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22 _ 일 년의 멈춤이 나를 완전히 바꿨다.

Author : 손성곤 / Date : 2016.06.21 07:30 / Category : 회사를 떠나다


 간략한 자기 소개

저는 1976년생 올해 마흔 한 살의 ㅇㅇ 입니다. 지금은 ㅇㅇ회사의 상품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위는 차장 입니다. 

 


 본인의 커리어를 회사와 직업 중심으로 소개해 달라.


나는 흙수저였다. 어릴 적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폭음과 이어진 가정폭력 어머니의 눈물이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TV에 나와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은 학교와 집뿐이었다. 아버지는 대 놓고 대학은 안 보내 주겠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나 배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열심히 공부만 했다. 그렇게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환경 때문에 선택한 차선이었다. 그러다가 육사를 일년 후에 자퇴했다. 짧게 이유를 말하자면 그곳은 나에게 원하는 틀이 있었다. 그 틀이 트러블이 심했던 아버지가 나에게 강요한 것과 비슷했다. 아버지의 틀을 벗어나려고 육사를 선택했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틀을 강요 당하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만약 4년만 버티면 끝이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생활을 계속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아버지의 그늘에서 평생을 사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는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퇴를 했다. 그 이후에 다시 4년재 대학의 광고 홍보학과에 진학을 했다. 첫 직장은 생활소비재 회사의 MD 였다. 중견 규모 회사에서 2003년 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소기업이기는 했지만 상장기업이어서 당시에는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 그 후에 두 번의 이직을 하고 2016년 현재 14년 차 직장인으로 유통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원으로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창피하지만 위에 내 배경을 설명한 이유는 그 당시의 모습이 회사원으로 나의 모습에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그저 성공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승승장구 해서 연봉을 많이 받는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목표였다. 그래서 성공을 하려면 죽기살기로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를 완전히 버리고 회사에 나를 던지는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오직 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은 회사였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 보는 것은 잘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정말 인간미 없이 무조건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상사의 지시는 무조건 따랐지만, 부하직원에게는 업무적으로 강요를 하는 그런 부류였다. 당신이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라는 책에 쓴 것처럼 정말 회사가 시키면 주말도 없이 일했던 ‘회사가 가장 원하는 인재’였다. 나를 버리고 회사일 자체가 나인 것처럼 일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 적으로 묻겠다. 왜 육아휴직을 냈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외국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극에 달했다. 사실 영어 때문에 회사 내에서 성장을 못한다는 위기의식, 피해의식이 굉장히 컸다. 현재 직무를 하기 전 다른 업무를 할 때에는 누구보다도 인정을 받고 있었고 업무적으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을 하면서 영어에 대한 절박함이 갈급해 졌다. 팀장도 바뀌었고 또 주변 상황이 휴직이 가능할 것 같아 다시 신청했다. 어찌 보면 회사에서 나의 존재감이 작아진 느낌이 휴직을 신청할 용기를 내게 해 준 것 같다.

 

두 번째는 인생의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결심 때문 이었다. 지금 보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내가 스스로 원했다기 보다는 주변 상황에 대한 압박 때문에 그렇게 결정한 것 같다. 예전에는 그저 회사 안에서 승진하고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공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졌다. 나와 가족과 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바뀐 기준에 따라 내 인생의 지향점을 설정하는 것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꽤 힘들었다.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회사 안에서의 성공만 쫓다가 인생관이 바뀐 것 같다. 그 이유는 뭔가?


나는 직장생활을 14년 동안 하다 보니 별별 경험을 다 했다. 그 경험은 업무적인 것뿐 아니라 업무외적인 부분도 많았다. 진짜 얘기를 하면 ‘미친 것이 확실하다.’고 말할 정도의 사람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사람들과의 미친 것 같은 사건들로 인해 사람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12년차쯤 되었을 때 크게 한번 아픈 적이 있었다. 한달 넘게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일주일 정도는 마냥 좋았다. 푹 쉬고 푹 자고 잘 먹고. 그러다가 누워있는 기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고민 중에 잠을 설쳐 가며 계속해서 깊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는 누구, 아니 무엇인가?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유치한 질문은 나를 바꾸는 촉매가 되었다.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을 돌아보니, 회사에서의 성장과 성공은 가족, 그리고 개인 생활의 포기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만났던 주변 상사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회사 안에서의 성공보다 인간 ㅇㅇ 으로서의 개인적인 행복에 무게 중심이 옮겨가게 되었다. 그래서 과감히 휴직을 해야겠다 라고 결심 할 수 있었다.  손에 쥐려고 맹목적으로 쫓기만 했던 회사 안에서의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만약 아파서 쉬지 못했다면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냥 지금도 맹목적으로 회사에 충성하며 나와 가족을 버리고 일 했을 것이다. 그런 쉬는 기간이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고 결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4년차차장 직위에 육아휴직을 냈다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나아니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난 건가?


