 손성곤 / Date : 2018.05.02 06: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 자기 소개를 부탁

4개의 브랜드로 6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외식업에 종사하는 81년생 이남곤 입니다.

 

▶ 간략히 커리어를 소개해 달라

서울의 한 대학교를 00학번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운 좋게 4학년 1학기에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그래서 삼성전자에서 핸드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삼성전자에서 3년을 일하고 겁없이 회사를 퇴사하고 길거리부터 시작해서 건대 근방에 작은 외식업 가게를 창업했었다. 그러다가 일 년 만에 다시 면접을 보고 IBM에서 일했다. 그 후에 다시 운 좋게 스카웃 되어 하고 싶던 일이던 브랜드 컨설팅업무를 1년 동안 빡세게 배우며 구르며 일했다. 다시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에서 마케팅 팀에서 약 1년 반을 일했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먹고 살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아내가 아내 이름을 걸고 윤경양식당을 성수동에 오픈 했다. 운 좋게 식당운영이 잘 되던 차에 괜찮은 자리가 생겨서 내 이름 걸고 ‘Gony's’ 라는 수제 버거집을 열었다. 둘째를 아내가 임신하면서 나도 회사를 나와서 전업으로 외식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운 좋게 20169월에 생활의 달인수제버거의 달인으로 소개 되었다. 이에 탄력 받아서 ‘33haus 삼삼하우스이라는 즉석 떡볶이 가게를 또 오픈했다. 운을 계속 이어나가서 성수동이 아닌 윤경양식당잠실점과 제주 신화 월드점을 열었고, ‘SOMY Pizza&beer’까지 오픈 했다. 정리하자면 지난 3년여간 브랜드 4, 매장 6개를 잔뜩 벌려 놓았다.

 

▶ 삼성전자 출신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막연히 컴퓨터로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컴퓨터공학과를 갔다. 대학교에서 코딩을 못하거나 성적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치도록 컴퓨터가 좋아서 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3학년 2학기부터 삼성전자의 인턴을 시작해서 같은 과에서 2명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그 후 4학년 1학기에 면접을 보고 삼성전자 입사를 확정을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등한시 한 건 아니었다. 입사 확정 이후 4학년 1학기에 학교 학점에 올 A+이었다.

 

▶ 삼성전자에서 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다. 내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피처폰에서 스마트 폰으로 막 넘어가던 시기였다. 윈도우 모바일 폰이었던 옴니아개발에도 참여 했었다. 코딩을 하는 것은 좋았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재미도 있었다. 당시 나는 보통의 개발자들보다 좀더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개발자들은 주로 컴퓨터와 대화를 많이 한다. 나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도 좋았다. 컴퓨터 이외에 패션, 트랜드, 마케팅 등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회사에 들어가서 한 달씩 미국, 멕시코, 폴란드 이런 곳에서 머물면서 모바일 폰 테스트를 했다. 외국에 머물 때 보고 느끼고 경험한 바깥 세상이 너무 좋았다. 개발은 혼자 하기도 하지만 2명이 팀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선배가 너무 잘해서 나는 다소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삼성에 다니는 사람 치고는 시간이 비교적 많았다. 개발자의 일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천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그럼 자신과 어떤 일이 맞다고 생각했나?

삼성전자에 다니면서도 평소에 관심분야였던 패션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했다. 브랜드와 클래식 패션에 대해서 글과 사진을 올렸고 당시 하루에 3,000~4,000명씩 들어왔다. 회사 일에서 큰 재미는 없었고 패션 블로그를 제법 열심히 했다. 그 블로그가 인연이 되어 패션 디자이너, 잡지 에디터, 홍보 일하는 사람들을 제법 알게 되었다. 그래서 브랜드 런칭 행사’, ‘잡지 촬영이런 곳을 가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환경에 노출 되다 보니 회사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뭘까 생각해 보니 상품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전자에 모바일폰이라는 생활 밀착형 상품이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인 상품 기획일과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기획 일을 하는 팀으로 옮기고 싶어서 시도를 했지만 안되었다. 개인의 의지보다는 회사의 필요가 인사에는 더 중요한 것 같다.