남자 사원이 육아 휴직 후 돌아 왔더니 이상한 팀으로 전배를 보내고 자리를 빼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실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받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 기회가 된다면 돌아오지 않을 생각은 있었다. 여기서 기회라는 것은 새로운 직장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서의 기회를 의미한다. 다른 관점에서, 지금의 회사가 아니라도 다른 곳에 내가 갈 수 있는 있을 것 이라는 확신이 있다. 단지, 이번에 다른 길을 찾는다면,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다.


 

 지금 회사에서 불만은 없었나?


불만 보다 답답한 것을 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기업문화에서는 기한 내에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못하면 일 못하는 놈혹은책임감 없는 놈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회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일을 다 처리 못한다고 뭐라고 하는 것은 회사의 책임인 것 같다. 퇴근 시간 1시간 전에 일을 주고 해 내라는 것은 그저 야근을 하라는 것이고 이는 회사가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회사가 먼저 근로계약을 어기는 것이다.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한다면 역량을 길러주던지 일을 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윤활하게 만드는 것이 중간관리자인 팀장의 역할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개인의 무능과 책임으로 돌리면 팀장은 편해진다. 자신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 팀장이 팀장인지 의문이 든다. 이 회사에서 내가 만나고 본 모든 팀장은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의 입장에서만 냉정히 보면 개인이 회사에 다니는 목적은 자신을 위해서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 회사생활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회사도 이득이라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그런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퇴근 1시간 전에 일을 주고 안 한다고 난리를 치는 거다. 이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회사는 단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을 계산해서 맞게 부여해야 한다. 회사의 프로세스 안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이 팀장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팀장에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휴직 당시 팀장에게 나의 존재는 꼭 필요한 필수요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불편한 존재였다고 보는게 맞다. 나는 차장 2년차였고 실무 경험이 없었던 팀장보다 휠씬 전문가였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내가 너무 잘 알다 보니 ‘자신의 무지를 들킬 수 있는 존재’ 혹은 ‘팀장인 내 자리를 뺐어 갈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빠진다는 것에 대한 대안을 미리 준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는 했다. 그리고는 두 번의 추가 면담 후에 육아휴직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개인사업이직 등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그런 시선을 느낀 적 있나?


거의 100% 그런 시선을 느꼈다. 회사 동료들의 반응은 ‘쉬면서 이직준비 후 이직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어디 좋은데 가냐?”고 노골적으로 물었다. 나를 잘 아는 친한 동료들은 쉬지 말고 차라리 회사내의 다른 부서로의 전배를 권했다. 회사외부의 반응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사업을 하기 위해 휴직을 했다. 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나중에 친한 후배를 통해서 들은 말이다.


 

 육아휴직 결심을 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혹은 사건은?


우선 위에서 말한 나의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된 병원에 있었던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같이 일하는 상사와의 신뢰상실이라는 외적인 이유였다. 상사와 부하직원에게 저지르는 부조리 때문에 신뢰가 사라져 버린 것도 큰 이유였다. 간단히 말하면 팀장 바로 밑, 내 바로 위의 차장이 대표이사를 포함해 수천 명이 넘는 전 직원들에게 팀장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장문의 메일을 쓰고 퇴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짜증이 나서 말하기도 싫다.

 


 남자 육아휴직은 매우 드물다좋은 회사인가 보다회사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점수는 한 40점 정도 주고 싶다. 좋은 점 보다는 나쁜 점이 크다. 건강을 챙길 수 없을 정도로 업무가 많았다. 마흔 둘은 젊다면 젊고 아재라면 아재인 나이다. 그 나이에 허리디스크, 목 디스크, 간질환, 비타민 결핍, 스트레스성 만성 두통, 비만 등 많은 질병을 달고 있다. 두 번째로, 군대식 기업문화로 인해 잘못된 가치관으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폭압적인 문화가 너무 당연시 여겨지면서 욕하고, 윽박지르는 등의 몰상식적인 행동들도 많았다. 나도 이런 것들을 보고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생각에 물들었다. 내 밑에 직원의 인격을 무시하면서 나 스스로 이것이 잘못이라는 걸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었다. 지금은 이것을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도 굳어진 이 관성을 고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아이는 누가 봐주나?