 

▶ 그 다음은 어땠나?

블로그도 꾸준히 하고 당시에 Hot했던 트위터도 팔로워가 팍팍 늘어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뭐를 해도 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준비를 해서 길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삼성본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트위터를 사용해서 알리고 판매를 했다. 그 후 푸드 트럭, 길거리 좌판은 합법은 아니었기 때문에 건대 앞에 작은 자리를 얻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SNS를 사용한 작은 이벤트들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미디어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너무 많이 써서 유치한 워딩이긴 하지만 삼성 때려치우고 샌드위치 장사하는 청년뭐 이런 제목으로 미디어에 실리기도 했다.

 

▶ 좀 천천히 얘기를 해보자. 삼성전자를 나온 이유가 그게 다였나?

계기는 있었다. 당시 나는 모바일폰 테스트를 위해 해외에 한달 이상 머무르는 출장을 자주 갔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건축 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둘이 채팅으로 회사욕을 막 하다가 둘이 힘을 합쳐서 뭔가 다른 일을 하자라고 의기투합을 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회사를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 정도 스펙으로 삼성전자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들어와서 이 정도의 연봉과 혜택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이이었다. 전체 직장인 중에서 상위 5%안에 들것이다. 삼성전자를 나가서 이보다 좋은 회사를 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대화를 나누었던 그 친구가 덜컥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그리고 나를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나도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질러 버린 거였다. 결국 삼성전자를 2007년에 입사해서 3년 다니고 2010년에 그만 두었다. 당시 나이가 서른이었다.

 

▶ 친구가 나오자고 해서 그냥 나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그렇게 쉽게 회사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는 회사를 쉽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입사지원서를 딱 한번 써서 모든 과정을 한번만 겪으며 삼성전자에 들어가니까 취업 준비의 고단함을 잘 몰랐던 것이다. 취준생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그런 오기와 열정이 남들보다는 적은 상태로 회사에 들어가니 로열티가 적었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어린 마음 이었고 세상을 잘 몰랐던 것 같다.

 

 








▶ 그럼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회사를 그만 둔건가?

친구의 회사가 삼성동 이었고 아침에 김밥을 파는 사람들을 보았다. 청년 둘이 말끔하게 차려 입고 좀 색다르게 샌드위치나 김밥을 팔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는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조금은 무모했다.

 

▶ 처음으로 오픈한 가게는 무엇이었나? 

회사를 그만두기 전 친구와 뉴욕 여행을 갔다. 거기에서 할랄가이즈를 먹어봤다. 너무 맛있었고 한국에서 하면 잘 될 것 같았다. 그걸 한국에서 만들어 보고 길거리에서부터 팔았다. 트위터를 이용해서 내가 가는 장소를 알렸다. 그러다가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건대 근방에 싼 곳을 찾았다. 친구와 같이 인테리어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도 블로그에 올렸고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에서 먹어보고 한국에 없으니 막연히 잘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실패하는 정해진 루트였다.

 

▶ 결국 일년 만에 그만두었다. 어떤 이유였나?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작 한 것이 이유였다. 그냥 막연한 마음에 시작했기에 원가 개념도 운영도 모른 채로 시작했다. 무모한 깡이었다. ‘둘이 젊은데 뭘 못하겠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마케팅에 자신도 있었고 잘 먹혀서, 사람들이 와서 줄서서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두어 달 후 돈 계산을 해 보니 마이너스였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냥 몸만 힘들었다.

 

▶ 재 취업을 마음먹은 계기는?

결국은 생계 때문이었다. 가져갈 수 있는 수입은 별로 없고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내가 투자한 것은 모두 그대로 두고 다시 회사에 지원을 했다.