우리 아이는 반은 국가가 키웠다. 나와 아내 모두 야근이 많아서 어린이 집, 유치원 모두 가장 먼저 등교했고 가장 늦게 하교를 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3살때에 11시넘어서 데리러 간 적도 많았다. 당시 어린이 집 원장님이 우리 사정을 이해해 주어서 자신의 집에 우리 애를 데려가서 봐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회사에서 꽤 잘 나갔었고, 회사의 일이 가장 우선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첫 아이라 정말 너무 내 생각으로만 키웠던 것 같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이런 일에 대한 미안함이 늘 가슴속에 있었다. 육아휴직을 통해서 아이와 하루의 반을 함께 하면서 더더욱 과거의 회사일 때문에 혼자 남겨둔 것이 아이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깨닫고 나니 더욱 미안했다.


 

 휴직을 하기 전에 계획을 세운 것이 있다면?


휴직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었다. 건강의 회복과 아이와 함께 시간 보내기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안을 만들었다. 제주도에서 6개월 살기, 아이와 세계여행 등등. 여러 가지 안 중에서 선택한 것이 해외연수였다. 사실 처음 계획은 가족이 모두 같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도 휴직계를 제출했었다. 그러나, 상사들의 눈치 때문인지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지만 구두로 승인을 받고 4개월간 질질 끌다가 회사 사정으로 휴직은 취소했다. 그래서 아이와 단둘이 하는 해외에서 함께 생활하며 영어 공부를 하는 연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휴직하고 나이 42살에 영어공부라니진짜 이유가 뭔가뭔가 다른 이유가 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두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바로 학력과 영어가 그것이다. 그 때문에 항상 영어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회사 생활이 끝난 후의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야근에 지친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와 쓰러져 잠들고 아침이면 일어나 씻고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기계 같은 생활을 멈춰야만 했다. 나는 회사 생활을 모두 마치고 나면 제주도 같은 곳에서 외국인 들을 위한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며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영어였다. 독학도 해보고, 나름 학원도 다녀봤지만 그렇게 해서 배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연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와 함께 할 시간, 미래를 생각할 시간, 미래를 준비할 시간의 필요 때문에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아내는 혼자 일을 하고 아이와 함께 해외에 다녀왔다아내가 화내지는 않았나? 


앞서 얘기 했지만 원래 계획은 아내도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일찍 귀국하려 했는데 오히려 기왕 시작한 것 제대로 공부하고 오라고 지원해주었다. 아내에게 감사하고 미안하고 또 고마울 뿐이다.


 

 일년간 해외에서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면 얼마나 드나?

다녀와서 계산해 보니 한 8천 만원 정도 든 것 같다. 물론 내 연봉을 기회비용에 합치면 1억은 훌쩍 넘을 것이다.

 


 살림은 넉넉한가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휴직을 하면 기획비용까지 2배가 마이너스다.


결혼 후 양가 부모로부터 단 한 푼의 도움 없이 두 사람만의 힘으로 버텨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모아봐야 얼마나 모았겠는가? 아직도 서울의 외곽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찾았고 아내와 공유했었기에 결정할 수 있었다. 또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결정하게 된 동기인 것 같다.

 


 자신의 커리어가 끊길 것을 감내하고 휴직을 냈다경단남이 되는 걱정은 없었나돌아오면 회사에서 책상을 빼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나 경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라도 있을 거라는 확인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게 두려웠다면 육아휴직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지낸 해외에서의 일년어땠나?


육아휴직을 한 일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었던 기간이었다. 내 스스로 힘든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정말 알차게 살았다. 회사에서 매일 야근하며 시간을 보내며 늘 꿈처럼 생각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는 독립성이 습관화 되었다. 자기 일을 스스로 하고 또 남을 존중하는 법을 유치원에서 배웠다. 많은 액티비티와 여행을 함께 하며 아빠와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갖게 되었다. 캠핑을 떠나 만났던 하늘의 별, 너구리가 가져간 저녁밥, 그리고 개울가에서 물놀이 등은 아직도 반복해서 얘기한다. 나이아가라 폭포, 푸르른 공원, 아이슬란드의 빙하, 순록, , , 온천 등은 아이에게는 너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이 되었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아이의 그 모든 기억에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육아 휴직 일년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비로서 아이와의 관계가 진짜 아빠와 아들 사이가 된 것 같다. 그 전까지는 그저 주중에는 맡기고 찾아오는 사람, 주말에는 힘들지만 억지로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자기를 위하는 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은 물어보려 한다. 상대적으로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게 흠인 것 같다.