 

그 후에 SK 플래닛 (당시 SK 컴즈)에 기획파트에서 두 달 근무를 했다. 당시 그 회사는 WAP기술을 이용해서 피처폰에서 전자 상거래 서비스를 했다. 2010년이면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시장이 넘어간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피처폰 서비스를 붙잡고 있는 것이 마치 죽은 자식 뭐만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곧 없어질 기술을 위해 롱텀 플랜을 세우는 것도 답답했다. 그 회사는 SK Telecom의 자회사였기에 함께 시너지를 낼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역시 답답했다. 또 당시 네이트온이 메신저 일등이었는데 그걸 모바일 버전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도 정말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SK Telecom에서는 문자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카카오톡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답답함이 너무 심해서 두 달 만에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 IBM으로 옮겼다. 능력이 좋다.

잡 서칭을 하는 중에 운이 좋게 IBM에서 모바일 신사업을 하는 팀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시 주말에 함께 운영했었던 가게 일을 도와 줬다. 그 때 면접 본 팀장이 슬쩍 와서 내가 일하는 것을 보고 갔다고 들었다. 이런 일을 하는 친구라면 IT 영업도 잘 할거라고 생각을 해서 나를 채용했다고 했다. IBM에서 IT 서비스를 판매하는 팀이었는데 모바일 용으로 개발한 서비스를 처음으로 이마트에 판매를 했다. 사무실 컴퓨터로 하던 일을 모바일 폰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팀에서 내가 유일한 주니어였는데 많은 선배들이 도와 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은 좋았는데 협상하고 관계를 맺고 하는 영업은 조금 힘이 들었다. 영업을 잘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1년 후 팀이 해체가 되고 보안 서비스를 판매를 하게 되었다. 보안은 잘 몰랐고 또 모르다 보니 퍼포먼스도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냥 저냥 일을 했다.

 

▶ 그럼 IBM은 왜 떠나게 되었나?

IBM에 들어오면서도 브랜딩,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열망은 늘 있었다. IBM에서도 마케팅 부서로 옮기기 위한 노력도 했지만 잘 안됐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블로그 활동은 꾸준히 했다. 그러던 중에 중국에 계신 전 샤넬 홍보부장을 했던분께 메일을 한 통 받았다. 패션관련 책을 쓰기 위해서 나를 인터뷰 하고 싶다고 했다. 영광스러운 일이라 인터뷰를 했고 그 분이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게 되었고 친해지게 되었다. 그분의 소개로 대기업의 마케팅 디렉터로 일하셨고 지금은 브랜드 컨설팅 일을 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당시 동경하던 일을 하는 분이었고 그 분도 저를 잘 봐 주셔서 함께 일을 해 보자는 제안까지 받게 되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 과감히 IBM을 떠날 수 있었다. IBM에서 일한 기간은 17개월 정도였다.

 

▶ 보통은 회사가 싫어서 벗어나려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무언가를 향해가기 위해 회사를 떠난 것 같다.

맞다. 회사밖에는 엄청나게 다른 새롭고 다양한 것이 많다. 그런데 퇴근 이후에도 회사의 삶을 연장해서 사는 것이 싫었다. 회사는 회사고 퇴근 후는 나였다. 퇴근 후에는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주말에도 관심 있는 행사, 힙한 곳도 일부러 찾아 다녔고, 돈을 내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적극적으로 배웠다. 당시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아 당시 박원순 대표가 운영했던 희망제작소에도 가서 쇼셜 디자인 스쿨이런 것도 배우기도 했다. 브랜딩에 관련된 공부도 했다. 물론 모두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나 주말에 찾아 다니며 배운 것들이다.

 

▶ 그 때부터 이미 워라벨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삼성에 다닐 때 회사에서의 팀원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회사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같이 놀러가고 하는 것도 좋았지만 더 좋아하는 게 있었다. 퇴근 후에는 그냥 술 먹고 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잡지사 친구들, 브랜딩 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회사일과 완전 다른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경험을 했다. 회사 안에 앉아서 돈버는 것 말고 다른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쪽으로 더 많이 관심이 갔다. 공부도 꾸준히 했다

 

▶ 새로 이직한 회사는 어떤 곳이었나?