 

 아이와 많이 각별해 진 것 같다. 이에게는 어떻게 살라고 얘기해 주고 싶나?


물어보지 않는다면 굳이 얘기해 주지 않을 거다. 그 대신 질문을 할 것이다. “그거 하면 재미있어? 그건 어때?  뭐하고 싶어? 니 생각은 어때? 어디 갈까? 어떤 모습이 되고 싶어?” 부모는 질문을 해서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틀만 만들어 주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아이는 대답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모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원하는 일을 찾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인생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돕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에 가는 것이 죽도록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우리 아이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나의 바램을 말로 하거나 직접 가르쳐서 알게 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느끼게 하고 싶다. 그래서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자원봉사를 같이 다닐 것이고, 올바른 시가가 되면 해외 배낭여행을 지원할 계획이다. 대신, 그 이후의 인생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지, 어디서 살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휴직하고 일년간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잃은 것은?  


얻은것은 너무 너무 많다. 내가 세운 인생의 목표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내가 쉼 없이 달려가던 길에서 살짝 벗어나서 돌아봤던 나. 그 과정에서 다시 깨달았던 나의 잘못된 행동들. 그리고 앞으로의 내 태도 변화에 대한 방향성. 아이와의 평생 안고 갈 소중한 추억. 해외의 새로운 사고방식.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한 고민.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  결론적으로는 잠시 멈춤으로 나의 방향성을 찾았고 돈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이와의 추억을 얻었다. 잃은 것은 돈 뿐이었다.

 


 휴직이 당신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멈추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달리기만 하면 방전되어 버려지는 직장인들에게 쉼은 더더욱 중요하다. 멈춤과 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건 당신의 쓴 책인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에서 같은 내용을 읽었다. 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가능한 업무적으로 만나는 것을 줄이려고 한다. 비즈니스, 돈과 연결된 관계에서 진실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능한 회사 밖에서 진심이 통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회사 안에서는 내가 해서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중이다. 14년차에 이런 것을 찾는다는 것이 웃기기도 한데 지금이라도 노력해 보겠다.



 복직 후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아니 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이 50대 되었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이다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행동놀면서 돈만 받아가는 월급 루팡들아부와 비열한 행동만 일삼는 사람들이 너무 짜증나고 싫었다또 회사에서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도 정말 많이 의식을 했다내가 남보다 중요한 일을 맞고회의 시간에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서 인정받고 하는 것처럼 나를 드러내는 것을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하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또 뻔히 수가 보이는 이상한 짓을 하는 또라이들을 보면 예전처럼 화가 나기 보다는 불쌍하게 느껴졌다.

 

지금 나의 가치의 중심은 나의 미래를 위해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이다상대적으로 예전에는 회사 일이 나의 가치의 99%였고 일이 많을 때야근할 때스트레스 받을 때 정말 힘들었다하지만 지금은 일이 많고 적음 회사 내에서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육아휴직 복직 후 회사가 어떻게 느껴지는가? 달라진 점이 있나?


같은 팀으로 복귀 했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내 일은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서 하고 있다. 그 일은 많은 금액을 좌지우지 하는 제법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예상은 했었다. 단지 예상이 빗나가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래서 이질감이 조금 더 느껴진다. 나는 일년간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변화 했는데 회사 안의 다른 이들은 내가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정말 작고 사소한 것으로 서로 반목하고 무시하고 싸우고 헐뜯는 것이 안타깝다.

 

 

 그럼 돌아와서 일은 어떤가? 할 만 한가?

예전보다 일이 줄었다. 팀장이 나에게 일을 많이 주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팀장 바로 아래 있기 때문에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 나를 견제하는 건지, 혹은 내가 언제라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안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월급은 그대로 인데 하는 일이 적으면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결론부터 말하면 일이 적어서 스트레스다. 물어본 것처럼 일이 적으면 좋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일의 양을 육아휴직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30% 수준 정도다. 내가 차장인데 이건 주임 수준의 일을 준다. 옆에 사람은 일이 많아서 바쁜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MD인데 돌아와서 2달이 넘었는데 정확히 담당하는 것이 없다. 가끔 떨어지는 ad hoc성의 일 밖에 없다. 때로는 일이 없어서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내 스스로가 일을 안 하니 회사원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지는 것 같고 조직의 일원으로서 회의 할 때도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망설여 진다. 회사 생활이 엄청 위축되고 뒤쳐지는 느낌이다. 팀장도 하루 종일 내가 별 일이 없다는 것을 알 텐데, 가끔 자리를 비우거나 멍하게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말 했듯이 예전부터 나는 일을 미친 듯이 했던 사람이기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사실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루틴이 없다는 것 자체가 휠씬 힘든 것 같다. 이건 성취감과 관련된 부분이다. 일이 많아도 내 일이 있으면 내가 의사결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성공도 거두며 기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보람 같은 것이 있었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굴곡 속에서 살아 있는 느낌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 축 쳐져 있는 느낌이다. 못 할 짓이다.