Ranee&Company 라는 곳이었다. 브랜딩, 디자인을 하는 창의적인 회사였다. 많이 배웠고 챌린지도 많이 받았다. 그 동안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만 했었지 그것을 일로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챌린지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장점은 Broad한 관심 이었다. 패션, 브랜딩, 음악, 음식 모두 어느 대화에서나 주도하면서 얘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 같았다. 장점일 수도 또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 어떤 일을 했나? 기억에 남는 일은?

당시 현대 자동차의 Young라인 이었던 PYL 관련 일을 했을 때가 기억난다. 가로수길에 팝업 스토어를 만드는데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경쟁 PT를 했고 일을 따냈다. 젊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런칭 행사를 하는 일의 PM으로 일했다. 전체적인 컨셉 설정, 행사기획, 섭외, 진행 등의 일을 했었다. 처음 하는 일이었는데 상당히 큰 일이었고 보통은 시니어가 하는 일이었다.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엄청나게 많이 배웠다. 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배울 것 투성이었다.

 

▶ 결국 그곳도 떠나게 되었다. 계기는 뭔가?

윗 분의 기대와 실무자로서의 괴리, 그리고 대행사 일을 하면서 을로 당하는 그런 답답함 들이 모두 얽혔던 것 같다. 현대차 프로젝트를 마치고 수고했다고 휴가를 얻어 남해로 여행을 갔다. 내 전화가 배터리가 없어서 꺼져 있었는데 여자친구 (현재 부인)의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하는데 업무 얘기를 한 시간이 넘게 했다. 그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나에게 한 얘기도 모두 돌아가서 회사에서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분이 많이 상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같이 일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대표님도 같은 생각이었고 그래서 나오게 되었다.

 

▶ 경력이 뭐랄까 좀 짧고 일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서는 사기 치는거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다. 이렇게 시작과 현재가 다른 경력으로 이런 성과를 낸 것이 말이 되느냐? 그냥 발끝만 담그고 니가 했다는 거 아니냐?” 뭐 그런 의구심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고서는 백수 생활을 좀 했다. 결혼을 했는데 백수가 되어 버렸다.

 

▶ 그 다음은 우아한 형제들에 취업했다. ‘배달의 민족아닌가?

맞다. 이제는 커리어가 브랜딩으로 이어가야겠다고 여러 회사에 지원을 했고 우아한 형제들에 면접을 보고 취업을 했다. 지인 찬스도 없이 지원하고 면접을 모두 보고 들어갔다. 하지만 경력은 단 일년만 인정 받았다. 사회경험으로는 8년차 였는데 브랜딩을 일로 한 것은 일년밖에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어서 오케이를 하고 입사를 했다. 당시가 2014년 이었다.

 

▶ 배달의 민족에서 어떤 일을 했나?

마케팅 실에서 일을 했다. 어느 하나 정해진 일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두루두루 모든 일을 했던 것 같다. 좋게 말하는 모두 했던 거고 나쁘게 말하면 체계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당시는 회사가 막 커나가는 단계여서 업무가 프로세스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이것 재미있겠는데 하면 해 보고 그랬던 것 같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내가 삼성과 IBM에서 특히 많이 배웠던 것은 일의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대한 힘이었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IBM에서는 서비스 판매 계약을 하나 하려 해도 거의 직능의 부서가 Engage 되어 있기에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심지어 잘 모르는 Account쪽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했다. 설득을 해서 오케이를 받지 못하면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프로세스가 전세계 IBM이 동일 했다. 당시 IBM에 있을 때는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떠나고 나서 보니 서비스 판매 전에 모든 RISK를 없애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고 그 프로세스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이 다듬어진 것이었다.