 

 팀장 입장에서 일을 나누면 전체 팀원 전체의 사기도 올라갈 텐데 이상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회사 내에서 육아휴직 복귀자에게 조직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팀장이라는 사람 개인의 의지인 것 같다. 팀장이 나와 성별이 달라 쉽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오해가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달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을 것이다. 그럼 저 친구가 하고 있는 일 주세요라고 하면 그 일을 내가 뺏어가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망설이는 거다. 내가 팀장이라면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일을 나누었을 것이다. 팀원들도 해피하고 나도 스트레스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회사 일의 계획은 어떤가개인가족 삶의 계획은?


일단 회사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일을 재정립하고 싶다. 재미 혹은 의미가 있는가?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으로 일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만약 이직을 통해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 할 것이고, 팀을 옮겨야 된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미래를 위해 투자할 거다. 아내와 나는 은퇴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우선 건강을 회복하는데 투자할 것이고, 다음으로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우리 가족도 건강이 우선, 그리고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신중하되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다. 행동하는 것의 힘을 일년간 너무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고 노트에 끄적이기만 하고 말만 하고서 행동하지 않는 그런 실수는 이제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왜 모두 이렇게 비슷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나?

예를 들면 좋은 학교 나오려고 애쓰고대학교에서는 좋은 직장 돈 많이 주는 직장 가려고 애쓰고. 그러다가 문득 소모되어 회사에서 불필요하다고 버림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것 말이다.

 

어려운 질문이다. 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유교문화 때문인 것 같다.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로 인식하는 문화적 특성이 한 원인인 것 같다. 또 초,,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다. 남이 세워놓은 대오를 이탈하는 삶이 곧 낙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일을 하면 즐겁고 행복할까?’가 아니라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를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연수를 했던 나라에서는 다름을 인정한다. 면접, 학교, 직장 등의 어떤 곳에서도 나이, 출신, 성별, 종교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나아가 직업의 차이에서 오는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를 쿨하게 인정한다.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은 주말에도 일을 하는 학원강사다. 그는 10년 넘은 차를 아직도 탄다. 그는 자신의 일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거라고 얘기했다.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고 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버스 운전기사나 배관공이나 은행원이나 그냥 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지금 어느 누군가는 당신처럼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다면뭐라고 해 주겠는가?


그건 철저히 본인의 결정이다. 한가지 바라는 것은 그 결정은 그 사람의 명확한 가치관이 서고 난 후에 내리면 좋겠다. 그 사람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믿는 가치가 있고 그걸 믿는다면 뭔가 해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칫하면 육아휴직 기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라 당신이 소중하게 붙잡아야 할 결정적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 휴직을 하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우선 회사 다니면서 시간을 내서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 확신이 생기면 그때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휴직을 하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에서 남자의 육아휴직이 주는 임팩트는 생각보다 너무 강하다. 마치 이력에 빨간 줄이 쳐진 느낌까지 든다. 그렇기에 좀더 신중히 다시 판단하라고 권하겠다.

 


 휴직기간에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나와 아이의 경험과 아내의 경험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내가 느끼는 이 생각들을 나는 단지 말로써 아내를 이해시켜야 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숙제다. 나와 아이는 아이 스스로의 독립적 생활방식을 셋업하고 왔는데, 엄마는 아이를 또다시 예전 5살의 아이처럼 대하기 때문에 아이가 다시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비어버린 통장잔고를 볼 때 후회한 적은 없었나?


휴직 후 연수를 떠날 때 적금, 보험 등을 모두 정리했다. 마음은 이미 그때 한번 아팠고, 돌아와서 전세 만기가 끝나서 새로운 집을 찾을 때 한번 더 아팠다. 다행히도 은행이 도와주기에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삭일 수 있었다. 지금은 이제 다시 채워야지라는 생각이다. 누가 물어보더라도 일년 동안 돈밖에 잃은 것이 없다. 그래서 후회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남자가 아내 혼자 일하게 두고 지는 외국에서 공부나 하고 팔자 좋은 놈이다정신차려라 임마.” 라는 악플이 달렸다면 거기에 뭐라고 리플을 달고 싶은가?

 

아내를 잘 만났어요.” “결혼을 잘했어요.” “대신 아이는 내가 키웁니다.” 뭐 이런 글을 남기겠다. 사실 그런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미래에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금 하고 있는 준비는 있나?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50살까지만 회사생활을 하고 싶다. 8년 남았다. 50살에 은퇴 후에는 제주도에서 팬션을 하고 싶다. 돈을 벌기 위한 것 보다는 생활 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이익이 나지 않아도 좋다. 50살 이후 남은 인생을 가족과 즐겁게 살고 싶다. 그 팬션을 외국인 전용으로 해서 아이에게도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본인이 말한 삶의 행복과 인생관과 하고픈 일이 100% 맞지는 않는 것 같다. 팬션을 하는 것이 본인의 삶의 가치와 맞다고 생각하나?

100% 맞지는 않을 수 있다. 내 인생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고 싶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말 뒤에는 금전적인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 일년간 회사, 그리고 한국과도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생활을 했다. 우리는 겪어서 알게 된 삶에 구속된다.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단지 좋다라는 느낌보다는 무언가 따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

 

해외에서 일년간 있으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외국 애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Why not?’ 이라는 말이 있다. 참 신기한 말이었다. 이 말이 나왔을 때 말문이 턱 막히는 경험이 많았다. 맞다고 생각하면 하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어떤 대화에서 “Why?”라는 질문을 했을 때 너 혼자만 잘 되는게 무슨 의미야, 니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봐. 그럼 우리가 이렇게 행동해야 하지 않겠니?” 또는 너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 라는 늬앙스의 말을 제법 많이 들었다. 그리고 휴가를 가도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오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헤비타트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사람들이 부자가 아니라 소형차도 10년넘게 타고 다니는 중산층 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에게는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팬션을 하면서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다니는 삶을 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나의 아이가 나밖에 모르는 삶이 아닌 주위를 돌아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남을 도우며 함께 사는 삶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렇게 늙어가고 그렇게 죽고 싶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의 가치관은 현재 흐르고 있는 문화에서 기인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차별, 남을 밟아야 내가 돋보이는 조직.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작은 바램은 직장인들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언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같은 유치하지만 꼭 필요한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바빠 죽겠는데 뭔 개소리냐?” 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 우리가 직장에 다니는 이유가 행복을 위해서이고, 그 행복이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봐줄 줄 알고, 어울려 살아 갔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지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까이는 내 아이, 내 아내의 행복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형제 부모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이웃과 이웃나라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14년간의 회사생활 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 기쁨은 생각보다 컷다.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통해서 삶의 방향성을 찾고 그 길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직장인으로서 성공만을 위해 회사 인간이었던 그는 일년의 멈춤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두가지 였다. 자신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멈추어 일에서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고맙게도 내 책을 읽어 주었고 그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에게 인터뷰를 먼저 요청해 주었다. 어찌보면 직장인이자 글을 쓰는 나에게는 가장 감사한 사람이었다. 내 작은 글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이 한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 이라고 부르고 싶다. 많은 직장인 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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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희욱 2016.06.24 10:20 신고

    긴 글이지만 천천히 모두 읽었네요. 그냥 앞만보고달리기만하면 생각하고 돌아볼수 없다는 말이 정답인듯 하네요. 그러다가 원치않게 떠밀리게 되고요. 우리 회사도 가능 하다면 한번쯤은 나를 돌아보는쉼도 좋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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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곤 2016.06.24 22:43 신고

      안녕하세요.

      인터뷰의 내용이 짧지 않고 모바일로 많은분들이 들어오셔서 끝까지 읽기 버거울 수 있는데 다 읽어 주셨다니 고맙습니다. 멈춤은 직장인에게 필수입니다. 멈추지 않으면 방전되서 버려질 수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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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호순 2016.06.28 15:59 신고

    저는 극단적으로 멈춤이 필요할 때 회사를 접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비교하며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어서 좋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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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곤 2016.06.30 12:07 신고

      안녕하세요. 장호순님.

      대부분의 직장인 들은 자신이 멈춤이 필요하다는 사인을 잘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충격에 어쩔 수없이 멈춤을 당하죠. 그 멈춤의 때를 알고 자신을 돌아보고 사업을 시작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직장생활연구소 계속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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