 

IBM에 들어가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삼성이 부러워하는 회사가 IBM이라고 들어서 도대체 무얼 닮고 싶어하는지알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과 상관없이 경계를 넓히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일을 왜 이렇게 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제안서를 하나 써도 나는 세일즈 부서였기 때문에 기술자 그룹에 있는 사람의 시간을 사서 일하는 구조였다. 같은 회사에서 그냥 , 이런거 하는데 좀 도와줘이런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IBM은 일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 인력, 그리고 벌어들이는 Benefit을 정량화 하면서 측정할 수 있는 단위로 만들었던 것 같다.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Risk Management 였던 것 같다. 그렇게 세계에서 제일 가는 프로세스, 효율 중심의 회사에 근무를 했었다 보니 배달의 민족의 당시 모습이 너무 미숙하고 답답해 보였다. 물론 스타트업이고 아직 기업 생장주기로 보면 초창기 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많이 답답했다. 분명 좋은 회사이고 잘나가는 회사이기는 한데 나의 나이와 커리어를 볼 때 오래 있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 회사의 업태와 역사에 따라 많이 다른 점을 느낀 것 같다.

배달의민족은 사회초년생들이 많이 있었고, 직원들의 대표님에 대한 애정과 신뢰도가 엄청났다. 대표님을 거의 스타로 생각하고 (스타가 맞긴 맞다) 팬처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너무 열광을 하면 조금 아니, ?”라며 의구심을 갖는 스타일 이다. 직원들이 모든 것을 회사에 올인하고 직원들과 너무 친하고 여행도 다니고 했다. 나는 결혼도 했고 나이도 있고, 경험한 것이 다르기에 생각도 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회사고 좋은 회사이지만 나와는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었다. 직원들과의 나이차이도 그 중 하나였다.

 

▶ 당신은 하고싶은 걸 학창시절에 이미 알았다. 어떻게 그걸 찾았나?

지금 30대 정도의 성인이라면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뭘 할 때 가장 좋았지?’, ‘주말에 시간이 나면 나는 뭘 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학생 때 주말에 동대문, 이대, 강남, 이태원 등의 옷 가게를 돌아 다니면서 뭘 파는지를 보고 사람들이 뭘 입는지를 봤다. 시간이 나면 도서관의 정기 간행물실에 가서 여러 종류의 잡지를 다 봤었다. ‘이런걸 다루는 잡지가 있어?’ 하는 특이한 것도 읽어 보았다. 사실 그 과정은 많은 인풋을 받는 과정이었다. 많이 들어와야 그 중에 나와 맞는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일을 하다보니 상충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과거의 사소한 행동을 살펴 보면서 하나하나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거 같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잘 모른다. 조언을 해 준다면?

가장 큰 문제는 학원좀비로 키워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에 정답이 있는 문제 풀이에만 익숙하다. 사고 자체가 정답만을 찾는 것에만 익숙해 져서 정답이 없는 사회에 들어 왔을 때 답답해 하는 것 같다. 스펙을 쌓는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무엇 무엇을 원한다더라, 어떤 타이틀이 있어야만 인정받는다고 이미 알고 있고 그것만을 위해 행동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삶은 학원에서 해결해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작은 관심이라도 있으면 해 보길 바란다. 페이스북에서 좋은 교육이 있어도 좋은 명언이 있어도 그게 그냥 끝이다. 실제로 내가 뛰어들어 해보고 경험해 보는 사람은 적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제 행동으로 한발 더나아가지 않는 거다. 딱 한발만 더 나가서 실제로 모임에 참석해 보면 된다. 설령 가서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하더라도 잠깐이라도 가보는 것만으로도 , 이런 곳에 관심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구나. 이렇게 관심있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거다. 쭈뼛쭈뼛 거리더라도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나만 그런 거겠어? 다른 사람도 어색하겠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걸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작은 관심이 있으면 딱 한발만 더 나가면 좋겠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Tags : 개발자, 개발자퇴사, 식당, 외식업, 요식업, 퇴사, 회사를떠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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